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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last modified: 2015-04-13 11:24:01 by Contributors



베트남의 정보
국기
(ɔ) Lưu Ly vẽ lại theo nguồn trên from
국장
(ɔ) Various from
국호 共和社會主義越南
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꽁 호아 싸 호이 쭈 응이어 비엣 남)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면적 331,689km2
인구 9,054만 9,390명(2011년)
인구 밀도 272/km2
GDP(명목상) 1,878억 달러(2014년)
GDP(PPP) 5,094억 6,600만 달러(2014년)
1인당 GDP(명목상) 2,072 달러(2014년)
1인당 GDP(PPP) 3,547 달러(2012년)
수도 하노이
정치체제 사회주의 공화제, 단원제
최고지도자 공산당 서기장 (응우옌푸쫑)
국가원수 국가주석 (쯔엉떤상)
정부수반 총리 (응우옌떤중)
공용어 베트남어
국교 없음
화폐단위 동(₫)
대한수교현황 남북한 동시수교 (남한 1992년, 북한 1950년)
모토 Độc lập - Tự do - Hạnh phúc
(한자로 독립 - 자유 - 행복)

목차

1. 개요
2. 지리
3. 민족
4. 역사
5. 사회
5.1. 통화
5.2. 교통
6. 문화
6.1. 언어
6.2. 음악
6.3. 음식
6.4. 스포츠
7. 외교 관계
7.1. 미국과의 관계
7.2. 한국과의 관계
7.3. 중국과의 관계
7.4. 프랑스와의 관계
7.5. 러시아와의 관계
8. 정치
8.1. 소수민족 문제
9. 경제
10. 군사
11. 관련 문서


1. 개요

Vietnam Timelapse (Full HD)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국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정회원국으로 수도하노이. 정식명칭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共和社會主義越南, 공화사회주의월남)이다. 국내에서는 베트남 혹은 월남(越南)이라고도 부른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던 시절에는 남베트남을 월남 북베트남을 월맹(越盟)이라 불렀다. 이는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에 대한민국과 같은 진영에 있던 남베트남을 베트남의 유일 정부라 보았던 반면에 공산진영에 있던 북베트남을 불법 정권으로 보았기 때문에 붙여진 호칭이었다. 월맹이란 "베트남 독립동맹(南獨立同)"의 약칭. 통일 이후에도 수교 이전의 중국을 중공이라 불렀듯이 한동안 월맹이라 불렀지만 지금은 월남으로 통용한다.

현지 발음에 충실한 한국어 표기는 비엣남/볫남이며 영어식 표기로는 비에트남이 있지만 이도 저도 아닌 '베트남'이란 표기가 쓰이고 있다. 아마도 '비엣 남'을 엉터리로 일본어식으로 옮긴 ベトナム의 영향을 받은 표기가 그대로 굳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베트남어 원어에 가깝게 배려된 발음은 아니다. 참고로 베트남이라는 표기는 북베트남 위주로 베트남이 통일된 뒤 한국 정부가 내키진 않았지만 국가로 인정하면서(수교는 한참 뒤에 했지만...)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수도는 하노이지만 도시 규모는 오히려 경제 중심지인 남부의 호치민(구 사이공)이 더 크다. 호치민롯데리아가 먼저 들어갔을 정도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달리 베트남 수도 하노이도 제법 큰 도시에 속하므로 미국 상황과 규모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미국워싱턴 D.C.뉴욕을 생각하면 대충 맞을 것이다. 인구도 호치민이 인구수 1등이고 하노이가 2등이다. 하노이와 연계된 유래가 있는 "하노이의 탑"이란 퍼즐도 있다.

2. 지리

흔히 베트남 하면 밀림을 떠올리지만 베트남 면적에서 숲의 비중은 37%에 불과하다. 사실 19세기 때만 해도 베트남의 대부분 지역은 밀림으로 덮여 있었으나 농경 목적의 개간이나 베트남 전쟁 때의 고엽제 살포로 인한 삼림파괴 등으로 거의 숲이 남아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비슷하게 태국필리핀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삼림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다.

주요 하천으로 홍강(Sông Hồng)과 메콩강(Sông Mê Kông)이 있다. 이 강 하류의 삼각주에는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활발하며 하노이호치민, 하이퐁, 껀터 등 주요 도시가 있다. 후에가 위치한 중북부 해안지역은 해안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중남부 해안지역은 리아스식 해안이다.

