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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last modified: 2015-04-12 20:31:32 by Contributors


이름 Barry Lamar Bonds
생년월일 1964년 7월 24일
국적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포지션 좌익수
투타 좌투좌타
신장 188cm
프로입단 198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6순위
소속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1986~1992)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1993~2007)

1990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빈 미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
리 펜들턴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1992~1993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리 펜들턴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1~2004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제프 켄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96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 우승자
프랭크 토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노 마르티네스
(뉴욕 양키스)

Contents

1. 개요
2. 본즈의 지인
3. 될성부른 떡잎, 하지만
4.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시절
5.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시절
5.1. 지옥에서 온 마의 시대
5.1.1. 2000시즌 - 도루를 버리고 더 많은 홈런을 취하다
5.1.2. 2001시즌 - 단일시즌 역대 최다 홈런(73개)
5.1.3. 2002시즌 - 최고의 OPS 히터
5.1.4. 2003시즌 - “500홈런-500도루”달성 & 아버지의 별세
5.1.5. 2004시즌 - 약마의 마지막 시즌
5.1.6. 2006, 2007시즌 - 약마는 죽지 않았다
5.2. 통산 최다홈런 경신
5.3. 그렇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6. 약물 의혹
6.1. 그때는 금지약물이 아니었다?
7. 왜 본즈는 스테로이드에 손을 댔는가?
8. 약물 파동, 그 이후
9. 선수로서의 평가
9.1. 약물 이전
9.2. 약물 이후
10. 통산 1위 기록
11. 수상 기록
12.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
13. 여담

1. 개요

정말 좋은 의미로도, 정말 나쁜 의미로도 누구보다도 베이브 루스 이후 야구란 스포츠를 대표했던 선수.

현대 야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셀레브리티로 케빈 번즈의 야구 다큐멘터리 1994~2009편에서도 주인공 격 인물로 등장했다. 90년대 야구, 스테로이드 시대로 대표되는 흑역사를 모두 상징하는 선수. 쿠퍼스타운 입성 여부 별개로 후대까지 계속 회자될 수 밖에 없는 인물. 타 야구선수들에 비해 본즈 항목만 1년에 몇 차례 씩 수정되는 것만 봐도...


이건 베이스볼 레퍼런스 페이지.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는 선수마다 시즌별로 스탯을 구분하면서 각 부문 최고/최다/최소 등의 최우수 스탯에는 진한 글씨를 표시하는데, 본즈의 페이지에서 비율스탯 쪽을 보면 과장 좀 섞어서 전부 다 새까맣다. 그리고 리그베다 위키에 등재된 MLB 선수들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자랑하는 인물로 가치는 충분하다.

2. 본즈의 지인

메이저리그 올스타였던 바비 본즈의 아들이자, 명예의 전당 멤버이자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4위의 전설적인 선수인 윌리 메이스와 대부-대자 관계이며, "10월의 사나이" 뉴욕 양키스레지 잭슨과는 이종사촌 관계이다.

이는 아버지인 바비 본즈가 자기 아들을 키우기 위해 배리가 어릴 적부터 지인들과 꾸준히 만나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꿈은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대스타[1]가 되는 것이라서 어릴 적부터 그렇게 길러왔다고 한다.

바비는 아들 배리를 애지중지 업고 다니며 키웠다. 한시도 아들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철저히 좌투좌타 기초부터 시작해서 야구의 모든 것을 전수한다. 아들의 모든 시합을 관람하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어린 아이인 배리에게 사람들이 사인을 받게 하고 대부인 윌리 메이스를 멘토로 그의 모든 것을 배우라고 교육시킨다.[2] 메이스와 본즈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본즈의 샌프란시스코 입단식에 본즈가 메이스에 대한 존경을 표출하고 756호 홈런 신기록 경기에서도 함께 했다.

3. 될성부른 떡잎, 하지만


애리조나 주립대 학생선수 시절

본즈는 아버지의 기대대로 엄청난 대스타로 성장하게 되지만,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지나쳐서였기 때문인지, 성장한 본즈는 실력과 반비례해서 성격이 날로 거만해졌다. 고등학교 시절 전미고교 MVP 및 3년 통산타율 0.467을 기록했고 스카우터가 "나무배트로 홈런 때릴 수 있음?"이란 물음을 경기에 나무배트를 즉석에 들고 올라가 홈런을 쳐버렸다. 본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부터 2라운드 지명 받지만, 단돈 5천불이 적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애리조나 주립대 (Arizona State University)로 진학한다. 문제의 성품은 슬슬 드러나서 대학 시절부터 훈련을 마음대로 빼먹는 일이 잦았고 콧대가 높아서 "나 주전 안시켜주면 안 뜀"이라는 태도로 나와서 수많은 사람들을 열받게 했고 심지어 스카우터 유망주 리포트까지 그의 5툴을 칭찬함과 동시 인성 문제를 언급할 정도였다. 대학 시절 본즈는 공수주를 모두 갖춘 최고의 5툴 플레이어로 각광받았고[3] 팀을 NCAA 월드시리즈에 진출시키지만 이기적인 성격으로 대학 친구가 단 한명 없었고 코칭 스태프들이 미워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풋내기 주제에 멋대로 연습 빠지고 거만한 태도는 사람들을 슬슬 열받게 했고, 인성 문제 때문에 LA 올림픽 대표팀 차출을 실패했다는 소문까지 있다. 훗날 프로 데뷔 후에도 이런 문제로 인해 동료들 사이에서의 평은 극악이었으며,[4] 급기야는 홈런 대기록에 도전할 때는 "베이브 루스는 백인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MLB 역대 최강 타자는 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대단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반면 이런 모습도 존재한다.
s9-ballfour.jpg
[JPG image (175.41 KB)]
(...)
루키들을 위해 06년 스프링캠프에서 과감히 여장을 한(...) 본즈다. 그러나 분위기메이커, 동료의식, 리더로서 클럽하우스를 선도하는 선수는 분명 아닐 뿐더러 언론과 사이 역시 극악이었다.[5] 팬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반반이지만 친근한 선수는 아니었다.[6] 하지만 비슷한 케이스의 로저 클레멘스의 오만함이 미디어에서 오히려 투쟁심이라는 둥 긍정적으로 포장됬던 것을 감안했을 때, 사실 언론과의 마찰도 마찰이지만 야구의 꽃인 홈런기록을 흑인이 가져간다는 거부감이 작용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본즈의 홈런 신기록때 미국 남부 쪽 미디어가 대부분 외면한 것만 봐도... 이러한 점들은 본즈가 자의반 타의반 강제 은퇴하는 상황에서 옹호를 크게 얻지 못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4.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시절


2애리조나 주립대를 졸업한 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1라운드 지명 입단[7][8]해 1년 반의 마이너리그 생활 후, 1986년 5월 3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홈 경기에서 1번 타자로 데뷔했다.

이날 그는 오렐 허샤이저를 상대로 5타수 무안타 볼넷 하나에 그쳤다. [9]

마이너리그에서 미처 다듬어지지 않은 채 빅리그에 올라온 본즈는 데뷔 후 4년 동안 0.256의 타율에 그친다. 출루율은 0.345 정도. 본즈는 메이저리그 신인들이 그러하듯이 변화구 적응 능력이 떨어졌고 특히 좌투수에 약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충분히 겪어보고 대비하지 않은 탓이었다.

다만 첫해 성적은 좋았다. 113게임 간 타율.223, 16홈런, 48타점, 36도루를 기록했으나 신인상은 토드 워렐에게 빼앗겼다.

데뷔 3년 동안 본즈는 볼넷보다 삼진이 많았고 4년차(1989년)에 볼넷과 삼진이 93개로 같아졌으며 1990년 이후 지금까지는 16년간 홈런 타자이면서도 삼진보다 볼넷이 더 많은 선수가 되었다. 본즈가 최고의 선수가 되기까지는 4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4년 동안의 저조한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등 각종 비율 기록은 이후 커리어 내내 최고의 포스를 뽐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타자들인 베이브 루스루 게릭, 테드 윌리엄스의 대기록에는 미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데뷔 후 4년간 그저 그런 타율이었지만 신인치고는 좋은 선구안으로 준수한 출루율을 올렸고 매년 30개 수준의 도루를 기록했다. 그 결과 1번 타자로서 3년간 +90 득점을 올렸다. 홈런은 25개가 최고였지만 1번 타자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였다.

어느덧 메이저리그의 변화구가 눈에 익은 본즈는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며 피츠버그의 전성시대를 연다. 1990년에 본즈는 본격적으로 클린업 트리오에 들어섰다. “+30홈런, +100타점, +3할 타율”이라는 강타자의 요건을 여유 있게 충족시키며 MVP와 피츠버그의 리그 우승도 함께 가져왔다. 2000년대에 휴스턴에 “크레익 비지오-랜스 버크먼-제프 배그웰”이라는 ‘킬러 B’ 타선이 있었다면 90년 초반에는 피츠버그에 “배리 본즈-바비 보니야-제이 벨”이라는 ‘원조 킬러 B' 타선이 있었다. 피츠버그는 원조 킬러B 타선과 함께 3년 연속(90~92) 지구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 본즈는 0.301 타율과 114타점 33홈런 그리고 93개의 볼넷이 동반된 0.406의 출루율을 올리며 생애 첫 MVP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놀라운 것은 그의 도루 숫자. 52개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10]

1992~1993년에 본즈는 연속 MVP를 수상하고 역대 8번째로 MVP 3회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3번의 MVP를 수상한 것은 본즈가 처음이었다. 그나마도 1991년에 본즈는 테리 펜들튼에 밀려 MVP 2위를 차지했다. 단 2명의 기자만 1위와 2위 표를 바꾸어 투표했다면 본즈는 최초의 4년 연속 MVP 수상자가 될 수도 있었다.

당시에 아메리칸리그를 정복한 프랭크 토마스는 배리 본즈 만큼의 홈런포와 출루율을 기록했지만 본즈만큼의 도루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또한 토마스는 본즈가 통산 8차례나 가져온 골드글러브급 수비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11] 본즈는 홈런을 잘 치는 보기 드문 수준의 호타준족이었다. 본즈 자신도 이를 알고 있었고 야구 실력으로 따지면 자신의 아버지 바비 본즈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본즈가 인정한 선수는 자신과 같은 수준의 홈런과 도루를 생산했고 공수주 3박자를 완벽하게 갖추었으며, 자신의 대부이기도 한 윌리 메이스 뿐이었다.

1992년 시즌이 끝난 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본즈와의 계약을 맺는 대신 디 반 슬라이크[12]와의 계약을 선택했고, 본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거액의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본즈 없이 지낸 20년간 53552635644565666644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고, 21년째가 되어서야 5할을 넘겼다.[13]

5.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시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한 1993년 6년 4375만불이라는 당시 FA 계약자 최고 금액을 경신하며 화려하게 고향에 입성했다.[14]

1993년은 본즈가 아버지 본즈와 자신의 대부 윌리 메이스의 팀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한 첫 해이자 자신의 커리어 사상 가장 완벽한 한 해였다.(물론 21세기 신(神)으로 군림하기 전까지만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간판 타자가 되어 46홈런으로 +40홈런 시대를 열었고 0.336의 타율, 0.458의 출루율, 0.677의 장타율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최고의 해를 보낸다. 선구안은 나날이 좋아져서 볼넷이 삼진보다 47개나 많았으며 도루는 29개를 기록했다.

본즈는 홈런, 타점, 출루율, 장타율을 석권했고 득점은 2위, 타율은 4위를 기록했다. 드레스 갈러라가의 0.370 타율 때문에 1937년 이후 나오지 않았던 NL 트리플 크라운까지는 기대하지 못했지만, 도루를 잘하는 홈런왕이라는 희대의 타자가 된 본즈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결국 올스타 팬 투표 1위를 기록했다. 그것은 아버지 본즈는 물론 윌리 메이스도 기록하지 못한 것이었다.

