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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랑기포

last modified: 2015-04-05 01:45:45 by Contributors

佛郞機砲.

Contents

1. 개요
2. 기원
2.1. 중국
2.2. 한국
2.3. 일본
2.4. 기타지역
3. 사용법
4. 성능
5. 대중문화에서의 불랑기포


1. 개요

불량과는 다르다! 불량과는!!

5호 불랑기 모포. 아래로 향한 뽀족한 부분은 '족철'이라고 하며, 이 부분을 포대 등에 박아 고정시켜 놓고 쏜다.


현재의 중기관총 컨셉의 불랑기포.


불랑기포에 대해 자세히 볼 수 있는 사진. 맨 위는 족철이 장착된 것, 두 번째는 족철을 분리해 족철을 거는 포이가 보이는 것, 세 번째는 탄약을 장전한 뒤 모포에 끼우는 자포다. 근데 자포사진의 경우 위아래가 뒤집혀져 있다. 튀어나온 게 손잡이.

근세시기 동양에서 사용된 후장식 대포. 기존의 대포와는 달리 후장식이라 빠르게 장전해서 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와 이를 끼워 발사하는 본체인 모포가 분리되어 가능한 일. 불랑기포라는 이름은 불랑기포를 가져온 유럽인들을 중국과 한국에서는 모두 프랑크의 음차[1]인 불랑기라 부르던 데서 유래하였다.

2. 기원

본래 불랑기포는 서양, 특히 지중해 지역에서 쓰던 후장식 포(베르소, Verso)에서 비롯되었다. 좀 더 거슬러가면 14세기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서 회전 고리(swivel)를 내장시켜 개발한 포가 원형이다. 여기에 비슷한 시기의 부르고뉴 지방에서 개발된 후장식 대포의 장점이 합쳐져 비로소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다. 터키에서 개발된 물건이 서양을 거쳐서 200년 뒤의 중국으로 전해진 것이니 지구를 거의 한 바퀴 돌아서 전해진 셈이다.


17세기 스페인의 베르소.@


소형 불랑기인 선회포(swivel gun)를 쓰는 모습. 해상전에서 매우 높은 병력 살상력을 보여주었다.#
아, 물론 요거는 좀 나중에 만들어진 거고...

(ɔ) PHGCOM from

(ɔ) Peter Isotalo from

이것들은 초중기형. 많이 빈곤하게 생겼다. 출처는 영문 위키백과
이렇게 빈곤하게 생긴 이유는 유튜브에 있는 제작 영상을 보면, 포신도 철판을 구부린 뒤 철테를 끼워 고정시키기 때문이다. 안습. 참고로 유튜브나 구글에는 breech-loading cannon 이나 swivel gun이라 검색해야 이런 후장식 포들이 제대로 나온다. 이런 초기 형태의 서양 대포들은 후장식전장식 모두 철판 여러 장을 겹쳐 묶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내구력이 낮은데다 발사 후 화약 찌꺼기가 잘 끼어 청소도 어렵고,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으로 인한 부식이 심해 결과적으로 발포시 폭발사고가 잦았다. 때문에 정량보다 더 적은 화약을 넣고 발사하기 일쑤라 실전에서 보여주는 사거리는 매우 짧았다.

2.1. 중국

이런 함재포들은 빠르게 연사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서양 각국의 군함들에서 보조용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517년 포르투갈 배 네 척이 광동성 신회현 서초 만에서 깽판을 부리다가 명나라 관군에게 신나게 두들겨맞고 소지품을 삥뜯기면서(...) 이때 배에 장착해 놓았던 후장포도 같이 유입되었고, 절륜한 연사력과 기존의 명나라 포들보다 더 긴 사정거리, 포이를 사용한 쉬운 각도조절능력을 본 중국은 이를 도입하는데 몰두하여 1522년 최초로 복제생산에 성공, 나중에는 다양한 크기의 불랑기포를 대량으로 생산하였고, 심지어 말 위에서 쏠 수 있는 마상용도 있었을 정도로 주력화기로 사용한다.


불랑기 도입 이후 만들어진 중국의 병서 무비지에 실린 중국의 후장식 화승총인 자모총. 구조가 불랑기포와 동일하다.