그 외 지역은 서쪽의 안남 산맥을 중심으로 한 산악 지대이며 서쪽 캄보디아 국경 지대엔 고원 지대가 존재하는데 이 지역은 커피 산지로 유명하다. 최서단에는 꾸옥 섬이 존재하는데 베트남 본토에서는 40km 정도 떨어져 있으나 캄보디아에서의 거리는 5km가 채 안 된다. 동쪽으로는 남중국해와 접하고 있는데 베트남에선 동해라고 부르며 중국호앙사 군도쯔엉사 군도의 영유권 문제로 다투고 있다.

북부 지방은 중화민국중국 남부와 흡사한 아열대 기후이고 일부 고산 지대의 경우 온대 기후에 가깝다. 2013년 12월 16일에는 폭설도 내렸을 정도. . 남부 지방은 전형적인 건기ㅡ혹서기ㅡ우기의 인도차이나 기후이며 중부 지방은 이 중간쯤 되는 기후를 띈다. 어쨌든 전반적으론 덥고 습한 편이다. 강수량은 대부분 지역에서 2,000mm 조금 안 되는 정도이다.

3. 민족

베트남인의 원주지(原住地)는 중국 남부라는 설이 있다. 양쯔강 이남에 살다가 황허 근방에 살던 한족에게 계속 밀리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당나라때만 해도 이 지방은 밀림에 둘러싸인 오랑캐 영역이었다. 베트남인의 유전자 조사에 의하면 현재 화남 지역 중국인과 중국 소수민족인 묘족과 매우 가깝다는 사실도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한다. 베트남 본토 자체도 중국에게 여러 번 공격당했기 때문에 중국과는 역사적으로 사이가 매우 나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문화는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싱가포르와 더불어 동북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 들어가는 국가이다. 지금은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의한 영향으로 한자가 아닌 로마자로 표기하는데 이를 꾸옥응으(quốc ngữ, 國語)(=국어)라고 하며 사용한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학생들의 학식이 낮아진다는 주장이 있어서 요즘은 본격적으로 한자 교육을 한다고 한다. 인명은 한자를 많이 쓰는데 정작 본인이 자기 이름의 뜻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점에선 한국과 사정이 같은데 한국보다는 한자가 훨씬 낯설다.

전반적으로 사람들 키가 작다. 남자들이라면 현지 화장실에서 엉거주춤하게 서서 볼일을 봐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2013년 현재 18세 평균신장이 남성 163.7cm, 여성 153cm라고 한다. 이웃나라 태국인의 평균키가 남성 170~172cm, 여성 158~160cm 이란것을 감안하면 아마도 영양 불균형의 문제 같다.

이 때문에 베트남 정부에서는 2011~2030년 신장, 체력 종합 개선안을 내놓았다. 2020년까지 남성 167cm, 여성 156cm, 2030년에 남성 168.5cm, 여성 157.5cm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목표치가 너무 높아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라고 한다(...). 출처

4. 역사

본격 제국의 무덤 시즌 2

동남아 지역에서는 타이, 캄보디아, 미얀마와 함께 전통적인 강호로 지금도 타이와는 라이벌 관계이다. 셋 다 역사적으로 죽어라 싸웠기에 지금도 서로 으르렁거리고 과거를 들먹이며 견제하지만 미얀마와 캄보디아가 현재 경제적으로 개차반이라 타이를 이웃 국가 중 최대의 라이벌로 여긴다. 더욱이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즈 시절에 베트남에게 점령당한 이후 현재까지 베트남의 입김 하에 있다. 참고로 베트남군은 1980년대 말 캄보디아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중국보다는 그 증오와 반감은 적은데 역사적으로 베트남이 타이를 짓뭉개버린 적도 여러번이라 그럴 듯하다.

"근성의 민족"으로 유명한데 중국대륙을 제패한 몽골군(쿠빌라이 칸)과 나라군(건륭제)도 베트남을 정복하려다가 실패했다. 19세기 프랑스 및 영국의 식민침략을 걱정하면서도 통일 전쟁을 위해 타이, 크메르와 죽도록 싸우는 통에 국력이 쇠퇴하여 나중에 나라를 빼앗는 프랑스가 더 좋아할 일만 해버렸다. 어쨌든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세계 열강인 프랑스, 일본, 미국, 중국과 모두 한번씩 싸워본 진정한 파이터 국가.

