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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last modified: 2015-04-14 19:13:20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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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앰배서더
박지성 (朴智星 / Park Ji-Sung)
생년월일 음력 1981년 2월 25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1]
본관 밀양 박씨
가족 부모, 무녀독남, 배우자 김민지
포지션 윙어[2], 중앙 미드필더[3]
신체조건 175cm, 72kg, O형
학력 세류초-안용중-수원공고-명지대-명지대학원
소속팀 교토 퍼플 상가 (2000~2003)[4]
PSV 아인트호벤 (2003~20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2012)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2~2014)
PSV 아인트호벤 (2013~2014,임대)
스태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앰배서더 (2014~ )
국가대표 대한민국 U-20(1994-2004) 23경기 3골
대한민국 (2000-2011) 100경기 / 13골
응원가 Pigbag - Papa's Got A Brand New Pigbag[5]
Billy Ray Cyrus - Achy Breaky Heart[6]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 박지성

Contents

1. 소개
2. 플레이 스타일
2.1. Defensive Winger
2.2. 높은 전술이해도
3. 커리어
3.1. 학창시절
3.2. 해외진출
3.3. EPL
3.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5~2012)
3.3.2.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12~2013)
3.4. 다시 PSV로
4. 국가대표
4.1. 기타
5. 수상 기록
5.1. 클럽 수상
5.2. 개인 수상
6. 은퇴에 대한 본인의 생각
7. 통산기록
8. 은퇴와 그 이후
9. 박빠
9.1. 언론
9.2. 축구관련 커뮤니티의 박빠들
10. 트리비아
10.1. 응원가
10.2. 예능 출연
10.2.1. 2012년 런닝맨
10.2.2. 2013년 런닝맨
10.2.3. 2014년 런닝맨
10.3. 떡밥
10.3.1. 결혼 떡밥
11. 세간의 평가


1. 소개


캡틴 박.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에서 이제 영원히 기억될 대한민국의 진정한 에이스

차범근 이후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대한민국 축구선수[7]

눈에 띄는 화려함은 없지만 팀에 가장 헌신적인 선수, 소리없는 영웅[8]

두 개의 심장, 세 개의 폐를 가진 사나이 스페이스 마린 제논

한국을 대표했던 가장 모범적인 축구선수이자 스포츠 스타 [선수시절과]

사실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외모디버프로 노력파로 비춰진 선수


대한민국 국적의 전 프로 축구선수로, 특유의 스테미너로 넓은 활동반경을 자랑하며 경기를 이해하는 지능이 뛰어나고 희생적인 플레이도 마다않는 선수. 한국 최초의 프리미어리거[10]이자, 역대 해외 진출 한국인 선수 중 가장 높은 수준의 팀인 동시에 유럽을 대표하는 명문 구단 가운데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21세기 전성기 중 8년을 함께 한 선수. 동양인으로서는 도전하기조차 힘든 유럽 무대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기에, 한국 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계 선수들의 희망이자 귀감으로 남을 것으로 보이며 현시대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라는 호칭에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11]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를 은퇴하기 전까지, 월드컵에 3회 출전하여 3번 다 골을 터뜨렸으며 마지막으로 참가한 월드컵이었던 2010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주장을 맡기도 했다. 차분하며 침착한 성격과 놀라운 프로정신,[12][13]을 겸비한 선수로 유명하며 희생적인 플레이조차 마다않는 점은 감독과 동료들에게도 크게 어필하는 듯하다. 타고난 천재라기 보단 겸손한 노력파에 가깝다 할 수 있겠으며 노력에 노력을 더하여 성공을 이룩한 선수로 한국이 사랑해마지 않는 스포츠 선수라고 할 수 있다.[14][15]

UEFA 챔피언스리그 무대가 명실공히 유럽 프로 축구 세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대회로 자리잡았던 시점에서 당시 맨유는 결승 무대에 무려 3번을 올라갔으며, 3번중 2번의 결승전에서 박지성은 선발출전했다. (1번 조차도..)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그 시대에 이 정도의 커리어를 쌓은 선수가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보자. [16]

2. 플레이 스타일

2002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 국대와 교토, PSV 시절에서는 거의 붙박이 주전으로 출장했었다.[17] 당시의 플레이 스타일은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움직임이 왕성한 역동적인 윙어였다. 공격시에는 빠른 스피드와 침투 능력을 이용해 자신에게 볼이 오지 않아도 언제나 공간을 찾아 움직였고 수비시에는 전방부터 치열한 압박을 전개하고 윙백과의 뛰어난 협력 플레이를 보여줬다. 가장 오랜 시간 몸 담았고 이름을 날렸던 맨유 소속일 때의 위치는 로테이션 선수 및 전술적 플레이어. 한국인으로서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팀 내 위치를 본다면 붙박이 주전이라 할 순 없었다. 한국 팬들은 경기출장을 기대하였으나 선발에서 곧잘 빠졌기에 매주 주말 선발명단을 보며 퍼거슨을 욕하는 일이 일상다반사이기도 했다. 본인은 겉으로 이를 드러내지는 않았으며 아버지 박성종씨에게 '그 양반은 늘 그래요' 하고 푸념하는 정도였다고 했다.[18][19] 물론 전술상 필요한 경기,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 자주 선발 출전했으며 뛰어난 활약을 보인 경기가 많았지만 맨유가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분위기를 바꾼다거나 경기를 뒤집기 위한 목적의 교체카드로는 잘 활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들이 '벤치성'이라고 비아냥대거나 티셔츠팔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입지고 뭐고 없는 수준은 더더욱 아니었다. PSV에서의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그 능력을 퍼거슨에게 인정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록 많지 않은 출전 경기수임에도 박지성은 매번 많은 활동량을 보여주었으며 강팀에게 강한 그의 전술적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때문에 그를 붙박이 주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많으나 벤치만 달구는 2, 3류급 후보선수라고 하는 것은 거의 모독과 가깝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개인능력에 의한 공격력. 비록 활동량과 스피드, 전술적 이해도와 정신력은 누구보다 강하였으나 볼컨트롤에 대한 타고난 재능이나 킥력, 감각이 부족한 점이 아쉬운 점이다. 그래서 혼자서 상대선수를 제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였고 그 때문에 수비에 막히거나 같은팀에게 패스를 돌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골찬스때도 다소 안습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PSV 시절 그라운드를 거의 씹어먹다시피 한 박지성의 활동량과 파괴력을 본 퍼거슨이 05-06시즌 영입직후 곧바로 즉시전력으로 선발로 기용해 리그경기만 34경기를 뛰었지만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리지 못했고 호날두나 긱스같은 경쟁자들과 비교해 개인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이후부터는 부상도 있던 탓이 있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때 항상 리그 우승을 목표로 하는 맨유에게는 매경기를 승리로 장식해야 하기 때문에 골과 직결되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중용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박지성은 다른 시즌들은 첫시즌만큼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프로답게 수많은 이적설과 기용되지 못하는 심리적 소외감을 견디며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프로정신을 발휘했다. 맨유에서 선수기용문제로 이적한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을 감안하면 박지성의 정신력은 정말 높이 칭찬할 만하다. 또 10-11시즌처럼 마찬가지로 많은 경기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중요할때마다 골을 터뜨리는 등 약점으로 지적됬던 공격포인트 문제를 해소하며 팀의 구세주로 활약했던 시즌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박까들이 '결국 로테이션이 아니냐'며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맨유에서 붙박이라고 할만한 선수는 드물다.[20] 특히 미드필더는 모두가 로테이션에 가깝다.[21] 즉, 로테이션이니까 박지성의 입지를 의심해야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맨유가 어떤 팀인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 맨유에서 7년간 버틴 것 자체가 대단한 선수라는 증거다. 이는 박지성이 맨유에 머문 7년 간 어떤 선수들이 들어왔다 나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출전 경기수로 말하자면 리그 경기가 200경기가 아니라 챔스, 기타 컵대회를 포함한 경기가 200경기다. 7년간 200경기라고 말하면서 시즌당 30경기 뛰었다고 왜 박지성이 주전이 아니냐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맨유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1/12시즌에는 영과 발렌시아, 나니에게 주전경쟁에서 어느 정도 밀렸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박지성의 리그 경기출장수는 12경기에서 17경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부상이 없었음에도 출전 시간이 전에 비해 큰 폭으로 줄게 되었다.(프리미어리그 전체 경기 수는 38경기다.) 하지만 박지성과 경쟁했던 다른 미드필더(ex. 나니, 마이클 캐릭, 안토니오 발렌시아 등)들은 모두 20경기 이상을 출전했다.[22] 알렉스 퍼거슨이 박지성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잡고 싶었지만 기회를 많이 못 줘 미안하다'는 부분이 있다. 이것만 봐도 박지성이 맨유 주전 경쟁에서 많이 밀려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소 맨유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했던 박지성이 이적을 결심한 것도 11/12 시즌의 잦은 결장 때문이었다.

모든 미드필더 위치는 물론 윙백[23]에서도 뛸 수 있는 전천후 플레이어. 한국 국대에서 뛰는걸 보면 박지성이 없는 곳이 없다. 2000 올림픽팀과 국대 데뷔 초반에는 중앙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했다. 교토에서도 초반에는 중앙에서 활약했으나 히딩크의 국대에서 윙어롤을 맡게 된 이후 쭈욱 윙어로 활약하게 된다. 다만 점차 나이가 들고 부상이 여러차례 발생하면서 활동량이나 스피드가 줄어들어 중앙 미드필더나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24]

공간 이해도와 태클의 정확도 등 수비력이 좋아 에브라 이전에 1선에서 상대팀 윙어를 차단하는 등 윙어로서는 상당히 유니크한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나쁘지 않은 돌파력과 다소 엇박자스러운 드리블, 괜찮은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나 그다지 예리하다고는 할 수 없는 롱패스와 크로스가 윙어로서 단점이다. 하지만 짧은 패스능력은 상당히 정확하고 위력적인 편이며 특히 원터치 패스를 통한 공간 창출 능력은 특유의 전술이해도 및 축구지능과 맞물려 맨유의 다른 선수들이 공격을 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재치있는 침투능력과 수비수 몰이 능력까지 겸비해, 포지션을 정신 없을 정도로 바꿔가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전술을 사용할 경우 매우 파괴적인 모습을 보였다.[25] 물론 윙어로서 아쉬운 수준이기는 하나 때때로 좋은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하기도 했다.

선수로서 박지성이 자랑하는 가장 큰 장점은 전술하였듯 월등한 스태미너와 높은 전술이해도, 공간침투력으로 개인능력이 월드클래스급인 선수가 넘쳐나는 맨유에서 이런 능력을 살려 보조적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팀의 주축공격수였던 PSV시절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역할이다. 간단히 말해 원터치 패스를 통해 역습시 공격 루트를 여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공 시에는 상대 수비진의 빈 공간을 꿰뚫어보고 거기 가서 뛰고 있으면 박지성을 신경쓰느라 수비진은 흐트러지고, 그 틈을 이용해 맨유의 공격진들이 쇄도하는 형식.[26] 이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짐에도 오랜 시간 맨유에서 꾸준한 활약을 했으며 점차 그의 가치가 인정받게 된다.[27]

또한 주전 윙플레이어로 활약하기엔 많은 골을 넣고 있지 못하기에 대체적으로 공격력은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그 이유로 07/08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출전하지 못하기도 했다.[28] 하지만 그 이후 첼시 리버풀 아스날 밀란 등 강팀들의 골문에 득점을 성공시키는 등 특이하게 강팀과의 중요한 경기에서 엄청난 결정력을 보여주었다.[29]

다만 혹평받는 공격력이지만 그렇다고 리그 하위권이나 쓸모없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컨디션이 좋은 시즌을 골라보면 사실 골도 꽤 많이 넣었다. 10/11시즌의 골을 보면 리그와 컵, 챔스를 합쳐서 모두 8골. 윙 플레이어 치고는 많은 편의 골이며,[30] 윙 플레이어가 5골 이상만 넣어줘도 제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 박지성의 공격력도 윙어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31][32]

박지성의 대표적 별명이 산소탱크인데, 이는 혀를 내두를만한 뛰어난 스테미너 때문이다. 출전했던 거의 모든 경기에서 10~12km의 활동량을 보여 3순위 안에 드는 게 일과였다. 특히 박지성의 컨디션이 좋았을 때는 골에어리어를 제외한 경기장 대부분에 발도장을 찍고 다녔으며, 상대했던 선수들을 무기력할 정도로 지워버리기도 했다.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국가대표 경기에서의 움직임을 보면 공수 양면에 걸쳐 빼어난 활약을 보이는 올라운드 미드필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 국가대표에서도 맨유에서 못지 않은 클러치 능력을 보여준다. 2002년 프랑스와 잉글랜드와의 연이은 평가전에서 기록한 골에서 부터 출발하여 월드컵 3연속 골은 말할 것도 없고 월드컵 예선전 당시 테헤란과 서울에서 연이어 이란에게 좌절을 안겨준 동점골, 일본 축구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작렬한 한일전에서의 선취골 까지 그야말로 2000년대 한국 축구의 임팩트 있는 골의 주인공은 안정환 아니면 박지성인 수준.[33] 그리고 위에선 박지성의 테크닉이 약점이라 했지만 사실 박지성은 테크닉 에서도 월드클래스 급 이다. [34] 박지성을 제외하고 2000년대의 국가대표팀 에서 1대1로 상대를 제끼고 골키퍼를 상대로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는 몇 없었고 박지성이 은퇴하자 플레이메이커와 정신적 지주가 없는 한국 국대는 잠깐 암흑기를 맞이했고 손흥민기성용[35]이 두각을 나타내기 전 까지 박지성의 공백은 어마어마 했다. [36]

2.1. Defensive Winger

수비형 윙어라는 포지션을 창조해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비 가담 능력이 좋은 편. 하지만 국내의 과대포장과 달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은 결코 아니고, 실제 "Defensive Winger"라는 말은 이전부터 있어 왔으며 수비지향적인 윙어들도 상당히 많았다. 리버풀의 윙포워드인 디르크 카윗도 수비형 윙어 소리를 듣는 등 국내의 인식과 달리 수비력이 뛰어난 측면 미드필더는 그다지 희귀한 존재가 아니다.[37] 한 명이 나가면 한 명은 지키는 게 안정적이고.[38] 애초에 우리나라에 이러한 낭설이 떠돌게 된 이유는 영국의 가디언지에서 박지성을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라고 했다는 기사 때문인데, 실제로는 그런 말 없다. 오역이든 낚시든 퍼온 기자가 잘못 전달한 것. 어쨌든 그의 능력은 폄하할 수는 없고 PSV 시절 04/05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러한 능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전 시즌 챔스 준우승팀이었던 모나코와의 16강 경기에서 에브라를 발라버린다.응? 리옹 전에서도 이영표와 협력으로 좌측을 밀어버린다.[39] 특히 4강인 AC 밀란전에서 혼자서 한쪽 측면을 휘젓다시피 하면서 1인 압박축구를 펼친 장면은 유명하다. 2009년 5월 6일 아스날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선 아스날의 측면 공격수 시오 월콧을 경기장에서 지워버렸는데 그 날 월콧은 평점 4점을 받았다.

그리고 09/10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도 재현되어 AC 밀란의 플레이메이커 안드레아 피를로를 글자 그대로 지워버렸다. 이것이 인상깊었는지 퍼거슨이 박지성을 언급하면 이 경기를 자주 언급할 정도, 후에 유로 2012때 피를로의 대활약에 당시 피를로를 지워버렸던 박지성의 평가도 올라갔다. 그의 수비 가담 능력은 이토록 뛰어나지만, 3백의 윙백과 달리 4백에서 풀백을 맡을 때는 별반 활약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윙백과 풀백의 본질적인 차이에 의한 것으로 3백에서의 윙백은 일단 3명의 중앙수비수가 수비를 하기에 수비에 대한 부담이 적은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4백의 풀백의 경우 중앙수비수가 둘 밖에 없기에 수비에 대한 부담이 크며, 박지성의 수비력은 전문 수비수처럼 일대일 마크가 뛰어난다거나, (수비수로서) 경기 흐름을 읽는다거나 하는게 아니라 왕성한 활동량으로 상대 선수를 압박하는 것이기에 전문 수비수로서의 능력은 떨어진다는 것에 기인한다. 쉽게 말해, 박지성은 전문 수비수와 함께 상대 선수에게 압박을 더해서 상대공격수를 무력화 시키는 방식의 수비력이 뛰어나다는 얘기. 아무래도 수비수가 아니다보니 1:1 마크에 능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무서울 정도로 공만 따내는 태클도 장착하여 수비력이 한층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 어떤 선수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메시에게 백태클을 걸겠는가.

윙어의 본분은 공격이라며 수비형 윙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그런 시각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윙어는 흔히 공격적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며 축구적 재능이 뛰어난 선수가 보통 공격적으로 활용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술과 선수의 능력에 따라서 윙어는 무조건 공격적이어야만 하는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윙어가 공격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전술의 틀 안에서만의 얘기이다.[40] 다만 예컨대 호날두처럼 공격에 온 역량을 쏟게 해야 하는 선수보다는 좀 재능이 떨어진다고 얘기할 수는 있다.[41]

또한 스타일이 수비적일 뿐이지 그렇다고 공격적인 가담을 안하는 것도 아니다. 풀백들이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로 수비가담이 적은 윙어나 공격수들을 상대할 때는 풀백들이 상대적으로 더 넓은 공간에서 더 안전하게 공을 다룰 수 있지만 박지성 같은 타입은 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압박한다. 그러다보면 풀백들이 공을 더욱 신경써서 다루게 만들고 심리적 압박이 심해져 당연히 실수가 나올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런데 풀백이 수비위치에서 실수하게 되면 바로 키퍼와 맞서는 찬스가 나거나 적어도 측면이 텅텅 비어있는 상황이 연출되기 마련이다. 실제 박지성은 풀백들의 실수를 유도하고 풀백의 공을 뺐어서 팀의 찬스를 만든 적이 많았다. 그 희생양 중엔 이영표도 있다. 즉 수비하면서 계속 상대를 압박하는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게 박지성의 스타일이었다. 2010년 월드컵 그리스전 골이 그런 박지성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맨유 초반에는 이타적인 플레이를 보이느라 그런 면이 있었지만 점차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던 차에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발생해버린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플레이스타일을 가지게 된 것은 2007년에 당한 무릎 인대 부상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년여에 가까운 아주 커다란 부상이었으며, 그로 인해서 PSV ~ 맨유 초창기 시절의 활발하던 스피드와 돌파력, 활동량이 대폭 죽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이러한 신체적 능력의 저하를 커버하기 위해서 선택한 박지성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활동량이 줄고 뜀박질하는 모습을 보기 힘든 것은 무릎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다만 국가대표에서는 움직임이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같지만 공격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2000년대 한국 대표팀의 크랙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래서 박지성이 전성기였을 당시에는 이를 두고 넷상에서 축빠들의 많은 토론이 있었다. 다만 박지성의 자서전에 따르면 맨유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공격적 능력이 더 뛰어나고 자기가 공격을 하는 것보다 그들이 공격하는 것이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 조연의 역할을 맡는 것이라고 했으며 국가대표에서는 자기가 주연이 되어야 하니 그렇게 플레이 스타일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2.2. 높은 전술이해도

전술이해도가 뛰어나며 한국 선수 특유의 성향 탓에 감독의 주문에 군말없이 잘 적응하기로 유명하다. 교토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PSV에서는 4-3-3의 스리톱, 맨유에서는 4-4-2의 측면 미드필더, 국대에서는 중앙, 측면에서 평균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는것만 봐도 그의 전술이해도와 재능은 여간 비범하지 않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소속팀 감독들이 박지성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며 전술적으로 뛰어난 감독들은 장기말이 되기를 마다 않는 박지성을 싫어할 수가 없다.[42]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을 국대 소집하자마자 결점이 없다고 평했고, 퍼거슨은 매년 빅게임에서 박지성을 꾸준히 기용하면서 재미를 꽤 봤다. 단 전술능력이 없는 붉은돼지 레드납과는 별로 안 맞았다.[43]

3. 커리어

3.1. 학창시절

차범근 어린이 축구상을 수상하거나 중학교 시절 별 볼 일 없던 팀을 도내 상위권 팀으로 변모시킬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수원공고 시절부터는 왜소한 체격 때문에 여러모로 박대를 당했다. 거기에 더해 발 또한 평발.[44] J리그에서 은퇴하자마자 수원공고의 감독으로 부임한 이학종 감독은 그의 체격을 보완시키기 위한 훈련만 시켰고, 이는 박지성이 기본기를 철저히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의 부모는 박지성의 체격을 보완하고자 개구리로 즙을 만들어 먹이는 등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고 그 정성 탓인지 키가 158cm에서 170cm로 컸다. 현재 박지성의 키는 공식 프로필 상 175cm.

