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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last modified: 2015-03-27 14:53:52 by Contributors

반서방(반서방세계의 줄임말) 항목은 이 항목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반서방과 반미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 열람시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反美 / Anti-American

Contents

1. 반미란?
1.1. 반서방세계 성향
2. 각국의 반미
2.1. 한국의 반미
2.2. 북한의 반미
2.3. 중국의 반미
2.4. 유럽의 반미
2.5. 러시아의 반미
2.6. 중남미의 반미
2.7. 중동의 반미
2.8. 일본의 반미
3. 반미에 대한 비판
4. 주요 반미, 반서방 국가
4.1. 그 외 현재 반서방 성향의 정치인이 집권하였거나 서방세계와의 외교 관계가 나쁜 국가들
5. 반미나 반서방 성향을 지닌 인물/단체
5.1. 국내
5.2. 국외

1. 반미란?

미국패권주의적 행동 및 정책을 거부하는 사상이나 운동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

의외로 오래된 단어로 기원은 1800년대로 올라간다. 초창기에는 말 그대로 미국과 군사적인 면에서 대항한다는 뜻의 용어였고, 1950년도 후부터는 자본주의 진영의 대표 국가인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가진 공산국가들을 지칭하는 단어였지만 공산주의가 세계적으로 몰락한 지금 현재는 그 의미가 다시 바뀌었다.

운동권에서는 "반미주의"라는 표현도 쓰지만, 반일이나 반공과 마찬가지로 이런 주의/사상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반대만으로는 사상이 될 수 없으니까. 온전한 주의/사상이라면 지향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사회상이 존재해야 한다. 소련이 망하고 나서 공산주의/사회주의가 사상으로서의 활력을 잃은 것도 단순히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내용 외에 어떤 구체적인 이상사회를 구현할 것인지의 내용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현실을 살펴보아도 그렇다. 반미라는 현상 자체는 중동, 남미, 동아시아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미국에 반대한다는 것 외에 그 현상들 사이에 특별한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열폭?? 반미 국가일수록 딸러를 좋아함[1] 국내를 돌아보아도, 반미가 정치적 구호로 동원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반미를 외치는 사람들을 반미주의자라는 집단으로 묶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실 반미주의라는 말은 너희는 하루하루 똥만드는 기계 이러저러한 나쁜 놈들에 불과하지라고 비난하기 위해 주류 언론들이 만들어낸 말장난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조지 W. 부시 시대에는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크게 퍼졌다. 과연 미국 최대의 재앙

1.1. 반서방세계 성향

미국 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연합(EU)+나토+호주+뉴질랜드[2] 등의 서방 세계 전체의 패권주의적 행동 및 정책을 거부하는 사상이나 운동, 성향은 반서방성향, 반서방주의라고 하며 이렇게 서방세계 전체를 싫어하는 감정, 서방세계에 대한 반감을 반서방 감정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을 서방세계에 포함시킬 경우 미국, 이스라엘, 영국 등이 비판의 대상 혹은 적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꼭 이 세 나라가 아니라도 서방세계 전체를 대체로 싫어하는 경향이 중동(북아프리카 포함), 중남미, 아프리카 대륙[3], 중국, 인도[4], 러시아에서 나타난다. 아르헨티나가 속해 있는 중남미 같은 경우,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문제로 인해 EU와 대립하고 있다.[5] 오죽하면 EU와 러시아가 진짜로 전쟁하면 중남미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러시아 편을 들거라는 좀 극단적인 예상이 나오겠는가? 그건 중남미의 서방세계에 대한 반감과 무관하지 않다.[6]
서방세계 전체를 싫어하는 것과 유럽에 대한 악감정은 없는데 미국만 싫어하는 경우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서방세계를 대표하고 서방세계를 사실상 이끌어가는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에 반미와 반서방이 많이 겹치는 편이다.
제3세계의 반서방 성향의 사람들은 정치적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도 자유주의, 개인주의, 민주주의에 반감을 가진 경우도 많다. 이들은 서구의 개인주의 혹은 서구식 인권개념이 자신들의 전통문화와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보기도 한다.[7]

또한 과거 냉전시절 미국이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세계 각지의 독재정권, 군사정권을 지원한 것이 반미경향이 전세계적으로 증폭되는 계기가 되었다.[8] 제3세계의 엘리트 층에선 이런 모습을 보고 소위 미국식 민주주의 자체에 혐오감을 가지게 된 경우도 상당히 많다.
또한 서방진영과 어쩔수없이 경쟁해야되는 나라들 중 하나가 중국, 러시아 다보니까 이들과 우호관계를 맺고 유지하려는 경향인 친러, 친중 성향과 반서방성향 역시 많이 겹치는 편이다. 많은 반서방 성향 국가들은 서방세계와 대립하고 있는데 마침 중국, 러시아 등도 서방서계와 대립하니까 이들과 손을 잡고 같이 서방세계를 견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대체로 반미 국가들은 친미 국가들과 정치외교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꺼려한다. 경제적으로 교류가 어느 정도 있을 순 있어도 일정 수준 이상 가까워지기는 힘들다. 한국의 경우는 제1세계에 속한 서방세계 국가이긴 하지만, 반서방 성향 국가들인 중국, 러시아, 이란, 아르헨티나와 생각보다 가깝게 지내는 등의 외교를 하는 중이다. 터키나 일본, 영국의 경우 자진해서 미국의 개 노릇을 한다고 주변국에서 욕을 하긴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한국전쟁 때 사람들이 전부 북한에 의해 학살당할 뻔한 걸 서방세계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난 걸 감안해서인지 '자진해서 미국에게 굽신거린다' 라는 이미지는 없는 편. 베트남 전쟁 후에도 베트남이 미국 편에 서서 파병한 한국에게 우호적으로 대한다거나. 다만 역시 중국 같은 반미국가들은 한국이 친미 성향을 떨쳐 버리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성향이 다른 탓에 한국과 중국이나 러시아와 관계가 아무리 좋다 해도 진영논리와 연관된 일이 터지면 결국 "한국 미국 일본 vs 북한 중국 러시아" 로 나뉘어져 대립하게 된다.

