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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last modified: 2015-04-15 22:56:28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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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ɔ) Dbenbenn and others from

벨기에의 국기. 세로:가로 비율이 13:15라는 특이한 비율을 쓴다.[1]

면적30,528 km2
인구11,099,554명 (2013년)
수도브뤼셀[8]
국가원수필리프(Philippe/Filips) 국왕
정부수반엘리오 디 루포(Elio Di Rupo) 총리
국내총생산4203억 700만 달러 (30위. 2013년 IMF 기준)
공용어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화폐단위유로(€)
최상위 도메인.be[9]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경제
4. 지역과 언어공동체
4.1. 분리주의
5. 문화
6. 언어
7. 군사
8. 이민
9. 한국과의 관계
10. 사건 사고 관련 정보
10.1. 2011년 리에주 총기난사 사건
10.2. 안드라스 팬디 사건
10.3. 마르크 뒤트루 사건
11. 창작물에서의 벨기에
12. 기타

1. 개요

서유럽 네덜란드 왕국의 남쪽, 프랑스의 북쪽에 위치한 입헌군주국이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 3국으로 불린다. 수도는 브뤼셀(Bruxelles, Brussel).[10]

벨기에의 인구는 1천139만 명으로 세계 242개국의 국가 중 75위이다.[11] 비슷한 인구 규모의 국가로 헝가리(9백98만 명), 스웨덴(9백55만 명), 그리스(1천78만 명), 포르투갈(1천63만 명), 체코(1천53만 명) 등이 있다.

면적은 30,528㎢ 로 한국의 경상도 정도의 크기이다.

스페인-합스부르크에서 독립한 후 네덜란드와 함께 연합왕국을 구성하였으나 얼마 못 가 갈라졌다. 지금도 뭔 일만 있으면 네덜란드와 치고박는 사이. 네덜란드가 벨기에와 네덜란드 사이를 흐르는 강의 청소를 게을리하자 국가 전체가 홍합 불매운동을 벌인 일도 있다(...) 두 나라 모두 홍합을 종종 먹는다.

본래 베네룩스 3국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이후 펠리페 2세때부터 시작된 네덜란드의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에서 구교를 믿던 벨기에지방에서 스페인 왕실을 도와 네덜란드를 어렵게 만든 경우가 많았다. 1648년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후 벨기에는 합스부르크가에게 18세기까지 지배를 받다가 독립한 후 네덜란드와 연합왕국을 이루었으나 역사 종교적인 문제등으로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였다.

지리적으로 개방되어 있는데다가 영국프랑스가 벨기에를 자신의 앞마당 정도로 여겼던 터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처럼 수도 없는 전쟁이 벌어져 고생이 많았다. 현재는 EU 본부와 의회가 있는 유럽의 중요국가가 되었다.[12]

벨기에는 과거 콩고라는 유일한 식민지이지만 거대했던 영토를 다스렸던 시절도 있었고 불어권이다보니까 아프리카로부터 흑인의 유입이 많다. 오늘날은 흑인-백인 짬뽕인들이 많이 보인다. 이 나라도 나중에 흑인국가가 될 듯도 싶다.

그리고 무정부 상태(정확히는 무내각 상태)로 1년 이상을 보낸 나라(...) 기사 2011년 12월 6일, 541일 만에 겨우 새 내각이 출범했다. 자세한건 아래쪽에..

이 나라의 전 총리인 헤르만 판 롬푀이(Herman Van Rompuy)가 EU 정상회의[13] 의장 (President of the European Council)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EU 대통령"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한 시각. 또한 "European Council"은 "EU 정상회의"로 번역해야 하고, "The Council"은 "EU 각료회의"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14]

네덜란드와의 국경지대 중에 바를러라는 곳이 있는데 국경이 심히 복잡해서 월경지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 역사

B.C.5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켈트족의 일파인 벨가이족을 정벌했다는 기록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로마의 멸망 이후에는 샤를마뉴의 프랑크 왕국에 편입 되었다. 교통의 요지로서 사람이 많이 드나들어 상공업 발달에 적합한 위치였기 때문에 비교적 잘 사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15세기 초 이 지역에 위치했던 플랑드르 백국, 에이노 백국, 브라반트 공국 등을 부르고뉴 공국이 하나하나 반강제로 상속받으면서 대부분의 네덜란드 지역이 부르고뉴 통치하에 들어왔다. 1477년 부르고뉴 공국의 계승자였던 마리 공주가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하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지가 되었고 1556년 카를 5세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 왕위와 함께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영지를 물려주면서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된다.

1568년에 일어나 스페인에 반기를 든 80년 전쟁에서 신교도가 대부분이었던 네덜란드와는 달리 이 지역은 구교도가 대부분이었는지라 온건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1579년 네덜란드권의 플란데런(플랑드르) 지방과 브라반트 지방이 공식적으로 반란에 동참하고 남부 프랑스어 지방 왈롱이 스페인군에 협력하면서 분열되었다. 또한 지리적으로도 가장 남쪽에 위치했던 탓에 이 두 지방은 스페인군과 왈롱인들의 첫번째 목표가 되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일부가 되고 만다. 이로 인해, 스페인은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향유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왜냐하면, 플란데런 지역은 네덜란드에서 부유한 지역이었으므로 경제적인 중요성을 쉽게 말하면 세금 수입 증대, 브라반트 지역은 네덜란드의 수도가 브뤼셀에 위치했던 탓에 정치적인 중요성(주권, 국민, 영토의 상징인 왕궁이 브뤼셀에 있다)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이후, 1714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의 결과로 오스트리아령이 되었고 다시 1789년 프랑스 혁명군에게 공격을 받아 프랑스령이 되었다. 그리고 1815년 나폴레옹워털루 전투에서 몰락한 뒤로 빈 체제 하의 네덜란드 연합 왕국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1830년 7월 혁명 이후 벨기에 지역은 네덜란드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켜 결국 네덜란드와는 영구적으로 분리되었고 1831년 런던회의에서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등의 강대국들로부터 독립과 중립화를 확약받았다.[15]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 중 하나[16]였던 탓에 강대국 사이에 이리저리 넘겨지며 지내던 안습한 생활이 많았으나 독립 이후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려 1885년부터는 자국보다 80배나 더 큰 콩고를 식민지로 가졌던 식민국가가 되었다. 네덜란드나 벨기에나 본토가 워낙 좁아서 80배라 해봤자 그다지 넓지는 않았다. 스페인은 본토보다 약 20배 정도 큰 영토였지만 오늘날 러시아+인도 크기의 영토를 유지했었다. 대신 개인의 영토로 치면 엄청난 영토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사유지로 등록되었다.

