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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관참시

last modified: 2015-04-13 00:22:15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상세
3. 조선의 경우
4. 서양의 경우
5. 실제 사례
5.1. 부관참시를 당한 인물들
6. 비유적 표현
6.1. 사례

1. 개요

剖棺斬屍(관을 깨고 시신을 참함). 이미 죽은 사람의 죄목이 드러나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극형을 내리는 걸 말한다. 일종의 고인드립. 즉 이미 죽은 사람을 한 번 더 죽이는 형벌. 죽은 후에 정치적인 이유, 혹은 살아있을 당시에 그 위세에 눌려 죄목을 따지지 못했을 경우에도 한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조선시대 당쟁에 의한 사화에 벌어졌고,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청교도 혁명 때 권세를 잡고 독재정치를 펼쳤던 올리버 크롬웰이다.

2. 상세

사실 의학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의 몸에 무슨짓을 한다한들 당사자는 이미 죽은 몸이니 당연히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므로 이성적으로 보자면 정말 쓸데없는 뻘짓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이렇게 시체 훼손을 하는 행위는 당사자보다는 이 행위로 인해 어떤 방향으로든 정신적 영향을 받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1] 일종의 쇼맨쉽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부관참시는 실질적인 형벌로서가 아닌 정치적인 행동으로서 이루어 진 것이다.

전근대사회에서도 시체훼손은 금기였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이렇게 시체를 훼손하는 행위는 되도록 금기시하는 편으로, 시체 훼손 행위를 해당 시체의 주인인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다 하여 법으로도 금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관참시는 정치적 리스크가 큰 행위로 부관참시를 하는 사람이 권력이 매우 강하거나 시체 주인이 천하의 개쌍놈이 아니였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그리고 김일성김정일이 이걸 당할 확률이 매우 크다. 개인적으로 김일성 김정일은 유골꺼내서 주민들이 으개버리는걸 생중계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있다.

3. 조선의 경우

부관참시로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바로 무오사화의 원인이 된 김종직의 "조의제문"인데 이것은 패왕 항우에게 결국 왕좌를 넘겨준 초나라 의제를 빗대어 세조의 왕위 찬탈을 은유적으로 비난한 것으로, 연산군 4년, 훈구파에게 꼬투리가 잡혀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김일손, 권오복 같은 김종직의 제자들이 거열형을 당했으며 김종직 자신은 이미 죽고 없었기에 관을 파헤치고 시체는 토막나고 효수되었다.

그밖에 김종직의 문인이었던 정여창과 생육신 중 한사람이었던 남효온도 연산군 10년 갑자사화때 부관참시 당했다.[2]또한 세조의 일등 참모였던 한명회가 갑자사화에 연루되었다 해서 무덤이 파헤쳐져 시체가 토막나고 한양 저잣거리에 목이 효수되었다. 한편 연산군 때 공조판서로 있었고 용재총화의 저자이자 세조의 사람이기도 했던 도 죽은지 수개월 후 일어난 갑자사화에 시체의 목이 달아났다. 그밖에도 정창손, 어세겸, 심회, 이파 등이 어머니 윤씨를 폐위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부관참시했다. 그 후 쇄골표풍이라고 뼈를 갈아 바람에 날려버렸다. 여러모로 안습...

4. 서양의 경우

철기대를 이끌고 교도 혁명에 승리하여 찰스 1세의 목을 치고, 의회파의 영웅이 된 올리버 크롬웰도 혁명 후 독재정치를 펼치게 된다. 사후 아들인 리처드 크롬웰에게 권력을 이양하려 하다가 장로파가 왕정복고를 실행, 찰스 2세를 옹립하면서 한 때 호국경이었던 크롬웰은 왕을 죽였다는 반역이란 죄목이 붙여졌고 1660년 12월 4일 의회 투표를 통해 크롬웰의 부관참시를 결정한다.

1661년 1월 30일, 그러니까 찰스 1세 처형 12주년 기념일인 바로 그날에 무덤에서 꺼내서 9시간 동안 런던의 교수대에 매달린 후 토막냈다. 시체는 매장 당시 잘 절였기 때문에 그냥은 잘 잘리지도 않아 도끼로 9번을 내리쳤다고 한다. 목은 장대에 꽂혀 웨스트민스터 성당 홀에 걸렸다.

