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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외교

last modified: 2015-03-30 16:26:11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남북한관계
3. 북미관계
4. 북러관계
5. 북중관계
6. 북일관계
7. 수교국 일람
7.1. 상호 대사 파견국
7.2. 북한 대사 파견국
7.3. 외국 대사 파견국
7.4. 북한 내 대사 미상주 수교국
7.5. 그 외 관계국
7.6. 미(未)수교국 및 단교 국가
8. 북한이 가입한 국제기구 목록

1. 개요

전세계에서 쿠바, 시리아, 이란, 베네수엘라와 함께 킹왕짱 강대국 미국에게 대놓고 대들고 있는 소수의 나라이면서[1] 지구상 최고의 쇄국국가이다.

나라가 워낙에 막장이다 보니까 수교국 숫자는 남한에 비하면 상당히 뒤쳐지는 편이다.[2] 김일성 집권기에는 비동맹 외교다 뭐다 해서 제3세계 쪽에서 이런저런 지지가 많았지만, 1980년대에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라는 최악의 실책를 터트리는 바람에 위신을 많이 깎아먹고 말았다.

그래도 나라 밖에서 소통하는 것이 그나마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알고 있는지, 2000년대 들어 단교했거나 수교하지 않은 국가들과 서서히 외교 관계를 회복/수립하고 있다. 물론 수립된 나라에서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좋으냐 하면 그것도 꼭 그렇지는 않고. 아래 수교국 목록은 2014년 기준이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에 대사관 뿐 아니라 영사관과 이런저런 부문의 대표부를 두는 등, 두 나라와의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북한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 방식은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의 전통(?)을 따르는데, 현지 협상자에게는 권한을 적게 주고 외교단 전체가 이중 삼중으로 서로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하는 형태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단 단장을 맡은 인물이 겉으로는 최고위직이지만, 옆에서 통역하는 여성이 당 고위 간부들에게 직접 협상 내용을 보고하거나 단장의 거동을 감시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견제와 감시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내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직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감시하고 그걸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직위의 사람이 감시하는 등의 형태가 나타난다. 이건 타국에 상주하는 대사나 영사도 비슷해서, 외국에 나가 있다고 해도 감시의 강도는 비슷하기 때문에 마음 편히 있을 수는 없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자존심(?)인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외교 관계에 있어서도 심각하게 자존심을 챙긴다. 외교는 밀고 당기는 협상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북한과 외교 협상을 할 경우 양보를 통해서 합의점에 도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이건 아래에 설명할 협상단의 자율성이나 권한 문제 때문이기도 해서, 전문 외교관이 적절하게 협상하는게 아니라 당의 지도를 통해 협상을 하기 때문에 당의 대외관에 그대로 영향을 받는 경향도 있다. 이런 탓에 타국에 양보하는 것을 남에게 무릎을 꿇는 행위로 여기고 끝까지 자국의 승리를 챙취하려고 하며 타국에서 그걸 받아줄 리가 없으니 대개 치킨게임으로 치닫게 된다.

브라이언 마이어스의 《북한은 왜 극우의 나라인가》에서 따르면 유엔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가 호통치듯 몰아세우는 식으로 외교 전사들(…)을 묘사하며, 이를 호쾌한 자주외교(…)라는 식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냥 보면 민폐 또X이쓰레기들.

이런 행태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외교를 할 경우 정황을 굉장히 길고 멀리 봐야 하고, 때로는 비상식적인 면을 보일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의 책임 소재가 명확한 사건사고가 터져도, 외교 협상으로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8.18 도끼만행 사건 때 미국과 한국이 전쟁도 불사할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으름장을 놓았어도, 김일성은 사과가 아니라 유감을 표명했다. 물론 당시 한-미 양국도 전쟁 준비는 했지만 북한이 또 다시 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 실제 전쟁까지 갈 생각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외교 협상 과정에서 중요한 사항을 아무리 현지 협상단이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해도, 결국 상부의 지시를 받아서 조율을 해야 한다. 이런 자율성 적은 외교 협상단의 모습은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지만, 그런 나라들도 관료의 영역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어느 정도 협상의 자유를 위임했다.