고2 때부터 수원공고에서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박지성을 받아주는 K리그 팀과 대학 팀이 없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 축구 선수 선발에서 월등한 체격 아니면 테크니션으로 이분화되었기 때문에 분위기 안에서 작은 체격에 엄청난 테크니션도 아니었던 박지성은 주목을 받지 못했고 스스로 축구를 포기할까 생각도 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학종 감독의 도움으로 김희태 감독이 있었던 명지대학교에 겨우 입학한다. 김희태 감독의 일화에 따르면 당시 명지대 축구부는 이미 신입생 선발을 끝냈기 때문에 박지성을 추가로 입학시키기 위해 테니스부를 찾아가 TO(정원)을 빌려와서 박지성을 축구부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지금도 한국에 방문하면 학교에는 거의 꼭 방문하는 등 애교심을 보인다. 명지대 자연과학캠에는 '박지성 장학금'도 있다. 물론 100% 박지성 출자로 알려져 있다.[45]

그 후 명지대 축구부가 울산에서 전지훈련을 할 때 마침 울산으로 전지훈련을 왔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하게 되고, 이때 왼쪽 윙백으로 출전해 뛰어난 활약을 펼치자 허정무 감독의 눈에 띄어 바로 올림픽 대표로 선발된다.[46]
그러나 박지성의 올림픽 대표 선발을 두고 당시 참 말들이 많았다. 일단 당시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작은 체격에 이리저리 뛰어다기만 하는 걸로 보였으며 박지성 스스로도 수비 헛발질 등으로 삽을 푸기도 했다. 결국 일부 언론에서는 명지대 감독 김희태와 올림픽 대표 감독 허정무가 자주 바둑을 두는 친한 사이이기 때문에 박지성이 바둑 때문에 뽑인거 아니냐고 까기도. 오죽했으면 한 기자가 허정무 감독에게 박지성 발탁을 두고 '뇌물 얼마 받았냐'고 물었다던 일화마저 있다.

갈 대학이 없어 전전하던 시기에 그야말로 무명의 설움을 제대로 받았던 박지성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명지대 입학 -> "우연히" 같은 곳에서 전지훈련을 하던 올림픽 대표와의 친선경기 -> 깜짝 올림픽 대표 선발 -> 교토 퍼플상가로 이적 -> 2002 월드컵 활약 -> 히딩크를 따라 아인트호벤 입성 -> 챔스 활약 -> 맨유 입단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를 보면 참 천운이 따르는 선수인 것 같기도 하다. 김희태 명지대 감독도 박지성은 참 운이 좋다고 하기도 했다. 물론 그냥 운으로 보기에는 철저한 노력과 근성, 준비된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야기.[47]

3.2. 해외진출

그 이후 각급 국가대표팀에서 여러 포지션에서 활동을 하다가 파격적인 제안을 받고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하게 된다. 하위권이었던 교토 퍼플 상가를 상위권으로 이끈 것도 있고 계약기간이 일왕배 결승전 전날 끝났지만 결승을 무보수로 뛰어주면서 1골 1도움으로 교토에게 지금까지 유일한 우승컵을 안겨줬기 때문에 영웅 대접을 해주고 있다. 덕분에 교토 구단 측에서는 박지성이 무보수를 선언했음에도 감사의 의미로 보수를 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구단주는 PSV 에인트호벤으로 이적하는 박지성에게 어딜 가든 응원하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돌아와달라고 하며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온다해도 받아주겠다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48] 그런데 박지성이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나서 몇달 만에 전북 현대에서 뛰던 거물급 진공청소기 한 대가 이 팀으로 대신 넘어오는데.....

2002 월드컵 직전 열린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동점 헤딩골을 넣은데 이어, 며칠 뒤에 열린 마지막 평가전[49]에서는 프랑스에게 0-1로 뒤진 상황에서 김남일의 롱패스를 받아 중거리슛으로 동점을 만들어내는 등의 활약을 펼쳐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끌게 된다. 그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도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포르투갈을 상대로 골을 넣어 16강 진출에 결정적인 활약을 하는 등 맹활약을 펼친다.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는 2번째 키커로 나와 침착하게 슛을 성공시켰다. 세리머니의 의미는 "히딩크에게 안겨서 해외 진출" 대회 후 히딩크와 함께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으로 이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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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잦은 부상[50]으로 부진한 플레이를 보였고 함께 이적한 이영표에 비해 많은 야유를 받게 된다. 특히 홈팬들에게 더 야유를 받게 되자 이러한 심리적 압박으로 동료에게 패스를 받는 것조차 편치 않게 되고 다시 부진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밖에 나가는게 무서워 벌벌 떨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후에 인터뷰하기를 난생 처음으로 경기에 뛰는 게 무서웠고 축구를 하기 싫어진 시기였다고 한다.[51] 교토에서 엄청난 연봉으로 회유하면서 1년 만에 유턴하는 이적설이 한창 돌기도 했고 스스로도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한번이라도 증명해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버티기로 하였고 히딩크의 무한한 믿음과 배려로 기량을 점차 끌어올리게 된다.[52]

반 봄멜과 같은 일부 선수들이 한국선수들에 대한 불평을 터뜨리던 시즌도 있었으나 1년 여를 헤매고 난 후 어느새 팀원들과 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53] 03/04시즌 중반부터 발군의 활약을 보이기 시작한 박지성은, 04/05 시즌 주전으로 출전하며 PSV의 에레디비지에 독주에 공헌함과 함께 챔피언스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전 유럽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6강 모나코전, 8강 리옹전에서 골을 넣지는 못했으나 엄청난 활동량과 에너지로 상대팀을 관광시키는 활약을 했고 챔피언스리그로의 제도 전환 후 PSV 사상 최고의 성적인 챔피언스 리그 4강까지 오르는데 일조한다. 4강 전 AC 밀란과의 경기는 밀란의 홈에서 0:2로 패배하며 PSV팬들의 희망은 꺼져가고 있었으나, 아인트호벤의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3:1로 승리하는 압도적인 경기를 펼친다. 특히 2차전 전반 9분경, 헤셀링크와의 연계 패스를 통해 카푸-스탐-네스타의 밀란 수비진을 뚫고 호쾌한 첫골을 터뜨리며 홈팬들을 열광에 빠뜨리는 동시에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54] PSV의 압도적인 활약에도 불구하고 원정 다득점에 따라 결승전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이 경기를 기점으로 박지성은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다.[55] 특히 이 때의 활약이 퍼거슨 감독의 눈에 들어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다. 이와 관련된 뒷 이야기로, 사실 히딩크는 박지성이 맨유에 가면 벤치에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팀에 1년 더 잔류해서 자신과 함께 하며 기량을 끌어올릴 것을 요청했고 때가 되면 에인트호벤과 커넥션이 있는 첼시 FC로 이적시켜주겠다고 했다고 한다.[56] 그러나 결국 박지성의 뜻이 단호하여 결국 그의 의견을 수렴하고 맨유로 보내줬으며, 후에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박지성이 맨유에서 그토록 적응을 잘할지는 예상을 못했던 바라고 밝혔다. 당시 리버풀 FC을 비롯하여 유럽 여러 클럽이 영입 제안을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지금은 카가와도 맨유에 가기도 하는 걸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당시만 해도 박지성의 맨유 이적은 한국인과 아시아인들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와 유럽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몰고왔다. 초창기에는 유니폼 팔이니, 저렴한 가격이라 영입했니 하는 소리가 나왔지만[57] 맨유에서 박지성을 영입하기 전에 보여준 관심을 보면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들이었다. 네덜란드의 맨유 스카우터가 맨유에 박지성 영입을 추천하는 보고서를 올렸고, 그걸 검토한 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직접 경기장에 가서 박지성의 플레이를 본 후 영입을 결정하고 퍼거슨이 직접 박지성 설득에 나섰다고 한다. 그 정도로 맨유는 박지성 영입에 진지했다.[58]

3.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5~2012)


05/06 시즌 - 거의 풀타임으로 출전하며 케즈만이나 다른 에레디비지에 선수들에 비해 무난한 적응을 보였다. 이 당시만 하여도 박지성은 매우 공격적인 윙어였고, 특유의 스피드와 체력 넓은 활동력을 바탕으로 데뷔시즌을 무난히 보였다. 특히 반니스텔루이와 찰떡 궁합을 과시하였고 이타적인 플레이로 팀원들의 인정을 받았으나, 드리블과 돌파에 비해 트래핑, 롱패스(크로스포함), 슛팅 등 킥에 의한 스킬은 미흡하였다. 이는 새로운 리그 및 팀에 대한 적응(부담감 등)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06/07 시즌 - 에브라와 비디치가 적응을 하고 맨유의 빠른 역습이 자리 잡는 동시에 호날두의 실력이 점차 만개하기 시작한다. 박지성도 맨유가 리그 우승컵을 되찾아오는데 기여했으나 부상으로 중반 이후 완전히 쉬게 된다. 리그 우승 메달을 받을수는 있었으나 우승 장면에서도 발 깁스로 인해 완전히 즐거워 하지 못하던 모습.[59]

07/08 시즌 - 역시 부상으로 출발한다. 부상에서 돌아온 후 오랜 휴식으로 인한 적응을 거치며 점차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중반부터 팀에 투입되어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의 중요한 대목에서 결정적인 활약을 한다. 특히 바르셀로나와의 4강 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게 되고 이로 인해 역사적인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출전에 대한 희망이 커진다. 퍼거슨의 인터뷰나 박지성의 인터뷰 등 모두가 최소한 후보로라도 박지성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대한민국 온 동네가 치맥을 대기하고 기다리던 날...그러나...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낚은 충격적인 엔트리 탈락. 너무나도 씁쓸한 소식에 대한민국 팬들은 맨유를 응원하지도 못하고 허탈감에 휩싸인다. 맨유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소식에도 박지성의 씁쓸한 표정이 겹치며 애증의 맨유, 애증의 퍼거슨 시대가 시작된다.

08/09 시즌 - 다시 찾아온 맨유의 전성기. 리그 우승에 공을 세운다. 다시 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꿈에 그리던 한국인 최초, 아시아인 최초로 결승전에 출전하게 된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역시 역사에 남을 전성기가 시작했으니...그 막강하던 맨유조차 허둥지둥대게 만들며 0:2로 패배한다...그것도 왼쪽에서 뛰던 박지성이 교체돼서 나가자마자 왼쪽이 뚫려서 추가골을 내줬다(…). 박지성이 나간 이후로 그때까지 그다지 큰 활약을 하지 못했던 메시와 푸욜이 살아나면서 결국 메시가 헤딩골을 성공시겼다. 오오 피사의 사탑 오오

09/10 시즌 - 리그나 챔스에서 나오지 않고 결장인 경우가 많아서 위기설이 나돌게 된다. 나니가 패스에 눈뜨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발렌시아 역시 택배크로스로 윙에서 스탯을 엄청나게 쌓아주면서 박지성이 후보로 밀리게 된다. 왼발신마저 회춘하는 등 포지션 경쟁자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다만 박지성 역시 잔부상으로 인해 컨디션이 최고조는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

이때의 부상 이후 대충 회복되고 나서도 폼이 상당히 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앞에 수비수가 한명만 붙어도 백패스를 남발하고, 스피드도 줄었으며 공격력 부족을 메워주었던 장점인 미칠 듯한 활동량 및 체력도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떨어져버리는 바람에 주전 경쟁에서 상당히 밀려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우려를 낳고 있다. 맨유가 4:0으로 대승을 거둔 헐시티 전에서는 나니가 만들어준 완벽한 노마크 득점기회를 날려먹으며 승리팀에서 평점 3점이라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던 무렵 2월 1일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드디어 시즌 1호골에 성공했다. 그것도 50m 단독 돌파에 이은 골. 그동안 박지성을 신나게 까던 커뮤니티들은 한꺼번에 터져나갔다. 이러니저러니해도 한국 최고의 인기선수인건 사실. 하지만 나니는 흑날두로 각성. 혹은 봉산나니로 진화...

그리고 09/10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AC 밀란과의 멘체스터 홈 경기에서 세계 최고의 플레이 메이커 중 하나인 피를로를 경기장에서 지워버리며(...) 4:0 캐관광에 일조. 박지성 본인도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예전 아인트호벤 시절의 AC 밀란과의 악연을 확실히 청산했다.

이후 3월 14일 있었던 09/10 프리미어리그 풀럼 FC전에 후반 75분경 교체 투입,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에게 날카로운 택배크로스를 날려 시즌 첫 어시스트를 기록한다.

3월 21일 09/10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전에서 선발 출장하여 후반 60분에 대런 플레처의 크로스를 받아 다이빙 헤딩슛으로 결승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대로 3월의 사나이로 사라지는줄 알았으나 5월 10일 토크시티와의 경기에서 헤딩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미 우승경쟁을 하던 첼시가 7:0으로 앞선 상황이었기에 큰 반향은 없었다. 지못미...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으로의 이적설이 제기되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뮌헨의 오른쪽 풀백 필립 람을 원하고 있고 그 대가로 이적료에 박지성을 얹어서(;;;) 거래를 성사시키려 한다는 이야기가 하나 있고, 뮌헨 측에서 박지성을 원하여 이적료 850만 파운드를 지불하겠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미 뮌헨은 로번과 리베리라는 걸출한 측면 공격수가 두명이나 있고, 맨유는 오른쪽 측면 수비수의 보강이 절실하다는 측면에서[60] 전자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일단 박지성의 입장은 이적설은 금시초문.

10/11 시즌 - 부상없이 박지성이 최고의 활약을 보인 시즌으로 시즌 초반에 안토니오 발렌시아, 루이스 나니, 라이언 긱스등이 줄부상을 당하면서 맨유는 초상집이 된다. 시즌 초반 성적이 좋지 않았으며 상상도 못했던 박지성 오베르탕 외의 대안이 없다는 점 때문에 맨유 팬들을 씁쓸하게 하였다. 하지만 점차 박지성이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게 된다.

2010년 11월 7일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울버햄튼전에서 전반 종료전, 후반 인저리타임에 극적으로 혼자 2골을 넣어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현지 맨유 팬들에게 "라이언 긱스의 플레이를 보는 것 같다.", "최근 맨유에서 가장 돋보인다." 같은 최고의 칭찬을 듣고 있다. 박지성의 맨유 활약 중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많은 팬들을 전율케 했다. 특히 두번째 골은 코너에서 혼자 드리블로 치고 들어와 수비 세명을 휘저으며 넣은 미친 골. 박지성이 그날 컨디션이 얼마나 좋았는지 평소 맨유에서 보기 힘든 '다 비켜 내가 넣을거야' 하는 뚝심이 인상적이다. 강팀에게 승점 챙긴다고 좋아하던 울버햄튼 감독이 결승골 헌납 후 시계를 보며 길길이 날뛰는 장면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다음 라운드 위건 전에서도 활처럼 휘어지는 멋진 크로스로 절친 에브라의 결승골을 도와 팀 승리에 기여했다.

2010년 11월 27일 프리미어리스 15라운드 블랙번 로버스전에서 리그 3호골을 넣었지만, 베르바토프가 5골을 넣는 바람에...

12월 14일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나니의 크로스가 클리쉬의 발에 맞고 궤적이 바뀐 것을 감각적으로 잡아내어 멋진 로빙헤딩슛으로 연결해 선취골 득점하였다. 게다가 최다골 기록 갱신! 1:0 승리를 이끈 결승골이며,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맨유는 아스날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유독 아스날을 상대로 기록한 골이 많다. 아무래도 피지컬보다 패스 플레이 잘 하는 선수들을 기용하는(수비수마저도) 벵거 감독 성향상 활발한 움직임에 거친 압박을 보여주는 박지성이 상극은 상극이다. 박지성 뿐만 아니라 디디에 드록바웨인 루니도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운동량과 허슬 플레이로 아스날을 학살하는 선수들.

현재 리그 5골 그외 3골로 시즌 8골을 기록중. 이는 부상으로 쉬다가 시즌 후반에 복귀하여 폭풍골을 몰아친 2007-2008 시즌의 5골을 넘은 박지성 개인 시즌 최다골 기록이다. 박지성이 매년 목표로 삼던 두자리수 골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지만 부상 선수들이 줄줄이 복귀하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기회를 얼마나 살리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절호조의 컨디션인 상태에서 아시안컵에 참여하게 된다. 은퇴 무대였기에 최선을 다하고 돌아온 덕분에 복귀한 이후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 웨스트햄 전에서 복귀한 이후, 챔스 8강 1차전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2차전에서는 통합 스코어 2:1의 아슬아슬한 상황, 첼시의 드록바가 한 골을 따라잡고 경기를 재개한지 1분도 채되지 않은 시간, 첼시의 추격 의욕을 끝내버리는 환상적인 골을 만들어내는 멋진 활약을 펼쳤다.

2011년 5월 9일, 사실상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첼시와의 경기에서[61] 경기 시작하자 마자인 전반 35초, 스루패스로 치차리토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승리에 일조했다. 이 어시스트 뿐만이 아니라 경기 내내 특유의 스태미너, 압박, 공간 침투 능력으로 미드필더를 휘저었고 상대 측면 수비수 이바노비치를 관광태웠다. 허리라인에서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미친듯이 볼을 따내고 바로 돌파해들어가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 박지성과 긱스가 자리를 바꾸어가며 활약하던 왼쪽 라인(첼시의 우측)은 맨유 수비진 구경은 커녕 박지성 너머로는 전진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맨유와 첼시 팬들 말마따나 첼시를 도륙내며 강팀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반 22분경, 박지성의 무회전 중거리 대포알 슛이[62] 체흐의 슈퍼세이브에 막혀 맨유의 코너킥으로 이어졌고, 코너키커 긱스와 지성의 1:1 패스 후 곧바로 긱스가 크로스. 비디치가 헤딩으로 두번째 득점에 성공했다. 사실상 두번째 득점도 박지성의 발 끝에서 나온 것. 이외에도 비록 골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치차리토와 긱스에게 넘겨준 환상적인 크로스와 패스들이 있었다. 이 경기가 끝나고 영국, 스페인 등 수많은 외신에서 박지성의 치밀한 전술적인 움직임을 세세히 분석하며 찬양했고, 수십 개의 스포츠 매거진과 축구 팬사이트에서 경기 내 최고 평점과 MOM을 싹쓸이했다.

