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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last modified: 2015-04-15 00:52:26 by Contributors



절대로 부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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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ɔ) United State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from



드래곤볼
국기를 세로로 게양하는 것은 금지된 게양법이다. 그렇게 하면 원래 국기에서 시계 방향으로 90도 각도로 회전하게 되고 용이 향하는 방향이 →쪽에서 ↓쪽으로 바뀌어 용이 추락하는 형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 그냥 용이 ↑쪽으로 향하게 반대로 게양하면 안 되나? 그럼 등쪽으로 추락하잖아


국명 Bhutan Butane / ʼbrug-yul [1]
공용어 종카어[2][3]
면적 38,394km²
수도 팀푸
인구 70만 8,427명(2011)
인구밀도 km²당 18명[4]
통화 눌탐
국가원수 직메 케싸르 남걜 왕축(
(ɔ) Amble from
) 국왕
정부수반 체링 톱가이 총리
1인당 GDP PPP 5,429$, 명목 1,978$(2010)
시간대 UTC +6:00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고대사
2.2. 현대사
3. 자연
4. 경제
5. 사회
6. 외교 관계
6.1. 중국과의 관계
6.2. 몽골과의 관계
6.3. 네팔과의 관계
7. 문화
7.1. 스포츠
8. 한국과의 관계
9. 창작물에서의 부탄

1. 개요

인도중국 티베트 자치구 사이에 낀 남아시아의 작은 산악 국가. 이 나라의 북쪽의 히말라야 산맥을 경계로 중국 티베트 자치구와 접해 있다. 영어로는 Butane Bhutan.[5] 수도팀푸(Thimphu). 팀부(Thimbu)라고도 한다. 면적 47,000km2, 인구 약 66만 명(네팔계 15만명 제외)(2007년). 종교티베트 불교가 대다수이며 네팔계들이 힌두교도 믿는다.

2. 역사

2.1. 고대사

기록되어 전해오는 역사적 정보가 부족하다. 티베트의 역사가들은 부탄을 로몬(Lhomon, 남쪽의 어두움)이나 몬율(Monyul, 어둠의 땅)으로 불렀는데, 이는 이곳에 살던 먼바(Monpa)족의 피부색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은 부탄 지역에서 여러 부족국가를 세우고 할거한 것으로 보이며, 7세기에 티베트를 통일한 짼감뽀가 부탄에 2개의 사찰을 지었으며, 9세기 경 인도의 승려 드마삼바바가 부탄에서 불교를 전파했다고 하며, 이후에도 티베트인들이 부탄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구전되어 오는 전설이나 야사들을 들어보면, 몽골에서 온 군사들의 침입에 당시 부탄을 아끼던 공주가 항복을 거부하다 죽으면서 늪지 거머리가 되어 몽골군을 막아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설을 떠나 외부 세계 침략자들도 이 산악지대로 쳐들어와도 얻을 이득도 없었기에 부탄의 땅은 늘 평화를 유지했다고 한다. 몽골이 티베트를 점령하면서 일부 티베트인들이 부탄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인도나 중국의 기록들에는 15~16세기에는 왕과 승왕이 따로 정치와 종교적으로 권력을 누렸으며 지방영주들이 자치적으로 산악령에서 권력을 가지는 정치적 구조를 가졌다고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1627년에 포르투갈인 예수회 선교사 이스테방 카셀라(Estêvão Cacella)와 주앙 카브랄(João Cabral)이 부탄을 지배하던 까규빠[6]의 승려이자 영주인 응아왕 남걀(Ngawang Namgyal)을 알현하고 망원경을 바쳤으며, 티베트의 침공에 대비해 군사지원을 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응와왕 남걀은 이를 거부했다.

17세기 경, 티베트의 5대 달라이 라마는 전 티베트를 통합하려는 목적으로 1629년, 1631년, 1639년, 1647년 무려 4차례나 부탄을 공격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악이 받힌 티베트는 몽골의 지원을 받아 1714년에 또다시 부탄을 공격했으나 또 실패하여 지금도 부탄에는 티베트와 싸우던 요새 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결과적으로 티베트와 부탄은 이로서 완전히 갈라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중국에게 완전히 먹힌 티베트의 운명을 생각해보면 불행 중 다행인가 물론 부탄 또한 같은 티베트계 국가인 시킴을 몇 차례 침공한 전력이 있으니 완전한 피해자는 아닌 셈.

