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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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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역사
3. 방법
4. 탈북 이후
5. 현황
6. 북한의 대응
7. 남한 사회에서의 적응문제
8. 탈북자들이 일으키는 사회문제
9. 탈북 청소년 문제
10. 북한이탈주민의 유의 사항
11. 트리비아
12. 잘 알려진 탈북자들
13. 다른 분단국가의 난민
14. 북한이탈주민을 소재로 한 방송
15. 기타 관련 항목


1. 개요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대한민국의 북부의 영토를 무단으로 점령하고 있는 북한의 통치지역으로부터 탈출하여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통치능력이 미치는 지역에 도달한 대한민국 국민.

201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들은 대한민국 헌법(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영토를 규정한 제3조)에서 대한민국 국적법, 북한이탈주민 관련 이슈만을 다루는 하위법인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북한이탈주민법)에 이르기까지 제 법령상 반국가단체의 통치가 미치는 지역에 주소와 가족을 두고 거주하다가 탈출하여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으려는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의 주민으로 정의되어 있다(북한이탈주민법 제1조). 다만 국제적으로는 북한이 사실상 하나의 국가로 취급되고 있으므로, 특히 북한을 인정하는 외국에게 있어서 이들은 단지 탈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민일 뿐 실제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국적을 받기 전까지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런 관점을 견지한다.

2. 역사

탈북자의 역사는 1945년부터라고 해도 충분하다. 실제로 해방후 한국전쟁 이전 38선을 지금의 북중국경 넘는 방식으로 넘어 대한민국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많다. 허나 실질적으로 탈북 역사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 귀순에 성공한 사람들을 2005년경부터 새터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참고로 한국전쟁때 월남한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은 실향민이다.

3. 방법

드물게는 북한에서 공군 훈련 중인 파일럿이 전투기를 타고 한국으로 탈북한 사례[1] 또는 배 타고 남한으로 내려오기(1987년 김만철 일가족) 사례가 있다. 보통은 중국-북한간 국경을 넘어서 대사관 등 국제 건물로 넘어오는 루트를 자주 이용한다. 이러기 위해선 국경수비군들에게 뇌물을 먹여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정말로 막장이다. 다만 배 타고 내려오는 방법은 아직도 행해지고 있는 탈북 방법이다. 2002년에는 남북 분단으로 인해 실향민이 된 순종식씨가 선박 기관장을 납치해서 본인과 일가족을 포함해 무려 21명이 동시에 탈북한 사례가 있었으며 2009년에는 7명이 조그만 고깃배를 타고 서해로 남하하여 집단 귀순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2010년에는 한 40대 남성이 스티로폼으로 조잡한 뗏목을 만들어서 필사적으로 남하해서 귀순한 사례도 있다.
로빈슨크루소?

최근에는 중국 국경의 두만강을 이용한 탈북을 막기 위해 국경수비대에게 탈북자를 신고하거나 붙잡으면 지금까지 받은 뇌물을 눈감아 준다든가, 심지어 화선입당이라 하여 현지에서 바로 조선노동당에 입당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 방식은 의외로 성공을 거두어 탈북자들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주고 있는데, 전제 왕조인 북한에서 절대군주 김정은의 실질적 추종세력인 조선노동당에 입당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출세를 보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육로를 통해 휴전선을 직접 넘어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민간인은 거의 없고 주로 북한 군인들이 이 경로를 통해서 남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다른 방법에 비해서 실패율이 대단히 높아서 선호되지는 않는 방법. 남북한 병력의 상당수가 휴전선에 집중되어있기에 걸려서 사살당하거나 지뢰 밟고 폭사당하거나 고압전기 철조망에 걸려서 감전사 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 휴전선을 넘어서 탈북에 성공한 군인들의 수기를 읽어보면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 수준이다.
2014년 초에 방영된 탈북 다큐멘터리에서는 술에 취한 상태로 지뢰도 다 피해서 1시간 만에 탈북한 사례도 나왔다.취권

중국의 한국대사관 진입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제3국의 한국대사관을 노리는 경우가 있는데, 탈북자를 인도적으로 대우해주는 일부 동남아 국가에 밀입국을 시도하게 된다.

4. 탈북 이후

탈북을 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교육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남한의 전반적인 구경을 시켜주거나 정부적인 단순한 지원을 해주는 데에서 그쳤다. 일례로 1987년 김만철 일가족들이 탈북했을 당시에는 롯데백화점이나 남산, 63빌딩 등 서울을 구경하는 정도였다고. 참고로 김만철씨 일가는 꽤 많았던 지원금을 사기당해 싸그리 날려먹고 컨테이너에서 거주하면서 인형 눈 붙이는 부업으로 연명하고 있다. 김만철 씨는 비교적 최근까지 사이비 종교인 영생교에 심취해 있었다. 다만 막내아들 김광호 씨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라고 하니 불행 중 다행. 허나 현재는 바로 하나원으로 보내어져서 3개월간 교육을 받은 뒤에 이후 내보내주고 있다.[2]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한 탈북자들은 이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지만(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도 나왔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그렇게 생활을 하는 편이 쉽지 않은 편이다. 우선 취직하지 않는 이상은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북한은 배급도 끊기고 사회주의의 인민생활보장제도도 무너진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국가가 인민의 삶을 책임지는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병원, 학교(필기구나 책가방도)는 무료이고 세금도 없으며[3] 직장도 국가에서 배정하기 때문에 실업이 없이 거의 100% 취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본인이 노력해서 돈을 벌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새터민들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많은 새터민들이 법치주의[4]상거래 등에 익숙하지 않아 결국 하류층으로 전락하고 온갖 종류의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많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다만 이는 한국의 사회적 약자들이나 다문화가정 출신들도 큰 차이가 없다. 당장 뉴스에 잊을 만하면 나오는 묻지마 범죄자들이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살았는가를 생각해 보자.