2.2. 한국

© Grampus (cc-by-sa-3.0) from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불랑기포 유물. 출처는 위키백과

한국에 도입된 것은 사실 최무선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2]현재로서 확인되는 것은 명종 18년(1563년)으로, 정식 유적 발굴조사로 발견된 것은 2009년 서울에서 발굴된 군기시 유적에서 나온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1982년 발견된 것이 최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불랑기포가 많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에서 명 남방군이 주력 화기로 불랑기포를 쓰는 것을 보면서부터로, 이 때 강한 인상을 받은 조선은 불랑기포를 대대적으로 만들어 배치하였다.


조선시대 한국의 불랑기포의 스케치. 가장 작은 5호 불랑기이다.출처 아쉽게도 이 유물은 현재 국내에 모조품은 많아도 원본은 없다. 원본은 신미양요 때 미군이 들고가 버려서...고 이강칠 선생의 도록 <한국의 화포>(현재는 절판)에 따르면 현재 미 해사박물관에 보관중이란다.

위 유물을 근간으로 만들어 수원화성에 전시중인 모형 불랑기포.#


전쟁기념관에 전시중인 불랑기 복원품.# 포차에 올려진 모형은 조선 후기에 신헌이 개발한# 마반차라는 360도 회전 가능한 포차에 올려놓은 모습이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불랑기를 크기에 따라 1,2,3,4,5호로 구분하였으며, 1호가 가장 크고 그 다음으로 2호, 3호의 순서대로 작아진다. 다만 중국의 병서 <기효신서>에 적힌 수치보다 현존하는 한국의 불랑기가 약간 더 큰편. 또한 한국에서는 불랑기포로 조란환을 쏘기도 했다.

2.3. 일본


일본에 전래된 최초의 대포라고도 불린다.
이시비야(石火矢)라고도 부른다.[3]

포르투갈인이 오토모 소린에게 1576년 기증한 유물이 남아있다.
© Uploadalt (cc-by-sa-3.0) from

문제의 유물.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되어 있으며
원래는 오토모 소린의 거성이었던 臼杵城에 설치되어있다가 메이지시대 폐번치현과 함께 이전되었다.

일본에서는 오토모 소린이 시마즈군세를 막아낸 우스키성 전투 계기로 '구니쿠즈시(国崩し, 나라를 무너뜨리는 포)'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렀다. 방어측에서 쓴 이후 이런 별명이 붙은 걸 보면 화력보다는 소리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걸로 추정된다. 선교사 프로이스의 기록 등을 보자면, 오토모 소린은 자체 제조 기술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외의 지역에서는 정작 평가는 좋지 못했다. 오토모 소린나 모리(또는 모리의 지휘를 받는 무라카미 수군), 마츠우라 가문같은 일본의 극서지방 영주들이 종종 사용하긴[4] 했지만 포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일본에서는 많이 쓰이지도 않았고, 평가 역시 '얘게게? 겨우 큼지막한 구슬 던져서 성문이나 좀 부수는 거?'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실 당시 일본에도 같은 역할로 쓸 투석기오오즈츠(大筒)는 있었고 생산/구입가격이나 안정성도 이쪽이 훨씬 유리했다. 성문이 하나 파괴당했다고 일본의 성이 바로 함락되는 것도 아니었던지라[5] 심지어 '조총 10개가 불랑기 하나보다 낫네요. 이걸 어따씀?'하는 악평까지 있었을 정도.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불랑기포 유물도 거의 없다. 불랑기포가 그나마 활약한 우스키성 전투에서 깨진 시마즈군도 그 이후에는 불랑기포에 전혀 관심을 안가졌으니 대충 대우를 알만하다(...)

