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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

last modified: 2015-03-22 18:07:18 by Contributors

(ɔ) Kanchelskis from
면적 13,843km²
인구 1,810,863명(2011)
수도 벨파스트
1인당 GDP 19,063£(2002)


한때 북아일랜드 지역의 기로 사용된 것이나 폐지되었다.[1][2] #

Contents

1. 소개
2. 역사
3. 분쟁
4. 인구
4.1. 종교
4.2. 정체성
5. 행정구역
6. 기타

1. 소개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아일랜드어: Thuaisceart na hÉireann, 얼스터 스코트어: Norlin Airlann)는 아일랜드 섬 동북부에 위치하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와 함께 영국을 구성하는 지방 중 하나이다. '얼스터(Ulster, 아일랜드어로는 Ulaidh)' 라고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아일랜드 섬의 지역 구분[3]에 따른 것이다. 아일랜드 섬에서 얼스터 지역은 9개 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영국령 북아일랜드는 6개 주[4]에 해당하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틀린 것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얼스터 = 북아일랜드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아일랜드 공화국 사람들 중 일부는 북아일랜드를 되찾아야 할 영토라는 뜻으로 '6개 주(six counties)'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의 '이북 5도' 호칭과 맥이 닿아 있는 표현.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서유럽에서 드물게 바람잘 날 없는 곳이다. 축구할 때 독립국가가 아니면서 출전자격이 있는 지역이나, 웨일즈와 더불어 워낙 인적자원이 적은지라 유럽예선에서 정기적으로 물을 먹고 있다. 관련 세부 이야기는 본 문서 아랫쪽에서.

2. 역사

이 지역은 브리튼 섬-스코틀랜드에 무척 가까워서 예로부터 인적 교류가 있었다. 고대에 아일랜드가 팽창했을 때는 아일랜드인들이 여기를 통해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정착하기도 했는데, 후대에 잉글랜드가 팽창하여 아일랜드가 복속되자, 신교도 출신들이 대거 이주하여 이 지역으로 정착했다(그 가운데는 잉글랜드화, 신교도화된 아일랜드 출신도 있었다). 아일랜드인들은 구교인 가톨릭을 믿고 있었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얻은 신교도출신들이 구교도를 억압하면서 분쟁의 씨앗이 뿌려진다.

20세기 들어 아일랜드는 우여곡절 끝에 독립을 쟁취했으나, 신교도 수가 구교도보다 많은 이 지역은 신교도를 중심으로 영국에 잔류되기를 원하며 반독립운동을 벌였던 곳이었고 아일랜드의 독립 운동을 주도한 세력들도 북아일랜드 문제로 분열되어 1922년 아일랜드 내전이 발생. 결국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국토로 아일랜드 공화국이 수립된다. 즉, 신생독립국의 안정을 원한 아일랜드 정부에 의해 북아일랜드는 버려진 것이다. 이후 북아일랜드는 끝없는 분쟁으로 세계적인 분쟁지역이 되었다.

보다 못한 영국에서 군대를 직파하여 치안을 유지하였으나, 1972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터트리는 등 30년 동안 IRA와 소모적이고 성과 없는 분쟁 이후 철수하였다. 공식적으로는 "보그사이드 전투"라 불리는 데리/런던데리[5]에서 일어난 1969년의 대대적인 시위 이후, 1998년 굿 프라이데이 협정으로 분쟁에 관련된 대부분의 무장 단체가 종전 선언을 했을 때 까지 기간을 "북아일랜드 분쟁", 혹은 영어로는 The Troubles라고 부른다.