1907년에 지방영주이던 우겐 왕축[7] 이 중앙집권적인 절대적 국왕을 선언하며 왕축 왕조가 세워졌다. 그리고 영국이 자치령 국왕으로 인정하면서 비로소 세계사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2.2. 현대사

1949년 8월 8일에 영국에게서 완전히 독립했지만 사실 별다른 자원도 없기 때문에 인도처럼 영국으로부터의 착취가 없었고, 따라서 반영감정은 그리 없었다고 한다. 기껏해야 일부 영국인들이 각박한 사회가 싫어서 조용하게 살고자 찾아오는 수준이었으니. 이것은 1800년대 말에 서방의 나라들이 아시아의 시장을 놓고 경쟁하던 때, 부탄의 지형적인 요건은 영국 육군에게는 전진기지를 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지형은 공격하기는 어렵지만, 지키기는 쉽다.

종교적으로도 같고, 민족도 티베트계들이 대다수인 부탄이었기에 이웃 티베트를 큰 형님 나라로 우대하였으나, 티베트가 중공군의 침략을 받아 무너지면서 시킴이나 같은 라다크와 남티베트 일대의 다른 티베트계 작은 왕국들이 충공깽에 빠진 끝에 고민하다가 스스로 인도에게 합병[8]된 것과 달리, 부탄은 독립국을 유지한다. 더하여 이전 영국 식민지 시절때부터 인도에게 외교권을 넘겨줄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지만, 중공의 침략을 견제하고자 더더욱 친인도 성향이 된다. 사실상 티베트족들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절대적 왕권을 추구했지만 왕축 왕조에 대한 여론은 매우 긍정적이었고, 교육수준이 높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지식인 계급이 매우 많다. 지식인 대다수도 왕권을 타파하고 민주제도를 뿌리내리자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의회는 물론 심지어 국민들조차 절대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국왕 자신이 생활소득보다는 행복지수에 중점을 두고 말 그대로 <행복정책>을 펼쳤기 때문인지 사실 절대왕정 제도 하에서 불만이 없었던 것. 또한 의회의 경우는 변화를 두려워 했다.

그러나 2002년 170위권에서 현재 남한 수준까지 올라온 부탄의 언론자유와 함께 국왕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민주주의를 외쳤고, 국왕의 끈질긴 설득 끝에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이는 2008년 3월 25일에 이루어진 선거를 통해 굳건해졌고 이후 하원구성을 통해 민주주의를 성립하였다. 사상초유의 성과. 그래도 국민들의 왕실에 대한 지지는 절대적인지라 선거에서 왕의 삼촌이 이끄는 당인 평화번영당이 압승했다고....낙하산 하지만 5년 뒤인 2013년 7월 13일 총선에서는 야당인 인민민주당이 전체 의석 47석 중 32석을 얻으며 압승을 거두어 정권이 교체되었다. 물론 부탄에도 1990년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적은 있었는데, 이는 네팔계 탄압과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젊은층의 욕구와 관련이 있으며, 실제로 이때 인도로 망명한 민주화 인사도 있었다. 더불어 이건 좀 더 복잡한 이야기가 있는데 네팔계 탄압은 1990년 네팔의 왕권 약화 및 선거제도 도입때문에 네팔계들이 부탄에서도 같은 요구를 한 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게 실은 네팔계들의 정계 및 여러 입지 강화가 목적이라 네팔계들이 강제 추방되었는데 네팔계들은 반발하여 인도에게 무력을 빌려 부탄을 강제로 힌두교 네팔계 입지를 넓히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인도로선 외교나 군사적,여러 모로 친인도파인 부탄을 굳이 뒤엎을 생각은 전혀 없었고 되려 부탄에게 네팔계가 이랬으니 알아서 하라는 충고만 하고 구경만 했다. 이로 인하여 상당수 네팔계들이 더더욱 강제추방당했고 이 여파로 민주화를 갈망한 부탄계들도 억울하게 네팔계랑 한패거리로 몰려 여론의 비난을 받았던 것도 있다.

행복론으로 행복정책을 펼쳐서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준 뒤에 민주주의를 이룬 부탄 국왕의 전통은 아들인 '직메 케사르 남겔 왕축'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말 그대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중. 직메 케사르 남겔 왕축 국왕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이며, 부탄 입헌군주제의 첫번째 왕이며 또한 전 세계 독신 지도자 중 가장 매력적인 배우자감 5명 중 한 명으로 뽑힐 정도로 미남이다.

지도자가 개념이 박히면 국민들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 최고의 권력과 동시에 국민의 지지를 받는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고집하는 부왕이나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결국 이루어낸 왕이나, 본받을 점이 차고도 넘친 왕족.

지식채널e에서 자세히 다뤘다. 보러가기


2011년 5월 20일, 왕축 국왕은 10살 연하(1990년생)의 일반인인 제선 페마와 결혼을 발표하였는데, 제선 페마 역시 영국 리젠트 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파. 10월 13일 온 국민의 축복을 받으며 검소하게 결혼식이 치러졌다.