본 위키에서도 이 항목보다는 베트남전과 그에 관련된 베트남 전쟁/한국군이 먼저 개설될 정도로 외세의 침략에 맞서 근성으로 맞선 역사로 유명하다.

5. 사회

5.1. 통화

5.2. 교통

오토바이가 매우 많다. 대략 3천만 대 정도로 추산된다. 차보다 싸고 정비도 간단해서인데 중국처럼 온가족 6~7명이 스쿠터 하나에 타고 가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당연히 사고도 엄청 많이 난다.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과거 베트남 전쟁 사망자 수를 웃돈다는 얘기도 있다. 베트남 정부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하루 평균 30명이 사망하는 꼴이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오토바이가 내뿜는 매연으로 대도시의 대기오염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오래 산 교민들은 서울이 더 더럽다고 하지만...

참고로 오토바이 라이더 거의 전원이 헬멧을 착용하는데 이를 어기면 오토바이를 압류한다고 한다. 그런데 헬멧이라고 하는 것이 말 그대로 플라스틱 바가지 수준이라 목숨은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헬멧에 대한 품질기준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헬멧과 함께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것이 스카프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오토바이 매연으로 대도시의 공기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오토바이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하는 곳은 고속도로와 국도인데 일반 도로와 국도가 겹치는 부분에서 경찰들이 눈을 부라리며 감시하고 있다. 넘어오면 바로 벌금크리를 때린다. 문제는 이를 노리고 '헬멧 대여업'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를 이용하여 단속을 피한 다음 반납하면 된다(…) 항상 헬멧을 가지고 다니면 될 것도 같지만 헬멧 보관료가 매우 비싸다고 한다. 보통 주차요금이 1천 동인데, 헬멧 보관료는 2천 동이라고 한다.

혹시 길을 건널 때 오토바이가 오고 있으면 멈추지 말고 속도를 유지하면 지나가야 한다. 괜히 멈추거나 빨리 가면 피하려다 치이는 수가 있다. 가던 속도 그대로 가면 알아서 피해간다. 단, 자동차는 보행자가 알아서 피해가야 한다. 달리는 속도가 차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예 출발을 하지 말든가... 정 못 건너겠으면 현지인들이 건너갈 때 같은 리듬을 맞추면서 걸어가라.

사실 오토바이가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몇년 전부터 수입차에 대해 200%의 관세를 매기고 있기 때문에 차 값이 상당히 비싸다. orz. 탑기어 멤버들이 베트남에서 하노이-하롱베이를 갈 때 차를 구하지 못해 1,500만 동으로 바이크를 사고 달렸다.

게다가 어지간히 돈이 많지 않고서는 자동차를 유지하기 힘들다. 대졸 사무직 임금이 월 300달러이고 일반 서비스업 종사자 임금이 월 120~150달러 정도에 불과한데 휘발유 1리터 가격이 대략 1달러이다. 이것은 대만보다 조금 싼 가격이며 베트남의 소득수준이 한국의 1/7~1/8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가격이다.

이렇게 오토바이가 많다보니, 좀 큰 식당에서는 오토바이 발렛파킹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베트남 대부분 도시의 4차선 이상 도로에서는 마지막 차로나 하위 차로 절반 정도는 항상 오토바이가 차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종로 쯤 되는 시내 주요 간선도로라도 좌회전 신호가 따로 없고 다 비보호 좌회전인데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하지않고 신호 바뀌자마자 좌회전 차와 오토바이부터 닥돌하며 직진 신호와 동시에 보행신호를 받고 길을 건너는 보행자사이로 지나다닌다. 그렇다고 직진차량이 좌회전 차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게 아니라 같이 닥돌해서 순식간에 교차로가 엉킨다. 조심 또 조심해야한다. 호치민 시 중앙터미널 등 보행자가 많은 곳에서는 경찰이 항상 대기하다가 신호가 바뀌면 보행자들과 같이 건너준다. 물론 이 때는 아무리 날뛰는 오토바이도 얌전해진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베트남은 소매치기, 날치기 왕국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관련 범죄가 빈번한 곳이다. 다낭같은 곳은 그나마 덜하지만 호치민, 하노이에 여행 계획이 있다면 물건 간수 꼭꼭 잘하자. 궁금한 사람은 구글이나 네이버에 베트남 날치기나 베트남 소매치기 정도만 검색해봐도 우수수 쏟아져 나올 정도로 사례가 많다. 어께에 매는 가방(특히 여자들 핸드백)은 매는 순간 "이거 가져가 주세요!" 라고 소매치기에게 알려주는 것이니 백팩을 매고 다니자. 또한 차도 쪽으로 걸으면 당연히 오토바이 날치기에 노출되므로 반드시 인도쪽으로 걷도록 한다. 차도 가까이 갈수록 날치기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렇다고 전기충격기 따위를 현지에서 구입해서 사용하겠다는 머저리같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말 것. 이딴 걸 구입해서 국제선 비행기도 못 타지만 호신무기에 대상이 범죄자라도 이딴 걸로 현지인을 조지면 곱게 안 끝난다. 그냥 아예 처음부터 극도로 조심해서 날치기범의 표적이 되지 말든가, 뺏기면 그냥 경찰에 신고하고 잊자.

