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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윤

last modified: 2015-01-04 14:42:56 by Contributors


이름 방성윤(方成允)
생년월일 1982년 6월 3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학교 휘문고 - 연세대학교
포지션 스몰포워드
신체 사이즈 195Cm, 100Kg
프로입단 2005년 드래프트 전체 1번(부산 KTF 매직윙스)
소속팀 서울 SK 나이츠(2005~2011)

2003 농구대잔치 MVP
김동우(연세대학교) 방성윤(연세대학교) 전정규(연세대학교)

2005~2006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신인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방성윤(서울 SK 나이츠) 이현민(창원 LG 세이커스)

Contents

1. 개요
2. 기록
3. 선수 생활
3.1. KBL 데뷔 이전
3.2. KBL 데뷔 이후 부상의 역사
4. 기타 사항

1. 개요

서울 SK 나이츠 소속 포워드. 대학 시절 누구나 한국 농구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실제로도 거의 근접했지만 부상과 미국 행에 따른 혹사로 인해 무너진 비운의 농구 선수.

2. 기록

정규시즌[1]
165경기 17.50점 4.21리바운드 2.50어시스트 1.64스틸 FG 42.98% 3P 38.70% FT 79.37% TS 57.2% eFG 52.3% 효율성 17.04

플레이오프
2경기 20.50점 4.00리바운드 3.00어시스트 0.50스틸 FG 39.39% 3P 31.58% FT 64.29% TS 52.3% eFG 48.0% 효율성 22.29

3. 선수 생활

3.1. KBL 데뷔 이전

195cm 92kg의 포워드로 고교시절부터 신장과 힘을 겸비하고 거기에 에이스기질까지 갖춘 선수로 2000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에 선정되며 일찌감치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문고 2학년때 무릎 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으나 연세대에 진학한 후 대학 농구 무대에서 활약을 보였다. 등장 초기에는 3점슛 되는 현주엽같은 선수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실제 활약상을 보면 덩치 되는 문경은에 가까웠다. 하지만 저 덩치야말로 방성윤의 최대 장점. 경기 전반에는 들어가지도 않는 3점슛 난사로 팀 분위기를 말아먹나 싶다가 경기 후반에는 덩치를 앞세운 저돌적인 인사이드 공격으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게 대학 시절 방성윤의 플레이였다. 그 시절엔 난사만 안 하면 참 좋은데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결국 난사 소리는 프로 가서도 끊어지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에이스기질이고 나쁘게 말하면 슛 욕심이 심한 타입이었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막내로 발탁되었고, 결승 중국전에서 막판 무리한 공격으로 팀을 말아먹을 뻔도 했으나 10득점 하는 등 괜찮은 활약을 하며 중국을 격파, 병역혜택을 받았다.

당연히 국내에선 특급 유망주로 전체 1번이 확실시되었지만, 국내의 계약금 규모나 자신의 마인드때문에 국내진출에 별 관심이 없었던 방성윤은 전격적으로 NBA 도전을 위해 NBDL 드래프트에 참가 신청하였으며 로어노크 대즐에 4라운드 20번에 지명되었다. 04-05 NBDL 시즌에서 평균 득점 12.5점 (15위), 3점슛 38개 (1위)에 선정되었다.

부산 KTF가 05-06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하였으나 서울 SK 나이츠와 3:3 트레이드를 통해 지명권을 넘겼다. KTF가 보낸 선수는 방성윤(지명권), 락영, 김기만이고 SK가 보낸 선수는 조상현, 황진원, 이한권 이었다.

3.2. KBL 데뷔 이후 부상의 역사

KBL 데뷔 첫 경기에서 현주엽과 맞상대하며 21득점 했으나 3쿼터에 5반칙 퇴장을 당했다. 이 때 3점슛은 7개를 던졌으나 2개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오 난사의 시작 05-06시즌에 평균 득점 17.2점, 4.2 리바운드, 1.8 어시스트로 신인왕에 오른다. 시즌 막판 LG의 외국인 선수 드미트리우스 알렉산더와 충돌하며 시즌 아웃되었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뽑혔다. 카타르전 42득점(3점슛:12개) 활약은 유명하다. [2] 국가대표 훈련 도중 발목 부상을 당해 06-07 시즌 초반에 제대로 뛰지 못하였으나 평균 득점 19.3점의 활약으로 국내 선수 득점 1위에 올랐다. (이후 3년 동안 3점슛 성공 1위, 2년 동안 국내 선수 평균 득점 1위) 시즌이 끝나고 손가락 수술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07-08 시즌에도 부상은 여지없이 찾아와 12월 21일 전주 KCC 이지스 전에서 코트에서 미끄러지며 끔찍한 부상을 당했다. 왼쪽무릎인대파열이었는데 팀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서 조기 복귀를 결정했고, 무릎에 테이핑을 둘둘 말고 시즌 막판 경기와 플레이오프를 치뤘다.

