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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호

last modified: 2015-03-18 01:37:48 by Contributors


낯선 선수에게서 형돈이의 냄새가...

1.FSV 마인츠05 No.24
박주호 (朴柱昊 / Park Joo-ho)
생년월일 1987년 1월 16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포지션 레프트백, 중앙 미드필더[1]
신체조건 176cm / 69kg
등번호 24번
프로입단 2008년 미토 홀리호크
소속팀 미토 홀리호크(2008~2009)
가시마 앤틀러스(2009~2010)
주빌로 이와타(2010~2011)
FC 바젤(2011~2013)
1.FSV 마인츠05(2013~ )
국가대표 23경기 / 0골

Contents

1. 소개
2. 프로 생활
3. 국가대표
4. 기타


1. 소개

현재 독일 분데스리가1.FSV 마인츠05의 레프트백과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는 축구 선수. 본래 측면 미드필더와 윙어였으나, 왼쪽 측면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FC 바젤에 입단한 후 왼쪽 풀백으로 포지션을 완전히 굳히는가 싶더니,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로 좋은 기량을 선보이는 멀티 플레이어이다.

독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해외파 선수이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해외파들에 비해 인지도가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데뷔 초창기부터 K리그 대신 일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첫 유럽 진출이 스위스 리그였던 점을 통해 축구 팬들에게 노출이 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주목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2011-2012 시즌 챔스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밀어내고 16강에 진출한 것 때문. 또한 입단한 그해 바젤에서 더블을 기록했다. 독일 진출 이후 점차 인지도를 늘려가고 있는 중이며, 구자철과 함께 뛰게 되어 점차 인지도를 쌓아가고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2. 프로 생활

2008년 숭실대학교를 졸업한 후 드래프트로 운신의 폭이 좁은 국내 무대 대신 일본 J2리그 팀인 미토 홀리호크에 입단, 2011년까지 팀을 옮기며 일본 무대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2011년, 스위스의 강호 FC 바젤로 이적한다. 일본스위스 무대가 대중들에게 노출이 어려웠던 무대인지라 국가대표에서의 미덥지 못한 활약으로 그저그런 선수라 인식하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데뷔 시즌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며 챔피언스리그 때 같은 조에 속해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조별리그 탈락을 시킨다거나,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대결에서는 비록 2차전에서는 완패했으나 1차전에서 아르옌 로벤을 완전히 틀어막는 등, 좋은 활약을 해 팬들에게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3년 4월 22일 스위스 무대 데뷔 후 첫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활약을 높이 샀는지 2013년 7월 17일 분데스리가1.FSV 마인츠05로 이적했다.# 초반에는 위에서 언급했던 수비력에 문제점을 노출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으나, 점차 리그에 적응하며 준수한 활약을 뽐내기 시작했다.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마인츠에 구자철이 영입되며 이젠 유럽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완전히 각인되기에 이른다.

2014년 2월 2일 프라이부르크와의 분데스리가 19라운드에서 중거리 슛으로 데뷔골인 선제 결승골을 기록했다. 특히 이 경기에서는 마인츠 이적 이후 첫 골을 기록한 구자철의 추가 골과 묶어 2:0 완승을 거두며 그야말로 코리안 데이를 완성하며 국내 축구 팬들을 흥분케 했다.

이후 좋은 활약을 보이며 2013-14 분데스리가 드림팀 왼쪽 수비 부문 최종 후보 3인에 선정되었다.

마인츠로 이적했을 때 2+2 계약을 맺었었다. 이는 2년 기본 계약에 인천 아시안 게임에 차출되어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특례를 받으면 자동으로 계약기간 2년이 연장되는 옵션이 걸린 것이었는데,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분데스리가의 전설 제 호베르투를 연상시키는 알짜배기 플레이로 대한민국을 우승으로 견인하여 당당히 병역 특례를 받았다.아이고 흥미나!!ㅠㅠ 당연히 마인츠와도 계약기간 2년 자동 연장 완료. 마인츠의 단장도 고민하지 않고 승인했다.

하지만 2014-15 시즌에는 초반 부상과 아시안게임 차출이 겹치면서 이 기간동안 니오르 디아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때 마인츠의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디아스가 주전 자리를 굳힌 모습이다. 아시안게임과 아시안컵 이후에는 박주호도 왼쪽 풀백으로 간간히 나오고 있지만, 이쪽에는 디아스라는 주전급 선수가 있는데다가 새로 피에르 벵트손을 영입했기 때문에 박주호의 멀티플레이어 능력을 살려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는 경기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물론 그 후로도 왼쪽 풀백으로 기용되기도 하면서 두 포지션을 번갈아가면서 뛰고 있다.

