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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의무

last modified: 2015-04-15 22:58:40 by Contributors

영어 원문으로는 "The White Man's Burden". "백인의 짐"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1]

Contents

1. 개요
2. 전문
3. 상세
4. 왜 잘못되었는가?
4.1. 비판할때 주의할 점
5. 결론
6. 기타
7. 관련 항목


1. 개요

영국의 작가이자 백인우월주의자인 러디어드 키플링[2]이 1899년에 발표한 시 <백인의 짐 - 미국필리핀 제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2. 전문


백인의 짐을 져라.
너희가 기른 최선을 최전선에 보내라.
네 포로들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너희 아들들을 보낼 지어다.
퍼드덕대는 사람들과 야생에 맞서
육중한 마구를 차려입으라.
네 불만투성이 표정의 갓 잡아들인 포로들,
반은 악마요, 반은 아이인 자들에게.

백인의 짐을 져라.
끈기있는 인내로
공포의 위협을 덮어버린 채
긍지를 때맞춰 드러내면서.
공개적인 언설과 단순함으로
몇 번이라도 반복하라.
타인의 이득을 살피고
타인의 성과를 돕기 위해서.

백인의 짐을 져라.
평화의 야만적인 전쟁,
기근의 입을 채워주고
역병이 끝나도록 명하라.
그리하여 너희 꿈이 가까워질 때
타인을 위한 목표도 이뤄질 지니,
너희의 모든 희망을 없애버릴
나태와 이방인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라.

백인의 짐을 져라.
왕들의 천박한 지배가 아닌
농노와 청소부의 노력,
평범한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직 입항하지 않은 항구,
아직 걷지 않은 길,
가서 너희 삶의 족적을 남기라.
죽음의 족적을 남기라.

백인의 짐을 져라.
그리고 오랜 성과도 거둬라.
너희가 받을 더한 모멸,
너희가 맞닥뜨릴 증오,
너희가 다루어야 할 주인들의 통곡,
(아아, 천천히!) 빛을 향해..
"어이하여 그자는 우리를 그 사랑스럽던 이집트의 밤에서,
속박에서 데리고 나왔는고?"
[3]

백인의 짐을 져라.
너희 피곤을 가리기 위해
너희는 몸을 덜 웅크리지도
더 크게 자유를 떠들어대지도 말거라.
너희 모두가 울부짖는지, 속삭이는지
너희 모두가 떠나는지, 책무를 다하는지
조용하고 뾰루퉁한 자들은 너희 신과 너희를 평가할지리니.

그렇게 어린 시절은 끝났나니.
손쉽게 주어진 명예과
마음에서 쉽게 우러나온 찬사따위는.
이제 너희 웅대함을 시험하기 위해
그 모든 고마워할 줄 모르는 세월을 통해
차갑고도 날선, 값비싼 지혜와 함께
너희 동료의 심판이 다가올 지어다!

3. 상세

1899년 2월, 스페인이 필리핀에서 물러나고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게 되자 키플링은 이를 지지하며 시 <백인의 짐-미국과 필리핀 제도>를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반은 악마, 반은 어린애"인 필리핀인을 미국인이 지배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시는 모두 일곱 연이며, 각 연은 “백인의 짐을 져라(Take up the White Man's burden)”로 시작한다.

이 시에서 키플링은 "야만적인 흑인황인종을 개화시키는 것은 힘들고 고되지만, 그들에게서 보답은 커녕 원망과 비난을 받을지라도 고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핏 보기엔 '희생이 있더라도 다른 이들을 돕자'는 좋은 주장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곱씹어보면 잘나고 위대한 백인님께서 "친히" 못나고 무지한 흑인과 황인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즉 백인이 상전이고 유색인종을 아랫것으로 깔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이며, 이 시를 통해 키플링은 백인이자 대영제국의 국민인 자신의 인종차별적 편견과 우월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4]

