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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이 어택

last modified: 2015-08-04 15:50:39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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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기상
영화 마이웨이의 한 장면. 반자이 돌격후 이어지는 병맛스러운 각종 대전차총검술은 덤. 영상을 끝까지 본 사람은 알텐데 '조센징' '살려줘' '민우야, 괜찮아?' 라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자살특공대원 중 다수가 조선인 청년들이다...특히나 후반부로 가면 더 몰려오는 BT무리에 대부분이 겁을 집어먹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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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붉은 타원 안에서 죽어나가는 행위.


Contents

1. 설명
2. 대체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 정신나간 발상을 하셨어요?
3. 실전
3.1. 성공한 경우
3.2. 실패한 경우
4. 일본군의 문제점
5. 미군의 특징
5.1. 화력덕후 미군
5.2. 백병전에서의 양상
5.3. 전투의지 및 사기 차이
6. 결과
7. 서브컬처의 반자이 어택
8. 비슷한 것들

1. 설명

영어 : Banzai attack, Banzai Charge, Banzai Suicide

일본군의 병력을 훌륭하게 말아먹은 일본군 상부의 팀킬전략. 반자이 어택이라고 쓰고 자살이라고 읽는다.

절대로 이 탱크하는 돌격이 아니다. 차라리 그랬다면 더 나았겠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남발했던 일종의 자살식 공격을 비꼬는 말이다. 일본군이 덴노 헤이카 반자이~!(天皇陛下万歳! - 천황 폐하 만세!) 하며 총검 돌격한 데서 온 듯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반자이 어택이라고도 하고, '반자이 돌격' 으로도 불린다.

같은 뜻이고 다른 전선에서 쓴 요점은 비슷하지만 작전 수행 과정 및 결과는 전혀 다른 전술우라돌격이 있다. 참고로 둘 다 만세(반자이/우라)를 뜻한다.

허나 둘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우라돌격은 화력지원을 동반하며, 러시아의 제파식 전술의 일환으로 반자이 어택처럼 단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병력을 안전하게 끌어올 보급로가 있다면 공격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2. 대체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 정신나간 발상을 하셨어요?

총알이 없어도, 무기가 없어도 기합을 넣고 돌격하면 어떻게든 된다! 라는 게 사령부의 판단이었지만 그건 무리였지요.
- 임팔 작전에 참가한 한 일본군 참모.

뭐긴 뭐야 필로폰이지

먼저 반자이 어택 자체를 말하기 전에 이러한 착검돌격과 전통적인 냉병기를 쓴 돌격을 의미하는 칼 들고 돌격하는 행위를 설명하자면,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쓰는 엄연한 전술 가운데 하나다. 냉병기만 있던 시절엔 당연히 돌격이 효과가 있었기에 사용했고, 총이 나온 뒤로도 한동안은 총 자체의 성능이 영 안 좋은지라 여전히 돌격 공격이 유효했었다. 이 시대에는 냉병기로만 무장한 기병도 잘만 활약했다.

그러나 총기는 기존의 전장식과 일일히 수동으로 장전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점차 탄피, 탄띠 등의 여러 개량을 거쳐 총의 화력을 전투 내내 지속시키게 바뀌었다. 따라서 보병 한명이 한명분밖에 맡지 못하던 과거와는 달리 한 사람의 보병이 몇 명분의 살상력을 지니도록 바뀐 것이다.

이렇게 바뀐 시대속에서 과거처럼 존재를 드러낸 '돌격 공격' 상태에서 이러한 화력을 뚫고 무사히 적에게 접근해 백병전을 벌여서 살아남을 확률이 급감하면서 착검돌격 행위는 점차 자취를 감췄다. 특히 짧은 시간에 좁은 장소로 대량의 총알을 퍼붓는 기관총이 나와 이전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대량 살상이 단시간 내에 가능해진 점이 가장 컸다.

그나마 아직까지 지휘관들이 구시대적 발상만 취하던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각국이 과거처럼 무모하게 개돌했다가 기관총에 병력이 문자 그대로 갈려나가는 뼈저린 전훈을 겪은 뒤로 이러한 전술은 사실상 사라졌다. 제1차 대전의 솜 전투 당시 독일군은 기관총팀 2개로 십자포화를 퍼부어서 영국군의 진격을 저지했다. 11km를 전진하러 100만 명 이상이 죽고 다쳤다.

사실 종종 의표를 찌르려는 의도로서 총검 돌격은 유용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냉병기에만 안 매달리고 정말 필요한 때에 가까이 다가가서 기관단총이나 총검, 산탄총, 수류탄 등을 동원해 근거리 한정으로 일반 소총의 화력을 넘어서는 화력을 투사하는 형태였기에 반자이 어택과는 차원이 다르다. 항목을 더 보면 알겠지만 일본군은 원거리 화력 뿐만이 아니라 근접 화력과 훈련도, 전투의지까지 골고루(...) 모자랐으니 문제였다.

당장 비슷하다고 비교하는 우라돌격도 이쪽은 제병 합동과 기관단총, 화염병, 수류탄 등을 다양하게 썼으니 반자이 어택과는 수준이 다르다. 화력지원도 상당히 충실해서 포병, 기병, 기갑, 공군의 4가지 화력지원 가운데 1개 이상은 거의 늘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반자이 어택처럼 묘사한 우라돌격을 본 러시아 참전용사들은 "우리는 포병의 지원도 받았고, 저렇게 엉망으로 싸우진 않았다"며 분노를 터뜨릴 정도.

이러한 무기가 나오기 전인 전열보병 시대에도 기병전투나 함상전투 등에서는 권총이 있다면 그것부터 쏘고 냉병기를 쓰거나 쓴 권총을 휘두르거나 해서 적 섬멸을 위해 뭐든 하는 유연한 방식으로 백병전을 폈다. 이 시절에도 근접 화력 확보를 위해 권총을 여러 자루 들고 다니거나 페퍼박스 리볼버덕 풋 피스톨 같은 다발 화기도 운용했다. 당대 상황을 고려하면 일본군보다는 훨씬 합리적이다.

하지만 뒤늦게 서구 문물을 접한 일본은 이러한 속사정은 알지 못한 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엘랑 비탈로 대표되는 '지치지 않는 감투 정신 이론'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1차 마른 회전에서 프랑스 주력군은 '전투에서 졌어도 끝까지 전투의지를 지켜 전선의 붕괴를 막는 데에 성공'한 모습을 보고 '프랑스군의 전투의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기네들 군대의 중심 교리로 삼아서 문제였다.

즉, 일본은 남들이 버리기 시작한 것을 뒤늦게 주워담아서는 "오오 이거 선진국 애들이 쓰네? 우리가 보기에 멋지고 좀 짱인 듯?"하며 자기네 것으로 삼은 것. 여기에다가 목숨보다 명예와 의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본식 마인드가 들어가면서 돌격 정신은 자살성 돌격으로, 지치지 않는 의지가 자살 의지로 변질한 결과물이 바로 반자이 돌격이다.