내셔널리그(NL)에서 출루율과 장타율에서 동시에 1위를 기록한 것은 1981년 마이크 슈미트 이래로 처음이었으며 본즈의 0.336의 타율은 1937년 이후 타점과 홈런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쥔 27명의 선수들 중 최고 타율이었다. 126개의 볼넷 중 고의볼넷은 43개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2위를 기록했다. 인간으로 세울 수 있는 최고 기록을 본즈는 이뤄냈다. 논란의 시기 이전만으로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열 손가락에 꼽힐 만큼 대단한 선수, 그리고 역대 최고의 호타준족 반열에 있는 선수이다.

본즈는 1999년 부상과 부진으로 102경기 출장에 그치기 전까지 1994~1998년까지 변함없이 팀의 간판 타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MVP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평균 3할 타율, 4할 출루율, 6할 장타율 이상을 기록했고 평균 37홈런 이상을 쳤다. 도루도 여전히 평균 30개 이상이었고 급기야 1996년에 지금까지 역대 3차례 나왔던 단일시즌 “40홈런-40도루”를 달성했다. 당시엔 역대 2번째. 이는 본즈(1996년), 호세 칸세코(1988년), 알렉스 로드리게스(1998년), 알폰소 소리아노(2006년)만이 달성한 매우 희소한 기록이다. 블라디미르 게레로, 맷 켐프, 그리고 아버지 바비 본즈가 아쉽게 실패했다. 아버지보다 나은 아들을 야구에서 이뤘다.

1998년 본즈는 역사상 가장 희소한 업적을 또 달성한다. 그 기록은 본즈 자신에 의해서만 경신될 수 있는 기록이었다. 통산 “400홈런-400도루”가 그것이다. 역대로 “300홈런-300도루”를 달성한 선수는 본즈 부자와 가장 최근인 2012년 스위치 히터로서 최초로 달성한 카를로스 벨트란까지 포함 8명 뿐이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득점과 최다 도루를 경신한 최고의 대도(大盜) 리키 헨더슨은 1406개의 도루와 297홈런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50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선수는 33명이다. 본즈는 506개로 공동 30위. +500도루를 기록한 선수 중에서 본즈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297개를 기록한 리키 헨더슨이며 그나마도 200홈런을 넘긴 선수는 3명(리키 헨더슨, 조 모건, 폴 몰리터) 뿐이다.[15]

86~99년까지 본즈의 최종 성적은 평균 타율 0.287, 32홈런, 33도루, 102볼넷, 골드글러브 8회, 실버슬러거 7회, OPS 1위 5회, MVP 3회 수상(2위 1번)를 기록했고, 90년대 10년간은 3할 30홈런-30도루 100타점 4할 3푼 출루율, 5할~6할 장타율, 평균 8.5회의 어시스트와 지구 우승 4회, 지구 2위 4회를 기록했다.

90년대를 메이저리그를 삼분한 프랭크 토마스, 켄 그리피 주니어와 많이 비교된다. 본즈는 내셔널리그 지배자인 5툴 플레이어, 토마스는 3인 중 가장 강력한 타격을 앞세운 교타형 슬러거, 그리피는 홈런과 중견수 골글 10회로 대표되는 준수한 수비력이 특색이다. 내셔널리그로만 따지면 역대 최고의 공격형 포수인 마이크 피아자나 로키산맥 버프를 받고 부활한 '빅 캣' 드레스 갈러라가 정도가 본즈와 비교할 만 할지도? 그러나 1998년 마크 맥과이어새미 소사가 등장하면서 본즈는 이 둘에 가려졌고, 이들을 이기기 위해 선택한 것은 바로 약물이었다.

5.1. 지옥에서 온 마의 시대

2001 : .328 .515 .863 / 153G 73홈런 137타점 156안타 177볼넷 93삼진
2002 : .370 .582 .799 / 143G 46홈런 110타점 149안타 198볼넷 47삼진
2003 : .341 .529 .749 / 130G 45홈런 90타점 133안타 148볼넷 58삼진
2004 : .362 .609 .812 / 147G 45홈런 101타점 135안타 232볼넷 41삼진
(...) 에디트 해도 이정도면 재미없어서 안한다

2000년, 갑자기 49개의 홈런을 친 본즈는 2001년, 73개의 홈런을 쳐내며 단일시즌 최다 홈런기록을 세운다. 희생양이 된 박찬호 지못미 이 후, 상대 투수들이 적극적으로 피해가는 피칭을 했기때문에 그 후에는 40개 중반의 홈런을 때려냈지만 그 대신, 실로 경악스러운 수의 볼넷고의사구를 얻어낸다.[16]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포션 빨고 4년연속 메이저리그 MVP 수상을 하며 도합 7번의 MVP수상을 했다.[17]

5.1.1. 2000시즌 - 도루를 버리고 더 많은 홈런을 취하다

본즈의 경이적인 시즌은 기록상으로 2001년부터 드러났지만 그가 강하게 의심되는 약물 복용과 더불어 체계적인 근육강화 훈련을 통해 하드웨어를 집중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은 99년부터였고, 2000년부터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 같다. 99년~2000년부터 본즈는 도루를 현저히 줄이기 시작했다. 커진 체형은 도루 능력도 저하시켰겠지만 그것은 본즈가 의도한 그대로였다. 또한 점차 홈런을 의식한 스윙으로 2001년에는 93개의 삼진을 당하며 데뷔 년을 제외하고 최다 삼진을 당했다.

2000시즌 본즈는 49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새미 소사에 1개 차이로 뒤져 2위에 그친다. 그런데 소사는 604번의 타수만에 때려냈고 본즈는 480번의 타수로 때려낸 것이다. 볼넷 개수의 차이와 본즈의 부상으로 인한 결장이 그 원인이었다. 시즌 전반기 본즈는 28개의 홈런을 때려내어 55개 상당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본즈가 이전 MVP를 수상한 완벽한 시즌이었던 93년 전반기 24개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또한 2000년 전반기에 7할대의 장타율을 꾸준히 유지하였다. 그러나 7월부터 잔 부상에 시달린 나머지 페이스가 줄었고 홈런은 49개, 장타율은 0.688에 그쳤다. 홈런과 장타율 모두 커리어 하이였지만 시즌 전반기 페이스나 다음 시즌부터 이룰 업적을 생각하면 본즈로서는 부족한 실적이다.

2000시즌 49번째의 마지막 홈런은 개인 통산 494개째로서 루 게릭(493개)을 제치고 역대 단독 17위에 오르는 의미가 있었다. 캔들스틱 파크(본즈가 있었을 땐 스리콤 파크)를 떠난 자이언츠의 새로운 홈구장 AT&T 파크는 본즈를 위해 우측 펜스를 짧게 만들었고 보다 잘 맞으면 맥코비 만에 “풍덩” 빠질 수 있는 홈런(Splash Hit)을 팬들에게 선사하기 시작했다. 이는 좌타자인 루스와 게릭을 위해 양키스가 우측 펜스를 짧게 만든 것과 다를 바 없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인 셈. 2000년에 본즈는 5월 1일 최초의 스플래시 히트를 포함 자이언츠 선수 중 유일하게 6개의 스플래시 히트를 기록하였다. 그 외 디백스의 루이스 곤잘레스와 다저스의 드 헌들리만이 한 차례씩 기록했을 뿐이었다. 과거 최희섭도 한 차례 스플래쉬 히트를 때려낸 바 있다.[18]

2000년에 통산 9번째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4월 8일 461번째 도루를 성공시켜 아버지와 공동으로 도루 부문 역대 43위에 올랐다.

시즌 종료 후 메츠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29타수 6안타(타율 0.207), 3개의 2루타, 3루타 1개, 3타점에 그쳤지만 메이저리그와 일본리그 올스타 시리즈에서는 28타수 9안타(타율 0.321), 2루타 2개, 4홈런, 9타점을 올려 시리즈 MVP를 수상하였다.

5.1.2. 2001시즌 - 단일시즌 역대 최다 홈런(73개)

2001년에 본즈는 전인미답의 MVP 4회 수상자가 되었고 98년 마크 맥과이어에게 빼앗긴 최고 슬러거가 가질 수 있는 최고 기록들을 모두 가져왔다. 더 무서운 것은 그가 남긴 경이적인 기록들을 해를 거듭하며 스스로 경신해 나가는 것이다. 이제 현시대를 넘어 본즈는 메이저리그가 고도화, 현대화되기 전에 천재적인 몇몇 선수들이 남겼던 전설적인 기록들을 하나 둘 일깨우며 잊혀졌던 옛날의 슬러거들을 불러냈다.

선수들 능력이 상향 평준화되고 훈련 방식과 장비 등이 고도화된 오늘날에 독보적인 기록을 남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000년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그런 위대한 일을 해내긴 했지만 그것은 1~2년이었고 본즈는 4년동안 깽판치기 시작했다.

2001년에 본즈가 남긴 단일시즌 신기록 5가지.
① 73개 홈런 ② 177개 볼넷 ③ 0.863의 장타율
④ 100타석당 15.34개의 홈런(100타석당 홈런 비율)
⑤ 6.52타수당 1개의 홈런(홈런당 타수 비율)

알다시피 73홈런은 98년 맥과이어의 70개를 경신하는 것이었다. 177개의 볼넷은 1923년 베이브 루스의 170개를 경신하는 것이었으며 0.863의 장타율은 1920년 루스의 기록(0.847)을 81년 만에 깨는 것이었다. 15.34의 100타석당 홈런 비율은 맥과이어의 1998년 기록(13.75)을 깨뜨렸고 동시에 홈런당 타수 역시 같은 해 맥과이어의 기록(7.27타수)를 갈아 치우는 것이었다.

약물의 힘을 빌린 2000-2001년간 122개의 홈런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차지했고 같은 기간 새미 소사가 114개로 2위였다. 다만 소사는 2년간 129개(98~99시즌)의 홈런을 친 바 있고 2년간 역대 최다의 기록이다. 하지만 소사는 342번의 삼진을 당했고 본즈는 170번의 삼진을 당했을 뿐이다.

본즈가 남긴 2년간 122개의 홈런은 MLB 좌타자 신기록이다. 루스의 114개(1927~28)를 경신한 것. 본즈의 73개 홈런 중 원정 경기 홈런은 36개로 역대 1위다. 루스(1927)와 맥과이어(1998)의 32개를 갈아치웠다.

한편 0.515의 출루율은 2001년 당시 메이저리그 역대 8위였고 1900년대 이후 선수로는 역대 5위의 기록이었다. 내셔널리그에서는 역대 1위(AL에서 뛴 베이브 루스, 테드 윌리엄스만이 본즈의 2001년을 능가).

참고로 5할 이상의 단일시즌 출루율을 남긴 선수는 베이브 루스, 테드 윌리엄스, 미키 맨틀, 본즈 뿐이다. 루스는 5회, 본즈는 2001~2004시즌 연속 4회, 윌리엄스는 3회, 맨틀은 1회. 그 외 선수들의 최고 출루율은 프랭크 토마스 0.487(1994년), 제이슨 지암비 0.477(2001년), 카를로스 델가도 0.470(2000년) 등이다.

2001년 본즈는 156개의 안타를 때렸지만 그 중 장타는 107개에 달하여 파워 증가가 그의 타격에 한 몫 했음을 짐작한다. 장타 개수로는 역대 공동 3위. 1위는 루스의 119개(1921년)이며 2위는 게릭의 117개(1927년)다.

전반기 39개 홈런을 몰아치며 1998년 맥과이어와 1969년 레지 잭슨의 37개를 경신하였다. 200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빠른 발과 정확한 컨택 능력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이치로(AL)에 이어 올스타 최다 득표 2위를 기록했고 개인 통산 3번째로 내셔널리그(NL) 올스타 투표 1위에 올랐다.