2011년 5월 23일에 벌어진 블랙풀과의 2010/2011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38R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시즌 8호골, 더불어 6도움으로 14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63][64]

블랙풀 선수인 안 에바트300억짜리 자책골, 오언의 추가골로 경기는 4:2 맨유의 승리. 남자의 팀 블랙풀은 결국 강등당했고 자책골을 넣은 에바트는 눈물을 흘렸다.[65][66]

그러나.

이기긴 했는데...선수들이 한번씩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에서, 마침 박지성이 트로피를 들어올릴 때 카메라가 전환되었고, 결국 카메라에 잡힌 장면은 박지성이 다른 선수에게 트로피를 건네주는 장면부터 잡혔다. 박지성이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는 장면을 기대하며 TV를 보고 있던 수많은 한국의 축구 팬들이 한순간에 폭발했다. 해설과 캐스터도 안타까운 탄성을 자아냈다. 그리고 카메라 전환을 시킨 스태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의 대역죄인이 되었다


그 아쉬움을 사진으로나마 대신하자.

2010/11시즌은 이때까지 트레이드 마크(?)였던 활동량을 살린 좋은 위치선정 이후 줏어먹기의 패턴이 사라지고 좀 더 기술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슛의 퀄리티가 상당히 높아져서 깔끔한 마무리가 돋보인다. 이런 변화들은 국대와 월드컵에서의 경험으로 공격적인 부분에서 자신감이 붙음으로서 얻어진 효과로 보인다.

또한 10/11 시즌의 성과라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실히 입증했다는 것. 무엇보다도 박지성처럼 플레이하는 선수는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흔치 않다. 공수 전반에 능하여 골과 도움을 만들어내고, 허리 진영의 어느 포지션에나 뛸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에, 주변 선수들에게 버프도 걸어주고, 팀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던질 수 있는 선수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67] 박지성이란 플레이어가 계속 타구단과의 연결설이 흐른다는 것도 그에 대한 반증이라 할 것이다. 그것도 뮌헨이나 인테르 등 각 리그의 정상권 팀과 말이다.


그리고 5월 29일 오전 3시 45분 벌어진 FC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벌어졌고 박지성은 선발 풀타임으로 출전했다. 그야말로 산소탱크란 별명에 걸맞게 그라운드를 미친듯이 누비며 수비에 가담했으나[68] 바르샤의 미친 듯한 패스플레이에 중원이 정신을 못차리며 박살이 났고 박지성은 초반에는 메시에게 태클로 공을 뺏는 등 선전했으나 바르샤의 패스플레이와 스피드에 공을 건드리지 못하였고 결국 드로, 메시, 다비드 비야의 골로 3:1로 팀이 무너지며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꿈을 날려보내야만 했다.[69] 그래도 엉망이었던 맨유 미드필드진 사이에서 박지성 혼자 고군분투했던 경기. 실제로 모든 스포츠 매체의 평점을 보면 하나같이 박지성의 평점이 맨유 미드필드진 중에서 가장 높았고 체력이 방전되기 전까지는 그나마 바르샤와 대등하게 싸웠다. 박지성 본인은 무기력했던 자신에게 실망한 듯 하지만, 맨유의 팬들은 경기 내내 박지성의 응원가를 불러줬고 스포츠 매체들도 박지성을 격려하는 분위기. 박지성은 정말 열심히 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챔스 결승전 풀타임을 뛴 것만으로도 훌륭했다. 넷상에선 메시의 미친 중거리슛의 실책에 박지성의 잘못이 있냐없냐를 두고 잠깐의 설전이 있었으나 일단 메시의 슛에서 실책은 쫄아서 멀뚱거리던 긱스가 한 것이고 메시가 그렇게 간단히 막을 수 있는 선수였으면 괜히 메시라 하겠나...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2013년까지의 재계약에 성공,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재계약 연봉이 무려 86억으로 루니와 퍼디난드를 이어 팀내 3위.

11/12 시즌 - 맨유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된 2011-12시즌 개막. 커뮤니티 실드와 2라운드까지의 교체투입으로 일부 찌라시들은 또다시 위기 운운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시즌 초반 어린 선수들과 새로 영입한 선수들의 팀워크를 체크하기 위한 단계이므로 전혀 신경쓸 것이 없으며, 그리고 3라운드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교체투입된지 2분 만에 한골 때려박았다. 이쯤 되면 정말 아스날 킬러라는 설레발이 사실일지도(...).

4라운드 볼튼과의 대결에서, 60분이라는 이른 시간에 라이언 긱스와 함께 교체투입 되기 직전, 갑자기 조니 에반스가 "나 아파요!!" 하며 고통을 호소, 박지성 대신에 뜬금없이 크리스 스몰링이 경기에 출전했다.[70] 스몰링 본인도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카메라 뒤쪽으로 아쉬워하며 항의하는 듯한 박지성의 모습이 함께 잡혔다.[71][72]

그리고 2011년 12월 26일 18라운드 위건 애슬레틱 경기에서 전반 8분만에 시즌 2호골을 기록했다.

2012년 1월 28일, 리버풀(홈)과의 FA컵 4Round 32강 경기에서 전반 38분에 하파엘의 측면 어시스트를 받아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다만 팀은 경기 종료 5분 전에 터진 카윗의 결승골로 패.

2012년 2월 6일,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첼시 FC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40분 교체 출전하여 맨유 통산 200경기 출장(팀에서 92번째, 아시아는 물론 한국선수로써 EPL 최초)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를 기념해 맨유 홈페이지에선 그동안의 박지성의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을 올려놓았고, 페이스북과 홈페이지를 통해 박지성에게 응원의 글을 남기는 이벤트를 실시 하고 있다.


2012년 2월 24일, 유로파 리그 대 아약스 전에서 최초[73]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장하였다. 당시 베르바토프는 거의 명단 제외 수준이었고, 치차리토,애슐리 영에게 주장완장을 주기엔 너무 이른 상황. 나니와 박지성 둘 중 한명이 차게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맨유가 유럽대항전 등 각종 컵대회에서 탈락하여 리그경기에만 집중하고 포지션 경쟁자인 안토니아 발렌시아가 맹활약하면서 3월 빌바오의 유로파리그 16강전 이후 출장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올드 트래포드에서 펼쳐진, 승리시 사실상 우승 굳히기였던 에버튼과의 대결에서 4:4까지 가는 접전이라고 쓰고 수비 멘붕이라고 읽는다[74]끝에 비겨버리고 말았다. 이제 맨체스터 시티와의 승점차가 3점으로 좁혀진 것.

2012년 5월 1일. 6억 명이 시청한다고 언급될 정도로 대단한 관심을 보인 사실상의 리그 결승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리그경기가 시티 홈구장에서 치러졌다. 시티 홈에서 열릴 이 경기를 3일여로 앞두고 8경기 연속 결장하던 박지성의 선발 가능성이 현지 언론에서 흘러나왔다. 이보다 앞서 부친 박성종 씨가 박지성의 근황을 전하며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에게 "몸 상태가 좋은 것을 알고 있다. 중요한 경기에 나갈 수도 있으니 초조해 하지 마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국내언론으로 흘러나오면서 국내팬들의 기대감은 ↑.
리그 우승을 위해서 맨유는 최소한 비겨야만 했고, 시티는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다. 시티가 이긴다면 8점이나 앞선 골득실로 순위가 역전되는 상황. 사실 맨유가 에버튼과 비기고 위건에게 지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외 각종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맨유 우승을 기정사실화하며 마가 낀 부상시즌에도 불구하고, 막장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유럽대회 광탈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승을 올려 역전한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을 드높이 찬양하는 중이었으나, 맨시티에게 불리할 건 없었다. 풀전력이었던 11-12 시즌 초반에 펼쳐진 맨체스터 시티와의 올드 트라포드 경기에서도 대패했고, 그 이전 해 FA컵 4강전에서도 패했고. 맨유는 애쉴리 영의 공격력이 필수적이었으나 그놈의 헐리웃 액션 때문에 사실상 방치해 두는 바람에...반면 시티로서는 최근 패배를 기록한 적 없는 홈 경기, 테베즈까지 돌아와서 공격진 보강, 원래 강한 피지컬, 발로텔리가 없는 팀 분위기 등등.

경기 당일 아주 오랜만에, 그것도 리그 우승 결정전이나 다름없는 빅 매치에서 박지성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한국팬들은 새벽 4시에 티비 앞으로 집결하였다. 언론의 예상대로 박지성이 선발 출전하였고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 긱스-박지성-스콜스-캐릭-나니의 미들진. 경기 소개 당시에는 4-3-3의 포지션으로 긱스-루니-나니의 형태라고 소개되었지만 경기 내내 4-5-1에 가까운 진형이었다. 의도하였다기보단 초반 이후로 계속 밀린 탓. 하지만 선발출전한 박지성의 모습을 보며 팬티타령을 하던 국내 팬들의 반응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물로...박지성은 8경기 연속 결장의 폐해로 인해 경기감각이 제대로 올라오지 못한 듯 보였다. 당일 컨디션은 초반에는 나쁘지 않아 보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체력과 움직임 모두 무뎌진 끝에 후반 시작 후 20분을 넘기지 못하고 대니 웰백과 교체.

경기 내용 면에서 퍼거슨 감독은 지난 시즌 첼시전과 같은 모습을 박지성에게 기대했던 듯 하다. 중원에서 전후좌우를 가르지 않고 풍부한 활동량으로 휘저으며 미드필더진에서 숏패스 연결을 봉쇄하는 동시에 역습에서의 공격적인 역할도 부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바르셀로나 전에서는 워낙 개개인의 볼 간수능력이 좋기 때문에 공간을 차단하는 박지성의 능력이 살아나지 못했지만, 첼시나 아스날 등을 상대로는 이러한 전략이 잘 먹혔기 때문인 듯.
하지만 박지성이 넘지 못한 빈센트 콤파니와 야야 투레의 벽이 너무 두꺼웠다. 피지컬에서 콤파니에게 상당히 고전했고 특유의 민첩한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았다. 볼을 제대로 받은 경우도 별로 없었고 가끔 공격 진영으로 올라가더라도 크로스도 수비에 저지되는 등, 전체적으로 고전했다.

사실 이날 맨유의 거의 모든 선수들은 패스워크나 개인돌파나 점유율 면에서나 모든 면에서 밀렸다. 최근 에브라도 수비 감각이 그리 좋지 못하고, 스콜스의 수비 능력은 원래 떨어지고...백태클 안 해서 퇴장 안 당한게 다행 나니는 원래 수비랑 연관 없는 캐릭터고. 그나마 캐릭 정도만 자기 역할을 했다. 묵직한 시티의 미드필더진의 피지컬에 새로운 판타스틱 4라 불리우고 최근 기세는 더더욱 좋은 나스리-테베즈-아구에로-실바 진을 비디치도 없는 맨유 수비진이 막기엔 무리였을 듯. 스태미너 하면 손꼽히는 박지성이 전반 20분 이후 급속히 방전되었다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체력은 떨어지고 팀 전체의 라인이 지지 않으려는 게임을 하려고 수비쪽으로 내려와 있는 상태에서 맨유는 오버래핑을 자제했고 수비진에서 맴돌던 공이 시티의 압박을 숏패스로 못 넘기니 롱패스로 루니나 긱스에게 찔러주려는 상황이 자꾸 발생. 박지성은 자연스럽게 공을 쫓아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루니 역시 언론의 표현처럼 영혼이 빠진 경기력을 보여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며 결국 박지성 체력만 더 빨리 방전. 시티의 파상공세를 어찌어찌 전반에 막아내는 듯 했으나 전반 추가시간에 이어진 코너킥에서 빈센트 콤파니의 헤더슛으로 실점. 이제 무조건 골을 넣어야 하는 맨유로서는 공격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기에 수비 역할을 맡고 있던 박지성을 빼고 니 웰백을 넣었다. 그리고 이후 스콜스를 빼고 안토니오 발렌시아도 넣었지만 대니 웰백만 부상을 입으면서 결국 1:0 그대로 마무리되었다. 공격하려고 선수를 넣었더니 수비수 마이크 리차즈를 넣고 수비형 미드필더 데 용도 넣고...안 될거야 아마.

경기 후 예감대로 현지 언론은 박지성에게 혹평을 쏟아내었다. 주된 내용은 박지성의 깜짝 선발이 실패했다. 한 언론은 박지성에게 최저평점을 부여하며 한국팬들의 쓰린 위를 부여잡게 했다. 박지성도 물론 다분히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지만, 팀 전체가 시망이었다. 긱스나 스콜스의 노련함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시티 공격에 간신히 실점을 면하는 수준에 불과했던 팀에게 창의적인 공격의 틈이란 건 없었다. 긱스는 특유의 창조적인 패스가 거의 나오지 않았고[75] 날카로운 돌파와 크로스도 없었다. 이전 경기까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던 나니 역시 중요경기에서 관중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루니는 잉글랜드 대표 공격수 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스몰링의 헤딩경합 실패는 바로 콤파니의 골로 이어졌다. 필 존스는 피지컬이 약한 하파엘을 대신하여 나름대로 고생했는데 후반 Fxxx의 입모양이 보인 점으로 보아 상당히 안 풀리는 경기였음을 알 수 있다.

며칠 후 영국 언론은 한국팬들이 우려하던 대로 맨유에서의 방출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수단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팀 차원에서 언급했단다. 물론 명단은 나오지 않았지만 신난 언론들이 물타기 중.(...) 현재는 해설자로 있는 예전 팀 동료였던 게리 네빌도 기존 선수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걱정 반 기대 반. 현재 박지성의 한국 팬들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좀 더 핵심선수로 활약할 수 있는 클럽으로 이적하기를 기대하는 편이지만 카가와 신지가 맨유 온다고 하자 여러모로 배 아파하는 중.
맨유에게는 스완지 시티와의 홈 경기와 선더랜드와의 원정 경기가 남아 있는데, 맨시티로서도 남은 경기에서 총공세를 퍼붓는다고 가정하면 무조건 공격적인 포메이션을 취해야 하는 이상, 남은 두 경기에서 박지성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마이클 오언,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조차 카드로서 버린 퍼거슨 감독이다. 거의 이대로 올 시즌의 박지성은 마무리되었고 결과적으로 박지성에게 11-12시즌은 그 어느 시즌보다도 힘겨운 시즌이 되어 버렸다.

2012년 7월 6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한국선수 영입기사가 떴다. 7월 9일 구단의 미래 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그 자리에서 남한국적 선수의 영입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것이 기사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기성용, 김보경등의 젊은 선수들이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7월 7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프리시즌 투어 홍보 포스터의 모델이 박지성에서 루니로 교체되며 QPR로의 이적설이 유력하게 떠올랐다. 당연히 국내 축구 커뮤니티는 대폭발.(...) 각종 찌라시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영국 BBC에서 5백만 파운드(88억)에 QPR로의 이적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떴고, 이어서 스카이스포츠, ESPN에서도 박지성의 QPR 이적이 결정되었다는 보도가 내걸렸다. 이어 박지성이 예정보다 하루 일찍 런던으로 출국하며 사실상 QPR로의 이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결국 7월 9일 한국시간 오후 11시에 기자회견을 통해 이적이 확정되었다.

등번호는 7번을 달게 되었다. 당초 8번을 달기로 하였으나 구단주의 결정으로 달게 되었다한다. 또한 공석인 주장직을 박지성에게 맡기는 것을 고려중이라고 휴즈감독이 밝혔다.

박지성이 이적을 결심한 시기는 유로파리그에서 탈락한 이후 7경기 연속 결장을 하던 시점이라고 한다. 부친인 박성종씨의 말에 따르면 이 시기에 박지성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7년 동안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 퍼거슨과의 개인 면담이 이때 있었고, 자기관리 철저하기로 소문난 박지성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76] 이적 이후 언론 보도에 따르면, 퍼거슨 감독은 끝까지 박지성에게 팀에 잔류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주급이 부족하다면 인상해주겠다면서. 그러나 박지성은 자신을 절실하게 바라는 QPR에 감동해 이적을 결심했다고 한다.

박지성이 이적한 후 맨유 공식 홈페이지에는 팀 동료인 리오 퍼디난드의 인터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인터뷰, 박지성의 작별 메시지, 박지성의 맨유에서의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이 메인에 걸렸다. 퍼거슨 감독은 인터뷰에서 그간 박지성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언급했다.

퍼거슨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다른 팀원들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던 데다 카가와까지 영입할 생각이었던 터라 박지성을 기용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박지성이 맨유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며 자신은 그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보내게 되긴 했지만 박지성은 세계 최고의 선수이며 AC 밀란전을 비롯해 맨유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하며 그의 이적을 슬퍼한다고 말했다.

사실 맨유와 박지성의 이별은 해당 클럽에서의 은퇴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가장 이상적인 이별이라고 할 수 있다. 맨유는 박지성이 떠난 걸 아쉬워했고, 박지성도 맨유에서 좋았지만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위해 떠났다. 예전 팀의 감독과 동료가 모두 이적을 아쉬워하고, 이적한 선수도 예전 팀이 잘 되길 바라는 것은 박지성이 얼마나 사랑받는 선수였는지, 그리고 실력은 물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선수였는지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겠다.

3.3.2.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12~2013)


2012년 여름, 전격적으로 QPR로 이적했다. 맨유 출신의 클래스 있는 선수라 구단주와 감독이 박지성 영입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으며 12/13 개막전에 앞서 그를 정식으로 QPR의 주장으로 선임할 정도로 큰 신임을 보여줬다.

그리고 문제의 개막전. 홈에서 지난 시즌 같이 승격한 스완지 시티를 만나서 그야말로 눈이 썩는 경기력과 함께 5-0으로 캐관광 당해버렸다. 제아무리 경험 많은 박지성이래도 옆에 있는 나머지 10명이 축구장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데 뭘 더 어쩌란 말인가? 맨유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팬들은 OME를 외쳤고, 팬들 사이에선 맨유에서 나가면 에이스 노릇하며 잘 지낼 줄 알았는데 또 애들 뒤치닥거리나 하게 생겼다며 안타까워 하는 반응이 나왔다.

첫 경기부터 주장완장을 차고 나온 것도 그렇지만, 코너킥, 프리킥(간접프리킥) 모두를 도맡아서 차는 것을 보고 국내의 축빠들 반응은 경악+폭소.
팀 자체는 답답하고 앞날이 막막하여 박지성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으나, 박지성이 주장이 되어 팀을 이끄는 것 자체를 즐기면서 보는 사람도 굉장히 많아졌다.

노리치시티와의 경기에서도 중앙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하여 고군분투했다. 전반에는 다소 잠잠하다가 후반 들어서 안정적인 볼배급에 놀라운 킬패스를 몇번 선보였으나 공격수들이 헛발질을 하거나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려 날려먹는 바람에...팀은 1-1로 비겼다.

