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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민

last modified: 2015-11-30 16:52:20 by Contributors



아니 4인분으로

삼성 라이온즈 No.18
박석민(朴錫珉)
생년월일 1985년 6월 22일
체격 178cm, 98kg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율하초-경복중-대구고
포지션 내야수(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4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2004~2015)
NC 다이노스(2016~)
응원가 등장시 : DJ Hero - 《Just Blow》
타격시 : 하늘 - 《웃기네》[1][2]
타카피 - 《케세라세라》[3]

2012년 KBO 리그 페어플레이상
김선우(두산 베어스) 박석민(삼성 라이온즈) 박용택(LG 트윈스)

2014년 KBO 리그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최정(SK 와이번스) 박석민(삼성 라이온즈) 미정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5번(2004)
정성훈(1996~2002) 박석민(2004) 박병일(200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5번(2005)
김대익(2004) 박석민(2005) 이여상(200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2008~2010)
박정환(2000~2007) 박석민(2008~2010) 김선민(201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8번(2011~)
정홍준(2006~2010) 박석민(2011~) 현역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최형우 박석민(2015~ )

Contents

1. 소개
2. 선수 생활
2.1. 데뷔 시절
2.2. 2008 시즌
2.3. 2009 시즌
2.4. 2010 시즌
2.5. 2011 시즌
2.6. 2012 시즌
2.7. 2013 시즌
2.8. 2014 시즌
2.9. 2015 시즌
3. 별명
4. 이야깃거리
4.1. 야구 관련
4.2. 야구장에서 개그치는 개그
4.3. 야구 외
4.4. 고칠 점
5. 연도별 성적

1. 소개

삼성 라이온즈개그맨 브로콜리 내야수. 1차 지명을 받은 연고지 출신의 유망주였으며 데뷔 초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다가 상무에 입대한 이후 타격 재능이 꽃피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후반 노쇠한 삼성 타선의 리빌딩을 이끄는 젊은 중심타선의 한 축이 되었다. 그때부터 팬들 사이에서 브로콜리 헤어스타일, 적절한 허세,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양한 몸개그 등 확연한 캐릭터성으로 인해 채태인과 함께 삼성의 새로운 개그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타순은 2008~2009년까지는 주로 4번, 가끔 5, 6번에 기용되다 최형우의 포텐셜이 폭발한 후로는 3번이나 5번으로 나온다. 포지션은 데뷔 초기에는 2루수[4]였지만 현재는 주로 3루수이며 가끔 1루수. 막 제대했을 때는 타격면에선 합격점이었지만 같은 포지션의 조동찬에 비해 떨어지는 수비가 문제였다. 당시 수비력만으론 리그 하위권인데다 그전의 삼성 3루수는 역대 최강의 수비를 자랑하던 김한수였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여 3루 수비는 리그 최고 수준에 달하는 정도가 되었다.[5] 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수비는 잘하는데 쉬운 수비는 잘 못한다. 가끔 글러브에 공이 낄 때도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석민은 수비시 투수용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선다. 투수용 글러브와 내야수용 글러브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

크보의 대표적인 배드볼히터 병규옹에 밀려 그다지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박석민도 만만찮은 배드볼히터이다. 특히 컨디션이 만렙일때는 그 어떤 공도 희한하게 갖다맞춰 안타를 많이 만들어낸다. 바깥쪽 빠지는 공을 당겨친다거나 몸쪽 공을 밀어치는 장면에서는 허구연 해설조차 기겁할 정도. 물론 타격감 바닥일때는 선풍기질만 해대지만... 그렇다고 선구안도 나쁜 편이 아니라서 볼넷도 많이 얻고 출루율도 높다. 2010년에 시즌 말 잠깐 출루율 1위를 기록하며 이대호의 7관왕을 위협했으며[6] 2013년에도 출루율 4할을 넘겼다. 2013년까지 통산 BB/K가 0.74 정도로 양호한 편.

대부분 풀스윙으로 일관하는 풀스윙 히터이나 의외로 밀어치기에도 능하다.