보통 엘리트 출신이 여기서도 적응을 잘한다고 한다.[5] 80년대 동구권에서 유학한 엘리트라든지 아님 북한의 유수의 대학 출신들. 아무리 폐쇄적인 나라라고 해도 바깥세상에 더욱 잘 알고 교육이 뒷받침되기 때문. 사실 최근의 탈북자 사회 부적응 문제는 이런 엘리트층이 아닌 일반 주민들이 대거 탈북하여 한국에 입국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 이들 중 북한에서부터 달러 등 외화를 많이 소지하고 있던 사람들도 많아서 그 돈을 그대로 남한에서 사용하며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남한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수적으론 많지 않지만 북한군 현역 군인, 특히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장교의 경우엔 특별임관을 통해 한국군 장교로 복무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군 공군 조종사 출신인 고(故) 이웅평 대령이나 철수 대령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아직까지도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이질감 문제가 존재한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있던 문제이다. 1990년대에 탈북하여 그럭저럭 한국에서 잘 정착한 김용이 쓴 글을 보면 저녁에 지하철을 탔더니만 술 취한 사람이 바닥에 드러누워 잠 자는 걸 보고 어느 아이가 엄마에게 "저 사람 왜 그래?"라고 물어보자 "북한에서 온 거지일 거야"라는 답변을 하는 바람에 엄청 분노했었다는 글까지 남길 정도이다. 심지어 죽을 고생하고 온 탈북자가 쓴 책을 봐도 "북한에서 온 새끼들은 거지밖에 없어!"라는 자칭 보수단체 사람을 봐서 그 사람에게 "황장엽도 거지새끼냐?"라고 대꾸하자 그 사람이 말문이 막혀 그냥 가버린 일화까지 나온 바 있다(이 작자는 책까지 써서 황장엽을 찬양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일화들은 거의 IMF 이전 한정이라고 보는게 맞을것이다. IMF 이후 '남한 거지'들도 넘쳐나게 됨으로서 남한인들의 근거없는 자신감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에 이젠 거꾸로 우리나란 틀렸다는 비관론이 하도 설쳐대서 문제지 거지를 북한 주민으로 보거나 몰지각한 새터민 거지 운운하는 행위는 많이 사라졌고 오히려 두 세력이 힘을 합쳐(...) 대북 전단 살포 등의 운동을 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은 남한보다 중국에 훨씬 많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고생하다가 중국이 더 자유롭고 돈 벌기 쉽다는 소리를 듣고 일단 중국에서 돈 벌고 북한으로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중국에 가서 북한보다 훨씬 발전한 생활상을 보고 북한으로 안 돌아가고 눌러앉아 산다고 한다. 다만 공안의 감시가 심하기 때문에 더 자유로운 생활을 원하는 탈북자들은 남쪽으로 쭉 내려가 그들을 난민으로 받아주는 동남아 중립국으로 도피한다. 대사관 경로는 최근 들어 중국 공안의 감시가 심해져서 성공이 어렵다고 한다.[6]

그래서 최근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유입되는 경로는 탈북→중국에서 공안 감시 피하면서 돈을 번다→브로커들에게 돈을 주어 탈북자를 수용하는 동남아 국가로 도피→남한 입국의 경로인데 브로커들이 많은 돈을 요구하여 금전적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기차에서 공안 감시를 피해야 한다거나 밤 중에 강과 밀림을 건너야 하는 등 고생이 심하다. 보통 양심적이고 장기적으로 장사하려는 브로커들은 대략 200만원 정도를 수당으로 받는데 탈북 루트에 속한 국가들이 하나같이 북한과 한패거리인데다 북한을 위해 그들 자체적으로도 탈북자들을 적극적으로 잡아들이고 있다 보니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게다가 장성택 처형 직후에는 하도 감시가 살벌해서 천만원까지도 올랐었다고 한다.

5. 현황

분단 후 현재까지 대한민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의 숫자는 2014년 약 27,000명으로 절대다수는 21세기에 입국한 사람들이다. 1998년까지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매년 많아야 수십명 수준에 그쳤으나 1999년에 최초로 한해 입국자 수가 100명을 돌파하였고 2002년에는 1,142명이 입국하였다. 이후 2008,09년 입국자 수가 3,000명 수준까지 육박한 적이 있었으나 최근엔 북한과 중국의 단속 강화 등으로 2012,13년에는 1,500명대에서 정체 상태에 있다. 급격한 남한 내 북한이탈주민의 증가로 이제 북한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들은 북한 이탈 후에도 여전히 북한에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북한의 체제 위협 요인으로 상존하고 있다. 이미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들이 자금을 축적한 후 브로커를 통해 아직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꺼내오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최근의 남한 입국자들 상당수는 이런 케이스이다.

현재 남한 정부는 인도주의와 동포애 차원에서 간첩만 아니면 북한이탈주민은 다소 예산에 부담이 되더라도 모조리 받아준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감시가 인권침해가 되는 수위까지 있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야 수상한 행동이 있나 감시하는 것 뿐이겠지만...[7] 또한 서강대학교 기준으로 새터민에게는 학비가 전액 무료이다. 대학교까지 4년 다니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새터민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남한화 되는 경우가 대부분.

그리고 탈북자 중에서 국회의원도 배출했다. 2012년에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출마해서 당선된 조명철 의원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수를 하다가 1994년에 탈북했다. 개성공단에 국회의원들이 방문할 일이 생겼는데 탈북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유일하게 거절당했다. 참고로 이 조명철은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북한 지배계급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살다가 탈북하고서 남한에 와서도 하는걸 보면 보통 처신이 바르지 못하다.