2. 각국의 반미

2.1. 한국의 반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군정 시기에 빚어진 반탁 운동과 대구 10.1사건,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당시 반외교론자들, 일제말기 전시체제기 친일파 지식인들에서부터 비롯된다.[9] 그 외에도 민족주의자들 가운데 미국을 껄끄럽게 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며, 좌익 세력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6.25 전쟁이 터지고 미국의 도움으로 멸망의 위기에서 겨우 벗어나면서 반미의 목소리는 쑥 들어가게 된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자국의 수만명의 젊은이 목숨을 희생해 가면서 남한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한 동맹국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력, 군사력 모두 열세에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이나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전략적인 계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미국에 대한 이미지는 6,25가 끝난 이후로 매우 좋아져서 이기붕 일가가 자살한 이후에 흥분한 군중이 이기붕의 집을 습격하다가 이기붕의 집에서 성조기가 나오자 주위가 순식간에 숙연해지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그 성조기는 사건을 취재하던 미국인 기자들에게 전달되었다. 이후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이 대거 동원되었을 때도 다른 국가들에서 반전, 반미 의식이 팽배했던 것과 달리 한국은 그런 움직임이 미미했다.[10]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된 것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11]. 간략하게 요약을 하자면,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가 군대로 시민을 죽이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민주주의 수호자"인 미국이 이 독재와 학살을 막아주리라 기대했고 미국의 개입을 기다렸지만, 미국은 이 사태를 방관했던 것. 오히려 미국이 독재자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자 제일 처음 만난 외국지도자가 전두환이였다는 점 등에 민주주의 수호자라고 생각했던 미국에 처절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 반미의 이유라고 한다.(하지만 독재자 전두환을 만난것은 당시 억류되어있던 세계적 인권지도자로서 아시아의 만델라라는 평을 받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형집행을 중지하고 석방하는 거래조건이었다. 군부독재자인 전두환은 미국의 인정이 없으면 정통성에 치명적이었기 때문에 이에 응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항목을 참조할 것.[12] 이후 미 문화원 방화사건 및 미군기지 월담사건[13] 등이 일어났고 이후 반미가 운동권에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반미를 주창한 대표적인 운동권 단체로 한총련이 있다.
5.18때 개입을 안했던 것과 다르게 6월 항쟁당시 전두환이 보낸 진압군을 미군의 탱크들이 막았기도 하였으나 반미의식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2002년 2월 21일 지금은 흑역사가 된 사례가 있었는데. 바로 안톤 오노 사건이 터지면서 운동권에만 주로 퍼져 있던 반미 의식이 일반 대중,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14]당시의 반미 분위기 및 주로 스포츠에서 많이 나타나는 반미에 대한 칼럼 하나. 뒤이어 터진 각종 주한미군 관련 범죄, 특히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한국 역사상 가장 격렬한 반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에도 각종 미군 관련 절도, 폭력, 성추행 등의 사건들이 연이어 보도되면서 주한미군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 사실 주한미군 범죄는 이전 시대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지만,[15] 당시의 반미 열풍으로 인해 이전 시대의 주한미군 범죄들이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고, 노근리 학살 사건 같은 한국전쟁 시절 일들까지 들춰지면서 반미 풍조가 한국 사회를 휩쓸었다. 특히 부시 행정부의 병크들이 국내의 반미감정을 자극하는데 매우 큰 일조를 했다. 사실 부시가 당시 반미감정의 가장 큰 원인중 하나였다.

이런 반미감정의 기저에 깔려 있는 감정 중 하나가 민족주의인데 "우리 민족의 일에 외세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면서 반미로 흐르게 된 것. 반미주의자들은 왜정 이후 한반도 정세에 대한 미국의 영향을 부정적으로 본다.

이들에 대해서는 나이키신고 반미 하는 위선자라는 평가도 있다. 참고로 이 떡밥의 흥한 이유는 나이키 신고 반미 시위해서 미군하고 치고 박은 사진 때문. 하지만 미국이 아니라 단순히 미국 정부의 정책이 마음에 안들어서 반미를 하는 사람에게 미국 기업 제품을 쓴다고 언행불일치라 비판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제품을 반대하는 것이 같은 행동일 수는 없으니까.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혐오하는 반미주의자들이 주도한 불매운동까지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큰 반향을 얻진 못하였다.[16]

그러던 중 북한이 박왕자 씨 피살 사건,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을 잇달아 일으키면서 범국민적인 친북 감정이나 민족주의 운운하는 연대 의식이 많이 약화되었고 원인이 무엇인지 논란이 분분했던 천안함 사건과 달리 누구의 잘못인지 전국적으로 즉각 생중계가 되어버린 연평도 사태 이후 미국이 즉각 조지 워싱턴 호 급파를 비롯한 지원을 하자 10년전보단 전체적으로 상당히 친미적인 분위기가 되었고 미국에서 이를 한국의 반미의식 위축을 분석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미군기지 주변 주민들의 경우 각종 시위통에 하도 시달린 나머지 아예 반미시위대 자체를 싫어하는 경향도 강하다. 이분들은 이 시위대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주기적으로 당하는 사람들이다. 소음, 교통방해, 농작물 밟기 등... 정말 싫어할 경우 그냥 짜증나서 모인 그 근처 사람들이 단체로 쫓아온 사례도 있었다. 단체로 우루루 몰려오기는 했는데, 구심점 아래에서 뭉친 것이 아니라 낮 시간에 농사나 물 장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화가 치솟아 집결해서 '저 새끼들 조지자!' 이러고 그냥 닥돌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전의경들 입장에서는 그냥 원수들. 좀 규모가 작은 평화시위에도 전의경이 배치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큼지막한 폭력시위에서는 전의경이 반드시 투입되는 것이 보통이라서 다들 정말로 싫어한다. 게다가 부대 근처에 미군기지가 있으면 잊을만 하면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나는지라...

좀 옛날 일이지만 상당히 과격했던 운동권에서는 폭력 및 구타, 협박 사건이나 심지어 살인사건까지 일으킨 전력이 있다. 이로 인해 안 좋은 여론이 많이 있었고 최근에는 좀 잠잠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과오들이 많이 남아있다.

좌익 계열에서도 비판이 있다. 친미-반미의 이분법은 결국 미국종속적인 사고의 일환일 뿐이라면서 결국 우리의 사고가 미국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즉, 친미나 반미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탈미라고도 한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딱히 용어를 규정짓지 않고 있다.

다만 한국의 반미 성향은 대중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비교적 소수인데 이는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대 중반 일시적으로 반미 여론(Unfavorable)이 친미 여론(Favorable)을 제쳤으나, 곧 친미 여론이 반미 여론을 반전시켰다. 2007년 부터 친미 여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반미 여론은 기세가 꺽였다. 2013년에는 친미 8 : 반미 2 정도로 극도의 친미 국가이다. 심지어 2013년 시점에서 한국의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은 무려 70%를 돌파하여 미국의 40%대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높았다. 기사기사

이는 미선이 효순이 사건, 아폴로 안톤 오노 사건 등으로 일시적으로 반미 여론이 강화되었지만, 이후 연평도 포격 사태 등에서 미국이 항공모함을 파견하는 등 적극적으로 한국을 지원하면서 국민 여론이 친미로 반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15년 삼일절에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한·중·일 과거사 문제는 세나라 모두 책임이 있다는 양비론적인 발언을 하면서 반미 감정이 다시 일어났었다.기사

미국이 한일관계와 한일간 역사문제,영토분쟁에서 각종 정치적인 이유 즉, 중국 견제를 위한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과거사 해결하는 것보다 미래 지향을 먼저해야 함"을 이유로 일본의 편을 들어주는 사례[17]가 나온다는 생각 때문에 반미감정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2015년 3월 5일 반미성향의 괴한이 미국 대사를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참조.

2.2. 북한의 반미

여기 나와있는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초강경 반미성향을 고수중이다(...) 반미 자체가 이 나라를 지탱하는 원동력 중 하나라 봐도 무방하다. 중동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중에 유일하게 미국을 배척하는 나라다. 미국이랑은 수교자체가 없으며 세계적으로 히트한 미국의 블록버스터 영화나 애니메이션 영화등이 일절 개봉되지 않는 나라이니 말 다했다.(...)[18] 그 시초는 1945년 남북분단 이후 소련의 영향에 의해 미국에 대한 반감과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으며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미국이 군대를 남한에 파병하게 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되자 미국을 '미제(米帝)' 라고 부르며 반미감정을 고취해왔다. 특히 김일성은 휴전이 성립되자 "미제놈들 때문에 한반도 적화통일이 물건너갔다." 면서 미국을 비난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미국남한과 연합하여 북침(北侵)을 하였다." 며 왜곡을 일삼기도 하였고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가 하면 미국에서 열렸던 올림픽에까지도 불참하는 등 반미성향을 고수해왔다.[19]

한때는 두만강 국경지대를 취재하였다는 미국 국적의 여기자 2인을 납치하기도 하였으나 클린턴 전(前) 대통령이 특사로 평양을 방문하여 여기자들을 구출하는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그 이후로도 여러차례 미국인들을 억류했고[20] 2014년까지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를 수년간 억류했지만 2014년 늦가을 들어서 전격적으로 그를 석방했다. 미국과의 관개계선을 노린 듯하다.