레오폴드 2세는 식민지를 갖기 위한 군사력을 다른 열강과는 달리 가질 수 없었지만, 당시 열강간의 긴장관계의 틈을 노리는 동시에 리빙스턴, 스탠리의 탐험을 지원하는 교묘한 책략을 통해 콩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17]

하지만 유럽인들이 애써 외면하려던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잔악하고 가혹한 레오폴드 2세 식의 식민지 경영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거나 기근과 질병으로 죽어나갔던 것. 고무와 다이아몬드, 야자유를 생산하기 위해 원주민을 혹사했는데, 할당량을 못 채운 이는 한쪽 팔이 잘려나가고 한번 더 못채우면 바로 사형. 그리고 남은 할당량을 다른 사람에게 이양...이런 식으로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상아채취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래서 현지의 벨기에 관리들은 열심히 일하는 증거로 잘린 팔이 가득한 바구니를 내새우곤 했다. 이 때문에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마을 전체의 주민들이 살해당하기도 했으며, 할당량을 위해 주민들끼리 돌을 들고 서로 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가혹한 통치로 인해 200만명이 희생당했다고 추정한다. 당시 콩고의 인구는 2,000만명 가량. 이렇게 바득바득 모은 당시 왕의 개인재산은 10억달러 가량. 그 자신은 한번도 콩고에 방문한 적이 없었고, 그 재산 덕에 브뤼셀 등의 도시에 수많은 공공건물이 들어서 벨기에 국내에서만큼은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이러한 가혹한 통치는 제국주의가 하나의 대세였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비난을 받을 정도였으며[18] 결국 벨기에 의회가 콩고 식민지를 레오폴드 2세에게서 빼앗기에(...) 이르렀다.

이를 두고 일부 벨기에 우파들은 이에 대해 식민지 확장은 어디까지나 시대적 조류에 따라 행동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콩고에서 일어난 일은 분명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파의 특성상 굳이 언급은 안 하지만 왕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인한 과오로 덮으려는 논리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나 영어, 포르투갈 식민지 나라들이 서로 연방을 이루거나 언어 교류국으로 동맹을 이루거나 국제행사를 가지는 거와 달리 여긴 르완다나 콩고같은 나라에겐 개무시당하며 앞선 나라들이 지금도 식민지권 상당수에서 영향력을 가지는 거와 달리 벨기에는 그다지 영향력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때문에 벨기에 우파들은 아쉬워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19]

한편, 레오폴드 2세 사후 즉위한 조카 알베르 1세는 박학다식하고 결단력 있는 애국자였던지라 실추된 이미지를 꽤 회복했다.[20] 그러나 그의 아들 레오폴드 3세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항복하는 바람에 다시 이미지는 급 추락.[21] 결국 나치 패망 이후 국민투표에서 57%의 밋밋한 찬성률을 보이며 왕가가 돌아오긴 했지만 레오폴드 3세는 나치를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퇴위했다.

제1차 세계대전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국토 대부분이 점령당하고 최대의 격전지가 되었으며 그 교훈을 살려 에방 에말 요새를 건설하는 등 대비를 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또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전국토가 넘어가 버렸다. 이후 금융의 허브&평화로운 중립국의 이미지가 모두 박살나고 이를 스위스가 홀라당 채가서 빛을 바랬지만(...)

유럽연합의 중심국이 되면서 다시 유럽, 나아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중. 그러나 높은 세금이 벨기에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약 한화 5000만원 초과분부터 53.5%를 걷어간다. 최고세율 구간이 서민 평균 연봉보다 낮은 곳에서 시작한다. 덴마크, 스웨덴과 더불어 대표적인 서민증세의 나라. 다들 모르는 사실이지만 특별부유세로 현재 49%를 걷어가는 프랑스보다 어째 세율이 더 높다(...) 물론 75% 세금이 정말 이뤄졌다면 그에 비해선 낮은 금액이지만(...)

3. 경제

4. 지역과 언어공동체

(ɔ) Tom Lemmens
Original bad trace by Cedric de Launois (OpenClipart) from
©
  • Original: Pierre Paulus de Châtelet
  • Vectorization: Tom Lemmens
(cc0) from
플란데런 지방과
플란데런(네덜란드)어 공동체의 기
왈롱 지방과 프랑스어 공동체의 기
(ɔ) Precious alex from
© Ssolbergj (cc-by-3.0) from
독일어 공동체의 기 브뤼셀 수도권의 기

벨기에는 (지역감정이 강한) 여러 지역과 언어공동체들로 나누어져 있다.

언어공동체로는 3가지로 나뉜다. 지도

  • 플란데런(네덜란드)어 공동체 (Vlaamse Gemeenschap): 네덜란드어를 사용한다. 밑에서 설명할 브뤼셀 수도권은 프랑스어 공동체와 동시에 속하는 지역이다.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플란데런 지방의 관할 지역과 같다.

  • 프랑스어 공동체 (Communauté française):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밑에서 설명할 브뤼셀 수도권은 플란데런(네덜란드)어 공동체와 동시에 속하는 지역이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전 지역이 왈롱 지방의 관할 지역이기도 하다.

  • 독일어 공동체 (Deutschsprachige Gemeinschaft) : 동쪽의 일부 지역. 독일어 사용.[22] 독일어 공동체 관할 지역은 왈롱 지방의 관할 지역에 속하는 곳이기도 하다.

언어공동체 내에는 해당 언어공동체의 언어가 아닌 벨기에의 다른 공용어를 쓰는 사람들이 적잖이 거주하는 지역들도 있다. 이런 곳에는 언어공동체의 언어가 아닌 다른 공용어를 위한 언어 시설(네덜란드어: faciliteitengemeenten, 프랑스어: communes à facilités, 독일어: Fazilitäten-Gemeinden, 영어: language facility)을 설치, 해당 언어공동체의 언어를 모르는 이들의 불편을 방지하도록 한다.

