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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last modified: 2015-04-15 02:50:51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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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캐나다 토론토 공연에서.


Bob Dylan (1941년 5월 24일 ~)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 (Robert Allen Zimmerman).[1][2]

Contents

1. 개요
2.
2.1. 여담
3. 디스코그래피

1. 개요

미국싱어송라이터이자, 화가이자, 시인이다.

비틀즈롤링 스톤즈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와 음악적 성과를 비교할 수 있는 분
대중 음악의 가사를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
포크를 현대 예술로 탈바꿈시킨 역사적인 인물
God of Folk
Voice of a generation.

2.

러시아유대인으로, 1941년 미네소타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대부터 블루스와 모던 포크의 대사 디 거스리, 엘비스 프레슬리(+ 초기 로큰롤)의 광팬이었던 그는 1959년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해 근처에서 밥 딜런이라는 예명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961년뉴욕으로 올라와 카페에서 반주를 하고 간간이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이 때 그는 우디 거스리의 병실을 찾아가 그를 간병하며 초기 음악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1962년 컬럼비아 레코드의 눈에 띄어 첫 앨범인 "Bob Dylan"을 발표한다.

본격적으로 재능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1963년에 발표한 "The Freewheelin' Bob Dylan" 앨범이었다.[3][4] "Blowin' In The Wind",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5] 등의 명곡이 쏟아져 나왔으며, 시적이면서 정치적인 깊이가 있는 가사와 모던 포크의 간결함을 수용한 이 앨범은 곧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이 앨범으로 인해 그의 음악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밥 딜런이 되고자 했다.[6] 하지만 그는 곧 심심한 포크와 폐쇄적인 포크 커뮤니티에 질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신은 딜런에게 비틀즈를 선사했다. 더불어 신은 비틀즈에게 딜런을 선사했다.

당대의 스타였던 두 뮤지션들은 곧 서로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특히 비틀즈존 레논은 딜런의 심도있는 가사[7] 그리고 대마초에 열광하게 되고, 딜런은 비틀즈에게서 로큰롤의 환희를 발견했다.[8] 비틀즈는 딜런의 영향을 받아 러버 소울을 발표하게 되고, 딜런은 후배 밴드인 "버즈(Byrds)당신이 알고있는 Buzz와는 다르다! Buzz와는!의 "Mr. Tambourine Man"과 자신의 앨범인 "Bringing It All Back Home"을 통해 록을 시험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본격적으로 포크 록에 도전한다. 그리고 기존 포크팬들에게 쌍욕을 먹기 시작한다.

정통 록에서 트로트로 변신하는 지금이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당시 포크 씬은 전기 기타를 드는 행위를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전기 기타를 드는 행위가 포크의 순수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65년 5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밥 딜런은 전기 기타를 드는 것으로 그들의 믿음을 배신했다. 이 날 록 역사에서 길이 남을 라이브 공연이 벌어졌다. "Like a Rolling Stone" 이 때 영상을 보면 밥 딜런이 전기기타를 든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와중에도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며 쓰레기를 던져댄다. 하지만 딜런은 아랑곳하지 않고 8월 "Highway 61 Revisited"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여러모로 밥 딜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우선 "Bringing It All Back Home"에서 간보기를 했던 포크 록을 본격적으로 완성시켰으며, 가사 역시 하나의 예술의 경지로까지 올렸다. 록 평론가 '데이브 마시(Dave Marsh)'는 이 앨범을 밥 딜런의 앨범 가운데 최고라고 평하면서, "이 무렵 그의 영향력은 너무도 확산되어 정말 수천의 사람들이 그의 언어 하나 하나에 매달리는 실정이었다."[9]고 말했다. 수록곡 "Like A Rolling Stone"은 6분이라는 파격적인 곡 길이와 비의적이지만 신랄한 가사, 당시로서는 복잡한 실험성에도 불구하고 싱글차트 2위에 올라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잡았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도 밥 딜런 커리어 중 으뜸으로 자리잡고 있다. 앨범전곡을 가사번역하신 분이 계신다. #

