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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

last modified: 2015-03-14 23:49:04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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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동영상[1]의 곡이 Группа крови(혈액형).

혈액형의 실황 동영상

풀네임은 빅토르 로베르토비치 최 (또는 초이).[2] 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Viktor Robertovich Tsoi).

1962.6.21~1990.8.15

소련 뮤지션. 사후 20년 넘게 지나고 있음에도 러시아 대중음악씬에서는 아직도 전설의 본좌로 칭송받고 있는 인물이다.

Contents

1. 생애
2. 앨범 목록
3. 음악 성향
4. 사생활
5. 사후의 평가
6. 에피소드


1. 생애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3] 아버지는 엔지니어로 일하던 고려인 로베르트 최(한국어 이름 최동열)였고, 어머니는 교사로 재직 중이었던 러시아인 발렌티나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직업을 잇도록 하고싶어 했지만, 빅토르는 기타를 치거나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을 더 즐겼다.

하지만 1974년에 레닌그라드의 유명 예술 교육기관인 세로프 예술학교(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문화예술대학)에 들어갔다가 열여덟 살 때 성적 불량을 이유로 퇴학당했는데, 이미 퇴학 전부터 빅토르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던 록 음악을 비롯한 서구식 대중음악에 푹 빠져있던 상태였다.[4] 결국 퇴학 후 보일러공으로 일하며 레닌그라드의 여러 록 밴드에서 연주를 맡거나 자작곡을 발표하면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이러던 중 1981년에 당시 러시아 록 음악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던 보리스 그레벤시코프가 우연히 빅토르 최의 연주를 어느 파티 석상에서 듣게 되었고, 즉시 빅토르의 재능을 인정해 당시 레닌그라드의 유일한 합법 록 공연장이었던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공식 데뷰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이 공연의 성공으로 빅토르는 알렉세이 리빈(기타), 올렉 발린스키(드럼)와 함께 독자적인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고, 밴드 이름은 영화를 즐겨 보던 빅토르의 취향으로 '키노(Кино)'라고 정해졌다. 이듬해인 1982년에 공식 데뷰 앨범인 '45'를 발표했는데,[5] 수록곡 중 '엘렉트리치카(Электричка)'[6]가 개인의 삶을 보장하지 않는 전체주의 체제의 부조리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가사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록 음악을 '서구의 퇴폐적인 산물'이라며 신물나게 까고 있던 소련 문화 당국에서는 이 노래를 매우 위험한 반체제 작품으로 규정했고, 공공 장소에서 공연하는 것을 금지해 버렸다. 그럼에도 앨범은 매우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 소련 젊은이들에게 파급되었고,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열린 콘서트에서는 '나는 나의 집을 선언한다...(비핵화 지대로)(Я объявляю свой дом...(безъядерной зоной))' 라는 어딘가 묘하게 활기차고 한층 노골적인 반전/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발표해 화제가 되었다.[7]

이어 1984년 발매된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캄차트카의 지배인'[8]에서는 이후 라이브와 후속 앨범들에서도 자주 재편곡되어 등장하는 대표작 '마지막 영웅(Последний герой)'이 인기를 얻었고, 색소폰이나 첼로, 키보드 등의 세션 악기를 적절히 가미해 밴드의 소리 영역을 확장시켰다.

각각 1985년과 1986년 발매된 후속 앨범들인 '이건 사랑이 아냐...'와 '밤'도 큰 인기를 얻었지만, 정말 초대박을 친 대표 앨범은 1988년 발표된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혈액형'이었다. 같은 제목의 타이틀 곡은 겉보기에는 그냥 전쟁 가요 정도였지만, 그 속에는 당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침체기를 맞고 있던 소련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소련 정부에서는 일체의 공적 대응을 자제하며 애써 무시했지만, 이 앨범은 굉장한 인기를 끌어 심지어는 사미즈다트[9]처럼 카세트 테이프로 대량 복제되어 소련 전역에서 돌아다닐 정도였다.