2. 선수 생활

2.1. 데뷔 시절

대구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정상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7] 그만큼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간간히 1군에 올라올 때마다 뜬금타를 터트리면서 타격 면에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2005년 4월 29일에는 1군에 복귀하자마자 선발 출장하여 당시 기아의 마무리였던 신용운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치기도 했다.[8]

2005년 시즌 종료 뒤 군복무를 위해 상무 피닉스에 입단했으며 2007 시즌 종료 뒤 삼성 라이온즈에 다시 복귀하게 된다.

2.2. 2008 시즌

2008년 시즌 초반 선동렬 감독이 구상했던 트리오가 각각 부진, 부상, 방출로 인해 중심 타선이 무주공산이 되었으나, 그 공백을 최형우, 채태인과 함께 잘 메워냄으로써 본격적인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세 명 모두 신인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 2008년 삼성 타선의 세대교체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9]

2008년 KIA와의 경기에서 한두데의 위엄을 수립. 15회말 유동훈에게서 사구를 얻어 출루한 후 채태인의 안타성 타구에 맞아 그대로 아웃, 팀도 패배.

팀내에서 최형우와 함께 단 둘만이 전 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79, 홈런 14, 타점 64를 기록하였다. 실질적인 첫 1군 풀타임 출장인 걸 감안하면 좋은 성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18개의 실책으로 인해 박기혁과 함께 실책 공동 1위에 오른 것은 안습.

2.3. 2009 시즌

삼성의 새 외국인선수 에르난데스와 쌍콜돼 콤비를 결성했지만 작년에 비해서는 차분해진 모습을 보였다라고 하지만 이 해도 어김없이 많이 웃겨줬다.

2009 시즌 목표치[10]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으며 추락했다. 게다가 2008년 경기 도중 2루를 향해 슬라이딩을 하다 다친 왼손 중지 부상으로 인해 유리몸 기질이 발동하기 시작해서 자주 2군을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2군에 다녀온 6월부터 살아나면서 박석민이 홈런을 치는 경기는 이긴다는 공식 성립. 그리고 마침내 데뷔 이후 처음으로 한 시즌 20홈런을 넘겼다. 이 해 20홈런 이상을 친 타자들 중 김상현을 제외하면 타석당 홈런 비율이 가장 높은 타자로 잔부상만 조심한다면 내년, 내후년부턴 40홈런도 노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잔부상이 많고 먹성을 주체 못해[11] 체중관리가 잘 안되는 등 아쉬운 점도 상당하다. 타고난 파워 덕분에 시즌 개인 최고 홈런기록을 세울 수 있었지만 부상으로 인한 기복이 컸던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아직 가다듬을 곳이 상당히 많은 편.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

타율 0.285, 홈런 24, 타점 62, OPS 1.002(!)를 기록하였다.

2.4. 2010 시즌

잔부상으로 시즌 초반 2군에 갔다 오기도 하였지만, 그리도 2008년 이후 다시 규정타석에 들어서면서 데뷔 이후 첫번째로 타율 3할(0.305) 및, 출루율 0.438(2위)을 기록하였다. 한때 출루율 부문 1위를 호시탐탐 노리며 이대호의 7관왕을 위협하기도. 다만 손가락 부상 때문에 작년에 비해 15개로 줄어든 홈런이 약간 아쉬운 편이지만 그래도 3번과 5번을 왔다갔다 하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해 주었다.

유난히 1루 악송구를 많이 범해 채태인의 가랑이를 찢어지게 했으며,(…) 양준혁의 은퇴 선언 및 손가락 부상의 악화로 인해 7월 말부터는 지명타자로서만 출장하여 시즌 끝까지 수비보다는 타석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도 그가 지명타자로 출장하면서 생긴 3루수의 공백은 면제로이드로 인해 각성한 조동찬이 잘 메워 주었다.

2010년 10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스코어 5:5이던 11회말 2사 만루에서 끝내기 결승 안타를 쳤다.

끝내기 안타 치고 세리머니(…)꽃돼지 스트립쇼
박석민은 이날 대타 지명타자로 출전하여 3타수 1안타 1볼넷 1타점을 기록했다.

박석민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6타수 3안타 3볼넷 3사구(死球) 2타점 2득점, 타율 .188, 장타율 .250, 출루율 .409를 기록했다.