지역권으로 나눌 때도 3가지로 나뉜다. 지도
  • 플란데런 지역 (네덜란드어: Vlaanderen, 불어: Flandre, 영어: Flanders[23]): 플란데런(네덜란드)어 공동체와 거의 같은 관할 지역을 가지고 있지만, 플란데런어 공동체에 속하는 브뤼셀 수도권은 제외된다.

  • 지역 (불어: Wallonie, 네덜란드어: Wallonië, 영어: Wallonia): 프랑스어 공동체와 독일어 공동체 관할지역을 합친 것과 비슷하지만, 프랑스어 공동체에 속하는 브뤼셀 수도권은 왈롱 지방에서 제외된다.

  • 브뤼셀 수도권[24] :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통용한다. 위치상으로는 플란데런 지역이 브뤼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언어공동체로는 플란데런(네덜란드)어 공동체와 프랑스어 공동체 양쪽에 동시에 속하지만, 지역권으로는 별도의 지역이다.

언어공동체와 위 지역권들의 대응 관계를 표로 간단히 나타나면 다음과 같다.

플란데런어
공동체
프랑스어
공동체
독일어
공동체
플란데런 지역 O
왈롱 지역 O1 O1
브뤼셀 수도권 O2

  1. 왈롱 지역은 프랑스어 공동체에 속하는 지역과 독일어 공동체에 속하는 지역으로 나뉘어 있음. 두 언어 공동체 양쪽에 모두에 속하는 지역은 없음.
  2. 브뤼셀 수도권은 전 지역이 플란데런어 공동체와 프랑스어 공동체 양쪽 모두에 소속됨.

벨기에 전체를 대표하는 연방의회는 상·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이다. 그리고 언어공동체와 지역권별로 단원제 의회가 있고 연방제라 각각 입법권이 있다. 그러면 언어공동체와 지역권 의회는 모두 6개가 돼야 할 것 같지만, 플란데런 의회가 플란데런어 공동체와 플란데런 지방의 의회를 겸하고 있어서 실제로는 5개가 있다. 플란데런 의회에서는 브뤼셀 수도권 지역에서 선출된 의원들이 소수 있는데 이들은 오로지 언어공동체 차원의 입법 활동을 할 때만 표결 권한이 있고, 플란데런 지방 차원의 입법 활동에서는 배제된다. 브뤼셀 수도권 지방은 수도권 자체의 의회도 있고, 플란데런어 공동체의 의회와 프랑스어 공동체의 의회의 관할구역 안에도 들어가기 때문에, 무려 세 의회의 통제를 받는다(...). 물론 각 의회는 다루는 사안이 다르지만...

벨기에 왕족은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독일어는 특별한 규정은 없다. 오히려 1차 대전중 벨기에 왕실의 처신으로 인해 왕가내에선 독일에 대한 반감으로 1920년에 기존 독일계임을 상징하는 가문명인 작센-코부르크-고타(sachen-coburg-gotha)을 버리고 영어로 of Belgium인 네:de Belgique 불:van België 독:von Belgien을 성씨로 사용한다.[25] 더불어 공용어가 3개임으로 이름을 각 언어별로 3개씩 쓸수 있으나 대부분의 왕족은 독일어 이름을 따로 두지 않고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 측에서도 프랑스어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실제 예로 벨기에의 국가인 브라방 찬가(La Brabançonne)마저도 불어와 네덜란드어, 그리고 독일어와 왈롱 지방에서 쓰이는 왈롱어[26][27] 네 개의 언어 버전이 존재한다. 심지어 벨기에의 어떤 공주가 국가를 부르는 도중에 프랑스어로 된 국가는 무사히 불렀는데 네덜란드어로 된 국가를 틀리는 바람에 플란데런 사람들에게 아니 넌 공주나 된 것이 국어도 모르냐?라고 무진장 까였다. 그런데 왈롱 사람들은 이런 공주를 옹호해주며 플란데런 사람들을 깠다고 한다(...)

언어가 다른 만큼 지역간의 대립과 반목이 심하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왈롱(왈로니) 지방과 경제적 주도권을 잡고 있는 플란데런(플랑드르) 지방의 반목은 정부 성립까지 후퇴시켰다. 주 문제인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왈롱에 경제적 지원정책이 세워지면 플란데런 지역은 또 여기에 반발하고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

사실 이런 감정은 이유가 있다. 우선 벨기에를 중세-근세까지 지배하였던 부르고뉴의 영향으로 정치적인 문서들이 불어로 작성되어 플란데런 지방 사람들은 읽고 쓸 수 없는 문맹으로 분류되어 입법, 행정, 사법에서 제외시켰다.[28] 이뿐 아니라 독립을 왈롱인들이 주도한 것도 정치적인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또한 이 시기 불어를 쓰던 지배층들은 문서를 모두 불어로만 작성하게 하여 불어를 모르는 플란데런인들을 반 예속상태한마디로 바보로 유지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정치적 상류 계층인 부르고뉴인들이 네덜란드어를 한마디도 못해 서로 의사소통이 단절되어 있었던 데다가 일부 무식한 상류층들이 플란더렌 사람들을 해적, 거지에 비유하여 제도적, 정서적으로 단절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나라 말로 해도 욕은 알아듣는 모양

경제적으로는 벨기에를 중견 국가로 성장시킨 산업 혁명 시기, 벨기에의 탄전과 철광산 대부분이 왈롱 지방에 집중되어서 벨기에의 성장을 이끈 중공업 또한 왈롱에서 발달하였다. 이로 인해 막대한 부가 왈롱인들에게 쏠리게 된다.

반면 한때 서유럽 무역의 거점으로 화려하게 번영하던 플란데런 지방[29]은 전통 산업인 직물 공업이 쇠락하는 등 지독한 경제난을 겪고 왈롱인들에게 거지 취급을 받는 고초를 겪었다. 본래 플란데런인들의 도시였던 브뤼셀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빠져나가는 플란데런인들과 수도로 진출하려는 왈롱인들의 이주로 인해 인구비가 역전되어 왈롱인들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30] 이런 취급은 벨기에 독립후 150여년 가까이 지속되다가 현대에 들어와서 벨기에의 중공업 섹터가 몰락하고, 관광과 금융으로 되살아난 플란데런 경제가 화려한 부활을 하면서 완전히 역전돼 버린 것이다.근데 융위기로 플란데런 기반 Fortis Bank 망했다며? 플란데런도... 안될거야 아마.