4월 17일에 LA 다저스의 테리 아담스를 상대로 스플래시 히트를 기록하며 500홈런 클럽에 가입하였다. 시즌 중 6게임 연속 홈런을 2차례 기록하였고 6게임 동안 9개의 홈런을 친 것은 NL 역대 1위다. 참고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연속 게임 홈런은 8게임이다. 피츠버그 해적단의 '대일 롱'(1956년), 뉴욕 양키스돈 매팅리(1987년), 시애틀 매리너스켄 그리피 주니어(1993년)가 기록한 바 있다. 전 세계 프로 야구까지 확장시킨다면 9경기 연속 홈런이 1위 기록으로 그 주인공이 바로...

5월 19일과 9월 9일에 한 경기 3홈런을 기록(개인 통산 3번)하였고 베이브 루스, 로저 매리스,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에 이어 역대 5번째 +60홈런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아가 +50홈런을 넘긴 최고령자(37년 18일)가 되어 99년 맥과이어의 기록(35년 326일)을 경신했다.

5월에는 이달의 선수(Player of Month)에 선정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1958년 이달의 선수를 선정한 이래 NL 역대 최다(8번)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5월의 17개 홈런은 한 달간 최다 홈런 ML 타이기록이었다. 미키 맨틀마크 맥과이어의 15개를 능가하고 루스의 1927년 9월과 메이스의 1965년 8월과 타이를 이루었다.

시즌 마지막 56게임에서 본즈는 173타수 68안타(타율 0.393, 56득점, 31홈런, 59타점을 올렸고 시즌 153경기 중에서 61경기(대략 40%)에서 홈런을 때려냈다. 시즌 마지막 8번의 3연전(혹은 4연전) 시리즈에서 모두 홈런을 때려냈고 마지막 19번의 3연전 시리즈에서 18차례나 홈런을 때려냈다. 다시 말해 본즈는 2001년에 시도 때도 없이 홈런을 쳤다.

기록 경신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가 기록한 볼넷이 말해주듯이 투수들은 그를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즈는 결코 서둘지 않았으며 타석에서 여전히 침착했다. 69개 홈런 이후 한 동안의 침묵을 깨고 10월 4일 휴스턴의 윌프레도 로드리게즈를 상대로 70번째 홈런을 뽑아냈다.

다들 잘 알다시피 박찬호를 상대로 71, 72호를 뽑아냈다. 그것도 427피트, 407피트짜리 대형홈런을 때려냈다. 다행히 데니스 스프링어를 상대로 73호를 쏘아 올리며 마지막 홈런의 희생양은 면했다(...).

5.1.3. 2002시즌 - 최고의 OPS 히터

본즈는 0.370의 타율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다. 2001년 엄청난 홈런에 놀란 투수들이 도망가는 피칭을 하였지만 결코 본즈는 달려들지 않았다. 레이더에 걸리지 않으면 버렸고 걸려들면 넘겨버렸다. 정말이지 무서운 인내심이었다. 90년대에 이미 그는 삼진보다 볼넷이 많은 선수였고 04 시즌 정점을 찍는다.

프랭크 토마스의 타력과 선구안, 켄 그리피 주니어의 간결한 스윙과 수비 능력 그리고 니 로프턴 급의 주력을 골고루 갖춘 선수가 본즈였다. 장타력도 이미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약물과 트레이닝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위하기 시작한 2000년대에는 엄청난 장타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주력을 포기했지만 경험에 비례하는 선구안은 날로 예리해졌다. 장타력과 선구안은 본즈에게 경이적인 수준의 장타율과 출루율을 동시에 남겼고 급기야 OPS는 역대 최고를 기록한다.

본즈의 위력과 선구안은 198개의 볼넷으로 나타났고 2001년 볼넷 기록을 경신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0.582의 출루율을 기록하며 1941년 테드 윌리엄스의 기록(0.553)를 61년 만에 깨뜨렸다. 출루율과 장타율이 합해진 OPS는 1.381로서 1920년 베이브 루스가 기록한 1.379를 82년 만에 경신했다.

홈런은 46개에 그쳤지만뭐가 그친거냐 많잖아볼넷이 많아 타수가 줄어든 결과였고 타수당 홈런 비율은 여전히 양리그 전체 1위를 고수했다. 3.7 타수당 1타점 역시 리그 최고 기록이었고 그가 당한 삼진은 홈런보다 1개 많은 47개였다. [19] 장타율도 0.799로 1위. 개인통산 4번째의 3홈런 게임도 기록했다.

68개의 고의사구는 윌리 메이스와 함께 자이언츠의 최고 타자로 남은 리 맥코비의 45개(1969년)를 경신하는 것이었다. 이전 글에 언급했지만 93년에 본즈는 이미 맥코비에 이어 역대 2위의 고의사구(43개)를 기록한 바 있었다.

5.1.4. 2003시즌 - “500홈런-500도루”달성 & 아버지의 별세

2003년은 본즈의 경이적인 시즌 가운데에 가장 평범한 해다. 그렇지만 누구든 단 1년만이라도 이런 성적을 거둘 수 있다면 그는 한 시즌에 많은 것들(MVP, 올스타, 실버슬러거, 행크 아론 상, 특급 연봉 상승 등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45홈런, 90타점, 111득점에도 불구하고 43홈런, 124타점, 137득점을 올린 알버트 푸홀스를 제치고 전인미답의 6번째 MVP를 수상한 것은 역시 148개와 79개라는 볼넷 차이가 그렇듯 본즈의 압도적인 힘 때문이었다. 더욱이 본즈는 오랜 암 투병 끝에 사망한 바비 본즈의 장례 문제로 평소보다 10경기 이상 더 결장하였다. 아버지의 장례와 잠시 동안 방황을 하며 몇 차례 팀을 벗어났다가 돌아온 뒤 곧바로 출전한 게임에서 연장 10회 끝내기 홈런, 다음 날 랜디 존슨으로부터 솔로 홈런을 뽑아내어 2-1로 팀 승리를 견인했다.

2003년 6월 24일 전대미문의 “500홈런-500도루”를 달성하였다. 홈런을 추가하여 달성한 400-400과 달리 이번에는 도루를 추가하여 500-500이라는 기록을 성취하였다.

9월 15일에 본즈는 베이브 루스의 통산 볼넷 기록(2062개)을 넘어섰다. 자이언츠에서 7시즌 +40홈런을 치며 6시즌을 기록한 전설의 윌리 메이스를 능가했다. 4년 연속 +100득점 시즌이자 11번째 +100득점 시즌이 되었고 64번의 멀티 홈런 게임을 기록하며 루스(72번)와 맥과이어(67번)에 이어 이 부문 역대 3위에 올랐다.

5.1.5. 2004시즌 - 약마의 마지막 시즌

믿고 보는 기사 본즈의 적은 배리 본즈 자신뿐인 만인지상 시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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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를 넘어 멸망만 남은 2004 시즌 4월부터 월별 세부 스탯. 4월 고의사구, 장타율에 주목하라. 장타율은 절대 OPS가 아니다!! 본즈를 상대한 투수들은 단 4월 한달 상대해보고 아예 승부를 포기하고 고의사구를 남발했다. OPS 1.2를 한달만 찍으면 본즈 놀이로 칭하는데 오리지널은 한달동안 OPS 1.828를 찍었으니 답이 없다(...). 어쩌기는 닥치고 걸러야지

홈런 : 본즈 73개(2001) / 마크 맥과이어 70개(1998)
볼넷 : 본즈 232개(2004) / 베이브 루스 170개(1923)
고의사구 : 본즈 120개(2004) / 윌리 매코비 45개(1969)
출루율 : 본즈 .609(2004) / 테드 윌리엄스 .553(1941)
장타율 : 본즈 .863(2001) / 베이브 루스 .847(1920)
OPS : 본즈 1.422(2004) / 베이브 루스 1.379(1920)

본즈가 2001~2004 4시즌간 달성한 시즌 최다 기록이다.

4월8일(이하 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와 휴스턴의 경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600홈런 타자와 300승 투수와 대결이 펼쳐졌다. 본즈가 휴스턴에 입단한 로저 클레멘스와 약 VS 약 맞대결을 벌이게 된 것. 약 더비매치 클레멘스는 1회 첫 대결부터 고의사구를 내줬지만 나머지 두 번은 모두 삼진을 잡아냈다. 둘은 이날을 시작으로 총 8번의 승부를 벌였는데, 결과는 2타수 무안타 5볼넷(고의사구3) 1몸맞는공 2삼진이었다.

4월13일 본즈는 맷 키니(밀워키)를 상대로 통산 660호 홈런을 날림으로써 자신의 '대부'이자 역대 3위 윌리 메이스와 타이를 이뤘다. 키니는 본즈에게 홈런을 맞은 것에 대해 영광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본즈는 다시 벤 포드(밀워키)로부터 661호를 때려냄으로써 단독 3위가 됐다. 흥미롭게도 660호와 661호 홈런볼은 모두 맥코비만에서 카약을 타며 대기하고 있던 한 사람의 손에 들어 갔는데, 그 사람은 660호 공을 본즈에게 주고 자신은 661호를 가졌다.

본즈는 13일부터 21일까지 7경기에서 매 경기 홈런을 기록하면서, 데일 롱(1956) 돈 매팅리(1989) 켄 그리피 주니어(1993)가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8경기 연속 홈런 기록에 1경기 차로 접근했다. 그러나 다음 경기에서 세 차례 타석에 들어서는 데 그쳤고, 볼넷 2개와 삼진 1개를 기록하며 홈런을 때려내지 못했다. 한편 4월19일 경기에서 본즈에게 4타수4안타 2홈런(2루타1) 5타점으로 혼쭐이 났던 다저스는, 24일 본즈를 다시 만나게 되자 철저히 피하는 작전을 썼다. 이에 본즈는 2타수2단타 4볼넷으로 경기를 끝냈다. 볼넷 4개는 모두 고의사구였다.

4월30일 본즈는 통산 668호를 때려냄으로써 332개로 은퇴한 아버지와 함께 최초의 '가족 1000홈런'을 달성했다. 한편 2위 기록은 아버지가 152개, 아들이 630개를 기록한 켄 그리피 부자의 782개다. 6월5일 샌프란시스코와 콜로라도의 경기. 콜로라도 클린트 허들 감독은 2-2 동점이었던 5회초 1사 1루에서 본즈가 등장하자 베테랑 좌완 제프 파세로에게 고의사구를 지시했다. 하지만 파세로는 이를 거부하고 정면승부를 했다. 결과는 허들의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7월11일 볼티모어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본즈의 위력을 실감한 볼티모어 리 마질리 감독은 2차전에서는 본즈를 아예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본즈는 1타수 무안타 5볼넷 4고의사구를 기록하고 경기를 끝냈다. 본즈는 5타석 5볼넷 두 경기를 포함해 통산 세 번의 5볼넷 경기를 만들어냈는데, 메이저리그 기록은 지미 팍스가 1938년에 기록한 6타석 6볼넷이다(연장전 제외).

경기는 본즈를 피해 도망을 다닌 볼티모어가 5-4로 승리했다. 본즈는 그 해에만 세 차례를 포함해 통산 네 번의 4고의사구 경기를 만들어냈는데, 그 경기들에서 샌프란시스코는 2승2패를 기록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는 본즈가 4볼넷을 기록한 경기에서 6승7패, 0타수를 기록한 경기에서 1승5패에 그쳤다. 반면 홈런을 두 개 이상 때려낸 경기에서는 17승5패를 기록했다. 상대 팀 입장에서는 본즈를 거르는 것이 훨씬 나았던 것이다.