박석민은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9타수 3안타 1홈런 1볼넷 4사구(死球) 2타점 1득점, 타율 .333, 장타율 .667, 출루율 .571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박석민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25타수 6안타 1홈런 4볼넷 7사구(死球) 4타점 3득점, 타율 .240, 장타율 .400, 출루율 .472를 기록했다.

2.5. 2011 시즌

작년에 그토록 말썽을 피웠던 손가락 부상이 호전되면서 다시 주전 3루수로서 나서기 시작하였다.그리고 각성효과가 끝나버린 조동찬은 이 해 제대로 삽을 펐었지

5월 6일까지 .277의 타율을 기록했다. 타율은 다소 아쉽지만 볼넷을 많이 얻어낸 점은 고무적. 그러나 장타율이 다소 낮고 홈런이 2개 밖에 없으며 실책이 벌써 3개째이다.

개그 본능은 여전했다. 5월 6일 LG 트윈스 전에서 상대 투수 한희의 공에 맞자 배트 들고 한희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문제는 박석민이 해서 전혀 진지하지 않았다는 거. 사실 화가 난 것은 절대 아니었고, 다소 침체된 팀의 분위기를 끌어오려는 작전이었다. 더불어 한희에게 전화로 직접 사과까지 했다. 해당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 직전까지 제구가 안되던 한희는 직후 영점이 잡혔다. 역시 삼성 라이온즈의 분위기 메이커 박속닌!박석민 인터뷰


그리고 1루로 간 뒤 만족스럽다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이날 수비에서도 개그를 선보였는데 멋진 다이빙캐치 후에 공이 글러브에 들어갔는지 모르고(...) 두리번거리다 1루에 악송구를 하는 바람에 주자를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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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5월 17, 18, 19일 넥센과의 3연전에서 3연속 결승타를 때려내며 회복의 기세를 보였다.

5월 19일 넥센전 결승타를 치고 나서 사진이 찍혔는데…….


돼지 두루치기 이젠 기자도 깐다(…)

6월 8일 롯데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쳤다. 치고 나서 던지라는 인형은 안 던지고 손목 보호대를 던져 준 뒤 인형을 상대로 부유수유를 시전했다.(…)
http://mlbpark.donga.com/bbs/view.php?bbs=mpark_bbs_kbo&idx=835027&cpage=1

6월 22일 자신의 생일에 5타수 5안타 6타점 4득점 2홈런(투런 쓰리런)이라는 흠좀무한 성적을 거두며 팀의 5:19 승리를 견인했다. 혼자 다해먹는 브콜돼 두 홈런이 1, 2회에 터트려 승기를 확 기울여놓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박석민의 역할이 매우 컸고 덕분에 경기 MVP에 선정되었다. 인터뷰에서 비가 와서 우천중단이 됐을 때는박첨지 긴장했다고 말하기도. [12]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6타수 5안타 3볼넷 1사구(死球) 2타점 1득점, 타율 .313, 장타율 .438, 출루율 .450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하였다.

2.6. 2012 시즌

2011 시즌 후 왼쪽 중지 두번째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더라도 상태가 호전될지 미지수였으나 상당히 호전되었다. 본인 말로는 이제 중지손가락을 구부릴 수 있을 정도[13]라고 한다. 손가락이 나으며 타격감도 상당히 좋아졌다.

최형우가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4월 한달동안 0.344의 타율과 5개의 홈런을 날리며 이승엽과 함께 삼성의 중심타선을 지탱했다. 1번 배영섭과 4번 최형우가 슬럼프에 빠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류중일 감독은 9번 김상수를 1번으로, 5번에서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던 박석민을 2번으로 전진배치한다. 박석민은 2번 타순에서도 맹타를 휘둘렀지만 박한이가 부상에서 회복될 때까지의 임시직이라고 한다. 박석민 본인도 5번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최형우의 슬럼프가 길어지자 최형우가 5번으로 내려가고 박석민이 4번을 치게 되었다. 결국 최형우가 2군으로 내려가고 나서는 이승엽이 4번으로 가고 박석민은 3번을 치게 되었다. 최형우가 1군으로 복귀한 이후는 최형우를 이승엽 뒤에 세우지 않겠다는 류중일 감독의 뜻에 따라 박석민 - 이승엽 - 강봉규 - 최형우 또는 최형우 - 이승엽 - 박석민의 타순을 따라 3번 또는 5번 타자로 나서다가... 최종적으로는 4번으로 고정되면서 삼성의 중심 타선은 3번 이승엽 - 4번 박석민 - 5번 최형우가 되었다.