이로 인해 플란데런 사람들의 깊어진 감정의 골은 어떤 사람이든 모국어로 된 행정 문서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법을 제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가의 주요 부서의 장관을 플란데런인으로 지속적으로 정하는 등 불어권에 대한 압박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 당연히 불어권은 심히 반발중…. 이 나라 싸움은 예부터 지금까지 끝이 없다. 그리고 이 둘의 싸움에 소외받고 있다며 독일어권이 난리법석 중.

한편, 2010년대 들어서 인터넷 주소를 관리하는 ICANN의 정책이 바뀌어, ISO 3166-1 코드가 없는 지역·민족 집단·언어권 등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최상위 도메인(TLD)를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GeoTLD라고 하는데, 벨기에에서는 브뤼셀 수도권을 위한 .brussels과 플란데런을 위한 .vlaanderen을 등록했다.# 반면 왈롱 정부는 거기에 들어가는 돈이 아깝다며 등록 안 하고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데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왈롱 정부의 예산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최상위 도메인은 민간 단체·기업이 등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향후 민간에서 나서서 왈롱의 도메인을 등록하려 할 수도 있다.

4.1. 분리주의

왈롱과 플란데런 양쪽 모두 자치권 확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심각하게 커져서 스위스식의 느슨한 연방제 국가로 변모할 개연성이 높아졌다. 이미 연방국가이긴 한데 각 지방이 더 느슨해질 전망. 어쩌면 연방(federation)보다는 국가연합(confederation), 즉 여러 '국가'들의 연합체로 변경될 가능성도 있고, 그보다 더 과격하게 아예 별개의 국가들로 완전히 분리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나라의 정치는 막장의 끝을 달리고 있다. 거의 매년마다 모종의 일로 지방들이 서로 분리하려고 지지고 볶고 난리다. 2009년 여름에도 총리가 총리류 최종 오의의회해산권을 발동하였는데 새로 당선된 총리가 모든(7개) 의회에서 통과받지 못해서 무☆효, 거의 반년간 정부수반이 없는(왕은 정부수반이 아니라 상징적인 국가원수이니 제외) 진짜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물론 연방정부의 공무원들이야 각 부처의 차관 등이 공석인 장관을 대리하여 일하긴 했으니 완전한 의미의 무정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막장임을 부인하긴 어려웠다. 이 난리 끝에 겨우겨우 새로 정부 만들었더니,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5당중 하나가 탈퇴해버려서 반수를 못 이루게 된다.

결국 자포자기한 여당들은 또다시 오의 발동 의회고 내각이고 다 해산(...)해버렸다. 근데 2010년 6월 중순의 총선 결과, 플란데런 지방은 분리주의당이 여당(온건파 N-VA와 강경파 Vlaams Belang 합쳐서 40%)이 되고, 왈롱 지방은 PS(사회주의당)이 여당이 되었다. N-VA는 벨기에 총리는 왈롱에게 주고, 자신은 플란데런 통치에 나서는 대신 독립국에 준하는 자치를 얻으며 점차 조용한 분리를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협상 돌아가는거 보면 꼭 그런거 같지도 않다(...). 한편 왈롱에서는 국가 분열시 66%가 프랑스에 합병되는 것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31] 뭐야 이거 무서워(...).

브뤼셀 수도권(브뤼셀 시와 그 주변 지역 모두 포함)은 분리 독립과 관련하여 아주 골치아픈 지역이다. 언어공동체 두 개가 중첩되는 곳일 정도로 양측에게 중요한 곳이다. 따라서 만약 플란데런과 왈롱을 나눈다면 대체 어디에 속하게 해야 할 것인지 문제가 된다. 먼저, 플란데런과 왈롱이 서로 브뤼셀을 차지하겠다고 다툴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아예 독립국이 된 플란데런과 왈롱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지역(condominium)으로 만들자는 말도 있다. 공동통치가 쉬울까? 또, 아예 어디에도 안 속하는 별도의 지역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2010년 9월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도인 브뤼셀 시민들까지도 나라가 남북으로 쪼개진다면 그 와중에 브뤼셀은 또 별개(...)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브뤼셀을 EU 수도 내지는 유럽 특별구로 만들어 플란데런과도 왈롱과도 같이 놀지 않겠다는 소리다(…). 유럽연합판 워싱턴 D.C.가 되겠다는 뜻.[32]

그런데 브뤼셀 수도권은 플란데런 지방에 둘러싸여 있는 형태로 돼 있어서 왈롱 지방과 직접 닿지 못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브뤼셀 수도권이 독립국 플란데런과 왈롱의 공동 통치구역이 되거나, 왈롱에 속하게 될 경우 플란데런 지방 일부를 수도권으로 옮겨서 왈롱 지방과 직접 경계선이 닿게 하자는 얘기도 아울러 있는 듯.

어쨌든 여자저차 플란데런과 왈롱이 분리된 다음에도 각각 문젯거리가 생긴다. 그냥 계속 그렇게 독립국 상태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언어가 통하는 이웃나라(네덜란드, 프랑스)에 합병되는 쪽을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또 벨기에 국왕과 왕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플란데런과 왈롱이 독립국이 되면 플란데런과 왈롱 간의 동군연합을 형성하는 국왕과 왕실이 형태로 존속할 여지가 있는데, 만약 두 곳 모두 이웃나라와 합쳐지는 쪽을 택할 경우 안습하게도 왕관을 내려놔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때 혹시 브뤼셀 수도권이 별도의 지역으로 남는다면 왕이 브뤼셀 수도권에 붙어서 버텨볼(...) 여지는 있겠다.

독일어 공동체도 골치 아프다. 벨기에가 분리될 경우 왈롱 지방에 속하니 왈롱을 따라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할수 있지만 왈롱인들의 희망일수 있다 옵션은 여러개이다. 1. 독일로 돌아가기, 2. 왈롱에서도 분리되어 억지로라도 독립된 미니국가가 되기, 3. 왈롱에서도 분리되어 그나마 사정과 언어가 비슷한 인접국 룩셈부르크에 합병되기.