도시고속도로 급 정도 되는 도로에는 좌회전 신호가 따로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 도로라면 대부분 입체 교차설비가 설치되 있겠지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신호 변경시 남은 시간을 초단위로 표시해준다. 다만 파란불일 때만 남은 시간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빨간불, 노란불, 좌회전 등의 경우 다음 신호까지 남은 시간까지 표기해준다.

철도는 미터 궤간으로 협궤 1,000mm(일본의 JR이 1,067mm)라서 상태가 굉장히 나쁘다. 컨테이너가 차량밖으로 삐져나올 정도에다 속도도 느리다. 그렇기 때문에,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가는 철도는 한국으로 치면 경부선에 해당하는 간선 철도이지만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여객 열차로 장장 32시간이 걸린다. 하노이 시내를 분명히 지나가는데도 단선에 깨진 콘크리트 침목을 쓰고, 선로 앞 1m 반경 내로 주택가와 상점이 들어서 있어도 안전 펜스가 없어서 마치 한국의 학도선을 방불케 한다. 이렇다보니 오토바이를 선로 한 가운데에 버젓이 세워 놓고 용무를 볼 정도이다. 그러나 강이 크고 아름답다 보니 하운을 이용한 물류수송은그럭저럭 되는 듯 하다. 요즘엔 그래도 관광 열차 개발과 노후화된 설비를 교체중이지만 갈 길이 멀다.

장거리 시외버스의 경우에는 금호고속이 진출해있다. 주로 한국에서 사용하던 2004년식 이전의 차량을 들여와 사용하고 있다.

6. 문화

베트남에는 토끼 해가 없다. 대신 고양이 해가 존재한다(토끼에 해당하는 卯와 고양이를 뜻하는 猫의 발음이 같다. 베트남 어로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한문 영역 기초 베트남어 시험지에도 베트남에는 토끼띠 대신 고양이띠가 있다는 내용으로 문제가 나왔다.

유교권 국가인 베트남에서도 중국,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상에 대한 제사를 모신다. 베트남 공산당은 초기 부터 전통주의, 민족주의 세력을 많이 포섭했고, 대민 선전용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같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못지 않게 근성의 저항의 역사로 대표 되는 민족주의 또한 강조했기 때문에 아시아권의 다른 사회주의 국가, 특히 북한이나 캄보디아, 문화대혁명 당시의 중국 처럼 뭔가 좀 정신나간 말세적, 초월적 집단 광기에 휩쓸려 전통 문화를 초토화하고 단절하는 과정이 없었으며, 오히려 혁명과 전쟁을 기반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재창조 하기 위해 이념 대립 이전의 베트남 역사와의 연결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관혼상제 등을 비롯한 일상 생활과 사회 전반에서 여전히 성리학과 불교로 대표 되는 전통 문화가 잘 보존이 된 편이다. 비록 건축물 같은 물질적인 전통의 상징물들은 전란 속에서 쑥대밭이 된게 많지만...

음력설(뗏)하고 추석(쭝투)을 쇠는 나라이다.

아오자이(Áo dài)라는 민속 의상이 알려져 있다.