...하지만 임진왜란조선수군에게 처절하게 깨진다. 당시 일본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어지간해서는 다른 동양 국가, 특히 한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일본에서도 이 부분에서는 중국과 한국, 특히 한국의 선진 포술에 우리가 큰 피해를 봤다는 말을 대놓고 할 정도. 역시 악당들에게는 몽딩이가 약

다만 임진왜란 이후 실전에서 불랑기포의 대우가 더 좋아졌다는 근거는 없다. 일단 임진왜란 이후는 세키가하라 전투 이외에는 전투가 거의 없었으며 그나마 적극적으로 활용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왜란에 참여하지 않았다.[6]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사카성 전투를 위해 불랑기포 12문을 서양으로부터 구매한 기록이 있다. 그외에도 컬버린포 4문, 세이커포 1문을 구매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전투를 묘사한 기록을 보면 전투전 대포 생산을 주문의뢰하고 전투시에는 대포 300문을 일제히 천수로 발사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대포는 우리가 아는 그런 대포가 아니라 대부분 오오즈츠(大筒)[7]를 말하며 이건 한국식 기준으로 보면 대포라기보다는 대구경 조총에 가깝고 다른 나라에서도 핸드 캐논의 일종으로 분류한다[8]. 물론 위에서 언급한 불랑기포, 컬버린포, 세이커포도 같이 발사되기는 했다. 또한 대포의 일제발사를 통해 성이 함락된 것도 아니고 당시 수비군 총대장이었던 요도도노가 포소리에 놀라 강화협상을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공갈포로 잘 쓰였다(...)

어쨌든 이후 불랑기포는 일본에서 거의 쓰이지 않게되고 오토모 소린이 보유하고 있던 자체 제작 기술도 실전된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까지 중국/조선/서양같은 대포보다 오오즈츠(大筒)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좀더 크고 강하게 변용되는 방식으로 주력무기로 쓰였고 불랑기포는 지극히 적은 흔적만을 남기게 된다.

예를 들어 에도시대 말기 이치노미야(오늘날의 치바현)에서 제작된 대포를 보면 오오즈츠의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2.4. 기타지역

이 외에 동남아 지역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뭐 유럽인들이 동남아시아를 거쳐서 한국, 중국, 일본까지 도달한 것이니 당연한 결과다.


간지나는 용두가 새겨진 물건. 출처

3. 사용법

불랑기포의 발사/재장전 동영상링크. 엄밀히 말하자면 모형이지만 구조/발사방법은 동일하다.

사용법은 다음과 같다.

1. 대포를 깨끗하게 청소한다.
2. 미리 준비된 자포 여러 개에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다.
3. 모포의 뒷부분의 공간에 자포를 끼운다.
4. 동봉된 빗장쇠[9]를 걸어 자포가 빠지지 않도록 한다.
5. 방포하라!!!
6. 빗장쇠를 벗겨내 사용한 자포를 빼낸다.
7. 싸움이 끝나거나 2에서 장전해둔 자포가 바닥날때까지 3~6을 반복한다.


4. 성능

사정거리는 자세하지는 않지만 보통 500미터 남짓~ 1킬로미터 정도(대형 한정)라고 한다.
불랑기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 자포가 분리되어 있어 빠른 연사가 가능. 기본적으로 후장식 장전이라 가능한 것이며, 하나의 모포에 다수의 자포를 배치할 수 있어서 미리 자포에 장전을 해놓았다가 발사하자마자 자포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발사속도를 높일 수 있다.

  • 가늠자가 붙어 있어 조준사격이 쉽다. 현대의 화기처럼 정밀한 물건은 아니지만 없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좋았고, 후장식이라 대포가 장전을 위해 이동하지 않으므로 조준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 포이가 있어, 포좌에 설치 후 각도 조절이 쉽다. 구형 대포라도 항상 수평사격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다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단점 또한 존재하였다.
  • 자포와 모포가 제대로 맞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접합부가 약하다 보니 쉽게 폭발한다. 실제로 이런 사고에 대한 기록이 종종 발견된다. 이는 전장식 대포에 비해 명백한 단점으로 화약이 조금 더 들어갔다는 사소한 이유로 발사 순간 포가 폭발하면서 황천보기 딱 좋기 때문에 정량보다 화약을 적게 넣게 되므로 안그래도 위력이 낮은 대포가 더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 자포 고정장치가 달랑 빗장쇠 하나다 보니 접합부로 가스가 새어 결과적으로 동급의 전장포보다 위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가스가 새면 주변의 포수와 장전수들을 잘 구워줄 뿐 아니라 화약같은 곳에 인화하면 대참사가 벌어진다. 그래서 가스 새는 것을 막으려고 별별 방법이 동원되었으며, 구판 역사스페셜 실험에서는 아예 모포와 자포의 틈에 납조각들을 하나하나 박는 흠좀무한 고증을 보여 주었었다. 나중에 자포 어떻게 빼려고?
©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World Imaging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cc-by-sa-3.0) from