구 일본군의 정신력 강조는 서남 전쟁 이후부터 시작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전의 일본군은 의외로 화력에 더 많이 의존하는 군대였다. 보신 전쟁 당시 구 일본군의 전신이었던 신정부군이 수적으로 열세였던 상황에서 막부군의 발도 돌격을 후장식 소총과 암스트롱 포의 화력으로 격퇴한 사례가 많았고 이는 이후 서남 전쟁때까지의 일본 육군의 성향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문제는 서남 전쟁 때였는데 원거리 화력에서는 정부군이 우세했으나 막상 사쓰마 군이 발도 돌격을 걸어오면 정부군은 모랄빵이 나서 패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인은 주로 2가지 였는데, 하나는 간략하게 프랑스식 검술을 배운 상비군이 일본식 검술의 달인들이었던 사쓰마 무사들에게 근접전 능력으로 밀릴수 밖에 없고,[2] 또 상비군으로 이루어진 정부군이 사쓰마군 보다 사기및 전의가 부족했던 것도 한몫했다. 이에 정부군은 서남 전쟁 중 검술이 뛰어난 자들을 모아 발도대를 창설하는 등 부족한 근접전 능력을 극복하려고 했고, 전후에도 상비군에게 일본식 검술을 가르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평생 걸려서 배우는 일본식 검술을 군 복무 기간안에 마스터 할수 있을리가 없으니 기각됬고, 대신 고질적인 문제였던 사기부족 극복을 위해 군대훈련에 정신교육을 중시하고 천황을 일본제국 육군, 해군의 대원수로 앉혀 군의 사기 고양을 도모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경향은 군대 구조를 징병제 바탕의 상비군 체체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근대 서양 열강들에게서도 쉽게 찾아 볼수 있는 풍조였다.[3] 단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열강들은 정신력&애국심 강조는 정훈교육정도에 머무르고, 무기 및 기타 장비의 개발 & 강화로 노선을 변경한데 비해 일본의 정신력 강조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당시 일본군의 전술사상은 '먼저 세게 1방 먹이면 적이 쫄아서 항복하리라'는(...) 선제압이 기본이었다. 이런 청일전쟁이나 잘해야 1차대전까지나 통했을 전술을 태평양 전쟁까지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이런 전술은 상술한 대로 무기의 발달 앞에서는 그낭 목숨을 내버리는 짓이었고, 1차대전 때 유럽국가들은 수많은 청년들의 목숨을 수업료로 이를 뼈저리게 깨우친다. 하지만 일본은 그런 교훈을 얻을 기회가 없었다. 청일전쟁러일전쟁은 상대국인 청과 러시아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아 이런 전술로도 상대가 가능했으며, 결과적으로 모두 일본이 승리한 전쟁이었기에 일단 겉보기로는큰 문제는 없었다.[4] 오히려 이 성공 사례들로 인해 자신들이 옳다는 확신을 더욱 굳힌 일본군 수뇌부들은, 이후로도 이런 '선빵 필승' 정신으로 작전을 짜게된다.

하지만 그들이 미국에게 시비를 건 순간, 드디어 이 구시대의 전술은 큰 장벽에 가로막혔다. 태평양 전쟁 때에는 진주만 공습이라는 커다란 1방을 먹였음에도 상대가 쫄기는커녕 오히려 "싸우자!" 라며 쇼미더머니를 치면서 반격하니 일본군은 상대를 제압하기는 커녕 오히려 미드웨이 해전,과달카날 전투,사이판 전투,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 등등 늘 밀리기만 했다.

끝내 시간이 지날수록 패색이 짙어짐에도 일본군은 미국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다가 소이탄으로 도쿄 대공습을 거하게 당하고, 마침내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핵무기가 동원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척'했다고 할까? 여담으로 이 광경에 깊은 감명(?)을 받은 힘 꽤나 쓴다는 나라들은 핵만능주의에 빠졌다 카더라.

여하튼 일본이 이런 전술을 다른 나라와의 싸움에서까지 써먹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신력에서 일본인을 능가하는 민족은 없음!"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한 몫 했다.

이런 일본군은 자국군에 필요 이상으로 거짓 찬양을 남발했고, 반대로 상대인 미군에게는 필요 이상의 거짓 비하를 남발했다. 결국 끝내 자기네들이 총 맞고도 안죽는 불사신 군대인것처럼 선전하는데 이르고 말았다.

근본적으로 정신상태가 이렇다 보니 일본군에게서는 작전이라고 해봐야 아군이 무적임을 전제로 한 한심한 전략만 나왔다. 게다가 그걸 사용해 본 결과 당연히 매번 환상이 와장창 깨졌다. 남이 대단하면 그 남을 뛰어넘을 생각은 안하고 남을 깎아내려 자신이 좀 더 위에 있으려는 하지만 자신은 아래에 있으니 문제 찌질한 정신승리의 연속이 낳은 당연한 결과인 것.

일례로 서부전선에서 미군은 독일군의 MG42를 일컬어 아군의 브라우닝 기관총보다 훨씬 허접한 물건이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정규 교범으로 일선사병들을 교육시켰다. 물론 실전에선 180도 달랐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미군이 '적에게 맞서 싸우다 죽는 건 대대손손 영광스러운 일이다!' 라거나 '우리 미국인들은 위대한 개척민의 후예이기 때문에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리볼버만으로 싸워야 참된 개척민의 후예들의 길이다!' 같이 전략전술에 실수할 수준인 자뻑질은 결코 안 했다. 하지만 일본군은 정말 저랬으니 문제.그리고 솔직히 총검 돌격보다야 리볼버들고 싸우는게 훨씬 낫다, 미군이 진짜 리볼버만 사용했다 쳐도 일본군이 여전히 반자이 어택만 고집했다면 일본군엔 여전히 희망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군은 초기에는 이런 짓을 하고서도 나름대로 괜찮은 성과를 뽑아 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결과가 일본군을 더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았다. 만약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여 졌다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어 이러한 미친 짓을 조기에 반드시 고쳤을 것이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래로 타이완 침략, 청일전쟁, 러일전쟁, 더 나아가서 만주 침략, 중일전쟁, 심지어는 태평양 전쟁 초기까지 이러한 미친 짓만으로도 뽑혔던 나름대로 괜찮은 전과에 고무한 일본 군부가 '어 우리가 한 말이 정말 맞네?'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자기들이 뭐가 잘못했는지 그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허나 앞서 거둔 '성과'는 솔직히 상대를 잘 만나서 가능했다. 결국 일본은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을 군사적으로 맞는 대상으로 추대된 한 다음에야 정신을 아주 잠깐 동안 차렸다. 혐한들 하는 짓거리를 보면야 이젠 그렇지도 않지만

비유를 하자면 어떤 싸움 잘 하는 일본군이라는 꼬마가 주변의 다른 비리비리한 중국군 같은 꼬마들과 싸워서 한 손 만으로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이 일본군이라는 꼬마는 한 손 만으로 싸워도 아무나 다 이길 줄 알고는, 미군과 같은 어른을 1명 보더니 '지난번에 두들겨 팬 애도 사람이고 저기 저쪽도 똑같은 사람이니 지난번 때린 애와 마찬가지로 한손으로만 싸워도 충분하겠지' 하고 어른에게 한 손 만으로 덤벼든 것과 같다.

결국 일본군이라는 꼬마는 그 미군이라는 어른에게 실컷 깨지고 나서야 일본군이라는 꼬마는 '아 이건 좀 아닌듯' 하기 시작했지만, 먼저 내민 한 손은 이미 깨질대로 깨져서 다시 쓸 수가 없는 지경이었고 결국 남은 한 손 만으로도 싸워보겠다고 한 발광이 카미카제 특공과 반자이 어택이다.남은 한손은 태어날때부터 기형이었던건가.

