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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준

last modified: 2015-01-30 02:05:15 by Contributors


이름 박노준
생년월일 1962년 10월 26일
출신지 전라남도 목포시[1]
학력 봉천초-선린중-선린상고-고려대
포지션 투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6년 OB 베어스 1차 지명
소속팀 OB 베어스(1986~1991)
해태 타이거즈(1992~1993)
쌍방울 레이더스(1994~1997)

1994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광림(쌍방울 레이더스)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전준호(롯데 자이언츠)
김재현(LG 트윈스)
박노준(쌍방울 레이더스)
윤덕규(태평양 돌핀스)
김광림(쌍방울 레이더스)
김상호(OB 베어스)
전준호(롯데 자이언츠)

인사이드 파크 호텔!
손가락 벌렸죠? 스플리터에요.[2]
넘어갔어요, 기아우승 기아우승.

Contents

1. 아름다웠던 고교 시절
2. 부상
3. 그저 그랬던 프로시절
4. 해설자 데뷔
5. 단장으로서의 모습
6. 해설자로 복귀
6.1. WBC에서의 개드립들
7. 연도별 주요 성적


前 야구 선수, 우리 히어로즈 단장. 現 크보 최악의 프리랜서 야구 해설가 및 우석대학교 체육과학대학 레저스포츠학과 교수.

1. 아름다웠던 고교 시절

초등학교 시절 1학년을 2번 다닐 정도로 체력이 약해 야구를 시작했는데, 선린상고 시절엔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야구실력과 훤칠한 외모로 유명했다. 선린상고 시절의 별명은 유독 챙이 짧은 선린상고 모자와 굳게 다문 입 때문에 '독일병정'.

어쩌다가 마운드에서 내려오면 야수로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거기에 발도 빠르고 외야로 나가면 총알 송구까지 하는 등, 그야말로 고교야구의 로망인 투수인 동시에 중심타자였다.

선린상고 2학년 때인 1980년에는 전국 대회에서 이미 당시 고교 최고의 투수였던 선동열[3]이 마운드에 버티고 있던 광주제일고와 맞짱을 떠서 무릎꿇린 경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빼어났다. 거기에 고3 때는 청룡기, 봉황대기 양 대회에 걸쳐 경북고와 혈전을 벌이면서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드라마성까지 갖췄다.[4]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야구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대한민국 야구 사상 최초라고 불러도 좋을 야구아이돌 스타[5]이며 프로 출범으로 인기가 사그라질 운명에 처한 대한민국 고교 야구 최후의 전성기를 장식한 주연 배우였다.

2. 부상


미안하다아아아아!!!

1981년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부상을 당한 다음날 입원한 병원 앞에는 그의 부상을 안타까워한 여고생 팬들이 진을 치고 있었으며 방송국에서 병원에 입원해서 발목에 깁스를 하고 누워 있는 그를 찾아와서 준우승에 머문 심경 등을 인터뷰해 갔을 정도였다.[6] 그 후로 대한민국 야구 사상 이렇게 여고생들한테까지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야구선수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선린상고의 쌍두마차이자 또 하나의 천재 김건우는 선린상고 때도 관심을 못 받았다. 그리고 프로로 진출한 뒤에도 교통사고로 커리어를 일찍 접고 말았다.[7]

3. 그저 그랬던 프로시절

그러나 선린상고 졸업 후 고려대학교를 거쳐[8], 프로까지도 이어진 투수와 타자 겸업 등으로 인한 혹사와 집중력 결여로 인해 프로에 입단한 후에는 크게 활약하지는 못했다.[9]

프로에 와서도 징그럽게 부상을 많이 당한 케이스이다. 아아 원조 쿠크다스
1987년 어깨 부상
1988년 손등 뼈 골절
1989년 손가락 골절
1992년 왼쪽 무릎 인대 부상
1993년 갈비뼈 골절,
1994년 쌍방울에서 골글 탈 정도의 활약한 다음에 허벅지 근육 파열
1996년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
1997년 결국 은퇴.

OB-해태-쌍방울을 거친 그의 프로 통산 성적은 타율 0.262, 28홈런, 266타점. 그리고 5승 7패 7세이브 3.25. 이 좌완투수 기록이 투타 겸업으로 망했다는 1986년 신인의 기록이다. 대신 타격이 망했다. 1986년 타격기록은 0.173, 0홈런, 1타점. 사실 투수 기록도 그다지 특출난 것도 아닌 것이, 이 시기는 투고타저의 시대라 3점대 방어율은 평범한 기록이었다. 1991년 시즌 후 이광우를 상대로 해태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됐다가, 1993년에는 백인호와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되어 쌍방울에서 골글 한 번 찍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아무튼 선린상고 시절의 박노준은 지금도 올드 야구 팬들에게는 로망 그자체였다.

