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박정아

last modified: 2015-03-15 23:03:50 by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1.1. 소개
1.2. 쥬얼리 활동
1.2.1. 소녀가장의 시작, 라스트 스테이지
1.2.2. 리즈시절
1.2.3. 쥬얼리 붕괴와 솔로 활동
1.3. 팀의 맏언니로서
1.4. 연기와 이후 활동
1.5. 그외
1.6. 피처링 참여 목록
2. 배구 선수

1.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이름 박정아(朴貞雅)
출생 1981년 2월 24일, 경상북도 영천시
신체 169cm, 48kg, A형
학력 동덕여자대학교 실용음악학[1]
데뷔 2001년 쥬얼리 1집 앨범 Discovery
소속 더블유엠컴퍼니
취미 등산, 음악듣기
특기 피아노연주
별명 탄닭(...), 블랙치킨(피부가 까만편이라서)
종교 무교
트위터미니홈피


솔로 1집 <Yeah>(2006)

1.1. 소개

아이돌 걸그룹 가수 쥬얼리의 전 멤버이자 리더, 메인 보컬이었다. 현재는 연기자로 활동 중이다. 그외 활동 영역으로는 MC정도.

고등학교 시절에 카피밴드의 보컬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옥주현이나 바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멤버들의 가창력이 워낙 형편 없었고(…) 그녀의 내지르는 창법이 주목받았다.

데뷔전 "써클"이라는 다국적 그룹의 오디션에 응모하였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반면 이후 쥬얼리 멤버로 합류하게 되는 이지현은 합격하여 활동한다. 그리고 써클이 망한 뒤 쥬얼리 합류! 그러나 이 오디션에서 박정아를 주의깊게 봤던 스타제국 CEO 신주학이 1년 뒤에 박정아를 자신이 소속사로 데려왔고 그녀는 스타제국의 첫 번째 연습생이 된다.

그 후로 1년 반의 트레이닝을 거치는 동안 2000년 6월 인터넷 음악방송국 '드림뮤직'의 뜨악가요제에 솔로로 참가해 '이젠'으로 1위를 차지한다. 쥬얼리 1집 Discovery에 수록된 <이젠>은 원래 박정아가 불렀던 곡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멤버들이 부른 것이다. 참고로, 이 가요제 출신 가수 중 하나가 바로 성시경이다. 뜨악가요제는 이후 이름을 바꿔 2002년 발악가요제(...)로 다시 한 번 열린 적이 있는데, 이때 박정아는 'Missing you'라는 솔로곡을 불러 가요제 앨범에 수록한 적이 있다.

제국의아이들의 황광희가 말하길, 스타제국에는 4개의 기둥이 있는데, 이 중에 두 개는 박정아가 세웠다고 말할 정도로 소속사 스타제국과 쥬얼리를 키워낸(...) 장본인이다. 더불어 나머지 두개의 기둥은 서인영V.O.S이다.

1.2. 쥬얼리 활동

쥬얼리 결성 후 1집을 냈으나, 이 음반은 실패했다. 그룹과 곡들의 분위기 또한 핑클을 많이 따라했었고, 주류였던 핑클S.E.S가 동시대에 활동했으므로, 실력을 비롯한 외모가 앞서가지 못하였던 쥬얼리는 뜰 수가 없었다. 이때 멤버였던 전은미와 정유진이 탈퇴했고, 쥬얼리는 사실상 해체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후 소녀가장의 험난한 길이 시작된다. 한승연보다 시기상으로 무려 6년이나 앞선다!! 당시 박정아가 만 21세였고, 케이블에서 고군분투하던 한승연은 만 20세였다.