그리고 대망의 맨체스터 시티전.[77] 이번에는 새로 합류한 그라네로가 중앙미드필더에 서고 본래 포지션인 왼쪽 윙어로 선발 출전하였다. 이번에도 전반에는 잠잠했지만 후반에 들어서서 여러차례 좋은 패스를 넣어주고 돌파를 통해 팀의 공격 활로를 뚫는 등 분전했으나 팀은 3-1로 패했다. 스코어 상으로는 3-1의 대패지만 경기 내용으로 봤을때 종반전까지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경기였다.
또한 맨시티의 홈구장이였던 점이라는 걸 감안하면 꽤나 휼륭한 분전이였다. 비록 적은 수지만 팀을 응원하는 QPR팬들의 즐거워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첼시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둬 승점을 챙기며 희망을 보였지만, 토트넘 원정경기에서 2-1로 역전패당했다. 팀내에서 유일하게 전경기 출장하고 있지만 소속팀의 공격자원이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맨유에서의 수비형 윙어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기력으로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도 연속 선발출장은 이어나갔지만 시즌 최악의 부진을 보이며 후반 디아키테와 교체되었다. 팀은 2-1로 패배하며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지 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에서도 박지성의 경기력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기량이나 감독의 전술이 더 심각하기는 하지만...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과의 원정경기에서 시즌 첫 도움을 기록했지만[78] 팀도 2-3으로 패하고 본인의 활약도 미미하여 이전의 나쁜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문제는 첼시전 이후로 급격하게 페이스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 사실 시즌 초반 몇 경기에서는 리그 내의 찬스메이킹 횟수에서 1위를 차지했을 만큼 컨디션이 좋았지만 토트넘전부터 부진하기 시작하더니 지금 시점에서는 첼시보다 더 낮은 수준의 팀들을 상대로도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로테이션 없이 강행군을 뛰는 현재 상황과 감독의 지시인지 본인의 의지인지는 모르지만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파악된다. 맨유에서야 공격력이 훨씬 뛰어난 동료들이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QPR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팀내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고, 주장인만큼 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QPR도 이를 기대하고 박지성을 영입했을것이고...

A매치 데이로 인한 휴식 기간 후에 치른 에버튼전에서 시즌 초와 같은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줬으나 팀은 1-1로 비기며 첫승 달성에는 실패했다. 경기 후에 무릎 부상으로 아스널전에 결장했다. 레딩, 스토크시티, 사우스햄튼 경기 역시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서 4연속 결장하였다. 부상은 회복되었지만 경기감각의 이유로 맨유전에서도 결장하며 5연속 결장하였다.

11월까지 소속팀이 1승도 거두지 못하자 마크 휴즈 감독이 경질되고 해리 레드냅 감독이 부임하고 레드냅 감독이 최근 영입선수보다 기존에 뛰던 선수들을 중용하면서 박지성 또한 벤치에서 대기하거나 결장하여 팀에서의 입지가 좁아졌다.

경기 출장은 하고 있지만 팀에서의 입지는 로테이션 멤버 정도로 떨어졌다. 지난 시즌부터 시작된 폼 저하와 이번 시즌에 겪었던 부상으로 인해서 특유의 민첩성이나 순간속도, 활동량이 모두 떨어져버려 맨유 시절의 활발한 움직임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이로 인해서 윙어로서의 경쟁력이 팀의 다른 윙어들에 비해서 떨어져 중앙 미드필더로 밀려났다. 하지만 본 포지션이 아닌 중앙에서 뛰다 보니 마땅치 않은 경기력이 나오는 중. 그로 인해서 현지 QPR 팬들에게는 교체될 때마다 야유를 받고 있다. 묘하게 PSV 시절 초반을 연상시키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그 당시에는 발전 가능성이 있었던 유망주 시절이었고 지금은 30대를 넘어선 베테랑이라는 점.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 동안 쌓았던 경험으로 이 위기를 넘어설 수 있겠지만 부정적으로 보자면 신체적 능력의 저하와 그로 인한 기량하락 때문에 이 위기를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서 현지 언론이 박지성을 질타하고, 박지성의 평점이 낮게 주어지는 등, 안쓰러운 나날이 계속되는데 이는 이번 시즌 QPR 이적시장의 최대 대어가 박지성이었고, 또한 앞으로의 QPR 중심이자 키워드가 되는 선수이기 때문. 구단 뿐만 아니라 언론들도 그만큼 박지성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의미로 봐도 좋다.
강등권 팀의 Key가 된 이상, 어느 정도는 박지성이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부담이다.

12/13 시즌 27R 맨유와 QPR의 시합 때 경기 시작에 앞서 알렉스 퍼거슨 경이 QPR의 벤치에 앉아있는 박지성과 악수를 하고, 맨유 원정팬들이 경기 도중과 경기가 끝난 후 박지성의 응원가를 불러주는 일이 있었다. 박지성을 내보내고 하필 일본선수인 가와 신를 영입한 일로 퍼거슨과 맨유에게 섭섭함을 표시하던 박지성 팬들도 경기 후 감독과 팬의 환대에 섭섭함을 잊어버리고 기뻐했다.

28R 사우스햄튼 FC와의 경기에서 타랍 대신 선발출장, 2번째 골을 어시스트 하면서 팀의 2:1 승리를 견인한다. 타랍 보고있나?

29R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 선발출전함으로써 프리미어리그에서 통산 150번째 경기를 뛰었다. 프리미어리그 공식 사이트와 페이스북에서는 이와 관련된 글을 개시했다.# 팀은 3-1로 모처럼의 대승 및 1부리그 승격 이후 첫 2연승을 기록했다.

30R 아스톤빌라와의 경기에서 타운젠드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시즌 4호 도움을 기록했다. 그러나 팀은 3-2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35R 레딩과 비기고, 다음날 아스톤빌라가 선더랜드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QPR과 레딩의 강등이 확정되었다. 박지성은 결장했으며 강등의 원흉 중 하나로 찍히고있다. 그러나 경기에 더 많이 나온 건 타랍과 마키라는 거.

28R부터 팀워크가 맞지 않는 타랍을 배제하고 박지성을 다시 중용하면서 상승세를 타게 되어 잔류의 희망이 보이는 듯 했지만 아스톤빌라 전과 풀럼전 2연패, 위건전 다 이긴 경기임에도 막판에 골을 허용하며 비기게 되어 잔류가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 박지성 본인도 오랜만에 선발출장한 사우스햄튼전에서는 제대로 맘먹고 나왔는지 왕성한 활동량을 보이며 결국 어시스트까지 기록했는데, 이후 경기에서는 별다른 활약이 없이 그냥저냥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레드납 감독은 다시 타랍의 선발로 돌아갔으며 이후 QPR의 행보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QPR이 강등 확정된 시점에서, 13-14 시즌 승격팀인 카디프 시티와 전 동료 라이언 넬슨이 감독으로 있는 MLS의 토론토 FC와의 링크가 뜨고있다. 사실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QPR이 강등되었기 때문에 구단입장에서도 고액 연봉자인 박지성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고액연봉자들에 대한 레드납의 반복된 비난으로 인해 어떻게 헤어지는지의 문제만 남은 시점이다.

2013년 6월, 영국 축구전문매체 '코트오프사이드'에 의해 QPR 최악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 "많은 팬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이적한 키플레이어(박지성)에 대해 기대했지만 박지성은 QPR에서 아무 기여도 하지 못했다"고. 현지 언론은 레드냅 감독 체제에서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박지성이 시즌 후 팀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기사 참조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 팀인 '알 힐랄'이 박지성의 이적에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관련기사. QPR에서의 방출은 기정사실로 보이기 때문에, 이제 박지성 자신의 선택만이 남은 셈.

한국시간 2013년 7월 28일 언론을 통해 PSV 아인트호벤으로 임대 이적할 것이란 기사가 나오고 있다. 기사 메디컬 테스트가 예정되어있다고 박지성 본인이 측근에게 메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으며,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듯.

PSV와의 이적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언론에 따르면 그 이유는 금전적 문제와 계약 형식 때문이라고 한다. QPR에서 연봉을 70억원 가량 수령하고 있는 박지성에게 PSV측에서는 15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리그 자체가 매우 침체되었고, 2011년부터 PSV 측에서는 샐러리 캡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중이다. 박지성에게 제시한 연봉이 딱 그 샐러리캡에 해당하는 100만 유로 가량으로,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 샐러리캡을 무시할 수 있다는데 현재 박지성이 최고의 자리에서 약간 내려온 상태인데다가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 예외에 해당되지는 않는 듯 하다. 박지성 입장에서는 주급의 80%를 삭감하고 이적을 감행하기가 부담스러운 모양. 게다가 계약기간 2년을 놓고 1년 임대 이후 완전 이적이냐 2년 계약의 완전 이적이냐를 놓고 줄다리기 중인 듯 하다. 결국 2013년 7월 30일 PSV와 계약했다. 기사

3.4. 다시 PSV로


친정팀으로 1년 임대를 간 박지성(남은 계약기간이 1년이므로 다시 QPR을 갈 일은 없을 듯하다.다행이다).
꽤 연봉도 깎이긴 했지만, 감독이 PSV 시절 같이 뛰던 필립 코쿠에 코치가 맨유 시절 같이 뛰던 뤼트 판 니스텔로이이다. 위 두명과의 친분이 꽤 시너지로 작용한 듯 싶다.
이적이 된 후, 부상으로 복귀경기가 늦어지다가 그가 제일 필요한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도 출전이 불투명할 줄 알았으나...귀신같이 회복했는지 당당하게 선발에 이름을 올렸다. 복귀 당시의 포지션은 오른쪽 윙어로 68분간 8.8Km를 뛰면서 경기를 성실하게 조율하였다. 그야말로 수비형 윙어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수비진보다 커팅 잘 했다 그리고 경기는 1:1로 비겼다. 경기 후 골닷컴에선 뛴 선수들 중 가장 높은 평점인 5점 만점에 4점을 받아 MOM에 선정하였다.(여담으로 평점이 가장 낮은 선수는 설리 문타리였다.) 필립 코쿠 감독은 경기후 박지성을 경기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극찬하였다. 레드냅 개갞기해봐
거의 출전시간 내내 울렸던 위송빠레는 이 경기의 감초같은 역할을 했다.(역시 응원가는 따따따따 위송빠레!)

2013년 8월 25일 PSV가 전반 6분만에 실점하며 0-1로 끌려가자 코쿠 감독은 후반 21분 박지성을 교체투입했고, 박지성은 후반 41분 동점골을 작렬시키며 이에 화답했다. 무려 575일 만에 리그득점이었다.

그러나 4일 후 원정경기로 치른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마티아 데 실리오에게 집중마크 당하며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고, 후반 15분 플로리안 오제프손과 교체당했다. 결국 아인트호벤은 보아텡에게만 2골을 내주며 0-3 완패를 당했고 챔피언스리그 본선행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진격의 박지성과 오바마

2013년 9월 23일 리그 우승을 위하여 이겨야할 라이벌 AFC 아약스와의 아인트호벤 안방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팀은 4:0으로 아약스를 처바르며 리그 1위로 올라섰다.

그후 몇 경기 더 나오다 부상으로 한 달 이상을 결장했다. 그 사이에 PSV는 순위가 10위까지 떨어졌으며 네덜란드의 한 언론으로부터 먹튀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다시 출전하게 되면서 PSV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2014년 3월 16일 리그 28차전, 2위 비테세 아른햄 원정에서 쐐기골을 도왔다. 이 승리로 팀은 3위까지 올랐다. 아직 트벤테가 추격 중이지만 비테세와 승점차가 2점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걸린 2위를 두고 아인트호벤이 한층 힘을 내게 되었다.

맨유가 3연패를 당한 직후 맨유 현지 팬들이 분노해서 박지성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중이다.카가와는...

4. 국가대표

큰 경기에 매우 강하다. 가히 멘탈갑.[79]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 라오스 전에 성인대표로 데뷔하였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활약하였다.
국가대표로서 주목 받기 시작한 경기는 한일 월드컵 직전 잉글랜드와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터뜨리면서 부터이다. 특히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이영표의 크로스를 받아 가슴으로 트래핑 후 왼발 슛으로 득점하며 팀의 1-0 승리와 조별리그 1위 통과에 큰 기여를 하였다. 골을 넣고 난 후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안기는 장면도 화제가 되었다.

8강전이었던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는 승부차기 때 2번째 키커로 나와서 성공시켰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2차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종료직전 설기현의 크로스를 받아 골을 성공시키며 1-1 무승부를 이끌었다.


2008년 하반기부터 허정무호의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선출되었고, 국가대표에서 은퇴 할 때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았다.

남아공 월드컵 직전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6분 골을 넣으며 한순간에 일본 응원단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특히 골을 넣은 후 세레머니를 하지 않으며 일본에게 더욱 굴욕감을 안겼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예선에서 5골을 기록하며 조1위 무패통과에 기여하였으며, 본선에서는 조별리그 1차전 그리스 전에 쐐기골을 넣으며 2-0 승리에 기여하였으며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

3차전 나이지리아전에서도 2-2 무승부를 거두며 대한민국의 첫 원정 16강을 이루는데 기여하였다. 박지성은 이 경기에서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2011년 AFC 아시안컵이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무대가 되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기여하였고, 2011년 4강 일본 전을 마지막으로 100경기를 달성하여 센추리 클럽 가입을 달성하였다. 마지막 경기였던 3-4위전에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않았다. 2011년 1월 31일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국가대표 은퇴 선언을 하였다.


4.1. 기타

2010년 6월 12일 그리스와의 월드컵 B조 1차전에서 득점에 성공하여 3개의 연속된 월드컵 대회에서 골을 넣은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80] 2차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도 역시나 선발 출전하였고 온 경기장을 누비고 다녔으나 활동량만 많았을 뿐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에게 완벽하게 지워지며 팀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3차전 나이지리아전에서는 박주영의 프리킥 역전골에 기여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그리스전과 마찬가지로 MOM에 선정되었다.

2010년 10월 12일 한일전을 앞두고 머리를 붉게 염색(원래부터 가끔 염색을 하긴 했다.)하여 부진탈출이라든가 한일전 필승 다짐의 표현이라는 말들이 많았지만, 박지성 본인이 말하길 자기도 그런 색으로 염색이 될 줄은 몰랐다는 모양(…).

2011년 1월 25일에 있었던 2011년 AFC 아시안컵/4강&결승한일전에서 이영표에 이어 센추리 클럽[81]에 가입했다.

여담으로 고교시절 때 트라우마 때문에 페널티 킥을 차는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2011년 아시안컵 4강전 한일전에서도 주장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차지 않았을 정도그리고 돌아온 것은 바로 삼연뻥. 근데 아이러니하게 페널티킥을 잘 차긴 하는듯 하다. 히딩크가 한때 페널티 킥 전담키커로 정했을 정도[82]. 그리고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2002년 월드컵 미국전에서 이을용이 실축한 페널티킥은 원래 박지성이 차기로 되 있었다! 경기 전 히딩크 감독이 페널티 킥 전담 키커를 미리 정했었는데 제 1순위가 박지성, 2순위가 이을용이였다. 근데 박지성은 미국과의 경기에서 전반전 38분쯤에 부상을 당해서 이천수와 교체아웃 됐었다. 만약 이 때 박지성이 부상을 당하지 않고 페널티 킥를 차서 성공시켰다면 아시아 최다골의 기록은 박지성 단독의 기록이였을수도 있다.

5. 수상 기록

5.1. 클럽 수상

  • 교토 퍼플 상가
    일왕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1회 (2002년)

  • PSV 에인트호번
    에레디비지 우승 2회 (2002-03 시즌, 2004-05 시즌)
    에레디비지 준우승 1회 (2003-04 시즌)
    KNVB 컵 우승 1회 (2004-05 시즌)
    요한 크루이프 실드 우승 1회 (2002-03 시즌)
    요한 크루이프 실드 준우승 1회 (2004-0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회 (2004-05 시즌)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우승 4회 (2006-07 시즌, 2007-08 시즌, 2008-09 시즌, 2010-11 시즌)[83]
    프리미어 리그 준우승 3회 (2005-06 시즌, 2009-10 시즌, 2011-12 시즌)
    FA컵 준우승 1회 (2006-07 시즌)
    풋볼 리그 컵 우승 3회 (2005-06 시즌, 2008-09 시즌, 2009-10 시즌)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3회 (2007-08 시즌, 2008-09 시즌, 2011-12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2007-08 시즌)[84]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2회 (2008-09 시즌, 2010-11 시즌)[85]
    UEFA 슈퍼컵 준우승 1회 (2008-09 시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 (2008년)

  • 국가대표 경력
    2000년 AFC 아시안컵 3위
    2002년 FIFA 월드컵 4위
    2010년 FIFA 월드컵 16강
    2011년 AFC 아시안컵 3위

5.2. 개인 수상

2001년 J2리그 MVP 수상
2001년 J리그 베스트 XI 선정
2002년 J리그 베스트 XI 선정
2002년 일왕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MVP 수상
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2년 일본 오사카경제법률대학교 표창장
2002년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수상
2003년 피스컵 골든볼 수상
2005년 KNVB 컵 MVP 수상
2005년 유로스포츠 베스트 XI 미드필더 부문 선정
2005년 에스콰이어 '한국을 빛낸 10명의 남성'
2005년 타임지 선정 '아시아의 영웅 20인'
2005년 환경 재단 선정 '세상을 밝게 한 100인'
2006년 한국 방송 프로듀서 선정 올해의 스포츠 스타
2007년 세계 경제 포럼 선정 차세대 지도자
2007년 명지대학교 공로상
2008년 슈퍼매거진 슈퍼어워즈 아시아 선수상 수상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3월 MVP 수상
2009년 제40회 경기도 체육상 스포츠 스타상 수상
2010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1월 MVP 수상
2010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2월 MVP 수상
2010년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상 수상
2011년 AFC 아시안컵 베스트 XI 선정

6. 은퇴에 대한 본인의 생각

이청용과의 대화나 일전의 인터뷰 등에서 밝혀졌듯이 박지성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기점으로 대표팀 은퇴를 할 것이라고 했다.


형은 저쪽으로 어 넌 거기에 있고...야 너 왜 거기...아 시발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황선홍이 "팬들이 원한다면 계속 대표팀으로 뛰어야 한다"라고 설득하려 하는 등 주위에서 대부분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진 뛰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말리고 있어, 2010년 5월에 발간한 자서전에 따르면, 좀 더 생각해보자는 쪽으로 바꿨다고 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여전히 남아공 월드컵을 자신이 대표팀 선수로서 뛰는 마지막 월드컵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브라질 월드컵이 열릴 때까지 자신의 기량이 좋다면 뛰어도 될 거라 생각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86].

그러나 무릎 부상 재발 때문에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2010년 12월, 2011년 1월에 치뤄지는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확고히 했다. 차범근 이후 최고의 스타의 은퇴발언이고,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축구 선수가 20대 말에 은퇴를 하겠다고 하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축구계에선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모양. 황선홍, 홍명보 등은 결국 본인 몸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본인 의사가 제일 중요하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회택 등은 박지성의 은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의사를 보이는 등 축구계내에서 찬반여론이 확연히 갈리고 있다.

이른 나이에 국대 은퇴를 결심한 원인은 아무래도 무릎 문제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다. 박지성이 무릎이 좋지 않는건 j리그 교토퍼플상가때 부터 좋지 않다고 본인이 언급을 했다. 부상을 입은 후 몇차례의 수술로 인해 무릎 상태가 정상이 아니기에 계속 잘 관리해줘야 하는데 국대 소집으로 장거리 비행을 하고 나면 무릎에 물이 차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 맨유에서도 박지성이 한국 국가대표로서 시합을 치르고 나면 무릎에 이상이 생겨 한동안 못 뛰는 걸 불만스럽게 여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축빠들은 박지성이 은퇴를 선언한 이상 이제 그만 그를 놓아줘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국대에서 뛰어야 한다는 의견보다 많은 듯하다.