한때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였고 북미대화 및 6자 회담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대화를 하기도 하였지만 고정적인 반미성향은 여전히 뿌리깊게 박혀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북한의 반미는 남한의 반일정서처럼 특정한 역사적인 면에서 조장된 것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듯이 김씨 일가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캐치프레이즈에 가깝다. 김씨 일가와 북한의 수뇌부는 북한의 내부의 문제점과 모순을 몽땅 다 외부세력 및 외부세력과 결탁한 '반동'[21] 들의 소행으로 지목해서 책임을 떠넘기곤 했는데 가장 만만한 것이 미국이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이게 다 미국 때문이다! 라고 미국을 비난하는 걸로 내부의 불만을 봉합하는 선전술을 애용했고 그를 위해 신천리 사건을 비롯해서 뭔 일은 죄다 미국놈들의 소행이라고 역사왜곡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에 북한 인민들은 뭣도 모르고 일단 반미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것이 절정에 이른 것이 1994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으로 지금도 김조와 종북주의자들은 북한의 기아는 전부 다 미국과 일본과 서방의 소행이라고 게거품을 무느라 여념이 없다.

2.3. 중국의 반미

그냥 여기는 2차대전 이후 소련과 같은 정치적 의도. 그 때문에 중동에 비해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자세한 내용은 미중관계 항목으로.

중국이 반미를 내세우는 이유도 일본과 같다. 아니, 오히려 더 노골적이라 더 쉽게 속셈이 드러난다. 경제 위기로 흔들리는 미국을 대신해서 세계 최강대국이 되고, 옛날처럼 마음대로 국제 사회에 깽판을 부리는 깡패 국가가 되겠다는 것. 물론 그 미국도 초강대국이 막 된 초기에는 여러모로 정치적 시행착오라는 이름의 깽판을 부렸고, 남미는 그게 현재진행형이니 중국의 행동에 대해 뭐라고 할 처지는 못된다. 다만 현재의 미국은 처세술이 나름대로 무르익었지만 중국이 세계 패권을 거머쥐게 된다면 신생 초강대국이 된 중국이 저지르는 여러 정치적 시행착오를 겪을 세대들이 바로 현재를 살고있는 우리라는 사실 때문에 중국의 패권국 진출을 주변국이 경계하는 것이다.

당장에 한국내의 반미주의자들은 미국 대신 중국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수주의적이고 억압적이며 동아시아권에서의 과거 패권의 수복을 추구하는 극단적 패권국가인 중국이 정말로 미국을 대체할 정도로 켜져버리면 과연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될까? 세계대전 종전후 전승국이었던 소련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친소련화 되어 소련의 위성국들로 전락해버린 폴란드불가리아등의 동유럽 국가들이나 1991년 소련 해체후 소연방에서 독립한 뒤에도 여전히 러시아의 간섭과 압력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타지키스탄처럼 과거 옛 소연방에 속해있던 나라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건 한국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함께 남중국해에 접하고 있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바로 이것이 이들이 경계하고 있는 근본 원인이다.[22]

좀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지리적인 면과 원교근공의 법칙 때문에 이렇게 되는면도 있다. 일단 중국은 미국과는 달리 사방의 주변국과 육지로 이어져 있으며,[23] 미국이 동서로 탁 트인 태평양과 대서양을 접하고 있어 해양진출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않는 천혜의 조건을 가진 반면 중국은 해양진출하려면 동남의 2면(실질적으로는 거의 1.5면), 그나마도 얼마못가 주변국의 영해이기 때문에 해양진출좀 해보려면 영해분쟁이 일어나는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중국으로서는 상당히 불합리한 지형조건인 셈. 이래서야 충돌이 안일어날래야 안일어날수가 없다. 또한 중국의 주변국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어서 영토나 영해문제같은 직접적인 사안으로 충돌할 이유가 없는 미국 같은 강대국보다는 중국처럼 바로 이웃한 강대국과 마찰이 더 자주 벌어질테니 중국이 미국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보이는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들 나라 옆에 미국도 붙어 있었다면 그 미국과 영토, 영해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헬게이트

그래도 아직까지는 맥도날드 등의 미국 대표 브랜드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고 중국인들이 미국산 대중매체를 즐기고 있는데, 이는 한국인일본 극우를 혐오하면서도 일본 대중매체를 즐기는 것과 같은 이치라 보면 된다. 사실 어떤 국가를 부정하면서도 그 국가의 문물을 향유하는 이런 모순적인 경향은 "그 나라의 정치행보를 반대하는것이지 그 나라의 문화 자체를 싫어하는것이 아니다"나 "그 나라의 주장은 주장이고 문물은 문물이다. 문물은 자기주장이 없다. 그리고 우리가 그 문물을 이전부터 받아들여 소유하고 있으니 이것들은 이제 그냥 우리의 것이다" 같은 나름대로의 주장이 있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반미 감정은 생각처럼 크지 않다. 신냉전이라 하지만 두 나라의 관계 국가와 국민 사이 모두 외적으로는 준수한 편이다.

2.4. 유럽의 반미

서유럽,남유럽 국가들의 경우 미국과 함께 서방 진영,NATO의 일원으로 똘똘 뭉쳐있고 대외적으로 친미 노선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 나라들에서도 민간 차원의 악감정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전반적으로 유럽 또한 일본과 비슷하게 반미주의는 극좌와 극우가 함께 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표적인 국가로 프랑스를 들 수 있다. 가끔 프랑스맥도날드가 프랑스인들에 의해 업무방해까지 겪을 정도. 하지만 프랑스는 미국 독립의 대표적인 후원국이기도 했던 만큼, 정치적으로는 미국과는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석학(이라고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인 기 소르망[24]은 프랑스 등 유럽의 반미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편파적이라고 비판한다. 유럽인들의 반미는 미국이 누리고 있는 패권을 질투하고 있는 것이며, 알고 보면 유럽이야말로 현재의 미국보다 더한 횡포와 폭력을 세계에 휘둘렀다는 것. 오히려 지금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야말로 1,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게 만들었던 유럽 주도의 세계 질서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평화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심도있게 분석하여 비평하고 있다.[25]

국내에 번역된 유럽의 반미주의에 대한 책으로는 안드레이 S. 마코비츠의 "미국이 미운 이유(원제: Uncouth Nation: Why Europe dislike America)"가 있는데 주로 서유럽 쪽을 다루고 있는게 특징.