'야구가 좋아'[10]라는 사이트에서 최훈이 연재한 레전드 카툰[11] 중 박노준 편에서 바로 이 투타 겸업으로 망했던 일화가 소개되었었다. 최고의 선수에게 투수의 재능마저 있었기에 오히려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는 훈훈한 내용.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음 소개된 선수가 원년도에 선발로 10승 타자로 3할을 기록한 김성한…. 만화 속에도 나온다. '누구야? 투, 타 겸업이 힘들다고 한게...'

4. 해설자 데뷔

그러나 선수 은퇴 후에는 선수 시절의 인기가 무색하게 되었다. 일단 미국 마이너리그 지도자 연수를 다녀오긴 했는데, 워낙 부상으로 떠돌이를 한 상황에 더해서 마지막 은퇴한 것이 지금은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진 쌍방울이기 때문에 코치 복귀는 무리였다. 결국 2000년 iTV박찬호 등판경기 방송 해설로 데뷔, 이후 SBSSBS Sports로 이적했다.

경인방송 시절에는 나름대로 해설이 신선하다 내지는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송재우 위원의 버프를 어느 정도는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SBS 스포츠로 이적한 이후에는 손가락 벌렸죠? 스플리터에요, 인사이드 파크 호텔! 등 컬트적인 발언으로 야구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그렇게 해설자로서 커리어를 쌓아가던 어느 날, 갑자기 매력적인 제의를 받게 되는데….

5. 단장으로서의 모습

2008년에 창단한 우리 히어로즈의 단장을 역임했다. 당시 이장석메이저리그의 GM과 같은 역할로 박노준을 영입하는데 빌리 빈이 나오고 머니볼이 나오고 새로운 패러다임 이야기가 나오고 했으나 결론부터 말하면 박노준의 진짜 역할은 얼굴마담 겸 대신 욕먹는 담당이었다. 선수들 연봉 깎는 것부터 시작해서, 목동야구장 인근의 아파트 민원담당까지 했다. 이때 선수들 연봉은 깎으면서 현대 시절 리스한 에쿠스를 몰고 다닌다고 붙은 별명이 '에쿠스 박'. 그런데 정작 이 장면 이후는 아무것도 구단에 영향력 행사를 못 했다고 한다. 결국 욕만 우라지게 먹고 2008 시즌이 끝나자마자 구단 수뇌부와 마찰을 빚은 후 사임했다.[12]

6. 해설자로 복귀

단장에서 물러난 후 원래 있던 SBS에서 해설가로 복귀했는데 여전히 해설에 여러가지 문제[13]가 많아서 박동희 기자와 더불어 각 팀빠들이 서로 자기 팀의 팬이 아니라며 타 팀에 떠넘기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명언록도 무한증식했다. 명언/야구 참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스포츠산업과 관련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히어로즈의 단장에서 물러난 이후 2009년에는 2월부터 6월까지 한 학기 동안 서울산업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다. 같은 해 8월에는 우석대학교의 겸임교수로 초빙됐다. 박사과정에 매진한 그는 2011년 2월 스포츠마케팅 관련 논문으로 호서대학교 벤처전문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우석대학교 체육과학대학 레저스포츠학과의 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재직 중인 관계로 프리랜서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12년 TV조선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중계 해설을 맡았다. 그리고 이때 인사이드 파크 호텔이 나올 뻔했다. 2013 WBC 해설을 JTBC에서 맡았으며, 2014년에는 KBS N 스포츠에서 일본프로야구 해설을 맡았다.

6.1. WBC에서의 개드립들

2013 WBC에서 네덜란드와 대만의 경기를 중계하며 스턴 레드삭스 유격수가 시즌아웃되었다는 근거 없는 드립을 던지며 위태위태[14]하더니, 본선 1라운드 C조 베네수엘라-도미니카 경기를 중계하며 틴 프라도치퍼 존스의 공백을 메꿔야 한다는 개드립을 치며 그란도시즌을 작렬했다. 아니발 산체스에딘슨 볼케즈의 프로필을 바꿔 읽기도 했으며, 파블로 산도발을 좌타 거포라 칭했고, 에릭 아이바에게 류현진의 동료 드립을 쳤다(…).[15] 또한 페르난도 로드니가 모자 비뚤게 쓴 채 투구를 하자 이제 그 모자 삐둘게 쓰는건 트레이드카드가 됐어요(…)란 드립을 작렬하며 인사이드 파크 호텔에 이은 새로운 유행어를 창시했다.