프랑스처럼 크게 깨지고 인구 수가 반토막이 나야 "아, 이게 잘못이구나"하는 교훈을 얻을 텐데, 일본은 끝내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을 군사적으로 맞는 대상으로 추대된 한 다음에야 '앗 뜨거' 했다. 그런데 넷 우익들 하는 짓거리를 보면 아직도 못 배운 놈들이 많은 듯하다.

일본군의 구시대적인 전쟁구상능력은 상기한 대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도 잘 쳐줘야 제1차 세계대전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일본군의 보병전술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비효율적이라고 드러난 사람 목숨은 내다버리는 식의 정신력을 강조한, 전술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방침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프랑스군도 써먹었던 전술이지만 그 프랑스군도 엄청난 인명손실에 경악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130만 프랑스군 전사자는 당시 프랑스의 18~24세 남자 인구의 27%에 달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전술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냥 갖다버렸다.

그 후폭풍도 만만치 않아서 이러한 인구 타격은 전쟁 뒤에 프랑스가 다시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는 데 엄청난 제약을 가져왔고, 2차대전 초기 독일의 위협적인 행보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이유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즉, 괜히 공격해서 사람 죽이지 말고 독일놈들을 실컷 죽인 다음에 밀어붙이자는 심산으로 소극적, 방어적 행보를 했다.

이런 프랑스군의 교훈을 일본군은 깨닫지 못하고 1945년까지 쓸만한 보병전술 하나 안 만든 채로 예전 방식을 그대로 고수했다. 결과는 망하는 방법을 고수했으니 망할 수 밖에.

일본군은 정신력이야말로 승리를 얻기 위한 최고의 요소이며 야마토 민족의 정신력은 세계 최고이다! 따라서 겁쟁이 영미 귀축 따위는 문제 없다!라는 교리를 개전부터 패전까지 계속 강조했다. 사령관이나 장교, 분대장 한둘이 이러면 그러려니 싶겠지만 이게 일본군 전체 교리였으니 문제였다.

사실 이게 그냥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 수준이면 좋겠는데 일본군은 이것이 지나친 나머지 그런 거 없스무니다. 당시 일본군의 정신상태는 정신력>무기라고 하여 정신력을 무기보다 위에 올려놓는 무기는 거들 뿐! 같은 어처구니 없는 자세였다.

3. 실전

아무튼 일본군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 싸우든, 줄곧 이런 방향으로 풀려고 들었다. 그 결과는 상대에 따라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사상자가 많으니 이기건 지건 대체로 좋은 꼴을 못 봤다. 이 전술은 상대방의 피로도가 최고도를 달리는 시간대에 써야 통할 듯하지만 그런 걸 신경쓰면 이미 일본군이 아니지.

태평양 전쟁이 중반에 접어들 때쯤이면 야음을 틈타서 공격을 했지만, 그건 낮에 막 돌격하다가 우월한 미국의 화력에 밀려 도무지 가망이 없어보이니까 야간작전에 매달린 것 뿐이다. 그러나 한밤중에 "와~ 천황폐하 만세~!" 하며 큰소리를 내며 접근했기에 오십보백보 수준.

게다가 이 때쯤이면 미군도 일본군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덕에 나름대로 조명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대비를 잔뜩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다.

3.1. 성공한 경우

상기했듯 막장이었던 중국군에게는 이게 아주 잘 통했다. 사실 당시 허접했던 중국군의 상황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최첨단(...)이던 일본군이 반자이 어택을 시전하는 것 자체가 굴욕이었다. 과장 좀 보태서 설명하자면 미군이 원시 부족민을 상대로 착검돌격하는 상황과 같다(...).

다행히 상대인 청나라 군대는 일본군도 능가하는 완전 막장이어서 총알도 없이 돌진하는 일본군을 보고 청나라 병사들이 "버틸 수 없는 정신력이다!" 하고 내뺐다.

이건 중일전쟁 뒤에도 마찬가지라서 "총검을 들고 달려들면 중국 군인들은 도망쳤습니다. 도망쳐 준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도망쳐 버립니다."라는 증언까지 있다.

덕분에 태평양 전쟁의 초기에는 본진에 신경쓰느라 '조그만 섬나라 황인종 따위'라는 마인드로 최소한의 장비만 갖췄을 만큼 준비가 부실했던 동남아시아의 미군 및 영연방 식민지군들을 쉽게 이기며 정신력으로 귀축영미를 처단하는 무적황군의 기분을 잠시나마 만끽했다.

그러니까 후방부대 상대로 정규군을 투입해서 그나마도 운빨 + 자멸로 이겨놓고는 오오 우리 진짜 좀 쩌는듯ㅋ 하며 정신승리를 한 셈.

경우가 좀 다르지만 김영옥이 지휘했던 일본계 2세로 구성된 미군 부대 100대대는 유럽 전선에서 당시 소대장이었던 김영옥이 부상을 입고 쓰러지자, 이에 분노해 독일군 부대에 반자이 어택을 걸어서 박살냈다. 그런데 정작 김영옥은 그냥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다 카더라. 아무튼 이 사건 이후 한동안 100대대는 야, 우리나라에 일본애들 모인 부대 있지? 걔들이 나치한테 반자이했대! 역시 잽스 클래스는 좀 다른 듯 ㅎㄷㄷ 라며 유럽의 미군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했다고 한다.

자, 여기까지는 총검 돌격의 효과적인 사례이다. 실제로 사기가 낮은 적군을 상대로 번득이는 총검은 그대로 적군에게 멘탈붕괴를 준다는 연구결과를 충실히 따른 사례다.

3.2. 실패한 경우

문제는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하고' 역습한 연합군, 특히 미군과의 대결에서는 대부분 접근은커녕 적 보병 얼굴도 보기 전에 우세한 화력에 태반이 쓸려나가고, 그 다음에는 오히려 일본군멘탈붕괴하여 도망가서 어떻게 손써보지도 못하며 대부분 전멸했다.