1.2.1. 소녀가장의 시작, 라스트 스테이지

그렇게 고군분투하던 와중에 박정아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2002년 한일 공동주최하는 월드컵을 맞아 기획된 한일합작 예능프로 <라스트 스테이지>에서 한국인 보컬로 발탁된 것.# 첨부된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박정아는 쥬얼리 출신의 가수가 아니라 여대생으로 소개되어있고, 정식으로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것으로 나와있다. 통기타를 맨채 일본인 기타리스트와 재일교포 통역을 대동하여, 거리공연과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라오스->중국트럭(~라오스)과 히치하이크(라오스 국경~중국~부산~서울)로(…) 여행했다. 마지막으로 서울 공연[2]에서 '라스트 송'을 부른다는 장장 3개월에 달하는 장기간의 여정이었다. 후대의 소년소녀가장 아이돌 그룹들이 한 고생은 이 프로그램에서 박정아가 한 고생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이 프로에서 박정아는 민낯을 대놓고 드러내는 털털한 성격과 시원시원한 모습으로 '록커를 꿈꾸는 멋진 언니or누님' 이미지를 구축하였으며, 라스트 송 공연에서는 광장을 가득 채우며 대박을 터뜨린다. 사실 한국에선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아침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시청률 15%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어 우타다 히카루 등 유명 가수들이 참여한 일본의 월드컵 음반에 박정아의 곡이 실리기도 했다. 더불어 일본의 화장품 CF에도 선발될 정도였으니 나름 한류의 원조라고 볼 수도 있다(물론, 아이돌로서 박정아가 인기를 끈건 아니지만). 아직도 박정아하면 이때 당시 불렀던 4 Non Blondes의 <What's up>이 떠오를 정도다. 쥬얼리 소속이였던 것을 몰랐던 일본 측에서 가수로 데뷔하자는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으나, 박정아는 쥬얼리 그룹 소속이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청을 거절했다.

1.2.2. 리즈시절

박정아의 고군분투 덕에 쥬얼리는 간신히 2집 <Again>을 낼 수 있었고 이 곡이 가요 차트 2위까지 오름으로써, 그룹으로써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시절 쥬얼리의 모든 인기는 박정아가 책임지고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 초 포미닛이 "현아 그룹"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공중파 3사에서 MC를 맡고 있었으며, 연기경력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드라마에서 화제성 하나만으로 캐스팅되기도 했다. 데뷔작은 신민아, 조인성 주연의 <마들렌>에서 여성 록커. 전문성을 띤 경력 없이 이미지 하나만으로 캐스팅될 정도면 그당시 그녀가 누렸던 인기가 상상이 갈 것이다. 이당시 CF 광고를 비롯한 예능 프로 따위를 혼자 도맡아하며, 그야말로 쥬얼리의 혼이자 에이스로 활약했다. 세븐과 함께 이효리보다 먼저 애니콜 광고를 찍었을 정도. 이는 유이가 데뷔한지 얼마 안되어 소주광고를 찍었던 것을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박정아 본인이 밝히길, 한때 다른 광고와 더불어 소주 광고의 제의도 들어왔으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거절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그녀는 제의를 거절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Again>의 성공 이후에도 대중들의 모든 관심은 쥬얼리보다는 박정아 한명에게 쏠려있었고, 여러 방송에 박정아 단독으로 출현하는 경우가 잦았다. 짝짓기 프로그램 <강호동의 천생연분>에 출연하여, 방송 최초로 0표 아가씨가 되는 굴욕을 받아가면서도, 박정아는 끊임없이 쥬얼리의 이름을 알렸다. <위험한 초대>에 게스트로써 출연했을 때도 쥬얼리의 다른 멤버들도 끼와 재능이 출중하니, 그들을 초대해달라고 부탁을 따로 할 정도였다.

이후 3집인 <Beloved>가 발매되고, 타이틀 곡 <네가 참 좋아>가 크게 인기를 끈다. 하지만 그리고 플라이 투 더 스카이와 경쟁하다가 마지막에 1세대 걸그룹 아이돌의 끝판왕인 이효리가 <10 Minitues>를 들고 컴백하는 바람에 그 영향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마치 후대에 또 다른 생계형 그룹이 <Pretty girl>로 컴백했는데, 아이돌 No.1이 최대 히트곡 <Gee>를 들고온 것과 중첩된다.