이러한 주장을 내세운 배경에는, 키플링 자신이 대단히 제국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징병 신체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콤플렉스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있었다. 결국 그는 그 한을 자신의 아들을 통해서 풀었다(?). 원래 아들은 해군에 입대하려 했으나 시력검사에서 떨어졌고, 이후 육군 장교에 지원했지만 역시 시력검사에서 떨어진다. 키플링은 군대의 인맥을 이용해 아들을 '근위 보병 제4연대'에 입대시켰고, 결국 아들은 1915년 9월 18세의 나이로 전사하고 만다. 아들이 전사하고 나자, 키플링은 높으신 분들의 욕심과 무능 때문에 희생당하는 건 어느 나라나 젊은이들이라는 내용의 반전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즉 키플링은 서구 제국주의를 미화하면서 서구의 제국주의는 결코 침략이나 침탈이 아니라 우수한 백인이 미개하기 짝이 없는 흑인이나 정체된 동양인을 개화시켜야 하는 짐을 짊어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고, 이 주장은 역시 같은 백인들이 사회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제국주의 시대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나갔다.

4. 왜 잘못되었는가?

그러나 이는 사실 가소롭기 짝이 없는 주장으로서, 역사상 유럽 백인이 중심이 된 문명이 다른 문명권을 앞서기 시작한 것은 생각만큼 역사가 오래 된 일이 아니다. 농경을 문명과 사회에 토대로 삼은 4대 문명권이 발흥했을 때 서유럽인들은 채집과 수렵 위주의 문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고, 이후 찬란한 그리스 문명이 건립되고 로마가 융성할 때에도 서유럽 문명의 주축이 된 게르만족은 야만인 취급 당했다. 정작 이들 그리스와 이탈리아인들 같은 동/남유럽인들도 19세기에는 서유럽인들에게 꽤 무시당했다.

또한 이후 중세 초중기 때에도 이탈리아나 비잔티움 제국에 비하면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는 '기술과 문화 면에서 한없이 미개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었으며 16세기 이전까지 이슬람 문명에 열세였다.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었던 근원이었던 보존된 그리스 문예는 이슬람과 비잔티움에서 건너간 것이었고, 실학적인 대학(지혜의 집)이나 사회 분위기도 남유럽이나 이슬람 문명권이 중세까지는 서유럽 문명보다 훨씬 진보해 있었다. 그리고 대략 17세기경까지 중국의 생산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5]

서유럽이 타 문명권을 본격적으로 압도하고 근대적 의미에서의(다시 말해 제국주의 시대 횡행했던 백인 우월주의의 효시가 된) 제국주의적 정복 활동을 시작한 것은 산업 혁명이 시작된 이후였기 때문인지라, 결국 이 시기에 형성된 백인우월론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며 '백인이 개화시켜줬다'는 소리도 결과론적인 주장으로서 한 마디로 억지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6]

그리고 저렇게 주장한 백인들이 유색인종들에게 해준 것은 '산업화'이지 '문명화'가 아니다.[7] 그나마도 결국은 그 땅에 거주하는 '백인들'의 편의, 그리고 생산량의 증대를 통한 효율적 착취를 위해 이행한 산업화일 따름이지 현지인들을 위해 해준 것이 아니었다. 즉 '백인의 의무'라는 주장은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그럴싸한 미사여구로 포장하고자 한 망상의 결과물에 불과한 것이다.

산업 혁명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지금과 달리 서구권이나 비서구권이나 당시에는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다. 즉 도진개진. 더구나 당시에는 백인들끼리도 재산이나 능력, 계급에 따라서 투표권 소유 여부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서구적 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타 문명권에 대한 침략을 감행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4.1. 비판할때 주의할 점