독일의 반미주의자들의 경우 일본과 맥락을 공유한다. 우익 쪽에서는 독일 민족의 조국의 문화를 타락시키고 정치적으로 종으로 삼아버렸다라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증오하고 [26],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고향으로서의 공산 독일을 추구하는 좌파와 구동독 계열은 익숙한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관점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배격한다. 아쉬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일은 적어도 일본 보다는 과거 성찰을 깊게 한 덕에 저 두 조류 중 좌파쪽은 결국 양자일택의 상황에서는 도이치 민족주의보다 미국의 영향력을 선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27] 일본 처럼 반미주의에 기반한 좌우 합작은 일어난 적이 없다. 이탈리아 또한 무솔리니의 잔재가 전혀 제대로 청산이 안 된 만큼(...) 우익은 파시즘에 기반, 좌익은 반자본주의에 기반한 반미 조류를 공류한다.

스페인또한 미국-스페인 전쟁때 해외 제국의 상실로 인해 스페인 내부에서는 정권이 바뀌고, 사회가 뒤집히고, 군부가 설치고, 온갖 개판이 뒤따르면서 국가 막장 테크를 밣게 되는데 미국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라는 관점에서 미국을 싫어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애초에 스페인 제국의 가장 큰 상실이었던 중남미의 독립 전쟁 자체가 바로 미국의 전례를 이념적으로 충실하게 따른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와 역사적으로 한다리 걸친 반미주의를 주장하는 셈이다. 그리고 사실 유럽 전반적으로 특히 전쟁 전 세대와 직접적으로 닫아 있는 노년층에서 자국의 젊은이들이 갈수록 싸구려 미국식 패스트푸드나 찾고, 미국식 대중 음악이 자국 전통 음악을 대체하고, 길거리에 나가보면 뭔 할렘가인지 동네 애들은 죄다 바지 허리춤이 엉덩이까지 내려와있고.... 이런 식의 전형적인 꼬장꼬장한 문화적 관점에서의 반미 감정은 널리 퍼져있다.

동유럽의 경우는 복잡하다. 세르비아의 경우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미국을 위시한 NATO 동맹군의 군사개입으로 사실상 미국과 전쟁을 치르기도 했고 2008년 코소보 독립으로 미국,서방과 갈등을 빛기도 했을 정도로 이 때문인지 일반 국민들에 대한 반미 감정이 심하다.반면 폴란드나 불가리아,[28]루마니아,체코,헝가리등은 미국과 서유럽 세계에 대한 친서방적 경향이 없진 않은데.아무래도 역사적,정치적으로 냉전시대때 러시아,소련의 위성국화와 내정간섭으로 자국 주권이 크게 침해당하고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붕괴되자 EU와 NATO에 가입할 정도로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워낙 컸던것도 있다.심지어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킬때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찬성했을 정도였으니.... 게다가 폴란드, 아르메니아, 우크라이나 등의 경우는 미국으로 건너간 자국 이민자들과 지속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으며, 미국 내에서도 이들 이민자 그룹이 사회 주류에 크게 진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삼촌이 사는 시카고"란 식으로 호감을 품는 경우도 많다.

2.5. 러시아의 반미

중국과 같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역사상 유일하게 미국과 군사적으로 거의 대등한 경쟁국가였던 나라였고 그 시절엔 당연히 반미일수 밖에 없었다. 이 시절의 소련은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지만 일단 겉보기엔 미국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유일한 국가였기에 이들의 반미감정은 경쟁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소련이 붕괴하고 현재 러시아는 물론 여전히 강대국이고 군사적인 면에서는 미국과 동반자살이 가능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넘사벽급으로 뒤쳐졌고 다시 소련적의 영향력을 찾기는 힘들어보인다. 소련의 붕괴는 미국의 승리라기보다는 자멸이었지만 어쨋거나 미국과 적대하던 중에 멸망한 것이므로 러시아인들에게 미국이란 우리의 영광을 빼앗아간 나쁜놈들인 것이다. 즉 러시아의 반미는 패자의 승자에 대한 열폭에 가깝다...고 하지만 부시 행벙부의 삽질과 푸짜르틴의 오일머니등으로 종래의 소련처럼 미국과 어느정도 대립할 수있는 궤도로 복귀중이었지만...

2.6. 중남미의 반미

사실 이쪽은 미국도 할 말이 없다. 오죽하면 자업자득이라고 할 정도. 게다가 북한과 중동 쪽 반미가 각각 주체광신도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계속 그대로 살고 나중에는 서방 정복을 꿈꾸는 자들이 다수 포함된, 제국주의적인 형태라면 이쪽은 오히려 독립투쟁적 면모가 상당수. 물론 몇몇 중남미 국가들 또는 중남미의 급진적 반미주의자들의 경우 북한, 중동처럼 중남미식 반미좌파 극단주의자들이 북한, 중동의 반미세력과 협력해서 나쁠건 없으니까 서로 협력하면서 계속 그대로 살고 나중에 패권국가 지위를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노릇 한다고 미국과 서방세계가 몰락하면 자신들이 신흥 패권국가가 되어 세계를 주름잡는 온건한(?) 패권주의, 제국주의를 추구해볼 수 있다.[29]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자신들의 문화적 조상이 있는 서방세계를 레콩키스타, 아니 역정복까지 노려볼지도[30]

19세기 유럽 세력이 아시아 지역의 식민지화를 진행해 나가자 미국 또한 이 영향을 받았다. 미국은 태평양 지역의 섬을 식민지화하는 동시에 중남미에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으며,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쿠바가 독립하고 필리핀의 소유주가 바뀐 것 또한 이러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중남미 독립 운동이 폭발하던 1820 ~ 1830년대 선언된 먼로 독트린으로 인해 뒷받침되었다. 세계 대공황 이후 미국의 대남미 정책 변화에 따라 이러한 구조가 어느 정도 완화되기는 했으나 중남미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고,[31] 이는 쿠바 피델 카스트로의 민족주의 혁명과 중남미 좌파의 확산으로 폭발하였다. 특히 치명타가 된 것은 냉전시기 반공이랍시고 민중을 수탈하는 독재정권을 지원해준 것이다. 더불어 이들은 경제개발에서도 무능했기에 1980년대에는 중남미 전체가 경제적으로 개판이 되버린다.[32] 당시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지원은 국내에서 민중의 저항에 직면해있던 중남미 군부독재정권들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당시 미국은 칠레에서 선거를 통해서 좌파연립 정부가 들어서자 CIA를 동원해서 군부를 배후조종, 쿠데타를 사주하여 피노체트의 군사독재정권을 수립하는 막장 행각을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니카라과 에서는 이란-콘트라 사건에도 관여했다. 이러니 반미경향이 폭발할 수 밖에...

여기에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하자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침탈에 대항한다는 먼로 독트린은 어디가고 노골적으로 영국을 지원하면서 미국은 이중잣대라는 비판까지 받게 된다. 다만 이때는 아르헨티나가 먼저 시작한 것이어서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 전후 저지른 잘못이 너무 많았다.