9월18일 본즈는 40세55일의 나이로 700호 때려냄으로써 베이브 루스(714)와 행크 애런(755)에 이어 역대 세 번째 달성자가 됐다. 사람들은 36세 시즌부터 미친 듯이 홈런을 몰아치고 있는 본즈가 800개를 어렵지 않게 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700호가 나온 이후, 본즈에 대한 견제는 한층 더 심해졌다. 다음날 데이빗 웰스로부터 701호를 뽑아낸 이후 본즈는 5경기에서 9타수3안타 1홈런에 그쳤는데, 대신 본즈는 11개의 고의사구가 포함된 14개의 볼넷을 얻어냈다.

특히 3연전에서 6개의 고의사구를 내준 휴스턴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는데, 결국 이 문제는 2년 후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본즈가 베이브 루스의 714호 홈런 기록에 1개 차로 접근한 2006년 5월17일 경기. 휴스턴 투수 러스 스프링거는 본즈를 맞히려고 했던 첫 번째 공이 빗나가자(이 광경을 본 휴스턴 덕아웃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두 번째 시도를 해 결국 성공했고, 휴스턴 팬들은 퇴장 명령을 받고 내려가는 스프링거에게 기립 박수를 쳐줬다. 당시 모든 원정 구장에서 야유를 받고 있었던 본즈로서는 그저 묵묵히 1루로 걸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본즈는 2004년 마지막 경기에서 1타수 무안타 1볼넷으로 시즌을 마감함으로써, 출루율(.609)과 OPS(1.422) 볼넷(232)과 고의사구(120)에서 상상할 수 없는 기록들을 만들어냈다. 또한 본즈는 45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41개의 삼진을 당해, 1980년 조지 브렛(24홈런 22삼진)에 이어 두 번째로 1959년 이후 두자릿수 홈런을 치면서 홈런보다 더 적은 삼진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1959년 이전은 테드 윌리엄스, 조 디마지오가 기록했고 2009년 알버트 푸홀스가 아깝게 49홈런, 50삼진으로 실패했다.

2004년 본즈는 좌타자에게 특히 더 불리한 AT&T파크의 절대적인 지배자(.412 .638 .962)였으며 득점권(.394 .754 .944)과 2사 득점권(.423 .839 1.000)에서 공포의 대왕이었다. 그리고 제구력으로 승부를 해보려던 투수들은 본즈에게 참담할 정도로 당했다(.392 .606 1.020).

한편 본즈는 0.362의 타율로 개인 통산 2번째 타격왕이 되었다. 40년 71일이라는 최고령 타격왕이다. 리그 2위는 토드 헬튼의 0.347. 다만 AL에서 스즈키 이치로가 84년 묵은 지 시슬러의 최다안타 기록을 경신하며 0.372를 기록하였다. 본즈의 101타점은 같은 리그에 있는 알버트 푸홀스의 123타점에 뒤졌고 45홈런은 푸홀스의 46홈런보다 적었다. 129득점 역시 푸홀스의 133득점에 부족한 수치다. 그러나 본즈는 푸홀스를 제치고 MVP를 수상했다.[20]

2004년에 본즈는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볼넷, 고의사구 부문에서 리그 1위를 기록했고 푸홀스에 이어 득점 2위, 아드리안 벨트레(48개) 등에 이어 홈런 4위에 올랐다. 2003년에 이어 400 미만의 타수에서 45홈런을 친 본즈는 13시즌 연속 +30홈런을 기록하는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12시즌 연속 +30홈런을 기록한 미 팍스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또한 400 미만의 타수로 +100타점을 올린 역대 3번째 선수가 되었다. 본즈와 함께 희소한 업적을 남긴 멤버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드 요크(1937년)와 시카고 화이트삭스프랭크 토마스(1994년) 뿐.

한편 본즈는 메이저리그 최초로 “6할대(0.609) 출루율”을 기록했다. 테드 윌리엄스의 기록을 경신한 자신의 2002년 기록을 또 다시 자체 경신한 것.

이는 대단한 기록으로, 투수가 출루율 6할 타자들만 상대한다고 가정해보자. 투수의 피출루율이 6할이라는 것은 매 이닝 쓰리아웃을 잡기 위해 대략 4.5명의 주자를 내 보낸다는 의미다. 즉 쓰리아웃을 잡아낼 동안 7명의 타자를 상대하여 4명의 주자를 내보냈다면 피출루율은 약 0.571가 되고 8명의 타자를 상대하여 5명의 주자를 내보냈다면 0.625의 피출루율을 기록하게 된다. 6할의 피출루율은 그 중간이다. 다시 말해 2이닝당 9명의 주자를 내보낸 것과 같으며 배리 본즈 같은 타자만을 상대하는 투수의 WHIP은 <4.5>라는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그 투수의 방어율은 최소한 13.5이고 (병살타가 없다는 전제 하에) 본즈의 장타율을 고려하면 30점대 방어율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야구의 종말일 것이다. 마운드를 다시 5인치 올리는 것으로도 부족하여 배터리 사이의 거리를 5미터 앞당겨야 할지도 모른다.

본즈는 2004년에 야구계를 시끄럽게 한 것은 사실이다. 2004년 232개의 볼넷을 기록했고 고의사구는 그 절반이 넘는 120개다. 자신이 경신한 2001, 2002년(고의사구 68개)의 기록을 압도적인 수치로 깨뜨렸다. 내로라하는 강타자들이 10년에 걸쳐서 달성할 수 있을만한 120개의 고의사구가 단 한 선수의 단 한 시즌에 의해 남겨졌다.

2004년 본즈의 SF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고의사구를 기록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64개. 당시 카디널스의 <래리 워커3-알버트 푸홀스12- 에드먼즈12-스캇 롤렌5-드가 렌테리아5-지 샌더스5- 메이브리5>라는 살인타선이 기록한 고의사구는 총 47개. 나머지는 대개 투수를 상대하기 위한 8번 타자의 고의사구로서 본즈의 그것과 성질이 다르다. 래리 워커가 시즌 중에 이적했음을 감안하더라도 타선 전체의 고의사구는 본즈 개인보다 2.5배 가량 적은 수치. 고의사구로만 따지면 본즈 혼자서 최고 살인타선의 2배 이상의 무게감을 가진 셈이다.(단, 고의사구란 타석에 선 타자가 강하고 뒤에 있는 선수를 상대하는 것이다. 모든 선수가 뛰어난 살인타선은 오히려 고의사구가 적다. 본즈 시절의 샌프는 말 그대로 본즈 외 쩌리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라...)

2004년 배리 본즈에게 남발하는 투수들의 볼넷과 감독들의 고의사구로 인해 야구 룰에 관한 재미있는 논쟁이 벌어졌다. 한 경기에 고의사구를 2개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본즈의 고의사구는 2번째부터 2루 진루권을 부여해야 한다거나, 주자가 있을 경우 한 루 더 진루시켜야 한다는 등의 논의 그리고 한 명의 타자에 의해 룰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진지한 반론까지 논쟁이 벌어졌다. 본즈는 시즌 내내 볼넷 세례를 받았다. 역대 최다인 5개의 볼넷 게임이 개인 통산 3번째였고, 4개의 고의사구 게임도 무려 4차례(5.1 플로리다, 6.12 볼티모어, 8.23 LA, 9.22 휴스턴)나 있었다. 고의사구 제한에 대한 문제제기는 자연스러울 만도 하지 않는가. 참고로 역대 유일한 한 경기 5번의 고의사구(1990년 안드레 도슨)는 +9 이닝 경기에서 기록한 것이다.

베이브 루스 시대에는 고의사구가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고의사구가 작전에 얼마나 활용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고의사구가 정식으로 기록된 1955년 이후에 활동한 전설적인 타자들의 고의사구 기록을 보면 미키 맨틀은 최고 11개(58,60,65년)를 3차례 기록한 바 있고, 테드 윌리엄스는 말년인 57년에 33개를 기록한 바 있다.

루스는 한 시즌 150개 이상의 볼넷을 4번이나 기록했다. 하지만 미키 맨틀테드 윌리엄스가 그렇듯이 그 중에 100개 이상이 고의사구라고 보기는 어렵다. 맥과이어가 1998년에 루스의 수준에 근접하는 162개의 볼넷을 얻어냈지만 그 중 고의사구는 28개에 불과했다. 푸홀스의 고의사구 커리어하이는 2009년의 44개. 본즈 이전에 한시즌 최다 고의사구는 1969년 리 맥코비의 45개였다.

본즈는 4월에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내셔널리그(NL) 기록인 7게임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4월과 8월에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어 개인 통산 13번째 Player of Month(이달의 선수)가 되었다. 4월의 홈런 페이스가 지난 3년의 기록과 맞물려 엄청난 수의 사사구와 고의사구를 양산하게 되었다. 선구안이 좋은 배리 본즈에겐 그 방법 밖에 없으니.

지나친 견제와 예외적인 취급에도 불구하고 본즈는 늘 그렇듯 서둘지 않았고 더 많은 타점과 더 많은 홈런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는 이미 트리플 크라운 이상의 것을 다 보여주었다. 그 와중에 9월 17일에 제이크 피비를 상대로 700호 홈런을 쏘아 올려 베이브 루스행크 아론과 더불어 역사적인 +700홈런 클럽에 입성했다.

2001년 시즌 시작부터 2005년 막판 14경기 출장에 이르기까지 본즈는 587 경기를 소화했다. 그 동안 0.347의 타율, 494득점, 214개 홈런, 448타점, 764개의 볼넷(287개의 고의사구), 0.556의 출루율, 0.805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4년간 OPS는 13할 이상. 단일 시즌 13할 이상의 OPS를 경험해 본 타자는 루스(3회)와 본즈(3회) 뿐이다.

하지만 2005년에는 무릎부상과 그로 인한 수술로 시즌을 거의 날려버렸고 9월 중순부터 14게임 출전해서 4게임 연속 홈런을 비롯한 5홈런을 때려내는데 그쳤다.

5.1.6. 2006, 2007시즌 - 약마는 죽지 않았다

2006년에 부상에서 돌아온 본즈는 예전만큼의 위압감을 가지진 못했...긴 개뿔, 투수들은 여전히 그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비록 말년에는 부상의 여파 때문인지 풀타임을 소화하기 힘들어 안타를 많이 생산하지 못하며 통산 3000안타 달성에 실패하고 2000타점도 아깝게 놓쳤으며 타율도 통산 3할을 수성하는데 실패하지만,[21] 2년간 247볼넷이라는 여전히 본즈다운 위엄을 과시하며 맹위를 떨쳤다. 그렇게 커리어 최종 762홈런2558볼넷, 그리고 688고의사구[22]를 기록하고 은퇴한다.[23]

이 은퇴를 통해 그가 아쉽게 달성하지 못한 기록들은 다음과 같다. 그가 1년동안만 더 선수생활을 했다면 가능했을 기록들이다.

