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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last modified: 2015-04-14 16:36:55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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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緋緞
2. 非但
3. 그 외의 뜻

1. 緋緞

누에가 짜낸 실을 가지고 만든 천. 영어로는 실크(Silk). 한자로는 견(絹), 또는 금(錦). 가공 전 상태일 때는 명주라고도 한다.

고대 세계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천을 찾을 수가 없었고 현재도 최고의 천이다. 가볍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흡습성도 좋고, 게다가 상당히 질긴 편이며, 방한 성능도 뛰어나다. 세탁이 어려운 점만 빼면[1] 최고의 섬유. 덕분에 에 필적하는 고급 물자로 신분이 높은 사람만이 비단 옷을 입을 수 있었다.[2] 야생 누에인 산누에나방이 짜낸 실로 만든 비단은 천잠사라고 해서 일반 비단보다 훨씬 귀한 취급을 받았다. 삼국지나 역사책을 보면 , 보석, 등과 마찬가지로 상대 국가에 대한 귀중한 진상품으로도 많이 사용했다.[3]

단순히 사치품 용도로만 쓰인 것이 아니다. 중국몽고인들은 일종의 방호구 역할을 하기 위한 일종의 전투복으로 입었고[4][5], 낙하산으로도 쓰였다.[6] 여담이지만 나일론이 개발되고나서 누에를 군수용품으로 팔던 곳에서는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낙하산은 미적인 면보다 기능적인 면에서 비단을 쓴 것인데, 더 싸면서 기능도 좋은 나일론이 나오면서 비단을 낙하산에 쓰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

만드는 절차가 꽤 복잡하다. 우선 누에나방이 필요하고, 누에나방의 애벌레에게 잎을 먹여서 기른다. 고치가 되면 삶아서 실을 빼내고(번데기는 식용으로 삼는다), 그 실로 천을 만든다.

비단은 중국의 특산물로 이것을 해외에 팔면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었다. 서양으로 가는 교역로에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그 점을 잘 말해 준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비단이 다른 나라로 퍼지는 것을 엄격히 막으려 했지만, 몰래 몰래 빠져나가서 결국 여러 나라에서 재배되게 되었다.[7] 웬만한 나라마다 누가 누에나방의 알과 뽕나무 씨앗을 숨겨왔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급 옷감이라…

우리나라에서도 근대 이전까지 당연히 고급 옷감 및 중요 문서 기록용으로 써왔으며, 국가에서 양잠 산업을 중점 육성했다. 조선시대에는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는 친잠(親蠶) 의식을 통해 백성들에게 양잠을 장려하기도 했다[8]. 서울 마포구 절두산[9]은 형세가 누리 머리를 닮았다 하여 옛 지명이 잠두봉(蠶頭峰: 누에 머리 산봉우리)이었으며, 산 아래에 뽕나무 밭을 조성하여 누에가 뽕잎을 먹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또한 뽕나무 밭에서 실제로 양잠을 했는데, 지금도 그 자리다. 절두산 아래인 잠원동(蠶院洞)이란 지명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지명에 있는 누에 잠(蠶)자를 볼 것.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양잠을 하던 잠실(蠶室)이 2군데 있었는데 서울 잠실동과 잠원동 근처였다.[10].#. 마찬가지로 잠원역 승강장에는 벽에 타일 모자이크로 누에가 그려져 있다.

한편, 종묘 근처에 있는 성북동에 선잠단(先蠶壇)을 세워 음력 3월 사일(巳日) 중 길한 날을 골라, 서릉(西陵) 씨[11]에게 제사를 지냈다. 당시에는 선농단 제사와 마찬가지로 선잠단 제사도 중사(中社)로 등급매겨 순위가 꽤 높았으니, 조선이 그만큼 양잠산업을 중요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1908년(순종 2년)에 서릉씨 신위를 선농씨 신위와 합치면서 선잠단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됐으며, 한일합방 이후에는 당연히 제사 자체가 사라졌다. 지금은 문화유산 체험 차원에서 선잠단 자리에서 왕실 제례에 맞춰 제사를 매년 거행한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방 하나에 누에를 키우고 아이들이 뽕잎을 해와서 먹여다가 고치를 공장에 팔았고 그러다보니 부산물로 번데기도 생산되었으나 농약의 사용과 중국산 비단의 저가공세[12]로 국산 비단은 사실상 숨통이 끊겼고, 과거 비단실을 잣던 누에들은 이제는 동충하초 등 건강식품 용도로 전용되고 있다. 현대에는 각종 섬유 기술이 매우 발달해서 비단을 재료로 한 옷의 양 자체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비단 자체의 희소성 때문에 고급 옷감으로 사용되고 있다.

헤르만 괴링은 자기 제복을 비단으로 만들어 입은 것으로 유명한데, 근현대 남성 복제는 고급이라도 을 사용하고, 비단은 넥타이, 안감 등에만 쓰는 게 보통이었던지라 여러 의미로 말이 많았다.

2. 非但

‘아니다’ 따위의 부정하는 말 앞에 쓰여, ‘다만’, ‘오직’의 뜻을 나타내는 말.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 위의 것과 혼동되기 쉬운 단어이다.

3. 그 외의 뜻

飛湍 : 흐르는 물살이 센 여울
鼻端 : 코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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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중앙아시아에서는 비단용 세제로 석유를 썼다.
  • [2] 사기에 기록된 바로는 당시 비단 가격이 한필에 대략 6백전, 고급은 8백전까지 갔는데 쌀은 120kg에 1백전쯤 했다고 한다.
  • [3] 삼국 중 비단업이 융숭한 국가는 촉한이었는데 제갈량의 재산에 뽕나무가 다량 포함되었다던가 조조가 죽자 유비가 촉의 비단을 조문용으로 보냈는데 조조의 아들 조비가 사신은 죽이고 비단만을 취했다는 일화등이 내려오고 있다(...)
  • [4] 장수들은 갑옷 아래에 비단옷을 받쳐 입었다. 관운장의 상징인 풀빛 비단옷이 대표적. 하급병은 풀솜이라 해서 비단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같은 것을 이용했다. 질긴 재질 특성상, 화살이 박히더라도 옷이 찢어지지 않아서 그냥 잡아당기면 화살째로 뺄 수 있었다.
  • [5] 방탄복의 소재로도 사용되었으며 적어도 제1차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괜찮은 방탄효과를 보여주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도태되었다.
  • [6] 일부 참전 용사들이 사용 후 회수한 낙하산을 집에 보내 결혼할 여성에게 웨딩 드레스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 [7] 문익점목화 밀반입 이야기는 후세의 창작인데, 이 일화를 오마쥬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 [8] 친잠은 중국이나 일본 등 동양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 [9] 천주교 성지가 있는 그 절두산을 가리킨다.
  • [10] 잠원 역시 원래는 잠실이라 불렸으나,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송파구 잠실동과 구분하려고 이름을 바꾸어 잠원이라 하였다.
  • [11] 중국 전설에 따르면 서릉 씨는 황제 헌원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서릉씨가 뽕밭 아래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는데 야생 누에고치가 찻물 속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서릉 씨가 고치를 꺼내려고 하는데 실이 줄줄 풀려나오는 것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 누에 고치에서 처음으로 비단실을 자아 헌원씨에게 옷을 지어 입혔다고 한다. 이 전설 때문에 서릉씨를 처음으로 양잠을 시작한 자, 양잠의 시조로 기렸다.
  • [12] 아닌게 아니라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비단을 생산하는 국가는 여전히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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