현대에 반미적인 모습을 보이는 대표적인 국가로 쿠바, 베네수엘라를 들수 있을 것이다.[33] 미국의 내정간섭과 CIA의 쿠데타 지원, 신자유주의 도입 과정에서의 경제 악화 등의 원인으로 인해 반미주의가 급속히 확산되고, 결국 2000년대, 그것도 이 분이 미국 대통령이던 시기에 우고 차베스를 위시한 좌파정권이 콜롬비아를 제외한 남미를 장악하게 되었다.[34] 중남미 국가들이 반서방적인 성향으로 전향한 걸 볼 수 있는 사례로는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이 코소보를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점[35], 팔레스타인 승인 문제[36],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서방세계에서 개입하자 NATO를 비판한 것[37], 대표적인 반미국가 중 하나인 이란과의 관계 강화[38] 등이 있다. 심지어 이란뿐만 아니라 친러, 친중 테크도 타고 있으며, 이들과의 무역 교류도 실질적으로 크게 증가했고,[39] 군사협력까지 하는 등 중국, 러시아 등의 나라들과 손잡고 서방세계를 같이 견제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2014년 3월 27일 UN 총회에서 크림 반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영유권, 영토보전을 인정하고 크림반도 주민투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결의안 투표에서 북중미카리브 쪽은 그래도 대부분 찬성을 했지만, 남미에서는 콜롬비아, 페루, 칠레 빼고는 다 반대 아니면 기권(abstained)을 했다. 여기 지도에서 남미대륙이 어떤 색으로 칠해져있는지 잘 보자. 크림 반도 문제의 경우 대놓고 러시아 편에 서서 반대표를 던지기가 곤란한 부분을 감안해도[40] 이정도면 뭐... 게다가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 이렇게 서방세계와 마찰을 빚는 나라들이 정작 러시아, 중국, 이란, 시리아 등이 잘못했을 때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아예 2000년대 후반 이후로 미국이나 서방세계와 의견이 일치했던 사안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2.7. 중동의 반미

이스라엘을 제외한 상당수의 중동 국가들이 그런데 상당 부분은 제국주의라는 점에서 라틴아메리카와 전혀 다르다. 특히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와 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 정책으로 인한 반감으로 반미주의가 활발하다. 대표적이고 급진적인 반미 국가들로는 시리아, 리비아,[41] 이란. 그 외에 각종 테러 조직도 활발하다. 이유는 다들 알 것 모른다면 위에서 보았을 것이므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을 비롯해서 정책은 친서방적인 국가들도 있지만 그 대중은 미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위에 있다. 그리고 또 중동 대중이 미국을 싫어하는 이유가 미국이 대개 자신들과 친하면 그 상대가 독재자이건 아니건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대중의 미움을 사는 독재자들을 지원했고 대중들은 독재자들을 미워하면서 그 후원자인 미국도 같이 미워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란으로 팔라비 왕조를 미국이 후원하고 이후 레자 팔라비가 미국으로 망명하자 이란 대중의 팔라비에 대한 분노는 죄다 미국으로 돌려졌고 대표적인 것이 444일간의 미 대사관 점거 사건이다. 게다가 미국은 선배 패권국인 영국과 마찬가지로 중동의 값싼 석유 확보를 위해 정권을 뒤집는 일도 서슴지 않았으니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을 뒤집어 버린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값싼 인력을 얻기 위해 전두환을 전격 지원하는 것과 같은 이치. 이것도 미국이 자초한 일이라 볼 수 있다. 후일 이란 혁명은 이런 미국의 이중잣대가 상당한 기여를 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병중인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소문과 미국의 한 개신교 목사가 이슬람 경전인 코란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테러리스트들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며 공개적으로 코란 서적을 불태우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중동 전체가 이를 보고 격앙과 분노로 이어져 반미감정이 짙어지기도 하였다. 이래서 개독은 답이 없다

2.8. 일본의 반미

일본은 한국과 달리 반미세력의 주축이 우익으로 우익 자체가 분리되어 있다. 일본의 좌익은 정확히 말하면 미국에 반대한다기 보다는 미 제국주의 세력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일본의 좌익 정당인 공산당, 사회당 등의 세력과 일본의 학생운동 조직인 학련, 전공투는 1970년대가 될 때까지 미 제국주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저항을 천명하며 용어구분을 확실히 했다. 즉,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아니라는 셈.

제2차 세계대전 이래로 일본 우익은 전반적으로 친미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국가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극우파 계층이나 일본의 완전한 독립국으로서의 국가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세력들은 미국이 일본의 독자성을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하여 반미주의로 빠지기도 한다. 전자는 일본의 기성 정당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후자는 일본의 우익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일본의 우익들은 첫째로 일본의 국가 정체성이 패전 이후 상당부분 희석되었다는 점에서 반미주의를 강하게 내세운다. 전형적인 보수논리로서 일본 그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부분에서의 반미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문제는 이들 스스로가 전쟁이 가능했던 시절의 국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전쟁에서 진 건 사실인데 군대도 못 갖는 나라가 무슨 국가냐"라며 일본의 재무장을 이야기 하며, 이러한 부분의 걸림돌이 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의 미국의 터치가 들어간 체제, 더 나아가 평화헌법 체제를 반대하며 반미를 내세운다.

이러한 양 진영의 논리가 접점을 찾은 시기가 바로 베트남 전쟁이다. 베트남 전쟁 기간동안 일본의 좌/우 각 사회단체들은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대(약칭 베평련. 일본어로는 베헤이렌)를 조직하여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여 나갔다. 이 단체는 전후 일본 최대의 좌우합작 단체라고도 평가받는다. 물론 좌익 세력에서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반대하고 북베트남 공산정권을 찬성하기 위해서 반대한 것이었고, 우익 세력에서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반대하고 무차별적 살육행위와 "조국"일본이 전쟁의 전진기지로 쓰이지 않게 하기위해서 반대한 것이었지만, 국제평화와 인류애라는 시각에서 폭넓게 연대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이들은 "베트남에 가고싶지 않다"는 미군들을 빼돌려서 국외 망명을 시키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웃기는 것이, 미일상호방위안보조약에 따르면, "일본은 미군요원의 일본국 입출국에 대해 처벌할 권한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이게 불법이 아니었고, 당연하게도 베평련 구성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종료 후, 반미주의는 각각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일본의 좌익은 "제국주의 야욕 분쇄"의 일환으로, 우익은 "오키나와 미군철수 및 자주권 회복"의 일환으로 전개된다.[42] 1960년대부터 일본은 각 진영에서 좌익, 우익운동이 활발해졌는데, 전자의 대표적인 반미활동은 전공투학련이 맡았다고 할 수 있고, 후자의 대표적인 반미활동은 수회(一水會)등이 맡았다고 할 수 있다.[43] 참고로 일본 좌익 진영에서의 반미는 소련 몰락 이후 상당부분 줄어들게 되었고, 일본의 좌익들은 지금 숫자도 엄청나게 줄어들었지만, 일본 내부의 노동문제나 환경문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우익의 반미는 패권주의제국주의 이념 자체에 반대해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군사력을 비롯하여 일본의 각 부분에서 사실상 점령한 상태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NL? 보통 한국 사람들이 자주 헷갈리는 것이, 일본도 진보 쪽이 반미라는 인식이 있지만 반대로 보수 쪽이 강하다. 한국과는 달리 반미를 주장하는 일본인 중에는 좌파보다 우파가 훨씬 많다. 이는 국수주의적, 제국주의적 사상의 찌꺼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들이 반미를 외치는 이유는 미국이 일본을 제대로 된 국가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과정의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국가적 차원에서 제대로 성찰도 되지 않은 국가가 재무장을 하게 되는 것은 군국주의의 망령에 대한 부활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일본이 외치는 반미 구호나 아시아 공영 같은 프로파간다는 특히 한국인에게 있어서 상당히 주의깊게 살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전에 중국이 얘네들을 끔찍하게 싫어하잖아? 안될거야 아마

3. 반미에 대한 비판

반미주의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사우디 아라비아같은 경우에는 이곳의 왕족들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나오는 석유를 미국에 팔아 넘기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도 제대로 자국의 국민들에게는 그 이익을 돌리지 않으면서도 메카의 수호자라는 템빨과 빈곤에서 나오는 국민들의 불만을 종교와 반미로 승화시켜서 여전히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또한, 반미를 주축으로 내세우는 세계 각국의 좌파들은 반미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미국과 대립하던 세력들(소련, 중국, 베트남[44], 이라크[45])를 무리하게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병크를 저지른다. 극히 일부지만 심지어는 IS에도 이러는 정신나간 자들도 있다...