1. 메이저리그 통산 3천 경기 출장 (본즈 2986경기)
2. 메이저리그 통산 1만 타수 (본즈 9847타수)
3. 메이저리그 통산 득점 1위 (1위 리키 헨더슨 2295득점, 2위 타이 콥 2246득점, 3위 본즈 2227득점)[24]
4. 메이저리그 통산 3천안타 (본즈 2935안타)[25]
5. 메이저리그 통산 2천타점 (본즈 1996타점, 통산 타점 3위)
6. 메이저리그 통산 700고의사구 (본즈 688개)
7. 메이저리그 통산 6000루타 및 통산루타 2위 (본즈 5976루타 통산 4위, 2위는 스탠 뮤지얼 6134루타, 3위는 윌리 메이스 6066루타)[26]
8. (2년 이상 활동했을 경우) 메이저리그 최초 통산 800홈런 (본즈 753홈런)

5.2. 통산 최다홈런 경신

배리 본즈는 미국 시간으로 2007년 8월 7일 AT&T 파크에서 워싱턴 내셔널스이크 배식의 공을 받아넘겨 756호 홈런을 기록함으로써 755개의 행크 아론을 넘어서고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 기록은 엄연히 금지 약물을 복용하고 기록했다는 점에서 로저 클레멘스의 7차례 사이영상 기록과 함께 비판받아야 할 점임은 분명하다. 국내에는 본즈팬들이 워낙 많기에 아직까지 수많은 반발에 부딪히고 있으며, 심지어는 금지약물도 아니었는데 좀 빨면 어떠냐(...)는 드립까지 나오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2004년에 그 처벌 규정과 검사 기준이 명시된 것일 뿐 사실 스테로이드는 이미 1991년에 금지 약물로 지정이 되어 있었다. [27] 참고로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넘어선 715호 홈런을 허용한 건 다름아닌 김병현... 배리 본즈에게 굉장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행크 애런도 이 날만은 영상으로 배리 본즈를 축하해주었다. 아래는 영상에서의 애런의 축하 연설 전문이다.
축하 영상

"배리 본즈가 통산 홈런 기록 선두에 도달한 것에 축하를 보냅니다.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은 기술과, 오랜 끈기와, 결단이 필요한 커다란 업적입니다. 백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홈런은 야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저는 이 특별한 기록을 33년 동안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자리를 양보함과 동시에 배리와 그의 가족들에게 이 역사적인 업적을 달성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려고 합니다. 내 희망은, 마치 1974년 4월의 어느 날 저녁과도 같이, 이 기록의 달성이 다른 꿈을 쫓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본즈는 애런을 대단히 존경했고 홈런 신기록 데이에 수차례 초청했으나 애런이 고사했었다. 애런의 거절을 묻는 심경에 본즈는 "애런을 존경하고 멘토로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 뜻을 밝혔었다.#

5.3. 그렇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사실 명성에 비하면 포스트시즌 성적이 굉장히 나쁜데, 팀이 항상 열세의 전력을 가진 팀이었고 집중견제도 받았기때문이다.[28] 제프 켄트라는 방패를 단 배리 본즈의 2002년 월드시리즈 활약은 진짜 괴물 그자체.[29][30]

2003년을 포함하여 7번의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본즈였지만 2002년은 본즈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시리즈 무대였다. 피츠버그 시절(90~92)이나 2000년과 달리 2002년 포스트 시즌 본즈는 "경이적인 본즈" 그대로였다. 단 한 번의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그는 많은 기록을 세웠다.

포스트 시즌 8개 홈런은 역대 1위다. 2004년에 카를로스 벨트란이 휴스턴의 포스트 시즌에서 본즈와 타이기록을 세웠다. 본즈는 포스트 시즌에서도 27개의 볼넷을 기록하여 97년 플로리다 말린즈의 우승 당시 게리 셰필드가 세웠던 20개의 볼넷을 경신하였다.

본즈는 월드시리즈에서 4개의 홈런을 친 역대 9번째 선수가 되었고 월드시리즈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역대 26번째의 선수가 되었고 월드시리즈 첫 3게임 연속으로 홈런을 친 역대 2번째 선수가 되었다.

월드시리즈 직전 애너하임 에인절스 감독인 마이크 소시아와 첫번째 영상에서 홈런을 맞는 당시 18승 좌완 에이스 재로드 워시번은 '본즈가 뭐 해봤자 끽해야 타자 한명인데 뭐 별거 있음? 우린 고의사구 없이 정면승부 할거임.' 이랬다가 1차전 첫타석에서 글래빈존에 정확하게 던졌음에도 홈런을 후두려 맞고는 그대로 데꿀멍.

그리고 2차전 팀 새먼의 연장 투런포로 9:11로 뒤지고 있을때 마무리 투수 트로이 퍼시벌이 주자 없이 나오는 본즈에게 자존심상 정면승부를 걸었는데, 퍼시벌의 강속구를 사정없이 넘겨버렸다. 그 이후로 에인절스 투수진 전체가 멘탈붕괴. 이후 고의사구 상황이 되면 최선을 다해 고의사구를 던져댔다. 13개의 월드시리즈 역대 최다 볼넷을 헌납하며 본즈를 싸게 막는데 주력.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2002년 월드시리즈는 배리 본즈 25인 영웅 난이도 레이드였다. 7경기동안 17타수 8안타 4홈런 6타점 13볼넷으로, 타율 .471, 출루율 .700(!!!) 장타율 1.294(!!!) OPS 1.994. 이러고도 우승반지가 없다는건 거의 저주에 가깝다. 근데 3승 2패로 앞선 6차전에서 5점차 리드를 날리는 대역전극을 당하는 가운데 본즈 본인의 수비실책이 역전패의 빌미가 되면서 7차전까지 패한터라 누굴 탓하기는 좀.....[31]

...... 그 런 데 .....

6. 약물 의혹

2004년 10월 16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랭스 윌리엄스와 마크 페이나루 와다 기자는 “배리 본즈가 2003년에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고 특종 보도했다. 이른바 ‘BALCO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캘리포니아 검찰당국은 전해인 2003년 빅터 콘티가 운영하는 베이만연구소(BALCO)가 기존 도핑 검사에 적발되지 않는 신종 스테로이드 제품을 운동선수들에게 불법 제공한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를 개시했다. 약품 제조에 관여한 본즈의 개인 트레이너 그레그 앤더슨의 집에서는 스테로이드와 함께 선수 명단과 전화 번호가 발견됐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의 두 기자는 앤더슨의 증언이 녹취된 테이프를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두 달 뒤 이 신문은 “본즈가 연방대배심에서 ‘스테로이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약을 복용했다’고 증언했다”고 보도했다. 본즈는 이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했지만 그에게는 ‘약물로 성적을 끌어올린 선수’라는 딱지가 영구히 붙게 됐다. 물론 약 빤다고 맘대로 성적 끌어올릴 수 있는게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두 기자는 미공개 법정 증언을 입수해 보도했다는 이유로 기소됐지만 2009년 2월 기소가 취소됐다.

연도별로 본즈의 체중 변화다. 의혹 전과 후가 생김새부터 극명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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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시즌인 1986년 체중 86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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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이 지나 93kg가 된 97~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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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kg가 늘어난 103kg인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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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은퇴까지 103kg를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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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월시를 기념한 2012년 샌프란시스코 행사. 같은 사람 맞아?

사실 약물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을때 웬만한 야구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렸던 선수이긴 하다. 왜냐면 1년사이 생김새가 너무 달라져서.
98년까지만해도 그야말로 호타준족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법한 날씬하고 날렵한 몸매였지만 1년새 완전 보름달 얼굴을 한 헐크가 돼서 나타났다. 2000년 스프링캠프에 무려 근육으로 9kg이상 벌크업 해 등장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003년 이전까지도 이미 아버지를 넘어서서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던 선수가 어쩌다가 약에 손을 댔을꼬...

6.1. 그때는 금지약물이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MLB에서 스테로이드가 금지약물로 지정된건 2005년이 되어서이니, 본즈는 약은 빨았을지언정 문제가 될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때부터 이미 올림픽 금지약물이었으며, 따라서 그게 나쁜건줄 모르고 빨았다는 식의 주장은 성립이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알려진것과는 달리 스테로이드는 2005년에 MLB 금지약물로 지정된게 아니다.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약물들은 1991년에 금지 약물로 지정되었고, 그 당시 MLB 커미셔너였던 페이 빈센트(Fay Vincent)는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불법적인 약물의 사용과 거래를 금한다.' 라는 문구가 포함된 문서를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에 배포했다. 6년 후인 1997년에는 빈센트 커미셔너의 후임이었던 버드 셀릭(Bud Selig) 커미셔너 대행 또한 그와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스테로이드에 대한 본격적인 처벌이 시작된건 그보다 훨씬 지나고나서지만, 스테로이드는 본즈가 빨던시절에도 명백한 금지약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까지는 본격적인 처벌이 없었다고 쉴드치는것은 말이 안된다. 까고말해 시험장에서 컨닝하다가 걸렸는데 감독관보고 "왜 이때까지 다른 놈들은 안 잡아갔으면서, 이제서야 ㅈㄹ하세요?"라고 변명하는것과 다를바가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과 메이저리그는 금지약물 규정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무리가 있다. 아울러 페이 빈센트의 공식서한 및 버드 셀릭의 주장 역시 조항(policy)화 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페이 빈센트 당시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에서 약물 문제가 어느정도인지 현황은 알지 못했으며, 단지 약물문제가 불거지는 타종목과 달리 야구계에는 약물 문제가 없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7. 왜 본즈는 스테로이드에 손을 댔는가?

본즈가 스테로이드에 손을 댄 이유에 대해선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낳은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98년 본즈는 400-400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400홈런-400도루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이런 기록을 세운 선수가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98년 시즌에 메이저리그 팬들의 모든 시선은 마크 맥과이어새미 소사의 홈런 레이스에 쏠려있었다. 최고라고 자부하던 본즈는 베이브 루스와 로저 매리스만이 기록했던 단일시즌 60홈런을 훨씬 상회하는 기록을 남긴 이들에게 질투를 느꼈음이 분명하다. 400-400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도 마크 맥과이어의 시즌 최다 홈런기록 경신이 더 주목을 받자 배리 본즈는 호타준족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무조건 홈런 많이 치는게 장땡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홈런 개수를 늘리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대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즈의 스테로이드 복용 동기는 <Game of Shadows>에서 98년 마크 맥과이어의 열광적 인기에 질투하고 분노한 본즈가 스테로이드 전문가를 찾기 시작하면서 약물에 들여놓았음을 기술했다. 이전까지 건강식품 구입말고 약물에 손도 대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기술되어 있었고, 오히려 맥과이어, 소사가 분명한 약쟁이임을 알고 있고 그래서 분노했다 한다. 결정적으로 맥과이어의 인기를 AT&T 파크에서 직접 목격하고 광분했다 기술되어 있다.[32][33]

사실 약물을 하지 않았더라도 명예의 전당행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라는 지적이 대세이다. 약을 안 먹었더라면 통산 커리어는 최종 스탯보다 (특히 홈런 면에서) 조금 모자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약 먹기 전인 90년대에 이미 완성한 400-400은 전인미답의 대기록이었다. 게다가 오히려 약물 사용으로 인해 불어난 체중과 상식을 초월한 고의 사구 개수로 인해서 도루 개수, 안타 개수 등에서 손해를 봤던 것을 생각하면 500-500을 넘어서 600-600도 가능했을 것이고, 3000안타도 달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약물 스캔들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고 무의미한 가정이 되어버렸다.

8. 약물 파동, 그 이후

2010 월드시리즈 관람 후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타격코치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역시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을 강하게 받은 마크 맥과이어가 현역 타격코치로 일하고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은 맥과이어는 타격코치 임명전에 자신의 스테로이드 복용에 관해서 다 밝혔지만, 본즈는 그럴수가 없다는거다. 왜냐면 모든것을 밝힐 경우 2010년 3월에 예정되어있는, 2003년 연방대배심에서 스테로이드 복용을 하지 않았다고 위증한 죄에 대한 재판에서 백프로 지게 되니까.

2010년 3월에 열린 연방 대배심에서는 위증한 죄에 대해서는 무죄 평결이 났으나, 애매한 증언으로 재판을 방해한 죄가 인정되었다. 이에 따라 본즈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의도적으로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는지는 영구 미제로 남게 되었다. 본인이 고백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2011년 12월 17일에 열린 재판방해죄 재판에서 30일의 가택구금과 250시간의 사회봉사, 4천달러의 벌금과 함께 2년간의 보호관찰이 결정됐다. 2012년 02 월시 진출 기념한 레전드 초청에 제프 켄트와 더불어 모습을 드러내고 백수 모드를 유지 중.