3. 국가대표


김남일김정우를 잇는 대표팀의 엔진

유럽 무대에서 자리를 잡은 몇 안 되는 한국인 수비수이자, 이영표가 은퇴한 뒤 마땅한 자원이 없어진 국가대표 왼쪽 수비수 자리를 이어받을 재목으로 기대받고 있다. 그러나 본래 전문 수비수가 아니라 윙이었던 탓인지 국대 초년병 시절에는 수비력이 좋지 못다. 허정무호 시절부터 꾸준히 A대표팀에 소집되어 경험을 쌓았음에도 활약상은 변변 찮았고 중국 쇼크삿포로 참사라는 대한민국 축구계 흑역사의 현장에서 충실한 구멍 역할만 했다. [2]

해외파라고 하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기회를 주던 조광래호에서는 조광래의 특이한 수비 전술[3]에 적응하지 못해 수비력에 문제점을 노출했고, 총체적 난국이었던 홍명보호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구멍으로 인식됐다. 마인츠 이적 초기에도 수비 뒷공간을 노출하며 전혀 개선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이후 분데스리가 스타일에 잘 적응하며 눈에 띄게 안정감을 갖게 되었다. 특히 본래 포지션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기량이 만개하여 공격포인트도 올리고 키커지 주간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리는 등 발전을 거듭해 대표팀에서도 좋은 유틸리티적인 재원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4년 5월 8일에 발표된 브라질 월드컵 엔트리 명단에 들지 못하여 국가대표 명단에서 탈락했다. 이유는 부상이 완치되지 않아서. 그리고 그 대타로 당시 QPR에서 벤치신세였던 윤석영이 선발됐다. 이는 홍명보 감독이 취임하면서 천명했던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깨버린 처사였기 때문에 큰 논란이 되었다. 특히 측면 수비와 홍명보호의 고민으로 여겨지던 기성용의 짝으로서의 기용도 점쳐볼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를 뽑지 않아 스스로 전술폭을 줄이는 패착이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수습이 되는 모양세였지만 2013-2014 분데스리가 월드컵 드림팀 왼쪽 수비수 부문으로 최종후보 3인에 뽑히면서 비난 여론이 더욱 커졌다. 게다가 마인츠에서 박주호의 백업으로 있는 후니오르 디아스는 코스타리카 축구 국가대표팀 주전 선수로 출전해 8강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연령이 애매해서 병역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당시 마인츠 단장이 박주호의 병역 때문에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어쩔 수 없이 박주호를 놓아 주어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박주호 본인은 2014년 2월 8일 에이전트사를 통해,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금메달을 획득치 못 할 경우 2015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K리그 클래식 팀으로 이적한 뒤 연말 K리그 챌린지의 경찰청 입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당시 이광종호가 중원이 약했던 편이라 마인츠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중원을 단단히 잡아 주었던 박주호의 존재는 상당히 메리트가 있다. 마인츠 또한 병역에 관련된 대회이니 차출을 수락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5월 29일 홍명보호에서 주로 주전 왼쪽 수비수로 뛰던 김진수가 부상 회복이 더뎌 낙마한 것으로 인해 월드컵 엔트리에 대체 발탁이 되었다. 그러나 뽑아놓고도 한 경기도 출전시키지 않아 실력을 보일수도, 평가할 수도 없게되었다. 이 대책없는 감독님의 전설적인 활약이 항목을 참고하자.

월드컵을 마친 후 U-23 국가대표팀의 이광종 감독이 아시안 게임 와일드 카드를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 중에서 뽑겠다는 발언을 하면서 유력한 와일드 카드 후보로 떠올랐고 8월 14일 발표된 최종 명단에 미드필더로서 포함되었다. 왼쪽 측면 수비는 김진수가 맡고 박주호는 마인츠에서처럼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아시안게임 조예선 경기에서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전에 선발 출장했고, 라오스전에는 교체 출장했다. 공격을 자제하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실히 임하면서 박주호가 중원에 있는 상황에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가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와일드 카드로 선발된 김신욱이 부상으로 16강전에 출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표팀의 맏형으로서 박주호의 어깨가 무거워지게 되었다. 홍콩과 맞붙었던 16강전에서는 쐐기골을 넣었다. 다행히 주어진 책임을 훌륭하게 짊어졌고 국가대표팀이 28년 만에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병역 특례에 성공했다. 덤으로 이적 때 마인츠 구단과 맺었던 옵션인 "병역 특례시 계약 2년 자동 연장"도 유효해져 2017년까지 박주호는 마인츠에서 뛸 수 있게 됬다. 월드컵 때 부상으로 교체됬던 김진수도 박주호와 함께 병역특례 획득.

슈틸리케호에서도 자연스럽게 국대에 뽑혔다. 이전에 수비 못 한다고 욕 먹을 때를 생각해보면 장족의 발전. 그런 와중에 코스타리카와 평가전에서 전반 16분 다비드 라미레즈의 태클에 당해 발목이 꺾여 교체됐다. 당초 발목 인대 파열로 인한 6주 부상으로 알려졌으나 곧 인대 파열이 아니라 인대 염좌라는 정정보도가 나왔다. 공백 기간도 6주가 아닌 2주였다.
유럽에서는 인대가 늘어나도 인대 파열이란 말을 쓰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요르단 원정 평가전에서 선발출전하여 45분을 뛰었다. 기성용이 나오지 않아서 중앙 보직을 받나 했지만, 중앙은 한국영이 맡고 왼쪽 윙백으로 뛰었다.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시도 했으며 수비 할 때도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후반엔 교체되었는데, 부진 때문은 아니고 경쟁자인 윤석영의 시험 목적 때문. 이란 전에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다.