5월 25일 팀(삼성 라이온즈) 통산 3600번째의 홈런을 기록했다.

6월 7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이범호의 평범한 3루측 땅볼을 잡았는데, 원래 이 상황에선 2루 주자가 진루할 필요가 없으므로 태그아웃 상황이지만 포스 아웃 상황으로 착각해 3루 베이스만 밟고 공수교대를 위해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본헤드 플레이를 범했다. 기록은 3루수 실책. 투수 탈보트와 동료들이 급하게 소리를 질러 2루 주자가 3루로 가는 선에서 그쳤지만 공수교대가 될 상황이 2사 1, 3루라는 위기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음 타자 최희섭이 플라이아웃 되어 망정이지... 팬들 반응은 '역시 개그맨' vs '채태인이랑 다를게 뭐냐'로 나뉘는 중. 다를게 많지

6월 뜨거운 타격감을 자랑하며 삼성의 1위 등극에 크게 기여하여 각종 월간 MVP를 휩쓸고 최정과 나란히 3루수 골든글러브 유력후보로 부상하였다.

8월 2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대구 홈경기를 결장할 예정이었다. 이유는 나고야에 있는 어느 병원에 주사 맞으러 간다는 이유로(...)...[14] 그 날 홍성흔에게 홈런 2개와 5실점을 내준 상태에서 9회말 3-5까지 따라잡은 이후, 류중일 감독은 2아웃 2루에서 박석민을 대타로 내서 그냥은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헛스윙 삼진으로 끝나고 말았다.

2012년 페넌트레이스 기록은 타율 .312 138안타 23홈런 91타점. 타율과 안타, 타점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페넌트레이스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4번 타자로 출장했지만, 5차전까지 14타수 1안타(타율 0.071)로 지독한 부진을 겪었다. 더군다나 5차전부터는 6번 타순으로 밀려나는 굴욕까지 겪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박석민의 타격이 부진했던 이유는 한국시리즈 대비 훈련을 하다 갈비뼈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타격 밸런스가 깨져 타격감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다만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5차전에서 압박 수비로 2루 주자를 3루에서 잡는 활약을 하는 등 수비에서만큼은 정말 제몫을 다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선 11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스코어 1:0으로 앞선 4회초 1사 1루에서 투런홈런을 날리며 부진에 마침표를 찍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여러모로 2002년의 이승엽과 비견되었다.[15] 이 홈런은 근소하게 앞서던 삼성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오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삼성은 여세를 몰아 볼넷 3개+ 적시타 2방 4타점을 묶어 시리즈 세 번째 1이닝 6득점으로 SK를 완전히 도륙내며 스코어 7:0으로 승리했다. 이날 박석민은 4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박석민은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1, 2, 3, 4차전은 선발 3루수 겸 4번타자, 5, 6차전은 선발 3루수 겸 6번타자로 출장하여 18타수 3안타 1홈런 3볼넷 1사구(死球) 3타점 2득점, 타율 .167, 장타율 .333, 출루율 .318을 기록했고, 팀은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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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승 확정 뒤에는 역시나 개그 사진을 방출했다. 꼬부기물대포! 이승엽도 당했다. 박석미친 이재용, 이건희님께도 그거 해 봐

골든글러브 시상식 격전지인 3루수 부문에서 최정과 2년 연속 선의의 경쟁을 펼쳤지만 결국 수비율과 홈런 등에서 앞서고 20-20을 달성한 최정에게 아쉽게 밀렸다.사실 최정도 박석민 이상의 활약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기에 받을 만했다. 아무튼 최정과 함께 리그를 대표하는 차세대 3루수로 인정받을 만큼 성장했다.그리고 떠오르는 신흥 자석남 이를 위로라도 하듯(?)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소감에서 '제가 받을 자격이 있나 잘 생각해 보았는데 정말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개드립을 치면서 역시나 개그 본능을 보여주었다.

