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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역사책)

last modified: 2015-04-11 00:57:50 by Contributors

중국의 정사서
흠정 24사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晉書)
(陳書) 제서
당서 당서 오대사
오대사 (明史)
기타 정사서 관한기 원사 청사고 중화민국(건국)사  

Contents

1. 개요
2. 편찬 배경
3. 서술상의 특징
3.1. 최초의 기전체 사서
3.2. 명분에 얽매이지 않은 서술
3.3. 높은 신뢰도
3.4. 후대의 평가, 번역본
4. 사기의 구성


1. 개요

太史公曰:餘述歷黃帝以來至太初而訖,百三十篇。
"나는 황제(黃帝)로부터 태초(太初)[1]에 이르기까지의 사실(史實)을 역술(述歷)하였으니, 이는 모두 130편이다." - <사기> 태사공자서

史記. 중국 역대 대표 역사서 25사 중 가장 오래 된 사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이다. 단 한 사람이 이렇게 방대한 기간을 다룬 역사서를 쓴 사례는 전세계 통틀어도 드물다. 분량 자체는 생각보다 무지막지하지는 않다. 당시는 주로 죽간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많아 당시에는 양이 많았어도 지금 와서 보면 그냥 수첩 하나 정도인 경우도 많고, 보관하기도 힘들었기 때문. 사마천궁형이라는 치욕을 감내하면서까지 쓴 책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자신을 고자로 만든 한무제디스했다. [2]

이곳에서 볼 수 있다.

2. 편찬 배경

중국 전한의 사마천이 상고시대의 황제부터 한무제 태초 연간(BC 104 ~ BC 101년)의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한 통사. 본격적인 저술은 BC 108 ~ BC 91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마천은 저술의 동기를 '가문의 전통인 사관의 소명의식에 따라 《춘추》를 계승하고 아울러 궁형의 치욕에 발분하여 입신양명으로 대효를 이루기 위한 것'으로, 저술의 목표는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관하여 일가의 주장을 이루려는 것'으로 각각 설명하는데, 전체적 구성과 서술에 이 입장이 잘 견지되었다.

3. 서술상의 특징

3.1. 최초의 기전체 사서

사기는 역사적 사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는 편년체가 아닌, 각 사건과 인물을 개별적으로 따로 기술하는 기전체형식으로 서술된 최초의 역사서이다. 이후 분열기를 통일한 통일왕조를 서술하는데 있어 기전체의 장점이 부각되어 많은 사서가 기전체로 쓰여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전체 사서중 하나가 정사 삼국지. 사서로서의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문장력도 뛰어나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 역시 대단한 수준이다.

또한 민중과 사회에 대한 생동감 또한 대단하다. 중국에서 사기에 나오는 직업군에 대해 통계를 내봤는데 총 1300여 가지의 직업들이 언급되고 등장했다 한다.

본기(本紀), 세가(世家), 열전(列傳), 표(表), 지(志)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기는 천자의 기록, 세가는 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의 기록, 열전은 그 밖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다. 사마천 - - - - 으로 정통성이 이어진다고 보아 하, 은, 주, 진시황 일대기를 모두 본기에 서술하였다.

3.2. 명분에 얽매이지 않은 서술

한 가지 매우 특이한 점은 명분보다 실제 상황을 더 중시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항우를 한때나마 천하를 제패한 패왕으로 인정해서 세가나 열전에 서술하지 않고 본기에 서술하였다. 심지어 한의 2대 황제인 혜제는 사실상 허수아비 황제였기 때문에 그의 본기는 아예 없고 대신 여후본기가 들어가 있을 정도이다.[3] 사기가 전한의 7대 황제인 한무제 시기에 쓰여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과감한 처사다. 그만큼 항우의 임팩트가 어마어마 했다는 소리일 수도 있겠다. 혹은 사마천이 한무제에게 궁형을 당했기 때문에 한왕조에 대해 심사가 꼬여 있던 점을 반영했다고 보기도 한다.[4]

혹은 한 왕조의 찬양을 위해서 그랬다는 설도 있는데, 항우의 격을 너무 낮추면 그에게 항상 패했던 고조 유방의 격은 더욱 낮아지기 때문에 항우의 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결국 그를 패사시키고 한 왕조를 창시한 유방의 격을 높인다는 의도이다. 여후는 유방의 아내이고 2대 황제의 어머니로 정치 쪽에서는 확실히 간섭을 많이 했으니 이걸 완전히 숨길 수도 없었을 듯.

세가 역시 제후들의 기록이라는 형식과 다르게 제후가 아닌 공자진승(자칭 왕이면 왕이지 제후는 아니다)를 세가에 넣은 것도 특이하다. 공자는 중국, 나아가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은 세가가 아니라 본기에 서술된 그 어떤 황제들보다도 위대한 업적을 세운 위인이니 세가에 넣어도 이상하지 않다.