이후에 스프링캠프에 간간히 샌프란시스코의 타격 인스트럭터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2015년 2월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측에서 본즈를 정식으로 타격 코치로 영입할 가능성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본즈에 대한 시선이 영 좋지 않아서 구단 측에서는 이러한 입장을 밝히면서도 조심스러운 분위기. 당연하지. 그러나 이러한 비난들을 무릅쓰면서도 샌프란시스코가 본즈를 코치로 영입하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데, 잠깐이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본즈가 건드렸던 선수들은 성적이 상승했다. 때문에 본즈의 코칭 능력 자체는 기대해볼 수 있겠다.

9. 선수로서의 평가

약물 복용이 본격화된 시즌으로 추정되는 2000년 이전을 기준으로 커리어가 구분된다.

9.1. 약물 이전

요약 : 역대 최고의 5툴 플레이어 중 하나, 도루하는 푸홀스
1986~1998 평균 성적 : 타율 .290 출루율 .411 장타율 .556 32홈런 94타점 34도루 fWAR 7.6

본격적인 전성기는 1990년 첫 MVP 이후 약즈로의 각성 이전까지. 이 시대에 이미 미키 맨틀, 윌리 메이스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5툴 플레이어, 역대급의 괴물로 평가받았다. 날렵한 몸매로 3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1993년엔 46홈런으로 홈런왕도 기록할만큼 파워 또한 출중했고 따라서 90년대 본즈는 매년 +30홈런과 +30도루를 기록했다. 본즈의 천재성을 알려주는 일화 몇개를 소개하자면....

사례1
본즈는 2회 만루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며 상대팀 콜로라도 2루수 에릭 영에게 "다시 올게"라는 말을 했다. 다음 타석에서 2루타를 치고 영에게 정말 다시 와서 "볼넷을 얻어낼게"라 말했고 정말 다음 타석에서 해냈다.

사례2
본즈가 상대 투수가 무슨 공을 던질지 귀신같이 예측했다. 본즈는 당시 대기타석에 준비하고 있는 투수 제프 쥬든에게 "처음에 몸쪽 직구, 2구는 체인지업을 던지고 나는 그걸 골라낼 것이고 다음으로 던질 직구를 쳐서 좌익수쪽에 보낼 것이다". 그리고 상대투수 스티브 민츠는 본즈의 예언대로 직구, 체인지업을 던졌고 본즈는 3구로 날아온 직구를 440피트짜리 대형 홈런을 쏘아보냈다. #

1996년 42홈런 - 40도루로 역사상 2번째로 40-40클럽에 가입했으며, 1997년에는 40홈런 - 37도루로 또다시 40-40에 근접한 기록을 보여주었다.[34]

거기에 1990년부터 1998년까지 9년간 .305의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정교함도 보유했고, 매년 .400이상의 출루율을 보여줄정도로 선구안또한 단연 발군이었다. 거기에 홈런왕을 기록할 정도의 장타력까지 갖추었으니 이 무슨.... 이런 괴물과 상대하고 싶지않은 상대팀 투수와 감독들은 본즈를 연신 고의사구로 출루시켰고, 결국 고의사구 기록 또한 경신하게 된다.

가장 충격스러운 일은 9회말 2아웃 만루에서 고의사구를 얻어냈다. 얻어맞는 것보다 한점만 주자는 극한의 전략으로 1998년 5월 28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벅 쇼월터 감독이 마무리 투수 그렉 올슨에게 8:6의 상황에서 본즈를 고의사구하라 지시. 1점을 내주고 다음 타자인 브랜트 메인을 범타로 잡아내며 승리를 쟁취했다. 이전까지 없었던 충격적인 일이자 본즈가 어떤 레벨인지를 증명하는 사건이다.

게다가 주루나 외야수로서 통산8번이나 골드글러브를 수상할 정도의 수비까지 더해졌으니 90년대 최고의 선수라는 말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명예의 전당이야 당연한 일이었고...

거기에 1998년 역사상 최초로 400홈런-400도루 고지를 점령하고, 98년까지 거의 2000안타에 육박하는 안타를 쳤기 때문에 이미 정점을 찍은상태였다. 미국의 야구 전문가들도 본즈가 약을 빨지 않았어도 600홈런 이상에 전무후무한 600-600 클럽을 달성했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사실 1999년의 부상과 부진은 약물로 인한 무리한 벌크업의 부작용이라는것이 정설이라는것을 감안하면 도대체 왜 약을 빨았어야만 했나 아쉬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약빨이 빠진 2007년에도 .276-.480-.565[35]-1.045 28홈런을 기록하는모습을 보았으니 더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다.

9.2. 약물 이후

무슨 약하시길래 이런성적을 냈어요?
신이 내린 타자는 약을 통해 신이 되었다.
1999~2007 평균 성적 : 타율 .316 출루율 .505 장타율 .712 39홈런 87타점 8도루 fWAR 7.2

간단히 스탯으로 말한다. 당시 본즈는 타격 3할이 기본에 맘만 먹으면 볼넷이 많이 줄었을지는 몰라도 4할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근데 4할 도전했어도 주목 엄청 받았을거라는 생각은 못했던 듯. 흔히 4할 출루율이라고, 출루율이 타율보다 1할쯤 높으면 뛰어난 선구안을 가졌다거나 위압감이 강력한 타자라 칭하지만, 본즈는 그 갭이 2할을 넘나들었다.[36] 흔히 절대장타율이 2할이고 컨택도 괜찮아서 장타율이 5할을 찍으면 수준급의 슬러거라 하지만, 본즈는 절대장타율이 5할이었다. 3-4-5 타자는 OPS가 못해도 0.900을 찍는 법이고 3-4-5가 아니더라도 흔히 강타자를 평가할 때 OPS 8할을 기준으로 삼는데, 본즈는 장타율만 7~8할이었다. 리그 평균 OPS가 7~8할 사이를 오가는데, 본즈의 커리어 하이 OPS는 2004시즌의 1.422였다.[37] 참고로 2004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OPS 2위가 토드 헬튼의 1.088였고 전체 100위는 칼 크로포드의 0.781이었다.(메이저리그 평균 OPS는 0.763) 즉 1위와 2위의 격차가 2위와 100위의 격차보다 더 컸다.(...)


여기서 본즈와 NL 리그를 비롯한 주요 투수들의 상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

톰 글래빈 85타수 28안타 4홈런 14타점 ops 1.031
팀 헛슨 27타수 11안타 5홈런 7타점 ops 1.5
커트 실링 80타수 21안타 8홈런 21타점 ops 1.048
그렉 매덕스 130타수 34안타 8홈런 18타점 ops .855
로저 클레멘스 2타수 무안타 6볼넷 ops .750
페드로 마르티네즈 34타수 11안타 1홈런 3타점 ops 1.064
랜디 존슨 49타수 15안타 3홈런 12타점 ops 1.003
존 스몰츠 67타수 19안타 8홈런 14타점 ops 1.168
박찬호 47타수 13안타 8홈런 14타점 ops 1.283
김병현 11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ops .925

1). 본즈 vs 랜디 존슨

좌투수와 좌타자의 대결이니만큼 존슨이 유리한 것이 정설이다. 시야 확보와 공의 회전 등의 이유 때문이다. 랜디 존슨은 좌타자 상대로 살인적인 피안타율(1할대)을 기록하며 홈런도 잘 맞지 않는다. 2000년 본즈가 신(神)으로 군림하기 전에 랜디 존슨은 본즈를 상대하여 4타수 무안타로 가볍게 마무리 지었다. 2000년의 주인공은 단연 랜디 존슨이었다. 그러나 이후는 다르다.

2001년에 본즈는 73개의 홈런을 경신하였고 존슨 역시 막강 성적을 거두며 3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하였다. 본즈는 존슨과 4게임을 치렀고 10타수 2안타(2루타1개), 2타점, 3볼넷을 얻어냈다. 삼진은 3개. 존슨의 피안타율은 2할이지만 본즈의 출루율은 0.385였다. 최고선수 간의 격돌은 그런대로 잘 어우러진 셈이다.

2002년에 또 다시 4게임에서 만난 두 괴물. 본즈는 9타수 4안타(2루타 1개, 2홈런), 5타점, 4볼넷을 얻어내며 +4할 타율과 +6할 출루율 및 +12할 장타율을 기록하며 랜디 존슨을 KO 시켰다. 삼진은 불과 1개. 놀라운 사실은 2002년은 랜디 존슨의 4년 연속 사이영상 시즌이자 내셔널리그(NL) 트리플 크라운 시즌(24승, 334K, 2.32방어율)이었다는 것.

2003년은 존슨이 부상과 부진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해이다. 본즈는 존슨을 상대로 2타수 2안타(1홈런) 1볼넷을 얻어냈다. 3번의 대결에서 타율, 출루율 100%, 장타율은 25할. 말하자면 감기에 걸린 존슨을 상대로 본즈가 핵 주먹을 날린 셈이다. 인간 본즈도 무서운데 신(神)이 되어버렸으니 아픈 존슨은 더더욱 어찌할 수 없던 것 같다.

2004년은 랜디 존슨이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시즌이다. 본즈는 이런 존슨을 상대로 11타수 3안타(0.273타율), 2볼넷, 2타점을 기록했다. 존슨이 홈런을 맞지는 않았지만 본즈도 삼진을 당하지 않았다. 출루율은 0.467다.

2). 본즈 vs 커트 실링

커트 실링은 이전에도 에이스 급이긴 했지만 2001~2002년은 확실히 뛰어난 해였다. 존슨이 아니었다면 사이영상을 수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적. 2년(2001~2002) 동안 평균 22.5승과 304.5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2001년 실링과 본즈는 맞대결에서 12타수 3안타 1볼넷을 기록한다. 삼진은 2개. 본즈의 타율은 0.250이고 출루율은 0.308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실링이 존슨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3개의 안타는 모두 홈런이었고 타점은 6개.

2002년에 두 선수의 대결 결과는 10타수 2안타 2볼넷, 2삼진. 그러나 안타 2개는 홈런과 2루타였다. 본즈를 상대로 실링은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은 높지 않지만 장타 허용율이 매우 높다. 실링이 매덕스에 비해 WHIP과 피안타율이 낮음에도 방어율이 높은 예외적인 현상을 보인 원인으로 피장타율이 높았고 그 현상이 본즈와의 대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실링의 배짱 두둑한 정면 승부 기질은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을 낮게 만들었지만 반대로 강타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장타를 허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실링의 자존심과 배짱도 대단하지만 역시 장타율 면에서 본즈의 압승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또한 본즈는 +250이닝 동안 33개의 볼넷만을 내 준 커트 실링으로부터 불과 12타석(즉 4이닝or 3.1이닝)에서 2개의 볼넷을 얻어냈다.

3). 본즈 vs 박찬호

박찬호는. 2000~2001 2년간 당대 에이스들과 경쟁하던 선수였고, 탈삼진과 피안타율 및 퀄리티 스타트 횟수가 리그 2~3위였다. 한때 좌타자에게 호되게 당하기도 했지만 2000년부터는 몸 쪽으로 떨어지는 슬러브와 커브로 제법 재미를 보기도 했다.

2000년에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3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한다. 삼진도 없이. 그러나 박찬호도 볼넷을 주지는 않았다. 2001년에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14타수 4안타(0.286타율), 3홈런, 3타점, 5볼넷 1삼진을 기록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박찬호는 허리 부상을 짊어진 마지막 경기에서 본즈에게 기념비적인 2개의 홈런(71호, 72호)을 헌납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뺀다면(즉 불필요한 마지막 등판이 없었다면)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12타수 2안타(1홈런) 5볼넷 1삼진을 기록했을 것이다.

2001시즌 중에 박찬호는 성향 그대로 피안타율이 낮았지만 볼넷을 많이 내주었다. 전성기적 박찬호 조차 유인구가 먹히지 않는 본즈에게 볼넷을 무더기로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등판을 제외한 2001시즌 동안 박찬호도 10번이나 본즈를 잡아낸 만큼 위력을 뽐내던 시기이다.