3. 자연

지형상 남쪽이 해발고도가 낮고 북쪽으로 갈수록 고산들이 많고 고도가 높아지며 북쪽 끝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어서 남쪽은 아열대~열대기후, 중부지방의 2,000m~3,000m 지역은 온대기후, 북쪽은 산기후 또는 냉대기후에 속한다. 수도인 팀푸는 약 2,300m에 위치한 도시로 온대기후에 속한다.[9]

4. 경제

5. 사회

2000년대 후반 들어 국민소득이 큰 폭으로 늘었는데 아이러니하게 행복지수는 떨어졌다고 한다. TV나 라디오 따위가 들어와 더 잘사는 세상의 이야기를 듣게된 게 원인이라는 듯. 게다가 맥도날드피자헛도 없는 이 나라에[10] 디스코텍이라든지 퇴폐산업 같은 술집도 늘면서 폭력이나 밤문화가 생기는 걸 우려한다고.

부패인식지수가 높은 편으로, 근래 수 년간 상승세에 있다. 국민소득이 크게 늘어나는 것에 비해서 사회 청렴도는 잘 유지되고 있는 듯.

6. 외교 관계

부탄은 32~33개의 국제연합 회원국, 그리고 유럽연합직접적인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물론 직접 외교관계가 없어도 명예영사관 등을 통해 비공식 교류를 하는 경우도 있고, 부탄과 개별적으로 직접수교하지 않은 유럽국가의 경우라도 유럽연합 회원국이면 유럽연합을 통해 간접적 관계가 유지되고 교류가 이뤄지며, 인도를 통하여 외교가 이루지면서 인도와 외교권을 가진 나라들은 거의 간접적으로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부탄인이 해외로 올 일도 거의 없고 소수 관광객이 가도 치안은 확실히 좋아서 크나큰 문제도 없기에 해외 대사관들은 굉장히 한가롭게 일한다는 말이 있다... 오죽하면 한국 대사관 관계자가 부탄에서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다.

6.1. 중국과의 관계

중국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라로 유명하며, 세계적으로 중국계와 중국 식당 찾아보기 어려운 나라이니 말 다 했다. 이스라엘북한보다도 중국 식당이 없는 나라이다. 중국인은 이민은 일절 금지되어 있으며 입국도 까다롭고 중국 식당 자체가 허가 안된다. 중국인이 들어오면 티베트처럼 된다고 사람들이 여기기 때문이다. 티베트 문제도 그렇고, 인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부탄 사람들은 중국의 ㅈ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중국을 무지하게 싫어하는데 그게 어느 정도냐면, KBS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봐도 나온다. 중국에서 유명한 장인이 손수 만든 수제품 국수틀을 부탄으로 가져와 부탄 사람들이 먹는 국수를 견줘 취재하는데, 부탄 사람들은 이 중국장인의 국수틀을 보고 잘 만들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이게 중국산이라고 말하자 마자, 갑자기 "저질 중국산이라니! 잘 보니까 개판이군요." 라면서 "중국산은 여기서도 최저질의 물건으로 악명이 자자하죠." 메이드 인 차이나의 저력 라면서 치를 떨었을 정도이다.

그리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아시아)에서 부탄이 중국과 한조에 배정받아서 이 두팀간 대결이 성사되었다!!! 누가 이길지는 뻔한지라 언급하지는 말자(...)

6.2. 몽골과의 관계

주변 나라에선 비슷한 감정을 가진 몽골종교적으로도 통하고 중국을 미워하는 점도 통해서인지 몽골에 대한 감정은 좋은 편이다. 이 두 나라는 2012년에 수교를 맺었다.[11]

6.3. 네팔과의 관계

부탄에게 갈등을 가진 또 다른 나라가 네팔인데, 15만이 넘는 네팔계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오래전 영국 식민지 시절 때부터 건너왔던 이들은 부탄의 대다수인 티베트 불교와 다른 힌두교를 믿고 자기들끼리 구역을 이루며 살면서 부탄 대다수에겐 이방인으로 꺼려지는 점도 컸다. 부탄이 잘 사는 곳은 아니지만, 네팔도 부탄보다 못하면 못했지 잘된 점도 없거니와 오랜 마오이스트와 내전이라든지 치안 문제같은 점으로 오랫동안 부탄에 살던 네팔계들은 지금까지도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 물론 위에 서술한 대로 네팔계들이 10만명이 넘게 강제 추방당한 적도 있긴 하다.