불랑기포의 고정장치를 위에서 본 모습. 이런 걸로 대포 발사가 가능하다는 게 어찌 보면 신기하다.

  • 대포 자체가 노후화되기 쉽고, 일단 노후화하면 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 전장식 대포야 포미 자체가 통짜로 연결된 쇳덩어리니 충격도 상대적으로 잘 견디고, 노후화하더라도 심지를 넣는 구멍이 갈라지는 등 증상을 판별할 수 있으나, 불랑기포는 자포와 모포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둘중 하나만 노후화되도 터지기 딱 좋고, 외부에서 판별하기 힘든 내부 손상이 조금만 진행되도 겉으로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발사하면 터지기 딱 좋다.

때문에 불랑기포의 성능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고, 때문에 불랑기포를 애용한 중국에서도 기존 화포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기존의 화포의 성능도 괜찮았던 조선에서는[10] 기존의 천지현황 브라더스(...)를 여전히 주력 화포로 운용하였기에 불랑기포는 콩라인격 위치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고...그나마도 명청 교체기에 가면 성능이 불랑기포보다 압도적인 서양식 캘버린포, 즉 홍이포가 도입되어 버리니... 심지어 중국에서는 홍이포가 도입된 이후 유럽계 화포나 모방해서 만들어 비슷하게 생긴 화포 전반을 홍이포로 싸잡아 부르면서 이름까지 묻혔다.하늘이시여! 어찌 저 불랑기포를 만드시고 홍이포를 만드셨단 말입니까!!! -불랑기포인데 불랑기포라 불리지 않고 홍이포라 불려야 하는 현실...

그래도 연사력이 좋다는 장점 덕에 근대 초기까지도 많이 사용되었다. 다만 이 경우 현대의 중기관총같은 성격이 강한 소형 기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5. 대중문화에서의 불랑기포

역사에서는 그래도 많이 쓰이긴 쓰였는데...어떻게 된 건지 대중의 인식은 안습이다. 심지어 불량기포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수두룩하고...분명히 말하지만 불랑기포다 불랑기포!!! 성능을 반영한 센스일지도

임진록2, 조선의 반격에서 명의 기본 화포로 등장. 그리고 불량기포로 나온다. 역사에서의 설움을 극복하려는 듯 조선의 천자총통보다 공격력이 더 높다. 하지만 360도 회전포대를 갖춘 천자포와는 달리 고정식이라 적이 움직이면 포차 전체를 돌리느라 선회력이 많이 떨어진다.[11] 더욱이 패치를 거치면서 천자포의 체력이 불랑기포와 비슷한 수준이던 게 불랑기포보다 많아져서 더 안습. 거기다 명나라 유저들은 발석거를 주력으로 쓰지 불랑기포는 주력으로 잘 안쓴다.
조선의 반격에서는 신 유닛인 뇌격비조가 등에 이 불랑기포를 매달고 다니며 적을 폭격한다. 근데 뇌격비조 잘 안쓰이잖아...
같은 게임의 명나라 사선은 메뉴얼에 보면 무장이 대형 불랑기포다. 정작 발사체는 발석거의 그것이지만...

천하제일상 거상에서는 명나라의 영웅 이령이 불랑기포로 전직한다. 근데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물건이다. 생긴 걸로만 보면 오히려 서양의 오르간 건에 가깝다.

