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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윌리엄스

last modified: 2015-02-17 09:45:14 by Contributors



기타리스트 버니

이름 버니 윌리엄스 (Bernabe Figueroa Williams)
생년월일 1968년 9월 13일
국적 푸에르토 리코
출신지 산 후안
포지션 중견수
투타 우투양타
프로입단 1985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소속팀 뉴욕 양키스(1991~2006)

뉴욕 양키스 영구결번
No.51

Contents

1. 개요
2. 뉴욕 양키스와 계약을 맺다
3. 프랜차이즈 스타
4. 은퇴, 그리고 그 후
5. 플레이스타일
6. 음악가
7. 명예의 전당행?

1. 개요

뉴욕 양키스가 기나긴 침체를 걷고 있을 무렵[1] 마리아노 리베라, 데릭 지터,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와 함께 양키스 왕조의 재건을 이루어낸 5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 또한, 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가진 중견수로 활약했으며 실제로 양키스는 버니 윌리엄스의 기량이 쇠퇴하면서, 쓸만한 중견수를 구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2. 뉴욕 양키스와 계약을 맺다

푸에르토 리코에서는 야구보다는 음악 쪽으로 더 큰 재능을 발휘하던 윌리엄스였지만 양키스에서 푸에르토리코로 파견한 스카우트 로베르토 리베라는 버니 윌리엄스를 보고 촉이 와 차세대 데이브 윈필드[2]로 판단, 윌리엄스가 17세 생일을 맞자마자 바로 직접찾아가서 계약을 맺는다.

3. 프랜차이즈 스타

윌리엄스는 양키스 팜의 최고 유망주로 성장했고 게다가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데이브 윈필드의 뒤를 캐기 위해 사설 탐정을 고용하다 적발되면서 직무 정지를 당하는 바람에 메이저리그 무대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1991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윌리엄스는 1993년부터 양키스의 주전 중견수로 활약하였고 매해 두 자릿수 홈런과 10개 안팎의 도루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1995년부터 2002년까지 8년 연속 3할타율을 기록하였으며 1998년에는 타율 0.339를 기록하여 타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3]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윌리엄스는 양키스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된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타격보다는 수비에서 더욱 더 큰 실력을 발휘했는데 1997년부터 2000년까지 4년연속 외야수부문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며 양키스의 외야를 견고하게 지켰다. 당시 같은 중견수 자리에서 수비로 라이벌 관계를 가졌던 선수가 켄 그리피 주니어였다. 둘을 비교하자면, 그리피는 몸을 사리지 않는 다이나믹한 수비를 펼쳤고, 윌리엄스는 안정적이면서 우아한 수비를 선보였다.

윌리엄스가 활약한 이 기간동안 뉴욕 양키스는 6번의 월드 시리즈 진출[4]과 4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5]을 한다.

4. 은퇴, 그리고 그 후

2003년, 부상을 당하며 40여 경기를 쉬어야 했던 윌리엄스는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였고 이 후, 나이도 30대 중반에 들어서며 내리막을 걷게 된다. 결국 2006년을 끝으로 윌리엄스는 메이저리그에서 은퇴한다.[6]

그리고 그 후, 윌리엄스는 음악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이미 재즈 기타연주자로 유명하던 그는 선수생활을 하던 2003년에 'The journey within'이라는 앨범을 발매했다.

2012년에는 KC 카우프먼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 퓨처스 게임에서 월드 팀 감독을 맡았다. 그런데 팀은 미국에게 떡실신

2015년 2월 17일, 호르헤 포사다와 함께 뉴욕 양키스의 영구 결번자로 확정, 이로서 양키스는 앤디 페티트를 포함하여 한 해에 3명이나 영구 결번시키는 진기록을 쓰게 되었다.

5. 플레이스타일

우투양타로서 활약하던 윌리엄스는 스위치히터의 재발견을 이루어낸 선수이기도 하다. 매 시즌마다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으며 전성기때는 3할타율과 20~30개의 홈런, 90~120타점을 기록해내는 타자였다. 또한 도루 수는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빠른 판단력과 빼어난 풋워크를 바탕으로 주루플레이에서도 강점을 보인 선수였다.

그러나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윌리엄스의 진가는 타격보다 수비에서 발휘되었는데 중견수로서 통산 수비율이 0.990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안정적으로 외야를 지킨 선수였다. 결국, 윌리엄스의 은퇴 후, 양키스는 윌리엄스를 대신할 중견수를 구하는데 혈안이 되었고 자니 데이먼, 멜키 카브레라등이 양키스의 중견수로 활약했지만 윌리엄스만큼의 수비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이 문제는 커티스 그랜더슨의 영입으로 어느정도 해소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안정적인 선수였다.

6. 음악가

윌리엄스는 재즈 기타연주자로도 유명한데 선수생활중이었던 2003년에는 'The Journey Within'이라는 앨범을 발매했고 그 덕분에 부진한 듯 선수생활을 마친 현재는 전업 음악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윌리엄스는 유명인이 그냥 심심풀이로 음반을 내는 것과는 달리 미국 재즈계에서도 최고의 레이블로 손꼽히는 GRP[7]의 소속 뮤지션이다.

또한, 폴 오닐이 양키스에 있던 시절의 양키스 클럽하우스에서는 윌리엄스의 기타와 오닐의 드럼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7. 명예의 전당행?

누적스탯은 상당히 부족하다. 3000안타를 기록하지 못했고 500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수들[8]이 약물복용을 한 것으로 드러난 현재 깨끗한 이미지로 어느 정도 플러스요인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약물 복용자들 외에도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켄 그리피 주니어, 크레익 비지오, 톰 글래빈 등 어마어마한 스탯을 쌓은 굇수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위해서는 15번의 기회 중 꽤 많은 도전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첫해에 투표율이 고작 9.6%에 머무르고 둘째 해에 5%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꼭 야구 HOF가 아니더라도 재즈계에서 입지를 탄탄히 한다면 재즈 HOF도 노려 봄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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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강팀이기는 했지만 1981년 월드 시리즈 준우승 이후로 15년 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 [2] 그러나 윈필드는 양키스 유니폼을 입던 시절을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양키스팬들도 윈필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데이브 윈필드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때, 가장 오랫동안 뛰었던 뉴욕 양키스가 아닌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모자를 쓰고 입성한다.
  • [3] 이 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었는데 양키스에게 예상보다 섭섭한 대우를 받자 보스턴 레드삭스행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양키스가 알버트 벨을 붙잡는데 실패하자 다행히 잔류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벨이 양키스로, 버니가 레드삭스로 갔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
  • [4] 1996, 1998, 1999, 2000, 2001, 2003
  • [5] 1996, 1998, 1999, 2000
  • [6] 강팀이었던 양키즈에서는 후보가 되기도 힘들었지만 전력이 약한 다른팀으로 이적한다면 충분히 메이저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는 평가였다. 양키맨으로 남기 위해서 커리어 연장을 포기한것.
  • [7] 플레이, 이브 그루신 등이 이 레이블의 주요 뮤지션이다.
  • [8] 배리 본즈라든가 마크 맥과이어라든가 로저 클레멘스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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