같은 해에는 라시드 누그마노프 감독의 '이글라(Игла. 바늘이라는 뜻의 러시아어)'라는 영화#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체제와 인습에 냉소적인 반항아 스타일의 주인공 모로를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혈액형'에 이은 후속 앨범인 '태양으로 불리는 별(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에서는 더욱 묵직한 록 사운드를 선보이면서 인기몰이를 했는데, 1990년에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경기장에서 대규모 단독 콘서트를 열면서 최절정을 맞이했다. 이 때 경기장에 모여든 관중들은 공식 집계로 62000여 명에 달했고, 심지어 모스크바 올림픽 때나 볼 수 있었던 성화까지 점화되는 등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이벤트를 연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 8월 14일에 라트비아의 리가 스튜디오에서 새 앨범을 위한 보컬 파트 녹음을 마친 뒤, 다음 날 낚시를 즐기러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맞은 편에서 오던 버스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승용차는 버스에 완전히 짓뭉개져 고철덩어리가 되었고, 빅토르 최의 사체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소련 당국에서는 사고 원인을 빅토르 최의 졸음운전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당국의 수사 과정과 발표를 석연찮게 여기던 사람들은 KGB가 고의로 버스를 돌진시켜 암살한 것이라는 음모론을 퍼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발표가 번복되는 일은 없었고, 소련 붕괴 후에도 마찬가지였다.[10]

그나마 밴드 기타리스트인 유리 카스파랸의 차에 보관되어 화를 면했던 보컬 트랙의 마스터 테이프가 레닌그라드로 보내졌고, 여기서 남은 멤버들이 연주 트랙을 녹음한 뒤 합쳐 밴드의 마지막 공식 앨범인 '초르니 알봄(영어로는 블랙 앨범)'을 발매했다. 발매 직후 키노는 해체했고 장례는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러질 예정이었지만, 수만 명에 달하는 팬들이 운집해 사실상 시민장 형태로 진행되었다. 유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보고슬로프스코예 묘지에 안장되었고, 지금도 빅토르 최와 키노의 팬들에게 성지로 여겨지고 있다.

2. 앨범 목록

  • 스튜디오 앨범
    • 45 (1982)
    • 캄차트카의 지배인 (Начальник Камчатки, 1984)
    • 이건 사랑이 아냐... (Это не любовь..., 1985)
    • 밤 (Ночь, 1986)
    • 혈액형 (Группа крови, 1988)
    •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 (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 1989)
    • 검은 앨범 (Чёрный альбом, 1990)

  • 데모 앨범
    • 46 (1983)

  • 라이브 앨범
    • 록 클럽의 콘서트 (Концерт в Рок-Клубе, 1985)
    • 두브나 콘서트 (Концерт в Дубне, 1987)
    • 어쿠스틱 콘서트 (Акустический концерт, 1988)

  • 리믹스 앨범
    • (История этого мира, 2000)
    • (Печаль, 2000)
    • 아타만(Атаман, 2013)

3. 음악 성향

가사의 신랄한 체제 비판 외에 음악도 당시 소련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대단히 진보적이고 전위적인 모습으로 주목받았는데, 미국유럽에서 인기를 끌던 뉴웨이브, 포스트 펑크 계열 음악의 어법을 대단히 빨리 도입한 것이 즉효였다. 물론 서구에서 받은 강한 영향 외에도 러시아 포크 음악의 어법이나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등의 대선배들로부터 이어받은 가사 운율의 고전적인 분절법 등 전통적인 요소도 중시되었다.

다만 록이라고는 해도 서구의 그것과 달리 강렬한 기타 사운드나 화려한 드러밍, 고음역을 넘나드는 보컬 톤 등의 자극적인 요소[11] 는 생각보다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서구 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소프트 록이나 포크 록 정도의 임팩트밖에 느낄 수 없다는 이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던 전체주의 사회의 탄압 속에서 이 정도로 정제되면서 강한 메시지를 전해준 밴드는 극히 드물었고, 그 중에서도 이 만큼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밴드는 없었기 때문에 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때문에 위에도 언급한 전설의 음유시인이자 배우였던 비소츠키나 리 재즈를 소련에 도입하고 꾸준히 발전시킨 재즈 뮤지션인 뱌체슬라프 가넬린 등과 함께 소련 반체제 음악인의 거두로 평가받고 있다.

4. 사생활

록 스타로 일생을 화려하게 살았다는 인식을 갖기 쉽지만, 실제 사생활은 서구의 뮤지션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질박하다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인기의 절정을 누리던 시기에도 여전히 레닌그라드의 아파트 단지에 있는 작은 보일러실에서 살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앨범을 발매해도 문화 산업을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 이상 해적판에 가까운 비공인 음반인 데다가 그마저도 불법 복제본이 횡행하고 있어서 수중에 들어오는 돈도 매우 적었다고 한다. 지못미.