일례로 유럽의 반미-좌파들은 냉전 초기에 소련의 스탈린을 적극 지지했다. [46] 소련에서 자행되는 온갖 반인권적인 숙청과 탄압을 몰랐을 때였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련의 잔인한 불만 세력 탄압과 인권 유린 실태가 전 세계에 공개되자, 유럽의 좌파들은 소련에 크게 실망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좌파들은 6.25를 일으킨 김일성을 지지하는가 하면 1960년대 중엽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이 터지자, 베트남을 가리켜 "전 세계 약소국들의 희망"이라는 식으로 비행기를 띄워주었다. 하지만 1979년 베트남이 자기보다 훨씬 약소국인 캄보디아를 침공하면서 서구 좌파들은 그저 데꿀멍...[47]

걸프전 당시에도 미국과 싸우는 이라크는 좋은 놈 → 이라크는 좋은 놈이니까 하는 짓도 정당함 → 그러니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략은 정당한 일... 이라고 침략을 미화하는 일도 있었다. 실제로 이런 글이 인터넷에 돌아다녔으며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물론 침략당한 쿠웨이트인은 이라크에 이를 간다. 자세한 건 쿠웨이트 항목을 참조. 이런 주장의 끝판왕은 마이클 무어인데 화씨 9.11을 보면 미국 침공 이전의 이라크는 지상락원이 따로 없다. 하지만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한국 인터넷에서는 미국의 모가디슈 전투를 들어 민간인 학살하고 강간하고 약탈하고 마약 팔아 돈 챙기고 소년병 일선에 내보내는 아이디드 군벌 패거리들을 무슨 소말리아 독립 투사처럼 미화하는 병크를 저지른 바가 있으며[48]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 사태에서 자국 민간인을 학살하는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반미 정치가라는 점 때문에 두둔하고 나서며 오디세이 새벽 작전의 미국을 "석유를 노리고 리비아를 침공했다"고 비방하는 자들이 여럿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카다피가 반미 포기한건 2004년으로 이미 미국에 알랑방귀 뀐지가 옛날인데 말이다.

해당 국가들의 성향과 전후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반미면 OK라는 이런 단순한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의 논리대로라면 혐한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한반도의 왕조들과 싸워온 일본은 좋은 세력이고, 일본 제국대한제국을 패배시키고 합병한 경술국치는 정당한 일이 되어버린다.

반미주의는 과학계에까지 영향을 미쳐, 1957년부터 시작된 미·소간의 우주 경쟁의 결과물인 아폴로 계획을 미국의 음모로 치부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아폴로 계획 음모론 자체는 미국의 작가인 윌리엄 찰스 케이싱이 제기하였고, 기독교 단체인 평평한 지구 학회(Flat Earth Society)에서 기독경에 근거하여 재창한 것이다. 이것이 반미주의와 맞물려, 아폴로 계획은 소련의 우주 개척을 견제하고자 미국이 꾸민 음모라는 음모론이 꾸준이 주장되고 있다.

이는 소련을 다시 없을 우주 기술 강국이고, 미국은 그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사기를 친 나라라는 주장으로 이어져, 위에서 언급한 미국과 대립하던 세력을 미화하는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낸다.[49] 정도가 심한 아폴로 계획 음모론자들은 NASA의 최근 성과인 큐리어시티도 지구에서 촬영하고 있는 조작이라고 주장하거나, 2012년 8월 25일 타계한 닐 암스트롱의 소식을 접하고는 뉴스 기사 댓글 등으로 사기꾼이 잘 죽었다 혹은 사기꾼이 입을 열지 않고 죽었다고 발언하는 등, 미국과 NASA가 관련된 모든 과학적 업적을 부정하고 고인드립을 서슴치않는 모습을 보인다. 버즈 올드린이 괜히 음모론자를 두들겨팬게 아니다[50].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은 수십년간 엄청난 첩보력을 발휘하여 전 세계를 침묵시키고,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소련마저 속아넘길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갖추었거나, 혹은 냉전에서의 라이벌이었던 소련을 입막음할 수 있을 정도의 슈퍼파워를 갖춘 나라가 되어버린다.

4. 주요 반미, 반서방 국가

여기서는 일단 현재 정권의 대외적 성향이 누가 봐도 반미, 반서방성향인 강한 국가들만 나열한다. 국민들의 반미, 반서방 감정이 강해도 현재 집권한 정권이 대외적으로 강한 반미나 반서방이 아닌 경우, 그리고 베트남처럼 과거에 반미였으나 현대에 반미에서 벗어난 경우에는 기재하지 않는다.
근데 이들중 상당한 나라들이 이슬람 국가라는 희대의 미친놈들의 등장으로 위 아더 월드를 외치기 시작했다.