그래도 가끔은 제한적으로 성과를 거둘 때는 있었다. 바로 미군의 상식으로는 멀쩡 총기과연 멀쩡했을까... 내버려두고 난데없이 "BANZAI!!!" 라 외치며 닥돌해서 벌이는 백병전은 상상도 못할 짓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본군이 야간에 갑자기 반자이 돌격을 해오면 미군은 자신들의 상식으로 이해가 안되는 상황에 얼이 빠진 데다 시야도 확보하기 힘들어서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사실 일본군은 비교적 우세를 점할 수 있었던 순간에도 이런 짓을 저질렀는데 그 이면엔 일본군의 총기류는 . 그래서 저런 병신 같은 교리로 싸웠다. 뭐, 저런 정신줄따윈 집어치운 교리 때문에 총기의 취급이 더 안 좋아지는 면도 있었다. 그리고 총기가 안 좋아지니 다시 저런 교리에 집착하고... 이하 악순환. 게다가 '성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이에 고무한 상부에서 더욱 권장했고, '성과가 없다' 면 지난번엔 실패했으니 이번엔 애들이 바짝 정신차려서 제대로 하겠지하는 긍정의 마인드로 가볍게 넘기며 또 돌격을 지시하는 패턴의 무한반복... 전쟁이 중후반으로 접어들면 일선 병사들은 보급이 모자랐고 영양상태도 아주 나빴는데 대체로 이런 막막한 때에 자살적으로 반자이 어택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이렇게 죽을 바에는 쟤랑 함께 죽자'(...)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일제히 '반자이!'를 외치며 기합을 넣고 총검, 군도를 앞세워 돌격하고 혼자 죽는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달하고 피로가 극에 달해 지친 상태였으니 백병전을 벌여도 체력, 체격, 완력면에서 훨씬 우월하고 충분한 수면과 휴식 및 영양분 섭취를 행한 미군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설사 상태가 좋아도 일본군에게 있어서 근접전이란 '날붙이로만 하는 것'이었던지라 있는 검으로 휘두르고 찌르는 단순한 패턴만 썼다. 이에 맞서는 미군은 날붙이는 물론 개머리판, 주먹질, 발길질, 바디 블로, 권총 영거리 사격 등, 다양한 도구와 방법으로 근접전을 치루었다. 이러니 막상 근접전에 돌입해도 이지선다 뿐인 일본군은 다지선다로 덤벼오는 미군을 어떻게 할 방법이 딱히 없었다. 예를 들면 미군을 찌른다고 찔렀는데 이게 빗나가면 바로 미군의 개머리판이 일본군의 머리에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그 일본군은 그대로 헤롱헤롱... 사망 플래그

따라서 일본군의 반자이 어택은 전술적으로는 거의 의미 없는 행동이었지만, 일선의 미군들이 비상식적인 돌격을 되풀이한 일본군에게 적개심과 공포심을 품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목표달성(...) 이었다. 문제는 이 때문에 그 일본군을 두려워한 미군 병사들은 일본군의 바램대로 반자이! 한마디만 들어도 떨어서 사기를 잃는 것이 아니라 "저 무서운 미친 녀석들 살려두면 뭔 짓을 할지 모른다!"며 더욱 더 확실하게 일본군을 쓸어버렸다!! 저놈들은 테란이 아니라 저그야.

쪽발이들(japs) 잡는 건 쥐잡기와 비슷하죠. 군대오기 전에 고향에서 그런 일 많이 해 봐서 알아요.
-태평양전선에서 한 미국 해병대원

더욱 우스운 것은 이렇게 일본군의 무대뽀 닥돌질에 시달릴대로 시달린 미군이 똑같은 마인드로 '너 죽고 나 죽자'며 상당한 피해를 각오하고 과달카날 전투에서 반자이 어택을 본딴 육박전 공격을 편 적이 있었는데, 매번 착검 돌격을 구사해서 본인들도 돌격질에 철저하게 대비할 줄 알았던 일본군이 오히려 미군에게 제대로 착검돌격을 당해 전멸했다. 역관광 물론 이는 때와 장소를 안가리는 일본군과는 달리 새벽대를 노린 덕도 있고, 일본군이 설마 미 해병대가 이런 작전을 할 줄 몰랐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전에 이미 일본군은 병사들이 피골이 상접해서 제대로 싸울 상황이 아니긴 했다.

그리고 1944년 11월의 타라와 전투에서 궁지에 몰린 일본군 병사들이 좌초한 수송선 잔해에 숨어서 공격을 퍼붓자 미 해병대 1개 소대가 폭탄을 몸에 묶고 뛰어들어 수송선을 부순 적도 있었다. 결국 이 병력은 거의 전원 전사했다. 사실 일본군은 전선에 투입되기 전에 '미군은 겁이 많아서 오직 원거리 사격만 한다'는 교육을 받았는데 정작 미군들이 닥돌하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카더라.

그리고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진 뒤에 나온 소련군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내전과 대숙청 때문에 상태가 그리 안좋았던 30년대에도 일본군을 영혼까지 털어버렸고, 2차대전 말에는 독일군 상대로 기갑과 화력의 정면 대결로 이겼던 소련군은 일본군에게도 비슷한 전술을 구사했고, 전쟁 말 엉망이긴 했지만 100만에 육박하던 일본 관동군은 반격은 커녕 1주일 만에 개발살이 나버렸다.

  • 사실 소련군도 독소전쟁 초기엔 대숙청으로 인해 일본군처럼 전술의 격차를 무지막지한 인력으로 체웠고 그결과 큰 인명 피해를 봐야 했다. 다행히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연합국이 독일의 한쪽 팔을 잡아주던 형국이었고 이오시프 스탈린이 그나마 사람 보는 눈은 좀 있어서 게오르기 주코프 등 능력 있는 지휘관을 적절히 기용하며 지휘관들의 의견도 비교적 잘 들어줬다. 적어도 일본군보단 더 잘 들어줬다.

    그래도 초기 병크짓의 상흔은 커서 2차대전 말에는 차량은 남는데 보병이 부족해서 연합군 중 가장 기계화가 잘 된 군대가 되었다. 그나마 소련군은 이런 소모전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전쟁 후반에는 우수한 무기와 개선한 전략전술로 질이 뒷받침하는 숫적 우세를 앞세웠다. 결국 소련군은 독일군을 쓰나미 앞의 조각배 신세로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군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 소련군처럼 소모전을 반면교사로 삼지도 않았고, 우수한 무기도 없었고, 전략전술을 개선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냥 답이 없다.

이건 영국군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에는 독일하고 전쟁 때문에 영국본토 신경쓰느라 식민지 군대에 지원하기 힘들어서 밀렸지. 전쟁후반부에도 일본군 최정예를 2선급 부대로 맞서는데도 화력부터 열세인 데다가 마틸다 전차가 쓰러지지 않아서 밀리고, 간신히 육박전을 벌일 거리까지 다가와도 상대가 구르카 망했어요.게다가 지휘관이 무타구치 렌야였으니 답이 없다. 임팔 작전 참고

4. 일본군의 문제점

  • 일본군은 병력과 지원이 없다.

    같아보지만 전혀 다른 소련의 우라돌격은 항공기, 곡사포, 전차, 대전차포 등 중에서 1개 이상의 지원을 받거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양쪽 모두 보병끼리만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행되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전차나 지상공격기 등의 지원이 도착하길 기다렸지, 병사들한테 나가 죽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라돌격은 병력을 안전하게 끌어올 보급로가 있다면 죽어나간 만큼 계속 어딘가에서 병력을 실시간으로 끌어와서 돌격시킨다.(...)소련,미국 전용스킬, 그나마 미국은 쓰지도 않았다. 즉 우라돌격은 포병이 뒤에서 지원사격을 해주고 전차가 따라서 돌격하는 보병 위주의 돌격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형태다.

    이에 반해 일본군의 반자이 어택은 지속적인 병력 지원도 화력 지원도 없으면서 단 한 번에 전원이 몰려나가 공격하는 방식이다. 게다가 전장은 일본군은 병력지원이 적던 섬 전투라서 달리 병력 충원도 못 하던 상황이었다.

  • 일본군은 보병간 화력지원이 없다.

    일본도 초기의 반자이 어택에는 '그나마 개념이 있어서' 돌격시 기관총 엄호가 반드시 따랐다. 전술훈련 간 분대 이동시 기관총 사수 등의 엄호 사격을 통해 분대의 생존력을 높이려고 하는 시도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도 그나마 물자보급이 정상적이었던 처음이나 통하던 이야기였다.

