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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KT 소닉붐

last modified: 2015-04-07 20:05:58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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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 마스코트
디비라&올레와파
부산 KT 소닉붐
Busan KT Sonicboom
창단년도 1961년/1997년/2009년[1]
구단명 변천 광주 나산 플라망스 (1997년 ~ 1999년)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1999년 ~ 2000년)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 (2000년 ~ 2001년)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2001년 ~ 2003년)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 (2003년)
부산 KTF 매직윙스 (2003년 ~ 2009년)
부산 KT 소닉붐 (2009년 ~ 현재)
연고지 광주광역시 (1997년 ~ 2000년)
전라남도 여수시 (2000년 ~ 2003년)
부산광역시 (2003년 ~ 현재)
모기업 KT
구단주 황창규
단장 이권도
감독 조동현
홈구장 부산사직체육관 (수용인원 : 14,099명)
홈페이지, 페이스북

KT스포츠
kt 위즈
(야구)
부산 KT 소닉붐
(농구)
KT 롤스터
(E스포츠)
KT 사격단 KT 하키단

Contents

1. 개요
2. 나골코 시절부터 KTF까지의 역사
3. 다시 태어난 부산 KT
4. 선수단
5. 마스코트

1. 개요

KBL의 프로농구단. 연고지는 부산광역시. 홈구장은 사직체육관.

이전 구단명은 광주 나산 플라망스 →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2] →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 →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3] → 부산 코리아텐더 푸르미/ 맥스10 → 부산 KTF 매직윙스 순이다.

마스코트는 플라망스(홍학) - 클리커스[4] - 위니[5]&미니[6](KTF, 2004~2009) - 우주복 마스코트[7] - 올레와파 & 디비라(갈매기, 2010년/10~11 시즌~현재)

KTF에게 인수되기 전까지만 해도 프로야구단 삼청태와 맞먹을 정도로 안습한 역사로 유명했다. 나산은 IMF크리로 부도났고, 골드뱅크와 코리아텐더는 IT기업이어서 2000년 말에 있었던 IT버블 붕괴 이후 망했어요가 됐기 때문. 참고로 골드뱅크와 코리아텐더는 같은 회사가 이름을 바꾼 것으로 이후 몇차례 계속 이름을 바꾸다가 2009년 코스닥에서 퇴출되었다. 아직 블루멈이라는 이름으로 회사가 남아있다고.