맨유 의료진의 검사 결과 무릎 상태가 길어야 4~5년, 계속해서 국대에 차출되면 겨우 2년 정도 밖에 버틸 수 없는 상태라는 기사가 났는데, 다름 아닌 그 유명한 최원창떡밥으로 박지성은 물론 처음 박지성의 은퇴를 공식화한 아버지 박성종도 거짓이라고 못박았다. 맨유 의료진들이 박지성의 무릎이 정상상태가 아니니 조심하라는 경고는 하고 있지만 기한을 밝힌 적은 없고, 특히 국대와 연관되는 것은 민감한 상황이라 해당 부분에 대한 발언은 극도로 조심한다고 한다.

다만 그런 시한부 판정의 진실여부를 떠나 장거리 비행을 하고 나면 무릎에 물이 차서 한동안 경기를 뛰지 못하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사실이며 박지성 본인도 결국 그것 때문에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조광래 감독이 경기출전을 별로 안 하더라도 박지성이 계속 대표팀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친선경기나 예선 등 중요하지 않는 경기에선 빠지고 월드컵 최종예선이나 본선 같은 중요한 경기에만 부르는 선별출장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나오고 있지만 박지성 본인이 그런 애매한 상황은 원치 않는다고 한다. 본인 말에 따르며 2014년 월드컵 때는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다고...결국 2011년 AFC 아시안컵/4강&결승에서 이영표와 함께 은퇴식을 치뤘다.

2011년 1월 31일, 한국으로 돌아와 공식적으로 은퇴발표를 했다. 2014년 월드컵에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으며 현역 선수 생활을 언제까지 하겠다고 정해놓은 것은 없지만 적어도 3, 4년은 더 뛸 것이라고. 은퇴관련 기자회견문 전문. 그리고 박지성의 은퇴에 대해 차범근은 축구 유망주들이 유년기에 훈련을 너무 많이 하는 관행을 고치려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것이 부끄럽다며 인터넷 상에 글을 올렸다(관련 기사).

다만, 월드컵 본선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없는건 아니다. 해외에서도 지네딘 지단 같이 국대에서 은퇴한 스타 플레이어가 월드컵 때에 복귀한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팀과 여론이 박지성 출전을 강력히 원할 것이고, 본선에만 출전하면 예선의 많은 경기와 장거리 여행에 대한 걱정도 없다. 그리고 QPR에서의 박지성의 입지는 단연 독보적이기 때문에 구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데다 QPR은 당장 잔류가 문제인 수준의 팀이라 경기 수도 적어 혹사당할 위험도 적다. 무엇보다 맨유에서의 명예로운 은퇴가 무산된 이상 국가대표로 뛰다 은퇴하는 명예나 월드컵 출전 자체의 유혹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2011년 현재 박지성 본인은 월드컵에 출전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치욕의 한일전 0:3 패배 후 검색어 1위 돌아와 박지성 한국 축구의 손오공

2013년 한국 대표팀이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팀이 아주 개판 오분전인 상황이라 홍명보 감독이 사실상 내정되었다는 소식에 언론들은 한 목소리로 홍명보 감독이 박지성과 이영표 세트를 복귀시켜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러나 박지성의 아버지는 대한민국이 최악의 위기라고 해도 지성이가 대표팀에 복귀할 일은 없다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상황. 박지성 본인도 6월 20일 기자회견에서 홍명보 감독이 부른다고 해도 대표팀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클럽의 경우 팬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맨유에서 은퇴하느냐 아니면 다른 곳에서 은퇴하느냐였다. 가장 좋은건 역시 맨유에서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이었지만 결국 QPR로 이적했기 때문에 이 쪽은 무산되었다. 다른 대안이라면 K리그나 교토에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되겠다.[87]

다만 현재 30줄을 넘긴 현재 시점에서 10경기 정도를 뛰고 무릎 부상을 당해서 누워버리고, 회복기간이 예전에 비해서 상당히 길어졌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지성의 무릎 상태나 몸상태가 확실히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로 보이며 본인도 인터뷰에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수차례 언급한 만큼, 박지성의 선수생명도 그다지 길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맨유에서처럼 로테이션을 돌며 무릎에 부담을 줄이게 된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팀이 팀인지라...박지성이 로테이션 멤버로 뛸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psv때나 퀸즈파크 시절을 봐도 한번 부상을 당하면 최소 70일~100일동안 결장을 했는데 이걸 봐서 무릎이 회복력이 떨어진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은퇴 시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에 의하면 남은 계약기간을 모두 다 채우고 은퇴한다고 한다. 즉 원소속팀인 QPR과의 계약기간이 끝나는 2015년 6월 은퇴하게 되는 셈. 은퇴 후에는 FIFA 마스터코스를 거쳐 축구행정가가 될 계획이라고 한다.

정리해보면, 박지성이 아시안컵이 끝나고 은퇴를 시사했던바는 맨체스터에서 주전경쟁이 쉽지 않고, 국가대표 차출로 인한 장거리 비행이 그의 무릎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시점(2014년)에서 박지성은 과거에 뛰었던 PSV로 임대간 신분이기 때문에 소속팀 기여에 대한 큰 부담이 없으며(과거의 기여도로 충분히 대우받을 수 있는 상황) 그의 무릎이 부담될 만큼 경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맨유시절에 비하여) A매치나 최종예선으로 통한 경기가 부담이었다면, 월드컵 본선(최소 3경기, 토너먼트 진출하면 그 이상)이 그렇게 부담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곧 장가도 가게 되면 경기외적으로 안정도 찾게 될 것이며, 모든걸 갖춘(현역 선수로서의 커리어) 상황에서 예전보다는 선택의 폭(월드컵 참가 or 불참)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박지성이 은퇴무대로 생각했던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은 일본과의 4강전에서 PK로 패해 3위에 머물렀는데, 이영표는 공식 은퇴한 상황이었고, 박지성은 비공식(인터뷰로만)으로 아시안컵을 우승하고 은퇴하겠다고 했는데, 우승을 하지 못했기에 그냥 은퇴하는걸 아쉬워 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지단과 피구는 적어도 월드컵 개최 1여년전 최종예선을 시작으로 복귀한데 비하여 지금 같은 경우 월드컵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아 복귀시점이 이미 지났다고 보는 팬들도 많으며 그리고 후배 양성을 위해서 복귀 안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팬들도 많다.

그러던 중, 홍명보 감독이 복귀의사를 물어보겠다는 기사가 떴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446036

하지만 박지성은 이미 수차례 밝혔듯이 대표팀 복귀는 없다고 확실하게 못밖았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이 직접 네덜란드에 가서 박지성과 진솔하게 대화를 한 결과, 우리가 예상한 것 보다 무릎 상태가 심각하다라며 복귀는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그가 없이 진행된 월드컵은 16년 전의 한국 축구로 되돌아 가 버렸다 그땐 김병지라도 있었는데 아오 정성룡

8. 은퇴와 그 이후

2014년 5월 14일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더 이상 무릎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2015년 6월까지 QPR과 계약이 되어있지만 은퇴하기로 결정했으며 2014년 7월 27일 김민지 아나운서와 결혼식을 갖는다고 한다.
6월 6일 제주도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5월 24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경남 FCPSV 아인트호벤과의 친선전이 프로선수 박지성으로서는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이로써 박지성은 1991년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한 24년간의 축구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맨유, PSV, QPR, FIFA 홈페이지에서 그의 은퇴 소식을 비중있게 전했으며 특히 맨유는 헌정영상을 제작하여 홈페이지에 올렸다.

동년 6월,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상가 FC의 클럽 창단 20주년 경기에 출전한 뒤 은퇴식을 가졌고, 7월에는 K리그 올스타 vs 박지성 올스타로 이뤄진 K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다.

2014년 9월 30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페이지에 박지성과 라이언 긱스에 관련된 흥분되는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이니 채널을 고정해 달라는 메세지가 올라왔다. 이에 팬들은 박지성이 엠버서더로 임명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맨유 앰배서더란 전 세계를 돌며 맨유를 홍보하는 사람으로, 구단이 공식으로 인정하는 레전드 선수를 의미한다. 그간의 맨유 앰배서더에는 보비 찰튼을 비롯해 니스 로, 라이언 롭슨, 디 콜, 알렉스 퍼거슨, 개리 네빌, 피터 슈마이켈등이 있었다. 2014년 10월 9일 SBS 볼매거진 골 방송을 통해 그가 8번째 맨유 앰배서더라고 밝혔다. 맨유 앰배서더로 임명 될 경우, 비유럽 국가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맨유 앰버서더가 되는 것이다.

이는 맨유가 박지성을 레전드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앰배서더가 되기 위해서는 맨유 내에서 400경기 이상 출전하거나 100골 이상을 기록해야 자격이 주어진다는 정책에 따라서 박지성은 자격이 될 수 없지만, 아시아인으로서 맨유에서 맹활약하여 커다란 팀 공헌도에 기여한 것이 위촉의 이유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 나온 400경기-100골 기준은 잘못 해석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 기준에 대한 기사나 게시물에서 근거로 드는 것은 맨유 공식 웹사이트에 나와있는 레전드 항목#인데, 이것은 맨유 공홈 관리자가 웹사이트를 꾸밀 때 이 항목에 게시할 만한 대표적인 레전드를 추려낸 자의적 기준일 가능성이 높고, 레전드와 비(非)레전드를 나누는 공식적인 기준이 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레전드라는 것은 메이저리그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처럼 어떤 기준을 통해 선발되는 것이 아니라 인상적인 활약으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선수들에 대한 일반적인 경칭일 뿐[88]인데, '레전드 기준'이라는 게 있다는 섣부른 확대해석 때문에 박지성이 레전드냐 아니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확실한 것은 박지성이 맨유의 레전드이건 아니건 맨유 구단과 팬들이 박지성이 클럽에 남긴 지대한 공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0월 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박지성을 맨유의 엠배서더로 임명했음을 공식발표했다. 계약기간은 다년. 다년간 전세계에서 개최되는 맨유 공식행사에 참여하게 되며, 연봉 개념으로 활동비 1억 5천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로써 박지성은 맨유 역사상 8번째이자 비유럽권 및 아시아인 최초의 맨유 엠버서더가 되었다. 드디어 실업자신세 끝났다. 민지야 오빠 일자리 구했어~!![89]

엠배서더 위촉식은 프리미어리그 7라운드 에버턴 전에서 경기 시작 전에 홈팬들 앞에서 행해지며, 박지성의 스승이기도 한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이 직접 위촉한다고 한다.


9. 박빠

9.1. 언론

그가 맨유로 가면서 네이버 댓글란에 매뉴판들과 박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스포츠 기자가 유명 축구 선수와 인터뷰를 하면 괜히 인터뷰에 안 맞게 박지성에 대해 줄창 물어봐 대답하는 사람을 곤란하게 하고 그걸 보는 한국 사람들을 민망하게 만든다.

게다가 기자들의 단골 낚시 사용 소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박지성 맨유 달력에서 1월달 모델'이라는 기사를 들여다 보면 맨유 아시아 발매판 달력이라는걸 알 수 있으며 '박지성, 퍼거슨에게 맨유에서 꼭 필요한 선수로 정해져'라는 기사를 보면 십중팔구 나니, 긱스, 호날두, 박지성, 하그리브스 이런 식으로 묶어서 발언한 것이다...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행태를 보고 그러려니 하지만 박빠들은 이 제목에 환호한다. 박지성의 영향인지 스포츠 기자들도 맨유 위주로 기사를 쓰는 듯.[90]

하지만 인터뷰를 하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박지성은 기자들 사이에서 인터뷰하기. 거기다 "~때문에"라는 말을 정말 많이 사용한다. [91] 이 버릇을 CF에 그대로 가져가 쓰기까지 했다! OOO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부족한 화술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그의 부친 박성종씨가 대변인격으로 언론에 자주 노출된다.

결국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SBS에서는 박지성을 방송위원으로 초빙하여 박지성의 때문에라는 코너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굳이 빠는 아니라도 한국을 대표한다고 여기는지 스포츠 기자들이 오버할 때도 있다. 유로 2008 당시, 현지 취재를 하던 월간 베스트 일레븐 기사에 의하면 당시 현지에서 만난 은퇴하여 이젠 유럽 구단에서 스카우터라든지 지도자같이 관계자로 일하는 유럽 축구 스타들과 인터뷰할 때 하던 소리가 "당신도 박지성에 대하여 묻는거라면 대답 안 하겠다. 내가 무슨 프리미어리그와 맨유 경기만 보는 게 아니다."였는데...~~다짜고짜 이런 말을 한 게, 한국인 기자라면 죄다 박지성 아느냐? 경기를 봤느냐? 그를 어찌 생각하느냐? 너무 지겹게 물어봐서였다고 한다... ~~

9.2. 축구관련 커뮤니티의 박빠들

축구관련 커뮤니티에서 "박빠"란 박지성에 대한 지나친 사랑으로 객관성을 상실한 무개념 부류를 일컫는 말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박지성이 입단한 이후 그 수가 급격히 늘었다. 그들의 특징이라면 PSV 아인트호벤에 있을 무렵 박지성이 팀 최고의 에이스였다고 주장하며[92], 박지성에 대한 행동 하나하나에 매우 큰 관심을 갖는다. 아무런 통계도 없이 그냥 자신들이 보기에 박지성에게 패스 안하는 선수들을 찍어놓고 신나게 까며, 그렇게 까다가도 박지성하고 골을 합작하고 끌어안기라도 하면 급반전돼서 추앙받는다.(폴 스콜스)

박지성의 포지션 경쟁자들을 부모의 원수 보듯 미워하며 05/06 때는 호날두와 긱스, 리차드슨, 플레처를 깠으나 긱스가 회춘하고 호날두가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성장하자 그들은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
리차드슨의 이적과 플레처가 중앙 미들로 거의 굳어지면서 그들에 대한 까임도 거의 사라졌지만 나니의 경우는 여전히 까이고 있다. 나니도 10/11시즌 들어 EPL 최고의 윙어로 성장하자 그에 대한 까임도 많이 줄어들었다.

알렉스 퍼거슨 경에 대한 극단적인 태도 또한 특징. 그를 출전시키면 유럽 최고의 명감독이 되고, 그를 출전시키지 않으면 노망난 영감, 인종차별주의자가 된다. 07/08 챔스 결승전에 박지성이 결장한 것은 퍼거슨 감독도 스스로 힘든 결정이었다고 했으며, 그가 밝힌 결장의 이유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었지만 박빠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제한맨|박지성이 나오면 맨유 응원, 박지성이 나오지 않으면 그의 중요함을 알게 하기 위해 맨유 상대편을 응원하는 태도와 그와의 관계에 따라 선수들과 감독을 심하게 까는 행위 때문에 기존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무척 싫어한다.]

10. 트리비아

  • 의외로 야빠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학창시절에는 오히려 구선수가 되고싶어했다고 박지성의 아버지가 직접 언급하기도 했으며, '축구선수가 안 되었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요?'라는 질문에 회사원이나 야구선수가 되어 있었을 듯이라고 말했다. 축구 하기 전엔 야구를 자주 즐겼지만 야구 클럽 가입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후, 축구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마이클 조던

  • 2014년 결혼 이후 축구 행정가 공부를 위해 영국유학을 떠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맞아 SBS에 방송위원으로 참여한다.

  • 수원공고 시절 막 창단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볼보이를 하면서 "난 언제 저기서 뛰어보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 생각은 지금에 와선 아무래도 상관없는게 되어버렸다...

  • 나이키에서 출시한 박지성의 축구화인 JS PARK TIEMPO LEGEND의 프로모션을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데 만들긴 잘 만들었지만 보기 민망하다는 견해가 많다.

  • 쉬는 날에는 위닝일레븐을 즐겨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처음엔 맨유 동료들에게 영미 버전 위닝인 프로 에볼루션 사커로 붙어서 관광 당했으나 위닝으로 갈아타자마자 역으로 팀 동료들을 관광시켰다. 이적 초기에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뤼트 판 니스텔로이(반니)와 에드윈 판 데르 사르,루이 사하와 친했으나 반니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버리자 할 일 없는 박까들이 박지성 왕따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가장 친한 친구는 파트리스 에브라카를로스 테베즈로 서로가 인터뷰에서 밝혔으며 셋이 같이 찍은 사진이 많다. 박까들은 백인들이랑 못 친해지고 유색인종들끼리 논다고 까고 있다.천하의 개쌍놈들 백인이랑 친하면 인종차별이라 깔거면서? 사실 박지성이 뭔 짓을해도 욕한다 카더라

  • 2002년 월드컵 4강으로 군면제를 받은 뒤 맹호부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 가운데 사격에서 만점을 기록, '사격왕' 메달을 수여 받기도 했다. 주간·야간·영점 사격 등 세 분야로 실시된 사격훈련에서 150명의 훈련병 中, 그는 주간과 야간에서 만점을 받았으며 특히 과녁조준에 대한 정교함 및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영점사격에서는 다른 두명의 만점 훈련병들을 제치고 당당히 사격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 한국 언론에는 그다지 소개되지 않지만 친한 일본 선수들이 꽤 있다. 비시즌 중에 곧잘 일본으로 놀러가는 모양. 박지성이 휴식차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 절친으로 알려져있는 일본축구의 전설 미우라 카즈요시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박지성을 보러 한국에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박지성한테 만나러가도 되는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더니 '응? 지금 다들 모여있는거야? 기다려, 내가 당장 갈게!'라는 말을 남기곤, 다음날 아침 나리타 공항에서 선물을 한웅큼 끌어안고는 '나 여깄어~'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다들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는 사람이 그리도 반갑게 찾아오는걸 보고서 굉장히 감동했다고. 그 이외에도 교토 시절 같이 뛰었던 마츠이 다이스케와는 그의 부인과도 친할 정도로 절친한 관계.[93][94] 그 탓인지 2ch의 혐한들도 박지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편. 그대신 친일파니, 일본이 키웠다느니 등등의 드립을 치긴 하지만 지금이야 박지성이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온 상황이라 그렇게 많이 언급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디스의 강도는 이청용과 더불어 타 한국 축구 선수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 Dcinside 해외축구 갤러리에서는 박지성의 일거수일투족을 별명으로 만들어 부르기도 한다. 별명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 들어가는게 포인트. 수비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 수비성, 넘어졌다 → 자빠지성, 패스했다 → 패스성, 반칙했다 → 반칙성, 선발 엔트리에 없다 → 벤치성, 후보 명단에도 없다 → 없성, 부상으로 쓰러져있다 → 아팠성, 골을 넣었지만 주워서 넣었다 → 줍지성. 양복을 입은 채로 결승을 관람했다(07/08챔스) → 양복성, 포지션에 따라 → 우지성, 중앙성, 좌지성 등이 있다. 09/10 시즌에는 맨날 벤치신세라고 '의자왕'이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10/11 시즌에는 맨유 입단 때부터 칼링컵에 출전하면 날아다니는 그에게 박칼링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11/12시즌에는 결장이 잦아 쩌리팍으로 불리기도 했다.

  • 한때 MBC ESPN의 초강력한 밥줄...이었으나 프리미어리그 중계가 2009년부터 SBS 스포츠로 넘어가게 되어 이후에는 한동안 SBS ESPN의 초강력 밥줄(…)이었다. 물론 이청용의 해외진출로 인해 이청용의 경기도 중계해주지만 같은 날 동시에 경기할 경우 맨유의 경기를 먼저 틀어주는 등 아직까지는 박지성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그래도 아직은 박지성이죠

  • 훈련중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버로우 태워버린 장본인이다...호날두의 관련 에피소드 항목을 보라.