2.7. 2013 시즌

해당 항목 참고.


이번에는 뿜기도 전에 배영수에게 역관광당했다.

2.8. 2014 시즌

해당 항목으로.

Example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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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꼬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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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간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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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간(...)
한국시리즈 내내 부진한 모습이라 세레모니에서도 좀 의기소침해 있지 않을까 하는 팬들의 우려를 걷어차고[16] 박석민 being 박석민임을 증명했다

2.9. 2015 시즌

해당 항목으로.

3. 별명

몸개그, 공갈포홈런타자 등 확실한 캐릭터 요소 덕분에 차세대 별명의 신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는 선수다. 꾸준히 생산되는 몸개그들.움짤 모음 링크
  • 박속닌: 2005년 코나미컵에서 이름자인 석민을 속닌이라고 듣고(그렇게 불렀단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들었다)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홈런왕 박속닌입니다'라고 올려놓은 것이 시초. 재일동포 고지행이 박석민을 이렇게 불렀다.

  • 브콜돼: 2008 시즌 중 난데없이 파마머리를 하고 등장했는데, 머리 밴드 위로 뭉툭하게 솟아오른 파마머리를 보고 마치 브로콜리와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서 브로콜리 + 돼지 = 브콜돼. 가장 널리 알려진 별명이며 다른 별명들의 베이스가 된다. 브로콜리 돼지 너마저
  • 허콜돼: 허세 쩐다. 스스로 말하기를 야구를 안 했으면 의사변호사가 되었을 거라고.
  • 힙콜돼: 힙합스타일의 모자 착용 및 동작을 취하는 셀카로 인하여 생긴 별명.
  • 버클돼: 2008 시즌 중 특유의 루틴 동작을 하던 중 허리띠가 튕겨서 풀리는 상황이 발생.
  • 볼매: 브콜돼 관련 기사가 뜨면서 박석민이 기자들에게 이왕이면 '볼수록 매력'을 줄여서 '볼매'라는 별명을 밀어달라고 요청. 이에 대해 한대화 당시 삼성 수석코치는 정신병자라고 하면서 혀를 끌끌 찼고, 수많은 야빠들은 볼수록 매를 번다며 볼매도 나름의 별명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하여간에 본인은 볼매라는 별명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그런거 없고 넌 영원한 삼성의 브콜돼, 개그맨
  • 꼬부기: 이 별명이 생긴 이유는 간단하다. 2012 시즌에 올라온 저 사진 때문.

4. 이야깃거리

4.1. 야구 관련

원래 장갑을 끼고 타격하였으나 어느날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공을 치는 즉시 각성하여 이후 계속 맨손 타법을 고집하였다. 그 탓에 손에 부상이 와서 이리저리 방법을 강구하다 결국 맨손 타법을 버리고 장갑을 다시 장착하였다. 그러나 얇은 수술용 장갑을 써보거나 장갑의 손가락 부분을 자르는 등, 배트와 살이 맞닿는 부분을 최대화시켜뒀다.

자칭 야구천재. 6살 때부터 동네 야구부 형들에게 야구를 배웠으며 자신은 '야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야구를 잘했다'고 한다(…). 이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양준혁 앞에서 하고 있으니 역시 허콜돼. 하지만 천재인 것은 사실인 듯. 이범호와는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선후배인데 대구고 감독이 이범호가 노력형이라면 박석민은 천재형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한화 이글스에게 유달리 강하다. 한화 상대 타율이 자신의 통산 타율보다 1할 가까이 높은 3할대 후반이다. 2009년에는 9개나 침으로서 한화 마운드 방어율 상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화 마운드 상태가 워낙에 막장이어서 그런 면도 있지만 특히 한화의 에이스 류현진에게는 크보에서 가장 강한 타자이다. 2008~2009 2년간 對 류현진 성적이 15타수 5안타 4홈런 6타점 4볼넷이다. 박석민을 메이저로! 2009년에는 류현진한테 홈런 3개를 빼앗았을뿐만 아니라 그 중 2개는 한 경기에 친 것이었다. 그래서 한화 팬들은 다른 어떤 강타자보다도 박석민을 제일 무서워한다(…) 디시인사이드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한나쌩(한화 나오면 쌩큐) 혹은 칰나쌩 선수로 대부분 박석민을 지목했다.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의 손을 잡고 난 날 경기에서는 맹타를 휘두르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대화 감독은 박석민만 보면 도망가기 바쁘단다. 그런데 뛰는 한대화 위에 박석민이 있다고, 어느 날은 박석민이 안보여서 안심하고 대구구장 원정 감독실로 쓰는 임원회의실에 들어갔더니 거기서 박석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박석민은 얼른 한대화 감독의 손을 잡고 도망갔고, 그 날도 대박을 터뜨렸다(...). 이 때가 2012년 6월 13일. 이 날 박석민은 1회 좌전안타와 2번의 사구를 기록, 4타수에서 3번 출루했다. 이 징크스 일화가 실린 기사가 난 6월 14일에도 손을 잡는데 성공했는지 그날은 4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고교 때부터 등번호 18번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 2010년에 18번을 달려고 했으나 군대에 입대 예정이었던 정홍준이 안 가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러다가 2010 시즌 후 정홍준이 방출되면서 18번을 달게 되었다.