그러나 서유럽의 고대와 중세의 일면만을 보고 단순히 서유럽이 별 거 아니라고 치부하는 것은 지나친 과소평가이다. 애초에 흔히 말하는 산업 혁명으로 유럽이 동양을 앞질렀다라는 말이 잘못된 이유는, 산업 혁명은 지난 수백 년에 걸쳐 경제, 정치, 산업, 문화, 교육 등이 맞물러가면서 서서히 태동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산업 혁명 이전까지 동양 최고! 서양 야만! 이라는 식의 논지전개 역시 여기에서 말하는 백인의 의무를 주장했던 이들의 소리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옥시덴탈리즘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슬프게도 현재 서구권이 구가하고 있는 세계적 패권에 대한 반발 의식과 상대적 열등감, 박탈감에 대한 반작용이 원인이 되어 이러한 주장은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동아시아권, 더 나아가 서구의 지배 하에 있었던 전 세계 문화권에서 빈번하게 발견되고 또 마치 실제적 사실인 양 일반인들에게 폭넓고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필집 <슬픈 외국어>에서 이걸 까면서 '백인들이 으스대는 건 겨우 산업 혁명 이후 이야기일 뿐이다'라고 비꼰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해 볼 때 이론의 여지가 다분한 주장으로, 서유럽이 중국이나 인도보다 생산력이 뒤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서유럽의 인구가 전통적으로 막대한 인구를 보유했던 해당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며 실질적으로 르네상스 시대 혹은 명나라 건국 이후에는 다른 문명권보다 전반적인 수준에서 앞서고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것이 조금씩 축적되어 간 끝에 산업 혁명을 계기로 본격적인 근대 문명 발달이 시작되면서 뒤집을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흔히들 '겨우 산업 혁명 이후' 라고 폄하되곤 하지만 그 산업 혁명이라는 것이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연적 선물이 아니며, 인도네시아와 남북 아메리카, 그리고 일부 아프리카의 사례에서 여실히 보여지듯이 서구권의 타 문명권, 타 대륙에 대한 정복 활동은 15, 16세기부터 이미 활발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진척되어 왔다. 기폭제를 산업혁명만이 아니라 외부로의 대양으로의 항해에서 보기도 한다. 외침에 대한 경계, 통일로 인한 폐쇄성으로 중국 같은 곳의 예로 산업혁명이나 원정항해는 목성과 같은 신세가 된다. 서구권은 특히 기술적 부문에서는 산업 혁명이 일어나기 수백 년 전부터 이미 동시대 어느 문명권보다 발달되어 있었고, 이러한 서구의 유서 깊은 과학적, 기술적, 산업적 우수성은 여타 수많은 문명권에 파견되어 다방면으로 활약한 서구의 기술 및 군사 고문이나 상인/학자들의 존재로 입증된다. 다시 말해 산업 혁명 이전까지 서구권이 여타 문명권에 비해 보편적으로 선진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후진적으로 뒤떨어져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즉 산업 혁명 '이후에서야', 미개한 서유럽 '야만족'들이 '간신히' 타 문명권을 앞질러 소위 '하극상'을 일으켰다고 보는 것 자체가 무분별한 옥시덴탈리즘에 입각한 사고의 소산과 다르지 않고, 이런 식의 왜곡된 시각은 해당 진영의 강세만을 보고 기대고 인용하거나 동양을 낮게 여기는 오리엔탈리즘 못지않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경계하고 지양해야 마땅하다.

5. 결론

중요한 것은 문명이 앞섰거나 경제력이 앞섰다고 해서 다른 인종을, 국가를, 민족을 학살, 억압, 착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인격적으로 어떤 인종, 국가,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물론 근대화의 산물로 인해 인류가 비단 물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진보하고 악습을 타파한 부분이 분명 많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사실 근대 국가에서 탄생한[8]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인 개념 중 상당수[9]가 근대성을 성취한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유혈 낭자한 내부 투쟁을 통한 우여곡절을 한바탕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립된 것이다. 하여간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어떤 타자에 대한 우월감, 그리고 타자를 배제, 억압,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 그런 의식구조는 지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타당하다.[10]

사실 국가간 뿐만 아니라 개개인간, 혹은 집단과 개인간, 집단과 집단간에서도 이러한 프로파간다는 성립한다. 내가 어리석은 너(희들)를 불쌍히 여겨 하나하나 교육시켜 주면서 사람 만들어 주겠다...는 선민사상, 교만, 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사고방식을 국가간의 일로 옮긴 것 뿐이다.