네팔계들은 부탄에서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여긴다. 하지만, 부탄인들은 네팔계들의 이런 불만을 헛소리로 간주한다. 사실 네팔인들은 부탄에서 농작물 및 지원책에서 제외되지는 않지만 확실히 부탄 정계나 경제계나 다른 점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해외로 나갈 권한이 주어지는데, 그 점은 부탄인이 아닌 걸로 여긴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부탄 측은 "그럼 조국 네팔로 가는 걸 막을까?" 라며 반발한다. 결국 네팔계들은 네팔이나 인도로 가서 일하지만, 거기서 대박을 거두는 경우는 좀처럼 없고 행여나 큰 돈을 벌어도 그냥 인도나 네팔에서 살기 때문에 이들이 부탄으로 돌아와 경제력을 휘어잡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평화로운 나라답게 네팔인들에 대한 폭력적인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네팔과 갈등은 있을지언정 서로가 죽어라 미워하진 않는다. 그리고 중국에 견주면 네팔과 갈등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네팔이 친중 성향인 마오이즘 정권이 들어서면서 친중국 국가가 되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12] 이 때문에 부탄과 적지않은 갈등이 빚어질 듯 싶다. 부탄에서 네팔계들을 추방할 수도 있고 그러면 경제적으로 엉망인 네팔은 엉망이 된다. 중국도 부탄에 영향력을 넓히려고 하지만 티베트 일 말고도 사람들 인식이 위에 나온 것처럼 반중이 워낙 거세니.

7. 문화

부탄에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어야 한다는 명문화된 법이 있다. 겉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재료부터 인테리어, 구조까지 모두! 따라서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건축물들도 사실 알고보면 몇 년 안 지난 경우가 좀 있다.

세계 유일의 금연국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 유학와서 담배를 피는 부탄 사람도 있다. 본국에 돌아가서 어쩔 것이냐고 물어보니 다 암시장이 있다고(…). 또한 길가 들판에 마리화나로 쓸 수 있는 대마가 수북히 자라고 있다고 한다.[13] 그러나 채취는 당연히 불법이므로 자칫 잘못하면 빵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생긴다.

7.1. 스포츠

한 때는 세계 축구 동네북으로 알아주기도 했으며 지금도 세계적인 최약체이다.

국대 축구에 대한 자세한 건 부탄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 그나마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 진출을 이뤄냈다(...)

이 작은 나라도 1986년에 시작된 프로리그인 부탄 A-디비전이 있다.(2부리그는 B-디비전) 이름은 꽤 뭔가 있어보이는 트랜스포츠 유나이티드 팀이 90년대 후반에 아시안 위너스컵 예선에 나왔다가 우즈베키스탄 파흐타코르에게 13-0으로 뭉개진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자라는 대나무로 만든 죽궁은 활 좀 잘쓴다는 나라들의 각궁의 그것과 거의 비등한 사거리와 궁력을 보여준다. 일본 만화에서 죽궁으로 쏜 화살이 몇 백미터를 날아가는 건 뻥이지만 유일하게 부탄 죽궁에겐 사실이다. 세계 국궁대회에서 상위권 화력을 지닌 유일한 죽궁이다. 그럼 부탄 대나무로 각궁을 만들면 어떨까? 어떤 조사에서는 부탄의 최고 인기 스포츠에 활쏘기를 꼽기도 했다.

농구의 경우 한국인 감독이 한체육회의 국제교류사업 하에 부탄에 진출하여,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고 한다. 참고기사 다만 이 기사에 오류가 좀 있는데, 부탄 역사상 구기종목에서 국외대회 1승을 거둔 게 농구가 처음이라고 하지만 위에 나온대로 2003년 서남아시아컵에서 파키스탄을 상대로 거둔 1승이 있다.

8. 한국과의 관계

1987년 대한민국과 단독으로 수교하였으며 북한과는 아직 외교관계가 없다. 현재 주(駐) 인도 한국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으며 국내에는 부탄 대사관이 없으며 주(駐) 방글라데시 부탄 대사관이 한국 대사관을 겸임하고 있다.

덧붙여 인도에서 만난 부탄인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 선교사들이 소수 체류하는데 사실 이건 불법체류이다. 그래서 몇몇 부탄인들은 "한국? 아, 거기 개신교 나라지염?"라고 말한다고 한다. 물론 티베트 불교가 국교나 다름없는 부탄에선 이걸 좋아할 리가 없다. 해외 선교를 금기시하기에 선교 관련 단체들 보면 인도나 네팔처럼 개신교가 들어가기 어려운 나라이며 전체 그리스도교 신자 수가 1천 명도 안되는 나라라고 한다.