크보 공인 지남철최정에게 은근히 묻혀서 그렇지 박석민도 그에 못지 않게 몸에 맞는 공이 많은 편이다.펑퍼짐한 몸매 때문에 딱 맞기 좋은 체형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주전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2008년부터 5년 연속 두 자리수 몸에 맞는 공을 꾸준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마침내 사구왕 최정을 넘어 27개 몸에 맞는공(!)으로 신흥 사구왕에 등극했다!!! 이로써 23홈런 27사사구로 나름 20-20 클럽 가입?[17]

몸에 맞는 공 때문에 특이한 일화도 있는데 이하는 위키백과 박석민 항목의 내용 일부# 참고로 위키백과에서조차 박석민 항목은 웃기다. 역시 개그캐

그는 몸에 맞는 볼과 관련한 해프닝 직후 홈런을 친 일이 두 번이나 있다. 2009년 6월 24일 대구 한화전 8회말 공격 때 한화 래드 토머스가 던진 볼이 박석민의 오른쪽 발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그 순간 볼이 자신의 발등에 맞았다면서 1루에 출루했다. 그러나 실제 볼은 박석민에게 맞지 않았다. 실제 볼은 포수 옆 그라운드를 맞고 한화 이글스 포수 신경현의 목 부분으로 튀었다. 이에 한화 이글스 코칭 스태프가 심판에게 항의를 하였고 결국 볼 카운트에 볼 하나가 늘어난 것으로 정정했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토머스의 볼을 타격하여 중견수 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2번째 일화는 2009년 8월 16일 대구 KIA전 8회말 공격 때의 일이다. KIA 타이거즈 투수 곽정철이 박석민의 몸 쪽으로 볼을 던졌는데, 이 볼이 박석민의 팔꿈치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역시 볼이 자신의 팔꿈치 보호대 부분에 맞았다고 심판에게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 볼은 팔꿈치에 맞지 않고 포수 뒤로 빠져 나갔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곽정철의 볼을 통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이 일화는 2009년 12월 25일 MBC 스포츠플러스가 방송한 《프로 야구 결산 특집 - 야구는 야구다》의 코미디 에피소드 부분에서 〈소탐대득 - 작은 것(몸에 맞는 볼)을 탐하다가 큰 것(홈런)을 얻게 됨〉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 뭐 이쯤되면 몸에 맞는 공조차 박석민에게는 개그.

4.2. 야구장에서 개그치는 개그

자타공인 KBO 최고의 개그맨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타석에서 헛스윙을 할 경우 그대로 한 바퀴 돌아버리는 동작이 유명하다. 팬들은 통칭 트리플 악셀이라고 한다.

3할을 치는 프로선수라해도 3번 나가 한번 치는 수준인걸 고려하면 헛스윙에 이렇게 주목하는 점도 이상하지만 박석민은 유독헛스윙폼으로 유명하다.