    태평양 전쟁 중반까지만 가도 넘사벽으로 나오는 미군의 물량에 일본군은 버거워했다. 그리고 질적으로도 상대가 되지 않는데다, 화력지원만 빼놓고 봐도 일본군과 미군은 차이가 확연히 났다.

    또한 반자이 돌격은 휘하 장병들의 생존률을 결정하는 장교들이 지시했는데, 이들의 돌격 개념이 전쟁이 가면 갈수록 점점 비정상으로 바뀌었다. 끝내 교리는 내다버리고 총소리만 나면 적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다같이 반쯤 멘탈붕괴한 상태에서 하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비웃고 있는 일본군의 반자이 어택이다.

  • 일본군은 특별한 전략 없이 근접전을 감행했다.

    현대전에서 근접전이 가지는 의의 가운데는 상대편의 화력이 이쪽보다 우월할 때 그 우월한 화력을 병사들끼리 서로 뒤엉킨 혼란스러운 난전으로 몰고 가서 제대로 못 내게 만들려는 의도도 있다. 즉 화기는 원거리에서야 강하지만 냉병기가 통할 만큼 붙으면 순간적인 파괴력과 상황 대응능력이 더 떨어진다.

    일례로 미사일 발사기는 분명 강력하지만 상대 얼굴이 다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라면 후폭풍에 사수도 휘말릴 위험이 있으니 가까이선 못 쏜다. 그랬다간 사이좋게 저승행이다. 물론 권총 든 적한테 칼 들고 정면으로 달려들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게다가 이렇게 붙어버리면 아군 사격의 위험성 때문에 포병, 공군, 함포등의 화력지원을 전혀 못 받게 된다.

    상대방의 화력이 강할 때 시도하는 근접전은 상대의 화력이 세면 그 화력을 못 쓰도록 일부러 확 붙어버려 화력 격차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목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일본군도 어느 만큼은 이걸 노렸겠지만, 다가가기도 전에 들키면 도대체 어쩌라고(...)

    게다가 너무 근접전을 남발하다 보니 나중엔 적을 놀라게도 못했다. 게다가 유럽전선에선 어디까지나 경전차인 미군의 전차가 일본군에게는 중(中)전차 취급을 받아 전차 무쌍을 벌이는 마당에 일본군에게는 그걸 잡을 대전차화기도 변변찮고, 장갑차를 잡기조차 버거운데 오죽할까? 미군과 일본군은 애초부터 화력 수준이 너무 차이가 나서 근접전으로 어떻게 해결을 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요약하면 일본군은 근접전에서 필요한 화력이나 각개 전투 능력, 전투의지 등이 종합적으로 미군보다 열세였기에 그냥 죽는 사람만 잔뜩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 일본군은 근접전에 돌입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군이 화기를 못 쓸 만큼 달라붙으면 화력차가 좀 줄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위의 '화력의 차이를 줄인다'는 개념은 일본군과 미군의 비교를 보면 나오듯이 곡사화기의 장거리 지원화력의 차이가 너무나 커 일반적인 교전으로는 답이 안 나오니, 바짝 다가가서 소화기로 맞서겠다는 발상이다.

    그런데 일본군의 소화기는 댑따 긴 칼만 붙인 볼트액션 소총인데 이에 미군은 반자동 소총으로 맞섰다. 안그래도 명중률 높은 제식소총에 일본군이 가까이 달려와주는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원샷 원킬이 방아쇠 당길 때마다 일어났음을 알 만하다.(...)

    그나마 소총도 못 쓸 정도로 근접전을 벌인다면 기본적으로 연사력이 높은 기관단총이나 근접전에서 효율이 높은 샷건, 아니면 권총이 필요하지만 미군은 그 모든 것이 있었던 반면 일본군의 높으신 분들은 오로지 총검에만 목을 매었다. 만약 일본군에게 기관단총과 샷건이 제대로 있었다면 미군도 근거리 난전에서 엄청난 피해를 봤겠지만, 현실은 시궁창. 스텐 기관단총이라도 복사하지.(...) 사실 카피도 못한다

  • 대전차 삼지창, 대전차 발도술

    반자이 돌격의 개량형(...)으로는 세계사에서도 유래를 못 찾을 대전차 삼지창을 쓴 대전차 돌격술이 있었다. 이것은 뭔가 하면 죽창의 끝에다가 지뢰를 묶어서 적 탱크 쪽에 그대로 그 죽창을 들고 돌격하는 일본군 최고의 대전차 전술이었다. 치하를 위시한 일본의 전차들이 화력과 장갑이 매우 부실해서 대전차 전투가 거의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자 나온 방법인데 성과가 거의 없었음에도 이 무모한 전투 방식을 많이 썼다.

    그러나 실상은 일본군이 다가가기도 전에 미군 전차의 기관총 세례로 대부분이 전멸했고, 미군 전차의 공격을 피하는데 성공했다 한들 미군은 전차를 홀로 굴러다니게 놔두진 않았다. 따라서 일본군은 전차를 엄호중인 보병들에게 걸려서 죽기도 했다.

    자매품으로 복룡이 있는데 이것은 대전함 전술로 대전차 돌격술과 다른 것은 잠수부가 소형 어뢰를 죽창의 끝에 매달아 함선의 아래를 공격했으니 흠좀무. 심지어 말기에 가면 자돌폭뢰라고 해서 창 끝에 폭약을 달아 말 그대로 전차에 달려드는 롱기누스의 창 대전차 무기나 1식 투환관이라고 해서 청산가리 가스를 넣은 유리병을 전차의 관찰창을 향해 던지는 말도 안되는 무기가 제식 병기로 나왔다. 자매품으로 1식 화학 수류탄이 있으나, 말만 수류탄이지 그냥 청산가리 넣은 병이다.

    무타구치 렌야의 삽질 임팔 작전에선 심지어 대전차 발도술도 나온다. 갑자기 일본군 장교가 칼을 들며 뛰어올라, 머리를 내밀던 전차장을 죽이고 전차 안에서도 칼을 휘두르려다 조종수가 권총으로 죽인 일이지만.

  • 반자이 어택 전 일본군의 기도소리

    반자이 어택을 펴기 전에 덴노에게 작전성공을 기원하는 기도도 했는데 저 소리가 미군이 들을 만큼 컸으니 문제였다. 당연히 미군더러 "나 잡아잡숴" 하는 꼴이었다. 그런데도 엄호 화력은 고작 기관총 8정과 야포 2문에 그나마도 사격 금지(...)

    일본군도 어쨌든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라 반자이 어택 전에 공포심을 이겨내야 했는데 그 방법이 기도합창을 거친 자기최면 효과였다. 기도소리는 인솔자의 선창 아래 점점 크게 톤을 올렸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거의 고함을 지름과 동시에 돌격해 병사들이 무아지경 속에서 무모한 짓을 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심리적 효과는 전열보병 시대에는 사기 유지에 도움을 줬지만 1940년대에는 기본적인 화력 차이 때문에 그런 최면의 이익이 다 사라지니 문제였다.

    다만 반자이 어택이 무모한 돌격 행위라도 돌격할 때마다 기도한 것은 아니고, 전투 후반 패색이 짙어지면서 기도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그 때쯤 가면 일본군의 상태는 이미 더 안 좋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더더욱 역효과만 낼 뿐이었다.

  • 반자이 어택은 람리섬 전투 때 인간이 동물에게 당한 역사상 가장 큰 참사도 낳았다.

