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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

last modified: 2015-02-26 09:08:30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현대 사회의 별장
3. 구 소련-러시아의 별장

1. 개요

평소에 사는 이외에 있는 집.

2. 현대 사회의 별장

현대에는 시골이나 휴양지 등에 지어놓고, 휴가철에 때때로 가서 쉬는 용도로 쓰인다.

대도시에서 가까운 교외 지역에는 집단 별장 지대가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사면 끝이 아니고, 황금목장처럼 별장이 흉가(…)가 돼서 많은 매니아들을 끌어들이고 한국의 폐가 항목에도 등재되는 오컬트 관광지(…)로 만들지 않으려면 관리비가 많이 필요하다. 특히나 별장을 갖는 순간 빼도박도 못하는 다주택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세금이 확 올라간다. 여러모로 그리 실용적인 소유물은 아니다. 확실히 사치품.

차라리 펜션 회원권이 관리비도 싸고 이용은 거의 비슷하게 할 수 있으니 훨씬 실속있는 상품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멋지게 질러보고 싶은 사람도 있는 모양.

그 만큼 사치품으로 여겨지디보니 창작물에서는 부자 캐릭터의 상징 쯤으로 쓰인다.

집이 웬만큼 여유가 있지 않고선, 실제 별장보단 부루마불을 통해 먼저 접해본 사람들이 많을 지도 모른다. 투자비의 절반도 건지기 힘든 슬픈 건물.

3. 구 소련-러시아의 별장

소련에서는 별장을 국민들에게 무상 분배하였고 이를 '다차'라고 한다. 본래는 18세기 표트로 대제가 귀족들에게 땅을 나누어준게 시초였는데, 후에 이 다차가 별장이라는 뜻을 가지면서 귀족들의 별장이라는 뜻의 단어가 되었다. 이 당시의 다차들은 귀족들의 휴식시설로 이용되어오다가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귀족들이 몰락하면서 한 동안 노동자들의 휴식시설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스탈린 시절에는 특권층과 문화인들을 대상으로 다차가 보급되었다. 그리고 1950년대 흐루쇼프 당시때 해빙기 들어서 다차가 일반인들을 상대로 보급이 되기 시작했고, 브레즈네프 시기 들어와서 완전히 대중화 되었다. 이 당시에 약 180평의 땅을 국가에서 분배해줬고, 개부럽 이를 받는 사람은 제법 행운아였다 한다. 물론 무상으로 주지만 누구나 원하는 대로 받는 건 아니었고, 오래 기다려야 했으며[1] 공헌도 평가에 따라 지급되는 땅 크기도 달랐다. 하지만 성분에 따라 크기는 천차만별이었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코딱지만하더라도 다차를 하나는 가진 경우가 많았다.

러시아인들은 코딱지만한 땅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창의력과 잉여력을 발휘해 한껏 별장을 꾸몄다. 집을 만들고, 사우나 시설도 만들고, 꼬치를 먹기위해서 화로도 들여놓고, 텃밭도 개간하고, 울타리도 만들고, 개집도 만들고, 잔디도 가꾸고, 수도시설도 들여놓고... 이게 농담이 아닌 게, 수도고 전기고 아무 것도 없이 땅만 덩그러니 주기 때문에 기초공사부터 개간까지 개인이 전부 해내야 했다! 다만 조합별로 따로 다차 관리자를 선출해서 다차 건설과 관리를 따로 도맡게 하는 경우도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관리자가 없는 다차들도 존재하는데 이런 다차의 경우, 범죄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라고 한다.

흐루쇼프 집권기에는 대개 직장과 연계된 조합을 통해서 부지가 할당됐다. 그 결과 작가촌, 광부촌, 화가촌, 건설노동자촌, 수력기술자촌처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직업별 다차촌이 양산됐다. 꽤 재미있을 것 같다. 또, 흐루쇼프의 정책 실패로 인한 식량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텃밭이나 가축을 가꾸는 다차가 더욱 활발해졌다고 한다. 도시 바깥 교외의 다차에서 텃밭을 가꾸고 휴가를 보내는 것은 구 소련이 무너지고 별장 무상분배가 중단된 지금도 러시아의 일상적인 문화화되어 있다. 러시아에서 주택담보대출이 활성화 되지 못한 원흉(?)으로도 손꼽히기도 하는데 소련시절에 아파트 한 채와 다차는 무료로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이혼을 하거나 자녀를 많이 두지않는 이상, 굳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는 가정이 많아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에서도 시장경제가 활성화되고 사유화와 부동산 투기로 인해서 대도시 지역의 집값과 임대료가 그리 싼 편은 아니긴 하다. 거기에다가 이자율도 비싸기 때문에 분가를 할려는 젊은층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아래에서 언급되지만 오히려 이를 이용해서 자신은 다차에서 살고 도심지역의 아파트는 세를 놔서 두둑하게 돈을 버는 경우도 있다.

여담이지만 1980년대까지는 러시아 각 가정에서 다차에서 생산된 농작물과 축산물 가운데 먹다 남은것들을 암시장에 내다 팔아서(물론 당시 소련법상 불법이지만 암암리에 행해졌다. 그리고 오히려 초창기에는 원예작물을 키우면 땅을 몰수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용돈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며[2], 90년대 러시아 경제가 막장일로를 걸었을때 다차 덕분에 그나마 러시아에 대기근이 오지않을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정도로 당시 러시아 서민층들이 다차에 의존한게 많았다. 물론 소련시절에 다차에서 농사를 지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상점에서 사오기 힘든 싱싱한 채소류나 과일류를 먹기위한 목적이 강했던데 반해, 90년대 러시아에서는 말 그대로 생계수단에 가까웠다는게 차이 점이다.

당시 러시아 서민들중 다차를 소유한 사람들은 다차에서 생산된 농축산물로 식비를 아끼고, 남은 농축산물을 시장이나 기차역 가판대에서 내다팔아서 생활비를 충당하며, 노인들 가운데서 아파트는 자식들에게 주면서 자신은 다차에서 거주해서 생활비를 아끼는 경우도 많았다. 바로 이런식. 다만 이 당시 혼란기를 틈타 돈을 벌어들인 부자들은 다차를 크고 호화스럽게 짓어서 호화 다차들이 많이 늘어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경제사정이 나아지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다차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진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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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FM대로라면은 보통 신청한 뒤에 5년에서 10년 정도를 기다려서 받아야 되지만, 다차를 일찍 받을려는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시골의 오두막을 임대하거나, 사람이 살지않은 빈집을 매입해서 다차로 개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전자는 임대료가 가파르게 올라서 후기 들어서 꽤 부담이 되었고 후자의 경우는 편법에 가까웠던지라 관리들한테 일정수준의 돈을 찔러져야되어서 상당한 수고가 들었다고 한다.
  • [2] 김병화 항목에서도 소련의 집단농장의 생산성이 자영지에 비해 월등히 떨어진다는 대목에서 언급된 그 자영지가 바로 "다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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