2. 나골코 시절부터 KTF까지의 역사

1961년 기업은행 실업 농구단으로 창단했다. 이후 1997년 의류 기업인 나산그룹에서 인수,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하여 광주 나산 플라망스로 창단하였다. 유하 감독, 김남기 코치와 김상식, 민형, 김용식, 박상욱, 김영주, 채명석, 김승환, 이호재, 김현국, 이병률, 황준삼같은 국내 선수와 용병으로 릭 이버츠, 에릭 텔리가 있었다. 1997 시즌에는 정규 리그 5위로 6강에 진출하였으나 이후 아시다시피 모기업의 부도로 인한 잦은 모기업 변경 및 잦은 연고지 이전으로 인해 KBL의 비인기 팀 중 하나로 추락하였다. 심지어 프로 원년에 홈 코트로 이용했던 광주 주체육관이 비싼 대관료에 비해 평균 관중이 500여 명밖에 되지 않아 입장 수입 측면에서 적자를 보았고,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던 전라북도 군산시의 월명체육관에서 일부 홈 경기를 치른 후 더 반응이 좋아 이듬해 명체육관으로 홈 코트를 사실상 이전하여 광주광역시 연고는 명목으로만 남았다. 거기에 일부 경기는 명체육관 대신 여수시남체육관에서 치르기도 했고, 골드뱅크에 인수된 후 여수시로 연고지를 이전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1998 시즌 이후 5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어도 이 5시즌 동안 한 번도 꼴찌를 기록한 적이 없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 골드뱅크로 넘어가기 전 시즌이었던 1998-1999 시즌 역시 팀 상황이 엄청나게 처참했지만, 하필이면 어느 연패기록 종결자 팀32연패라는 밑바닥을 깔아 준 덕분에 꼴찌를 면했다. 어찌보면 이건 맨날 꼴찌에만 머물렀던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골드뱅크로 바뀐 1999-00 시즌 후 연고지 이전을 추진하여 KBL의 승인을 받아 전라남도 여수시로 연고지를 이전했고, 2001년 6월에 코리아텐더로 팀명을 변경했다.[8] 2001-02 시즌 후 팀 사정이 악화되어 효준 감독이 물러났고, KBL의 관리를 받으며 팀을 이어 가야 했다. 2002-03 시즌에는 코치 없이 이상윤 감독대행 단 1명만의 지휘 하에 주축 선수가 팔려 나가면서도 릭 이버츠, 황진원, 락영 등을 앞세워 정규리그 4위를 차지하여 기적을 일으켰고, 6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장훈이 버티고 있는 서울 삼성 썬더스마저 꺾고 4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4강 플레이오프에서 1위 대구 동양 오리온스김승현-르커스 힉스 조합을 못 이겨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2-03 시즌의 호성적을 거둔 후 시민구단으로 개편하는 방안이 올라오기도 했으나 무산됬고, 2003년 9월 1일 여수시에서 부산광역시연고지를 이전해서[9] 일단 팀의 매각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 무렵 이상윤 감독이 서울 SK 나이츠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팀을 떠나게 됬고, 상무 농구단의 감독을 맡고 있었던 추일승이상윤의 후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2001년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현대모비스로 모기업이 이관되는 과정에서 울산광역시로 연고지를 이전하게 되어 부산 연고는 무주공산으로 남아 있었다. 이 전략은 성공해서 2003년 11월 KTF가 팀을 인수하여 부산 KTF 매직윙스가 되었으며, KTF의 창단식은 2004년 1월 18일에 열렸다. 인수 후 첫 시즌에는 정규 리그 8위로 마감하였다. 2003년 11월 18일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렸던 전자랜드와의 원정 경기가 코리아텐더 유니폼을 입고 치른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2004-05 시즌부터 2005-06 시즌까지는 그럭저럭한 성적6강은 진출하는데 4강을 못 가는을 내다가 2006-07 시즌에는 시즌 개막 전, 꼴찌후보로 손꼽혔지만 3위를 해냈고 6위 KT&G를 간단하게 제압했으며, 2위 LG가 퍼비스 파스코의 심판폭행 사건으로 자멸하면서 단숨에 KTF는 결승에 진출하면서 드라마틱한 준우승[10]을 이루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그러나 2007-08 시즌에는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8위로 떨어지더니 2008-09 시즌에는 어려웠던 나골코 시절에도 겪지 않았던 창단 첫 꼴찌라는 굴욕을 당했다. 추일승 감독도 2008-09 시즌을 마지막으로 물러났고, 원주 동부 프로미의 前 감독인 전창진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3. 다시 태어난 부산 KT

2009년 비시즌 중, 모기업인 KTF가 KT와 상호합병을 하면서 농구단도 KT에 인수되었고, 현재의 부산 KT 소닉붐으로 팀 명칭이 바뀌었다.

참고로 당시에 KT가 운영하는 e스포츠팀인 KT 롤스터의 팀명이 'KT 핑거붐'이었던 적이 있었다. 이후에 저게 영어 속어로 영 좋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게 알려지자 다른 이름으로 바꿨는데 그게 '알파붐'.(...) 이게 다 KT 소닉붐 때문이다. '-붐'자 돌림으로 통일하기 위함이었던 듯.

2009-10 시즌 유니폼의 경우 원정은 빨강과 검정을 혼합한 유니폼이라 문제가 없었지만 홈 유니폼의 경우 프로야구에서의 한화 이글스의 05~07 시범경기 이래 레드 컬러 위주의 유니폼이 되었다. 2010-11 시즌의 경우 빨강과 검정을 혼합한 색은 그대로이지만 대신 Olleh kt가 자리잡고 있다. 참고로 유니폼의 스폰서는 나이키(2009~2010) - 까프! 2011년을 맞아서 유니폼을 교체했는데 가슴에 kt가 사라지고 Olleh만 자리잡고 있다.

2009-10 시즌 역시 전 시즌과 큰 차이가 없는 전력으로 상위권은 힘들 것으로 예상 되었으나 제스퍼 존슨의 무시무시한 득점력(득점 1위다 ㄷㄷ)과 신기성의 부활, 빵빵한 포워드라인, 새로 부임한 전창진 감독의 역량 등 여러가지 요인이 합쳐지면서 의외로 잘 나가고있으며 12월 1일 현재 무려 지난 시즌 전체 승수[11]를 넘어선 13승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약점이었던 골밑을 안양 KT&G 카이츠와의 트레이드(나이젤 딕슨 <-> 도널드 리틀 + 2010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를 통해 보완하면서 약점이 없어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뭐야 이거... 그러나 딕슨이 KT에서 영 아닌 모습을 보여주고 2010년 시즌을 앞둔 드래프트에서 인삼공사는 뜻밖의 선수인 이정현을 지명하는데