하지만 자력으로 들어오는 새터민을 받아준다 뿐이지 절대로 정부가 나서서 새터민을 구출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를 밀입국자로 규정한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어필한 적은 없으며 물밑에서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용한 외교'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 탈북자에게 공식적으로 도움을 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

1998년에는 천신만고 끝에 탈북한 국군포로 장무환씨가 전화로 선양 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전화를 받은 대사관 직원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등의 폭언을 한 전화 녹음이 언론에 공개된 적도 있다. 물론 이때 외교부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8]

새터민의 현황은 새터민들의 쉼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한에 거주하는 새터민 뿐만 아니라 중국(주로 조선족자치구)에 거주중인 탈북자들도 꽤 많이 접속하는 듯. 동북3성과 북한을 오가며 장사하는 사람(도강꾼이라고 한다.)이 MSN메신저 아이디를 알려주기까지 한다.

최근 태국주재대사관의 직원들이 탈북자들에게 폭언을 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기사가 나가자 외교부에서는 탈북자들의 주장이 과장되었음을 주장했으며 해당 언론사에 직접 구두로 항의했다.
관련 기사
탈북자 기사 나가자 전화 걸어 펄펄 뛴 외교부

그리고 남한에서도 살기 힘들거나 여타 이유 등등으로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일부 케이스도 있는데 김정은 대 들어서면서 새로운 탈북자를 막기 위한 광고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경우 가족을 인질삼아 협박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전원 최종적으로는 자신과 가족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관련 기사

일본에도 탈북자가 있는데 재일교포 북송 당시 일본인 처와 함께 온 재일조선인들의 후예들이 대부분이다. 250명 정도로 추정한다. 일본으로 간 북한이탈주민 다카야스 고쿄 얘기.[9]

6. 북한의 대응


북한의 탈북자에 대한 대응은 시기마다 조금씩 다른데 처음에는 북송된 탈북자를 정치범으로 보아 정치범수용소로 보내버렸다. 하지만 워낙 탈북자의 수가 많으니 나중에는 탈북자를 분류하여 한국으로 가려다 혹은 기독교를 접하고 북송된 사람들은 정치범으로 취급하지만 먹을 것을 위한 단순 탈북인 경우에는 약간의 강제노동 후 다시 풀어주었다.

북한의 탈북자는 단순 방면, 노동단련형, 감옥행을 당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그나마 탈북자들에게 관대했던[10] 김정일 시대까지의 이야기로 김정은이 집권한 뒤에는 무조건 사형. 운이 좋아도 정치범수용소 직행 코스를 타게 된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는 2011년 12월 이전 탈북하여 그 이후 중국에서 떠돌다가 국내로 들어온 사람이 절대다수에 속한다.

최근에는 웬 어린 놈이 나타나 탈북자를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탈북에 대한 북한 당국의 단속이 심해졌다고 한다.[11] 이러한 단속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남한에 가족이 있는 탈북자들까지 수십 명이 잡혀 북송될 위기에 처하고 이들에 대한 구명 운동이 확산되면서 탈북자 문제가 국제이슈화 되고 있다. 모 국회의원은 단식투쟁을 하고 있고 '크로싱'에 출연했었던 배우 차인표 등은 적극적으로 가두시위를 벌이는 등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확산 중. 하지만 북한에 대해 확실한 주도권을 인정받지 못한 현재의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붕괴될 경우 자칫 중국 대륙과 서방 세력간 완충지대의 소멸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12][13] 어쨌든 완충지대이니 뭐니해도 탈북자들을 강제북송시키는 중국의 행위는 절대로 정당화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공론화한 시점에서 해당 탈북자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탈북자 중 최소한 2명은 구할 수 있었음에도 이들의 생명을 무시하고 언플을 벌이다 탈북자 모두를 사실상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특히 외교부의 '그들은 북한 사람인데 어떻게 한국인이라는 신원확인서에 도장을 찍어주느냐'는 발언은 우리 외교부의 현실을 보여주는 최고의 명언. 의도는 좋다고 하더라도 당사자들에게는 도움은 커녕 오히려 더 방해만 되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리고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위의 탈북자들은 결국 북송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의 탈북을 도와준 사람들의 가족까지 가차없이 잡아가고 있다고 하니 피해 인원은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원래 정치범 본인만 수용되던 악명 높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수성 교화소에 가족까지 모조리 다 잡아넣고 있다고 하니 역시 이놈도 답이 없다. 현재도 라오스까지 탈출한 청소년 9명을 친북 성향의 라오스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 중국의 묵인 속에 평양으로 끌고 갔다가 뒤늦게 들통나는 등 해외로 나간 탈북자들까지 잡아들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7. 남한 사회에서의 적응문제

일부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던 시절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찬양습관이 심신에 배이는 바람에 갓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했을 때 그야말로 비난과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특히 남한을 남조선이라고 한다거나 국민을 인민이라고 한다거나[14] 김일성, 김정일어버이 수령님이라고 부르다가 일부 남한 주민들로부터 비난과 곤욕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북한에서의 습관이 몸에 남아있고 남한 생활이 익숙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일부 남한 주민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고 이 때문에 사회적응이 쉽지 않다.