그런데 1은 독일이 옛 전범국가라 쉽지 않다. 독일 스스로도 통일 당시 기본법(헌법)에 더 이상 영토를 확장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독일이 기본법을 개정하고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를 흡수할 순 있는데 폴란드제2차 세계대전 피해국들이 나치의 부활이 아니냐며 반발할 것이다. 독일이 기본법에 영토를 더 확장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괜히 집어넣은 게 아닌데 '고작' 벨기에의 독일어 공동체를 흡수하자고 주변국의 반발에 시달리면서까지 이 조항을 삭제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독일인들의 정신적인 고향인 구 오스트프로이센 주 현 칼리닌그라드 주 조차도 현지 러시아인들이 자발적으로 독일환수 운동을 펼쳤는데 독일측에선 기존 영토 확장없음이란 원칙은 변함이 없다고 선언하였기도 하다. 그리고 설령 독일로 돌아간다 해도, 벨기에 사회의 소수 언어 사용 집단으로서 누려온 자치권 등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큰데 이게 독일어 공동체 주민들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 일례로 독일어 공동체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 다수가 독일 등지로 유학을 선택하는데 이 과정에서 독일 정책에 의해 각국내 소수언어로서의 독일어 모국어 화자에게는 입학에 있어 받을수 있는 혜택이 더이상 유효하게 되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2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호한 일이다.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 구성원들의 우린 독일도 아니고 왈롱도 아니고 독일어 공동체 사람이다 라는 정체성에 따르면 가장 유효할만한 선택지 일수 있으나, 만약 독립국을 만들게 되면 EU에 들어있다 쳐도 특별한 산업이 없어 다른 나라들의 눈총과 각종 압력을 무릅쓰고 세금 회피처(tax haven)가 돼야 겨우 먹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일어 공동체 내에 있는 켈미스를 수도로 둔 과거 1세기 정도 존재하던 중립 모레스네의 결과가 어땠는가? 다만 현대사회에서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적용시키기 무리라는 점도 있다.

3 역시 불가능하진 않으나 가장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이다. 룩셈부르크로서는 굳이 벨기에 쪽으로 영역을 넓히고 싶다면 독일 연방과 나치 시절 한배를 탄 수준에 불과했던 독일어 공동체 영역보다는 영국,프랑스,프로이센 사이에 껴서 중립화를 보장받는 대신 벨기에에 넘겨주게 된 벨기에 뤽상부르 주를 원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리고 2와 3의 경우 다른 문제도 있는데, 현재 독일어 공동체는 땅이 이어져 있지 않고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어[33] 월경지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독일어 공동체의 영역을 변경하지 않은 채 2나 3을 택할 경우 두 지역을 오가려면 다른 나라(독립국이 된 왈롱이나 독일)를 거쳐가야 하는 불편이 생긴다.[34] 물론 유럽 통합이 많이 이뤄져서 큰 문제는 아닐 수 있으나 그래도 월경지가 없는 것보다는 성가신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나라가 언제 찢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정치가 막장을 달리고 있다. 총선 후 200일이 넘도록 내각이 구성되지 않아 2011년 1월 23일에 브뤼셀에 2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서 무정부상태를 끝내라는 시위까지 벌였다.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남자들은 수염을 깎지 말자는 캠페인도 진행했으나, 캠페인을 펼친 사람들도 수염이 땅에 닿을 때까지 무정부상태가 지속될거 같다는 농인지 진담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한마디를 남겼다.

2011년 3월 30일, 무정부 상태로 290일째를 맞이하면서 종전 무정부상태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던 이라크의 289일을 경신했다. 자랑이다 열받은 국민들은 지연된 정부수립 날짜만큼 누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기록 갱신욕구에 불타는 벨기에 정부는 6월 3일까지 무정부 상태로 남아 마침내 1년을 넘겼다. 결국 2011년 9월 15일, 459일만에 브뤼셀-알레-빌보르데(BHV) 선거구 분할 문제에 합의를 이뤘고, 그 뒤는 미적거리다 11월 25일 S&P가 벨기에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고 나서야(...) 비로소 각 정파들이 회동해 예산 삭감을 통해 재정적자 감축에 합의함에 따라 12월 6일, 사회당의 엘리오 디 뤼포를 새 총리로 하는 내각이 겨우 출범해 무정부 상태는 541일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이런 막장 상황에서도 국가는 그럭저럭 돌아갔다. 벨기에는 중앙정부가 매우 약한 대신 지나칠 정도로 강한 지방정부를 가졌고, 이런 막장 상황에서는 이 점이 의외로 빛을 발했다. 벨기에 대사관에 가면 상무관은 연방정부에서 파견되는 게 아니라 각 지방정부에서 1명씩 나온다. 이는 산업정책이 지방정부 고유권한으로 넘어가 있기 때문. (실제로 한국 신문에서도 왈롱에 투자하세요라고 광고를 뽑지, 벨기에에 투자하세요라고 광고를 뽑지는 않았다(...))

일단 국가 수장인 왕이 매번 두 지방들 간의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고생하지만, 철저하게 무시당한다.(...) 덕분에 국민의 왕을 향한 시선은 좀 많이 불쌍한 사람 정도(…)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던 200여일간 왕이 지명한 조정관이 플란데런 다수당인 N-VA(온건 플란데런 분리주의자)와 왈롱 다수당인 PS(왈롱 사회당)의 협상을 주도했지만 조정관만 9번 바뀌었다…. [35]

왜 이 나라 표어가 "단결은 곧 국력이다"인지 알 만하다(...)

유럽 통합의 상징인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이 정작 분열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36]

5. 문화

6. 언어

'지역' 문단에도 써있듯이 벨기에 영토 내에서 다양한 언어가 사용된다. 영어와 네덜란드어밖에 못한다며 알바가 짤린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국민 통합을 위해 네덜란드어권은 제1외국어로 불어를, 불어권은 제1외국어로 네덜란드어를 가르치고 있다. 실제 사람들은 간신히 알아듣는 수준. 그렇지만 수도 브뤼셀은 벨기에 불어권 중 영어와 네덜란드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인구가 꽤 높다. 불어권에서 안 통하던 영어가 가장 잘 통하는 지역이다. 불어권 한정으로 대학생들도 취업 전까지는 모국어 밖에 못하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미스 벨기에는 국민 통합을 위해 반드시 불어네덜란드어를 자유롭게 구사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국민 대부분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서 조금만 떴다 하면 프랑스나 네덜란드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네덜란드도 그렇게 시장이 크다곤 할 수 없어서 (...) 주로 프랑스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왈롱 지방에는 벨기에식 프랑스어가 많이 쓰이지만, 롱어라는 언어도 있다. 프랑스어와 같은 오일제어(langues d'oïl)에 속하는데, 종종 프랑스어의 벨기에 방언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학자들은 프랑스어와 친척뻘인 다른 언어로 취급한다. 현재는 벨기에식 프랑스어에 밀려서 60만 명 정도만 왈롱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비슷하게 서(西)플란데런어라는 언어가 플란데런 지방 서부에서 쓰이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네덜란드어의 방언으로 취급하지만 표준적인 네덜란드어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당히 달라서 언어학자들이 별개의 언어로 분류하기도 한다. 1990년대 말기에 140만 명 정도가 사용하는 걸로 조사됐다. 왈롱어와 서플란데런어는 유네스코에 의해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되었다.