KBL이 프로야구의 한국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 중립(서울) 경기를 포함시켜버렸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KT와 롯데 자이언츠의 동반 선전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은 3월 말에서 4월 사이에 치뤄지는데, 이 시기에 프로야구가 개막하고, 08 시즌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롯데의 영향으로 인해 안그래도 야구가 강세인 부산에서의 흥행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 하지만 올해 봄의 여신은 지각쟁이

하지만 4차전을 마치고 이동일 없이 바로 다음날 서울에서 5차전을 치르는 병크가 작렬해서 미친듯이 까였다.

2010-11 시즌에는 부상군단이 되어버렸다.(김도수송영진없어!) 게다가 김도수는 시즌아웃(...) 이렇게 망해버린 시즌 같지만 전창진 감독의 능력덕인지 박상오의 포텐폭발덕인지 1위를 달리고 있다... 뭐야 이거 무서워... 그리고 2011년 3월 13일. 창단한지 9년[12]만에 처음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기 이른다. 그리고 그 시즌, 승률이 4분의 3을 넘어섰다![13] 거기까지 좋았는데 플레이오프에서 4위 원주 동부 프로미에 막혀 1승 3패로 탈락했다. 결국 그 시즌의 챔피언결정전은 KCC가 가져가게 된다.

전임 추일승 감독 시절부터 애지중지 모아놓은 포워드들의 포텐폭발, 그리고 이들의 포텐폭발을 이끌어낸 전창진 감독으로 인해 09-10시즌부터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는 평. 다만 압도적인 정규시즌에 비해 PO에선 부진을 면치 못한다는게 안습한데, 원래 스타와 높이의 부재를 조직력으로 극복하는 팀 컬러상 PO에서 높이의 팀을 만나면 상성상 열세일수밖에 없다는 점이 안습. 2011-12 시즌에도 4강을 찍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안양 KGC인삼공사에게 패배하면서 탈락했다.

같은 부산 연고라 그런지 롯데 자이언츠와 똑같은 노래를 쓰고 있다. 또한 응원단장의 영향을 받아서 한화 이글스의 응원곡도 몇 개 쓰고 있다.

2012-13 시즌에는 서장훈이 있었지만, 6강 언저리의 중하위권에서 고전했으며 결국 3월 10일 전자랜드전에서 패배함으로 인해 6위 삼성과 2게임차로 벌어지고 6강은 더욱 멀어져갔고 3월 15일 삼성이 KCC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최종적으로 6강 탈락이 확정되었다. 이래놓고 경희대 빅3 중 한 명도 못 뽑으면..

팀의 큰 형님을 맡던 포워드 조동현이 은퇴하게 되었고,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KCC의 가드 김우람과 LG의 포워드 이민재를 영입하였다.

이렇게 2012-13 시즌을 말아먹어 놓고서 2013년 9월 30일 신인 드래프트에선 경희대 빅3는 커녕 4순위 지명권마저 삼성에 빼앗기는 대 참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타팀 팬들은 지난 시즌 6강 진입 의지가 전혀 없었던 KT의 무성의한 플레이들에 비추어 볼 때 뿌린대로 거두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KT 팬들은 이재도로 정신승리중..오히려 3라운드 시점까지는 이재도는 나름 해주고 있다.

그런데 막상 시즌 개막전에서는 용병 리차드슨과 조성민의 대활약으로 오리온스를 크게 꺾고 승리하였다. 용병을 정말 제대로 데려왔다는 반응이 대다수. 의외로 시즌 초반에는 조성민의 대활약에 힘입어 하위권이 확실하다던 좆문가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집고 있다. 물론 시즌 끝나봐야 알겠지만 하위권들 경기 내용을 볼 때 KT가 꼴지할 것 같지는 않다..