3. 분쟁

우선에 기본적인 대립 구도는 이주 영국인 VS 토착 아일랜드인의 구도로, 신교도을 중심으로 한 이주민은 영국잔류를 희망하고 영국 여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영국국기를 걸어놓는 반면, 반대로 아일랜드인은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통합을 바라며 아일랜드 국기를 걸어놓고 있다. 영국은 신교도 VS 구교도의 종교 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아일랜드 인들은 식민 VS 반식민의 이념 분쟁으로 주장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일제가 일본과 가까운 제주도나 부산, 경남 지역 일부에 이주 일본인을 집중시켜놓고 조선이 독립한 이후에도 이 지역은 정착 일본인 보호를 이유로 돌려주지 않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한국-일본과 달리 잉글랜드-아일랜드의 민족구분은 혈통이 아니라 출신지역별로 구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예를 들어 20세기까지만 해도 잉글랜드 출신 부모를 가진 아이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면 이 아이는 Irish로 분류했고 지금도 어느정도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거두였던 찰스 스튜어트 파렐(Charles Stewart Parnell)같은 경우 Irish로 분류되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족보나 가문을 따라가 보면 잉글랜드계(Anglo-Irish)였다. 한국-일본의 예를 들자면 제주도나 부산, 경남에 태어나서 터를 잡은 일본인 2세, 3세가 한국인으로 분류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6]. 때문에 오늘날 북아일랜드의 갈등을 한국 vs 일본처럼 Irish vs English, Irish vs Scottish의 민족 갈등처럼 생각하면 곤란하고 오히려 신교 vs 구교, 왕당파 vs 공화파, 연방주의 vs 민족주의간 이념 갈등, 사상 갈등으로 봐야할 것이다.

수도인 벨파스트는 신교지역과 구교지역이 벽으로 확연히 나뉘어 있는 분단된 듯한 도시이며, 거리 곳곳에 지지정파를 드러내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영국의 다른 지역과 다르게 긴장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중세시대부터 아일랜드의 농민들은 영국의 부재지주로부터 큰 수탈을 당해왔고, 산업사회가 되어서는 영국의 산업자본 밑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노동자가 되었다. 영국이 이 북아일랜드를 버리지 못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영국군이 물러날 경우 이주 영국인 및 신교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 그렇다고 이주를 강권하자니 죽어도 이주는 안 하겠다고 하고(사실 영국 본토 이주 지원 대책도 엄청난 돈이 소요된다) 사실 영국 재정에 있어서는 막대한 지원비만 타내고 쓸만한 산업기반도, 노동력도 없는감자밖에 없는 북아일랜드는 어마어마한 짐더미다. 이미 영국 산업구조는 단순 노동인력이 설 자리가 몹시 줄어든 형태인지라..

무장단체로는 IRA가 유명하며, 영국충성파가 만든 UDA등 반 IRA폭력단체도 극성을 부렸다. 일단은 IRA는 2005년 무장 해제를 선언하여 극소수 원칙주의자를 제외한 IRA의 무장은 공식적으로 해체된 상태. 그래도 산발적으로 무력 테러가 일어나기도 하고 있다.일단은 북아일랜드는 다른 영국의 지역에 비해 광범위한 자치를 보장받고 있는 편이기는 하다. 참고로 영국충성파들 중에는 네오나치들과 손을 잡거나 아예 네오나치 성향을 같이 띄는 부류들도 많다(...)

4. 인구

인구 181만(2011)으로, 영국을 이루는 4지역 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다.

© SkateTier (cc-by-sa-3.0) from

적색은 프로테스탄트, 청색은 가톨릭 우세지역이다.

4.1. 종교

2011년 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는 40.8%를 차지한다. 한편 아일랜드 장로교회 신자가 19.1%, 아일랜드 성공회 신자가 13.1%, 아일랜드 감리교회 신자가 3%였다. 즉 개신교 신자는 41.6%를 차지한다[7]. 기독교가 아닌 타 종교 신자는 0.8%, 무교/무응답은 16.9%였다.

4.2. 정체성

2011년 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본인을 영국인(British)이라 생각하는 이는 48.4%, 아일랜드인(Irish)이라 생각하는 이는 28.4%, 북아일랜드인(Northern Irish)이라 생각하는 이는 29.4%, 잉글랜드인/스코틀랜드인/기타는 5%였다(복수응답 가능).