7. 군사

국가의 크기가 작고 군사력도 별볼일 없어 무시당하기 쉽지만 서방 세계 기관총을 석권한 FN 미니미FN MAG를 개발한 FN사라는 걸출한 총기회사가 바로 벨기에에 있다. 국제연합 평화유지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르완다 내전 당시 10명의 병사들이 수상을 지키던 중 살해당하는 일이 있었다. 군수기업으로는 장갑차의 포탑을 생산하는 CMI 그룹 산하의 CMI 디펜스가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NATO 본부가 브뤼셀에 있다.

8. 이민

인구증가률이 계속 낮아지고, 대신 터키계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견제하는 우익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유럽국가들과 같이 에너지 자원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서 러시아를 견제하는 나부코 송유관을 기대하는 분위기라서 송유관 대부분이 지나는 터키의 심기를 건드리진 않으려 한다.

9. 한국과의 관계

1961년에 외교관계를 맺었으며[37] 1950년 한국전쟁룩셈부르크와 함께 연합체제를 편성하여 UN군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최우선 수교대상국으로 지정. 아울러 1948년 정부 수립 후 제일 먼저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 정부로 승인. 1965년 수교.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대한민국과 함께 H조에 속하게 되어, 세번째[38] 그리고 여지없이 패퇴하며 대 벨기에 전적 1무 2패. 한국인은 824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나라 출신 줄리안 퀸타르트는 한국 방송에도 출연한다.

10.1. 2011년 리에주 총기난사 사건

2011년 12월 13일 벨기에의 도시 리에주에서 5명이 죽고 125명[39]이 다친 사건.
33세의 노르딘 암라니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와 사람들로 북적이던 상 랑베르 광장에서 수류탄을 던지고 FN FAL을 난사한 뒤 권총으로 자살했다.
암라니는 로켓런쳐와 소총, 저격소총을 포함한 수십 정의 무기와 수천 개의 무기 부품, 2800여 포기의 대마초를 범죄를 목적으로 소지한 혐의[40]로 2008년에 5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가 2010년 10월에 가석방되었다.
사건 당일 성적 학대와 관련하여 경찰에 출두하기로 되어 있었던 암라니는 이웃을 청소해주는 여성을 청소 계약을 위한 상담을 한다면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고 살해했다.

10.2. 안드라스 팬디 사건

헝가리의 성직자 출신으로 벨기에에서 난민 생활을 하던 안드라스 팬디라는 살인마가 자신의 친딸과 의붓딸을 성폭행하고 두 명의 전처와 자신의 자식, 의붓자식 도합 6명을 연쇄 살해하고[41] 시신을 아주 잔인하게 훼손한 사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며 1997년에 같이 범행에 가담했던 딸 아그네스가 자수함으로써 그 진상이 드러났으나 당시에는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잠정 종결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뒤인 2002년 마르크 뒤트루 재판이 여론에 알려져 벨기에 내에서 아동 성범죄, 살인죄에 대한 엄벌 여론이 일고 미제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적극 촉구하는 여론의 요구로 검찰이 사건 파일을 다시 열고 안드라스 팬디와 그 딸을 구속, 조사하면서 진상이 드러나게 됐는데 알고 보니 안드라스 팬디는 겉으로는 훌륭한 성직자였으며 루마니아 독재자 때문에 고아가 된 아이들을 보호하는 단체의 설립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집안에서는 폭군이었고 자기 눈밖에 났거나 도망친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안달인 인물이었던 것.

결국 다섯 명에 대한 살인. 의붓딸에 대한 성폭행 및 살인미수. 친딸에 대한 성폭행이 유죄로 인정되어 안드라스 팬디는 무기징역. 딸 아그네스 팬디는 기소된 살인 및 살인 미수 모두가 유죄로 인정되긴 햇으나 자수한 점과 오랜 기간 성학대를 받으며 범행 가담을 강요당한 것이 참작되어 징역 2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아그네스 팬디는 2010년 6월 가석방되었으며[42] 안드라스 팬디는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10.3. 마르크 뒤트루 사건

1990년대 중반에 벌어진 아동 성폭행 연쇄살인 사건으로 벨기에의 소아성애자인 마르크 뒤트루가 다수의 아무런 관계도 없는 소녀들을 납치하고 성폭행한 뒤 감금했으며 그 중 두 소녀를 살해하고 또한 범행의 은폐를 목적으로 공범 베르나르 와인슈타인도 살해한 사건이다. 그가 다른 범죄로 경찰에 붙잡혔을 때 아내 미셸 마르탱이 또 다른 두 명의 어린 소녀를 굶겨 죽임으로써 도합 네 명의 소녀가 피살되었으며 희생자는 총 5명에 이르렀으며 벨기에 검찰은 마르크 뒤트루를 주범으로, 아내 미셸 마르탱과 미셸 르리브르, 미셸 니울을 공범으로 기소하였다.

이후 오랜 기간에 걸친 조사 끝에 2004년부터 재판이 시작되었고 아동 4명 납치 살해. 2명 납치 및 성폭행. 공범 살해(뒤트루는 이 사건을 혼자서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등 모든 사건의 유죄가 인정되어 뒤트루는 무기징역 및 정부의 임의 처분 대상 지정.[43] 미셸 마르탱은 징역 30년. 미셸 르리브르는 징역 25년. 미셸 니울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미셸 니울은 2006년 5월에 만기 출소. 미셸 르리브르도 2005년 10월에 피해자와 합의한 점. 살인 및 성폭행은 하지 않고 납치에만 가담한 점 등이 인정되어 가석방을 허용. 출소하였다. 미셸 마르탱은 30년 중 15년의 형량을 채운 뒤 2011년 가석방 신청을 하여 허가받고[44] 수녀원에서 남은 수감 기간 동안 격리, 감시받는 형태로 출소하게 되었다. 마르크 뒤트루는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에 있는데 뒤트루는 2013년 무기수의 기본 복역 형량을 채운 뒤 가석방 신청을 했다가 '죄질이 너무 나쁘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이유' 로 기각되었다. 소아성애자라 교화도 거의 불가능한 만큼 교도소에서 일생을 마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로 이 사건 직후 벨기에 내부에서는 사형 제도를 부활시켰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적이 있지만[45] 이는 벨기에 헌법상(제18조 연성헌법 국가라 굳이 수정 못 할 이유는 없다만)이나 유럽연합 헌법 규정상으로는 불가능하다.