2013-14 KBL 최악의 용병이라던 트레본 브라이언트를 내치고, 영입한 불혹의 용병 아이라 클라크가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있고, 포인트가드의 부재속에서 피어난 우람이 2군출신의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다. 전체적인 국내 선수들의 3점슛 확률이 나쁘지 않아 양궁농구로 어느정도 득을 보고 있지만, 민성주나 장재석같은 선수들이 부진한 상황에서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리차드슨의 골밑장악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리바운드를 잡아줄 사람이 없어서 리바운드가 평균 30개를 넘지 못하는 압도적인 밑바닥에 위치해있다. 그 덕분에 외곽슛이 터지지 않으면 경기를 풀어나가기가 어려운 모습을 노출한다. 그리고 12월 18일 전태풍이 포함된 4대 4 트레이드가 성사되었으나 김도수가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받은 탓에 트레이드가 무산되고 말 뻔 했지만 무사히 넘어갔다. 오리온스가 출전정지를 감수하기로 했으며 KT로부터 보상으로 받을 것을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김도수는 9경기 출장정지가 확정되었다.

한편 KT는 김도수건으로 해서 까이고 있는데, 1차 도핑테스트가 11월 초에, 2차 도핑테스트가 12월 초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 두번의 도핑테스트에서 김도수가 두번 다 양성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경기력 향상이 아니더라도 김도수는 도의적으로 약쟁이로 낙인찍히게 되었으며 잘쓰던 선수를 도핑에 걸리니까 팔아버린다는 비난도 받게 되었다. 오리온스 측에서는 벼르고 있는지 신인지명권+이상을 받을 생각을 하고 있는듯. 덤으로 요즘 욕 많이 얻어먹고 있는 KBL도 같이 까였다.

여기서 더 보강하자면 오리온스가 원했던 주요 선수가 김도수 였는데 오랜 부상과 재활을 했던 탓에 KT 측에서 그려러니 하고 신고를 안했던 것이란 소리가 있다. 전창진 감독이 엄청 잡고 있었단 소리가 나오기도. 또한 오리온스가 뿔이 나서 일방적으로 트레이드 취소다란 소리를 한걸 서민교 기자가 받아적어서 송고한건데 서민교 기자가 기자회견에 간 30분여 사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즉 오보를 의도치 않게 낸것이 되었다. 안습

이렇게 리스크를 감수하며 전태풍을 데려와 호랑이에 날개를 단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았지만 조성민과 전태풍이 호흡문제를 보이며 2014년 1월 1일까지 5연패를 하다가 전자랜드를 간신히 이기고 연패를 끊었다. 하지만 이렇게 죽쑤면서 선두권이던 성적은 15승 14패로 5할 턱걸이에 전자랜드에게 쫓기게 되고 말았다. 그래도 밑의 6강권 경쟁 팀이 답보 상태를 유지하면서 계속 4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클라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랜스 골번을 내보내고 2월에 안 파틸로를 영입했다. 그러나 주축 선수가 모두 30대 이상이라는 가장 큰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시즌 말로 접어들수록 나쁜 경기력을 보이다가 2월 27일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의 경기에서 70:63의 역전패로 5위로 내려앉았고, 연이은 KCC와의 경기에서 연패를 이어가게 됨으로서 공동 5위까지 내려앉았다.

최종순위는 5위로 마감했고, 6강에서 4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2년만에 재격돌, 5경기 접전 끝에 3대 2로 이기고 4강에 진출, 1위 창원 LG 세이커스와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4강에서는 체력의 한계에 달하였고, LG에 3연패로 광탈하면서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시즌 이후 이광재를 2:1 사인앤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이 과정에서 종범을 내주고 김현중을 처리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포워드인 우승연마저 사인앤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2014-15 드래프트에서는 1라운드 신인지명권을 고양 오리온스에게 양도해줘야 했고, 1라운드에서 1차지명으로 이승현을 지명하는것을 그저 지켜봐야했다. 결국 이번 드래프트에서는 2라운드 14순위로 빅맨인 철호만 지명한뒤 지명을 포기했다. 조성민이 국가대표로 뛰며 크게 활약했지만 발목부상 때문에 최소 2-3라운드는 출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나마 외국인드래프트에서 뽑은 마커스 루이스와 테렌스 레더를 트레이드하고 데려온 찰스 로드, 저번 시즌 커리어의 못미치는 활약에 뿔이나 한국에서의 체력훈련을 지독하게 했다는 전태풍에게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2014년 11월 6일 기준 7연패를 찍고 있으며, 외국인 드래프트로 뽑은 마커스 루이스도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퇴출 수순을 밟고 있는 등 여러모로 안습한 상황. 결국 전자랜드와 같이 8연패까지 찍었으나, 11월 12일 삼성과의 대결에서 12경기 평균득점 2.08인 이재도가 28점이나 넣으면서(...) 84-60으로 삼성을 대파하고 연패를 끊는데 성공했다. 그 이후 이재도 등의 국내 선수진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6위까지 올라왔다. 전창진 감독이 이를 갈고 준비한 두 번의 오리온스전에서의 대승은 보너스 마커스 루이스를 교체한 이후로 삼성전을 기점으로 메인 용병으로 찰스 로드가 서브로 대체용병인 에반 브락 체제로 바뀌었는데 두 선수 모두 센터지만 달릴 수 있기 때문에 거북이 마냥 트렌지션에 둔했던 루이스 시절과는 달리 빠른 공격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이재도나 전태풍 같이 속공 상황에 능한 가드들이 펄펄 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재도의 포텐이 만개하며 앞선이 풍부해졌다는 평가, 신기성 이후에 내세웠던 카드들이 죄다 실패했던 때를 되돌려보면 신기할 따름.