그리고 현재 탈북자들 대부분이 정치적 사상 문제보다는 먹고 사는 것때문에 탈북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탈북한 뒤에도 김정일은 욕하면서도 김일성은 여전히 존경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가 눈총을 받거나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게다가 북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표현의 자유, 주거의 자유, 선택의 자유, 의식의 자유에도 익숙하지 않아서 애를 먹기도 하였고 일부에서는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사투리를 쓰는 바람에 언어소통에 장벽을 느끼기도 하였으며 일부 탈북자들은 남한에서는 계급사회 같은 게 없습니까?[15]라고 남한 주민에게 뜻밖의 질문을 던지기도 하여 당혹감과 혐오감만 낳는 사례도 있었다.[16]

게다가 북한의 주적인 미국일본 문화가 가득하고 익숙해진 남한의 풍습에도 익숙하지 못하여서 남한에 존재하는 미국 문화나 일본 문화를 처음 접하기만 해도 어째서 적국의 문화를 접하는 건가요? 북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은 우리 인민의 주적입니다 라고 얘기하는 등 남한 원주민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이질감과 당혹감만 불러일으켰다.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유아기부터 지속적으로 미국일본혐오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세뇌교육을 받아온 영향이 가장 크다. 외교적으로도 아직 북한과 미수교 상태로 있고, 북한에서도 주적 및 적성국가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원주민이 미국 문화나 일본 문화를 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이유도 있다. 이것도 갓 탈북해서 아직 남한 사회에 익숙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한 탈북자들 입장에서 나온 것이며 남한 사회에도 익숙해져서 미국 문화나 일본 문화를 접하면서 적대적 성향이 사라졌던 베테랑 탈북자들에게는 해당이 없는 얘기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친교국인 중국이나 러시아 문화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이고 호감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경우 오래전부터 북한의 우방이자 우호국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중국 문화는 쉽게 접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러시아 문화의 경우 소련 시절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던 시절부터 유입되었기 때문에 익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히는 탈북자들은 한국이 잘사면 중국만큼 잘살겠거니 한다. 한국이 중국보다 잘 사는 것에 놀란다고. 중국 = 대국, 한국 = 소국이라는 사상자체는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조선족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점이라면 조선족의 조국은 중국이고, 북한주민들의 조국은 북한이다.

갓 탈북하여 남한 생활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는 북한 사회에 익숙해진 심신 때문에 이렇듯 남한에서의 생활에 미숙하여 사회적인 비난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남한 생활에 오래 정착하여 북한 생활의 습관을 잊고 사는 입장에서는 사정이 다른 편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남한 생활이 북한에 있을 때와 다를 바가 없다거나 아예 생활에도 익숙하지도 못하고 사람들과의 소통도 장애를 겪었다는 이유로 도로 월북재입북을 하게 되었다가 얼마 가지 않아 이용가치가 떨어지자 김정은의 명령으로 관리소행 편도 열차에 강제로 타게 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해외로 다시 이민을 간다. 아니, 정확히는 정치적 망명자 비자를 신청해서 영국, 캐나다등으로 가는 것.[17]요즘 서양에서 이런 정치적 망명자를 받아주는 것 때문에 말이 많기 때문에 서양에서도 더 이상 안 받아줄 가능성이 높다.

보통 탈북자들의 이러한 북한식 사고는 남한의 자본주의 문화를 접하면서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특히 생계형 탈북자들도 '우리가 그렇게 가난하게 살게 된 건 다 우리가 그토록 찬양했던 김일성 일가 때문이다' 라고 모두 배운 후 남한사회로 입성해서...이들의 북한체제와 김일성에 대한 분노와 혐오는 일반 남한주민들이 장난스럽게 놀리는 것 이상으로 진지하고 무서울 정도로 높다.

8. 탈북자들이 일으키는 사회문제

시기적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맞물린 2013년 8월엔 탈북자들이 누군가의 사주로 친정부적인 여론조작을 시행해 왔던 것이 밝혀졌다. 이들은 지난 2009~2010년동안 인터넷 여론조작 알바단을 구성해 조직적 활동을 벌였였고 그 대가는 금전적 이익이었다. 이들은 'NK 지식인연대' 라는 이름의 탈북자 집단으로 이북에서 3년제 이상의 대학을 졸업한 소위 북한 사회 지식인층 출신 부류들로 구성돼 있었다.기사

이렇듯 북한이탈주민 출신 인사들이 극우 단체들의 정치적 선전에 이용당해서, 혹은 자발적으로 주동세력이 되어 국내에 정치적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민주화운동 인사 및 진보 인사/단체와 이들의 활동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에 다각도로 이용되고 있으며, 북한은 극도로 폐쇄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의 경험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탈북자들의 발언은 교차검증을 통해 사실을 규명하기가 상대적으로 곤란하기 때문에 '아니면 말고' 식의 여론 호도에 잘 써먹을 수 있다. 이러한 악용의 대표적인 예가 종편방송 TV조선과 채널A로, 당 방송들의 5.18 광주폭동설에 대한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당시 광주에 투입되었다고 주장하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제시하며 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선동에 의한 폭동으로 매도하기 위한 것. 하지만 오히려 이게 논란이 되자 오히려 탈북자들이 5.18 때 간첩이 개입하지 않았다며 왜 그런 유언비어가 떠도는지를 증언했다.

최근 사회의 암덩어리로 자리잡은 극우 사이트 일베저장소를 인증하는 탈북자들이 있고, 특히 탈북자 출신 영화감독 정성산은 극우사이트에서 쓰이고 있는 지역비하로 전라도를 비하하는 7시, 전라도는 다른나라, 등등의 발언을 트위터를 통해서 쓰는 등,기사 심히 어이없는 행보를 보였고, 문제는 탈북자 중에는 이러한 자들이 소수가 아니라 드러나는 자들만 해도 꽤 있다는 것이다. 정성산 감독뿐만 아니라 탈북자 출신으로 남한 국회의원이 된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국정조사 증인인 당시 경찰차장 권은희에게"대한민국 경찰이냐 광주 경찰이냐"라는 망발을 한 것도 비슷한 사례. 당시 권은희는 경찰청장 김용판이 수사 중단 압력을 가했음을 선언했다가 이런 망발을 당했다. 대통령 선거에 불법 개입한 사건을 수사함에 있어서 외압이 가해졌음을 폭로했다가 "너 지금 광주 편을 드느냐"는 소리를 들은 것인데 대가리를 어떻게 돌리면 저런 논리가 나오는지 궁금할 따름이 아닌가.[18]

