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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 보이즈


초창기 풋풋했던 멤버들. 왼쪽부터 칼 윌슨, 데니스 윌슨, 브라이언 윌슨, 마이크 러브, 알 자딘.


중기 브라이언 윌슨이 빠진 상태의 밴드. 왼쪽부터 칼 윌슨, 브루스 존스턴, 마이크 러브, 알 자딘, 데니스 윌슨.


Contents

1. 개요
2. 멤버
2.1. 브라이언 윌슨
2.2. 데니스 윌슨
2.3. 칼 윌슨
2.4. 마이크 러브
2.5. 알 자딘
3. 음악적 행보
3.1. 초창기
3.2. 명반 퍼레이드
3.3. 침체기
3.4. 팝 음악사에 남긴 의의
4. 디스코그래피
5. 트리비아


1. 개요


The Beach Boys


윌슨가 형제들과 사촌, 그리고 학교 친구로 이루어진 미국록밴드.
그리고 비틀즈와 대적했던 미국의 자존심같은 밴드.[1]

2. 멤버

2.1. 브라이언 윌슨



펫 사운즈 레코딩 당시의 모습. 종종 다른 가수들이 따라 입기도 하는 패션이다.


왕년의 라이벌 폴 매카트니와 함께 선 노년의 모습.[2]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라이브 투어를 다니고 있다.

윌슨가 장남. 베이스 담당으로 시작해 현재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악기를 다룬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워 음악에 가까웠지만, 동시에 아버지에게 학대당하여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되기도 하였다. 마이크 러브와 함께 비치 보이스의 수많은 명곡을 쓰며 밴드를 이끌었으며 신, 영혼과 같은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The Beach boys Today! 앨범을 즈음하여 점점 브라이언은 스튜디오에 처박혀 새롭고 신비로운 사운드를 만드는 데에만 열중했고 이는 멤버들과의 불화로 이어진다.[3] 쌓여갔던 여러가지 악재는 결국 SMiLE 앨범에서 비극적인 형태로 일어나고, 이후 브라이언은 술과 마약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Busy doin' nothin'이나 Til' I die 같은 명곡을 남겼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느라 잠시 탈퇴한 후 비치 보이스에 돌아오지만 앨범 몇 장을 낸 뒤[4]솔로로 전향한다. 이후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투어를 다니거나 하고 있다. 솔로 앨범들은 대체로 높은 평을 받고 있다.

2.2. 데니스 윌슨


윌슨가 차남. 주로 드럼을 맡았다. 원래 브라이언과 칼만이 밴드를 할 생각이었으나 어머니의 '둘째도 좀 끼워서 해라'(...)는 말에 비치 보이스에 넣었다고. 또한 밴드 내에서 유일하게 서핑을 즐기는 남자였다. 또한 여자를 한껏 끼고 다니거나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등 그야말로 비치 보이에 가장 가까운 인물. 잘생긴 외모 덕에 인기가 많았다.

다만 음악에 관심이 없었던 것 치고는 노래 실력도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고 중기부터는 곡을 여러 개 작곡하기도 한다. 앨범 Sunflower 에 수록된 명곡 Forever가 데니스의 곡. 이후 솔로 앨범을 한 장 내기도 하는데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명반 대접을 받는다. 앨범에 대해 알고 싶다면 여길 참조하자.]

솔로 2집을 준비하던 중 만취 상태로 서핑보드에 올랐다가 익사했으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도움으로 장례는 국장으로 치뤄졌다. 그리고 데니스의 죽음 이후 비치 보이스는 본격적인 암흑기로 돌입한다.

2.3. 칼 윌슨


윌슨가 삼남. 주로 리드 기타를 맡았다. 천사의 목소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을 정도로 상당한 보컬 실력을 자랑한다. God only knows나 Good Vibrations 같은 명곡의 보컬을 맡은 것도 모두 칼 윌슨. 게다가 Long Promised Road 같은 곡에서도 드러나듯 음악적 능력도 상당하다..

