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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당

last modified: 2015-04-14 17:35:17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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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의 정당
2. 다른 나라의 정당


1. 영국의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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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

1834년에 생긴 영국의 정당. 당 이름과 같이 대놓고 보수주의 성향을 띤다. 노동당, 자유민주당과 함께 3대 정당이다. 당헌에 기재된 정식 명칭은 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1]이지만 Conservative Party를 주로 사용한다. 2014년 10월 현재 영국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보면# 그레이트브리튼의 정당 명칭은 후자로, 북아일랜드의 정당 명칭은 전자로 등록돼 있다.[2][3][4] 옛 이름을 따서 Tory Party, Tories라고 쓰는 경우도 많다.

기원으로 따지자면 1689년의 토리당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그 당시의 토리는 근대 정당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파벌에 가까웠다. 일반적으로 로버트 필 시절을 정당으로서 시작으로 본다.

본래 종교상으로 성공회가톨릭 신자인 젠트리들이 모여서 이룬 파벌이었다. 경쟁 파벌이었던 휘그당에 비해서 딱히 보수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어쩌다 보니 보수주의 토리 vs 자유주의 휘그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사실 근대 정치가 갖추어지고 난 후에도 크게 정치적 논점이 차이가 난 것은 아니었으며,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입장이 정리되곤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당이 집권할 때 자유당보다 더 큰 개혁이 이루어지곤 하였다.

토리를 근대적인 정당으로서 보수당으로 변화시킨 로버트 필이 막상 수상 임기 말년에 당을 쪼개고 말자 20년 동안 휘그당과 자유당에 정권을 내주게 된다.

이 와중에 보수당을 변화시킨 것은 저민 디즈레일리였다. 그는 보수주의를 근대적인 관점으로 끌어올렸으며 민주주의의 개념도 수용하였다. 그의 집권 기간에 보수당은 전통적 젠트리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지 중간 계급과 노동자 계급에게도 지지를 끌어올린다. 반면, 디즈레일리 사후에 보수당(솔즈베리 수상)과 번갈아 집권한 자유당(글래드스턴 수상)은 글래드스턴이 무리한 아일랜드 자치 법안을 추진하자 이번에는 보수당이 20년간 정권을 독점하게 된다.

1906년 부터 13년간 자유당에 다시 정권을 내주게 되었고, 상원의 하원 비토권을 잃으면서 최악의 상황에 몰린다. 그러나 아일랜드 자치 법안이 다시 화두에 올라 정치적 혼란이 가속되어 1차 대전에 이르기 직전까지 제2차 영국 내전을 촉발시킬 수 있을 상황이 된다. 자유당은 "인민 예산"의 복지정책으로 지지를 크게 잃었다. 특히 1차 대전이 보수당 회생의 기회가 되었는데, 국 내각의 로이드 조지가 보수당과 손잡고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자유당이 내분 속에 붕괴하고, 향후 2차 대전이 이르기까지 보수당이 사실상 정국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 사실 자유당이 몰락하고 보수당의 시대가 열린 것은 보수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자유당이 불화를 자초한 면이 크다. 1차 대전 이전의 혼란 시기 동안 보수당도 자유당에 대하여 딱히 뚜렷한 대안을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노동당에게 정권을 내준다. 그러나 무리한 복지 정책으로 반발을 사자 보수당이 다시 집권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보수당의 정책도 노동당과 뚜렷하게 다른 것은 아니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챙긴 셈.

보수당의 뚜렷한 정책 변화는 1970년대 후반기에 나타났다. 영국IMF구제 금융을 신청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고, 보수당과 노동당 그 어느 측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러한 와중에 중간 계급 출신인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나타나 신자유주의를 들고 와서 보수당을 집권시키고 수상이 되었다. 전통적인 지배 계급인 젠트리도 아니고 더군다나 남성도 아니고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정권은 영국 사회의 변화를 암시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신자유주의 노선의 도입이 영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타협적인 당의 전통과 달리 비타협적이고 과격한 그녀의 정책은 그녀의 경쟁자에게나 당원들에게나 비호감을 샀다. 그런데도 포클랜드 전쟁과 같은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나 그녀는 계속 집권이 가능하였고, 보수당은 인두세 파동[5]을 빌미로 그녀를 거의 쫓아내다시피하였다[6].

이후 메이저가 총리가 되었고 1992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되며 승리하는 등[7] 어찌어찌 잘 버텨 나갔다. 하지만 연달아 터지는 스캔들과 백벤치[8] 통제 실패[9] 등으로 비틀대더니만, 결국 경제마저 주저앉으면서 1997년 총선에서는 인두세가 폐지된 후 다시 대거 선거인 등록을 한 노동당에게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하며 박살났다.

  • 하지만 대처 정권의 여파는 워낙 컸던 지라, 보수당 존 메이저 정부든, 노동당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정부든 정책상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영국적인 전통...?

하지만 드디어 2010년, 로고를 녹색나무민주당?로 바꾸는 등 개혁적 성향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를 내세워 제 1당이 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과반은 확보하지 못해 자유민주당(자유당의 후신)과의 연정으로 집권했다.

2. 다른 나라의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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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세기 초중반에는 Conservative Party는 잉글랜드웨일스에서만 활동하고 스코틀랜드에서는 Unionist Party라는 자매 정당이 활동해서 별도로 활동했지만, 이후 둘이 합당해서 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가 정식 명칭이 됐다.
  • [2] 대한민국은 정당의 풀네임과 약칭을 선관위에 일일이 등록해서 정확하게 쓰게하는데 영국은 그렇게까지 엄격하진 않은 듯하다.
  • [3] 영국 선관위는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의 정당을 따로 등록해서 관리하고 있다.
  • [4] 영국의 주요 정당들은 그레이트브리튼에서만 활동하거나 북아일랜드에서 당원들이 활동하긴 해도 별로 힘을 발휘하진 못하고 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현지의 정당들이 꽉 잡고 있어서 영국 의회에서는 대개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의 성향이 유사한 정당들끼리 연합하는 경우가 많다.
  • [5] 트라팔가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대가 폭동을 일으키는 등 엄청난 반발을 낳았다. 유투브에 poll tax riot이라고 검색하면 수없이 나온다(...)
  • [6] 정확히는 보수당 당수 선거 당시 대처가 1차 선거서 이기지 못하고 다크 호스 마이클 헤슬타인에게 쩔쩔매자 대처 측이 GG.
  • [7] 인두세 당시 세금을 피하려고 노동당 지지층인 서민들이 선거인 등록을 안 한 탓이 크다. 사실 말이 이긴거지 노동당한테 40석이나 털렸다.(...)
  • [8] Backbench. 영국 의회 내에서 뒷쪽 벤치에 앉아있는 일반 의원들을 가리킴.
  • [9] 이 통제 실패가 가장 적나라하게 터진게 EU 핵심 조약인 마스트리히트 조약 관련 사건이었다. 조약 찬성파인 노동당이 반대를 날릴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그래도 다수당인 자기네 의원들 뿐인데, 반 유럽 통합파 의원들이 대놓고 반대표를 던져 조약 체결에 실패한 것. 얼마 뒤 신임 투표를 내걸고 다시 걸어 통과는 했지만, 메이저 체면은 치명적으로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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