11. 창작물에서의 벨기에

삡? 삐삐코!
홈즈 다음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탐정 캐릭터 에르큘 포와로의 모국이 벨기에이다. 작가는 영국인이지만.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강하여, 주위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이냐고 물으면 딱 부러지게 "나는 벨기에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영국 총리가 독일 스파이에 의해 납치당한 사건을 맡았을 때, 벨기에 국왕으로부터의 추천을 받았음을 알게 된 포와로가 경례를 올리면서 감격한 목소리로 반드시 사건을 해결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상하게도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악역들은 벨기에로 도망가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인들의 벨기에에 대한 관점인지도. 실제로 프랑스인 범죄자들의 도피처로 벨기에가 선호됐으며, 프랑스 혁명 당시에도 수많은 정치범들이 벨기에로 망명 내지는 피신을 갔다. 그러다 벨기에 정부에서는 타국의 정치상황에 더이상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 1833년에 '정치범 불인도법'을 국내법으로 제정했고 이듬해에 프랑스-벨기에 간 범죄인 인도조약에서 정치범의 불인도에 대한 내용을 삽입하기에 이르렀다.

12. 기타

  • 벨기에에서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히는 것은 불법이다.젠장!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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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벨기에에서는 이 비율을 자기들이 정해놓고도 대체 이 비율이 어떤 경위로 지정됐는지 모른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2:3인 국기를 쓰고 심지어는 정부 기관에서도 세로:가로 비율이 2:3인 국기를 쓰기도 한다.
  • [2] 네덜란드어 België를 대강 읽어서 정착된 표기이다.
  • [3] 프랑스어 Belgique를 기준으로 한 표기.
  • [4] 아무래도 한국어(표준어)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어 België를 대강 읽은 것이 정착된 표기로 보인다.
  • [5] 외래어 음역의 경우 중국어권 국가·지역마다 완전히 다른 표기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 벨기에는 정체자와 간체자 자형 차이밖에 없다.
  • [6] 중국 대륙(본토), 대만(중화민국), 싱가포르의 중국어 표준.
  • [7] 홍콩마카오의 실질적인 중국어 표준.
  • [8] 벨기에의 법적(de jure) 수도는 브뤼셀 시만으로 한정되지만, 브뤼셀 수도권 전체가 실질적(de facto)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 [9] 벨기에 전체의 국가코드 최상위 도메인(ccTLD). 유럽연합 회원국으로서 .eu도 쓴다. 그리고 GeoTLD로서 브뤼셀 수도권을 위한 .brussels과 플란데런을 위한 .vlaanderen도 서비스에 들어갔다.
  • [10] 네덜란드어로는 브뤼설(Brussel)이라고 하는데 어원은 'bruoc(늪)'과 'Sella(집)'의 합성인 Bruocsella라고 한다.
  • [11]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opulation
  • [12] 더불어 NATO의 본부도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에 있다.
  • [13] 혹은 '유럽 이사회'
  • [14] 다만 이 부분은 EU관련 용어의 한국어 번역어가 아직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에 추후 논의 필요.
  • [15] 이를 따라해보려고 조선 말에 나온 주장이 '한반도 중립화론'.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유길준은 벨기에를 언급했다. 우리의 지리적 위치는 벨기에와 같고, 중국에 조공하던 것은 터키에 조공하던 불가리아와 같다. 불가리아의 중립은 유럽 열강들이 러시아를 막기 위함이고, 벨기에의 중립은 유립 열강들이 자국을 보전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이 아시아의 중립국이 된다면 러시아를 방어할 수도, 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보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 [16] 영국에서 양털을 수입하면 네덜란드어권 지역(플란데런)에서 레이스, 천으로 가공했다.
  • [17] 콩고(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 지역의 수백명의 부족장들로부터 일일이 서명(?)등을 받아 '콩고 자유국'이라는 이름하에 벨기에 식민지를 만든 것. 자유국으로 쓰고 식민지로 읽는다.
  • [18] 레오폴드 2세를 싫어하던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는 신나서 열심히 깠다. 하지만 빌헬름 2세 본인도 의화단 사건 당시 독일군의 무자비함을 부추긴 사람으로 남 욕할 처지가 못 되는 백인우월주의의 화신.
  • [19] 덧붙여서,콩고도 제대로 관리 못하면서 옆에 있던 독일 식민지 독일령 동아프리카에 속해있던 르완다부룬디1차대전의 피해에 대한 보상격으로 받아내어 신탁통치를 하였는데, 이 통치가 20세기말 최대 비극중 하나인 르완다 내전을 일으키게 된다. 후투인와 투치인 두 부족을 이간질시켜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하는 전형적인 식민지 통치방식이 독립 후에 말썽을 일으킨 것. 결국 두 민족간의 갈등은 곪고 곪아오다가 독립 후 양측의 내전이 터져 100만명 이상이 사망하게 되었다.
  • [20] 1차대전 당시 국가의 황폐화를 각오하고 독일군에 맞서싸워 진격 속도를 지연시키고 국토의 일부를 끝까지 사수한 점 덕분에 벨기에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큰 존경을 받는다. 정작 최후는 등산하다 추락사... 세상 모든 영웅이 그렇게 아름답게 죽진 않습니다
  • [21] 전황이 워낙 불리했으므로 항복을 충분히 고려할만한 상황이었으나, 연합국과 제대로 된 협의나 통보가 없었고, 심지어 자국정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총사령관 자격으로 항복선언을 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 [22] 오이펜 일대와 말메디 주변이 이 공동체로 지정되어있다. 본래 독일 영토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벨기에에 할양된 지역 중 일부이다. '일부'라고 한 것은 과거에 할양 받은 모든 지역이 독일어 공동체로 지정돼 있진 않기 때문이다(프랑스어권에 잠식됨).