2.4. 마이크 러브


윌슨 형제의 사촌. 리드 보컬 담당. 브라이언과 함께 명곡들을 써냈다. 라이브 투어에서 실질적인 밴드 리더 역할을 맡았던 마이크 러브는 계속 스튜디오에 박혀 있는 브라이언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이후 SMiLE 앨범 제작 당시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고. 그런점 때문에 많은 비치 보이스 팬들에게 까인다(....) 안습.

다만 호쾌한 느낌의 외모와 라이브에서의 쇼맨쉽 덕분에 인기는 많았고 지금도 노년의 비치 보이스 멤버들을 이끌고 있다.

2.5. 알 자딘

3. 음악적 행보

3.1. 초창기

Don't Worry Baby 뮤직비디오.

'해변의 소년들'이라는 밴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창기엔 60년대 초반 유행하던 Surf Rock, 즉 "서핑하러 가자꾸나"나 여자 타령, 혹은 잘 빠진 스포츠카 같은 가사를 쾌활한 멜로디에 담아 전달하는 음악 혹은 노을진 바닷가 등을 담은 감성적인 발라드 음악을 했다. 요즘도 여름철엔 거의 필수요소 급으로 나오는 Surfin' USA,Fun, Fun, Fun , All Summer Long 같은 곡들이 이 시기의 히트곡이다.[5] 특유의 가벼움과 쾌활한 사운드로 청량한 느낌을 전달하는 이들은 순식간에 당대의 팝 스타로 등극한다[6].

그러나 히트곡이던 Surfin' U.S.A(1963)는 이미 척 베리가 부른 Sweet Little Sixteen'(1958)을 표절했던 노래이다. 듣어봐도 완벽한 표절이다. 당연히 당시 60년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에서도 대놓고 표절이라고 비난이 쏟아져 척 베리는 고소했다. 1966년 미국 법원은 Surfin' U.S.A. 작사자가 척 베리임을 인정하고 이 노래 저작권을 척 베리에게 양도함을 판결했다.

3.2. 명반 퍼레이드

Pet Sounds에 수록된 Wouldn't It Be Nice

팝 스타로 등극은 했지만 60년대 초반을 수놓았던 서프 음악의 반짝 유행도 서서히 지나갔고, 특히 64년부터 비틀즈로 대표되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대충격에 비치 보이스는 서서히 인기를 잃어간다. 이대로 계속 똑같은 서프 음악만 한다면 비치 보이스는 60년대의 흔한 밴드로 잊혀졌겠지만, 이들은 대대적인 음악적 개혁을 단행한다. [7]

이미 서프 음악 시절부터 In My Room, The Warmth of the Sun과 같은 진지하면서도 아름다운 곡들로 가능성을 보였던 비치 보이스는, 1965년 The Beach boys Today! 앨범을 통해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을 선보인다. 히트 싱글 Do you wanna dance?나 아름다운 Please let me wonder, 펫 사운즈의 청사진이라 불리우는 She knows me to well같은 곡이 실린 명실상부한 명반이지만, 비치 보이스는(정확히 말해서 브라이언 윌슨은) 비틀즈의 Rubber Soul을 접하고는 더더욱 절치부심해서 전설적인 명반 Pet Sounds를 만들어 낸다. 자세한 이야기는 Pet Sounds 항목 참조.[8]

당대의 사이키델릭 락 조류를 타며 정교하고 풍부하기 짝이 없는 명곡 Good Vibrations싱글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절정의 음악적 기량을 뽐내던 비치 보이스는 Pet Sounds를 뛰어넘는 사상 최고의 명작을 내겠다는 일념으로 SMiLE 앨범 작업에 착수한다. 그러나 야심과는 달리 66년 중반에 시작한 SMiLE 레코딩은 1년간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다가 결국 엎어지고 만다. 대타로 미완성작이라는 느낌이 강한 Smiley Smile 앨범이 출시된다. 이 앨범 자체도 괜찮았지만 애초 비치 보이스가 밝힌 목표에는 한참 부족한 느낌이라 당시 평단에서도 말이 많았다. 결국 SMiLE의 미완성 수록곡들은 Smiley Smile 앨범 및 이후 앨범들로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자세한 이야기는 SMiLE 항목 참조.

