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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굴

last modified: 2014-03-28 17:37:58 by Contributors

盤屈.? ~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죽음으로써 관창과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긴 화랑, 세속오계 중 '임전무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김서현의 손자이자 흠순[1]의 아들이고, 장군 김유신의 조카인 동시에 사위[2]이다.

계백과 5천 결사대가 김유신이 이끄는 5만 군사를 맞아 네 차례나 그들을 격파하자 신라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지경이 되었다. 이 때,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이 반굴에게 "신하가 되어 임금님께 충성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며 위험을 보고 목숨을 바치는 것이 충효인 것이다." 라는 말로 그를 자극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반굴은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들었다.

반굴은 창을 들고 백제군을 향해 진격한 후 분전하였으나 홀로 적진에 뛰어들었으니 결국 맞이한 것은 죽음뿐이었다. 뒤이어 김품일의 아들인 관창이 또 돌진하여 목숨을 거두자, 신라군이 이를 보고 용기백배하여 백제군은 마지막 다섯번째 교전에서 패하며 황산벌 전투는 마무리되었고, 백제도 사비성이 함락되며 멸망하게 되었다.
관창에게 기력증진 막타를 스틸당한 남자

혼자서 돌격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삼국사기에서 관창이 돌격할때 而彼衆我寡라고 적고 있는 것으로보아 반굴도 일정한 수의 군사를 이끌고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다. 임무 자체도 막연히 사기 진작을 위한 돌격이 아니라 적의 주의를 끄는 별동대 임무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분명히 먼저 돌진해서 죽음으로써 어떻게 보면 관창보다도 더 무모하리만큼 용감했으며, 위치상으로도 관창보다 끝발이 높은데[3] 별 일화도 없이 한 번에 죽었기 때문인지 이상하게 관창보다 인지도가 좀 많이 낮다. 실제로 이 항목도 관창 항목이 쓰여진 이후에 쓰여졌다. 혼자만 닥돌해서 죽었으면 이렇게 묻히진 않았을텐데

아들로는 김영윤이 있다.

영화 황산벌에서는 왜 관창만 뜨고 반굴은 안떴는지에 대한 아주 명쾌한 답이 나온다. 선뜻 나설 용기가 없는 반굴을 설득하는 아버지 김흠순은 "니 폼나게 죽으면 니 천년을 산데이!", "먼저 가는 놈이 장땡이다, 니 사나이제?!", "내가 가서 죽으면 약빨이 안 먹힌데이..."같은 소리나 하고 있고[4], 기껏 마음 다잡아 먹고 적진 앞으로 돌진했지만 괜히 자기소개 할때 족보이야기 했다가 거시기에게 '개족보' 소리 듣고, 계백에게 나오라고 소리 지르다가 이뭐병하던 백제군이 성벽에서 던진 창 한번에 꿰여 죽는다.
문제는 시체가 신라 진영으로 전달될 때 김유신과 다른 장군들이 그걸 못봤다! 역시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김유신은 사실 두번째로 나선 관창만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이 죽은 반굴과는 달리 관창은 어찌어찌 계속 살아남아서 좋은(?) 본보기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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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김유신의 남동생
  • [2] 이게 다 신라 특유의 골품제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영화 황산벌에서는 명색이 신라의 귀족 집안인데다 대장군의 친척이지만 일개 백제 병사 거시기에게 개족보라고 비웃음 당했다. 정확히는 "조카면 조카고, 사위면 사위제 조카면서 사위는 어느나라 개족보 얘기여?"
  • [3] 둘 다 진골이다. 하지만, 반굴이 김유신의 친조카이자 사위라면, 관창은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의 조카이다. 그런데 김품석은 대야성에서 자기 잘못으로 부인까지 끌고 죽은 다음이었기 때문에 이건 그만큼 좋은 인맥도 아니었다.
  • [4] 결말부분에 의자왕의 왕자들이 하는 이야기에도 이 약빨드립이 한번 더 나온다. 이땐 왕자들이 오히려 "우들이 죽으면 약빨이 안먹혀부러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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