5. 미군의 특징

포로를 심문해서 알아낸 사실이 있었습니다. 항복하지 말라는 교리를 주입시킴은 바로 이런 식으로 무모한 돌격을 저지르도록 만들려는 준비였다는 점입니다. 즉, 돌격할 때 도망칠 궁리를 못하게 막으려는 의도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싸워봐야 명예만 남는 이상,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NHK 다큐멘터리, 태평양 전쟁 <적을 모른 채, 나를 모른 채 ~과달카날> 편
 
주코프: "일본군인이라면 반자이를 외치면서 용감하게 죽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일본군의 작전 교리 교재인 '보병교전' 이라는 에서는 '기습적인 육박전만이 최고' 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건 상기했듯 대부분의 강대국들이 제1차 세계대전까지 절대적인 진리인 줄 알았다가 100만 명이 11km를 위해서 죽고 다쳤던 참극을 겪은 뒤 완전히 폐기한 사상이었다.

그런데 일본군은 이걸 외로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밀고 나갔다. 또한 이 책을 거쳐서 포로 따위가 되느니 차라리 죽어라라는 세뇌를 적극적으로 시켰다. "그딴 교리로 훈련을 받았으니 이런 미친 짓이 나왔다"가 전후 역사가들의 주된 평.

5.1. 화력덕후 미군

이런 미친 짓을 하고도 열악한 일본군과는 달리 미군의 무장 상태가 매우 뛰어나서 별 성과가 없었다는 분석이 있다. 노업 저글링 VS 풀업 짐 레이너 미 해병대는 주무장으로 톰슨 기관단총반자동 소총 M1 개런드, 부무장으로는 근접전에서 유리한 콜트 M1911A1 권총이 있었고 사병들마다 수류탄 5~6개씩을 가지고 다녔으며, M2 중기관총브라우닝 자동소총 등의 지원화기도 제대로 두었다. 일부 미군들은 수냉식 기관총도 혼자서 들고 쐈다이쯤이면 근접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어찌어찌 붙는게 성공해도 근접전시 일본군은 일본군도남부 권총으로 싸워야 했지만 미군은 M1911 자동권총수류탄으로 싸운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한마디로 총기의 성능부터가 안드로메다 수준으로 차이가 났다. M1911A1은 수많은 실전에서 그 신뢰성을 검증받았으며, 100년이 넘은 2010년대에도 실전에서 충분히 쓸 만한 무기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남부 권총은 잘 관리하고 모든 조건을 안전하게 통제하는 사격장에서 쏴도 위험하다.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된다. 탄환의 위력에서도 차이가 엄청난데 M1911A1에 쓰는 .45 ACP(US Army Ball FMJ)의 운동 에너지는 477J. 남부 권총이 사용하는 8mm탄의 운동 에너지는 274J. 탄자중량도 .45ACP탄이 15g인데 8mm탄은 7g이다. 그러니까 M1911A1은 남부보다 더 무거운 총알을 더 세게 쏜다.

이렇게 정식으로 군대에서 받은 무기들에 더하여 개인 총기, 그러니까 총 좋아하는 미국인들답게 자기가 사거나, 가족이나 이웃·친구들이 일본군 잘 죽이고 무사히 돌아오라며 선물로 준 총까지 둔 대원들도 있었다. 기록을 보면 주로 권총이었지만 산탄총(!)을 들고 온 병사도 있었다고. 고기분쇄기


5.2. 백병전에서의 양상

그럼 만약에 이 악조건을 뚫고 순수하게 백병전을 할 수 있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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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실제 반자이 어택이 아니라 할 일 없는 미 해병대원들이 그냥 일본군들을 따라하며 노는 것이다.
일단 들고 있는 칼부터가 일본군의 카타나가 아니라 미군의 마체테다. 게다가 병사들의 해맑은 표정을 보라. 야 신난다! 일본군을 비웃는 듯하다.

굽시니스트는 자기 만화에서 이 사진에 "惡卽斬!", "더불어 칼을 섞어보자꾸나!", "I am the bone of my sword. Steel is my body, and fire is my blood"(...) 등을 써넣어 마개조했다. 과달카날 전투 만화에서 섬에 도착한 35여단이 멘붕하는 자기네 편을 보고 "이 섬의 미군은 어떤놈들이지??" 하면서 공격을 했는데 이 섬의 미군은 이런 놈들이었다라며 나온게 바로 위의 사진. 그 후 35여단은 한차례의 공격을 끝으로 궤멸당했다 라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Drive me closer! I want to hit them with my sword!#

사진 속 상황은 장난스럽지만 실제로는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미 해병대의 자동화기의 보급률이 낮았던 전쟁 초-중반에는 일본군이 반자이 돌격을 벌이기 전에 역으로 미군이 반자이 돌격을 벌이는 상황도 많았다. 육박전이 벌어지면 일본군은 저 커다란 친구들과 주먹을 섞어야 했다! 체격과 체력에서 훨씬 우세한 미 해병들이 근접전이라고 비실비실거리는 일본군한테 밀렸을까? 실제로 육박전 돌입에 성공해도 그냥 미군이 휘두른 개머리판이나 야삽에 맞고 죽었다거나 자다가 놀라 뛰쳐나와서 빈 손인(...) 미군 병사들한테 두들겨 맞거나 멱살을 잡혀서 내던져졌다고 한다.

어느 일본군 장교가 군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자 그걸 두 손으로 잡은 뒤 빼앗아 도륙냈다는 미군의 이야기도 있다. 그 병사는 두 손이 엉망이었지만 빼앗은 군도를 전리품으로 챙겨갔다. 이렇게 노획한 일본군도가 제법 많다고. 심하면 사무라이 명문가 출신의 병사가 보급받은, 다들 들고 있던 대량생산 군도가 아니라 센고쿠 시대부터 쓰던 집안의 가보인 일본도를 들고와 전사하고, 그걸 노획한 미군 병사가 나중에 횡재임을 알고 박물관에 기증하거나 비싼 값에 팔아치운 사례도 있다(...). 역시 일본군은 진정한 헌납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죽을 것을 알아서 비싸게 팔라고 가져온 것이라 카더라

사실 동양 군인들의 영양 상태가 많이 나아진 21세기에도 미군이 그 덩치에서 동양 군인들을 압도한다. 하물며 일본군의 영양 상태가 개판이던 태평양 전쟁 당시엔 미국인들과 일본인들의 평균 신장 차이는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이고 실제로도 그랬다.

더구나 총검술로도 일본군은 전근대식 밀집대형을 갖출 것을 전제로 한 창술 기반의 근대 총검술이지만 미군은 최후의 상황에서 병사 개개인의 호신을 위해 개발된 현대 총검술이니 이런 난전 상황에선 당연히 버틸 수가 없다!

5.3. 전투의지 및 사기 차이

육체적 조건말고 하나 더 특기할 만한 사실은 당시 미국 병사들의 정신 상태였다. "덩치만 컸지 정신력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영미귀축 병사들이니 일단 달라붙기면 하면 필승"이라고 당시 일본군 간부들이 생각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착각일 뿐이었으며, 오히려 정신력은 미군이 한참 우위였다.