반면에, 이들과는 대비되게 '소신껏' 발언하는 분들도 계신다.#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기자 주성하는 5.18 왜곡사태등을 빗대어 '아마 이런 일이 몇 번만 더 계속된다면 정말 한국 사회가 탈북자들을 “거짓말쟁이에 쓰레기”라고 낙인찍을 것 같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탈북자 사회 스스로가 자정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탈북자 개개인의 책임이 아닐까 생각한다.'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저런 부류의 극우적 성향을 보이는 탈북자들은 때론 비슷한 성향의 보수 정권에게도 골칫거리로 나타난다. 일부 과격 탈북 단체는 분명 대북 경협사업이나 나름의 대북 정책을 가지고 있을 정부의 경고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드론으로 평양에 삐라를 뿌리겠다"며 미국인 활동가와 연계해서 소란을 피우기도 한다.기사[19] 2015년의 박근혜 정부는 시베리아 철도등 북한과의 경협을 진지한 공약으로 간주하는 걸 아직 철회하지 않았는데도 저런 탈북자 단체의 돌출행동은 국가 차원의 대북정책에 재를 뿌리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9. 탈북 청소년 문제

탈북자의 한국 사회 부적응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탈북 청소년의 학교 부적응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2012년 기준으로 일반 청소년에 비해 탈북 청소년의 학업중단, 자퇴 비율이 7배나 높다. 그동안 성인 탈북자의 정착과 지원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왔고 그 가족의 자녀들은 어리니까 성장하면서 잘 적응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었다.

일단은 신변안전상의 이유로 탈북자 출신이라는 사실은 숨기는데 탈북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주변 학우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사실 숨긴다고 오래 숨길 수도 없다. 북한 특유의 말투와 또래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보이는 도발이나 사회, 정치적 문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 애꿎게 '너희 나라는 맨날 왜 그러냐?'부모 교육이 개판는 부당한 비난을 받고# 심지어 '너 간첩이지'에서 '빨갱이'라는 욕까지 듣는다. '너희 나라'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그냥 한국어 쓰는 외국인 취급이다. 참고로 한국정부는 헌법으로 한반도에서 유일한 정부임을 자처하며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다. 나라가 아니다(...)[20] # 집단 폭력까지 당한다. 도덕이란걸 자면서 배웠나 무슨 변명을 갖다붙이든 폭력이란 정당화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제발 탈북청소년들한테 이러지 말자. 하지말라고 해서 알아들으면 양아치가 아니지만

애들한테 죄가 있다면 휴전선 위쪽에서 태어났다는 죄밖에 없지만 애시당초 집단괴롭힘에 합당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 트집거리 잡을게 하나라도 생기면 즉시 그 대상이 된다. 탈북 청소년도 엄연히 감수성이 있는데 이런 차별은 성인보다 더 뼈아프게 느껴질 것은 자명한 일. 게다가 지속적으로 계속 감정적인 차별에 시달리며 성장할 경우 이들이 갖게 될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반감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북한이라는 최악의 고립지역에서 탈출한 배경을 감안해보면 대한민국의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보다도 이들이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성장하기는 몇배나 더 힘들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적어도 북한 청소년들은 한국말을 쓰고, 한국 문화를 공유하므로, 다를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 다르다고 보는게 정확. 아무튼 이들의 적응에 국가와 민간 양측이 별도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탈북 청소년을 다문화 가정 범주에 넣어서 다루는것이 전부이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에서 탈북 청소년까지 지원해주고 있는 상황. 혼혈도 아니고, 타문화권 출신도 아닌데 다문화취급하는 것 자체가 개판이다. 이들 단체 말고는 탈북 청소년한테 관심을 가져주는 단체가 전무한 실정이다. 가끔 가뭄에 콩나듯 국가차원에서 탈북 청소년 직업 교육 시켜주는 게 지원이라면 지원이지만.

2012년말에서 2013년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막 나가는 위협이 계속되자 상술된 니네 나라는 맨날 왜 그러냐는 분위기는 점점 강해지고 탈북 청소년의 학교에서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상황. 북한에 대한 반감과 혐오감을 죄없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푸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탈북 청소년의 37%가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실정이다. 감정적인 고립이 실제로 어떤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지 보여주는 예.

그래서 위의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인진 몰라도 남한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한 이탈주민들 중에서도 남한이 아닌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10. 북한이탈주민의 유의 사항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중국으로의 여행은 되도록이면 안 하는 것이 좋다. 중국으로 여행갈 정도면 한국에 많이 적응했기 때문에 별 지장이 없어보일수도 있지만 자신을 북송시키거나 쫓아왔던 공안들을 또 만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 탈북 실황 프로그램에서 남한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탈북하던 탈북자중국에서 공안에게 북송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공안이 남한인에게 접근한 것도 "탈북자 출신 남한인 아니냐"는 생각에서다[21]. 이미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상태인데 뭐가 문제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공안은 그런거 안 따지고 북한 국적자로 간주하고 넘겨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이나 대양주, 북미 등지로 여행할 새터민들은 중국국제항공, 중국동방항공, 중국남방항공 등의 중국 국적 항공사는 되도록 이용을 자제하자. 한국 시민권을 가진상태로 중국으로 여행목적으로 혹은 유럽/대양주로 가기 위해 환승목적으로 떠난 탈북자가 위의 이유(북한 국적자로 간주)로 공안에 잡혀 북송되었다 카더라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일이다.(사례가 실제로 있다면 추가바람) 조금 비싸더라도 국적기를 이용하거나 일본, 대만, 홍콩 등 인근 아시아국가나 미주, 유럽 소속의 다른 항공사를 이용하도록 하자. 유럽행의 경우 터키 항공이나 핀에어 등 유럽 항공사를 이용해도 된다. [22]. 특히 호주나 뉴질랜드 등지로 갈 경우 싼 가격에 비행기를 타고자 하는 경우 중국 항공사들을 만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럴 경우 국적기를 이용하거나 비싸다 싶으면캐세이퍼시픽 항공, 싱가포르항공이나 에어아시아 혹은 에어 뉴질랜드부터 먼저 알아보자 (다만 중국국적 항공기보다 비싼 건 감안해야한다.).