하지만 북한 외교단은 최고 권력자의 지시가 법보다 앞서는 주체사상 국가 특유의 경직성 때문에, 당의 결정을 감히 거스르는 협상을 1%도 할수 없다. 실제로 협상 조건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그냥 한두 마디 내뱉은 말로 결정된 적도 있다고 한다. 덕분에 북한의 외교관들은 목숨을 걸고 외교에 임한다. 이 목숨을 건다는 말은 실제로 북한 외교관이 한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타국에서는 북한에 양보하지 않자면 정면충돌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고 양보하면 얼마나 빼앗길 지 모르기 때문에 결국 대북 외교는 상대국의 호구화 아니면 양측의 무한 대치 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좀 드문 경우지만, 가끔 북한 내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인물들이 외교관으로 전직하는 경우도 있다. 김정일과 벌인 권력 투쟁에서 자신의 지지 세력을 모두 잃고 패배한 김평일이 그 예인데, 1979년에 유고슬라비아 주재 북한 대사관의 부무관으로 임명된 뒤 30년 넘게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폴란드유럽 지역의 대사를 전전하며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 기껏 한 번 귀국한 것도 1994년에 7월에 아버지 김일성이 죽었을 때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고,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다시 쫓겨나듯 유럽으로 돌아가야 했다. 근데 좋은걸지도...? 차라리 현재 북한보다 유럽이 백 배는 낫지...

북한에서 외교 관계를 총괄하는 직책은 공식적으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며, 재외 대사의 임명이나 외국 대사 신임도 상임위원장의 재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해외 주재 북한 대사를 임명할 때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임명하며, 외국 대사들의 신임장을 제정받을 때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해당 대사들에게 직접 수령받는다. 북한 외교 관련 보도에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이 아니라 김영남이 더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관례 때문이다.

의외로 관계를 맺어도 이득도 없어보이는(반미국가들과는 여러 협력이 이루어지지만) 막장국가인데도 수교국이 제법 있는 편이다. 무언가 이득이 있어서 수교를 맺었기보다는 대부분은 북한과 수교를 맺어서 그것으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북한의 국제 악당 행위에 압력을 가하고자 하는 배경에서 관계를 맺은 경향이 크다.

3. 북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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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ɔ) Zscout370 from
North Korea–United States relations. 영어 위키백과의 표현을 참고하였다. 일본에선 미조관계(米朝関係)라고 표현한다. 한국에선 보통 북미관계라고 하나 미북관계라고 하기도 한다. 북미관계가 North America로 들릴까봐 그렇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북한보다 미국이 더 우방이니 미북관계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북한의 전신인 조선 북부 지방의 중심도시인 평양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한국인 입장에서야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니 이 일을 한국의 역사로 간주하지만 북한은 자기들이 조선의 땅과 인구를 습득하여 계승된 국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집단으로의 시작점은 한국전쟁으로 서로 적국이었다. 당시 북부의 정권은 소련의 지휘하에 놓였고 미국에 적대적이었다. 1948년 9월에 북한 정부가 수립됐지만 미국 정부는 인정하지 않았으며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그 때문에 북한엔 미국의 대사관이 없으며 미국에도 북한의 대사관이 없다. 다만 뉴욕에 주UN 북한 대사가 체류하여 북한의 대외창구 역할을 하기는 한다. 미국은 스웨덴 영사가 북한 관련 업무를 맡는다. 스웨덴은 북한과 수교했기 때문이다.

전쟁 기간 동안 한국군미군은 잠시 북한의 영토에 진입하지만 이내 중공군의 개입으로 밀려나고 전쟁은 소강상태에 빠지다 휴전된다. 그 후 냉전이 끝날 때까지 북한과 미국의 교류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등으로 나타난다. 미군 탈영병 일부가 월북하기도 하였다. 찰스 젱킨스(Charles Robert Jenkins) 중사가 대표적.

그 외에는 전혀 교류가 없었는데 북핵 문제가 나타나면서 북미관계는 점점 세계의 관심을 끌고 북한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어그로를 끌며 korean이란 말의 어감을 확 나쁘게 만든다. 미국 정부는 북한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다만 민간 차원에서 북한과 물밑 협상을 하러 빌 클린턴이나 지미 카터 등이 1994년과 2009년에 전 대통령 신분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1994년에 카터는 김일성을 만났는데 취급 받았다. 다만 보름 후에 김일성이 죽는 바람에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해보려던 김영삼 입장에선 좀 벙찌게 됐다. 2010년에도 갔는데 김정일중국으로 갔을 때라 만나지는 못 했다.