6. 기타

한편 미국-스페인 전쟁을 처음에는 찬성(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반대했기 때문)했지만 미군이 벌인 학살을 보고 경악하고서 필리핀 전쟁을 '미국이 저지른 죄악의 상징'이라고까지 비난했던 작가 마크 트웨인[11]은 <전쟁을 위한 기도>[12]란 책자에서 "하느님, 이 야만적인 백인들을 위하여 제발 기도해주십시오. 백인들의 무식한 짐으로 피가 넘칩니다."라는 글로 미국과 키플링을 동시에 깠다. 덕분에 키플링은 마크 트웨인을 무척 싫어했다. [13][14]

백남준은 1986년 '바이바이 키플링'이란 위성아트 공연으로 백인이 황인이 되며 공존과 혼합이라는 소재를 보이면서 키플링을 깠다. 미래 사람에게도 까이는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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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키플링 본인을 포함한 당대 제국주의자들은 사회 계층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 진심으로 열등한 원주민을 교화시키고 계몽시키는 것이 우월한 백인들의 사명이자 지상과제라는 저 주장이 진리라고 믿었다. 이는 자신들이 진실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일종의 자기최면을 거는 격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비록 내색은 하지 않고 스스로를 합리화할지라도 최소한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의도적 미화나 정당화보다 더 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
  • [2] 1865∼1936년. <정글북>으로 1907년 노벨 문학상 수상.
  • [3] 출애굽기에서 파라오의 속박에서 도망쳐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야에서 헤매며 모세를 원망하던 구절을 빗대는 듯 하다.
  • [4] 참고로 키플링 본인을 포함한 당대 제국주의자들은 사회 계층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 진심으로 열등한 원주민을 교화시키고 계몽시키는 것이 우월한 백인들의 사명이자 지상과제라는 저 주장이 진리라고 믿었다. 이는 자신들이 진실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일종의 자기최면을 거는 격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비록 내색은 하지 않고 스스로를 합리화할지라도 최소한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의도적 미화나 정당화보다 더 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
  • [5] 다만 고대 로마 전성기의 생산력은 동시대 중국과 거의 비슷했고, 철 생산력 등 특정 분야에 따라서는 오히려 중국을 능가했다. 그리고 중국의 생산력은 현대 학자들에게 여러 요인으로 인하여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6] 비슷한 이유로 장애인들 역시 자신을 '불쌍히 여겨' 도우려는 사람들을 생각만큼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물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나쁜 건 아니지만, 이게 보기에 따라선 장애인을 낮잡아 보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
  • [7] 지역을 막론하고 대체로 서구의 식민지 경영은 근대적 교육 기관의 설립보다는 효과적인 착취를 위한 산업 시설 설치에 한정되었다.
  • [8] 참고로 기원 자체는 많은 경우 이미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에서 그 싹을 찾아볼 수 있다.
  • [9] 예컨데 인권이나 평등 사상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 [10] 사실 과거의 우리나라, 민족이 무슨 훌륭한 일을 했건 간에 그건 과거의 사람의 일이지 직접적으로 우리와 관계도 없고 우월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는 주장이나 시각도 꽤 있다. 다만 그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면 그것을 창조적으로 수용할 뿐이다. 역사학자 중에서는 헌정 이전의 역사는 '우리' 역사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 국가들은 단지 한반도라는 토양에 과거에 있었던 국가일 뿐이라는 의미에서다.
  • [11]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로 유명한 그 작가 맞다. 다만 이 작품들이 어린이 소설로 오명을 쓰고 있는데, 완전판을 보면 어른들과 사회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며 독설가로서 에밀 졸라를 '용기 있는 지식인'이라고 칭송한 적도 있다.
  • [12] 이 책자는 미국에서 1923년까지도 출판이 보류되었다.
  • [13] 사실 전쟁을 위한 기도는 지금 봐도 상당히 급진적이다. 반전, 반제국주의 성향의 사람들이라면 감명깊게 볼 수 있지만... 이때가 20세기 초반이고 현재 행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용기있는 책이었다. 하여간 꼭 삽화와 함께 봐 볼 만하고 유튜브 등에서 볼 수도 있다. 비슷한 책으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전쟁 교본>도 있다. 이것은 마크 트웨인 것보다는 참혹함 대신 비꼬는 성향이 크다.
  • [14] 그런데 마크 트웨인은 키플링이란 자는 빙신이지만 그의 글솜씨는 노벨상을 받을 만하다며 적어도 글솜씨만은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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