아시안컵을 목전에 두고 치룬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선 전반엔 수비형 미드필더로 한국영과 호흡을 맞추고, 후반엔 왼쪽 풀백으로 뛰었다. 아시안컵 A조 예선에서는 3경기 모두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와 기성용과 짝을 맞췄다. 왕성한 활동량과 좋은 수비력으로 기성용과 함께 대체불가 자원으로 자리잡았다. 조별예선 3차전 호주전에서 번즈와의 경합중 코를 얻어맞아 어지럼증과 출혈을 호소해 전반에 교체되었다. 다행히 단순타박상이라 다음 경기 출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는 대체적으로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여 기성용과 단짝을 이루며 엄청나게 활약했다. 하지만 호주와의 결승전 경기에서는 호주의 주된 공격루트인 측면 크로스를 봉쇄하기 위한 임기응변으로 왼쪽 윙포워드라는 중책을 맡았으나 그 반동으로 중원이 헐거워지는 바람에 끝내 우승을 놓쳐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가장 아쉬웠던 장면이 후반 10분에 나왔는데 대한민국의 역습 상황에서 박주호가 측면으로 공을 드리블 하는 동안 반대쪽의 김진수는 노마크 상태였다. 이 때 바로 패스했으면 골키퍼와 1:1 찬스를 노려 볼 수 있었지만 어영부영 하는 동안 호주 수비수들이 모두 복귀했고 할 수 없이 로빙크로스를 올렸으나 골키퍼에게 날아갔다. 그전까지 훌룡한 중원 장악력을 보여준지라 팬들은 이해하고 넘어갔다.

김정우이후 기성용을 받쳐줄 수비형 미드필더가 나오지 않아 고민인 한국인데 2018년 대회까진 박주호가 새로운 자원이 발굴되기 전까지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4. 기타

윤성효부산 아이파크 감독과는 2003년에 처음 만나 사제지간이 된 사이다. 당시 김호 감독이 유소년 인재 양성을 위해 어린 선수들을 물색했고, 그렇게 김호 감독 밑에서 방학 때마다 수원의 클럽하우스에서 훈련하며 윤성효 당시 2군 코치와 친해졌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광운전자공고를 졸업한 박주호는 고민하지 않고 윤성효가 이끌던 숭실대학교에 입학한 것.
도대체 효멘에게 얽힌 선수들이 왜 이렇게 많어...김원일이라던지 이정협이라던지...고무열은....#

마인츠의 같은팀 동료 오카자키 신지와 사이가 좋다고 한다. 특히 본인의 입단 1개월 전 입단한 오카자키가 박주호를 위해 카레를 만들어 줄 정도 친한 관계라고 한다.#. 박주호의 군복무 문제가 걸려있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을 마인츠 팀 동료인 구자철과 함께 한국팀을 응원하는 모습이 마인츠 구단 공식 트위터에 올라왔다.# 또한 오카자키 본인도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박주호를 축하했다.#

http://ssproxy.ucloudbiz.olleh.com/v1/AUTH_6a92e249-183a-47ef-870b-b6f2fb771cfa/gae9/trend/c652662c6e6ea45b.orig
브라질 월드컵 때 안정환에게 이렇게 놀림을 당했다.
안 그래도 대표팀에서도 한 경기도 못 뛰고, 병역문제로 심란하던 상황에서 박주호는 그야 말로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닌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서 면제를 받았고, 지금은 이 일을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을 듯.

여담이지만 얼굴 중 볼살이 약간 통통하고 눈이 작아서 그런지 정형돈을 약간 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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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바젤시절까지는 붙박이 레프트백으로 뛰었고, 마인츠에서는 처음엔 레프트백으로만, 이후엔 레프트백과 중앙 미드필더를 번갈아가면서 출전하다, 14-15 시즌에는 월드컵 버프를 먹고 온 박주호의 백업 멤버였던 후니오르 디아스를 레프트백 선발로 넣고 박주호를 중앙 미드필더로 붙박아 놓은 상태. 성인 국대에서는 여전히 번갈아 가며 뛰고 있지만, 김진수의 성장으로 점점 중앙 미드필더로 굳어지고 있다.
  • [2] 이때 받은 부정적인 인상이 의외로 커서, 15년 아시안컵 이전까진 박주호가 수비를 못 하는 선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 [3] 소위 '만화 축구' 불리우던 공격적인 축구를 지향하다보니 일정 부분 포기한 수비력을 충당하기 위해 측면 수비수 한명을 공격적인 선수로 배치하고 한 쪽은 수비력이 강한, 중앙 수비수에 가까운 선수를 배치했다. 그 예가 본래 중앙수비수지만 측면에 배치되었던 김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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