귀찮은분들을 위해서

  • K리그 팀들의 안목을 깔 때 예시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박지성을 영입한 교토 때문에 J리그보다 안목이 없다며 대차게 까이기도.[95]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지만 탈락했으며 당시 수원의 스카우터이던 정규풍 씨는[96] 당시 박지성의 피지컬이 타 선수들에 비해 약해서 크게 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서 영입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를 두고 유망주를 알아보지 못한다며 K리그를 비난하는 하기에는 K리그는 압박이 심하고 거칠며 체력 소모가 상당히 심한 리그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이런 리그에서는 당연히 피지컬을 우선적으로 중시할 수 밖에 없다. 당시 박지성의 피지컬이 같은 세대의 한국 선수들에 비해 밀렸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아래 서술되어있듯 대학을 마친 다른 신인들과 달리 박지성은 고졸 상태에서 프로 데뷔를 노렸던 이유도 있다. K리그에서 선택받지 못한 박지성에서 J리그에서 오퍼가 들어왔던 것도 피지컬보다는 테크닉을 중시하는 J리그의 스타일이 반영된 결과이다. 아무래도 수원공고에서 당시 J리그에서 막 은퇴한 이종학 감독에 의해 성장되었으니, 그러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그럼에도 여전히 '해축빠'들은 이를 들어 K리그 못났다고 까기 바쁘단다

    게다가 이 때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고종수, 서정원, 데니스, 샤샤, 박건하, 김진우 등이 포진하여 슈퍼컵, 대한화재컵, 아디다스컵에 이어 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던 K리그 역대 최강급 스쿼드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당시 박지성의 입지로는 발붙일래야 발붙일 수가 없었다.#

  • 사실 K리그에서 박지성을 아예 안 뽑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당시 수많은 선수들이 그랬듯, 대학을 거쳐 오는게 관례였고 박지성은 그런 대세를 뚫고 혁신적인 시도를 했던 것, 하지만 아시다시피 결과는 실패였다. 사실 명지대 입학 우여곡절도 대학 진학을 알아봐야 할 시기에 프로팀 입단테스트를 보느라 대학들이 이미 선수들을 다 선발한 뒤였기 때문에 그랬을수도... 당시 고교 졸업후 진학하는 경우는 고종수, 이동국과 같이 고교레벨 탑선수들이나 가능했었고 박지성은 그당시 그렇게 고교레벨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도 아니였고 모교였던 수원공고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거둔 적도 없었기 때문에 영입할 이유가 없었다고 보는게 맞다. 고교레벨 탑선수를 영입해도 프로에 와서 실패하는 선수들이 많은데[97] 고교레벨에서도 탑레벨이 아닌 선수를 영입할 프로팀이 어디있을까? 또한 대학 진학때도 명지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축구계에서 그리 잘하는 팀이 아닐뿐더러 그런 학교에 축구부도 아닌 테니스부 T.O를 얻어 겨우 입학한 것만 봐도 그당시 박지성의 입지나 실력이 어땠는지 짐작케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K리그가 선수 보는 안목이 없어서 J리그에 박지성을 내줬다는 얘기도 오류가 있는 것이, 당시 박지성의 프로 데뷔 연봉이 무려 5천만엔(한화 5억)이다. 올대에서 활약을 보이니 교토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한 듯 보이며 당시 J리그에서도 꽤나 높은 연봉이었을 것이다. 2004년 J리그 연봉 통계 자료 김정우가 2012년 전북과 맺었던 15억의 연봉 계약이 리그 역대 최고액이였고, 전설적인 외인 공격수로 평가되는 데얀이 FC 서울에게 받았던 연봉도 10억이 약간 되지 않았다. 이들도 리그 최고의 기량에 리그 최고의 부자팀에서 뛰었으니까 이 정도다. 그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 K리그에서도 5억이면 시민 구단은 줄 수도 없고 기업 구단이라도 핵심 멤버들이나 받는 금액이다. 당시 신인들한테 줄수 있는 최고 연봉이 5천만원이었던걸 감안하면 머니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올대 이후엔 영입을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이다.

  • 일부에서는 K리그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못했으므로 K리그가 박지성을 버린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데 박지성은 드래프트 신청 자체를 안했다. 수원 입단이 좌절되자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다른 구단에 가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뒤늦게 대학 진학을 택한 것이다.

  • QPR 이후엔 K리그 구단들도 적극적으로 오퍼를 보냈고 박지성 본인도 은퇴 직전까지 K리그 이적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은퇴를 미루기에는 무릎 상태가 너무 악화되어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

  • 종교는 불교이며, 부모가 수원 용주사를 자주 다녔고 할아버지의 49재도 용주사에서 지냈기 때문에 용주사에 개인적으로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한다. 2005년에는 조계종 불자대상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이영표가 박지성을 개신교로 개종시킨다는 말을 토트넘 핫스퍼 시절에 인터뷰로 말했던 적도 있다. 축구선수가 아니라 선교사[98]

  • 2012년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의 이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이 울적하게 되었다. 퀸즈 파크의 져지에 찍혀있는 기업이 바로 구단주 중 한 사람인 토니 페르난데스 소유인 에어 아시아인데, 박지성을 홍보대사로 2013년 4월까지 계약한 아시아나 측은 경쟁사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 사진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겉으론 국위선양에 이바지했으므로 계약기한까지 박지성을 모델로 쓰겠다는 방침을 보여줬다.

  •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적 당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기회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편지 내용에 따르면, 평소 박지성의 팬이었던 퍼거슨 감독의 손자가 박지성의 이적이 확정되자, 퍼거슨 감독에게 한동안 말도 안걸었다고.(...)

  • 동명이인으로 축구계에 몸담고 있는 1984년 박지성도 있다. 중학교 졸업 후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났을 정도로 열의에 찬 인물이었지만 박지성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온갖 불운을 다 겪어야 했고[99] 심지어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떨어지며 프로 무대조차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채 아마추어와 실업 무대를 전전하다 은퇴한 비운의 인물. 지도자로 선회한 이후에도 불운은 끊이지 않아 지방의 한 축구교실로부터 봉급을 떼먹히는 등 온갖 수난을 겪다가 서울 둔촌중학교 축구부 코치로 가까스로 자리잡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칼럼을 참고하자. '동명이인' 박지성으로 한국 축구계에서 산다는 것

10.1. 응원가


PSV 아인트호벤 시절 박지성의 찬트인 Song for Park. 일명 '위숭빠레(위숭빠르크)' 가사 내용은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에서 온 오른쪽 미드필더 골 머신, 위! 숭! 빠레~" 박지성이 PSV 아인트호벤으로 돌아옴에 따라 다시 들을 수 있게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박지성 찬트인 'Park, Park, Wherever You May Be'. 대략 '한국에선 개고기를 먹지만 그게 뭐 대수냐, 리버풀 임대 주택가에선 쥐고기를 먹는데'라는 내용이다.지역드립인종차별을 한큐에 못살기로 유명한 리버풀을 까는 내용이라지만 한국 사람이 들으면 기분이 좋지는 않다. 참고로 볼튼 원더러스에 입단한 이청용의 응원가도 개고기송.

2010년 들어서는 그의 두번째 응원가가 인기를 끌었다. 가사 내용도 그를 응원하기 보다 리버풀을 공격하는 내용이었던 개고기송과 달리, "지성을 팔지 말라, 그를 팔면 우리가 폭동을 일으킬거다"라는 선수를 응원하는 내용에 멜로디도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거라 국내에서 반응이 좋다.

가사를 적자면:
"Don't sell my Park, my Ji-Sung Park, I just don't think you understand
But if you sell my Park, my Ji-Sung Park, you're going to have a riot on your hands"

이후 무한반복. 매우 간단하고 강렬하다.


10.2. 예능 출연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지성의 활약상을 담은 항목으로 해당 프로그램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다. 2015년 까지는 런닝맨에만 세번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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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2012년 런닝맨

2012년 5월 20일~6월 4일까지 태국에서 열리는 시안 드림컵 홍보를 위해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처음에는 런닝맨 멤버들에게 미션만 나눠주는 정도로 출연하는가 싶더니 런닝맨 멤버들을 JS파운데이션 운동장으로 불러내고 직접 출연해 멤버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추가 게스트인 아이유까지 들어와 '초능력 축구'및 기타 미션을 2일간 진행하였다.

초능력 축구에서부터 생각보다 괜찮은 예능감을 보이기도 했는데, 기린이 능력을 써서 시간을 멈춘 사이그리고 호랑이를 잡는 동안 골대 앞까지 공을 끌고가서 누워서 골을 넣는 능욕을 선보였다. 물론 선수 숫자 2:7의 패널티를 씹어먹는 축구 실력으로도 멤버들을 농락했다.

다음날 진행된 이름표 뜯기에선 스파이가 되어 미션 중에 얻은 태국 화폐로 런닝맨 멤버 1명을 파트너로 고용할 수 있었고, 유재석을 고용해 쏠쏠하게 써먹었다. 맴버들 스스로 내분을 일으켜 아웃시키고, 유재석을 활용해 이광수를 아웃시키고, 유재석을 끝까지 믿은 김종국도 유재석에 의해 아웃. 마지막에 남은 아이유는 유재석과 둘이서 연극을 해서 방심시킨 후 아웃시켜서 최종 승리했다. 그리고 우승자 특권으로 런닝맨 멤버 전원을 태국으로 초청했다.

태국에 도착한 후 스케쥴 사정으로 귀국하게 된 유재석을 대신해 자기가 메인이 되겠다는 다른 멤버들을 싹 정리해버리고1일 MC로 활약하기도 했다.(!!!) 멤버들과 제작진이 많이 도와 준 점을 감안하더라도 꽤 깔끔한 진행. 포스트 강호동 뱀발로 방송 중 팔뚝에 검은 줄무늬가 찍혀 혹시 '팔에 문신을 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때문에 찌라시와 네티즌들이 이 떡밥으로 물고 늘어졌지만, 다음 방송에서 그 정체가 밝혀졌다. 싱겁게도 그냥 싸인하다 매직이 팔뚝에 묻은 거였다.(...) 찌라시네티즌들 설레발 치더니 이게 뭐야 아니 근데 문신 하면 안되나? 하건말건 지들이 뭔 상관 우정 출연으로 리오 퍼디난드정대세가 출연하였고, 아시안 드림컵 경기중엔 골 찬스를 놓친 크리스티아누 호랑이를 혼내는 등 적절한 예능감을 보여줬다.

10.2.2. 2013년 런닝맨

2013년 6월 30일~7월 14일 1년만에 다시 런닝맨에 출연하여 여전히 살아있는 입담을 과시했다. 특히 촬영 전날에 김민지 SBS 아나운서와의 열애설이 터졌던터라 그쪽으로 관심이 많이 쏠렸고, 본인도 "SBS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등 능글맞게 대처했다. 하지만 그 직후 상대편 주장으로 출연한 구자철에게 관심이 쏠리자 씁쓸하게 바라보고, 옆에서 구자철 보겠다고 카메라 가리는 국민MC에게 핀잔을 주는 등 방송분량은 적절하게 뽑아내고 있다.그리고 같이 출연한 설리는 작년 아이유 포지션인 것 같지만 그냥 병풍이 되었다.(하지만 오프닝 복장은...) 이번에도 상하이에서 열린 시안 드림컵 홍보일환으로 참가였고, 런닝맨 멤버들도 런닝맨 방송에서 진행되는 게임을 통해 4명까지 선발되어 경기에 참여하게 된다.

7월 7일 방영분 첫 게임인 족구에선 축구선수 클래스를 발휘해 미스 없이 공수 전반에서 활약. 다른 남자 멤버인 유재석, 하하, 개리가 후반까지는 무난하게 활약해주었으나 막판에 실수가 겹치면서 아쉽게 패배. 두번째는 식당에서 알람토크[100]를 진행하면서 열애설과 국가대표팀 복귀 등등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물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능글맞게 넘어갔다. 마지막 이름표 뜯기 레이스에선 공을 차서 패널에 달린 이름표를 달아야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는데, 상대편의 이광수, 구자철, 김종국에게 큰 이름표를 선사해 게임을 나름 유리하게 가져갔다. 본인은 다른 멤버들 이름표 다 달아주고 마지막에 입장했고, 구자철과 막판에 서로 이름표를 뜯기 위한 수컷의 몸싸움을 보여주었다. 결국 송지효가 아웃되면서 박지성팀이 우승하고 상하이로 넘어가게 된다.

7월 14일에는 우정 출연으로 박지성의 절친인 파트리스 에브라가 출연했다. 등장하면서 에브라가 "노 바보입니다"라고 했는데, 예전에 박지성이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에브라에게 한국말로 장난친게 있었다고 한다.[101] 에브라의 예능감도 대단해서 박지성과 미션으로 치열하게 방송분량을 뽑는 등 꽤 활약해주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안 드림컵에서는 선수 겸 감독으로 경기를 지휘했고, 특히 경기 중에 프리킥 실수를 한 이광수에게 킥을 날리는 등 방송에 쓸만한 장면을 여럿 만들기도 했다.

10.2.3. 2014년 런닝맨

작년 제작년에도 온 형이 또옴 이쯤되면 런닝맨의 연례행사 라 할 수 있겠다. 2014년 6월 8일부터 6월 15일까지 출연했으며 역시 런닝맨의 인도네시아 에서 있을 아시안 드림컵 참여와 홍보를 위해 나왔다. 하지만 김종국의 방향잃은 헛다리, 이광수는 키만 컸지 헤딩은 불가능하고 유재석은 페널티킥을 실축 하는 등 런닝맨 멤버들이 지난 두 경기에서 보여준 깽판 모습에 결국 몇가지 수련[102]의 과정을 겪게된다. 사실 방송분량 만드는거잖아 더군다나 방송에 나왔을 쯤 에는 프로 은퇴를 선언 한 후 라서 뭐 런닝맨 멤버들도 이미 두번이나 봤겠다 별로 신기해 하지도 않고 오히려 지석진은 박지성을 막 대한다.(.....) 어차피 방송이다.

6월 8일 방송분의 첫번째 수련은 목동 SBS 사옥 에 있었고 멤버들이 미션을 수행하고 다 끝낼 때 까지 혼자서 미션을 수행하는 거 였다. 이를테면 처음엔 멤버들이 다른 색깔의 옷을 겹치지 않게 빌려입는 동안 박지성은 제기차기 하는 거지만 박지성이 실패했고(...) 두번째는 멤버들이 초성 'ㅁㅈ'로 시작하는 물건을 갖고오는 동안 박지성은 줄넘기를 해야했지만 역시 박지성이 실패했다. 은퇴해서 그렇다 은퇴해서. 그리고 마지막엔 멤버들이 각각 다른 나이대 분들을 모셔와야 하는 거고 박지성은 그동안 축구공 리프팅을 해야 했는데 이건 성공한다. [103] 그리고 두번째 수련은 사옥 야외에서 박지성이 차 안에다 공을 차서 넣는건데 이것도 쉽게 성공, 그리고 세번째엔 논두렁에 가서 릴레이를 했다. 사실 이건 재미 없었다. 네번째엔 차범근이 나와서 런닝맨 멤버들에게 축구 기본기를 가르쳐 줬고 그리고 마지막엔 설기현이 감독하는 축구 좀 하는 아이돌[104] 들이 나와서 런닝맨 멤버들과 풋살을 했고 [105] 여기서 런닝맨이 5골을 먹으며 털렸지만 박지성이 나오니 한골을 어시스트 하고 두골을 혼자서 넣으며 아마추어와 프로의 갭 차이를 명확히 보여줬다.박선수가 너무 무섭지만 않게... 무서우면 피하겠죠 뭐ㅋㅋ

6월 15일 방송은 인도네시아에 간 것 부터 시작해서 바로 자선경기로 넘어갔다. 이 자선경기에는 이탈리아 국가대표 주전 풀백 이었던 잠브로타와 현재 AC밀란에서 뛰고있는 스테판 엘 샤라위[106]가 나왔고 이광수선발로 뛰었다. 박지성을 포함한 런닝맨 멤버들에게는 경기를 뛰면서 할 만한 미션이 주어졌고 박지성 에겐 해트트릭 [107], 유재석, 개리, 김종국, 하하, 이광수는 지난 두 경기에서 뛰어 본 경험이 있기에 공격포인트 1점을 기록하고 그리고 첫 출전하는 지석진송지효는 볼터치 다섯번을 해야했다. 미션을 실패하는 사람들은 벌칙을 받아야 했다.


이광수는 선발로 뛰었지만 공이 가질 않았고 뛰긴 했는데 아무도 모를 정도의 활약만 펼치고 벤치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후 지석진이 교체로 뛰게됬는데 근데 지석진과 교체한 선수가


캡틴 지(Ji) 로 경기에 나섰고 솔직히 볼터치 5번 쉬울 줄 알았지만 딱 한번 했고 그것도 실점 후 중앙에서 시작 할 때. 만지자 마자 전반이 끝났다.

후반에는 박지성, 유재석, 김종국, 개리, 하하 그리고 차범근 까지 다 출전했고 전 해, 전전 해 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다.[108] 그렇지만 미션 자체는 모두 다 실패했고 결국 전부 다 벌칙을 받게됬다.

벌칙은 다음날에 사파리 파크에 가서 미션을 수행하는 것 이었고 전날 축구와는 다르게 전부 다 성공한 모습을 보여줬고 더군다나 그 회는 런닝맨 200번째 에피소드 였고 쉽게 모시기 어려운 게스트와 같이 했다는 점 에서 의미가 있었다.

2015년에도 설마 나올 까 하지만 아직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곧 수원에서 열릴 JS컵 응원 메시지를 런닝맨 에서 보내왔다.
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514

만약 박지성이 올해에도 나온다면 수정바람추가바람.

10.3. 떡밥

  • 가장 큰 떡밥은 역시 차범근이 낫냐 박지성이 낫냐 차범근 vs 박지성. 그 외에도 과연 누가 박지성의 부인이 될 것인가는 전국민의 관심사였다. 아니면 축구계의 양준혁이 되는거다. 근데 양신은 여자친구가 없잖아. 아마 안 될거야.

  • 런닝맨에 같이 출연했던 아이유와 친해졌는지 아이유의 전국투어 콘서트에 갔다. 콘서트중에 박지성 선수 왔다고 소개를 받았다. 장내는 남성들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다. 지성이 횽!!!!! 군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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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조국에게 능욕 당했다.#

  • 인터뷰 중 인터뷰어의 낚시질에 낚였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오아시스의 주축 갤러거 형제는 맨체스터 출신으로 악질 맨체스터 시티 훌리건들이다... 물론 맨유를 아주 혐오한다. 박지성에 대해 아냐고 질문받았을 때 자기들은 맨시티 팬이라 그런 선수 모른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웨인 루니와의 기타 일화도 유명하다. 더 자세한 사항은 오아시스(밴드) 항목 참조.

  • 팀 내에서 유독 왼쪽 풀백들과 친하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다. PSV 시절에는 이영표, 맨유 시절에는 파트리스 에브라와 친했으며 QPR 이적 후에는 파비우가 항상 박지성을 따라다니는 중. 이중 에브라는 박지성과 같은 라인이면 풀백들이 편하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10.3.1. 결혼 떡밥

  • 2011년 시점에서 30세, 즉 혼기에 들어선 나이이기 때문에 결혼설이 빈번한게 나온다. 여러 결혼설이 있으나 대부분 근거도 없는 풍문. 이젠 뭐 거의 스캔들메이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2008년 솔비와의 결혼설 : 전혀 사실 무근으로 솔비는 박지성과 만난 적도 없다고.