이 당시 그녀를 괴롭힌 문제는 출연했던 드라마에서 시작됐는데 2004년 <남자가 사랑할때>로 그녀는 단박에 주연으로 데뷔하지만, 그녀가 맡은 배역은 초보 연기자가 소화하기에는 무리였던데다가 연기의 미숙함으로 대실패하게 된다. 반면 그녀의 동료 이지현X맨당연하지 코너에서 크게 활약하며 그룹 쥬얼리는 인기를 얻는데 성공하게 된다.

<Again>이나 <니가 참 좋아>까지만 해도 쥬얼리는 핑클을 모방한 그룹 수준에 머물러있었는데, '노래하는 멋지고 섹시한 언니들'로의 변화를 모색한 4집이 대박을 터뜨린다. 2005년 박정아에 모든 것을 맞추어 만들어진 록 댄스 음악 <Super Star>가 크게 히트하며, 쥬얼리는 데뷔 4년 그리고 햇수로는 5년만에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달성한다. 작곡은 박근태가 맡았고, 작사는 신화의 이민우가 맡았다. 더하여 이즈음에 투니버스에서 방영을 시작하던 명탐정 코난 3기의 오프닝 곡을 불렀다. 그 당시에는 버즈SG워너비 등의 남성 가수들이 대세였는데, 걸그룹 중에는 쥬얼리가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3] 연말 수상식에서도 걸그룹으로 여러상을 받았다.

1.2.3. 쥬얼리 붕괴와 솔로 활동

크게 높아진 인기의 여세를 몰아 일본에도 진출하지만, 정규앨범과 <SuperStar>의 일본판이 신통치 않은 성적을 내고 본국으로 돌아오게된다. 거기다 2기 멤버인 조민아(조하랑)이지현이 탈퇴를 하면서 쥬얼리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이에 박정아는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2006년 팝 록 스타일의 1집 <Yeah>를 냈으나 별 반응을 얻지못하고 사라졌다.[4]

2007년에도 박정아가 신통찮은 성적을 낸 반면, 같은 팀 멤버인 서인영은 업타운의 멤버인 정연준과 함께 작업한 1집이 퀄리티면에서 호평을 얻으며 크게 치고 올라온다. 물론 이 쪽도 치골 의상(...)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싼티 난다며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결국 이 시기 서인영의 부상은 5집 음반에서 쥬얼리 사상 처음으로 박정아가 팀 중심에서 밀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1.3. 팀의 맏언니로서

이렇게 닥쳐온 위기 속에서 오디션을 거쳐 3기 멤버 김은정과 하주연을 영입, 2008년 5집 타이틀 곡 <One More Time>으로 쥬얼리는 조용히 컴백한다. 그런데 이 곡이 예상 외의 대흥행으로 음원 차트를 석권해 공중파 음악방송만 총합 16관왕 그리고 KBS 뮤직뱅크 7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이는 2008년 상반기 최고의 히트곡이었으며, ET춤 관련 UCC가 인터넷을 달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쥬얼리의 중심은 서인영에게 옮겨가기 시작했다. 섹시와 몽환적인 컨셉을 강조하는 <One More Time> 자체가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록커 성향의 박정아보다는, 도도하고 섹시한 서인영에게 맞춰진 스타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리드보컬 자리마저도 서인영에게 넘어갔다. 더하여 08년도를 넘어가며 각종 리얼 예능이 대세가 되면서, 이 분야에서 탁월한 감을 보였던 서인영이 상승한 반면, MC나 스튜디오 예능에서 강점을 보였던 박정아는 무언가를 보여주기가 힘들었다. 이 시기의 쥬얼리는 그룹의 중심이 누구냐는 것 때문에 안그래도 크지않던 팬덤 내에서 분쟁이 생길 정도였다. 물론 음악적으론 저음역대의 박정아와 고음역대의 서인영이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 '나는 나 너는 너', '모를까봐서'나 'Strong Girl' 등. 사실 가장 안타까운 멤버는 노래던 예능이던 기회가 없던 86라인 동생들이었다.