당시 10대 후반 ~ 20대 초반의 미군 병사들은 현대의 경제난은 경제난 대우도 못 받을 만큼 지옥 같은 대공황을 어린 나이에 맞닥뜨린 세대였다. 대공황 당시를 살아간 세대는 남녀노소, 심지어 10살 남짓한 어린아이까지 먹고살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서 길거리와 농장, 어선 등 어디서나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자유방임주의가 최전성기를 이루던 당대 미국 사회에서는 그저 굶어죽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영화나 소설등에서 자주 묘사되는 구두닦이 소년이나 호외를 돌리는 어린이들은 그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 한마디로 일본군 선전물에 흔히 나오는 군기 풀렸고 호위호식하고 살아 배부름에 겨운 나태해 빠진 미군 따위는 이 시대에 한정하면 그냥 일본군의 망상 속에서만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었다고 보면 된다. 일본, 독일, 소련, 영국 만큼 처절하진 않았어도 이때는 제 아무리 쇼미더머니의 미국이라도 민간에서는 포탄 만든다고 밴드 연주자들 악기를 징발해 가서 아크릴로 대신 섹소폰을 만들던 시대다. 미국 사회 전체가 1차대전 후 대공황, 너스 아미 사건 등의 정치적 불안정, 사회적 양극화, 등의 역사적 시련 속에서 강철 같이 제련 되던 시절이었는데 사는게 결코 녹록했을리가 없다.

그래서 비록 다른 시대/세대에 비해 체격적 조건은 다소 부실했을지는 몰라도, 당시의 미국 청년들은 미국 역사상 최강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깡다구가 넘쳐 흘렀다. 위의 문단에서 나온 거짓말 같던 무쌍난무는 체격/체력조건 뿐 아니라 이런 정신적인 배경이 있어서였다. 심지어는 유럽전선으로 보내진 일본계 미국인 부대도 차별당하고 수용소에 갇힌 가족들을 생각하며 미국인으로 인정받겠다는 의지가 넘쳐흘렀다. 당시 남녀노소 미국인들의 이런 정신적 저력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치르고, 더 나아가서 종전 뒤의 황금기를 일군 인적자원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 세대는 지금도 Greatest Generation, 즉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대란 칭송을 들으며 작금에 전반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침체기를 겪고 있는 현대의 미국인들이 끝임없이 다시 돌아보고, 교훈을 얻으려는 세대이다.

그리고 당시 미군은 90% 이상이 자원입대자였다. 미국 여론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복수로 눈이 뒤집혔고, 일반인들부터 시작해서 대학생, 영화배우, 야구선수, 상류층 자제 등 사회 각계각층의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입대했으며,[5] 심지어는 신체조건 미달로 불합격 판정을 받은 사람도 어떻게는 참전하려고 노력했다.[6] 심한 경우 입대 불가 통지를 받은 청년이 낙담해 자살까지 한 사례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의 스티브 로저스나 더 퍼시픽유진 슬레지 등이 그 멸치같은 몸으로 어떻게든 군에 가려고 기를 쓰는 모습은 절대 과장이 아니며, 당시의 실제 시대상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본격적으로 주체 못할 파시즘약을 벌컥벌컥 삼켜서 총에 각인 된 국화 문양 똑바로 안 닦았다고 사람 죽도록 패던 일본군, 전쟁에는 전혀 의미 없는 유대인 학살한답시고 최우선순위의 물자들을 최전선이 아니라 절멸수용소로 돌린 독일, 아예 초반부터 전쟁에서 이길 의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궁금한 이탈리아(...) 등과 달리 미국은 인적 관리 또한 굉장히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당장 과달카날 같은 생지옥에서 구를만큼 구를 병사들은 휴가 등의 보상과 휴식도 확실하게 취하게 해 주고, 현대 와서 소위 말하는 똥군기라 불리는 사람 말 하는 거 하나 하나, 전투력과 전혀 무관한 사소한 행동거지 하나 하나가지고 권위로 병사들을 찍어 누르는 경우는 미군에서는 예외적인 경우였지, 일본군처럼 군기라는 변명이라 하기도 부끄러운 명목으로 일상적으로 병력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리고 직무 외에서는 언제까지나 수평적인 인간 관계를 기반으로 생지옥을 함께 해쳐나가며 서로 마음 깊이 신뢰하는 친구로서 다져진 미군들과 비교해 폭력과 억압, 계급에 따른 단순한 직무상이 아닌 인간적 차원의 차별 대우 등으로 억지로 단결력을 주입한 일본군 부대들의 실질적인 연대의식, 사기, 투지 등이 높았는지 의문이다.

이런 시대가 깡을 길러준 인재들이 자원입대하여 모이고 이들을 나름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운영하려고 했던 미군과 비교해서, 강제징집한 장정들을 각종 가혹행위를 가해 억지로 군기를 잡았을 뿐인 일본군의 정신 상태를 따져본다면 당연히 미군 병사들의 정신력이 훨씬 우월했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

6. 결과


반자이 돌격의 가장 전형적인 예로는 자칭 작전의 신 츠지 마사노부가 지휘한 과달카날 전투가 있다. 하지만 역시 미군의 기관총 십자포화에 제1차 세계대전의 연합군 병사들처럼 말 그대로 학살당했다. 1년여 뒤 동남아시아 임팔에서는 무타구치 렌야가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다" 크리로 아군을 아사시켰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끝까지 "내 잘못이 아니야, 부하 잘못이지!"라고 박박 우겼다. 그러니 죽은 부하들의 유족한테 뭇매를 맞았지.

태평양 전쟁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는 오히려 미군 쪽에서 일본군이 반자이 돌격을 해 오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이 때 적을 크게 줄여놔야 나중에 동굴이나 참호 등에서 농성하는 일본군을 소탕할 때 훨씬 적은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남들이 돌격할 때 도망친 뒤 숲에 숨어서 지내면서 저격이나 기습으로 미군을 공격하던 일본군들의 손에 죽어나간 미군이 반자이 어택 과정에서 죽은 미군보다 훨씬 많았다. 모든 일본군이 이런 식으로 싸워왔으면 그나마 상황이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았다.

전쟁 후반 들어 전세가 완전히 연합군측으로 넘어가고 일본의 최우선 목표가 본토방위로 정해진 이후로는 전력보존 차원에서 일본군의 반자이 어택 사용빈도가 극단적으로 줄긴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끝내 반자이 어택은 안 그래도 걸레짝이었던 일본의 패망을 더 앞당긴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로 남게 되었다. 즉 한마디로 말해서 19세기이전법에나 통했던 전법을 현대화기가 발전하는 가운데에 "안되는 억지"를 죽음으로 미화시켜 만든 일본군부의 가장 멍청하면서도 바보같은 전법중의 하나로 남게 됬다.