2007년 11월 4일에 약간 긍정적인 일이 있기도 했는데 주선자는 소말리아 해적이었다. 북한 상선이 소말리아 해적의 공격을 받자 근처에 있던 미합중국 해군이 도우러 온 것. 치료 등의 목적으로 미 해군은 북한인의 승선을 허가했고 이례적으로 북한의 매체는 이 일을 긍정적으로 논평했다. 2008년에는 뉴욕 필하모닉이 평양을 방문해 공연을 하기도 했다.

(ɔ) Not stated, with minor colour-balance editing by User:Spencer from

미 해군의 도움을 받았던 북한 국적의 상선 대홍단호.

그러나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등이 발발하면서 북미관계는 상당히 나빠진 상태다. 6자회담도 교착 상태고. 미국과 정식으로 수교하는 게 북한의 입장에선 상당히 절실한 일이긴 하다. 안보 문제에서 상당한 진전이 될 테니[3]. 다만 3대로 이어지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정권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반미 프로파간다가 국민들에게는 깊이 뿌리박혀 있다.

4. 북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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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전에 이미 소련군이 북한 지방에 들어왔고, 소련을 이용해먹으려고 한 김일성스탈린에 줄을 대게 되며 김일성이 공산주의를 표방하자 소련이 북한을 지원하고 지지하기 시작해 동맹이 맺어진다. 북한 정부 성립까지 소련의 영향이 미쳤지만 한국전쟁 이후 중국이 북한과 가까워지고, 소련과 중국이 스탈린 사후 여러 마찰과 갈등을 겪게 된 데다가 소련은 동유럽과의 문제 등으로 다소 관심이 옅어진다. 다만 경제적으로 소련은 북한을 계속 지원했으며 그 덕분에 북한은 한국과 1970년대까지 비슷하게 체제경쟁을 하는 게 가능했으며 인적교류도 꽤 잦았다. 고려인 중엔 스탈린이 중앙아시아로 데려간 전통적인 고려인과 사할린재일교포로 머물다가 소련령이 되면서 고려인인 된 그룹과 다른 제3그룹이 있는데 이들은 연해주에 노동자로 갔다가 정착한 북한인들이다. 현재 북한의 상태를 보면 러시아에 남은 게 백 번 잘 한 일이다. 냉전 중반까지 소련은 계속 북한을 지지했고, 이런 이유로 남한의 UN 가입을 막거나 하는 등, 남한과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1960년대 이후 흐루쇼프 정권 소련 때 즈음, 중국이 소련을 수정주의라며 비판하면서 중소관계가 냉각되고 거의 전쟁 직전까지 가는 동안 북한은 등거리 외교를 하며 이익을 잘 챙겼다. 그런데 북한이 8월 종파사건으로 중국과 소련에게 밉보이기 시작하고, 공산주의도 아닌 체제를 수립해가는데다 중국에게 빌붙어서는 줄타기 외교를 하면서 손만 벌리는 북한을 소련은 좋게 보지 않게 되고,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남한과 수교를 맺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다 1990년 남한과의 수교를 맺게 되고, 북한이 놀라며 이를 크게 비판했으나 소련 측에서는 이미 북한에 등을 돌린 후였고, 소련이 무너진 뒤로는 이제 거의 데면데면하다.
2000년 이후, 북러관계는 점차 회복되긴 하지만 북한의 핵개발, 북한이 소련에 진 큰 빚 등으로 소련때와같은 관계가 되기는 한계가 있다. 반미 외교 입장을 고수하면서 관계를 맺는다는 양상이다. 또 러시아는 경제적인 이유로 북한보다 한국에 더 관심이 많은 편이며 북한 핵개발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다. 2차 핵실험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고 대북 경제제제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북한도 러시아보단 우방인 중국에 더 의존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는 북한의 수교국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북한에게 호의적인 편으로 중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정보를 잘 아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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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김정일을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와 북한은 정식으로 수교한 상태이다.

다만 러시아의 젊은층과 언론은 북한과의 외교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이다.*

5. 북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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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ɔ) Drawn by User:SKopp, redrawn by User:Denelson83 and User:Zscout370 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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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로는 종차오관시(中朝关系)라고 한다. 북한의 성립 과정에는 소련이 주도적이었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은 중국의 혈맹이 된다. 한국과 미국이 혈맹이라 부른 것과 비슷하다. 중공정부가 수립된 1949년 10월 1일에서 얼마 후인 10월 6일에 북한과 중국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ɔ) from

한국전쟁에 '중국인민지원군'이라는 명칭으로 참전한 중국군. 참전 중 폭격으로 전사한 마오쩌둥의 아들인 마오안잉(毛岸英)의 묘가 평안북도 회창군에 있다.

