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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last modified: 2015-01-19 02:34:18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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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가람
3.1. 팔상전
3.2. 대웅보전
3.3. 금동미륵입상
4. 원통보전
5. 기타


法住寺

1. 개요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구 사내리 209)에 있는 속리산사찰. 사실상 근대 이전에 만들어진 목탑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팔상전으로 유명한 절이다.[1] 이 외에도 커다란 금동미륵불상이나 각종 국보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중요한 절이다.

2. 역사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대사가 창건한 이다. 의신이 돌아오면서 백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 절에 있었기 때문에 법주사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법주사는 31본산(本山)의 하나로 고려 숙종이 그 아우 의천을 위하여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풀었을 때 모인 승려가 3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1년(1341년)에는 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를 세웠다.

조선 고종 9년(1872년)에는 경복궁에 쓰일 못과 화폐를 주조하는 데 쓸 목적으로 대원군의 명에 의해 사찰 내의 커다란 금동미륵불상과 철 당간지주가 징발되기도 했다. 현재는 오랜 노력 끝에 금동미륵불상과 철 당간지주 모두 복구를 해 놓았다.

3. 가람

사실상 가람배치에 있어서 규칙적인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경내에는 커다란 중층 건물인 대웅보전, 특이한 양식의 원통보전, 쌍사자 석등(보물 제15호), 철 당간지주(幢竿支柱), 부도들 등 상당히 귀중한 문화재가 많지만, 팔상전과 높이 27m거대한 불상 때문에 아웃 오브 안중으로 묻히는 분위기. 안습..

3.1. 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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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55호 법주사 팔상전(法住寺 捌相殿)[2] 이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근대 이전에 지어졌던 유일한 5층 목탑이다. 임진왜란때 한 번 불탔으나 인조 2년(1624)에 승려 벽암에 의해 다시 건축되었다.

목탑의 전성기였던 삼국시대고려시대 이후의 목탑이라 그런지 전형적인 목탑과는 외형이나 구조가 상당히 특이한 편이다. 거대한 중심 기둥인 심주를 중심으로 한 연속구조를 하고 있으며, 내부는 통층으로 통하고 있어서 사람이 올라갈 수는 없다. 높이는 22.7m, 평면은 5칸의 정방형이다.

임진왜란 이전의 팔상전은 1층의 평면 역시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보다 날렵한 일반적인 목탑의 형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재건되면서 1층 면적이 늘어나 지금의 모습이 된 것. 이에 대해서 목탑 구조가 발전된 것이라고 해석하는 연구자도 있고, 기술이 퇴보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지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벽면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8개의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서 팔상전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3.2. 대웅보전

다른 사찰에서 보기 드문 커다란 중층 사찰 건물이다. 이정도 크기를 가진 사찰 건물은 화엄사황전, 금산사 륵전 정도가 있을 뿐이다.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상당히 거대하다. 그러나 인지도 면에서 좀 안습한 취급을 받고 있다.

3.3. 금동미륵입상

거대한 미륵상은 청동불상 중에서는 세계 최대의 높이였다고 한다. 높이 33m[3], 무게 160톤. 이 기록은 1993년홍콩의 포린 사원에 세워진 34m 짜리 천단대불 좌상에 의해 깨졌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원군이 해체한 불상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데, 당초 1939년에 복원하려던 계획은 재정문제와 태평양 전쟁 말기의 금속 공출 등의 문제 때문에 시멘트로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조차도 한국전쟁으로 인해 조각가 김복진과 시주자가 사망해서 중단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대통령이던 박정희의 관심에 힘입어 1964년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이후 안전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유핑계로 해체하고는 1990년에 5년의 작업을 거쳐 청동으로 다시 주조했고 이후 2002년에 약 80kg을 들여 전체를 개금해서 금동미륵입상으로 다시 탄생하였다. 하지만 청동시절이 더 근엄해보여서 나았다는 의견도 있다. 판단은 직접 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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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미륵대불 시절.

4. 원통보전

정사각형에 사모지붕을 얹은 특이한 형태의 건물.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지만,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양식으로 남아있는 건물이란 점에서 보물로 지정되었다.

5. 기타

팔상전은 이소룡사망유희에서 나온 사망탑의 본래 모델로, 팔상전 안에서 촬영이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나(법주사의 불상이 당대 동양 최대였다.), 이소룡이 사망한 뒤에 재촬영-재편집되며 계획이 무산되었다. 실제로 촬영되었다면 이소룡 팬들의 성지가 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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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쌍봉사 대웅전도 있지만, 이것은 불에 타서 복원한 것이다.
  • [2] 捌은 '여덟 팔(八)'의 갖은자다.
  • [3] 27m라는 자료도 있는데, 뒤의 광배까지 더해서 계산한 높이가 33m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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