이튿날 미국vs.멕시코 경기에서는 R. A. 디키의 2012년 성적을 보고 아메리칸리그드립을 치며[16] 이틀 연속 그란도시즌을 작렬시켰다(…)[17]. 그리고 그런 와중에 미국이 득점기회를 잡자 홈런보다 나은 안타 드립을 꾸준히 설파하기도 했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 타자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6 OB 베어스 17 52 .173 9 1 2 0 1 3 0 2 .269 .204
1987 34 89 .315 28 4 2 0 7 8 2 8 .404 .371
1988 67 146 .240 35 5 2 4 20 18 0 12 .384 .294
1989 107 326 .298 97 12 2 0 26 54 25 39 .347 .373
1990 106 342 .249 85 9 2 3 24 37 13 26 .313 .300
1991 120 430 .293 126 17 4 5 39 60 19 34 .386 .34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2 해태 타이거즈 92 238 .239 57 11 3 2 28 39 11 22 .336 .302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3 쌍방울 레이더스 113 331 .227 75 14 3 0 26 28 14 29 .287 .289
1994 108 340 .303 103 15 1 3 36 44 43
(3위)
39 .379 .374
1995 107 332 .220 73 11 3 2 20 39 20 21 .289 .266
1996 52 139 .345 48 7 1 4 20 15 1 11 .496 .393
1997 93 155 .187 29 4 2 5 19 23 6 24 .335 .296
통산 - 1016 2920 .262 765 110 27 28 266 368 154 267 .347 .323