3라운드에 접어들어서 비슷한 시기 비슷한 연패를 했던 전자랜드와 사이좋게 플레이오프 마지노선인 5,6위를 사수하는 중이다. 고양 오리온스가 2라운드 kt와의 맞대결에서 이현민의 오른쪽 돌파 봉쇄가 약점이라는 것이 노출되고,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1라운드의 주역이었던 트로이 길랜워터가 분석당하는 여러 요소가 겹치며 급격하게 팀 조직력이 흔들리며 하양곡선을 그리며 4위권까지 노려볼만할 발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거기에 내년초에야 합류할거로 예상되었던 조성민이 괴물같은 회복력을 보이며 D리그에서 플레이를 하며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전창진 감독은 12월 중순쯤 조성민을 기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송영진이 척추 부상으로 최소 한 달간 결장하고 우승연등 여러 선수가 부상을 당하며 실 가용 인원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12월 3일 삼성전에 조성민의 복귀를 결정한다.

그리고 12월 3일 삼성전에서 드디어 팀의 에이스가 복귀하였고 무려 17분 밖에 뛰지 않았음에도 19득점에 2어시스트라는 출전시간 대비 훌륭한 기록을 세운다, 이날 2차 연장 막판, 팀이 90-91 한점을 뒤진 상황에서 7초를 남기고 페이크 이후에 3점 파울을 유도하는 장면이 백미였다. 팀도 93-92로 승리하고, 조성민의 몸상태도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송영진의 부상결장이후 밴치워머에서 김승원의 백업으로 간간히 출장하던 신인 박철호가 15득점 4리바운드의 깜짝 활약을 보이며 향후 빅맨 라인업을 더 유동적으로 돌릴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2라운드 삼성전에는 이재도가 3라운드 삼성전에는 박철호가 터지며, 유독 삼성전에 불세출의 영웅들이 등장하고 있다. 삼성이 못하는 거

그러나 이재도, 조성민 등이 분석되면서 KT는 부진의 늪에 빠져들어 2월 27일에 6강 PO 탈락을 확정지었으며, 사직체육관에도 관중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3월 3일 동부전에는 939명이 입장하면서 2014-15 시즌 유일한 1000명 미만의 관중수를 기록했다. 결국 2014-15 시즌 최종성적은 7위로 마감하였다.

또한 이번 시즌을 전후로 하여 수원시연고지 이전을 한다는 루머가 돌았다. 내용인 즉 KT 스포츠단이 클럽하우스와 본사를 수원으로 옮김과 동시에 호매실 일대에 체육관을 신축한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사직체육관의 난방비로 인한 비싼 임대료 문제가 겹치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계약 기간이 만료된 전창진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한 가운데 4월 7일 모비스 코치로 있던 조동현이 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4. 선수단

2014-15 시즌 부산 KT 소닉붐 선수단
감독
코치 김승기(수석코치), 손규완, 박성운
가드 1.이광재 3.전태풍 4.이재도 6.김명진 7.윤여권 10.조성민 12.김현수 15.김경수 20.이영훈
포워드 2.송영진 5.오창환 13.김현민 14.우승연 21.오용준
센터 11.박철호 22.에반 브락[14] 23.찰스 로드 25.안진모 32.김승원

5. 마스코트

마스코트는 KT 소닉붐으로 바뀌기 이전부터 설명한다.

나산 플라망스 시절에는 홍학을 썼으며, 골드뱅크로 인수 된 뒤에는 클리커스라는 마스코트를 썼다. 이후에는 코리아텐더 푸르미, 흑역사코리아텐더 맥스텐, 부산 KTF 매직윙스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사용했다가 마스코트의 변경과 함께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참고로 골드뱅크-코리아텐더의 그 마스코트는 인간 형태에 주먹을 불끈 쥐는 소년의 모습이다. 푸르미라는 개미는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의 마스코트이기도 했다.