한국인들이 남에게도 가족호칭을 붙이듯이 베트남에서도 가족호칭을 붙인다.(형, 언니 등) 그렇지만 보통 "누나, 오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동생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이나 "동생"이라고 부른다. 베트남 기준으로 나이가 많아도 "너"라고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유교적 가치관을 공유하지만, 공산주의의 영향, 그리고 참파나 이웃 타이족 등과 교류하면서 생긴 발전으로 대인 관계는 나이차, 직급차가 크지만 않으면 비교적 수평적인 편이다. 심지어 예전에는 조공을 받으러 내려온 명나라 관리가 탕롱, 즉 현대 하노이의 왕궁에서 국왕이 신하들과 허물 없이 대화를 나누고, 선비들과 농민, 상인들이 섞이며 남녀 간에도 유별이 없는 이건 뭐 무늬만 성리학을 따르는 나라지 내용물은 주변 비 유교권 동남아 국가들 처럼 멩 야만인이라고 까는 기록들이 있다. 그만큼 전반적인 사상적인 틀은 성리학을 택하면서도 현지의 사회적 생활상은 다른 부분이 있다.

그 외에도 나이가 많고 결혼한 사람을 한국에서는 아저씨/아줌마라고 부르지만 베트남에서는 "삼촌/이모"라고 부른다. 물론 삼촌/이모 입장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호칭하는 상대를 "조카"나 이름으로 부른다.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상호대칭적인 편이다.

6.1. 언어

베트남어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한다. 어째 서로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말레이시아의 네그리토와 인도 동부 산지대 주민, 캄보디아인도 이 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쓴다.

베트남어성조(聲調)가 6개이다. a á à ạ ả ã. 앙대! 더욱이 a-ă, â-ơ 같이 비슷비슷한데 미묘하게 다른 모음들도 있다. 고로 이것들을 모두 구별해야 한다. a á à ạ ả ã â ấ ầ ậ ẩ ẫ ă ắ ằ ặ ẳ ẵ 으áàạảãâấầậẩẫăắằặẳẵ 고만해 미친놈들아

주요 외국어로는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프랑스어이고 프랑코포니에 가입되어 있다. 근데 정작 프랑코포니회원국이면서 영어가 널리 쓰이는 것은 매우 안습이다.

6.2. 음악

전체적으로 대중음악은 이모이정책 이후 개방이 되면서 서구 문물이 많이 유입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개발도상국에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정책 부실이 이곳도 마찬가지라서 대중문화 산업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책이 없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동아시아에서 제법 음악과 사이키델릭 음악이 성행한 나라였다. 그러나 1975년 이공 함락 이후 공산주의 정권에 겁먹은 상당한 뮤지션들이 해외로 망명하거나 지하로 잠적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CBC 밴드. 이 밴드는 1960년대부터 활동한 밴드인데 사실상 친미적인 사람들이어서 미국의 CIA 요원들과도 연계가 있었다고 한다. 1971년 클럽에서 공연하던 , 테러리스트가 설치한 폭탄으로 인해 미군 1명과 베트남 여성 1명이 사망한 뒤 베트남 생활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1974년 남베트남의 패망을 예견한 CIA요원 친구로부터 소식을 전해듣고 베트남을 탈출하여 인도에 거주하다가 국제 난민으로 인정받아 미국 휴스턴에 정착했다고 한다. # 2011년, 당시 클럽에 관객으로 왔던 베트남 참전용사들을 모아서 그때 중단되었던 연주를 다시 하는 공연을 열었다고 한다. #.

공식적으로는 서구식 대중음악을 베트남 정부가 통제를 했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활동이 가능했고 도이모이 정책 이후엔 해금되었다고 한다. 현재 베트남에는 다양한 록 밴드가 활동 중이며 언더그라운드 씬도 상당히 활성화 되어있다고 한다. 베트남 록 포털사이트 참고. 물론 아직도 일반 대중들은 이러한 '서구의 강한 음악'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아직 많은 인기는 없다고 한다.#

베트남의 가수인 뚜언 아인(Tuấn Anh)이 아시안 프린스라는 다른 베트남계 미국인 가수의 노래와 같이 잘못 알려진 바가 있다.

6.3. 음식

2014년 기준으로도 냉장고가 잘 보급되지 않은 상황이라 식당에서 맥주를 주문하면 맥주에 얼음을 넣어 준다. 맥주에도 온더락

6.4. 스포츠

축구가 가장 인기 많은 스포츠다. 프로리그인 V리그를 갖추고 있으며 동남아에서는 꽤 강호급이라 동남아시아 축구대회인 스즈키컵도 우승한 바 있다. 심지어 2003년에는 오만 쇼크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준 팀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컵같은 국제경기에서는 늘 예선탈락. 그리고 V리그도 세계적으로는 약체급이다. 리그 강호인 다낭 FC는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일본 감바 오사카에 15-0으로 크게 지며 성남 일화가 2004년에 페르시크 케디리(인도네시아)를 15:0으로 이긴 것과 더불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최다 골실점 차 기록으로 남아있다. 리그 우승팀은 AFC컵으로 진출한다.

