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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나 테레시코바

last modified: 2015-04-12 21:18:35 by Contributors


© Alexander Mokletsov / Александр Моклецов (cc-by-sa-3.0) from

사실 32살 때도 저랬다...
Russian International News Agency 사진


우주복을 입은 사진

키릴 문자 : Валенти́на Влади́мировна Терешко́ва
로마자 : Valentina Vladimirovna Tereshkova
한국어 : 발렌티나 블라디미로프나 테레시코바

우주에서 처음으로 한 말 : "여기는 갈매기, 기분 최고(야 차이카, 하라쇼)."(갈매기는 테레시코바의 호출부호였다.)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인. 그녀는 1937년 3월 6일 생으로 1963년 6월 16일 보스토크 6호를 타고 지구 밖으로 진출한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이다. 공군에 우주비행사로 뽑히기 전에 독특한 이력이라고 해봤자 낙하산 타기가 취미생활인게 전부였으며, 타이어 공장, 방직 공장에서 일한 평범한 여성 노동자였다. 그런데 이 취미가 우주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게... 당시 우주선은 충격 때문에 지면에 곧바로 착륙할 수 없어서 6,000m 상공에서 비행사가 낙하산을 타고 탈출해야 했던 것. 한마디로 낙하산 타기'는 우주비행사의 필수 조건'''이었던 것이다.

소련 군부 측에선 체제 선전을 위해 테레시코바를 우주비행사로 뽑았다는 말이 있다. 사실 이것도 세르게이 코롤료프유리 가가린을 우주로 진출시키고 난 후에 여자를 우주로 보내자는 아이디어를 내놨으며, 그중 테레시코바가 뽑힌 건 테레시코바의 계층이 프롤레타리아란 점도 있었으며, 두 살 때 사망한 아버지가 전쟁영웅인 점도 있었다. 이 선전효과는 아주 효과적이어서 소련은 미국에 빅엿을 먹이는데 성공, 그녀 역시 자신의 이미지를 십분 활용해 정계진출에 무난히 성공했으니 지금 보면 서로 윈윈 게임인 셈.

여성우주비행사 모집을 공고했던 시기는 1962년으로 이를 본 테레시코바도 모집공고에 응시하게 된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6살에 불과했다. 1년간 훈련을 받은 그녀는 1963년 6월 16일 12시 30분에 소련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보스토크 6호를 타고 우주비행을 성공하게 된다.[1] 총 70시간 50분동안 지구를 48바퀴 돈 뒤 무사귀환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는 당시 미국 남자의 우주비행기록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긴 시간이었다.

소련의 영웅으로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다. 소련 최고 훈장인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와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를 받았고 소비에트 연방 최고회의 의원과 공산당 중앙위원 직을 역임했으며, 1977년 엔지니어링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료 우주비행사인 안드리안 니콜라예프와 1963년 11월에 결혼하고 1964년에 딸을 낳았으나 성격차로 1982년 이혼하고 의사와 재혼했다.

우주비행을 그만둔 후에도 공군에 남아있다가 1997년 은퇴를 하게 된다. 그때 최종 계급이 소장, 다시말해 장군이었다.[2] 뭐 그 전에도 소련의 얼굴마담으로 많이 나섰지만, 소련 붕괴 이후엔 우주 관련쪽에서만 많이 나섰다.

그녀의 우주비행 성공으로 우주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깨졌다. 또한 여성이 우주에 장기간 체류시 일어날 수 있는 신체적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그녀가 지구로 보낸 첫 메시지인 "여기는 갈매기(나는 갈매기)"는 강하고 자유로운 여성을 뜻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단순히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뿐만 아니라 그녀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참 많다. 전세계적으로는 10번째 우주비행사였지만 의의는 닐 암스트롱에 비견될 정도. 이전까지의 우주비행사들이 모두 엘리트 군인이었던 것이 비해 테레시코바는 민간인이었고 노동자 계급이었기에 체제 선전용으로 그만이었다. 지구에 무사히 도착하자 당시 소련을 통치하던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여성은 약하지 않다”며 그녀를 추켜세웠다. 소련은 테레시코바를 통해 누구나 원하면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있다고 공산주의 체제를 선전하였고 테레시코바가 우주복을 입고 웃는 사진은 당시 소련에서는 ‘여성의 대명사’가 됐다.

이처럼 체제 선전용의 한계 때문인지, 테레시코바 이후 19년 동안 여성 우주비행사는 나오지 않았다. 1982년 8월에 가서야 두 번째로 소련의 사비스카야(Svetlana Yevgenyevna Savitskaya)가 소유즈 T-7호에 오르면서 여성 우주비행사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미국은 1983년 6월 챌린저호에 샐리 라이드가 탑승하면서 여성 우주비행사의 시대를 열었다.

한국인 이소연의 우주비행을 응원하기 위해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훈련기간 중 3번 이상 이소연을 만나 여성 우주인 선배로 격려를 아끼지 않을 만큼 이소연을 높이 평가했다. 이소연에 대해 "이소연은 정말 이해력이 높고 적극적이다"며 "이런 장점은 우주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우주실험 임무를 잘 해낼 것"이라고, "이소연은 이소연만의 우주 역사를 세우는 것"이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인 그녀는 "발사장에 들어서면 45년전에 우주선에 오르던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기회가 되면 다시는 못 돌아오더라도 화성에 가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여담으로 우주비행 당시 우주 식량을 정말 어마어마하게 먹어치웠다고 한다먹보 모에. 자세한 내용은 후술 바람.

2011년부터 통합 러시아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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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비록 우주비행 내내 우주멀미로 고생하긴 했지만.
  • [2] 다만 투스타는 아니고 원스타다. 소련군은 준-소-중-대가 아니라 소-중-상-대 순으로 장성 계급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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