다만 중국의 지원을 강조한다면 북한의 수령절대주의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중국관은 대단히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내건 국외건 아무튼 북한이 혈명임을 천명하는 중국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대외적으로는 혈맹 관계를 다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중국의 6.25전쟁 지원 사실을 최대한 숨기고 중국군의 전공을 축소하거나, 화교를 억압하고 중국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다고 탈북자 여성에게 가혹한 대우를 하는 등. 대내적으로는 중국을 '외세'로 보고 배격하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다. 게다가 8월 종파사건 때문에 중국도 밉상 짓을 하면서도 자신들에게 빌붙어 이득을 챙기려 하는 북한을 탐탁지 않게 여기게 된다.

북한의 정치인 중 상당수가 중국 공산당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북한군 출신 중에는 중국에서 활동한 이도 많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동유럽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엄청난 반대에도 덩샤오핑의 추진으로 적극적인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며 1992년에 대한민국과 수교하자 북한은 굉장히 충격을 받는다. 사실 이미 중국에서도 구실이 없었을 뿐이지 북한이 그저 미국의 영향을 막는 지리적 특징을 빼면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짐덩어리에 불과한 북한의 뜻을 따르기보다, 빠른 속도로 경제력과 국력을 키우는 남한과의 수교를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는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으로 한중수교의 구실이 생기고, 곧 수교를 맺게 된다. 이는 국제사회와 외교관계가 어떻게 움직여가는지에 대한 냉정한 현실을 배워가며 성장을 이룩해나가던 대한민국과 달리 개인 권력 강화, 숭배에 더 신경쓰며 우방 중국과 소련만 철썩같이 믿었던 북한의 정치외교적 능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배경에서 한-중수교는 현재 북한이 독자노선 등을 이유로 핵 개발등에 집착하기 시작한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북한과 중국은 예전보다는 소원해지고 김정은 집권기에 들어서는 중국 입장에선 진저리가 난 모양.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들어와 인권문제 등이 국제적으로 부각되는 것도 피곤한 모양이다.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절대 아니지만 언론에선 중국이 한국 주도의 통일이 발생하더라도 인정할 것이란 얘기가 많다. 최근 대북압박에 중국 정부가 은근히 동조하자 김정은은 중국인민지원군열사릉원을 참배했다. #

경제적으로는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가 예전 같지 않아서 중국이 북한을 먹여살리는 곳이 된 탓에 북한의 대중 의존도는 매우 높다. 중국이 동해로 나갈 수 있는 나진 등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3년말 장성택 처형 이후로 중국은 경제 제재에 나섰고 북한에선 유류 부족으로 훈련을 못 할 정도라고 한다. 북한 군부에선 궁지에 몰리면 전쟁도 불사 않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천년원수 드립은 덤 당장 중국에서 연료공급을 중단하면 그대로 가실 분들이 배짱이 크다...

해외에서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중국의 짐덩어리. 만평에서도 중국의 족쇄나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 등으로 묘사되며, 중국 몰래 핵개발을 하거나 쓸데없는 짓을 벌이며 중국의 골치를 썩히는 짐짝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실제로도 중국인들이 남한과 북한에 갖는 인식이나 인상은 너무 차이가 크고, 항상 도발 등의 행동으로 한중관계 혹은 한중일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4] 현재 중국 주석인 시진핑은 중국 주석 최초로 북한이 아닌 남한을 먼저 방문한데다 남한에 더 관심이 많다. 북중관계가 갈수록 악화되고 한중관계가 나름 여러 갈등이 존재하긴 해도 FTA까지 추진할 정도로 가까워지긴 하지만 북한이 갖는 지리적 가치 때문에 중국은 북한을 대놓고 버리거나 하진 않는다. 중국은 한국에서 친미 분위기를 걷어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중국에게 있어 북한은 미국의 영향을 막아주는 완충재 같은 역할이기도 하다.