찰스 1세의 처형을 주도하고 책임을 맡은게 올리버 크롬웰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웃기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뱀발을 더 붙이자면, 이 크롬웰의 "머리"는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마치 고대 유물처럼 한번 도난 당한 후 300년 동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떠돌아 다니다가 결국 1960년에 이르러서야 크롬웰의 모교 케임브리지 시드니 서식스 대학에 매장되었다. 크롬웰의 머리가 도난당한 후 떠돌아다닌 일설에 의하면 아이들의 "축구공(...)"으로 쓰기도 했다가 쪼개져 템스강에 버려졌다는 소리도 있었다.

5. 실제 사례

5.1. 부관참시를 당한 인물들

  • 만금[3] - 사망한 뒤 90년대에 '용성 사건[4]의 주범이라는 이유로 김정일의 명령에 의해 무덤이 파헤쳤다. 이 때 김만금의 유골을 끌어내서 공개재판을 해서 논죄하고 유골에 기관총으로 사격을 가했다. 그리고 김만금의 가족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졌는데 억울하다고 한탄하던 가족들은 즉결처형되었다. 김만금은 몇년 후인 2,000년도가 넘어서야 서관히와 함께 복권되고 가족들은 풀려났다.[5]
  • 김부식
  • 김옥균 : 홍종우가 먼저 총과 칼로 죽인 후 시체에서 머리만 따로 떼어 가져와 효수했고 남은 시체도 마저 조선으로 운송돼 토막났다.
  • 김종직
  • 효온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가와 이에야스쇼군에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덤 자체를 폭파시켜 없앴다. 그리고 그걸로도 모자라 저승에서 외롭지 말라고 아들아내는 물론 충성스러운 가신들도 보내주었다.
  •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 올리버 크롬웰
  • 요나 - 2014년 7월에 이슬람 국가에 의해 무덤이 폭파당했다.기사
  • 왕징웨이 - 사망 전부터 이미 매국노로 찍혀있었기 때문에 무덤을 콘크리트로 만들어달라 유언했지만, 종전 후 장제스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버렸다.
  • 유영경
  • 유자광 : 야사에는 자기가 죽고 나서 부관참시당할 것을 예지해 가짜 무덤을 만들어 피했다고 전해지나 실제로는 중종의 반대로 무산됨.
  • 이세적(이적)
  • 이완용 - 같은 친일파들 사이에서도 외면당했을 정도의 악질 매국노.[6] 관뚜껑을 덮은 명정은 그의 일가라고 오해받던 사학자 이병도가 태웠고, 이완용의 시신은 후손들이 화장했다.
  • 장각 - 황보숭에게 당했다.
  • 정여립
  • 여창
  • 정인지
  • 창손
  • 만력제 - 명 역사상 최악의 암군으로, 명 13릉 중 유일하게 지하무덤을 발굴도중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서 홍위병들에 의해 시체가 불태워졌다. 그리고 비가 내려 잿가루도 어디론가 사라졌으니 나라를 말아먹은 것에 대한 천벌을 받았다고 하겠다.
  • (楚) 평왕 - 억울하게 참살당한 아버지와 형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 오자서가 무덤을 파헤쳤다. 그리고 채찍 수백대를 맞아서 시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발살을 냈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 굴묘편시(掘墓鞭尸)라고 한다. 다만 당대에도 이것은 부당한 행위로 받아들여졌기에 이에 대한 주변의 분노로 오자서는 적을 많이 만들고 결국 그가 오왕 부처에 의해 처형당할 때 외면받는 결과로 이어진다.
  • 최항
  • 교황 포르모소
  • 한명회

6. 비유적 표현

이미 당할 대로 당해 재기불능인 것(사망)을 다시 관광보내는 것(참시)을 말한다. 고의적이든 아니든 승자가 패자를 다시 한 번 짓밟는 사례. 한마디로 망했어요를 더 망했어요로 만드는 것.

둘 사이의 대결에서(인기, 가격, 점유율 등등) 한 쪽이 우세한 상황으로 이긴 후 다시 한번 일을 터뜨려(추가인하, 신제품 개발 등) 진 쪽이 재기도 못할정도로 승리를 기정사실로 만드는 행위.