단, 2007년 아시안컵 공동개최국으로 진출하여 일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와 엮인 조에서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여 그나마 개최국의 체면을 살린 바 있다(참고로 공동 개최국인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는 죄다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자세한 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할 것.

태권도의 인기가 많아서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은메달)도 태권도에서 나왔다. 그밖에 체스도 인기가 많아서 동남아 지역에서는 지존급이며 아시안 게임에서도 체스로 은메달을 따는 등 여러차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아직 초창기지만 야구의 저변 활성화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하노이에는 어느 미국 사업가의 지원하에 U12, U14 유소년 야구팀을 운영 중에 있으며 포니대회를 비롯한 국제 유소년 야구대회에 참가하며 경험을 쌓고 있다. 호치민에도 야구클럽팀이 존재한다. 국내 모 은행의 지원하에 호찌민시 근처에 정식 야구장과 리틀 야구장 각각 한 면씩 2014년 2월 완공 목표로 공사중에 있다.

7. 외교 관계

주변 나라와 사이 좋은 나라가 거의 없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이렇게 지정학적으로 여러나라 사이에 낀 나라는 다른 나라와 사이좋은 경우가 거의 없다. 역사적으로도 캄보디아의 전신인 크메르나 태국과 여러번 싸웠다. 18세기 중반에야 현재의 국경선이 만들어졌으며 19세기 초(1802년)에 들어서야 통일이 되었기 때문에 그전까지 여러번 전쟁을 하였다. 베트남은 16세기 중반 남북으로 나뉘었다가 19세기 초에 통일되었다. 심지어 캄보디아는 일시적으로 베트남에 합병당하기까지 하였다!

7.1. 미국과의 관계

베트남 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1995년 수교했다.

7.2. 한국과의 관계

한자문화권유교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과거 리 왕조의 왕자였던 이용상양혼이 고려로 배를 타고 망명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 전쟁국제결혼 등을 통해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충남외국어고등학교에서 베트남어 수업을 개설하였다.

7.3. 중국과의 관계

중국에서 베트남이 받은 문화적 영향은 심대하지만 중국의 군사적 점령과 베트남인들의 독립운동이 이어진 역사 덕에 감정이 좋지 않다. 현대에 들어서도 베트남전으로 잠시 가까워진듯 했으나 중월전쟁 이후 정치/군사적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다.
최근에는 영토 문제로 중국과 마찰을 빚어 베트남내에 반중감정이 심화되고있다.

7.4. 프랑스와의 관계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프랑코포니에 가입되어 있다.

7.5.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와는 북베트남시절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소련해체이후에 관계가 느슨해지다가 2010년대부터 가까워지고 있다.

8. 정치

사회주의 일당독재 국가로 현재 베트남의 집권 정당은 베트남 공산당(Đảng Cộng sản Việt Nam 당 꽁 싼 비엣 남/ 黨共產越南)이다. 한편 남베트남 출신 이민자들이 해외에서 결성한 각종 단체들은 베트남에서 반체제조직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2006년에는 자유민주주의베트남정부 소속인 베트남계 미국인 사업가 응우옌 흐우 짜인이 한국에 입국했다가 베트남 정부의 요청으로 체포되어 강제송환될 뻔한 사건도 있었다.