공식 데뷰 무대를 치렀던 1982년에는 마리안나라는 여자와 동거하기 시작했고, 1985년에 결혼해 같은 해 아들인 알렉산드르(애칭 사샤)가 태어났다. 빅토르는 아들을 귀여워했고, 죽음의 원인이 된 낚시 여행 때도 데려가고 싶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빅토르 혼자만 출발한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5. 사후의 평가

그 당시만큼은 아니겠지만, 지금도 러시아의 록가수 중에서는 아직까지 사랑받고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묘소에는 무보수 묘지기를 자처하는 극성 팬들을 늘 볼 수 있다고 하며, 거리의 건물 외벽 곳곳에서도 빅토르 최나 키노와 관련된 그래피티를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빅토르 최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충격에 빠진 몇몇 팬들이 투신자살을 하기도 했다카더라. 흠좀무.

모스크바에서도 대중가요에 많이 언급되는 아르바트 거리에 아예 빅토르 최의 팬들을 위한 낙서용 외벽이 있어서, 빼곡하게 쓰여진 낙서들을 볼 수 있다. 사후 10주기였던 2000년에는 러시아의 후배 록 뮤지션들이 키노의 히트곡들을 모아 녹음한 트리뷰트 앨범을 발표했고, 6월 항쟁 이후 공산권 국가의 문화예술 규제가 완화된 뒤에는 한국에서도 한대수윤도현 같은 음악인들이 키노의 노래를 한국어로 번안해 부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삼성 나이세스[12]나 부곡무역 같은 음반사에서 키노의 노래를 수록한 베스트 앨범이나 정규 앨범 몇 종류를 1990년대 중반에 라이센스로 제작해 발매하기도 했지만, 러시아어를 온전히 이해하는 대중음악 애호가들이 극히 적은 탓도 있고 고립된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발달된 음악의 희박한 시장성도 있었는지 매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후새드. 게다가 당시 키노의 음악은 사실상 포스트 펑크에 속했는데, 펑크 록이 제대로 수입되지 않은 당대의 상황에서 매우 생경한 음악이었던 점도 원인으로 작용했다.[13]

6. 에피소드

  • GTA 4 에 등장하는 가상 방송국인 블라디보스토크 FM에서[14] '혈액형'의 영어판이 나온다. 그런데 발음 때문에 러시아어로 들리며 몇몇단어는 실제로 러시아어다. 이 노래가 한국계 러시아인이 부른 영어 노래라는 걸 안 한국 게이머들의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흠좀무.

  • 전(前)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이자 현(現) 러시아 쇼트트랙 국가대표인 안현수가 러시아로 국적을 바꾸면서 빅토르 최의 이름을 따서 빅토르 안으로 개명했다. 소치 올림픽 기간 중 국내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승리를 뜻하고, 러시아에서 대표적인 한인인 빅토르 최를 기리기 위해 빅토르라는 러시아 이름을 골랐다고 한다. 그리고 전설이 되었다. 더불어 빅토르 최도 새삼스럽게 재조명되고 있다.

  • 김경진의 소설 데프콘 한중전쟁편에 암호문으로 나오는 "내가 잠들면 누가 밤을 노래하리."는 키노의 곡 '전설(Легенда)'의 가사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이는 오역인 듯 하다. 원래 가사는 "А кто будет петь, если все будут спать?"로, 해석하면 "모두가 잠들면 누가 노래하리"에 가깝다.

  • 대체역사물인 일 베티사드에서는 '브루노 문'이라는 이름의 NoMoreEagleZ라는 밴드 멤버라고 되어있다. 이 세계에서는 소련 대신에 적백내전에서 승리한 백군 러시아계열의 또 다른 독재국가인 SNOR에 저항하는 밴드라고 나와있다. 의문사 당한것도 이쪽과 거의 비슷하다. 이름으로 봤을때 이쪽 역시 고려인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고국은...

  • 1996년에 한국에서 빅토르 최의 삶을 다룰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었으나 결국 엎어졌다. 감독은 당시 최고의 감독들 중 한명이었던 정지영(부러진 화살감독}. 그리고 빅토르 최 역할을 가수 신성우가, 그를 취재하는 기자역할을 당시 은행나무 침대로 스타배우 반열에 오른 진희경이 맡아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삼성영상재단에서 제작비를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결국 백지화가 되었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선수입장 BGM 중 하나로 '여름은 끝날 것이다(Кончится лето)'와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이 사용되었다.