다수의 움짤이 포함된 상세 내용은 박석민/몸개그 참조

4.3. 야구 외

2009년 12월 31일에 2살 연상의 여성과 결혼을 했다. 양신 사실 결혼 전에 이미 동거를 하고 있었고, 아들도 결혼 전에 낳았다. 아들 이름은 준현. 하라는 야구는 안 하고 2013년 현재, 박석민은 예비 학부모이다. 설마 장어덮밥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들 사랑이 꽤나 지극한 편. 홈런을 치면 주는 블레오 인형 대신 손목보호대를 던진다. 인형이 아니라 더 비싼 손목보호대를 던지는 이유는 아들 준현이가 인형을 더 좋아해서 집에 갖다주려고.# 홈경기 때는 샤워도 안하고 바로 집에 가서 아들과 같이 목욕한다고 한다. 아들이 실제로 대구 홈경기 때 박석민의 손을 잡고 대구구장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유니폼에 적힌 등번호는 박석민의 18번이었고 이름에는 박석민 Jr.이라 적혀 있었다.

2010년 시즌에서는 같은 팀의 최형우와 함께 홈런 치면 가면 라이더 세리머니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오치아이 코치 때문이라고 한다.

최형우에 이어 트위터를 한다.

천재교육에서 나온 고등학교 체육 교과서의 귀퉁이에 박석민의 사진이 수록됐다. 야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부분인데 오른손에 착용한 노란색 보호대 2개는 누가 봐도 박석민이다.

무명시절에 야갤을 한적이 있다. 근데 댓글을 보면 장난치면 死한다고...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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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1.22 MB)]

홈런 친 줄 알고 폼 잡다가 펜스 맞는 안타가 되자 똥줄나게 뛴 적이 있다. 그 덕에 1루타 기록(...) 이 때문에 경기가 끝나고 구단 자체 벌금을 냈다고 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 게다가 이때는 아직 1루까지 항상 전력질주하는 모습이었던 그분이 현역으로 뛰고 있던 2010년이었으니... 그리고 2012년에는 나지완이, 2013년에는 전준우가 홈런 설레발의 계보를 잇는다.

2013년부터 류현진이 뛰는 팀인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주전 3루수이자 류현진의 팀동료 겸 절친 후안 유리베의 이름을 따서 자신을 박리베로 불러달라고 했다.

4.4. 고칠 점

풀스윙을 할 때 배트를 놓쳐(아?) 배트가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잦다. 카메라맨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고 상대 투수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다. 자칫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런 위험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상대팀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팀킬도 한다. 2011년 6월 21일 경기에서 오넬리의 투구에 삼진당하면서 놓친 배트가 오넬리에게 날아가는 바람에 오넬리는 당황, 박석민은 헉, 신경현은 알밤 + 예끼를 시전하는 장면이 잡혔다. 다행히 배트가 오넬리 정면으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매우 위험했던 상황.영상 그리고 다음날 차우찬에게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고의는 아니고 다행히 배트는 빗나갔지만. 다행히 빗나갔기에 '역시 브콜돼' 소리를 듣는데 그쳤다. 하지만 박석민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왼쪽 중지 부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2010 시즌부터 수비할 때 중지에 테이핑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격할 때 중지와 약지를 테이프로 감아 하나로 묶어 타석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격할 때 순간적으로 왼손에 힘이 빠지면서 배트를 놓치는 것. 중지를 총 두 번 수술해야 한다는데 2010 시즌 끝나고 한 번 했었고 2011 시즌이 끝나고 두번째 수술을 했다. 그 결과 100% 정상은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었다. 2013 시즌까지도 휴식일을 잡아서 일본에 주사를 맞으러 갔다. SNS에 올라온 글로 보아 히쓰마부시(장어덮밥) 팬인 것 같다. 갈 때마다 먹는다