또한 청소년 탈북자, 특히 문과를 지망하는 경우 대학에 진학할 때 중국어학부/중국어학과나 중국 관련 학과 쪽으로 진학하지 않는 것이 좋다. 중국으로 갈 빌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영학과 등 상경계열로 진학했다 하더라도 취업할 때 중국과 엮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으며, 굳이 어문계열로 진학하고 싶으면 중국과 엮일 가능성이 적은 다른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한 탈북자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국제관계학 등을 전공하거나, 국제관계학 교수 등이 될 경우 특별한 동기가 없는 한 중국 관련 주제는 주 연구분야로 잡지 않는 것이 좋으며, 미주/구주 등 서양/아프리카 계통으로 하되 중국과 엮이지 않는 방향으로 전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좋다. 대학원생이나 석/박사, 교수들의 경우 논문 등의 이유로 현지조사를 가야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중국에 갈 경우 자신을 쫓아왔던 공안들을 또 만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타이완으로 가는 것은 문제가 없다. 어차피 대만은 행정체계가 다르다. 별도의 행정체계를 지닌 홍콩 역시 중국 공안이 아닌 홍콩 경찰이 치안을 유지하기 때문에 공안을 만날일도 없고 탈북자가 북송을 당할일은 더욱 없다. 홍콩은 참고로 중국에서 금지당한 파룬궁도 떳떳하게 활동하고 반체제 운동가들도 활동할 정도이다.

한마디로 중국과 관계된 항공권이나 공안 절차내에 모든것들은 되도록이면
반드시 피해야한다는걸 잊지말자! 잘못하면 이와 같은 일이 지옥처럼 반복될수있다는것도 명심하자

11. 트리비아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유럽으로 가려던 탈북자들이 꽤 많다보니 영국에선 탈북자들에 대한 엄격한 조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조선족이나 중국인들이 탈북자로 속여 유럽으로 들어오던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23]

그래서 미국에 가면 더 돈 많이 벌고 좋아진다고 여기는 탈북자도 많아졌다. 대부분이 ~카더라라는 헛 정보가 많은 형편. 하지만 미국이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을 환영할 리는 없고 한국과 달리 정착연금도 거의 없기 때문에 극단적인 최후를 겪는 일도 있다. 이러려고 탈북한 게 아닐 텐데...

게다가 이런 사람들은 외국에서도 적응 못 한다. 한국인이 외국가서 그나마 좀 기댈수 있는게 같은 한국인인데그 한국인들에게 뒷통수 맞는건 둘째치고, 한국에서 적응을 못 할정도면 외국내 한국 커뮤니티에서도 적응을 할수가 없다.

새터민을 소재로 영화화 한 작품도 있다. 차승원, 심혜진 주연의 2006년작 국경의 남쪽, 차인표 주연으로 2008년에 개봉한 크로싱, 2009년 개봉작인 처음 만난 사람들과 2011년 개봉작인 무산일기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만든 2010년작 어떤 시선[24]도 있다.

12. 잘 알려진 탈북자들

  • 김만철씨와 그의 가족들 - 2011년 인터뷰에서 재산 사기당하고 중국으로 이민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 김용
  • 강철환
  • 강명도 - 김정일 유모이던 강보비의 조카 현재 직함은 경민대학교 효충교육원 북한학 교수이며, 여러 방송에 북한 전문가로 출연한다. 북한 내 최고위층 출신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다른 탈북자나 다른 전문가에 비해서 통찰력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25]. 또,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특정 정치 세력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만, 강명도는 균형있는 정치관과 현실적인 대북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몇 가지 사소한 오류를 드러내기도 한다.
  • 김현식 - 김형직사범대학 러시아어과 교수 출신으로, 김일성, 김평일, 김정일, 황장엽 등 이름만 대도 알 만한 북한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러시아어 전속 통역을 했던 인물이며, 김평일, 김정일 등에게 직접 러시아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특히, 김평일을 비롯한 김경애 계열의 러시아어 공부를 돌보아줬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 실력이 너무 뛰어나 그대로 두는 것이 마땅하다는 김정일의 평을 받을 만큼 북한의 러시아어 최고 권위자였다[26]. 90년대 초 소련에서 한국어ㆍ조선어 열풍이 불게 되자 많은 러시아인들이 한국과 북한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는데, 김현식은 소련에서 연수를 온 한국어 교수진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때 많은 소련 교수진이 조선노동당에 김현식 교수를 소련으로 파견해 줄것으로 요청했고, 김정일이 이를 받아들여 모스크바대학 교환교수로 파견되게 되었다. 여기서 한 브로커를 통해 미국에 거주 중이던 흥남후퇴 때 헤어진 누나를 만나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서유럽권 대한민국 대사관을 통해 탈북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정보대학원 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일대학교 교수로 있다.
  • 노금석
  • 박성진 - 2006년 몽골을 통해 탈북한 소해금 연주가. 남한에서 장윤정 앨범에 참여하는 등 소해금 연주로 유명한 탈북자. 서양 명곡을 편곡해 소해금으로 연주한 음반도 발매되어 있다.
  • 박인숙 - 2006년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탈북. 이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다 재입북하여 김정은 정권 유지수단 밎 탈북자를 막기 위한 선전에 출연 중. 사실 그 전에도 일부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갔는데, 되돌아왔다고 대놓고 광고하는 건 2번째라고. 재입북한 이유는 아들이 평양음악학교 교사였는데 그녀의 탈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소식과[27] 남한 생활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의 인생 역경에 대해서는 기사참조. 그녀를 아는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남조선 바람이 좋으니 칠십 넘은 노인이 당 간부들보다 살이 찌고 혈색도 좋아져서 온 것에 깜짝 놀라고 있다고 한다. 이후 소식이 없다가 2013년 12월 21일에 다른 재입북자인 최계순(2011년 12월 탈북)과 함께 다시 출현하여 남한의 사회가 냉혹하다며 비판했다. 일단 자신은 평양에서 잘 지내고 있다곤 밝혔지만 여생을 마칠 때까지 안전할 지는 보장이 없다. 한국의 탈북자들도 이 노인이 재입북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만큼은 동정해주는 편이다.
  • 신동혁
  • 이용운씨와 그의 가족들.
  • 이웅평
  • 이한영 -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로 본명은 리일남이며 남한에 귀순한 후 개명하였다. 1997년 북한의 공작원에게 암살되었다. 어머니인 성혜랑과 동생인 이남옥은 1996년 서방으로 망명하였다. 참고로 이한영이 탈북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김일성의 서자인 김현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린 것. 이한영은 1997년 북한 공작원에게 피살되었으며 현재는 이 공작원을 잡는다고 해도 공소시효가 지나[28] 처벌이 불가능하다.
  • 장진성 - 탈북 시인. 시집인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를 발표하여 많은 화제가 되었다.
  • 성산 - 탈북 영화감독. 북한에서 악명이 높은 정치범수용소덕수용소의 실상을 다룬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제작하였다.
  • 전철우 - 김책공대 출신으로 1990년에 동독 드레스덴대 유학생으로 있다가 베를린장벽이 무너질때 현장 분위기를 잘 타서 탈북에 성공했다 ㅎㄷㄷ. 탈북 후에 한양대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탈북대학생으로 유명했다. 90년대에는 버라이어티 등에 많이 출연. 중간에 사기를 당하여 정착금을 잃기도 하였으나 음식점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제법 성공하였다.
  • 명철 - 탈북자 출신 첫 국회의원
  • 주성하
  • 주성일
  • 황장엽