1966년에 발표한 "Blonde on Blonde" 역시 큰 찬사를 받았고, 작품성으로는 그의 정점이라 평해진다. 밥 딜런은 저 세 장의 앨범으로 천하를 제패했다. 하지만 앨범 발표 뒤에, 오토바이 사고가 일어나 크게 다친 그는 잠시 세간의 눈을 피해 요양하게 된다. 이는 사실 매니저 앨버트 그로스먼과 짠 계획이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던 딜런은 그로스먼과 신비주의 전략과 가정을 위하여 일부러 크게 다쳤다고 발표하기로 하고, 그가 다쳤단 소식이 들리자 딜런의 앨범 판매량이 급증했다.

복귀 이후 그는 히피 운동이 한창이였던 1960년대 말을 "John Wesley Harding", "Nashville Skyline", "The Basement Tapes"[10]같은 앨범을 녹음하면서 어쿠스틱과 컨트리에 집중하는 인상을 보였다. 이렇게 대중과 평단의 기대와 어긋나는 행보에 미묘한 반응을 얻던 차에 이혼 직후인 1975년 발표된 'Blood on The Tracks'으로 다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앨범과 'Desire' 이후 그는 다시 한 번 방향을 급격하게 전환한다. 종교 때문이었다.

1970년대 말, 기독교에 심취하기 시작한 밥 딜런은 1979년 "Slow Train Coming"이라는 가스펠 음반을 내놨으며 그래미 상도 타고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밥 딜런은 기독교에 심취함을 넘어 전도사로도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이후 그는 전도사 생활 비중을 늘리면서 예전보다는 덜한[11] 대중들의 관심 속에서 정규적인 앨범 발표와 공연과 반전 운동으로 1980년대를 보낸다. 허나 발표한 앨범들의 퀄리티가 전성기보다 못해서 이 시절은 그의 암흑기로 불린다. 정확히 콕 집어서 말하자면 백 밴드 놔두고 당대 유행인 뉴웨이브를 어정쩡하게 도입하려고 했다가 안 좋은 평을 받았다고. 그 와중에 기억될 만한 음악적 경력을 꼽자면 미국의 유명 뮤지션 25명이 녹음한 자선음반인 "We Are The World"의 녹음 참가 정도(...) 그래도 별다른 휴지기 없이 꾸준히 공연 돌고 반전 운동에 참여하긴 했다. 별로 눈에 안 띄는데다 상대적으로 걸작이라 할만한 앨범이 없어서 그렇지

1989년 "Oh Mercy"로 지금까지의 암흑기를 떨쳐버리고 재기의 가능성을 내비친 그는 1997년 "Time Out Of Mind"로 확실히 재기에 성공한다. 지금도 3~5년 간격으로 꾸준히 음반을 내놓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밥 딜런의 음악은 음악적인 뿌리 (블루스, 포크)를 찾아 회귀하는 인상을 보이고 있다.

2.1. 여담

알다시피 가사쓰는 실력을 보면 과연 보통이 아니다. 글과 말을 굉장히 잘 하기로 유명했으며, 신랄하면서도 예리한 그의 발언들은 그를 히피 세대의 대변인으로 자리잡게 했다. 하지만 그런 인기와 달리 그의 행동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였으며, 이런 아웃사이더적인 행동은 수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12] 다만 이런 개인적인 행동들 때문에 인생사가 심각하게 우여곡절이 많은 편이다. 이혼도 자주 했고, 마약도 하고, 사람들과 불화도 심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대중음악의 노랫말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서 1990년대 이후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올랐다. 뮤지션으론 유일하다. 특히 2004년의 경우 수상에 상당히 근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상은 못 탔지만, 노벨문학상의 성격에 관해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동안 조용하다가 2012년에 다시 후보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13]

60,70년대에는 앤디 워홀과 관계가 있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최근 20대 경관에게 노숙자취급을 받아서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리기도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줄 알았지 하지만 경관은 내 말을 듣지 않았어

90년대 초반에는 애플 컴퓨터 제품에 이름이 딜런이라는 것 때문에 소송 제기했다가 패소했는데, 미국 언론에게도 딜런 토머스 지인들도 문제시하지 않은 일이라고 비웃음을 들었다.