  • [23] 소설 플랜더스의 개에서 플랜더스가 바로 이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 [24] 브뤼셀 시와 인근 지역을 합친 지역을 가리킨다. 즉 브뤼셀 시는 이 지역의 일부이다. 참고로 벨기에의 법적(de jure) 수도는 브뤼셀 시 뿐이지만, 브뤼셀 수도권 전체가 실질적인(de facto) 수도 역할을 한다고 한다. 왜냐면 각종 정부 시설들이 수도권 안에서 브뤼셀 시가 아닌 지역에도 위치하고 있기 때문.
  • [25] 왕가 문장에서도 작센의 심볼을 빼버렸다.
  • [26] 프랑스어의 방언으로 보기도 하지만 언어학자들은 프랑스어와 친척뻘인 언어로 친다. 현재 왈롱 사람들 대다수가 벨기에식 프랑스어를 사용하여 왈롱어 사용 인구가 극도로 적어졌기 때문에 유네스코가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했다.
  • [27] 벨기에 국가 공식행사에서도 네덜란드어,불어는 기본이고 독일어까지 보통 3개 언어를 섞어서 부르는 반면에 왈롱어까지 섞어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 [28] 소송장도 못쓰는데 뭔 재판이 가능하냐는 논리.
  • [29] 브뤼셀 근교의 브뤼헤가 여기에 해당된다. 브뤼헤는 서유럽 무역의 거점으로 '서유럽의 베니스'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직물 공업의 쇠락과 도시 주변의 수로가 막혀버리는 바람에 그저 망했어요. 그래도 리즈시절이 워낙 찬란했던지라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어 벨기에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됐다.
  • [30] 이 부분은 왈롱과 플란데런의 설명이 다르다. 왈롱인의 입장에 따르면 브뤼셀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불어를 상용하였고, 사실 현재의 네덜란드어권인 헨트도 중세때는 카를 5세가 불어와 스페인어를 상용하던 곳이다. 산업혁명으로 가난했던 플란데런의 인구들이 브뤼셀로 이주하면서 네덜란드어가 다소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 [31] 왈롱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플란데런 지역이 압박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입장인데다, 평소 사먹는 식료품 등을 주말에 프랑스에 가서 사오는 등 프랑스 문화와 유사하므로 프랑스에 편입되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프랑스가 역사적인 문제도 있고(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에 의하면 산업혁명기 당시 벨기에에서 노동자들이 넘어와 프랑스인들과 경쟁하면서 벨기에에 대한 감정이 나빠졌다고 한다.) 반발심과 장난끼가 강한 벨기에인들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래 문화편 아르센 뤼팽 부분 참고. 어른의 사정인지도... 근데 반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참고
  • [32] 물론 미국은 연방국가이고 EU는 국가연합이라 성격이 똑같진 않다.
  • [33] 현재는 오이펜 및 그 주변 지역, 벨기에령 아이펠 지역으로 쪼개져 있어서 현재 프랑스어 공동체 지역을 거쳐야 두 지역을 오갈 수 있다. 본래의 오이펜-말메디 지역은 지금보다 넓어서 이렇게 둘로 쪼개져 있지 않았으나, 현재 독일어 공동체는 그보다 적은 관할지를 가지면서 월경지가 생겼다. 오이펜-말메디 지역의 프랑스어 사용 지역이 언어따라 왈롱으로 완전 편입된 결과이다.
  • [34] 참고로 플란데런도 월경지들이 두 군데 있긴 하다. 경계선이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네덜란드와의 국경 지대 바를러헤르토크와, 왈롱 지방을 거쳐 가야 하는 (Voeren) 지역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 왈롱도 플란데런이나 프랑스를 거쳐가야 도달할 수 있는 민 와른통(Comines-Warneton)이라는 이름의 작은 월경지가 있다.
  • [35] 2007년에 벨기에 프랑스어권 공영방송에서 플란데런 의회가 독립을 선언했다고 구라방송을 특보로 내보내고 왕족 일가가 긴급 피신(...)했다고 보도한 적도 있다. 정작 방송국은 분리운동의 위험성을 알리려고 한 것이었다는데...
  • [36] 최근 유럽 연합 및 유럽 은행의 아일랜드 및 남유럽 국가들의 금융구제 때문에 생긴 유럽내 북유럽 vs 남유럽(지중해 유럽국가들) 갈등을 상기하면 여러가지 의미로 분열의 상징이 맞긴 맞나 보다. 각 유럽국가들에서 유럽 연합 욕할 때 "브뤼셀의 정치인들"이라고 까는 건 덤
  • [37] 대한제국 시기인 1902년에 외교 관계를 맺은 적이 있었으나 1905년에 단교되었다.
  • [38] 벨기에와 한국은 앞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도 같은 조에서 만난 경험이 있다. 98월드컵에서는 무승부(1-1)이었고 90월드컵에서는 한국이 패배(0-2)했다.
  • [39] 국내 뉴스에는 4명 사망, 122명 부상이라고 말하지만 영문판 위키백과를 따른다
  • [40] 장물 거래와 성추행 혐의도 있었음
  • [41] 드러난 것만 6명이다. 실제로는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결국 밝혀내지 못했는데 이 과정에서 벨기에 사법당국이 이런 사건을 얼마나 안이하게 처리했는지가 드러나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 [42] 벨기에 법은 형량을 어느 정도 채우면 특별히 사회에 위협이 되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석방을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43] 벨기에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제도가 없기 때문에 가석방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데 뒤트루가 가석방된 뒤에도 정부가 임의로 다시 재수감할 수 있게 한 제도. 실제 의도는 가석방을 하지 말라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 [44] 이 때문에 벨기에 법원이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아무리 사회에 더 이상 위험이 되지 않는다지만 어떻게 죄없는 아이들을 굶겨 죽인 범죄자를 사회로 내보낼 수 있느냐는 것.
  • [45] 사실 이건 어느 나라나 큰 차이가 없다. 캐나다에서도 전직 공군 대령이자 성도착자인 러셀 윌리엄스가 여성 두 명을 연쇄 성폭행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뒤 사람들은 사형 제도를 부활시켜 그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46]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 출연하는 줄리안 퀸타르트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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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5 22: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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