13. 다른 분단국가의 난민

독일이 분단되던 시절에는 대부분이 공산주의 체제인 동독에서 자본주의 체제인 서독으로 넘어갔다. 게다가 동독의 주변국들이 사실상 우회 탈동을 묵인하여 탈동이 너무나도 쉬웠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그 규모가 탈북자에 비해 무려 75배였다고 한다.[29] 물론 베를린 장벽이 생기기 전에는 우회하지 않고 직접 넘어갔다.

대만에서는 중국 대륙에서 넘어온 사람들에게 한동안 반공의사라고 대접하기도 했지만 지금 정치적 경제적으로 괄목한 성장을 한 중국대륙인들은 굳이 대만으로 올 필요가 없어졌다. 당장 대만 여행을 오는 중국 대륙인들이 많으며 대만에서 중국으로 여행가는 경우도 많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 또한 대만 정부는 귀순자에 대한 정착 지원이나 혜택 등을 일절 배풀지 않고 있으며, 한 술 더 떠서 아예 중국 대륙으로부터의 이민을 금지하고 있다.

14. 북한이탈주민을 소재로 한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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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50년 4월 이건순 중위, 1953년 노금석 상위, 1955년 이운용 상위, 이인선 소위, 1960년 정낙현 소좌, 1983년 이웅평 대위, 1996년 이철수 대위. 아무래도 민방위 사이렌이 울렸던 이웅평 대위의 사례가 가장 유명하다. 실수로 넘어와서 돌아가지 못한 사례도 있다. 1970년 박순국 소좌의 경우인데 요즘에는 실수로 넘어온 경우는 돌려보내주지만 당시 남북관계는 군인을 보내주고 돌려받을 만한 상황이 못 되었다. 따라서 귀순으로 선전되었고 고향에 남은 가족들이 겪을 고초 생각에 우울증에 빠져 과음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1976년 사망.
  • [2] 다만 하나원으로 보내지기 전 회사로 보내져서 이력을 검사한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간첩을 색출하는 것. 북한에서의 삶, 탈북 루트, 남한 귀순의 이유 등을 물어본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 나긋나긋한 국정원 남직원으로 인해 컬쳐 쇼크를 느낀다고도 한다(...) 80년대 남영동, 남산, 서빙고나 위의 대성공사를 떠올려본다면 그야말로 상전벽해.
  • [3] 이마저도 형식적으론 유지되나 아예 그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 [4]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의 사회보장 시스템이 붕괴되고 치안도 급속히 나빠지면서 일부 지역(평양, 개성)를 제외하면 말 그대로 헬게이트가 된지라 남한에 와서도 칼을 휴대하는 탈북자가 많다. 당연히 툭하면 칼부림난다.(...)
  • [5] 그런데 이건 탈북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이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상대적이긴 하겠지만...
  • [6] 심지어 중국 공안은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를 끌어내기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대사관은 국제법에 따르면 대사관이 대표하는 나라의 영토로 취급되며 치외법권 지역이다. 한마디로 원래는 중국 공안이 대사관의 양해 없이 절대로 들어오면 안되는 곳인데 이런 곳을 마음대로 들어와서 사람까지 끌어낸 것. 최근에는 국제적 비난이 심해지면서 이런 짓까지는 안 하고 대신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진입 자체를 못하게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 [7] 실제로 조사 과정에서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간첩이 남한 사회에 침투해 뒤늦게 이들을 체포하는 사례가 몇 번 있었다.
  • [8] 국군포로는 국제법상으로도 엄연히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다. 문제는 중국에서 이들을 북한 주민으로 취급하고 잡히면 북송시켜 버린다.
  • [9] 이 사람은 할머니가 일본인이었고 할아버지가 일조선인으로 함경북도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운동을 잘 했지만 일본계 한국인이란 혈통 때문에 차별을 받았고 19세 때 탈북하여 일본으로 갔고 현재는 일본인으로 귀화했다.
  • [10] 정확히 말하면 관대했다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 [11] 탈북자 사살은 공포정치를 위한 초석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직접 죽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단순히 위협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며, 하물며 생존 요건이 부족한 탈북자는 죽이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 [12] 물론 이 문제는 북한을 중국에 넘기면 해결되지만 대놓고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게다가 중국이 동해로 진출하고 남해의 불안정성을 더 강화할 경우 한국은 완전히 포위되어 중국이 언제든 수틀리면 말려죽일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려 통일 이후의 헬게이트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찾아오게 된다.