후속곡 <모두 다 쉿!>은 '치어리더 컨셉'이었고, 이즈음해서 쥬얼리의 무대를 비롯한 의상과 음악에서 박정아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2007년까지 홀로 방송에서 고군분투하며, 스타로서의 이미지는 거의 쇠진한 상태였고, 2006년 제작이 끝나고 2008년에 개봉한 <날나리 종부전>도 역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반면 이 시기 서인영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하여 신상녀 컨셉으로 인기를 크게 높이면서, 2008년에 뜬 대표적인 스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인터뷰에서 박정아가 밝히길 이 시절 서인영이 뜨는 것이 그룹을 위해선 좋았으나, 주변에서 자신이 한물 갔다는 소리를 하는 것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쥬얼리에서 탈퇴할 당시에 서인영과의 불화설이 떠돌았으나, 이는 어불성설로 귀결되었다.

그녀는 휴식을 취하며 싱글 <New Ways Always>를 발매하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이후 그녀는 조용히 사라졌다. 그런데 이게 2009년 이후 LG 트윈스의 야구선수 박용택의 응원가로 사용되어 원곡보다 응원가가 유명해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참고로 이 시기에 훌랄라치킨의 광고 모델로 박정아를 제외한 쥬얼리 멤버들이 선발되었는데, 당시 박정아는 시카나치킨과 계약 중에 있었기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다.

2009년 여름 과거의 명성을 잇겠다는 각오로 그녀는 그룹 쥬얼리로서 <Vari2ty>로 컴백하나 걸그룹 홍수 속에 묻혔다. 또 6집 수록곡이 전부 다 서인영에게 맞추어진 클럽튠이었다는 것을 감안하였을때 그룹 내에서 위치도 서인영에게 완전히 밀린 것으로 추론된다. 결국 그녀는 2009년을 끝으로 쥬얼리 활동을 접었고, 2010년을 기점으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다.

1.4. 연기와 이후 활동

2004년작 <남자가 사랑할때>를 발연기로 말아먹은 바람에 모 뉴스에서는 '외도하다가 망한 연예인 1위'에 뽑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시기가 마침 소속사와 재계약하는 기간이었다고 한다. <날나리 종부전>도 2006년 촬영이 끝났으나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쥬얼리가 대박친 2008년에 개봉됐으나, 첫주 관객 동원이 만명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내고 사라졌다.

이후 2010년 <검사 프린세스>에서 조연으로 나와 예전보다 연기력이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웃어라 동해야>에서는 악역 윤새와를 맡았는데, 독한 모습을 보여야 했던 탓인지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선 대체로 평이 갈렸지만, 후반부 즈음엔 모 식당에서 할머니에게 "너같은 나쁜 여자에겐 밥을 줄 수 없다"[5]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아졌다. 사실 연기력에서는 아직도 비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터뷰를 통해 아직 가수를 버리지 않았다고 여러차례 밝히고 있으나 연기자로서 간신히 자리를 잡은 상황이기 때문에 OST를 부르는 것 정도로 절충하겠다고 한다.[6] 일단은 2011년 지아의 앨범 수록곡 <스물네 시간>에 피처링을 하기는 했다.

2011년 단편인 KBS '드라마 스페셜 - 올레길 그 여자'에 출연했다. 동년 11월엔 KBS 일일극인 <당신 뿐이야>에 차도녀 차도희 역으로 출연했는데 일일극으로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2012년 <내 딸 서영이>에서 강미경 역으로 분했다. 드라마가 대박을 치긴 했으나 비중이 엄청 큰 역할은 아니어서 주목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다만 본래 성격과 비슷한 털털한 성격을 가진 배역을 맡아서인지, 연기력이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JTBC <귀부인>에 출연했으나 시청률이 안습이라 큰 관심을 못받았다.(...) 그리고 종영 후 JTBC도 미안했는지 바로 JTBC 예능프로그램 親유럽 예뻐질지도에 출연했다.