가톨릭 신자들은 본인을 영국인이라 생각하는 이는 12.9%, 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이는 57.2%, 북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이는 30.7%, 기타는 5.2%였다(복수응답 가능). 한편 개신교 신자들은 영국인이라 생각하는 이는 81.6%, 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이는 3.9%, 북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이는 26.9%였다(복수응답 가능).

아일랜드 공화국의 개신교 신자들이 거의 모두가 공화주의(Republican)인 반면[8],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은 연합주의(Unionist)가 대다수를 차지한다.[9] 즉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는 개신교 신자라 하더라도 북아일랜드 독립을 지지하는 반면, 북아일랜드에서는 개신교 신자들 상당수가 영국 잔류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자신을 영국인이라 생각하는 비율이 81.6%가 나온 것이다. 반대로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도 어차피 종교의 자유를 허용해 주는데 영국에 잔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 존재한다. [10] 즉 가톨릭은 공화주의, 개신교는 연합주의일 가능성이 높지만, 예외는 존재한다.

5. 행정구역

© Maximilian Dörrbecker (Chumwa) (cc-by-sa-2.5) from

1921년부터 1972년까지는 위 지도처럼 전통적인 6개 주로 나누었다.
  • 앤트림(Antrim) - 인구 61만 8천(2011)으로, 주도는 앤트림. 북아일랜드의 중심지 벨파스트는 대부분 앤트림 주에 있으나, 다운 주에도 일부가 걸쳐 있다.
  • (런던)데리((London)derry) - 인구 24만 7천(2011).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런던데리/데리[11]가 있다. 주도는 Coleraine.
  • 티론(Tyrone) - 인구 17만 8천(2011). 주도는 오마(Omagh).
  • 퍼매너(Fermanagh) - 인구 6만 1천(2011). 주도는 에니스킬린(Enniskillen).
  • 아마(Armagh) - 인구 17만 5천(2011). 주도는 아마.
  • 다운(Down) - 인구 53만 2천(2011). 주도는 다운패트릭(Downpatrick).

위 행정구분은 현재는 차량 번호판 표시와 같은 한정된 용도로 쓰이고 있고, 1972년 이후부터는 26개 지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6. 기타

당연하지만 영국에 속한 지역답게 축구의 인기도 높다. 맨유의 레전드 조지 베스트가 여기 출신이고 1982년과 1986년 2회 연속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1982년에는 당시 개최국이었던 스페인을 잡는 성과를 내기도 했었다. 참고로 아일랜드는 1990년에야 최초로 월드컵에 나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로는 몰락하여 국제대회에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다만 유로 2008 때는 예선에서 무려 13골[12]을 넣은 데이비드 힐리를 앞세워 홈에서 스페인,스웨덴,덴마크를 전부 물리쳐서 본선 진출 전망이 밝았다. 그렇지만 도중에 감독 교체 후[13] 원정경기에서의 패배와 연속경기에서 자책골을 넣는 등 부진하면서 결국 탈락.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 때 역시 초반에 1위를 달렸으나 결국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법칙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현역 축구선수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은 아무래도 유스 출신으로 맨유에서 수비수로 뛰고 있는 조니 에반스.

셀틱과 아스톤 빌라 감독을 했던 마틴 오닐 감독이 이 지역 출신인데 이례적으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마틴 오닐 말고도 브렌던 로저스도 북아일랜드 출신이다.

골프를 상당히 잘 치는 나라로 손꼽히는데 인구는 고작 180만 밖에 안되지만 골프장이 무려 100개 가량 있다고 한다. 유명 선수로는 로리 매킬로이[14], 그레임 맥도웰[15], 대런 클라크[16]등이 있다. 한국처럼 돈 깨지는 그런 스포츠가 아니라 조기축구 하듯 상당히 대중화 되어있다고 한다.

레슬링 선수중에선 핀레이가 있다. 아쉽지만 혼스워글은 미국출신이다.

각종 밀리터리물에서 아일랜드 출신 캐릭터들은 좀 별종으로 취급 받는다.

참고로 생존왕도 북아일랜드 태생이다.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아버지도 북아일랜드 출신.