  • [13] 물론 이러한 동해 봉쇄를 일본과 러시아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굳이 적극적으로 봉쇄할 필요도 없고 그냥 불안정성만 크게 강화해도 충분히 한국을 말려죽일 수 있다.
  • [14] 그러나 국민이 보통 뜻하는 people은 한국에서 원래 인민이 맞다. 국민은 national정도인데, people하고 어감이 약간 다르다.
  • [15] 북한에서 존재하는 동요계층, 적대계층 등을 말한다.
  • [16] 한국도 재산 및 인맥으로 고착화된 계급제도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으로 위계화되어 사실상 계급내 이동이 차단된 북한과 달리, 한국은 경제, 문화, 위신 등의 다양한 요인에 의해 사회적 위상이 결정되는 계층개념이기에 이 둘이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다. 북한의 계급은 오히려 근대 이전 사회의 신분개념과 유사하다.
  • [17] 그나마도 한국에서 살었다는게 발각되면 망명자 비자가 캔슬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 [18] 소위 말하는 진보진영이 무계획적이고 대책없는 통일을 두려워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권력에 굴종하는 것만 교육받아온 북조선 인민이 대거 남한 주도 통일한국에 유입된다면, 이처럼 이젠 남한 정치에서 권력을 잡고있는 보수 우익 세력에 김씨일가에게 그랬던 것처럼 복종하지는 않을까 하는 가능성이다. 뭐, 위에 황장엽이 이러한 대표적인 경우이고, 더욱이 그 반대로 최덕신도 존재한다.
  • [19] 여담으로 대북전단 살포 활동하고 이 단체의 대표 박상학은 북한에서 청년돌격대 지도원 간부 출신으로 98년 탈북해 99년에 월남한 인물#로 대단히 극우 반공주의적이다. 그는 지난 2007년, 모 탈북자 단체 간부로 있으면서 공금횡령 사건에 연루되어 쫒겨났던 전력이 있었다.(이 때문에 탈북자 사회에서도 그에 대한 평판이 안좋다고 한다.)# 여기에 대북전단 살포 활동하면서 이권 다툼도 여러차례 있었다.# 북한에겐 나름 요주의 인물로 인식되고 있는지 지난 2011년 북한의 지시를 받은 선배 탈북자 로부터 암살 시도를 받기도 하였다.#
  • [20] 현실적이지 않고, 북한 국가로 인정하는 듯한 이중면을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태도는 이러하다.
  • [21] 물론 공안은 토종 남한인임을 확인해 넘어갔고 위기에 처한 탈북자들도 어찌어찌해서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탈북에 성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상태다.
  • [22] 유나이티드 항공을 이용할 경우 베이징에서 환승하는 항공편이 간혹 있는데(중국국제항공 코드쉐어편. 보통 부산/인천-베이징 노선에서 중국국제항공을 타게 되어있고, 베이징-시카고 등은 순수 유나이티드항공 운항편이다.) 이런 건 피하고 필히 나리타 아니면 샌프란시스코 환승으로 잡자. 이외에도 중국 영토 내에서 크니컬 랜딩을 하는 항공편이 만약에 있다면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 [23] 오죽하면 유럽 및 호주나 여러 나라에선 한국인이거나 탈북자라면 역사 시험 및 지리 및 사회 문제로 입국 검사까지 하고 있다. 중국인들이나 조선족이 가짜로 들어오는 게 많아서. 적발된 중국인들은 유럽이 근대에 중국을 털어먹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주장했지만 그게 먹힐 리 없으니 물론 유럽 나라들은 정착연금으로 써먹은 돈을 다 토해내게 만든 다음 강제추방했다. 돈 없다고 하면 교도소로 보내 일하게 만들고 중국은 이에 대하여 입을 다물었다.
  • [24] 30분정도의 단편영화.
  • [25] 정보력도 뛰어나서 일부 언론에서 나오는 카더라성 보도들의 진위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예전에 현송월 처형설이 돌 때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혼자서 말했었고, 현실로 드러났다.
  • [26] 저서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를 보면, 자신의 출신 성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의 배려로 김형직사범대학의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어 통역을 잘 했다고 김정일이 직접 귤 선물을 보내줄 정도였다고 하니 더 이상 말이 必要韓紙? 해당 도서에는 김정일종합대학 설립 계획 등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으니 참고 바람
  • [27] 북한 측에서 "당장 안 돌아오면 당신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는 소문이 있다.
  • [28]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2007년 개정 이전까지 15년이었고 1997년에 사건이 벌어졌으니 2012년 기준으로 공작원이 잡히지 않았다면 나중에 잡아들인다고 해도 이제는 이한영 살인 혐의로는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
  • [29] 북한에서 보통 사람들이 공식적인 방법으로 중국으로 가기 힘든데 반해 동독에서는 그냥 휴가를 간다고 하면 별 어려움 없이 체코슬로바키아로 갈 수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독으로 넘어가면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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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5 02: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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