4.1. 그 외 현재 반서방 성향의 정치인이 집권하였거나 서방세계와의 외교 관계가 나쁜 국가들

5. 반미나 반서방 성향을 지닌 인물/단체

5.2. 국외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 이 인간말종자 붙이기도 아까운 놈들은 이슬람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다. 현재 전 세계가 위아더 월드를 외치게 만든 희대의 막장 집단. 반미, 반서방을 목청 터져라 외치곤 있지만 러시아, 중국에다가 인도네시아같은 비아랍권 이슬람국가까지 다 자기 적이라고 외치면서 세계정복을 외치고 있다.
  • WWE - 무하마드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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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반쯤 농담이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다? 극단적인 반미 성향 국가의 경우 경제가 개판인 경우가 많고 경제가 개판이면 당연히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고는 하나)그 나라의 경제력을 나타내는 화폐가치도 개판이고, 자연히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미국 달러를 일반 국민이든 정부든 가리지 않고 선호한다는 것. 심지어는 아예 자국 화폐를 버리고 달러를 쓰는 경우까지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미국 달러 참조.
  • [2] 넓은 의미의 서방세계에는 이스라엘, 대한민국, 일본이나 터키등의 동맹국들까지 포함된다.
  • [3] 여기는 좀 애매한게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벨기에,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들이 많지만 한편으로 미국이나 과거 식민지배했던 나라들로부터 경제원조를 받는 경우도 꽤 있어서 무턱대고 반서방을 고집하기 곤란한 곳도 꽤 있다. 굳이 여기서 반서방이라고 볼만한 곳을 찾자면 유럽국가의 식민지배를 심하게 받았고 독립 이후로도 서방세계와의 교류가 별로 없으며, 러시아, 중국 등과 친한 국가들이 반서방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짐바브웨.
  • [4]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고, 핵무기 문제로 미국등 서방세계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어서 서방세계와의 관계가 좋은 편이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와 친하면 친했지, 유럽과는 친한 편이 아니란 것. 그러나 인도는 서방국가이자 영국과 적대관계인 프랑스와도 친하게 지내는 등 무조건 반서방이 아니라 비교적 중립적인 편이다.
  • [5] EU가 포클랜드 문제에서 영국을 지지하기 때문.
  • [6] 2000년대 중후반 이후,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에서 비서방, 반서방 성향의 정권들이 줄줄이 들어섰고 대외적 성향이 바뀐 것 역시 이것(국민들의 반서방 정서)과 무관하지 않다.
  • [7] 이런 경향은 특히 중동, 북아프리카 일대의 이슬람권에서 광범위하게 보인다.
  • [8] 아래에도 서술되있지만, 한국에서 반미운동이 대중적으로 폭발한 계기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의 태도때문이다.
  • [9] 전시체제기 친일파 지식인들은 하나같이 '귀축미영'을 부르제끼면서 반미운동에 적극 나섰다.
  • [10] 거기엔 단순히 미국과의 감정 문제만이 아니라 북베트남의 공세를 받는 남베트남을 과거 북한의 침공을 받은 남한과 동일시하는 정서도 있었기 때문이다.
  • [11] 5.18 민중항쟁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시선, 95p
  • [12] 미군 관계자는 미군은 전두환을 지지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한국 언론에 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쓰냐며 항의했지만 그걸로 반미감정을 잠재우진 못했다.
  • [13] 걸릴 경우 사살이었고 당사자들도 그걸 각오하고 담을 넘었다고 한다. 다행히 당사자들 중 어느 누구도 사살당하거나 하진 않았다.
  • [14] 사실 한국에서 대중적이고 노골적인 반미의 모습은 묘하게 스포츠 이벤트와 함께 커지는 경우가 많다. 이전 88서울올림픽 때의 미국과 소련의 농구경기 때에 한국 관객들이 일방적으로 소련을 응원했던 일'''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방송에서는 부랴부랴 반미움직임을 걱정하는 전문가 대담이...
  • [15] 주한미군 범죄는 소위 "기지촌" 문제와 함께 60년대 전후가 피크였고, 당시 남한은 미국에 감히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이 못 됐으므로 쉬이 근절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 파병과 급속한 산업화로 남한의 정치-경제적 입지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한미 양측의 공조가 시작되어 80년대 이후로는 많이 줄어들었다.
  • [16] 실제로 반미감정이 한창 융성했던 시절 운동권 학생회가 잡고 있던 모 학교에서는 미국제품 쓰지 말자고도 했다. 문제는 그게 윈도우, 워크레프트3, 기타 등등이었고 당연히 나이키 등의 물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화장실 등에 가면 미국제품 쓰지 말자는 구호와 함께 그럼 국민게임 스타크래프트도 하지 말게? 윈도우 등의 상표가 밑에 붙어 있었다. 간접홍보 광고비 받아야 될듯 긜고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다.
  • [17]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 특히, 서구 선진국에서도 중국 견제등 정치적인 이유로 한일관계와 한일간 역사문제,영토분쟁에서 일본의 편을 들어주는 사례가 허다하다. 일본의 경우, 비록 거품경제 시대에 비해 빛이 바랜 편이지만 아무런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여 20세기 후반 21세기 초반 때 비로소 개발도상국을 갓 졸업한 한국과 달리 미국을 위시한 서구 선진국처럼 19세기부터(빠르면 17세기~18세기부터) 기반을 마련해왔기 때문에 정치,경제적 역량이 건재한 편에 속한데다가 일본의 주변국보다 외교적 역량이 강하기 때문에 한일관계에서는 반일감정이 심하지 않는 이상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한국보다 일본의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반대로 보면 한국이 일본에 비해 정치적,경제적으로 강한 편이 아니며 외교 측면으로 보면 무능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심각한 국채문제는 별개
  • [18] 과거 미국과 전쟁을 벌였던 베트남과 세르비아, 멕시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 이라크 전쟁으로 반미감정이 심한 중동 아랍국가들, 정치적으로 미국과 대립 관계에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도 미국과의 국교관계를 유지하고 미국 헐리우드 영화 작품들을 자국 극장가에서 개봉,상영하는것을 허용하는데도 말이다..
  • [19] 그러나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은 공식 참가하였다.
  • [20] 6.25 참전 용사란 이후로 고령의 미국인을 잠시 억류한 적도 있었으나 곧 석방했다.
  • [21] 북한의 프로파간다 상 조선민족은 완벽한 민족이라 장애인도 없으며(명백한 개드립, 이젠 존재를 인정은 한다.) 나쁜 것은 전부 다 서방 자본주의 세력에게 나쁜 물이 들어서 그런 것이다! 라고 열심히 세뇌한다.
  • [22] 일부 사람들은 중국이 초강대국화 되면 한국은 티베트,위구르처럼 중국에 강제 합병될것이란 말들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상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자세한건 한중합방 참고
  • [23] 미국은 남으로는 멕시코, 북으로는 캐나다 이렇게 2개국. 중국은? (동북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북한(실질적으로는 남한),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총 14개국이다.(...)
  • [24] 기 소르망은 실제로 프랑스에서 교수 생활을 역임했으며, 현재 활발하게 저술과 평론을 하고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중저술가(public intellectual)이지 학문적 영역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석학'은 아니다. 한국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특정 계열의 입맛에 맞게 과장되어 있다.
  • [25] 국내에도 번역된 그의 저서, '중국이라는 거짓말'을 참조하기 바람.
  • [26] 정치적 차원에서야 독일이 확실히 나치즘의 잔재를 청산했지만 민간 사회적 차원의 보수성이야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또한 나치즘도 정상적인 민족 국가로서의 독일의 가능성을 완전히 박살내 버렸다고 싫어하면서도 그와는 별개로 특히 대중 문화 차원에서 전후 독일을 깊게 잠식한 미국의 영향력을 싫어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 [27] 옛날에는 텔만 찬양가(Thälmannlied)의 가사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 좌파에서도 애국주의를 강조했으나, 나치즘에게 일공산당일사민당이 박살나고 독일 민족적 차원에서 홀로코스트의 도덕적 책임이란 멍에를 지운 후 이후 독일 좌파에게 대독일 민족주의는 심지어 외세보다 더 증오스러운, 태생적으로 배척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들 중 많은 수는 드레스덴 폭격의 책임자인 아서 해리스같은 좌익의 관점에서도 좋게 보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인물들을 다만 독일 민족주의를 박살냈다는 이유로 찬양하는 등, 자국 혐오주의(Antideutsch) 성향이 강하다
  • [28] 현재 EU,NATO에 가입하였지만 19세기 러시아-투르크 전쟁떄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 [29] 실제로 후안 페론 시기의 아르헨티나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이 전쟁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잠깐이나마 경제가 호황인 반사이익을 얻었다.
