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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백교

last modified: 2015-11-21 20:42:02 by Contributors

믿으면 골룸한 종교
1920~30년대 일제강점기에 존재한 사이비 종교 집단이며, 교주는 전용해.

그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면 동학에서 파생된 종교이며, 정확히는 전정운이 교주였던 백도교에서 이름만 바꾼 것이라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전정운이 이름을 백도교에서 백백교로 갈았으니 교단 조직 자체가 전신인 백도교와 다를 바 없다. 2대 교주인 전용해는 전정운의 차남이다.(3남중 둘째)

백백백의의의적적적감응감감응하시옵숭성(白白白衣衣衣赤赤赤感應感感應하시옵崇誠)이라는 정신병자나 할만한 충격과 공포의 주문만 외우면 무병장수한다고 한다. 얼얼어어붙붙은은 마마음음 핏핏빛빛 깃깃발발 데데스스나나이이트트의의 율율법법 무무무슨슨슨마마마약약약했했길래길길래이이런런생생각각을을했했엉용? 글글자자가가 두두 번번씩씩 써써져져요요 [1]

종말의 날에 서양은 불, 동양은 물의 심판을 받아 인류가 멸망한다는 종말론을 내세웠다. 그리고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백백교가 마련한 본소에서 생활하다 물의 심판 날에 금강산의 피수궁(避水宮)으로 옮겨가면, 대원님(백백교 교주)이 불로장생하고자 하는 자는 동해 천리 밖의 신대륙(…) 영주로 보내주고, 부귀영화를 원하는 자는 계룡산으로 인도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교리를 설파했다. 그러나 시대가 혼란한 탓인지 그 교세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백백교는 홍보를 위해 폐광이 된 금광에 금을 숨긴 다음에 전용해의 힘으로 금광이 다시 터졌다는 식으로 사람을 모았다. 금광 드립은 홍경래의 난 당시에도 나왔던 고전적 수법. 이는 조선시대 후기 각종 예언서들이 횡행할 때 유행한 주장 중 하나인 해도진인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백백교의 중심 교리는 '한 사람(교주)의 흰 것으로 천하를 희게하자(一之白將欲白之於 天下地)'는 것으로, 이는 유불선 3교가 모두 성쇠를 거듭하며 3천년을 흐르는 동안 그 본질이 쇠퇴하고 거죽만 남았으므로 새로운 종교가 요구되고 그 것이 바로 백백교라는 것이다.

교주 전용해는 학식이 없는 무지한 인간이었지만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마음을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었다. 총참모격인 이경득과 문봉조 등 간부들을 각도에 보내 예쁜 딸을 가진 부모들을 골라서 백백교에 입교시킨뒤 그 딸을 전용해의 시녀로 바치게 하여 성폭행했다. 전용해는 이렇게 끌어들인 젊은 여성들을 항상 첩으로 거느리다가 살해하는 것을 능사로 삼았다.

백백교의 범죄사건은 '사소한' 일로 희대의 사교 교주의 죄상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조부와 부친이 백백교에 빠져 여동생을 교주에게 첩으로 바치고 전재산을 빼앗긴 유곤룡이란 청년이 교주 면담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흑막이 폭로되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적힌 신동아 기사

경찰은 8개월에 걸쳐 전용해의 아지트와 전국 각처의 백백교 비밀장소에서 346구의 시체를 발굴했다. 전용해는 몇 달후 솔밭에서 동쪽을 향해 누운 체 칼로 목을 찌른 사체로 발견되었으나 얼굴쪽을 산짐승이 먹어치운 탓에 그게 정말 전용해인가 논란이 있었다.

세간에는 신출귀몰한 전용해가 자신과 체격이 비슷한 사람을 잡아다가 자기의 옷을 입히고 자살한 것처럼 위장하고 도망쳤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전용해의 자식이 직접 보고 아버지라고 울부짖었다는 기록이 있어 자살한 것으로 판정.

1937년에 사건이 드러나면서 일본은 당황해했는데. 사람을 하나둘 죽인게 아닌 게 차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영어권 기사로도 보도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일본 측은 갑자기 사건 수사를 중단했다.

그리고 세계가 2차대전 여파로 신경을 쓸 겨를이 없던 1940년 말에 가서야 다시 사건 수사를 재개했고 1941년 1월에 마무리된 백백교사건의 선고공판은 혼자서 170명을 죽인 김서진, 167명을 죽인 이경득, 127명을 죽인 문봉조 등 간부급 살인마들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나머지 십수명에게는 징역형이 선고되면서 희대의 살인마 사교사건은 막을 내렸다.

근래 SBS가 TV 프로그램인 만불 미스테리에서 백백교 사건에 대해서 칼럼을 다루었는데 당시 교주인 전용해의 두개골이 현재 범죄형 두개골 표본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골상학은 19세기에 근거없다고 판명되었다.

그래서인지 국과수에서는 이 두상이 전용해의 것이 맞는지, 왜 이 두상이 보관되고 있는지 자세한 이유를 모르며 조만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처리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리고 2011년 10월, 폐기 예정임을 발표.# 2011년 10월 25일, 두개골 표본은 화장되었고, 이틀 후 봉선사에서 위령제도 지내줌으로 마무리되었다.#

전용해가 희대의 용안이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당시 사람들에 의하면 그저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신용이 생기고 '이 사람을 따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할 정도였다고. 저 얼굴이 왕의 상이란 말인가

해당 프로그램에서 뒷조사 중, 아직도 백백교를 추종하는 집단 소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대원님의 시신을 돌려달라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2]

2006년에 출간된 전봉관 교수의 <경성기담> 중 '살인마교 백백교 사건' 파트를 보면 당시 살인용의자의 재판내용 등이 나와있다. 밤에 혼자 읽으면 희생자들과 같이 읽는 듯한 느낌이 드니 주의하길 바란다.