6. 북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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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ɔ) Various from
(ɔ) Zscout370 from

일본의 보통국가화에 중국과 함께 힘을 실어준다. 자위대의 창설의 배경은 반공전선의 형성으로 국공내전으로 반공국가인 중화민국의 몰락과 미소관계의 악화가 주요했지만 북한의 남침으로 주일미군한반도에 투입되면서 치안 공백을 막기 위해 조직의 설비가 빨라진 경향이 있다. 북한은 소련, 중화인민공화국과 더불어 자위대의 산파 가운데 한 명이라 불릴만 하다. 북한은 미사일 실험을 할 때도 일본 열도 쪽으로 날리는 경향이 있는데 1990년대에 일본 인근에 떨어진 미사일은 일본 사회에 굉장히 큰 충격을 줬다. 그리고 2006년 10월 북한의 핵 실험 후 일본에선 방위 문제가 급물살을 탔고 이듬해인 2007년 1월 9일에 방위청은 방위성으로 격상됐다.

재일교포 북송 등 북한과 일본의 잇속이 맞아 떨어지는 때도 있지만 일본인 납치라든가 일제강점기, 북핵문제 등으로 현재 사이는 나쁘다. 재무장을 노리는 일본 우익들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을 이유로 일본의 안보 위협을 강하게 어필한다. 일본인 납치 등의 일로 일본인들의 대북 감정은 좋지 않고 조총련에 대한 지원 삭감 등에서 잘 나타난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견제하려는 한국 입장에선 북한의 행동이 환장할 노릇. 2010년대 이후로 한국의 경제력과 국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하는 걸 일본이 계속 견제하기 시작하고, 일본 정부의 우경화로 인해 한국과 중국이 가까워질 때마다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북한에게 접근하는 경향이 가끔 있다. 하지만 이래저래 갈등이 많아도 한국과 일본은 일단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세계 쪽 동맹관계라 대체로 일본 정부대한민국을 지지하며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요코다 메구미가 대표적인 북일관계의 상징. 일본에서 전공투가 날뛰다가 과격화된 1970년대에는 요도호 사건 같은 게 일어나기도 했다. 육영수 저격 사건 당시에는 범인인 문세광이 북한의 개입이 있긴 했지만 것보다 일본의 극좌단체와 연계됐던 탓에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닿기도 하였다. 일본 입장에선 북한 때문에 돌아버릴 일이었다. 사죄조로 외교관을 보내고 난리났었다.

일본의 사민당은 북한과 교류가 있지만 일본 공산당은 상당히 북한에 비판적이다. 물론 각국의 공산당들 뿐만 아니라 냉전 중반부터 김일성 왕국 체제를 수립해가는 북한은 공산주의 진영 국가들에게서도 막장 취급을 받았다.


2002년에는 일본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북한을 방문해 납치자를 데리고 일본으로 귀환했다. 사진을 보면 관방장관이었던 아베가 보인다. 2004년에 한 번 더 방북했다. 2013년에는 아베 신조 내각의 특명담당인 이지마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아베 신조가 이로 인해 방북할 것이란 얘기가 돌았으나 무산된 듯.

일본 언론에서는 소련이 무너진 뒤로는 북한을 주로 이슈 타깃으로 삼고 있다. 많은 카더라 통신이 일본발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편이다. 김정남도 일본인 기자랑 인터뷰를 자주 했고. 방위백서에서 소련이 주적에서 삭제된 뒤에 자위대중국북한을 가상 적국으로 보고 있다.

후지모토 겐지는 북일관계에 대해 뭔가 말할 것 같으면서도 별 말 안 하고 북한으로 다시 갔다... 허가가 안 나서 못 갔다고 한다.

2014년 5월 29일에 일본 정부는 북한과 납북 일본인 재조사를 합의했다. 그로 인해 대북경제제재도 해제될 예정. 반북감정이 강한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등을 위시한 일본 정부에서는 일본의 역할 강조를 위해 북일관계 개선을 노리고 있으며 북한도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탈출구로 일본을 찾고 있다. 한중관계가 호전을 보일 때마다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물론 이런 상황은 한-일을 사이좋게 만들어 중-북-러를 견제하려는 미국이 보기엔 정말 환장할 상황이지만..

7. 수교국 일람

7.1. 상호 대사 파견국

7.2. 북한 대사 파견국

7.3. 외국 대사 파견국

7.4. 북한 내 대사 미상주 수교국

외교 관계는 맺었지만, 북한 현지에 대사관이 없는 나라들의 목록이다. 이 경우 중국의 베이징한국서울에 있는 각국의 대사관에서 겸임한다. 다만 신임장 제정은 국제 외교 관례상 해당 대사관의 대사들이 평양의 만수대의사당까지 직접 가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하마의 경우 특이하게 쿠바의 아바나 주재 바하마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베이징 대사관이 업무 대행 중인 국가
서울 대사관이 업무 대행 중인 국가
아바나 대사관이 업무 대행 중인 국가

7.5. 그 외 관계국

7.6. 미(未)수교국 및 단교 국가

이외에 스위스의 주네브(제네바)와 미국의 뉴욕에 UN 회원국 자격으로 대사를 파견하고 있다. 나머지 미수교국 혹은 단교국들은 서울이나 베이징, 도쿄 등 인접국 지역의 대사관이나 영사관, 대표부 등을 통해 비공식 교류 관계를 갖고 있다.