4). 본즈 vs 에릭 가니에
약쟁이 타자 vs 약쟁이 투수

에릭 가니에의 2003년은 특별하다. 마무리 투수로서 드물게 사이영상까지 수상했다. 블론 세이브가 하나도 없었고 2002시즌 중반부터 2004시즌 중반까지 “84 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2003년 가니에의 성적은 2승 3패 1.20의 방어율과 55세이브(성공율 100%)였다. 동점 상황에서 승리 혹은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팀이 앞서고 있는 세이브 상황에서는 모두 승리를 지켜냈다는 것이다.

2003년 가니에의 WHIP(이닝당 피출루율)은 0.69다. 단일시즌 0.69의 WHIP은 마무리 투수 역대 2위(1위는 2008년 마리아노 리베라 0.67 “AL 사이영상의 향방” 05/9/2매니아 분석 참조)이며 9이닝당 삼진수(K/9)는 14.98개로 역대 최고였다. 39세이브를 올린 빌리 와그너의 14.95개를 능가했다. 가니에가 기록한 0.69의 WHIP은 마무리 투수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역대 최고의 ‘선발 시즌’인 2000년 페드로의 0.74도 능가하는 대단한 기록이다.

가니에는 2002년과 2004년에도 12.46개의 K/9를 기록했다. 3년(2002~2004)간 에릭 가니에는 2 이닝을 책임지면 3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다는 것이다. 자 이렇게 구구절절 최고 기록을 남긴 가니에에 대한 칭찬을 마쳤다. 그렇다면 그 대결은 어떠할까? 가니에의 압승일까? 아니면 그래도 신(神)만큼은 예외?

마무리 투수이다 보니 같은 서부지구임에도 가니에가 본즈를 만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방이 있는 본즈와 최고의 탈삼진율을 보여준 가니에와의 대결은 매 타석이 승부처가 되었을 것이다.

2002년에 가니에는 본즈와 3번 격돌했다. 본즈는 가니에를 상대로 1타수 1안타(2루타) 2볼넷을 기록했다. 그리고 1타점을 기록했다. 타율과 출루율 10할. 장타율 20할.

2003년 세이브 성공률 100%와 최고의 탈삼진 및 최고의 WHIP을 남긴 가니에는 본즈와 4번 만났다. 가니에는 본즈를 상대로 2타수 무안타로 선방하였으나 볼넷을 두개 내줬다. 경악스러운 것은 두 번의 볼넷으로 인한 출루에서 본즈는 모두 도루를 성공했고 득점을 했다. 본즈는 가니에에게 단 한 번의 삼진도 당하지 않았다. 2003년 0.199의 피출루율을 남긴 가니에를 상대로 본즈는 출루율 5할. 2도루. 2득점을 기록했다. 2000년대 본즈가 90년대 본즈를 흉내 낸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2004년에 본즈는 가니에와 4번 상대하여 2타수 2안타 2볼넷을 기록한다. 역시 삼진은 하나도 당하지 않았고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타율과 출루율 모두 10할, 장타율 25할. 그야말로 가니에 킬러였다. 최고의 좌완 랜디 존슨마저 버거운 상대이기에 우완 가니에가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본즈는 3년간 11번 가니에와 상대하여 9번 출루하였고(3안타 6볼넷) 홈런을 하나 뽑아낸 반면 삼진은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 가니에는 그 당시에 11타자를 상대한다면 5~6명을 삼진으로 잡아내고 2명의 출루만 허용해야 정상(평균)이었다.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타자들을 잡아내기 위해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시프트가 본즈 상대로 빈번히 행해졌다. 그러나 소용 없는 일이다.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도 특정 구질이나 코스에 약점을 노출하면 좋은 타자가 되기 어렵다. 본즈 쉬프트나 윌리엄 쉬프트가 통했다면 그토록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음은 당연한 것.

제프 켄트는 (비록 나중에 싸우고 헤어졌지만) 본즈 덕분에 MVP를 수상하는 성적을 남길 수 있었고 안드레스 갈라라가, 리치 오릴리아, 노장이 된 산티아고 포수까지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을 만큼 본즈의 앞뒤 타자들이 누린 혜택 즉 '본즈 효과'도 대단했다.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특히 압권은 월드시리즈에서 본즈와 대결한 애너하임 에인절스 팬들의 반응으로 보통 강타자라도 "이타자만 잡으면"이지만, 본즈는 "아, 몇타석 다음이후 또 본즈다"라는 말이 나오게 했으니 그 압도성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10. 통산 1위 기록

  • 통산 홈런 (762호)
  • 단일시즌 홈런 (2001, 73호)
  • 통산 볼넷 (2558개)
  • 시즌 볼넷 (2004, 232개)
  • 통산 고의볼넷 (688개)
  • 시즌 고의볼넷 (2004, 120개)
  • 시즌 장타율 (2001, .863)
  • 시즌 출루율 (2004, .609)

11. 수상 기록

  • MVP 7회 (1990, 1992, 1993, 2001, 2002, 2003, 2004)
  • 500-500 클럽[38]
  • 13년 연속 30홈런 (1992~2004)

  • 시즌 40-40 클럽 (1996)
  • 18경기 연속 볼넷
  • 통산 446명을 상대로 홈런[39]

  • 메이저리그 올해의 선수 3회 (1990, 2001, 2004)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올해의 선수 5회 (1998, 2001, 2002, 2003, 2004)
  • 올스타 14회 (1990,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2000, 2001, 2002, 2003, 2004, 2007)
  • 골드글러브 8회 (1990, 1991, 1992, 1993, 1994, 1996, 1997, 1998)
  • 실버슬러거 12회 (1990, 1991, 1992, 1993, 1994, 1996, 1997,2000,2001, 2002, 2003, 2004)
  • 베이스볼 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3회 (2001, 2003, 2004)
  • 베이스볼 아메리카 내셔널리그 올스타 7회 (1993, 1998, 2000, 2001, 2002, 2003, 2004)
  • 행크 아론 상 3회 (2001, 2002, 2004)

  • 메이저리그 홈런 1위 2회 (1993, 2001)
  • 메이저리그 장타율 1위 8회 (1990, 1992, 1993, 2001, 2002, 2003, 2004)
  • 메이저리그 장타 1위 3회 (1992, 1993, 2001)
  • 메이저리그 전체 출루율 1위 6회 (1992, 2001, 2002, 2003, 2004, 2007)
  • 메이저리그 타수당 홈런 1위 8회 (1992, 1993, 1996, 2000, 2001, 2002, 2003, 2004)
  • 내셔널리그 타율 1위 2회 (2002, 2004)
  • 내셔널리그 타점 1위 1회 (1993)
  • 내셔널리그 득점 1위 1회 (1992)
  • 내셔널리그 출루율 1위 10회 (1991, 1992, 1993, 1995, 2001, 2002, 2003, 2004, 2006, 2007)
  • 내셔널리그 볼넷 1위 12회 (1992, 1994, 1995, 1996, 1997, 2000, 2001, 2002, 2003, 2004, 2006, 2007)
  • 내셔널리그 고의볼넷 1위 12회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2002, 2003, 2004, 2006, 2007)

실로 악마같은 기록이다. 근데 악마도 이렇게 못할 걸

이런 무시무시한 위엄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은 그의 등번호 25번을 비공식 영구결번화하여 기리고 있다. 사실 공식 영구결번해도 상관없긴...개뿔 한데, 야구계의 비난이 쏟아질까 두려워서 쉽게 공식화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2013년 HOF 투표가 시작되면 뭔가 변화가 있을지도는 역시 개뿔.

12.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

일단 2013년 명예의 전당 첫 투표에서는 백지표를 던진 기자들의 영향 때문인지 로저 클레멘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클레멘스 37.6%, 본즈 36.2%) 세간에서는 똑같이 투타 역대급 레전드의 커리어를 가졌지만 약물 의혹이 있는 판이라 차별대우를 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일단 첫 투표에서는 둘 다 적당한 선에서 높지도 낮지도 않은, 큰 차이가 없는 수의 표를 받았다.

2년차인 2014년 투표에서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더해지면서 득표율이 34.7%로 오히려 하락했다(로저 클레멘스는 35.4%). 인터넷에서 선행공개된 수치에서 40%를 상회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로, 인터넷에서 공개하지 않는 보수적 기자들은 여전히 약물문제와 엮인 선수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후 5년은 명예의 전당 첫회 입성자들이 이어질 것으로보이고, 그로 인해서 입성이 밀리느니 크레익 비지오 같은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약물 관련 인물들의 득표율 상승은 난항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도 역시 36.8%의 득표율을 보였다.

본즈 자신은 스스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면서 기고만장한 모습이지만.

13. 여담


2012년에는 사이클에 맛을 들인 듯 하다. # 사이클 행사에서 팬들에게 자주 목격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선수시절부터 겪어온 무릎 통증을 다스리는 수단인 듯. 지금 보면 선수시절 벌크업한 것이 다 빠져서 홀쭉해졌다.

그런데 랜스 암스트롱의 약물 스캔들에 대해서 암스트롱을 옹호하기도 했다고. 가재는 게 편이다.


이 영상은 딱히 본 항목과 관계가 없을지도...[40]

본즈빠들이나 옹호론자들은 본즈가 약을 했지만 그 포스는 진짜니 명전감이고, 이미 명전에 들어간 선수들 중에는 약쟁이들도 있으니 본즈만 반대하는 건 마녀사냥이라는 무리수주장을 한다. 그런데 본즈의 포스가 진짜고 가짜고를 떠나서 본즈는 스스로 약에 손을 대어 약을 하기 전 쌓은 것과 약을 한 후 쌓은 것 모두 자기가 붕괴시켜 스스로 불명예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포장해줘도 결국 본즈는 약쟁이일 뿐이다.

  • 사우스파크 시즌 8 에피소드 3 Up the down steroid 에서 '모든 기록에서 제 이름을 없애주세요. 왜냐하면 전 존나 비열한 계집애 새끼이며, 스테로이드나 복용하는 병신이니까'라고 까였다.(...)

  • 더 팬의 주인공인 미치광이 야구팬인 길 레너드가 자신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야구선수 바비 레이번에게 베리 본즈가 아니냐고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 유명한 야빠 만화가 최훈이 배리 본즈에 대해서 상당한 애정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프로야구 카툰의 전신격인 MLB 카툰을 보면 배리본즈가 작중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사실 기록들만 보면 소재로 안쓰는 게 이상하다만(...). 여하튼 그가 은퇴한 2007년 이후 불과 1년만에 MLB 카툰을 관두고 프로야구 카툰으로 연재방향을 변경한 걸 보면 의미심장하긴 하다.

  • 블레스 증후군에 걸려 은퇴한걸로 유명한 릭 엔키엘에게는 약했는데 릭 엔키엘을 상대로 3타수 3삼진을 한경기에 서 당했다(.....)