유희왕 시리즈를 아는 네티즌들은 이런 상황이 되면 "이제 그만해! 이미 XXX의 라이프는 제로야!!! 같은 리플을 남기기도 한다.

부관참시는 그 말 자체로, 산 사람인 상대를 '시체'로 비유한다는 뉘앙스가 있어서 사람에 따라 거북하게 받아들일수도 있다.

재기불능이 아니라 실제로 이미 죽은사람을 비난해서 관광을 보내버리는 것을 부관참시라고도 한다. 이쪽은 원래의 부관참시와 상황과 목적이 비슷하다.

예토전생으로 살아난 인물을 죽이는 것도 부관참시....려나?

6.1.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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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가해자들에게는 고인을 욕보였다는 만족감, 고인과 연관 있는 사람들에게는 경각심과 위협감을 불러일으키는 등
  • [2] 남효온의 경우, 생전에 소릉 복위를 줄기차게 주장한 탓에 연산의 눈에 찍혔다. 여기서 소릉은 단종의 친모 현덕왕후 권씨의 능으로 세조가 파헤쳤다.
  • [3] 북한의 농업상이었으며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가서 메이지 대학을 졸업하고 소련에도 유학을 다녀왔다. 1945년 노동당 평안남도 안주읍 위원장을 시작으로 북한 정권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1953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한국전쟁평양이 한미 연합군에 의해 점령되기 전에 만경대에 있던 김일성 선친들의 유해들을 옮기기 위해 직접 자원했다. 그는 김일성의 허가를 받아 해군 1개 대대를 이끌고 안전한 곳으로 옮겼으며 휴전 후 다시 만수대로 옮겼다. 1959년 최고인민위원회 제2․3․5기 대의원,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농업위원회 위원장, 부수상, 노동당 중앙위원회 농업부장, 중앙인민위원회 위원 등 요직을 역임했고 1973년 9월 정무원 부총리 및 농업위원회 위원장직에서 해임되었다가 복귀했다. 1984년 사망하고 평양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안장되었다.
  • [4]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특수기지에서 훈련을 받은 최고사령부 타격대 요원들이 평양 용성에 거주하며 때를 기다리다 잡혔다는 사건이다. 대표적인 날조극으로 이 때 숙청된 대상도 대부분 고령의 당 간부들이었는데 이미 죽었거나 나이가 들어 집에서 쉬고 있는 노인들을 끌어내어 공개처형했다. 이 때 비료를 개인 목적으로 빼돌렸다는 혐의로 처형된 중앙당 비서 서관히(서관희) 이외에 2만명이 대량 숙청된 심화조 사건도 있다.
  • [5] 여기서 자신들의 큰 은인이자 동지를 하루 아침에 역적으로 날조해 버리는 패악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가 너무나 무도한 위인들인지 알 수 있다.
  • [6] 실제로 반민 특위 당시 친일파들의 반발도 진짜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단죄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경찰 혹은 군인으로 근무하거나 일제를 찬양한 소위 이광수, 노덕술, 최남선 같은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 논란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다 친일파라는 드립도 여기서 비롯된 거지, 경술국적 같은 자들을 옹호하려고 생겨난 개념은 아니다.
  • [7] 2011년 11월 '미국판 도가니 사건'이라 불리는 수비코치 제리 샌더스키의 10여년에 걸친 미성년자 성폭행을 총장과 함께 묵인한 죄로 시즌중 사임한 뒤 3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사망 6개월 후 교내에서 동상이 철거당했으며, NCAA 측에서 패터노 감독 재임기인 1998~2011년까지 대학의 우승전력을 무효화하였다. 위의 네 경우와는 다르게 진짜로 죽고 나서 부관참시. 단 크리스 벤와나 야구, 축구, 농구의 승부조작범들처럼 범죄를 저지르고도 기록은 인정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미국에서도 대부분이기에 성범죄 은폐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 박탈은 당연하나 기록부정까지 한 건 지나쳤다는 비판도 있다.
  • [8] 2002팀 동료들에게 까이는 것도 모자라 본인이쓰지도 않은선수들로 승리한 맥콜라리에게 부관참시 당했다. 거룩하신 효멘의 애정담긴 예언을 씹은 댓가는 가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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