1.5. 그외

  • 2004년에는 마비노기의 전속 광고 모델로 계약했었고, # 2006년 1집 솔로 타이틀곡 <Yeah>는 스타크래프트 게임단 CJ 엔투스에 팀가로 선물했다.# 온라인 게임 실크로드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 2009년도 리쌍과 열애설이 났고 인정을 해 대중들에게 충공깽을 안겨주기도 했다. 미녀와 야수 커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이후 대놓고 공개연애를 했다. 리쌍의 앨범에 피처쳐링으로 참여할때 Enzo.B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길이 박정아를 멸치라 부르기 때문이란다. 대표적으로 피처링한 곡은 <내 몸은 너를 지웠다>. 하지만 2011년에 결별하여 주변에 안타까움을 선사했다.

  •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을 안은 사진이 공개되어 훈훈한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언플 수준이 아니라 진짜로 에티오피아로 갔다. 미니홈피에 가보면 인생을 바꿨다고 할 정도로 정말 진지하다. <웃어라 동해야> 촬영이 끝난 후에는 방글라데시로 봉사활동을 갔다. 그 다음에는 MBC 다큐 <코이카의 꿈> 촬영을 위해 페루로.

  • 2009년 슈퍼스타K에서 박정아가 심사한 사람이 바로 박세미였다. 이후 그녀는 쥬얼리에 합류해 박정아의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 2013년 더블유엠컴퍼니로 소속사를 옮겼다.스타제국 이사가 아니고?

  • 2015년 3월 2세 연하 프로골퍼 전성우와 동년 1월부터 열애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관련기사.

1.6. 피처링 참여 목록

2. 배구 선수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No.10
박정아
생년월일 1993년 3월 26일
출신학교 부산남성여자고등학교
포지션 레프트, 센터
신체사이즈 신장 187cm, 체중 73kg
점프 높이 스파이크 높이 300cm, 블로킹 높이 295cm
소속팀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2011~)

2011-2012 V리그 신인왕
표승주
(한국도로공사)
박정아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이소영
(GS칼텍스)

2010년 창단한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의 선수이다. 배구 선수들 중 유독 동명이인 선수들이 많다.[7]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했으며, 중학교 때는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때 키가 크고 체중도 불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하기사 남성여고 출신들이 무지 잘하긴 한다.[8]

2010년 창단팀인 기업은행에 신생팀 특별지명[9]으로 입단했지만 현대건설과의 연고지 문제로 리그 참가가 늦어져 1년을 공치고 2011-12 시즌에 데뷔를 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간 바람에 93년생 동갑내기들과 같은 해에 데뷔(...) 2011-12 시즌에 김희진을 제치고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후 2012-13 시즌 통합우승과 2013-14 시즌 정규리그 2연패를 이끈 삼각편대[10]의 일원으로 자리잡았다.

팀 동료인 김희진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이다. 레프트-라이트 양익 공격은 물론 센터까지 볼 수 있다. 김희진과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김희진은 센터를 주로 보며 윙공격(주로 라이트 및 백어택)을 겸하고 있고, 반대로 박정아는 날개공격수(주로 레프트)로 시작하다 전위에 올라오면 센터 공격을 맡는다. 리시브 능력은 그럭저럭 괜찮기는 하나[11] 결정적으로 서브리시브가 약한 게 흠이다. 그래서 소속팀에서는 리베로 남지연과 리시브 머신 혹은 액받이 무녀(?) 윙리시버 채선아가 받아주는 상황. 그래도 현재까지는 큰 부상은 없긴 하나[12], 대신 체력이 좀 약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외향적이고 활달한 김희진과는 달리, 박정아는 보기와는 다르게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 그래서 국가대표팀에 차출됐을 때 기대에 못미친 활약을 하고 팀에 복귀에서 은근 오랫동안 부진을 겪느라 소속팀에서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기도 한다. 마치 어떤 자매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09년에 김희진과 함께 FIVB 그랜드챔피언스컵 대회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김연경을 보조하거나 혹은 한송이을 대체할 공격옵션 중의 하나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좋은 피지컬에도 불구하고 과감성 부족과 리시브 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이 두 부분의 보완을 요한다.