  • 본즈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기록했던 fWAR은 46.6인데 이는 같은기간의 뉴욕 메츠(46.6) 밀워키 브루어스(45.3) 캔자스시티 로열즈(31.5) 디트로이트 타이거즈(30.9) 몬트리올 엑스포스(29.5)보다 높다

  • 제레미 곤잘레즈라는 573이닝동안 방어율이 4.95를 기록한 평범이하의 투수가 본즈를 6번 상대해서 한번도(!!!)출루시킨적이 없었는데 2008년에 번개를 맞아서 사망했다

  • 윌리 메이스,베리 본즈,윌리 멕코이가 기록한 홈런수의 합은 1888년부터 기록된 샌프란시스코의 팀 전체홈런의 12.3%를 차지한다

  • 본즈는 1880개의 볼넷과 680개의 고의사구를 얻었는데 이는 거리상으로 42.3마일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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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아버지인 바비 본즈는 14년동안 호타준족의 상징인 20-20을 10시즌, 그리고 30-30을 5번이나 기록했다. MVP투표에서 2번 5위안에 들었고, 골드글러브도 3차례 받았다. 통산 성적은 타율 .268, OPS .824, 302홈런, 461도루로 HoF급까지는 아니어도 대스타급 선수임엔 충분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바비 본즈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심지어 술 마시고 경기에 출장한 일까지 있었다. 그래서 바비는 윌리 메이스를 배리의 대부로 부탁해서 아들의 멘토가 되도록 했다. 바비의 마음을 배리는 충실히 따라 야구에 대한 자문은 아버지가 아닌 메이스를 먼저 찾아갔다. 부자가 자주 언급했던 유명한 이야기. 배리는 그 아버지보다도 더 괴물같은 성적을 냈다. 아예 본즈 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 [2] 본즈는 7세부터 메이스의 등번호 24번을 달고 뛰었고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25번으로 바꿔 달았다. 본즈의 24번 집착은 대단해서, 피츠버그 입단하고 벤치워머인 대니 곤잘레스의 24번을 반강제로 스틸해갔다(...).
  • [3] 1학년 때 11홈런 54타점 .306/.419/.544 타격라인에 16도루, 2학년 때 11홈런 55타점 .360/.457/.581 타격라인에 30도루, 3학년 때 23홈런 66타점 .368/.447/.713 타격라인에 11도루를 기록했다. 대학 통산 196경기에 출장, 45홈런 175타점에 .347/.442/.616의 타격라인을 찍고 57도루를 기록했다.
  • [4] 제프 켄트와 경기 도중 덕아웃에서 드잡이질은 카메라에 찍힐 정도로 앙숙이었다. 단 경기에서는 순망치한처럼 서로 필요했던 존재임이 아이러니.
  • [5] but 피츠버그 시절 본즈는 동료들과 사이가 좋았고 스몰마켓인 피츠버그를 지구 우승 3회로 올리려면 동료들과 화합없이 불가능했다. 피츠버그, 샌프 모두 본즈는 팀캐미에 피해주는 선수는 절대 아니었다
  • [6] 거만한 흑형이라 알려진 본즈의 또 다른 일면
  • [7] 이 당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1라운드 2번 지명권을 갖고있었지만 본즈 대신 윌 클라크를 지명했다. 사실 윌 클라크도 매우 좋은 선수였다. 통산 OPS가 8할 8푼에다 올스타 6회, 실버슬러거 2회, 골드글러브 1회을 자랑하는 선수다. 비교 대상이 본즈라서 그렇지. 이 드래프트가 배출한 또 다른 스타론 배리 라킨, 랜디 존슨, 데이빗 저스티스, 라파엘 팔메이로, 존 스몰츠 등이 있다.
  • [8] 사실 위에 상술했듯이 1982년 드래프트때, 자이언츠는 본즈를 지명했지만 입단 계약금에 의견차가 생겨 본즈를 영입하지 못했다. 금액은 5천불.
  • [9] 본즈가 피츠버그를 이끌기 시점에,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는 배리 본즈외에 비 보니야라는 강타자가 있었고 본즈와 보니야가 이끌던 타선을 "킬러 B's"라고 불렀다. 나중에 등장하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크레익 비지오 - 제프 배그웰 - 릭 벨 - 랜스 버크먼 - 카를로스 벨트란이 이끄는 "킬러 B"의 원조되겠다.
  • [10] 30-30(홈런-도루)도 희소한 기록이지만 그를 뛰어넘는 단일시즌 “+30홈런과 +50도루”라는 기록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2번째. 1987년 신시내티의 에릭 데이비스와 더불어 유이한 기록이었고, 마이크 트라웃이 신인인 2012년에 30홈런 49도루를 기록한 것이 전부. 참고로 국내야구에서 이종범이 1997년에 30홈런-64도루를 기록한 적이 있다.
  • [11] 다만, 토마스는 당대의 강타자 중에서 약물에 있어서 가장 깨끗한 선수로 꼽히는 인물이다.
  • [1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외야수 캇 반 슬라이크의 아버지.
  • [13] 1997년 지구 2위(그것도 승률이 4할 후반)을 제외하면 빌빌대고 있었다가 2011~12 시즌에 앤드류 맥커천, 페드로 알바레스, 털링 마르테 같은 유망주들이 출현하면서 서광이 비추고 있다. 그리고 2013시즌 5할을 달성했다.
  • [14] FA 보상과 관련한 선수 랭킹에서 배리 본즈는 100점 만점에 98.765점으로 1위를 기록했다. 당시 2위는 최고의 사이영상 페이스를 이어가던 그렉 매덕스(97.679점)였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프랭크 토마스(96.667점)가 뒤를 이었다.
  • [15] 최종 본즈의 기록은 762홈런-514도루를 기록.
  • [16] 2004년에는 120개의 고의사구와 232개의 볼넷을 얻어내며 6할의 출루율이라는 경악스러운 성적을 기록한다. 장타율이 6할이어도 본즈급이라 하는 판인데 오리지날 본즈는 출루율이 6할이다. 답이 없다. 이 시즌 OPS가 1.422(...)
  • [17] 3번의 수상도 1990-1993년 4년동안 1위-2위(그나마도 1위표 하나만 더 받았다면 이해에도 MVP)-1위-1위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달성.
  • [18] 많은 사람들이 본즈의 활약 때문에 AT&T 파크가 좌타자 친화구장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실상은 좌타자에게 극악으로 불리한 구장으로 본즈가 스플래시 히트를 뻥뻥 양산한건 약물과 함께 벌크업을 통해 파워를 엄청나게 늘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본즈 뺀 나머지들은 시궁창. 소위 샌프 FC라 불리는 타격진들을 보라. 동시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체이스 필드는 랜디 존슨, 커트 실링으로 활약으로 투수 구장인줄 알았으나 그들이 떠나고 본격적인 타자친화구장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파크 팩터가 먼치킨들에게 별 소용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 [19] 가장 가까운 시기에 삼진보다 많은 홈런(20개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1980년의 조지 브렛24홈런, 22삼진)이었지만 40개 수준과 비교할 레벨이 아니며 브렛은 파워보다 정교함을 앞세우던 교타자였다.
  • [20] 약즈의 MVP 독식에 의한 최대의 피해자가 바로 푸홀스다. 본즈만 없었으면 최대 5회까지 MVP를 타고 역대 최다수상이 될 수 있었다. 이후 본즈가 부상으로 사라진 05년 드디어 첫 MVP 수상
  • [21] 통산 2935안타 1996타점 타율 .298
  • [22] 참고로 올타임 2위 행크 애런의 고의사구 개수는 채 300개가 되지 않는 293개이고, 알버트 푸홀스가 현역 1위이자 역대 3위를 기록하고 있다.
  • [23]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은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첼 리포트가 터진 마당에 그를 영입하여 비난을 사려는 구단이 나타나지 않고 자이언츠도 그와의 재계약을 포기하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것. 혹자는 이를 두고 30개 구단의 담합이라는 카더라를 제기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버드 셀릭 커미셔너가 많은 본즈팬들에게 까이기도 했다.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당시 사무국은 SF 측이 본즈와 재계약할 경우 산호세를 애슬레틱스에게 넘겨주겠다고 협박을 했다는데(...) 물론 단순한 찌라시에 가깝다. 2008년엔 월드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한 탬파베이 레이스가 본즈 영입을 시도한 적도 있으나 무산된 적도 있다.
  • [24] 2006년과 2007년 시즌에서 배리 본즈는 항상 70득점 이상을 기록했다.
  • [25] 2006년과 2007년 모두 본즈는 한 시즌 90안타 이상의 성적을 기록했다.
  • [26] 본즈는 2006년, 2007년 모두 시즌당 190루타 이상의 성적을 기록했다.
  • [27] 그런데 사실 행크 아론 역시 자서전에서 암페타민 복용을 시인한 적이 있고, 윌리 메이스 역시 암페타민 액을 갖고 다녔다는 법정 증언이 있으며, 미키 맨틀은 돌팔이 의사에게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다가 엉덩이에 종기가 난 적이 있으며(...) 베이브 루스 역시 양의 고환 추출물을 주사했다는 기사가 있다. 사실 이러한 약물 복용은 MLB의 오래된 역사 속에서 암묵적으로 쉬쉬해 온 폐단 중 하나. 본즈빠들의 주장인 '본즈 희생양론'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본즈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 [28] 90년대에 이미 올타임 고의사구 순위를 경신했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7년 연속 고의사구 1위이기도 하고
  • [29] 그러나 제프 켄트와의 사이는 최악이었다. 사실 본즈를 좋아하는 팀원은 없었다고 할 정도로 팀원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 [30] 켄트가 오기 전에는 맷 윌리엄스와 같이 클린업을 형성했지만, 둘이 같이 포스트시즌에 올라간 적이 없었다.
  • [31] 본즈도 해결해지 못했던 50여년을 묵은 SF의 우승은 8년 뒤 투수 꼬꼬마들이 이루어냈고, 그 2년 뒤엔 지톸ㅋㅋㅋㅋ배리 지토파블로 산도발이 우승을 만들었다.
  • [32] To Bonds, it was a joke. He had been around enough gyms to recognize that McGwire was a juicer. Bonds himself had never used anything more than a protein shake from the health-food store. But as the 1998 season unfolded, and as he watched Mark McGwire take over the game-his game-Barry Bonds decided that he, too, would begin using what he called "the shit."
  • [33] 위의 각주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본즈에게 있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본즈는 맥과이어가 약쟁이임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맥과이어와는 달리 본즈는 건강식품 가게에서 기껏해야 단백질 세이크를 살 뿐이었다. 하지만 1998년 시즌 중, 본즈는 맥과이어가 자신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경의와 인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걸 보고 결심을 굳혔다. 지금까지 말 그대로 개똥 취급해 온 그것, 약물을 복용하기로."
  • [34] 다만 이시즌에는 본즈가 이미 40-40을 기록한 이후인지라 상당히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무리해서 달리면 40-40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결국 37도루 8도루실패 도루성공율 82%라는 높은성공율로 시즌을 끝냈다. 가진자의 여유
  • [35] 나이가 들어서 어쩔 수 없는 장타력나이 들어 떨어진 장타력이라 해도 절대장타율이 거의 3할(...)이야 그렇다 쳐도 저 상식 밖의 출루율은 선구안도 선구안이지만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상대 투수들이 계속 피해다녔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무니다 게다가 그 총각 분의 스탯을 매우 초라하게 만드는 저런 극악의 비율스탯은 야구의 상식을 파괴하는 스탯이다. 현실의 밸런스를 파괴하는 존재, 그야말로 먼치킨.
  • [36] 투수들이 그야말로 공포에 떨었던 것. 다만 약물 이후 주루 툴이 감소한 탓에 볼넷 내준다고 크게 위협이 되는 주자는 아니었기에 고의(성) 볼넷을 많이 얻어낸 영향이 크다.
  • [37] 얼마나 무서운 수준인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승엽의 커리어 하이 OPS가 1.190(1999년 타율 .323 54홈런)이고 타격 7관왕을 차지한 2010년의 이대호의 OPS가 1.111 더 나아가서 베이브 루스도 커리어 하이가 1.379이니 대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성적인지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 [38] 솔직히 클럽이라는 말도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그 클럽 가입자가 배리 본즈 단 한명뿐이기 때문이다. 500-500은 커녕 심지어 메이저리그를 포함한 전세계 어떤 프로야구 리그에서도 아직 400-400을 기록한 선수가 없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기록이다.
  • [39] 배리 본즈 상대로 피홈런이 가장 많은 투수들은 8개의 피홈런를 기록하고 있다. (그렉 매덕스, 존 스몰츠, 커트 실링, 리 멀홀랜드, 박찬호)
  • [40] 영화 슈퍼 히어로 중 한장면. X-MEN, 스파이더맨 등 온갖 영화들을 패러디한 패러디 무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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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2 20: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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