(출처 : 네이버 뉴스)
2003-04 시즌 종료 뒤 위니미니라는 박쥐형태의 마스코트를 선보였는데, 생김새가 친근한 데다 역대 마스코트를 통틀어서 가장 오래한 마스코트다. 나중에는 자사에서 만든 쇼군을 합류하기도 했다.


(2009년 출정식 중, 현실은 역대 최악의 마스코트!)

KTF 매직윙스에서 KT 소닉붐으로 바뀐 뒤에는 마스코트도 공개되었는데 문제의 2009-10 시즌 KT의 우주복 마스코트는 흑역사. 생김새가 너무 심각한데다 디자인도 후져 버리는 바람에 처참했으며 최악의 막장 마스코트로 자리 잡고 말았다. 모비스 오토몬스의 초창기 마스코트[15]와 함께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 KT와 KTF의 통합 후 게임단 KT 롤스터의 초창기 팀명이었던 KT 핑거붐과 함께 희대의 삽질작으로 기록되었다. 팀의 성적은 좋았으나 정작 문제의 우주복 마스코트는 사실상 매장 당했다. 모 기업(KT)의 구단과 모든(야구, 축구, 농구, 배구를 합쳐도) 마스코트에겐 있어선 큰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3년뒤인 2012년 통신기업 라이벌의 모 구단에서 초병맛 마스코트가 등장하는데...

2010-11 시즌 부터 우주복 흑역사 마스코트를 대신해 올레와파와 갈매기 형태의 모습을 한 디비라가 대신하며 소닉붐의 새 마스코트가 되었는데 의외로 괜찮다. 참고로 올레와파의 와파는 와이파이의 줄임말이다. 일단 디비라라는 갈매기의 경우 이름의 유례가 '뒤집어라'의 부산 사투리이며 팀 명칭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라기 보다는 연고지인 부산을 상징하는 마스코트인 듯 하다. 나골코-KT 구단이 동물을 마스코트로 하는 것은 전신인 코리아텐더 푸르미 이래 7년만이다. 한편 올레와파의 디자인은 나중에 KT 롤스터에게도 사용되었다.(일부는 다른 점이 있다.)

한편 자사 마스코트인 키봇을 투입시키도 했다. 이 마스코트는 KT 롤스터의 경기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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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KT라는 이름만 따지면.
  • [2] 이 시절 팀 이름에만 광주를 넣고 실제로는 군산 월명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염주체육관의 난방시설이 워낙 엉망이어서...
  • [3] 모기업의 개명으로 이름변경, 여수시의 진남실내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 [4] 덩키였으나 바운디로 개명
  • [5] 한화 이글스의 그 마스코트가 아니다. 항목 5번 참조
  • [6] 위니의 여자친구 항목 5번 참조.
  • [7] 문제의 흑역사급 마스코트. 이 마스코트에 대해서는 하단의 마스코트 항목을 참조.
  • [8] 이듬해 골드뱅크도 코리아텐더로 완전히 사명을 변경했다. 코리아텐더는 골드뱅크에서 2000년 12월부터 시작한 비공개 입찰 경매식 홈쇼핑 사업부였다.
  • [9] 훗날인 2008년 3월 23일, 옛 연고지였던 여수시에서 특별 경기를 갖기도 했다. 당시 여수 팬들이 열악한 팀 상황에도 불구하고 큰 성원을 보내 주었기 때문에 그에 보답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 [10] 모비스에 3승 1패로 뒤지다가 3승 3패로 동률을 만들었지만, 끝내 7차전에서 졌다.
  • [11] 12승. 패배는 42패이다. 승률이 4분의 1도 안됐다. 거기서 2년만에 승률이 4분의 3을 넘어섰으니 ㅎㄷㄷ.
  • [12] KTF부터 따지면.
  • [13] 0.759. 그 시즌 KT는 최고기록의 승수(41승)을 찍었다. 승률 최고기록은 원년시즌이었던 97시즌 기아의 0.762이다. 54경기 한정이면 2010-11 KT 소닉붐이 최고기록.
  • [14] 실력 미달로 퇴출된 마커스 루이스의 대체 외국인. 브락은 2008-09시즌에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뛰다가 기량 미달로 퇴출된 바 있는데 그를 대신해서 온 선수가 바로 애런 헤인즈였다.
  • [15] 삼원색에 얼굴을 띈 마스코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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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7 20: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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