베트남 헌법 제5조는 베트남 공산당은 베트남 노동자의 선봉대이고 노동자, 농민계급 및 전 민족의 권리에 충성하는 대표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호치민 사상을 신봉하는 국가 및 사회의 영도세력이다. 당의 모든 조직은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헌법 제9조에서는 베트남 조국전선과 그 구성조직들이 인민정권의 정치기반이다. (중략) 인민으로 하여금 주권을 행사하고 헌법과 법률을 엄정히 시행토록 하며 국가기관, 민선대표, 간부의 활동을 감시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일반적인 사회주의 국가의 헌법에 나오는 공산당 중심의 프롤레타리아 일당독재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 각종 반체제 사건에 3~4년형 정도의 징역형 혹은 이에 상응하는 집행유예나 보호감찰 정도만 내리는 등, 갈수록 체제비판 세력에 대해 관대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베트남 인권상황에 대한 미국의 비판과 압박이 주효하고 있기 때문인데, 북한/쿠바 등과는 달리 베트남은 중국과 끊임없이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어 미국과의 우호관계 유지가 중요하다보니 어느 정도 미국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재미있는 것은 저 반체제 행위들 중에 '중국에 대한 비난'도 들어가 있는데 이는 중국에 대한 비난이 곧 중국과 사회주의 형제 관계를 맺고 있는 베트남 정부에 대한 비난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반미투쟁하면 잡아가던 예전 한국과 비슷

그런데 개헌을 앞두고 사회 전반에서 엄청난 개혁 요구들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국호에서 '사회주의'를 제외하자거나 호치민 살아 생전의 "베트남 민주 공화국"으로 국호를 다시 돌리자는 가히 파격적인 의견도 모자라 심지어는 주석 직선제나 다당제를 도입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1]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의견들이 묵살되지 않고 일단은 검토 의제로 수용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가장 정치 개혁에 적극적인 사회주의권 국가로써 앞으로의 정치 개혁 상황을 진지하게 지켜봐야 할 나라.물론 몽골이 끝판왕으로 버티고 있지만

인터넷 관련해서도 윗동네 중국과 똑같은 인터넷 검열 국가지만 그나마 중국처럼 유튜브, 트위터 등을 아예 못들어가게 하지는 않는다. 덕분에 베트남인 유튜버나 트남어 위키백과도 활발하다. 하지만 최근 베트남의 페이스북 차단으로 완전한 인터넷 자유를 누리고 있다기에는 약간 애매하다. 그래도 중국 보다는 나은 편. (그런데 다낭 공항에서는 트위터를 막아놨는지 접속이 되지 않는다.)

8.1. 소수민족 문제

베트남 정부가 공인한 소수민족 숫자는 54개이다. 하지만 전체 민족의 82% 정도를 킨족이 차지하기 때문에 킨족이 사실상 베트남인인 셈이다. 여기도 주변 동남아 나라들이 거의 그렇듯이 소수민족들에게 장난아닌 탄압과 차별을 해왔다. 중국에서는 한족이 실세이듯이 베트남에서는 비엣인(Người Việt, 越人)이라 불리는 킨족(Người Kinh, 京族)이 왕초 노릇을 하기 때문에 오죽했으면 베트남 전쟁 당시 므엉족이나 참족같은 소수민족들은 미군에게 붙어 베트남 녀석들을 아주 다 죽이겠다고 이를 갈았을 정도였다. 물론 이들을 이용하기 위해 미국은 그린베레 등의 특수부대를 보내 훈련시켰다. 사실 베트남 다수 민족인 킨족의 역사가 참족의 나라인 참파를 정복해 나가는 역사인데다가 19세기가 되어야 지금의 베트남의 영토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남북간의 문화가 상당히 이질적이다. 인종적으로도 확 구분이 갈 정도다. 미군들은 이 므엉족 참족을 실컷 이용하다가 전쟁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가차없이 철수했, 남겨진 이들은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 전역에서 매국노로 몰려 엄청난 학살과 탄압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이웃 나라로 수많은 난민들이 탈출하기도 했고 지금도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온 미국 영화 <그랜 토리노>를 보면 이런 소수민족 출신의 이민자들의 삶이 묘사되고 있다.영화 자막에서는 '몽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므엉'족이다.

베트남의 소수민족 탄압은 의외로 서구 제국주의 열강 뺨치는 수준이었다. 이슬람교힌두교를 믿던 참족에게 종교별로 돼지고기쇠고기를 강요하였고 캄보디아를 잠깐 합병 했을 때에는 합병 1년만에 창씨개명, 풍습개조, 직할화 등을 시행하는 동시에 남부 베트남의 크메르족 마을의 경우 베트남인 촌락으로 크메르족 촌락을 포위하면서까지 동화 시키려고 하였다.이러나 저러나 지배 당하는 민족은 불쌍하다

9. 경제

10.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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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당제 도입은 정권 수뇌부에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쳐도, 공산당이 다수의 후보를 내세우고 직접 국민이 투표하는 주석 직선제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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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3 11: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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