여담이지만 일본, 미국과 수교 문제는 외교적 떡밥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8. 북한이 가입한 국제기구 목록

CIA에 따르면 북한은 2012년 8월 현재 총 25개의 국제기구에 가입해 있다. 다음 목록은 이를 알파벳 약어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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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래도 쿠바와 이란은 지금은 미국과의 관계가 좀 나아지는 편이다.
  • [2] 그것도 중동이나 아프리카 몇몇 일부국가들 같은 후진국들이 대부분이다. 선진국으론 영국, 독일, 스웨덴 등이 있지만(아래의 수교국 목록 부분 참조) 실질적인 외교적 행동은 없는 편이다.
  • [3] 실제로도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한 실정이기도 하다. 더우기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지금의 상황에서 북한이 그나마 유일하게 외교정상화를 물색해 볼 수 있는 국가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일본과는 납치사건과 핵문제 때문에 정상화가 어렵고 한국과의 관계도 핵문제와 인권문제로 마찰, 유럽연합과는 역시 인권과 핵문제로 인해 원만한 관계를 만들기가 어렵다. 다만 미국도 북핵과 인권역시 무시하지 못하는 문제다.
  • [4] 이렇게 되면 일종의 진영논리가 펼쳐져 일본, 미국이 개입해 한국의 편을 들게 되니 중국은 한국을 의식하면서도 결국 북한 편을 들 수밖에 없다. 천안함 피격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에서도 보여진다.
  • [5] 1990년대 초반에도 북한에서 먼저 관계재개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아르헨티나 쪽에 보냈었다. 1, 2 3 그러나 이 때는 하필이면 카를로스 메넴 정권에서 친미외교를 실행하던 중이어서 성사되지 않았고, 2000년대 초반에 브라질이나 칠레 등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재개했으나, 당시 아르헨티나는 IMF다 뭐다 해서 정치, 경제적인 내부 문제로 북한과의 외교에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
  • [6] 아르헨티나가 요구한 관계 재개 조건만 만족시키면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 반서방, 친중, 친러 국가가 된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북한과 수교 못할 이유는 없다. 아르헨티나와 이란의 경우 1990년대에 벌어진 유대인 대상 폭탄 테러 사건으로 관계가 썩 좋지 못했으나 사건 재조사에 합의함으로써 관계가 개선되었고 무역량도 늘어났으며, 공식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원만하게 지내고 있다. 심지어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경우도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난지 10년도 채 안 된 1990년에 공식 외교 관계도 재개된 점을 보면(물론 이 당시에는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이 친미 외교 노선을 갔기 때문인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북한과의 관계도 재개하지 못할 건 없으며, 오히려 재개하지 않은 게 미스테리일 정도다. 거의 지구 반대편인 북한이 아무리 깽판을 쳐도 중남미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무역, 교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화통일 항목에는 적화통일이 되면 주한 아르헨티나 대사관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이스라엘 대사관과는 달리 아르헨티나나 북한이나 미수교 상태이긴 해도 서로 적대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별 일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적화통일이 성공해서 북한이 남한을 멸망시키면 남한과 아르헨티나 간의 외교 관계를 북한이 승계할 수도 있고, 이 경우 아르헨티나도 현실이 현실이므로 북한과 관계 재개를 먼저 한 다음에 관계 재개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조건들을 요구할 수도 있다. 다만 북한의 국채 항목에도 나와 있는 신용 문제 때문에 관계를 재개해도 아르헨티나에게 얼마나 이득이 될지는 미지수다. 아니 관계가 재개되지 못한 데는 신용 문제가 한몫한다.
  • [7] 물론 이 부분은 북한이 승인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해당 항목 참고.
  • [8] 당초 통상대표부였다가 미테랑 집권 시절에 일반대표부로 승격되었다.
  • [9] 제3세계 국가들이 모여 만든 국제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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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30 16: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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