스트 스팟 시즌2 19화에 백백교 관련 내용이 나왔다. 살해당한 신도들의 영혼이 아직까지도 전용해에게 잡혀있는데, 살해당했는데도 원혼이 아닌 깨끗한 영혼이며 그 상태에서 교주를 여전히 따르고 있다고 해서 살풀이도 함부로 못 한다고 나온다고. 전용해의 혼 자체도 힘이 굉장히 강한 편이라서, 없애려면 나라 안의 큰 무당이 여럿 모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고스트 스팟은 정확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영...비슷한 종류의 프로에서는 스님 한 분이 가자 전용해가 알아서 깨갱했다고 했다니...잘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전 백백교의 아지트에는 교회가 세워졌는데, 아직도 주민들은 웬만해서는 접근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부 (자칭) '민족종교'에서는 2010년 1월 백백교 교주의 두상 보존을 중지하라는 소송이 제기하며 일제가 수 천년 민족의 혼을 말살시키기 위하여 백백교를 사이비 종교로 조작했다고 주장하였는데, 백백교에 대한 여러가지 자료와 사건을 볼 때 얼토당토 않는 소리다.

거꾸로 백백교 사건은 사실 일제의 소행이다부터 일제가 방조했다는 이야기도 블로그에 나오는데 이거야 말로 "일본을 공격한다" 수준. 아무리 일제가 밉고, 그 역사를 잊고 싶다 하더라도, 백백교는 명백한 살인 사이비종교이며, 그 증거들이 너무나 명백한데다, 민족, 문화, 종교를 초월해서 이런 혹세무민하며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사이비 종교를 용인하는 통치 세력은 없다. 다만, 백백교 간부들이 지역 일본 경찰에게 뇌물 좀 먹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 뇌물먹은 일본 경찰들도 삥뜯는 사이비 종교 정도로 가볍게 봤리라 짐작된다.나중에 대대적으로 적발되면서 일본 경찰들은 물론,일본 언론과 나아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될 정도였으니까.

여하튼 이후로도 악명을 떨치고도 워낙에 이 종교로 돈벌이가 되었다고 알려졌는지 별의별 사이비 유사 종교들까지 난립했었다! 그 가운데에는 1950년대 비스무리한 주장을 하던 용백교(교주 이름이 서용백)같은 사이비 종교가 있었다고 한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나 처녀들을 데려와 .......무슨 짓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충실하던 한 신도가 서서히 교주에 대한 의문이 들고 나아가 그 믿음이 무너지면서 분노했고, 결국 1959년 이 신도가 휘두른 칼에 맞아 교주 서용백이 죽어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1990년대 후반 MBC에서 심야 다큐멘터리로 이걸 다룬 적이 있었다. 더불어 지금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 신도(서용백을 죽인 다음 경찰에 자수했는데 재판에서도 여러 정상 참작이 되어 3년만에 석방되었단다)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까지 했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백백교도 다루면서 밑에 나온 이대근 주연 영화 장면도 보여준 바 있다. 저 신도였던 사람이 평범하게 산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평범하지 않고 좀 막장적으로 살고있다. 한때 사이비종교 교주의 신도였던 사람인만큼 쉽게 흥분하고 말썽도 일으킨다고 한다. 사이비종교도 아무나 믿는게 아니다. 마음에 틈이 있고 무언가 벌어져있는 사람들이 믿는다.어?

백백교 사건은 두번이나 영화화되었는데 1961년작은 그냥 계몽성 극화 수준이고 허준호 아버지 허장강이 전용해로 나온다. 1992년작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이대근 주연[3]이고 나름 제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신흥종교문제 연구소장이었던 고 탁명환의 자료제공 및 자문을 통해 만들어졌다.

일제 연간 작가 박태원이 "금은탑"이라는 소설을 통해 백백교의 재산갈취, 여신도 농락, 살인 행각과 한 청년에 의해서 무너지는 과정을 세세히 그렸고[4] 1980년대말 소설 백백교라는 불쏘시개 소설이 출간되었으나 극단의 19금 묘사로 서사성이 부족하다. 행여라도 헌책방에서 찾으면 멀리 피하자

이 외에 한혜연 作 '애총'이라는 만화에서도 백백교에 대한 내용이 일부 언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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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런 종류의 '주문 수행'은 동학, 증산도 등 당시 도가계 종교단체에서는 흔히 있는 것이었다. 현대에 잘 알려진 거라면 천부경.
  • [2] 신동아 지에선 다루지 않았는데 1992~3년쯤에 나온 한 월간지에서 보도한 백백교 관련 기사에선 당시 처형되지 않고 나온 간부가 백백교를 재건했다는 기사를 싣었다. 일본이 패망하고 6.25와 여러가지로 사건파악이 되지 않아서 도중에 풀려나온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백백교를 재건했으나 당시에도 사람들에게 살인종교로 몰려 별다른 성장을 하지 못했고 이 자가 1978년에 죽으면서 흐지부지되었으나 아직도 백백교 잔존세력이 남아있다고 끝냈던 바 있다.
  • [3] 은근히 중견탤런트들도 많이 나온다.
  • [4] 조선일보 연재 제목은 우맹이다. 단행본이 금은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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