2014 FIVB 월드 그랑프리에서 팔꿈치 부상으로 빠진 양효진과 높이 부분에서 문제를 드러낸 배유나를 대신하여 센터를 봤다. 급작스럽게 들어갔기 때문에 공격력은 기업은행에서 활약한 만큼은 보여줄 수 없지만, 센터로서 맡은 역할을 괜찮게 했다. 그리고 AVC컵 대회에서 신성 이재영이 발목 부상으로 빠지게 되자 이번에는 레프트 공격수로 변신, 경기마다 평균 10점 정도를 해주며 김연경에게 집중된 공격분포를 어느 정도 분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김연경 다음 가는 공격옵션으로 맹활약 하며 대한민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예전에 국가대표팀에 차출됐을 때 적응하지 못하고 그 여파가 길게 갔었던 모습과는 달리 차차 국가대표팀의 제2 공격옵션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4차원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며, 특히 인터뷰는 단골 짤방 소재일 정도로 특이한 인터뷰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 KBS N 스포츠 윤재인 아나운서와의 멘붕 인터뷰는 유명.4분 35초 경부터 지난 번에 흑역사를 만들어서... 선배들도 그녀를 표현할 때 인터뷰 한 거를 따라할 정도니. 13-14 스페셜V 1부13-14 스페셜V 2부스페셜 데이트
----
  • [1] <서인영의 카이스트>에서 학고 세 번 맞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이 전 인터뷰에서는 자퇴라고 밝혀오고 있다. 아무튼 졸업은 하지 않은 것은 확실.
  • [2] 참고로 나레이션은 윤도현이 맡았고, '라스트 송' 공연에서는 YB가 함께 했다.
  • [3] 물론 지금의 걸그룹 위세까진 아니었지만, 핑클과 SES라는 두 거물 걸그룹이 2천년대 초반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원더걸스가 텔미로 대박을 터뜨리는 2007년 이전까지 근 5년간 쇠퇴해가던 걸그룹 시장에선 드물게 살아남은 케이스였다.
  • [4] 그런데 이때 <Yeah>의 후속곡 <결국 사랑>이 박정아가 라스트 스테이지에서 불렀던 <What's up>과 유사했는데 심지어 작곡가는 앨범 홍보할 때 박정아가 잘부르는 '왓츠업'이랑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다만 앨범이 묻혀서 표절시비는 없었다.
  • [5] 식당에서 우산으로 맞았다고 한다.(...) 과거에 악역을 맡은 배우들이 거의 클리셰처럼 말하는 에피소드.
  • [6] 하지만 서인영에 비해 가수로써의 기반은 좀 약하다. 록 음악이라기엔 1집에서 보여준 게 너무 말랑말랑한 느낌이고, 그렇다고 대중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백지영을 제외하면 30대 이상 여가수들이 성공적으로 부활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고려할때 거취에 대한 신중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
  • [7] 같은 팀의 김희진, 박정현(지금은 프로를 떠났지만) 등이 있다. 타 팀과 남자부로 확장하면 김지수, 한송이, 이소영(GS칼텍스), 김주하(현대건설), 한수지(인삼공사), 양준식(LIG손보)도 있긴 하다.
  • [8] 2000년대의 수원전산여고(한유미-한송이, 황연주, 김연경, 김수지 등), 2010년대의 진주선명여고(김지수, 2014년 드래프트 최대어 3인방 세터 이다영-레프트 이재영-센터 하혜진)에는 살짝 밀리기는 하지만 부산남성여고 역시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걸쳐 고교배구의 강팀으로 자리잡고 있다. 남성여고 출신의 선수로는 김세영, 양효진 등이 있는데 전통적으로 좋은 센터를 키워내는 학교로 유명하다.
  • [9] 서울중앙여고, 부산남성여고, 진주선명여고 졸업생 특별지명
  • [10] 알레시아 리귤릭/카리나 오카시오 클레멘테-김희진-박정아를 일컫는다.
  • [11] 남성여고 시절에는 감독이 박정아가 후위로 빠져도 리베로를 안 쓴다고 했을 정도였으나, 주니어 배구 수준과 프로배구의 수준이 넘사벽인 것은 감안해야 한다.
  • [12] 김희진의 경우 잦은 국대 차출과 호흡곤란과 복부 통증으로 리그에서 경기 도중 빠지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3-15 23:03:50
Processing time 0.3268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