08-09 시즌 전에 다시 NBA 진출을 타진하기 위해 D리그에 진출했다. 리노 빅혼스가 전체 42순위로 그를 지명했고, 당시 리노의 감독은 전자랜드 감독을 지낸 바가 있는 제이 험프리스였다. 그러나 D리그에서 불과 4경기를 뛴 상황에서 하위권을 맴돌던 SK나이츠의 강력한 복귀 요청에 KBL 컴백을 결정하게 되는데 체중을 10kg 이상 감량해서 얼굴이 반쪽이 된 사람이 새벽에 비행기에서 내리더니 경기장에서 싸이클 좀 밟다가 23득점을 꽂아넣었다. 그러나 여지없이 한달도 안돼서 1월 4일 전주 KCC 이지스 전에서 추승균과 부딪혀 목 탈골 부상을 당하고 4주 진단을 받았으나 보름도 안되어 다시 복귀했다. 평균득점 17.3점으로 시즌 활약은 괜찮았다.

09-10 시즌도 여지없이 부상 악령은 찾아왔고 발목 부상으로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시즌을 저조하게 마쳤다.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취득하였고 원 소속팀 SK에 무려 5억 7천만원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되었다. 현재 KBL의 규정상 SK가 제시한 5억 2천만원 이상을 불러야 영입이 가능했고 SK가 김효범을 인센티브 포함 총 5억 1300만원에 영입하며 외국인 선수 2명, 아르헨티나 국적 1명, 캐나다인 1명 오오 글로벌 나이츠 오오 FA 미아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1억 3천만원에 극적으로 잔류했는데 저 계약을 그대로 믿는 농구팬은 그다지 없다. 어른의 사정

10-11 시즌엔 부상으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지 못했고 2011년 2월에도 결국 발등 피로골절 확진을 받고 사실상 시즌 아웃됐다. 야오밍이 이 부상으로 골골거리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선수 생활이 순탄치는 않을듯..

결국 30세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서 부상에 시달리던 Mr.빅뱅은 한국 농구계에굵다고 하긴 뭐하지만 굵고 짧은 족적을 남기고 떠났다. SK 나이츠는 그의 공백을 김선형이라는 걸출한 신인으로 잘 메우고 있다.

4. 기타 사항

NBDL에서 스탯 1위도 해보고 나름대로 활약한지라 한국 농구 선수의 NBA 진출 떡밥에 자주 오르내리던 선수.

연세대출신에 인기가 많은 편이라 올스타전에 자주 출전했지만 부상으로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이 많았다. 09-10 올스타전에서는 3점슛 컨테스트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문경은은 자신의 은퇴 후 누가 통산 3점슛 기록을 갈아치울까 묻는 질문에 방성윤이 가장 유력하지만 NBA간다고 왔다갔다 해서 잘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다.

사이즈와 힘이 모두 좋아 상대팀의 4번을 마크할수도 있는 등 수비 능력 자체는 괜찮은 편이지만 오지랖이 코트를 덮는 몹쓸 헬프 디펜스가 단점이다. 연세연기학원출신 아니랄까봐헐리웃 액션을 자주 시도하는 편인데 방성윤은 워낙 덩치가 커서 금방 티가 난다.

단 한번도 풀시즌을 치뤄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부상이 잦아서 남들 FA대박칠 때 망했어요. 얼핏 보면 게으른 천재같지만 김남기 감독, 김진 감독이나 신선우 감독의 말을 들어보면 의외로 성실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편이라고 한다. 운동능력만큼은 2000년대 나온 동급 신장의 선수들중 최고를 다툰다. 그 덕에 무릎이 버텨주질 못했지만.

난사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무리한 슛을 많이 시도하는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결과로 나타나는 3점슛 성공률은 높은편이다. 최근에 소극적인 국내 슈터들을 볼때 앞으로 국내에서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슛욕심의 레전드급. 유명한 카타르전에서도 흑형 2-3명이 붙건 말건 슛을 쏘고마는 근성을 보여준다. 막건 말건 전부 들어가게되면 허재한테도 도전장을 내걸만한 에이스기질을 보여주지만...

별명은 미스터 빅뱅[3], 방난사, 방유리(부상), 방역귀(난사로 패배의 원인이 되기도), 방가(방가방가?)

지붕 뚫고 하이킥에도 출연했다. [4] 주요 내용은 소아암 환자 돕기를 위해 방성윤이 돈을 내기로 하자, 극 중 정보석이 경기당 3만원씩 후원을 하기로 계획을 한다. 그러나 정보석의 오해로 한 경기당 3만원이 아닌, 1점당 3만원을 후원하기로 한 것이었고, 극 중에서 방성윤은 부상에서 회복한지 얼마 안됬음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득점을 뽑아내며, 심지어 72득점을 해버리며 정보석을 곤란하게 만드는것이 주요 내용.

지인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종업원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 지인과 함께 하키채, 골프채를 사용한 폭력 모두 포함해서 총 500회를 때린 혐의를 받었다.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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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6시즌동안 165경기를 뛰었다. 가장 많이 뛴 시즌이 36경기에 불과할 정도로 부상에 시달렸다.
  • [2] http://pann.nate.com/video/73548632 동영상은 여기에
  • [3] 소속구단인 SK나이츠의 스포테인먼트 정책에 따라 지어준 공식별명 하지만 농구팬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
  • [4] 다만 직접 배우로 출연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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