영국답게 뮤지션도 꽤 많이 배출한 편인데 대표적으로 게리 무어,투 도어 시네마 클럽,스노우 패트롤[17]등이 있다.
나니아 연대기를 쓴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도 북아일랜드 출신.

여담으로 닥터후에선 33세기까지 영국에 복속되어 있다,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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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재는 영국 국기만을 사용한다. 단 북아일랜드 축구대표팀이 국제 대회에 나갈 때는 사용한다.
  • [2] 국가연주 때는 영국 국가를 사용한다
  • [3] 아일랜드 섬은 크게 렌스터(동부, 더블린이 여기에 있다.), 코노트(서부), 먼스터(남부) 그리고 얼스터(북부, 북아일랜드가 여기에 있다.)로 나뉜다. 모두 아일랜드에 있었던 옛 왕국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 [4] 이것은 아일랜드 독립전쟁 결과 체결된 영국-아일랜드 조약으로 사실상 남부 아일랜드의 분리가 확정된 상황에서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이 북부의 확실한 다수파를 차지하기 위해 얼스터 9개 주 중에서 유난히 가톨릭 신자들이 많았던 3개 주(도니골, 모나한, 캐번)를 북아일랜드의 영역에서 의도적으로 분리시키려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얼스터의 나머지 3개 주가 북아일랜드의 영역에 포함되었을 경우 개신교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인구 비율은 가까스로 개신교 신자들이 우세하기는 하나, 사실상 다수파로서의 의미와 다소 거리가 먼 1:1에 근접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3개 주를 제외한 나머지 6개 주에서의 인구 비율은 약 3:2로, 이 경우는 개신교 신자들이 다수파로서의 기득권을 차지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
  • [5] 아일랜드의 가톨릭 주민들은 데리(Derry),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주민들과 친영 세력들은 런던데리(Londonderry)라고 부른다.
  • [6] 이런 구분이 못마땅했던 조지 버나드 쇼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고 Irish라니! 그럼 공기 중에서 태어나면 Airish겠군!"이라고 비꼬았던 적도 있다
  • [7] 그러나 청년층(10-30대) 중심으로만 따지면 이미 역전당했다. 그리고 그쪽을 중심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증가하고 있는데(약 45%) 개신교 신자들은 감소하고 있다(악 35%). 그런데 문제는 감소하는 폭까지 넓어지고 있다(...) 안습
  • [8] 이를 '개신교 공화주의'라 하는데, 수적으로는 적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남북 아일랜드 분단 이후에도 몇몇 개신교 공화주의자들이 북아일랜드 광복과 남북 아일랜드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9] 근본주의 노선과 결합된 하드코어 연합주의자들은 아예 아일랜드 장로교회에서 떨어져 나가서 교단을 하나 새로 차리기까지 했다. 이 교단의 실질적인 실세는 친영파 수구꼴통 먹사인 이언 페이즐리로, 뒤에 정계에 진출하여 북아일랜드 광복을 제대로 훼방 놓기까지 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북아일랜드의 연합주의 개신교는 서양판 개독이자 예수쟁이라 보면 된다.
  • [10] 이들을 가톨릭 연합주의라 한다.
  • [11] 개신교도는 런던데리, 가톨릭교도는 데리라고 부른다. 1613년 제임스 1세의 칙허장으로 "런던"이라는 이름을 앞에 달게 되었다. 일단 정식명칭은 런던데리다.
  • [12] 유로예선 개인최다골 기록이다.
  • [13] 상승세를 이끌었던 로리 산체스 감독이 예선 도중에 풀럼 FC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산체스는 풀럼에서 성적부진으로 도중에 경질되고 말았다.
  • [14] 다들 알만한 선수라고 생각되서 설명 생략.
  • [15] 2010 US 오픈 우승.
  • [16] 2011년 브리티시 오픈 우승.
  • [17] 엄밀히 말해서 스코틀랜드 밴드지만 멤버들 대다수가 북아일랜드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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