  • 영화 스탈린그라드 엔딩 크레딧 첫부분 BGM은 '전설(Легенда)'을 젬피라(Земфира)라는 뮤지션이 리메이크한 버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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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영화는 2002년 러시아 전쟁영화 즈베즈다()장면들이다.
  • [2]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빅토르 초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한국인 혈통보다는 러시아인이라는 국적과 발음법을 더 중시한 모양.
  • [3] 종종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Қызылорда) 출생이라는 내용이 인터넷에서 보이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로베르트 최가 그곳에서 태어났다.
  • [4] 당시 소련이 공산독재 국가이긴 했으나 암시장이나 다양한 루트로 서양의 음반(또는 해적판)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국가통제의 정도를 따지면 대충 10월 유신 헌법하의 박정희 체제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게다가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 시절엔 이런 배척적인 분위기가 많이 완화되었고 단순히 언더그라운드에 머물러 있던 밴드들이 오버그라운드로 나올 수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1950~60년대 동구권에 방문한 서유럽 기자들에게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로큰롤 레코드를 구해다 줄 수 있느냐를 묻거나, 일렉트릭 기타를 만들기 위해 공중전화를 부숴서 전화기 수화기를 훔쳐가는 사건이 빈발했다는 일화에서 드러난다. 부카니스탄과는 다르다 부카니스탄과는! 실제로 소련에서는 이미 1960년대부터 일부 록 밴드들이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중이었고, 1968년에는 모스크바 재즈 페스티벌과 1986년 5월 꼼소몰 위원회 주최로 록 파노라마 '86이라는 페스티벌을 공식행사로(!) 개최되는등 생각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 [5] 물론 당시 소련에서는 모든 음반산업을 국가가 통제했기 때문에 사실상 해적판의 형태로 유통되었다.
  • [6] 한국의 광역 전철 개념과 비슷한, 러시아의 대도시 근방을 잇는 전기 철도를 가리킨다. 곡 내용은 엘렉트리치카가 나를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간다는 내용.
  • [7] 이 곡은 1985년 출반된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이건 사랑이 아냐...'에서 공식 출반되었으나, (비핵화 지대로)라는 중요한 괄호 제목은 삭제되었다. 다만 가사엔 그대로 나온다.
  • [8] 캄차트카(Камчатка)는 당시 속어로 '보일러공'을 일컫는 단어였는데, 빅토르 최가 보일러공으로 생계를 유지한 데서 착안한 자조적인 타이틀이다.
  • [9] Самиздат. 소련 체제 하에서 출판을 금지당한 문인들이 지하에서 몰래 찍어내 돌리던 유인물 혹은 출판물을 일컫는다.
  • [10] 당시 목격자의 중언에 의하면 빅토르 최의 자동차는 신호를 준수하며 잘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반대 차선에서 버스가 빅토르의 자동차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했고 빅토르가 경적을 여러번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그대로 그의 자동차에 돌진했다고 한다. 밴드 최초의 해외 공연인 한국에서의 콘서트가 열리기 딱 한달 전이었으며(여러 나라에서 공연 섭외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빅토르가 반드시 할아버지의 조국인 한국에서 첫 해외 무대를 갖고 싶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보컬 파트를 끝마친 바로 다음날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에 더욱 의심을 받는 죽음이다.
  • [11] 그런 것을 원한다면 Ария같은 그 당시의 헤비메탈 밴드를 들으면 되지만....록 음악을 '서구의 퇴폐적인 산물'이라며 신물나게 까고 있던 소련 문화 당국의 제도권 밖에서는 누가 들어도 아이언 메이든 삘이 나는 메탈 밴드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소련은 록 음악을 탄압 수준이 아닌 단순한 하위 문화 취급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3
  • [12] 참고로 나이세스에서 나온 것은 12번 트랙이 'Троллейбус'라 되어 있는데 실제론 'Электричка'가 들어 있다.('45'에 실린 것은 아니고 89년에 나온 'Последний герой'라는 앨범에 실린 버전.)
  • [13] 한국에서 펑크 록 음반이 제대로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너바나가 한국에 얼터너티브/그런지 붐을 일으킨 90년대 초반 이후다. 그 전까지는 섹스 피스톨즈의 음반도 수입 금지 품목이었다.
  • [14] 동구권 음악 전문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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