  • [30] 실제로 미국에 히스패닉의 비율은 무시할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 대신 유럽은 이슬람계 이민자 수가 약간 증가했다.
  • [31] 심지어 일부 중남미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 등의 추축국이 승리해서 미국의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약해지길 은근히 바라기까지 했고, 2차대전이 끝난 후 나치의 남미 도주 때는 도망쳐온 나치 잔당을 숨겨주기까지 했다. 게다가 냉전시대였던 1970년대와 80년대 당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악화되자 소련이 미국을 누르고 패권국으로 부상하길 내심 희망하기도 했다(...)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이 미국을 누르고 패권국으로 부상하길 희망하고 있는걸지도
  • [32] 우리나라의 1997년 외환위기를 생각하면 된다. 그런 상황이 1980년대 내내 중남미 전체에서 이어졌다.
  • [33]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기준으로 니카라과, 볼리비아, 에콰도르도 강한 반미적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들보다 정도는 약하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태평양에 접하지 않은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도 온건한 반서방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세계를 친서방, 반서방으로만 나눴을 때 반서방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과반수 이상의 중남미 국가들)은 정부의 행동도 그렇지만 서방세계에 대한 국민 감정도 좋지 않은 편이다.
  • [34] 단, 중미(중앙아메리카)에는 좌파정권이 아닌 정권들, 혹은 친미 정권도 꽤 있다.
  • [35] 코소보/독립 인정 국가 목록을 보면 코소보 독립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국가들 중 하나가 미국인데, 정작 남미에서 2019-10-14 현재까지 코소보를 승인한 국가들이 별로 없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경우 대부분 자국 내 여러 민족이나 부족들이 있어서 분리주의 문제를 안고 있고(인도 공화국의 경우 카슈미르 분리주의 문제가 있다.) 아시아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중국, 러시아, 인도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코소보 승인을 꺼리는 거지만, 정작 남미는 자국 내 분리주의 문제에서 훨씬 자유로운 편이다. 갈라설 나라들은 진작에 다 갈라졌으니까 근데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한 지 6년이 지난 2014년 2월 기준으로도 오히려 아프리카나 아시아보다도 코소보를 승인한 국가 비율이 훨씬 더 낮다. 이건 반미 또는 반서방세계 성향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반미가 아니고 미국과 가까운 멕시코, 과테말라도 코소보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 [36] 미국은 팔레스타인 승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이스라엘을 옹호하지만, 정작 2010년 12월 1일 ~ 2011년 3월 15일에 걸쳐서 거의 모든 남미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공식 승인했다.
  • [37] 카다피의 잘못에는 침묵하면서 서방세계만을 비판했으며, 게다가 일부 급진적인 중남미 반미 국가들은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를 승인하길 거부했으며, 특히 우고 차베스는 카다피가 사망하자, 카다피를 애도하기까지 했다(…).
  • [38] 관련기사 참조.
  • [39]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경우 대중무역의존도가 대미무역의존도를 넘어섰다. 이 두 나라가 중국의 이웃나라나 주변국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지리적으로 중국과의 거리보다 미국과의 거리가 좀 더 가까운) 나라들이란 걸 감안하면 흠좀무.
  • [40] UN 총회 투표에서도 정작 러시아와 같은 표를 던진 나라는 러시아 포함해서 11개국밖에 안되는데 그 중 중남미 국가들이 4개국이나 된다.(유럽 3개국, 아시아 2개국, 아프리카 2개국. 여기서 아르메니아는 유럽으로 간주함.) 또한 반대를 안한 중남미 국가들도 대부분 찬성이 아니라 기권을 할 정도면(중국, 인도 등의 나라들도 반대 대신 기권을 했고, 대놓고 러시아 편에 투표한 나라들보다 기권한 나라들이 훨씬 더 많다.) 그만큼 미국, 서방세계가 하자고 하는 걸 지지하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41]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반미 캐치프레이즈는 2004년 카다피가 대량살상병기 포기 선언을 하면서 끝났고 부시는 덕분에 매우 기고만장해했다. 어쨌거나 카다피는 2011년 9월부로 몰락했고, 카다피도 10월 20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카다피는 말년에는 오바마에게 "나의 아들이여."란 표현까지 쓰면서 최소한 오바마에게는 매우 친근한 태도를 보였다.
  • [42] 이들이 쓰는 구호중 흔한 것이 바로 반미자주이다
  • [43] 이로 인해 이들은 사이좋게 골고루 일본공안의 추적을 받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 [44] 베트남은 냉전이 끝난 후로는 미국과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남중국해 영토분쟁 문제도 있어서 미국과 협력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 정도로 미국과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사실 베트남은 애초에 반미성향의 국가가 될 가능성은 적은 나라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지도자 호치민의 경우도 가장 경계하는 국가는 중국이었지 내심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원했다는 설이 있다. 왜 베트남 전쟁에 관해 미국이 비판받고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 [45] 물론 걸프전때 쿠웨이트에 대한 침략 밑 합병 강행은 맞아도 쌌지만..
  • [46] 심지어 근대 서양 화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카소마저도.
  • [47] 다만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이 크게 비판받지 않는 건 다른 이유가 있다. 당시 캄보디아의 집권자가 희대의 악마 폴 포트이기 때문이다. 폴 포트는 캄보디아 전역을 킬링필드로 만들면서 캄보디아 내 베트남인들을 학살하다가 베트남 공격을 지시해 마을 2개를 박살내는 미친짓을 저질러 베트남의 침공을 유도한 꼴이되었고, 이는 폴 포트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 [48] 예를 들어 강풀...
  • [49] 단, 소련과 그 뒤를 이은 러시아는 우주강국이 맞다. 유스 우주선은 수십년간 개발되면서 지금은 궂은 날씨에서도 발사가 가능하고 90% 이상의 안정적인 발사기록을 가진 명품 우주선이다. 그리고 소련이 냉전 당시 이룬 업적도 숨겨진 사실이 있기는 하나(최초로 우주에 간 포유류인 라이카가 몇 시간만에 죽었다는 것을 숨겼었다.), 업적 자체는 실제로 이룬 성과다. 하지만 반미를 목적으로 소련을 찬양하는 경우에는 소련의 단점(N-1 로켓의 개발 실패 등)을 덮어놓고 미화하고 있다.
  • [50] 버즈 올드린은 이 사건에서 정당방위로 인정받았다.
  • [51] 대표적인 반미국가였지만 2004년에 이미 대량살상병기를 포기하고 미국에 백기투항하다시피 했으며 카다피는 오바마 대통령을 나의 아들이라고 까지 부르면서 미국에 러브콜을 보냈다. 2011년 1~2월부터 이 나라 안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사태와 그에 따른 NATO의 공습의 결과에 따라서 친미 국가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있다. 무슬림의 순진함 사건 이후로 미국 대사가 죽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리비아 내부에서도 극단주의자들의 난동이며 대사는 리비아의 친구였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 [52] 로하니 대통령 당선 이후 슬슬 미국과 사이가 좋아지고 있고 이슬람 국가라는 역사적인 개또라이들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이후로 미국과 아예 군사적으로 협력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 [53] 이 쪽은 원래 반미 성향이 그리 깊진 않았다.유고슬라비아 시절 소련의 자국간섭을 견제하려고 미국이나 서방세계의 지원을 끌어들이려고 했었으며 냉전때까지만 해도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정도..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공산권이 붕괴될 무렵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민족,종교간 내전으로 붕괴되자 인종 학살,유고 연방내 주변국 침략등 온갖 잔악한 짓거리들을 자행하여 이후 미국과 서방 연합국들의 전쟁 군사 개입을 초래하였고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와 전쟁중이었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코소보등 다른 구유고 연방 국가들의 분리 독립 이탈을 미국등 서방세계 국가들이 지지하면서 유고 내전 종전후 미국과 영국,프랑스등 서방 국가들에 대한 반미,반서방 감정이 커졌다.물론 그렇다 해도 북한이나 이란 같은 극렬 반미국가들보다는 덜한 편.
  • [54] 이란-콘트라 사건과 관련이 있다.
  • [55] 일단 이 국가의 독재정권이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비난 및 제재를 받고 있다 보니 대체적으로 반미, 친러, 친중 성향을 띠는 편이다.
  • [56] 2014년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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