SMiLE의 실패 이후 음악적 자신감을 잃은 브라이언 윌슨이 밴드의 중심에서 물러난 이후로도 비치 보이스는 명반 행렬을 이어간다. 사이키델릭한 색채가 묻어나는 소울 음악을 시도한 Wild Honey[9] 비치 보이스판 애비 로드라는 평을 듣는 Sunflower, 사이키델릭함과 장엄함이 함께 흐르는 Surf's Up 등의 상당히 괜찮은 앨범을 선보였다. 다만 이 때부터 차트 성적이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한다.

3.3. 침체기

Kokomo가 사운드 트랙으로 사용된 영화 "Cocktail" 영상.

하지만 명반 행렬은 얼마가지 않아 끊기게 된다. 71년 Surf's Up 앨범 이후, 마약과 음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브라이언 윌슨을 내쫓은 비치 보이스는 인기와 평가 모두 예전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77년 브라이언 윌슨이 돌아오며 비치 보이스는 'Love You' 앨범을 내지만 좋은 평가에 비해 차트 성적이 그야말로 후새드.

이후 비치 보이스는 83년 데니스 윌슨의 사망과 멤버간 법정 다툼 등 여러 가지 악재를 겪어가며 활동을 이어나가며 평가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차트 성적은 꾸준히 나쁜(...) 활동을 이어간다. [10]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비치 보이스의 곡 중 하나 인 Kokomo가 바로 이 난항기에 등장한 하나의 히트곡.[11][12] 하지만 1992년 Summer in Paradise 앨범이 크게 실패하자 그 이후 2012년 That's Why God Made the Radio 앨범을 낼 때까지 새로운 곡을 내놓지 않는다.

그래도 2004년 브라이언 윌슨 솔로 명의의 SMiLE이 훌륭한 평가를 받았고, 2011년 SMiLE 세션 당시 음원을 공개하며 40년 넘게 미완성이었던 앨범을 완성에 가깝게 짜맞춰내며[13] 굉장한 찬사를 받는다. 평점 짜기로 유명한 피치포크 미디어에서 10점 만점을 주었을 정도. # 이 앨범이 67년 당시에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운 순간이다.

3.4. 팝 음악사에 남긴 의의

필 스펙터가 창시한 소리의 벽 (Wall of sound) 기법을 이용해 아름답고도 실험적인 음악을 만들어온 밴드. 팝 음악이 지금과 같은 풍성한 소리를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비틀즈와 이들 덕분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지만 한국에서는 명성에 비해 이리저리 저평가 받는 밴드다. 전 곡이 사랑받는 비틀즈에 비해 한국에서 이들의 인식은 그저 여름철 유쾌한 서프 락 밴드 정도? 여러 모로 안습.

2012년, 결성 50주년으로 브라이언 윌슨이 참가하는 월드투어가 개시되었으며 이에 발맞춰 That's Why God Made the Radio 앨범이 발매되었다. 월드투어 일정 중 8월에는 일본 치바, 오사카, 나고야 3곳에서 공연하였는데, 일본 투어에서만 오프닝 밴드로 America를 대동했다. 문제는 다른 공연에서 50곡씩 부르던 셋리스트가 일본 공연에서만 35곡 정도로 대폭 줄어버렸다.(...) 밴드의 인지도가 낮은 한국은 당연히 해당 사항이 없다. 투어 종료 후 멤버간의 불화로 브라이언 윌슨이 탈퇴하였다. (마이크 러브가 브라이언 윌슨을 해고하였다는 말도 있으나, 본인은 부정하고 있다.) 나이 상 재결합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마이크 러브-알 자딘 중심으로 투어 중이다.

여담으로 비틀즈, 롤링 스톤즈와 함께 영어사전에 등록되어 있는 몇 안 되는 밴드.