    • 2010년 일본의 배구선수 기무라 사오리와 열애설 : 이 보도의 근원지는 베트남의 스포츠 신문 인터넷판으로 박지성 선수의 아버지인 성종씨가 직접 라디오에서 근거 없는 소식임을 밝혔다. 박지성 본인도 "나보다 키가 큰 여자는 싫다."로 일축했다.

    • 그리고 송윤아 믿으면 심히 골룸하다


    • 2011년 허정무 감독의 둘째 딸 허은과의 결혼설 : 2년 전부터 교제해왔으며 결혼이 임박해왔다고 기사가 떴다. 박지성 측은 사실무근이라 부인하며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고 있다.

  • 박지성의 여자친구 문제는 영국 현지 언론에서도 떡밥거리였는지 해당 업계에서는 유명하다는 파파라치가 한달여 동안 몰래 따라다니며 취재를 했지만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했다. 축구를 왜 잘 하나 했더니 마법사라서 그런 거였구나.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성추문에 연루된 선수들이 나오면서 이런 곳에서 사고 한번 안 친 박지성을 찬양했다.

  • 2012년 1월 11일 스포츠 서울에서 재일동포 사업가 오지선씨와 열애사실을 특종으로 냈다.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는데, 기사내용도 틀린 부분이 많으며, 아버지 박성종씨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 본인도 심드렁한 반응을 나타내며 흐지부지해졌다.

  • 2012년 7월 14일, 배우 배두나와 스캔들이 터졌다. 한 네티즌이 '박지성과 배두나가 런던에서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가더라!'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이것이 퍼져 각종 매체에서 뉴스화까지 된 것. 배두나의 소속사는 처음엔 "두 사람은 아예 친분이 없다." "영국에서 만난 것은 친한 사진작가."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니, 하루가 지나자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사실이나 친구 사이일 뿐이다."라고 말을 바꿨다. 이젠 명실상부한 스캔들 메이커 박지성…….

  • 그런데 사실 과거에 여자친구가 있긴 있었던 듯. 위의 열애설 중 하나 이상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어쨌든 파파라치에게 잡히지 않을 정도로 연애를 잘 숨겨서 했다는 이야기.

  • 2013년 6월 19일 SBS 김민지 아나운서와 열애설이 터졌다!!# 결국 김민지는 사귀는게 맞다고 시인했다. 2013년 6월 20일에 박지성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민지와의 열애를 시인했지만 일각에서 제기한 7월 결혼설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은퇴전까진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

  • 가끔 박지성을 유령이라 부이 열애설이 터지기 직전 배우 김사랑과 열애설이 터졌는데, 유포자에 대한 법적대응으로 갈뻔하다가 이 열애설이 나오면서 그냥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 그리고 2013년 11월 12일, 드디어 결혼 기사가 떴다!! 게다가 이미 상견례에서 결혼을 확정지었다고 한다!!!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는 구체적인 날짜는 미정이며, 13-14시즌이 끝나면 결혼한다고 하였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soccer/1269086.htm 그리고 SBS 연예대상에서 김민지 아나운서가 시상소감을 말하는 중 프로포즈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이 와중에 판넬로 출연하셨다

  •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돌렸는데, 이 청첩장이 호평을 받고있다. 심지어는 영국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11. 세간의 평가