결국 모든 면에서 일본 병사들이 나은점은 없었고, 순수하게 백병전으로만 붙어도 일본 병사들은 미군 병사들에게 당연히 상대가 안 된다. 조금만 차분히 생각하면 쉽게 나올 이야기지만 일본군은 조금만 차분히 생각할 여력도 없으며, 현실적인 여건을 무시한 겉만 번지르르한 정신력 타령은 끝내 일본군을 정신력 측면에서도 열세로 몰아넣었다. 즉 고기방패 역할이나 아니면은 높으신 분들의 안위를 위한 희생을 미화시킨 이들의 사악한 팀킬전략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속 시행해왔던 것이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뻔한 교훈을 무시했으니. 저러니까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북한군들이 남한군들보다 용감할거라는 개드립이 나오는거지

7. 서브컬처의 반자이 어택

  • 레드 오케스트라 2의 스탠드 얼론 버전인 라이징스톰에서 일본군 특수 능력으로 등장한다. 일단 근접 공격 키를 누른채로 달리면 무조건 "덴노 헤이카 반자이!!" 나 "미나고로시다(몰살이다)!!" , "쇼리자(승리다)!!" , "토츠게키(돌격)!!" 등등 다양한 대사와 온갖 괴성, 고함을 질러대면서 자동으로 발동하는데, 여기에 버프가 걸려서 쓰는 일본군의 맷집이 올라가고 이걸 듣는 미군의 시점이 흔들리며 사기가 저하되는 효과가 있으며 여럿이 반자이를 발동하면 그만큼 버프가 크다. 하지만 레드 오케스트라 게임 자체가 리얼리티에 충실해서 한두발에 픽픽 죽어나가는터라 별 의미가 없고, 그나마도 패치로 너프먹었다.(...) 그래도 반자이 돌격 중엔 운이 좋으면 기관총 탄환 2~3발까지도 버텨내기도 한다. 미군의 반자동/자동 화기 비율이 워낙 높다보니 일반 소총수들조차 반자동소총인 M1 개런드로 무장하니[7]] 너무 쉽게 썰려나가는 터라 공방에서 반자이 돌격을 쓰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특히 최종보스 화염방사기가...

  • 메달 오브 아너 : 퍼시픽 어설트는 태평양 전쟁을 다루는데 일본군의 주요 공격으로 묘사한다. 덕분에 게임 전반에 걸쳐서 좀비 같은 지긋지긋한 반자이 차지를 경험할 수 있다.

  • 메탈슬러그 3의 스테이지 4 구 일본군루트에서 일본군이 줄에 메단 제로센과 인력 치하와 함께 나오는데 보병들은 폭탄을 굴리며 반자이 어택을 편다. 맵의 특수성과 인공지능 탓에 등장 보병으로써는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며, 정예병사는 죽으면 어떻게 죽이든 자폭까지 해서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3에서는 욱일 제국 제국 전사의 특수능력으로 고속으로 상대 보병에 접근 뒤 단칼에 즉사시키는 능력이다. 초기엔 고증에 맞춰서 발동시 방어력이 내려가고 속도가 빨라지게 하여 개가 없는 욱일의 밸런스를 조정했다. 반자이 모드가 되면 개나 의 짖기에는 면역이 된다. 그러나 방어력 하락 때문에 타 진영의 화력에 접근도 못하고 케첩이 됐다. 훌륭한 고증이다

    그러나 끝내 패치로 방어력 하락이 사라졌다. 게임은 게임인가 덕분에 욱일은 초반 유정싸움이 매우 유리해 보병 싸움에서도 안 밀린다. 처음엔 나름대로 충실했으나 현재는 밸런스 패치 때문에 개사기가 되었다. 단 싱글 플레이에서는 패치의 밸런스 수정 사항을 적용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패치했으니 괜찮겠지~ 하며 욱일 제국 임무에서 반자이 돌격을 한다면 역시나 다른 진영 화력에 그대로 갈려나가는 꼴을 감상할 수 있다.

  • 콜 오브 듀티 : 월드 앳 워에서도 반자이 어택을 겪을 수 있다. 일본군들이 "덴노헤이카 반자이~!!!" 라고 외치면서 플레이어에게 돌격하는데 역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와서 당하는 일이 잦다. 중간에 시체인 척 변장하고도 싸운다. 근데 이놈의 시체로 변장한 녀석들은 근접공격으로 찔러도 멀쩡히 살아있는 기적이... 일본군은 죽는 것만이 진리인가 변장이 풀리면 얄짤없이 1방이다.

    이들이 쓰는 착검한 아리사카를 뺏어서 쓸 수도 있는데 베테랑 난이도가 아닌 이상 역(逆) 반자이 어택으로 일본군을 푹푹 찔러대면 의외로 손맛도 좋고(...) 전선 돌파에 효율적일 때가 있다. 당연히 제작자들이 의도한 플레이는 '타이밍을 맞춰서 이벤트 진행키를 눌러 역관광 보내기'다.

    참고로 이렇게 '갑자기 돌진해와서 덮치며 타이밍 맞춰 키를 눌러서 대응하는 근접공격'은 시리즈 전통적으로 (군견)의 역할이다. 한마디로 일본군이 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개 같은 일본군

  • 미국 HBO 채널의 드라마 더 퍼시픽에서도 이러한 장면이 있다. 반자이 어택장면은 1화인 과달카날전투의 테나루 강 전투와 9화의 오키나와 전투에서 등장한다. 역시나 여기서도 달려오면서 폭죽이 된다....... 단 일본군과의 육박전을 직접 보여주는 장면은 찾기 힘들다.

  • 굽시니스트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서는 자위(反自慰) 어택으로 초월이식했다.

  • 1999년도 작 씬 레드 라인(Thin Red Line)은 이러한 육박전을 자세히 재연한 영화로 과달카날 전투에서의 미군과 일본군의 육박전 전술을 굉장히 자세히 묘사한다. 고지에서 일본군은 착검한 소총으로 돌격하고 미 육군 중대 역시 착검한 소총을 기본으로 기관단총, 산탄총과 콜트 권총 등으로 육박전을 벌인다.

  • 만주작전을 다룬 중국영화 퍼플 선셋에선 초반부에 일본군이 붉은 군대의 땅크 앞에 반자이 어택을 감행하다가 뼈와 살이 분리되며 녹아내리는 모습을 여과없이 다루고 있다.

8. 비슷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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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이 전투는 일본군의 막장성에 가려서 그렇지 소련군의 병크도 상당했다. 당장 전차 단독으로 돌진하는 것부터가 문제.
  • [2] 검술의 차이가 아니라 훈련의 차이의 문제였다. 말 그대로 평생 검술을 배운 사람을 군 복무기간인 고작 몇년동안 얼치기로 검술을 배운 사람이 근접전에서 이길수 있을리가...
  • [3] 애국심 & 정신력 강화및 국가 최고 원수의 군 통수권자화 등...
  • [4] 사실 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국력이나 병력 규모는 러시아와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이었다. 주위 국가의 압력과 당시 러시아 제국의 내부사정 때문에 조기에 협정을 맺고 판정승을 받은거지, 전쟁이 조금만 더 길어졌다면 일본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거기다 203고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이때부터 지휘체계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 [5] 대표적으로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밥 펠러가 있다. 라디오에서 진주만 공습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입대신청을 해서 해군 대공포병으로 무려 8개의 무공훈장을 받았다. 더욱이 펠러는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기에 징집대상자도 아니었다.
  • [6] 훗날 대통령까지 당선된 존 F. 케네디도 이런 경우.
  • [7] 물론 M1903 스프링필드 소총도 존재하지만 굳이 개런드를 놔두고 볼트액션 소총을 쓸 이유가 없다. 공방에서 이 소총을 들고다니는 사람은 그냥 개런드가 질려서 볼트액션 소총의 손맛을 느끼고 싶다던가 아니면 라이징스톰을 구매하지 않고 레드 오케스트라 2만 가지고 있어서 라이징스톰의 체험만 가능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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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8-04 15: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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