4. 디스코그래피

발매년도제목
1962년Surfin' Safari
1963년Surfin' USA
1963년Surfer Girl
1963년Little Deuce Coupe
1964년Shut Down Volume 2
1964년All Summer Long
1964년The Beach Boys' Christmas Album
1965년Today!
1965년Summer Days (And Summer Nights!!)
1965년Beach Boys' Party!
1966년Pet Sounds
1967년Smiley Smile
1967년Wild Honey
1968년Friends
1969년20/20
1970년Sunflower
1971년Surf's Up
1972년Carl and the Passions – "So Tough"
1973년Holland
1976년15 Big Ones
1977년Love You
1978년M.I.U. Album
1979년L.A. (Light Album)
1980년Keepin' the Summer Alive
1985년The Beach Boys
1989년Still Cruisin'
1992년Summer in Paradise
1996년Stars and Stripes Vol. 1
2011년The SMiLE Sessions
2012년That's Why God Made the Radio

5. 트리비아

희대의 연쇄살인마 찰스 맨슨은 비치 보이즈 멤버들, 특히 데니스 윌슨과 안면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비치 보이즈 멤버들은 맨슨이 미친 인간임을 알지 못했던 상태였다. 그 교류의 증거로, 1969년 20/20 앨범의 'Never Learn Not to Love'라는 곡은 찰스 맨슨이 작곡한 'Cease to Exist'라는 곡을 고친 곡이다. 흠좀무. 당연하게도 맨슨 패밀리의 연쇄살인 사건 이후 이러한 사실은 비치 보이스의 치욕적인 흑역사가 되었다.

브라이언 윌슨의 딸 카니 윌슨, 웬디 윌슨은 마마스 앤 파파스의 존 & 미셸 필립스 부부(후에 이혼)의 딸 차이나 필립스와 함께 슨 필립스라는 여성 트리오 그룹을 결성했다. 데뷔앨범 중 'Hold on' 이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부모의 아성을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예 대중음악계를 떠난건 아니어서 CCM 쪽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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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비치 보이스를 Band of America라 칭하기도 한다.
  • [2] 참고로 둘은 1942년생으로 동갑이다.
  • [3] 특히나 마이크 러브와 가장 심했다고 한다. 다만 동생들은 묵묵히 따랐다는듯..
  • [4] 중후기의 비치 보이스는 심히 민주적인 체제로 운영되었기에 브라이언은 단순히 참여만 하는 정도였다.그리고 그 때의 비치 보이스는 그야말로 흑역사적인 차트 성적을 보인다
  • [5]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Surfin' USA가 처음 나왔을 때 라디오에서 듣고, 이 곡의 아메리카스러운 세련됨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 [6] 이 시기 미국은 로큰롤이 완전히 붕괴해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이 시기의 미국 락밴드중에서 이름을 알린 밴드가 이 비치 보이즈 밖에 없다.
  • [7] 당시 비틀즈의 차트 폭격에 수많은 미국 밴드가 붕괴되자 그에 맞서기 위해 멤버들끼리 모여 대책 회의까지 했을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에 브라이언 윌슨이 내놓은 결론은 음악적으로 비틀즈를 이기자는 것.
  • [8] 참고로 브라이언은 이 앨범을 만들기 위해 투어는 다른 멤버를 영입해서 때우고 자신은 스튜디오에 눌러 앉아 앨범을 재작했고 이러한 그의 음악적 집착 때문에 브라이언과 다른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생기게 된다. 그것이 결국 터진것이 바로 SMiLE세션
  • [9] 특히 음악 평론가 Robert Christgau는 Wild Honey 앨범을 두고 단 1초의 낭비도 없는 유쾌하고 탄탄한 앨범이라며 A+ 평점을 주었다. #
  • [10] 다만 이 와중에도 Hollad 같은 앨범은 엘비스 코스텔로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평이 좋기도 하다.
  • [11] 마마스 앤 파파스의 존 필립스와 공동작곡
  • [12] 이 곡은 빌보드 1위 곡 중 최악의 곡으로 꼽히기도 했다..
  • [13] 영문 위키피디아의 SMiLE 항목을 보면 아예 완성에 준하는 수준으로 평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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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8-08 01: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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