  • 그는 마치 전기(Electricity)와 같이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끊임없이 달리며 경기장을 누빈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박지성은 어느 경기에 나가든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수이다. 에너지가 넘치고 현명한 플레이를 한다. 또 어떤 상황에도 눈에 띄는 플레이를 한다. 박지성이 상대 수비수들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서서 막아야 하는지, 태클을 해야하는지를 몰라 당황해한다. - 웨인 루니
  • 가끔 그를 유령이라고 부른다. 박지성의 움직임의 변화는 정말 놀랍다. - 파트리스 에브라
    박지성은 신입니다. 그는 대통령보다 위대해요. 한국에서 온 소포만 해도 엄청나고 심지어 박지성 이름으로 된 4차선 도로도 있어요. 다시 태어나면 박지성이 되고 싶어요.[109]
  • PSV전에서는 등번호 7번의 한국인, Park ji sung이 신경쓰였다. 쭉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모기와 같은 인상이었다. 여기서 쫓아버려도, 그는 다른 곳에 나타난다. 언제나 달리고 있고, 돌파력도 있으며 항상 위험한 존재다. 어디서 그런 체력을 손에 넣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정말로 좋은 선수인 것 같고, 이탈리아 어느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헌신>이라고 하는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얼마 안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와 타입이 비슷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헌신'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는 선수이다. - 젠나로 가투소
  • 박지성은 좋은 윙 플레이어의 조건을 모두 갖춘 선수다. 움직임이 매우 좋고 다른 선수들을 독려한다. 부상으로 박이 빠졌기에 내 출전시간도 늘었다. - 라이언 긱스
  • 박지성 같은 선수가 있기에 루니, 호날두와 같은 공격수들이 신경쓰지 않고 골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박지성이 맨유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 카를로스 테베즈
  • 솔직히 놀라울것도 없지 않은가. 그같은 환상적인 플레이어가 맨체스터 같은 명문으로 가는것은 정해진 수순일지도 모른다. 퍼거슨은 그에게 감사하라. 박지성이 PSV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이제야 느낀다. 그의 공백이 너무 크다. - 필립 코쿠
  • 나의 베스트 11을 뽑는다면 왼쪽 날개는 박지성이다. - 마르크 반 봄멜
  • 그는 첼시에서 뛰고 있는 로벤보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이다. 만약 2차전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 주인공은 박지성이 될것이다. - 요한 크루이프
  • 마이클 오웬을 영입했다면 좋은 옵션이 되었겠지만, 그보다 난 박지성을 원했다. 100% 확실한 선수다. 헌신적이며 훌륭한 축구 선수다. 경기장 위에서 지능이 좋다. 그것이 내가 그를 존중하고 기용하는 이유다. 그는 결코 우리에게 패배를 안겨주지 않는다. - 알렉스 퍼거슨
  • 박지성의 가세로 우리는 더욱 거센 공격을 받을 것이고,그는 잉글랜드 축구에 엄청난 충격을 줄것이다. - 주제 무리뉴
  • 박지성을 처음부터 막았더라면 경기를 더 쉽게 풀 수 있었을 것이다. - 게리 케이힐
  • 동료 선수들 중에서 박지성의 실력을 저평가하는 선수들은 한명도 없다. 훈련 중에 박지성은 악몽 그 자체다. - 개리 네빌
  • 박지성은 절대적으로 위협적인 존재다. - 이 사하
  • 그는 언제나 '충직한 하인(servant)'처럼 자신을 버리고 동료를 위해 뛰어 맨유 전성기의 일부가 됐다. - 리오 퍼디난드
  • 그가 말이 없어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지만 그는 무서운 선수다. 마치 아스날의 전설적인 윙어 융베리와 비슷하다. - 아르센 벵거[110] (가장 저평가된 선수 중 한 명이라 이야기하며)
  • 더 이상의 표현은 없다. 박지성은 내가 발굴한 최고의 선수다. - 거스 히딩크
  • 그는 일레트론의 속도로 경기장을 뛰어다녔고 아마 한국 역사상 첫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한국인이였을 것이다. - 안드레아 피를로
  • 박지성과 다른 선수들이 있기에 한국 축구는 앞으로 더 발전할 것입니다. - 티에리 앙리
  • 박지성은 루니에 버금가는 강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 - 루드 반 니스텔루이
  • 박지성은 이제 유럽의 축구 선수라면 모두가 아는 하이레벨의 선수이다. - 사무엘 에투
  • 아시아에 저런 괴물이 존재했었나...솔직히 지금 상태의 PARK 때문에 카카, 피를로, 가투소, 세브첸코 등의 빅스타들이 대망신을 당하게 생겼다. - 니 맥셔드
  • 박지성은 에너지가 충만하고 이기적이지 않고 팀을 위해 봉사한다. 그는 위험을 감지하고 불을 끄는 소방관처럼 작전을 수행한다. 양쪽 측면을 오가면서 풀백들의 수비를 지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방으로 돌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 그의 저돌적인 돌파로 상대의 기를 꺾는다. - 휴스
  • 박지성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선수이고, 그의 움직임은 상대 팀을 곤란하게 했다. 팀에게 정말 가치있는 선수이다. - 디 크레란드
  • 박지성은 진정한 하드워커다. 경기장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공격부터 수비까지 팀에 보탬이 되기 위해 정말 부지런히 뛰는 선수이며 맨유에서 꾸준히 성장해나가고 있다. - 마누엘 프티
  • 박지성이 라이언 긱스를 부동의 왼쪽 자리에서 중앙으로 내몰 줄 누가 알았겠느냐. 박지성은 좌우 어느 쪽이던 뛸 수 있을 뿐더러 상대를 끊임없이 흔들다보니 항상 위협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솔저같다. - 루드 굴리트
  •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스태미너로 달리는 박지성은 골까지 터뜨릴 뻔 했고, 나니가 넣었어야 할 결정적인 찬스도 제공했다. - 체스터 이브닝
  • 맨유가 아시아 시장을 위해 그를 영입했다고 말한다면, 그건 박지성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 FourFourTwo
  • 맨체스터는 몇 안되는 진정한 아시아의 슈퍼스타를 영입했다. - THE TIMES
  • 로마에는 또 다른 데로시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유나이티드의 아시안이였던 팍이나 미카엘 발락처럼 팀에 에너지가되는 선수들이요. 그들은 하드워커이면서 매우 영리하기까지 하거든요. - '''렉산드로 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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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의 자서전인 ≪박지성 마이 스토리≫, ≪멈추지 않는 도전 박지성≫, ≪나를 버리다 - 더 큰 나를 위해≫에서 서울 출생이라고 기록하고있다. 전남 고흥군은 서울에서 태어난 이후 어린 시절 이주하였다.
  • [2] 디르크 카윗과 더불어 몇 없는 '수비형 윙어'라고 불려진다. 실제로도 박지성의 수비 능력은 대단해서 안드레아 피를로를 봉쇄한 적도 있다. 다만, 맨유 시절 이후에는 윙어로 뛴 경우가 거의 없다.
  • [3] 맨유 말기 시절부터 중앙 미드필더로 드물게 뛰다가 QPR 이적 이후 완벽하게 포지션 변경을 했다.
  • [4] 現 교토 상가 FC
  • [5] 소위 '위숭빠레'로 불리는 PSV 아인트호벤 시절의 응원가.
  • [6] 'Don't Sell My Park'이라는 첫 소절로 유명한 맨유 시절 응원가. 그 전에 쓰던 '개고기송'의 원곡을 아는 위키러가 있다면 추가바람.
  • [7] 차범근도 자신 이후 가장 성공한 선수로 박지성을 꼽았다.
  • [8] 박지성이 전성기를 보낸 2000년대 중후반의 맨유는 클럽의 역사에 기록 될 정도로 화려한 시기를 보냈던 때 이다. 더군다나 당시에 호날두루니 등 화려한 플레이의 공격수들이 많았었고. 사실 박지성은 PSV 아인트호벤 시절에도 보여줬고 특히 국가대표 에서는 2011 아시안컵에서 은퇴 할 때 까지 드리블, 테크닉, 플레이메이킹, 슈팅 에서 눈에 띄는 화려한 수준 이었다. 다만 전성기를 보냈을 때 동료들이 워낙 먼치킨이라 맡은 역할도 그렇고 그럭저럭 인 모습을 보여서 그렇지.
  • [선수시절과] 지금까지 경기 외적으로 어떠한 스캔들이나 논란이 없었다. 정석적인 인터뷰는 물론 심지어 삽질히면 무한 까임거리가 제공되는 국대에서마저도 비난할 것이 없는 그야말로 모범 중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 [10] 1호 박지성(2005, 맨유 이적), 2호 이영표(2005, 토트넘 이적), 3호 설기현(2006, 레딩 승격이적), 4호 이동국(2007, 미들스보로 이적), 5호 김두현(2009, WBA 승격), 6호 조원희(2009, 위건 이적), 7호 이청용(2009, 볼턴 이적), 8호 지동원(2011, 선더랜드 이적), 9호 박주영(2011, 아스날 이적), 10호 기성용(2012, 스완지 이적), 11호 김보경(2013, 카디프 승격). ps. 설기현이 디비젼1에 진출하며 영국 리그에서 먼저 뛰긴 했으나 승격은 레딩으로 이적하면서 하게 됨
  • [11] 굳이 동시대를 넣은 이유는 넘사벽의 그 분이 있기 때문. 박지성이 스트라이커가 아니기에 골로만 뒤지기는 하나 월드컵과 클럽을 통틀어 커리어로만 보면 솔직히 차범근에게도 뒤지지 않는 수준.
  • [12] 게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FM 시리즈에 등록되어있는 박지성의 히든 능력치를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특히 프로선수로서의 마인드과 자세를 반영하는 긍정적인 히든능력치는 죄다 16~19를 상회, 멘탈의 화신으로 불린다. 이러한 히든 능력치 덕택에, 박지성은 FM 시리즈에서 테크닉이나 신체능력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능력치에 비해 활약이 엄청나다. 이 능력치는 뛰고 있는 리그의 현지인 리서처가 평가하는 능력치이기 때문에 더 가치있다.
  • [13] 다만 정신적인 능력치에 비해서 기술적인 능력치나 피지컬 적인 능력치는 낮은 편이다. 전체 어빌도 높지 않은 편이라 FM 시리즈를 하다보면 컴이 운영하는 맨유에서 방출되는 일도(...) 잦았다. 10/11시즌의 활약에 힘입어 기술적인 능력치의 상향을 바라는 한국 팬들이 많지만...최근 공개된 FM2012의 데모를 보면 그냥 그대로 가는듯 싶다.
  • [14] 어린 시절 일기를 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매 경기마다 스스로 반성할 점을 찾고 고민하는 일기를 적었을 정도였다.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스스로 한 거라면 이런 자기 관리, 자발적 노력의 측면에서 천재적이라고 할만하다. 노력도 아무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 [15] 이동국의 자서전에서 이동국은 박지성에 대해 말하길 천재라고했다. 이동국 본인은 그냥 박지성이 겸손하게 말한다고 생각하는듯. 사실 박지성이 같이 뛴 선수들이 유럽 축구에서도 내로라 하는 천재들이라 가려져서 그렇지 한국 축구사에서 따져본다면 천재 맞다. 다만 이미지가 노력파처럼 보여졌을 뿐이다. 노력만으로 과연 유렵 축구 최정상급 클럽인 맨유에서 7년을 지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다. 다 재능이 있고 천재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 [16] 2000년대 이후로 2014년 까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세 번 이상 진출했던 팀은 맨유AC밀란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정도다. 생각보다 많네? 하지만 그 선수들 다 전 세계의 많은 축구선수들 중 에서도 탑급 이니까. kia 주모!
  • [17] PSV 시절에도 초반에는 힘겨운 시기가 있었지만 적응한 후에는 거의 풀타임 출장했다. 체력관리 차원에서 결장시킬 정도.
  • [18] 특히 07-08 챔스 결승 결장은 한국 팬들 뿐만 아니라 박지성 본인에게도 트라우마가 되었을 법한 일이다.
  • [19] 2012년, 맨유 통산 200경기 출전을 돌파했다는 점을 봤을 때 물론 대단하다고 평가할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사람들의 착각이 있다. 언뜻봐도 선발명단에 빠진적이 많은 박지성이 그렇게 많이 출전했나 싶을 정도인데 실상 리그경기 자체는 총 134경기뿐이고 나머지는 챔스나 기타 컵대회를 모두 포함한 경기이다...물론 맨유에서 버티는 것만 해도 대단하고 100경기 이상 출전도 대단하지만 리그 경기만 순수히 봤을때는 사실상 박지성의 객관적 입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 [20] 컨디션 문제가 없음에도 매 경기 출장을 못시키다보니 돌고 도는게 맨유의 역사다. 반니가 경기 출장이 줄어 이적했고, 그 원인이 됐던 사아도 다음 시즌엔 마찬가지였다. 득점 2위를 하며 그 자리를 뺏았던 테베즈도 그 다음 시즌엔 베르바토프에게 자릴 뺏겼고, 베르바토프는 치차리토에게 빼았겼다. 치차리토는 그 다음 웰벡에게...웰벡은 반페르시에게 뺏겼다. 12-13시즌에 반페르시가 중심이 되자 붙박이에 가깝던 루니도 자기 자릴 뺏겼고 경기 출장이 현저하게 줄어버렸다. 이게 맨유다.
  • [21] 중앙을 지키는 캐릭을 빼면 박지성이 뛰는 동안 호날두 외에는 완전 붙박이라고 할만한 선수는 없었다. 긱스와 스콜스 노장들은 선발 돌릴 체력이 안됐고, 나니도 한 시즌 반짝하고 로테이션이 됐으며, 플레쳐는 붙박이할 만큼 물이 오를 때 부상이 시작됐다. 발렌시아는 윙과 풀백을 번갈아 다녔다.
  • [22] 영과 웰벡이 이적 초반 미친듯한 스탯 쌓기를 해대서 퍼거슨이 그들에게 선발 기회를 몰아줬던 게 모두에게 뼈아픈 점이다. 영이 중요한 시점에서는 아무 활약을 못하면서 맨유가 결국 우승도 놓쳤던 시즌이니.
  • [23] 과거에 몇번 뛰었지만 적당한 자리는 아니라고 평가받는다. 허정무의 눈에 들었던 국대와 명지대 간의 연습 경기에선 윙백으로 뛰었으며 아시안컵에서는 오른쪽 풀백인 박진섭의 서브로 출전했다지만 어디까지나 3-4-3 포지션에서 윙백으로 뛴 것.
  • [24] 박지성의 왕성한 활동량이나 적절한 공수밸런스, 예리한 숏패스 실력 등으로 볼 때 중앙이 매우 적합한 포지션으로 생각되나, 실제로는 국대를 제외하면 공격적인 측면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받았을 때 더욱 뛰어난 활약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지성에게 포지션에 따른 역할을 기대하면 실망하기 쉬우나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역할을 기대한다면 뛰어난 활약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25] 07-08 시즌 호날두-루니-박지성 삼각편대로 이어지는 맨유 역습은 엄청나게 빠르고 공격적이었다. 정말 덜덜거릴 정도.
  • [26] 이러한 스타일 때문에 강팀과의 시합에서 박지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약팀이라면 굳이 이렇게 흔들지 않아도 정면으로 뚫으면 그만이라서 약팀 상대로는 강팀과의 경기에서보다 좋은 모습을 보이기 힘들다. 나니 등 개인기가 출중한 선수가 리그 스탯이 항상 좋은 이유기도 하다.
  • [27] 07-08 시즌 이후 박지성을 칭하는 말 중 하나로 'Unsung Hero'가 나온다. 대충 소리없는 영웅이라는 의미.
  • [28] 당시 수석코치였던 퀘이로즈가 경기예상에서 나니와 안데르손이 교체투입자원으로 더 요긴하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퍼거슨이 결정을 내린 사항이긴 하지만, 나니와 안데르손이 첫시즌이었고 박지성이 4강에서 맹활약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엔트리에서 빠진 것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정말 애석한 결정이다.
  • [29] 특히나 박지성은 유독 아스날과 밀란에게 강한 성향을 보였다. 후에 벵거도 인터뷰를 통해 인정한 부분.
  • [30] 같은 포지션의 나니는 10/11시즌 9골, 긱스는 4골을 기록했다. 발렌시아는 1골을 기록했다.
  • [31] 실제로 프리미어리그의 다른 윙어들과 비교했을 때 경기 출전당 공격스탯은 결코 적은 수준은 아니었다. 상위권도 아니지만 하위권도 아닌 수준.
  • [32] 그리고 이 선수 도 윙어라서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다.(.....)
  • [33] 뭐 이천수도 있고 00년 아시안컵의 이동국도 있긴 하다.
  • [34] 다만 2000년대 중후반 맨유에 괴물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 안보였다.(.....)
  • [35] 기성용은 박지성이 주장이 됐던 2008년 부터 성인 대표팀 에서 뛰었지만 당시엔 박지성을 보좌하는 역 이었지 현재(2015년) 처럼 공격과 수비를 조율하며 주도적으로 이끄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 [36] 기성용의 조율능력과 플레이메이킹을 현재의 손흥민의 돌파와 골결정력에 합친게 국가대표팀의 박지성. 다만 손흥민은 아직 어리고 박지성 보다 더욱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에 박지성 보다 나은 스탯을 지닐거라 예상되고 기성용도 이제 곧 전성기가 올 때라 더욱 기대를 해 볼만 하다. 근데 박지성이 후계자 로 직접 점찍은 선수는 지금...
  • [37] 설기현을 지도했던 감독으로 알려진 스티븐 코펠도 맨유에서 7번을 달고 뛰었을 때 공격보다는 수비로 존재감을 발휘한 선수였다.
  • [38] 특히 호날두가 엄청난 공격력을 보인 06~08시즌까지 박지성이 중용되었는데, 호날두가 나간 밸런스를 맞춰줄 선수가 박지성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내 신문에서는 경쟁자라고 불리던 호날두가 이적한 뒤 오히려 박지성의 출장이 줄어들게 된다.
  • [39] 경기를 중계하던 크루이프가 엄청난 칭찬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 [40] 윙어가 아예 없는 전술을 상정해 본다면, 혹은 그 중간지점이나 약간 윙쪽으로 치우친 곳에 윙어를 두는 전술을 상정해 본다면 반드시 그러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 [41] 이것도 리베리가 바르셀로나를 상대할 때 상당히 수비적인 역할을 맡았던 것처럼 반드시 들어맞지는 않는다. 대개 들어맞긴 하지만.
  • [42] 사실 멘탈 좋지, 전술 이해도 좋지, 활동량 좋지, 멀티 플레이 가능하지, 게다가 홀로 빛나는 선수는 아니지만 주변 선수들을 모두 빛나게 만드는 버프 능력자다. 이쯤 되면 어떤 감독이라도 좋아할 수 밖에 없지...단, 저 홀로 빛나는 타입이 아닌 관계로 일반인들의 눈에는 딱히 잘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능력도 써먹을 수 있는 감독과 동료들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제다. 게임으로 표현하자면 능력이 굉장히 출중한 대신 그 능력이 아군이 존재해야만 진가를 발휘하는, 팀빨을 많이 타는 캐릭터라고 보면 된다.
  • [43] 그럴만도 한게 당시 QPR의 조직력은 말 그대로 모래알 같았고, 이 상태에선 아델 타랍 제이미 마키 타락마귀 같은 개인기 위주의 선수가 혼자 다 해먹는 상황에 이르기 때문이다.
  • [44] 일화로, 2002년 당시 박지성은 발이 아파 어느 병원에 진단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축구를 잘 몰라 박지성이 누구인지 몰랐던 그 의사는 "평발이니까, 운동 많이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고. 박지성은 그때 자기가 평발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 [45] 입단 당시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에 와서는 명지대와 김희태 감독으로서 정말 신의 한 수다.
  • [46] 70m를 홀로 드리블 질주하며 올림픽 대표 5명을 제친 후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허정무가 올림픽 대표로 깜짝 선발할 만 했다. 박지성은 그때를 회상하며 마치 수비수가 비켜주는(...) 느낌이었다고.
  • [47] 박지성의 노력과 열성적인 태도를 볼 수 있는게 다양한 외국어 능력이다. 일본에서 뛸 때는 일본어 회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네덜란드에서 뛴 후 맨유에 갔을 때 팀 동료 데사르 에게 인터넷 설치를 도와달라고 네덜란드어 로 말 했고 그리고 맨유에서도 영어 인터뷰가 가능할 정도로 학습에 노력을 기울였다. 영어 젬병에 통역만 믿고 맨유에 간 카가와와 비교가 되기도.
  • [48] 위 사실 만으로 이미 팀의 레전드급이었으나 박지성이 맨유에 가자 '교토가 낳은 박지성'이 되었고 명실상부한 레전드, 자랑거리로 등극한다.
  • [49] 김남일의 그 유명한 "아, 내 연봉에서 까라고 하세요." 발언이 나온 경기다. 김남일 어록 참고.
  • [50] 이때 입은 무릎 부상은 2000-2002년 휴식없이 혹사당한 영향이었고 박지성 커리어 내내 따라다니게 된다. 무릎 인대를 제거한 수술이었는데 06-07 시즌 블랙번전에서 공교롭게도 같은 부위에 부상을 입어 선수생명이 끝날 뻔 했다. 그래서 위에 나온대로 플레이 스타일을 변경하게 된다.
  • [51] 박지성은 선배들의 가혹행위에도 개인연습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선수다.
  • [52] 당시 히딩크 왈, "지성, 지금 J리그에서 너에게 몇팀이 오퍼를 넣었어. 너가 가고 싶으면 가도 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넌 분명히 이 시련을 이길 수 있고,난 절대로 내 눈을 의심치 않아."
  • [53] 반 봄멜은 지난 자신의 인터뷰를 사과했으며, 비난하던 홈팬들도 박지성 송을 만들어 전폭적인 응원을 한다. 특히 반 봄멜은 이 이후 자신이 꼽는 베스트 11의 한 자리를 무조건 박지성에게 할애한다.
  • [54] 역사적인 한국인 유럽 챔피언스리그 첫골이기도 하며, 아시아선수의 첫 골이기도 하다. 알리 다에이는 뮌헨에 몸 담았을 시절 4강 전에 출장은 했지만 골은 못 넣었다. 이후 아시아인의 결승전 첫 출장 역시 박지성이 세우게 된다. 아쉽게도 골 기록은...
  • [55] 04/05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최우수 공격수 후보 5인에 포함되었었다.
  • [56] 실제로 많은 PSV 선수들이 첼시로 향했다. 로벤, 케즈만, 알렉스...그리고 선수는 아니었지만 히딩크 본인도 임시감독으로 첼시에 갔었다.
  • [57] 아스날에서 한 경기도 못 뛴 이나모토가 있었고, 맨유에도 중국에서 데려온 동팡저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 [58] 동팡저우 같은 경우는 자신이 실제로 플레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스카우터의 추천과 구단의 마케팅 목표에 따라 영입된 것이라고 퍼거슨이 언급했다. 이후 맨유 사장은 동팡저우을 나쁜 예, 박지성을 좋은 예로 비교하며 마케팅을 하더라도 실력을 겸비한 선수만을 이적시킬 것임을 언급했다.
  • [59] 06/07 시즌에서 본격적인 퍼거슨의 낚시가 시작되었다. 부상에 따른 폼이 올라오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호날두가 잘 함에 따라 좌긱스-우날두 조합으로 박지성은 벤치에서 시작할 때가 많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치킨을 시켜놓고 박지성 출장 혹은 교체를 기다리다가 나가리가 됐을 때 퍼기를 욕하곤 했다.
  • [60] 게리 네빌은 노쇠화로 인하여 폼이 많이 떨어졌고, 하파엘 또한 아직은 주전으로 믿고 맡길 수준은 아니다. 웨스 브라운도 있지만 이분 또한 장기 부상의 후유증으로 고생중. 가끔씩 경기에 출전하기는 했지만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 [61] 두 팀의 승점 차이는 3점 차이, 그리고 남은 경기는 두 팀 다 각각 두 경기에 약팀과의 경기. 첼시가 이긴다면 승점 차이는 사라져 우승은 정말 혼전 상태에 빠지고 맨유가 이긴다면 남은 두 경기에서 승점 1점만 따내도 맨유 우승 확정. 모두 패배하고 첼시가 전승할 경우는 골득실을 따져야 하는 상황.
  • [62] 그의 플레이를 지켜봐왔던 사람은 알겠지만, 박지성은 PSV 시절부터 이 각도를 상당히 좋아했다.
  • [63] 페널티킥 유도로 1도움 추가가 가능했는데, 오심으로 인하여 페널티킥 인정이 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날렵하고 빠른 움직임을 보여준 경기였다.
  • [64] 득점만 해도 이번 시즌의 맨유 내에서는 베르바토프, 치차리토, 루니, 나니에 이은 다섯 번째로 많은 득점이다.
  • [65] 득점왕 자리를 위한 베르바토프의 눈물나는 슈팅이 돋보인 경기였고, 블랙풀의 혼을 담은 경기이기도 했다. 이번 시즌 최고의 경기라고 뽑을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는 (한편으로는 눈물나는) 경기였으므로, 못 본 사람이 있다면 꼭 보자. 어느새 블랙풀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블랙풀도 울고, 벨바도 울고, 나도 울고, 오언만 웃었다"
  • [66] 에바트가 한 시즌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중요한 경기에서의 자책골은 너무나도 뼈아픈 자책골이었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 [67] 같은 팀의 안토니오 발렌시아 역시 박지성과 비슷한 소위 '수비형 윙어'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이다. 또한 박지성이 비록 미드필드 중앙에 위치하는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가장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위치는 사이드에 위치했을 때이다.
  • [68] 맨유 선수 중 뛴 거리가 2위로 1위는 라이언 긱스다.
  • [69]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이 실패했다는 의견이 많다. 큰 경기 경험이 없었던 치차리토는 경기 내내 긴장해서 엉망진창의 플레이를 보여줬고(공만 잡으면 오프사이드였다.) 이제 너무 늙어버린 긱스는 체력 부족에 멘탈붕괴로 인한 공황 사커(예컨대 메시의 골 장면에서 박지성이 사비를 커버하고, 에브라가 비야를 견제하기 위해 중앙쪽으로 이동한 상황이라 긱스가 메시를 견제해야 했다. 그런데 멀뚱멀뚱 보고만 있다가 중거리슛을 얻어맞고 침몰.), 캐릭의 기복, 발렌시아는 경기 내내 흥분해서 파울만 일삼았다. 알베스 때문에 사이드를 비울 수 없었던 박지성은 사이드와 중앙을 반복해서 뛰어다녔고 결국 60분이 넘어가면서 체력이 방전되어 버리고 결과는...
  • [70] 전반전에 이미 톰 클레버리가 부상으로 인해 교체카드를 한 장 쓴 상태였기에, 결국 이 날 박지성 출전은 무산되었다.
  • [71] 이 경기 이후로 맨유는 챔스 경기로 인해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었다. 국대 은퇴로 인해 A매치 시기에 경기를 치르지 못 했던 박지성을 내보내서 경기력을 끌어 올리고 다음 경기에 써먹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나, 갑작스런 상황으로 박지성이 경기에 나가지 못했으므로 퍼거슨 감독의 로테이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지도 모른다. 덤으로 클레버리도 생각 외로 큰 부상인 듯 하고...
  • [72] 이 날, 추석 전날이라고 톰 클레버리, 조니 에반스, 아르센 벵거 셋이서 추석 3종 선물세트를 선물해주셨다. 물론 이를 좋아하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 [73] 2005-06 시즌 초반 릴 OS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 83분 라이언 긱스를 대신해 교체 출전하며 주장 완장을 찬 적이 있다. 막 팀에 들어간 신입이었지만 얼떨결에 교체하며 그대로 완장을 이어받은 것. 긱스가 나가기 전 스콜스에게 줄 것을 이야기했는데 박지성이 잘못 알아듣고 그대로 차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교체였기에 '선발 출장' 하면서 주장완장을 찬 것은 최초가 맞다.
  • [74] 에버튼과 맨유는 꽤나 악연이다. 10-11 시즌 초반에는 에버튼의 홈 구장인 구디슨 파크에서 인저리 타임에 동점골을 먹어서 3:3으로 비겼다. 참고로 그 경기는 3:1로 맨유가 앞서고 있었다. 필립 네빌의 복수
  • [75] 물론 동료가 창조적인 패스를 받을 만한 위치에 아무도 없었지만...
  • [76] 부친이 혼자서 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박지성이 와서 한잔 해도 되냐고 물었고, (경기를) 뛰어야 하는데 괜찮겠냐?라고 부친이 걱정하니 박지성왈 "어차피 나가질 못하는 걸요."(...)라고 했다고. 평소 그의 자기관리 능력이나 성격을 생각해보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 [77] 맨체스터 시티, 첼시, 토트넘을 연속해서 상대해야했다.
  • [78] 에스테반 그라네로의 골을 도왔다. 하지만 사실상 그라네로의 개인기로 만든 골이었다.
  • [79]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국대 박지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가대표팀에서의 그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
  • [80] 이 날 기준으로 월드컵 통산 3골로 안정환,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자베르와 아시아 최다골 동률이다. 이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팀 케이힐에게 깨졌지만, 케이힐의 월드컵 골들 중 두 골은 호주가 오세아니아 소속으로 본선에 진출했던 시절인 2006년에 넣었던 골이여서 아시아 국가대표팀 선수들 중의 최다골이라 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 [81] 국가대항전 100경기 이상 출전
  • [82] 실제로 2002년 월드컵 8강 스페인전의 승부차기에서 두번째 키커로 나와서 이케르 카시야스를 상대로 킥을 여유있게 성공시켰다.
  • [83] 아시아 선수 최초의 EPL 우승 메달 수상.
  • [84]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
  • [85]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의 챔스 결승 출전.
  • [86]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나의 월드컵이 끝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는데, 얼마 후에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기량이 괜찮다면 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건 이래서다.
  • [87] 박지성은 MBC 스페셜을 통해 아인트호벤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교토 구단주도 박지성이 사지가 망가져도 영입한다고 했으니 맨유를 제외하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
  • [88] 야프 스탐, 와이트 요크, 디 셰링엄, 튼 포춘 등의 선수들도 영국 현지에서 맨유의 레전드로 불리곤 하는데, 박지성의 맨유에서의 업적을 보면 이들보다 못할 것이 없다.
  • [89] 계약 기간은 1년이고 아시아에 국한된 걸로 알려져 있었지만, 계약기간 다년에 전 세계 맨유 행사에 나가는걸로 밝혀졌다.
  • [90] 박지성 팬들이 이런 기사에 환호한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박까만의 편견이다. 이런 기사의 댓글에서 사실지적이 나오며 기자를 욕하는 댓글이 넘쳐난다. 정확히는 낚시일지 않을까 의심하며 눌러보는 경우가 많다.
  • [91] 영어로 인터뷰할 때도 "because"라는 말을 많이 쓴다...사실 이런 까다로운 선수로 꼽히며, 기껏 인터뷰를 해도 "특별히 없다."라는 답변이 인터뷰 절반을 차지해 인터뷰를 밋밋하게 만든다. 이유는 박지성이 인터뷰로 한번 크게 데인 적이 있기 때문. 선수 시절 초창기 인터뷰를 했는데 이게 꽤나 안 좋은 쪽으로 화제거리가 되어서(정확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추가바람), 그 이후로는 아는 바와 같이 모범적인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 [92] PSV에서 박지성은 중요 선수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었지만, 팀내 최고의 에이스라고 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 PSV는 딱히 팀을 책임질 정도라고 불리울 만한 '최고의 에이스'가 없었다.
  • [93] 교토 시절에 같이 소개팅에 나가기도 했단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때 소개팅을 주선했던 여자가 마츠이의 부인이란 것.
  • [94] 참고로 마쓰이의 부인은 모델 겸 연예인인 가토 로사. 하필이면 가토 로사와 교세라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는 가고시마에 출생하거나 주명박사가 다닌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 출신이다. 참고로 고흥과 가고시마는 공통점이 많은데, 하나는 한일 우주정책을 수행에 가장 중심지가 되는 지자체이며, 또 하나는 한일 해양무장세력 대명사를 가리키는 이들이 활동한 본거지이거나 첫 해양 관련 업무를 한 지역이란 점이다. 이쯤 되면 자매결연도 추진되어도 무방할 정도다.
  • [95] 사실 정확히 따지면 교토는 올림픽 대표 박지성을 영입한 것이다. 그의 재목을 알고 중용한 사람은 허정무. 올림픽 대표인 박지성을 K리그 팀들이 뽑지 않은 건 박지성보다 더 좋은 선수들을 뽑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 진출 이전까지 박지성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한 축구계 지도자들은 해외무대에서 뛰었던 경력을 가진 이들이 많다라는 점이다.
  • [96] 고종수, 창현김호의 아이들 중 상당수를 직접 스카우트한 사람이다.
  • [97]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영입했던 화평이 대표적.
  • [98] 출처는 <프리미어를 보러가다>
  • [99] 대표적으로 2002년 이탈리아의 3부 팀과 계약했으나 구단주가 안정환이 몸담았던 그 페루자의 구단주도 겸하고 있었던지라 이탈리아의 한국전 패배에 대한 분풀이로 계약 파기. 이후 이탈리아 지역 리그에 입단하려고 이탈리아 축구협회에 신분증명서를 요청했더니 저 박지성의 신분증명서가 날아와서 등록에 실패한다.
  • [100] 2012년 성룡이 출연했을 때 했던 그 게임. 알람 시간을 랜덤으로 셋팅하고 질문&답변. 알람이 울릴 때 휴대폰을 가진 자가 탈락
  • [101]
  • [102] 무려 차범근을 섭외한다(!) 근데 어차피 월드컵도 다가오니..
  • [103] 방송을 보면 10분을 넘기면서 했는데 보통의 프로선수 들이 1분에 100개 정도 하는 걸 감안하면 박지성은 방송에서 리프팅 1000번을 한거다.
  • [104] 청소년 대표팀 출신인 빅스레오, 옆 동네 에서 이영표가 축구선수 했으면 국가대표급 재능 이라고 칭찬한 비스트 이기광, 축구 좋아하고 즐기기로 유명한 비스트윤두준양요섭, 2AM, B1A4바로, BTOB 그리고 제국의아이들.
  • [105] 박지성은 총 15분밖에 뛸 수 없는 핸디캡이 주어졌다.
  • [106] 부상으로 시축만 했지 뛰진 못했다.
  • [107] 박지성은 자기가 축구 하면서 해트트릭을 해 본적 이 없다고 너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108] 개리는 어시스트를 할 뻔 했고 프로선수를 상대로 볼키핑을 보여줬고 유재석을 프로선수를 제끼고 골키퍼와 1대1 찬스까지 만들었다. 김종국이야 런닝맨 멤버 중 운동 특히 축구를 자주 즐기니 보여준 크로스나 패스 자체는 좋았다.
  • [109]
  • [110] 사실 벵거에게 박지성의 플레이가 특히 인상에 남았을지 모른다. 박지성이 유독 아스널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고, 골도 많이 기록했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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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19: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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