  • 투수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86OB 베어스 33 110⅓ 5 6 7
(3위)
0 2.28 91 38 61
1987 9 16 0 1 0 0 6.19 16 15 8
1988 1 3 0 0 0 0 18.00 5 2 1
통산(3시즌) 43 129⅓ 5 7 7 0 3.13 112 55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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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초등학교 시절부터 서울에서 자랐다.
  • [2] 억울한 측면도 있다. 공이 날아가는 궤적을 보고 구종을 말하는 것에는 관대한 팬들이 되려 더 정확하게 구종을 판단할 수 있는 그립을 보고 스플리터를 던졌다고 해설한 것을 우스갯소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의 궤적만 보고 그립을 안보면 알 수 없는 서클체인지업이라고 말하는 해설자들에 대한 지적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 [3] 사실 선동열은 고려대학교 시절에 만개했다. 더 정확하게는 5.18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한 시즌을 그대로 날린 것도 있고 해서 기대치가 대학 시절과는 비교도 안되었다. 더구나 이 때는 고교야구 전성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괜찮은 선수들(박노준과 선동열을 연파하면서 혼자서 약소팀을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던 세광고의 민문식, 경북고를 우승시킨 성준, 그리고 천재소리가 관용어구였던 본문의 주인공인 박노준과 그의 팀원 김건우, 천안북일고의 이상군)이 군웅할거했기 때문에 더더욱 1년을 날려먹은 선동열이 주목받지 못했다. 다만 그렇다고 선동열이 이 당시 고교생 중에서 최고가 아니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본인 커리어상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한 게 대학 시절이지 고교 시절에도 이미 군계일학으로 점쳐졌다. 당장 졸업을 앞두고 당시 대학야구계의 큰손인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가 최동원에 이어 선동열을 두고 또 한 번 스카우트 전쟁에 나섰다는 점 자체가 이 당시 고교선수 중에서는 최고였다는 점을 증명한다.
  • [4] 고3때의 준우승이 워낙 부각됐지만 이분은 이미 1, 2학년 때 우승을 경험했다. 고등학교 때 콩라인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 [5] 젊은 여성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인 원조격 인물이다. 여성 팬들의 인기는 2013년 시점의 잠실돌 정수빈을 압도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여성팬들이 자꾸 선린상고 담장 너머로 팬 레터를 수백 통씩 던져대서 일일이 줍느라 고생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
  • [6] 덕분에 그해의 우승팀 경북고를 이끌었던 나름대로 라이벌 성준이 묻혀 버렸다. 우승한 다음에 '박노준을 꼭 이기고 싶었습니다'라는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방송사도 그렇고 여러 야구팬들의 관심은 박노준이 입원한 병원에 집중되어 있었다. 덕분에 비참함이 두 배.
  • [7] 무슨 마라도 끼었는지 김건우와 박노준 두 선린상고 에이스들은 부상 퍼레이드로 자기 실력의 일부도 제대로 못 보여 주고 선수 생활이 끝났다. 청소년 세계대회에서 노히트노런 한 것 제외하면 고교시절부터 대학까지 타자로 유명했던 김건우는 프로에 와서 투수로 전향하여 바로 신인 최다승을 기록하면서 신인왕에 등극했다. 그리고 다음해도 9월까지 12승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두 팔과 한 다리가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겨우 복귀해서 투수로 좀 뛰다가 타자로 돌아가서는 바로 4번타자 겸 1루수로 교타자 이미지 좀 쌓는가 했더니 충돌로 손목 골절을 당했다. 은퇴했다가 다시 투수로 돌아와서 몇 년 더 뛰기는 했지만, 자기 포텐 근처에도 못갔다는 평가를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둘 다 은퇴한 후의 행적도 그다지 운이 따르지 않았고, 해설자 생활하면서 욕도 오질나게 먹었다.
  • [8] 이때까지만 해도 선린상고 때의 명성에 뒤지지 않은 천재성을 발휘했다. 하지만 대학야구 자체가 그 전에도 고교나 실업야구에 비해서 인기에 떨어졌고, 프로출범 이후로는 완전히 그들만의 리그화가 되어 사람들이 신경을 많이 안 써서 묻혔다. 참고로 MBC 청룡-LG 트윈스에서 뛰면서 106승을 올린 정삼흠은 동기인 선동열과 후배인 박노준에게 밀려서 대학 4년 동안 거의 등판 기회를 잡지 못했다. 덕분에 정상흠은 싱싱한 어깨를 가지고 프로에 진출하게 돼서 나중에 프로에 와서 성공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는 했다.
  • [9] 프로 시절에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투타 겸업을 선언했으나, 아무리 수준이 낮아도 성인 야구는 학생야구와는 달랐다. 사실 대학이 끝난 상황에서 투수 생명은 종료되었고, OB 베어스의 제의도 신인 최고계약에서 '타자' 신인 최고 계약으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계약을 한 뒤에 황당하게 OB에서 먼저 투타 겸업을 제의했고, 그걸 또 좋다고 받아들였다. 여기서 투타 겸업을 먼저 제의한 것이 어느 쪽이냐의 논란이 약간 있기는 한데, 어차피 다른 한 쪽도 쉽게 동의한 이야기다. 만약 욕심을 버리고 투, 타 중 하나라도 빨리 진로를 정해서 전념했다면 다른 야구 인생을 살았을 거라고 아쉬워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특히 고등학교 동기이자 항상 2선발 취급이었던 김건우가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일찌감치 투수로 정착해서 큰 활약을 했던 점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김건우는 그 후 교통사고라는 야구 외적인 요인으로 선수 생명이 단축됐지만.
  • [10] 2009년 KBO가 주도해서 만들었던 사이트인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이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본문에 언급된 레전드 카툰을 볼 길이 없다. 현재 발견되는 카툰은 최훈 작가 스스로가 블로그에 남겨놓은 이만수 편과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만 작은 사이즈로 발견되는 이정훈 편, 그리고 MLB 타운에서 남아있는 한용덕 편 정도이다.
  • [11] 대상자가 단 10명이었다.
  • [12] 이 시기 박노준은 KBO와 히어로즈의 연결 통로이기도 했기 때문에, 박노준 링크로 들어온 인물들의 상당수가 히어로즈를 떠났고, 이광환도 감독직에서 경질되었다. 욕먹을 일이 터질 만큼 터진 이후였던 히어로즈에는 팬들의 지지를 받던 김시진 당시 경기 감독관이 감독으로 복귀했다.
  • [13] 발음같은 사소한 문제도 문제지만, 거의 종교 수준으로 스몰볼을 맹신하는 게 더 문제였다. 좌타자는 무조건 결대로 밀어쳐야 한다던지, 9회 3점차에 등판한 마무리투수에게 2점 홈런을 뽑자 여기서 홈런은 안 됩니다. 안타를 이어가야 투수를 무너뜨릴수 있어요.라는 명언을 남겼다.
  • [14]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보스턴 유망주 더 보가츠가 3루수로 출전했는데 원래 포지션은 유격수네. 근데 레싹 유격수 다쳤다며?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15] 프라도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간의 저스틴 업튼 트레이드로 디백스로 건너간 선수이며, 산도발은 스위치 히팅 슬러거고, 아이바는 류현진이 소속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라이벌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소속 선수다. 물론 현지 중계에서 에인절스가 아닌 다저스 선수로 표기하는 병크를 저지르긴 했지만, 해설자가 되어가지고 그걸 수정하지도 못하고 뻘소리를 작렬했다. 대체 2013년 전후의 MLB 동향에 대해 아는 게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었다.
  • [16] 디키는 2012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였다.
  • [17] 이것 말고도 이 경기 그의 해설은 메이저리그를 아는 사람들은 도저히 실소를 금치 못할 정도로 틀린 정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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