토탈 워: 쇼군2에 등장하는 메구라부네가 실제 역사적으로는 이 불랑기포를 장착했는데...그놈의 대나무 지붕때문에 게임에서는 불랑기가 맞는지 아닌지 드러나지 않는다. 더욱이 쇼군2: 토탈 워의 육상전에서 등장하는 유럽식 대포는 불랑기보다 성능이 더 떨어지는 조립식 포(Built-up Gun)다. 둘 다 브리치-로딩 캐넌(breech-loading cannon)이긴 한데, 구분하자면 조립식 포의 경우 포신 중간중간도 불랑기포의 모포-자포 결합부 비슷하게 쇠 원기둥을 끼워맞춰 조립한 뒤 쏘는 물건이다. 때문에 더 많은 양의 가스가 새어나가고, 따라서 성능도 더 떨어젔다. 더군다나 불랑기포는 자포와 모포의 결합/분리가 쉬워 빠른 연사라도 가능했지만, 조립식 포는 각 연결부위를 고정시키는 잠금장치가 복잡하여 장전속도도 느렸다. 실제로 하나의 통짜 포신으로 된 전장포 제작기술이 발달하자 이런 조립포나 초보적인 후장식 포들은 빠르게 사라졌으며, 근대 초기까지 후장포는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해 전장포에 밀려난 상태였다. 근데 쇼군2에서 조립식 포의 성능은 끝내주게 좋게 나온다. 미디블2 토탈 워에서 최고 수준의 포인 바실리스크나 대형 사석포가 450정도인데, 쇼군2의 유럽식 대포는 사거리가 500. 정말정말 불랑기는 안습.

아래 그림이 문제의 조립식 포.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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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바로 아래에서 설명했듯이 불랑기포는 이슬람 세계를 거쳐 중국에 전파되었는데, 당시 이슬람에서는 유럽인은 국적, 인종 불문하고 무조건 프랑크인이라고 불렀다. 참고로 프랑크라고 하면 랑크 소시지도 있지만프랑크 왕국을 떠올릴 텐데, 그때의 프랑크 맞다.
  • [2] 국립과천과학관의 명예의 전당에서 최무선 관련 전시품으로 불랑기를 전시해놓고 있다. 물론 고증오류.
  • [3] 다만, 이시비야=불랑기포는 아니다. 에도시대 들어서면서 대구경(8센치) 대포는 종류 불문하고 이시비야라고 부르기 때문. 에도시대에도 대구경 대포를 몇 개 만들어 이시비야라 부른 기록은 있기는 한데 이건 불랑기포라 부르기 힘든 물건이다
  • [4] 그외에도 프로이스 기록에 따르면, 오다 노부나가철갑선을 만들때 거기에 포 3문을 설치했다는 기록은 있다. 서양인의 기록이니 여기서의 포는 불랑기포나 혹은 유사한 서양식 대포로 추정된다
  • [5] 성벽 한번 무너지면 백병전이 되어버려 성벽의 강화와 방어에 모든 역량을 쏟은 다른 동아시아의 성과 달리 일본성은 복수의 성벽구조로 구성되어 있어 성벽이 무너져도 후방의 성벽으로 후퇴하는 식으로 병력을 운용했다. 실제로 정유재란중 조명연합군은 다수의 포를 가지고도 왜성을 점령하지 못했고 특히 한국의 산은 봉우리가 여러개 있는 구릉지대가 많았기 때문에 당시 기록을 보면 '왜적이 성을 버리고 다른 성으로 달아났다가 다시 나와서 반격한다'는 식의 기록이 많다
  • [6] 물론 도쿠가와도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은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악명(?)을 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 [7] 일본식으로는 대포로 분류된다
  • [8] 물론 남아있는 유물을 보자면 수레에 실어서 중국/조선식 대포처럼 운용할 수도 있기는 하다. 그게 옵션이었다는게 문제지
  • [9] 철잡이라고 한다.
  • [10] 조선왕조실록에서 중국 화포와 조선 화포의 비교실험이 몇 차례 나오는데, 할 때마다 조선 화포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조선 화약이 성능이 딸려 우리 화포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정신승리 발언을 하는 중국 화포수들이 개그포인트. 병자호란 때는 아예 천자총통으로 청군의 홍이포 부대를 저격해 박살내기도 했다.
  • [11] 즉 게임 상에서 불랑기포의 모습과 천자총통의 모습은 서로 뒤바뀐 상태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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