9. 창작물에서의 부탄

김인권이 주연한 영화 <방가방가>는 취업난에 시달린 청년이 외국인 노동자 행세를 해서 취직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는데, 주인공이 사칭한 국적이 부탄이다. 극중 친구의 대사에 의하면, 가는 데마다 주인공이 사칭하는 국가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어서 부탄인 행세를 하게 된 걸로 나온다. "대한민국에 부탄 사람은 딱 3명이 있어. 영사, 영사 부인, 그리고 (부탄 국적을 사칭하는) 너"(…)[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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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종카어 'འབྲུག་ཡུ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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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와일리식 표기법에 따라 라틴 문자로 옮긴 것이다. 소리나는 대로 옮기면 둑 율이 된다.
  • [2] 중국티베트어족의 티베트-미얀마어파에 속하는 언어. 글자는 티베트 문자를 쓰나 발음이나 단어가 좀 다르다고. 그래서 티베트 인과 부탄인들이 만나면 대충 서로 알아 듣는다고 한다.
  • [3] 일단 종카어가 공용어이긴 한데, 학교에서는 우리나라의 윤리시간과 국사시간에 해당되는 시간을 제외하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므로 젊은층은 대부분 영어가 상당히 유창하다.
  • [4] 한국의 인제 수준.
  • [5] 에스페란토로도 국가 부탄과 뷰테인 모두 Butano로 같다(…). 보통 에스페란토에서는 단일민족국가의 이름은 -o가 아니라 -io로 끝난다. 대한민국은 에스페란토로 koreo가 아니라 koreio다. 에스페란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추가 바람.
  • [6] 이 당시 까규빠는 겔룩빠와의 경쟁에서 패배해 티베트에서는 영향력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하지만 부탄에서는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까규의 분파인 둑빠 까규의 법왕은 부탄 국왕의 국사(國師)로 대접받는다.
  • [7] 티베트어(종카어)의 영문식 표기를 모르는 많은 한국인 역자들이 "왕추크"라고 음역하는 경우가 많다. 동국대학교 경주 캠퍼스 부속 티베트 장경연구소에서 만든 티베트어 표기안이 있다.
  • [8] 그래서 남티베트계 나라들이 있던 아루나찰프라데시 주는 중국 땅이라고 중국인들은 주장하지만 인도에선 개무시하면서 수천만명을 거주시키고 군대도 주둔시켜서 악사이친처럼 허무하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 부탄은 이에 대하여 강제로 합병당한게 아니라 원해서 합병한 것인데 왜 중국이 끼어드느냐고 인도 편을 든다. 사실 몇몇 작은 왕국들은 인도에게도 반협박도 당하던 터라 불쾌해했지만 그래도 중공보단 낫다고 여긴 게 대다수였다.
  • [9] # 이곳의 기후는 해발고도가 낮았다면 아열대나 열대기후였을 곳이 해발고도가 높아서 온대기후에 속하는 경우에 해당하며, 이런 기후를 아열대고원기후라고 한다.
  • [10] 하지만 펩시콜라는 인기가 많다. 인도를 통하여 펩시콜라가 들어왔다.
  • [11] 몽골 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부탄도 2012년에 수교했다. 관련기사 그러고보니 부탄, 몽골, 베트남 셋 다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중국과 갈등이 있는 공통점이 있다.
  • [12] 관련 기사 참조. 굳이 이 기사가 아니더라도 네팔, 중국, 티베트 이 세 검색어를 넣고 포탈사이트에서 뉴스 검색을 해 보면 네팔이 2000년대 이후 친중국화되어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정치적으로 친중 정책을 쓴다뿐이지 마오이즘 정권 재집권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자세한 건 네팔 항목 참조.
  • [13] 대마는 줄기의 섬유는 옷감(삼베)소재로, 씨앗은 기름짜는 용도로 쓰인다. 흔히 말하는 마리화나는 대마의 잎부분.
  • [14] 실제로 부탄에서 한국에 파견한 외교관은 없다. 수교는 했으나 외교관을 파견하기 애매할 경우 근처에 있는 지역 강국의 외교관이 해당국의 외교 업무를 겸임할 때가 많은데, 한국과 부탄이 딱 이 상황이다. 한국은 주(駐) 방글라데시 대사가 부탄 대사를 겸임하고 있고, 부탄은 한국인 가운데 명망 있는 사람을 명예 총영사로 임명해서 땜빵하고 있다.(전 대통령 이명박이 14대 국회의원 시절에 부탄 명예 총영사로 임명된 적이 있다). 혹시 한국인이 입국 비자를 받아야 한다면 명예 총영사에게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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