경험이 쌓이면서 3루수 수비는 KBO 전체에서도 수준급으로 올라섰으나, 1루수 수비엔 약점을 보인다. 아주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포구에서 여러 번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지라..류중일 감독이 12 시즌 그렇게 부진했던 채태인을 쓰거나 아예 강봉규를 1루 백업으로 돌릴 정도.[18] 근데 이건 원래 1루수들 수비력이 KBO 초특급이라 비교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리고 3루 수비도 2011년과 지금이 다르듯이 만일 기회가 더 주어졌다면 1루 수비에서도 향상의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길이의 한계가 있어 포구에서 손해를 봤을 가능성은 농후하긴 하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4삼성 라이온즈 23 29 .103 3 1 0 1 3 2 0
2005 52 81 .198 16 3 1 0 4 7 1
2006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7
2008 126 416 .279 116 27
(2위)
1 14 64 65 2
2009 97 295 .285 84 17 0 24 62 63 0
2010 112 356 .303 108 18 0 15 64 58 3
2011 128 457 .278 127 24 3 15 86
(4위)
74 3
2012 127 443 .312
(4위)
138 19 3 23
(4위)
91
(2위)
79
(5위)
2
2013 117 396 .318 126 24 0 18 76 61 4
2014 110 356 .315 112 21 0 27 72 77 0
통산 892 2829 .293 830 154 8 137 522 48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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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박석민 !. 전주부분을 개사한 것이다.
  • [2] 하늘이 사망한 이 후부터 쓰이지 않고 있다...가 한국시리즈 한정으로 부활했다.
  • [3]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날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삼성 박석민~ 워어~어어어~ 날려~라 박석민~ 워어~ 어어어~ 날려라 삼성 박석민~ 2014 시즌에 추가된 응원가. 현재는 앞에서 언급했던 웃기네의 원작자 로티플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쓰이지 않으면서 이 응원가가 정식 응원가가 되었다.
  • [4]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선발라인업 키스톤이 조동찬-박석민(!)이었다. 물론 이 키스톤이 선발출장한 이유는 수비보다도 당시 상대 선발이었던 오재영을 겨냥한 좌투수 저격 라인업의 의미가 더 컸었고 결과적으로 이날 삼성의 수비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5] 3루수로서는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수비가 좋아졌지만, 1루수로서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1루수로서 가장 중요한 포구에서 실수가 좀 잦은 편이다. 근데 삼성 주전 1루수들을 생각하면 이건 큰 문제가 아닌지라...
  • [6] 당시 홍성흔이 시즌아웃 된 후 이대호의 7관왕을 저지할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었다.
  • [7] 그런데 이후 찾아온 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강민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정식을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과연 삼성이 강민호를 지명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아리송한 지명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발전가능성이 농후한 유망주 포수보다는 진갑용을 대신할 즉전감 백업 포수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긴 하지만그리고 삼성팬들은 오늘도 삼성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다.
  • [8] 참고로 신용운은 바로 다음 날인 4월 30일에도 심정수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음으로써 이틀 연속 패전투수가 되고 만다. 자세한 사항은 신용운 항목 참조.
  • [9] 이때까지 거의 김인식 감독 수준으로 유망주들을 박대했던 선동렬 감독이 직접 키운건 당연히 아니었고 김응룡 감독이 진작부터 밀어주던 양아들이었다. 박석민은 물론 채태인, 최형우 기용도 감독 외에 사장과 프런트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 [10] 한 영상인터뷰에서 2009시즌 목표를 0.315 홈런 32개라고 말해 한대화 코치에게 정신병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박한이에 이에 공식 정신병자 2호.
  • [11] 스스로 밝히길 배고플 때 못먹으면 돌아버린다고 한다.
  • [12] 이날 타 구장 경기는 모두 취소되고 대구에서도 두 번 중단되었다.
  • [13] 수술 전에는 중지손가락을 제대로 구부리질 못했다. 평소에도 손가락에 붓기가 있는데, 경기 후에 붓기가 심해져 중지 두번째 마디가 보통 때의 두 배까지 붓기도 했다.
  • [14] 그러고는 19시경에 대구구장에 도착했다.
  • [15] 반면 이 해의 이승엽은 2002년의 마해영+양준혁 포지션.
  • [16] 박석민이 이미지가 가벼워서 그렇지 부진하면 표정이 많이 굳는편이다. 최형우가 구해준 5차전에서도 8회 찬스를 무산시킨 이후, 덕아웃에서 머리를 싸매고 자책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었다.
  • [17] 사구왕 최정도 4년 연속 20사구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지만 이정도로 독보적으로 몸에 맞지는 않았다.
  • [18] 이래뵈도 강봉규는 국가대표 3루수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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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11-30 16: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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