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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해 해전

last modified: 2015-04-05 16:09:15 by Contributors


비스마르크해 작전 요도.

Contents

1. 개요
1.1. 원인
1.2. 전개
1.3. 절정
1.4. 결말

1. 개요

1943년 3월 1일부터 3월 5일까지 비스마르크해에서 벌어진 해전. 소탕전은 3월 14일까지 이루어진다. 이 해전은 일본군이 뉴기니 방어를 병력과 물자부족으로 실패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1.1. 원인

부나-고나 격전이 마무리 되어감에 따라 맥아더 장군은 부나-고나 지역보다 북쪽 내륙에 있던 아직 점령되지 않은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교두보로 쓸 와우 지역에 대해 대대적인 증원을 명령했다. 일본군은 당연히 이걸 막으려고 했지만 폭격기와 수송기를 동원한 연합군의 증원으로 인해 일본군의 공략이 실패했다.

하지만 일본군은 뉴기니 전체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대규모 해상수송을 통해 라바울로부터 병력을 증원 받아 재공략하기로 결정하고 기무라 마사토미제독에게 8척의 구축함과 8척의 수송선을 통해 오천여명의 병력을 증원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앞서의 교전에서 교훈을 얻어서 각 수송선은 필요한 물자의 종류와 인원을 조금씩 나누어서 균등하게 적재하여 만일 수송선이 거의 다 격침당해도 1척만 도달하면 부족하나마 제대로 된 증원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구축함과 수송선의 승무원들도 되도록 이런 종류의 작전에 경험이 많은 자들을 선별했고, 보트와 주정을 많이 적재해서 변변한 항구시설이 없는 곳에서도 빠른 양륙이 가능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선단을 호위하는 항공기도 100기를 뽑아낼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

1.2. 전개

이때 미육군 제5항공대에서 일반 폭탄을 사용해 해상전투를 수행하는 방법을 한참 연구중이였는데, 폭탄을 물에 튕겨 함선을 격침하는 방법을 연구중이였다. 원래 중폭격기들은 높은 고도에서 폭탄을 투하했지만 함선들이 민첩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대부분 명중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고, 이 때문에 저공폭격으로 전환하려고 했지만 이 방법의 경우 일본군 전투기에게 격추당하기 딱 좋기 때문에 절충안으로 반도폭격이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일명 물수제비 폭격라는 반도폭격은 수송선이나 구축함 같은 비장갑이거나 경장갑 함선에 대해서는 절충안 답지 않게 압도적인 위력을 보였다. 일단 선체 측면에 폭탄이 명중하기 때문에 현측장갑이 없거나 빈약한 함선은 마치 어뢰에 맞은 것처럼 현측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게 되며, 이는 곧 침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스마르크해 해전이 벌어질 당시에는 근방의 연합군 항공기들은 수송작전을 막기 위해 통상적인 출격도 될수록 자제하였으며, 앞서 말한 반도폭격도 열심히 연습해서 전문가의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 결정적으로 동원 가능한 모든 항공기를 이 근방에 집결시켰기 때문에 항공기의 총수는 338대 이상이었다.

1.3. 절정

3월 1일에는 수색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3월 2일 일본군 선단이 발견되자, 3일에 걸쳐 보파이트 쌍발폭격기, B-17, B-25로 구성된 200여대의 폭격기P-38, P-40 워호크로 구성된 100여대의 전투기에 의한 대대적인 공습이 있었다.

게다가 공습 후에는 3월 14일까지 어뢰정과 전투기에 의한 소탕전까지 이어졌다. 그 이유는 해전 도중 격추된 B-17 폭격기의 승무원들이 낙하산으로 탈출하자 일본군 전투기들이 기관총을 난사해서 죽여버린 것이다. 원래부터 험악한 태평양 전쟁과 유럽전선에서도 항공기에서 낙하산 탈출하는 경우에는 암묵적으로 사격하지 않는다는 법칙이 있는데, 이걸 일본군이 깨버린 것이다. 덕분에 분노에 찬 미군도 보복공격을 수행하게 되었고, 이 해전에서 격추된 일본군 항공기의 승무원도 기관총으로 벌집이 되었으며, 침몰한 수송선과 구축함의 탈출보트 및 표류자들도 당연히 집중사격의 표적이 돼서 비참하게 죽었다. 심지어 이들을 말려야 하는 입장에 있는 미군 지휘관들도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고, 전투경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부하들의 행동을 치하한다는 발언을 전달하라고 말하면서 이 발언을 전해들은 연합군 조종사들은 더더욱 잔존 일본군 소탕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 소탕전은 넓은 해역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멀리 표류한 사람들도 처참하게 죽게 된다. 결론적으로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

1.4. 결말

이로 인해 수송선 8척 모두가, 구축함 중 4척이 격침되고, 선단 상공을 호위중이던 제로센, 하야부사가 30여대 격추되었다. 살아남은 나머지 구축함도 상당한 피해를 입고 3,700여명의 육군이 땅을 밟지못하고 물고기 밥이 되었으며(...) 그나마 이 수치도 필사적인 구조작업 끝에 손실을 줄인 것이다. 게다가 살아남은 표류자들도 육지에 상륙한 자들은 식인풍습이 남아있던(!) 현지 원주민의 공격을 받아서 끔살당했다. 3월 내내 인간사냥이 이루어졌다고.

이외에도 호송대 자체의 피해도 막대했으며, 지휘관이였던 기무라 마사토미 제독 또한 중상을 입었다. 이 공습으로 연합군은 폭격기 2대, 전투기 3대를 잃었을 뿐이였다. 이로 인해 일본군의 뉴기니 방어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기무라 마사토미 제독은 선단호위임무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찍히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물론 해당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기무라 마사토미는 무능력은 커녕 지극히 정상적이자 능력있는 지휘관이었고 이런 사람조차 대응하지 못 하고 중상을 입을 정도의 사지로 병사들을 내몰은 군수뇌부 당사자들이야 말로 비정상적이자 무능력의 절정에 다다른 인간들.

일본에서는 댐피어 해협(Dampier Strait)의 비극으로 불린다.참으로 지랄한다 70년대 나온 태평양 전쟁 관련된 부분을 다루거나 한 일본어 서적이 해적판으로 나왔을때 이러한 해적판들에서 단피루(변이음 반영에 따라서는 담피루) 해전이나 단피루 비극이라는 용어가 대부분 이 사건, 만화 지팡구에서도 언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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