번안된 "Blowin' In The Wind"가 국내에서도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언어 문제와 앨범에 담긴 미국적인 향취 때문에 의외로 대한민국에서 밥 딜런 자체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다. 유명하지만 유명하지 않다라는 모순적인 표현이 잘 어울린다고 할까. 그래도 '아임 낫 데어' 같은 영화 때문에 일반 대중의 밥 딜런에 대한 인지도가 조금씩 늘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가창력은 그저 그런 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목소리가 나쁘다. 성량이 부족하고 웅얼웅얼거리며 부르는 노래는 위악적 가창이라 부를 만 하다. 하지만 독특한 창법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가수들이 많은데 리메이크 가수의 목소리로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밥 딜런의 원곡이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였던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14] 올리비아 뉴튼 존이 부른 'If Not For You'나 건즈 앤 로지스가 부른 'Knockin' On Heaven's Door'[15]가 그 예. 그런데, 2012년 작 "Tempest"에 수록된 "Duquesne Whistle"에선 루이 암스트롱을 연상시키는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다. 충공깽

부랑자를 연상시키는 겉모습과는 달리 부동산을 여러 개 소유한 부자인데다 개인주의자라 한대수와 같이 '쇼 비지니스를 이용할 줄 아는 가식쟁이'라며 까거나 싫어하는 포크 뮤지션들이 제법 있는 듯 하다. 오히려 더욱 진실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닐 영을 그보다 한 수 위로 쳐주는 정도. 사생활 면에서도 평가는 좋지 않다. 여성편력이 매우 심해서 이 여자 저 여자 돈 대주는라 열심히 돈 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니. 예전 여친들인 조안 바에즈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들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만 들어도 뭐...

2010년 3월 31일 잠실에서 내한공연을 열었다.

원피스 만화 연재본 572화의 제목인 'The Times They Are A-Changin'은 밥 딜런의 3집 앨범 제목이자 타이틀곡이다. 이 노래는 잭 스나이더가 감독한 영화 왓치맨의 오프닝 곡으로도 쓰였다. 오프닝 영상은 원작에서 길게 소개되는 미닛 맨 소속의 과거의 히어로들의 역사를 20세기 미국사의 여러 장면들과 함께 시간순으로 배치하여 보여주는데, 이는 원작의 긴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요약해 보여줄 뿐 아니라, 노래의 제목과 마찬가지로, 영욕의 세월을 거쳐 새로운 국면으로 치달아가는 작중 히어로들의 상황을 잘 나타낸다.

첫째 부인에서 얻은 네번째 자식인 아들 제이콥 딜런 또한 미국의 유명 밴드 '월플라워스(The Wallflowers)'의 리더로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아버지 밥 딜런 정도의 전설은 아니지만, 아버지 후광 없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 뜨고 나니 아버지가 밥 딜런이었구나 하고 알려질 정도. 1996년 앨범 Bringing down the horse, 그리고 이 앨범 최고의 히트곡 One Headlight 는 상당히 유명하고 1998년 Time Out Of Mind로 아버지 밥 딜런이 그래미 앨범상을 받을 때 월플라워스 역시 락부문 그래미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앨범부터는 그만한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잇다. 활동은 중단하기도 했지만 꾸준하게 하는 중. 밥 딜런이 심한 바람둥이었기 때문에 부자 간 사이는 좋지 않은 듯하다.

2013년 11월 13일 "Complete Album Collection Vol. 1"이 국내 정식 발매되었다. LP 미니어쳐로 제작된 정규 47개의 앨범들, 268쪽의 부클릿등 딜런의 음악을 귀로 직접 체험하고 싶다면 구입해보도록 하자. Vol.1이라는 타이틀이 무섭게 느껴진다. 돈먹는 박스셋 그래도 가격은 비틀즈보단 낫지

안어울리게도 크리스마스 앨범도 냈다. 그런데 개봉 사진을 보아하니... 은근 밝히는 에로한 오야지 음반 평은 별로라고.

여기까지 읽고도 '도대체 이 분이 뭐길래 이리 유명한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임진모 씨의 평을 읽어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3. 디스코그래피

연도제목
1962Bob Dylan
1963The Freewheelin' Bob Dylan
1964The Times They Are a-Changin'
1964Another Side of Bob Dylan
1965Bringing It All Back Home
1965Highway 61 Revisited
1966Blonde on Blonde
1967John Wesley Harding
1969Nashville Skyline
1970Self Portrait
1970New Morning
1973Pat Garrett & Billy the Kid
1973Dylan
1974Planet Waves
1975Blood on the Tracks
1975The Basement Tapes
1976Desire
1978Street Legal
1979Slow Train Coming
1980Saved
1981Shot of Love
1983Infidels
1985Empire Burlesque
1986Knocked Out Loaded
1988Down in the Groove
1989Oh Mercy
1990Under the Red Sky
1992Good as I Been to You
1993World Gone Wrong
1997Time Out of Mind
2001Love and Theft
2006Modern Times
2009Together Through Life
2009Christmas in the Heart
2012Temp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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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우리나라에서는 본명이 로버트 지머맨이고 밥 딜런은 예명이라는 식으로 알려져있는데, 그는 첫번째 음반을 내놓을 시기에 이미 밥 딜런으로 개명한 상태였다. 아들 이름이 제이콥 지머맨이 아니라 제이콥 딜런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 [2] 본인의 말로는 딜런 토마스의 시를 좋아해서가 아닌, 딜런이란 이름 자체가 멋있어서 따온것이라고 한다.
  • [3] "The Freewheelin'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4] 앨범 표지에 등장하는 여성은 당시 딜런의 전 여자친구인 수지 로톨로(Susan Elizabeth Rotolo, 1943년~2011년)이다. 여담에 따르면 수지의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졌다고 한다. 굴러온 복을 걷어찬 셈
  • [5] 양병집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이름으로 번안곡을 냈다. 김광석이 부른 곡은 이 번안곡의 리메이크이다.
  • [6] 국내 가수인 김민기도 그중 한명.
  • [7] Help!에 수록된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를 들어보면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다.
  • [8] 사실 그는 엘비스 같은 초기 로큰롤의 팬이기도 했다.
  • [9]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가사가 한층 심오해졌다. 다만 가사가 생각보다는 어렵지는 않다고 한다. ...영어/문화 장벽은 제외하자.
  • [10] 더 밴드와 작업한 앨범으로 유명하다. 녹음은 1967년에 마쳤지만 발표는 1975년에 했다.
  • [11] 사실 6,70년대 시절 밥 딜런은 요즘 웬만한 슈퍼스타, 걸그룹 뺨치는 수준이었다.
  • [12]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루 리드가 밥 딜런을 행동 모델로 삼았다는 점은 꽤 유명하다.
  • [13] 문인이 아닌데 노벨문학상에 선정된 경우는 '2차 세계대전 회고록'를 집필한 윈스턴 처칠,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장 폴 사르트르가 있다. 러셀은 수필을 많이 남겼고, 사르트르는 <구토> 같은 뛰어난 소설을 남겼다.
  • [14] 사실 밥 딜런과 같은 수준의 보컬리스트들은 노래를 못하는 것조차 하나의 미적 효과로 작용하게 된다. 애초에 멋지게 잘 불러야 듣기 좋을 노래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니까...
  • [15] 그런데 현실에서 이 노래는 건즈 앤 로지스가 부른 것으로 더 유명한 듯 하다. 오죽하면 존 본 조비가 "아가들아 GNR 노래가 아니라 밥 딜런 아저씨 노래란다" 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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