3.3. 높은 신뢰도

사기의 신뢰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상나라(은나라) 관련 기술이다. 상나라는 사마천이 살던 시기인 전한과도 천 년 가까운 간격이 있던지라 사기에 서술된 상나라 기술의 신뢰도에 대한 의문은 계속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이전까지는 상나라는 전설 속의 왕조이고, 거기 사기에 나오는 왕이나 사건들은 모두 지어낸 구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상나라의 수도였던 은허에서 발굴된 갑골문에 나타난 상나라 왕들의 이름과 순서는 사기의 기술과 거의 일치하여 사기의 상나라 관련 기사에 대한 신뢰도를 증명해주었다. 상나라/계보 문서 참조.

공자전 등 몇몇 열전에서는 일부 기사가 신빙성을 의심받기도 하나, 으레 그렇듯이 교차검증에서 걸리는 부분에 한정되어 있다.

3.4. 후대의 평가, 번역본

물론 사기는 사마천 원저(原著) 그대로의 형식과 내용으로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열전 맨 마지막 부분인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의하면 그것은 정(正)·부(副) 두 본(本)으로 되어 있는데 정본(正本)은 명산에 보관하여 망실에 대비하였고 부본은 경사(京師)[5]에 보관하여[6] 후세의 군자를 기다렸다고 한다.

130권 가운데 이미 전한 중기 <효경본기>, <효무본기>, <예서>, <악서>, <병서, 지금의 율서)>,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 <삼왕세가>, <부근괴성열전>, <일자열전>, <귀책열전> 등 10권은 그 전권 또는 일부분이 빠져서 전한 말기 저소손(褚少孫)이 다른 자료들을 참조해서 보충했다.[7]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사기 주석서는 남조 유송 때 배인(裴駰)의 ≪사기집해(史記集解)≫ 130권이다. 사마천의 시대부터 약 600년이 경과한 이 시대에는 ≪사기≫가 상당히 읽혔던 것 같은데 탈간(脫簡)·착간(錯簡) 또는 서사(書寫) 때의 오기(誤記) 등으로 초본이 각기 달라서 그것을 통일하는 주석서가 필요했을 것이다. · 시대가 되니 종이에 서사된 ≪사기≫가 몇 가지 나타났다. 당나라 때는 사마정(司馬貞)이 ≪사기집해(史記集解)≫를 근거로 ≪사기색은(史記索隱)≫ 30권을 짓고 또 <삼황본기(三皇本紀)>를 만들어 이에 주석을 붙였으며 장수절(張守節)이 다시 ≪사기정의(史記正義)≫ 130권을 지었다.

현대 역사가들은 사기를 단순한 인문학 저서가 아닌 태고부터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한무제까지의 오만군상의 인간상과 사마천 본인의 개인적 고뇌가 담긴 인간학의 저서로 평가한다.

19세기 말 ~ 20세기 초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량치차오는 사기의 10대 명편을 선정했는데, 그가 선정한 10대 명편은 항우본기, 신릉군열전, 염파인상여열전, 노중련추양열전, 회음후열전, 위기무안후열전, 이장군열전, 흉노열전, 화식열전, 태사공자서라고 한다. 또한 사마천의 사기로 중국에 역사학이란 것이 시작되었다고 평했다.

삼국지왕윤채옹을 죽일 때 사기를 '정부를 헐뜯고 비난하는 방서'라고 비난했다. 분명 보수적이고 정통주의에 찌든 지식인들의 시점에서는 그랬지만, 오히려 최고 권력자에게도 서슬 퍼런 역사의 붓을 들이댄 사마천의 용기와 신뢰성을 높게 평가해주는 장점이 되었다.

서양학자들에게도 전해져 익히 알려졌다. '영웅전'을 저술한 플루타르코스와 비교해도 사마천이 한 수 위라고 극찬하며, 서양에도 감히 비견될 역사서가 없을 정도라고 찬양일색(출처 추가바람) 그리고 중국 최초의 믿을 만한 역사서라고도 평가했다.

한국에 소개된 번역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 중요한 편만 추려내서 뽑은 것이 많다. 대표적인 사기 번역판을 들면 '까치글방'에서 여러 학자들이 함께 전편을 완역해 낸 7권짜리 사기와[8] 정사 삼국지를 번역한 것으로 알려진 김원중이 전체를 혼자 번역한 것이 있다. 혼자 사기 번역을 다해내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최초라고 한다. 김원중은 까치글방의 사기 번역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외에 중국 고전 및 사기 연구자로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김영수[9] 씨가 완역본을 출간 중이다.

2013년 09월 26일부터 네이버에서 사기 완역본를 제공하고 있다. 번역자는 김영수다. 한문 원본과 한글 번역본이 같이 제공되며 삼고 사진도 풍부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015년 2월 27일 확인 결과, 현재 제공처의 요청으로 재작업이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번역본은 제공되지 않고 있다. 오역이나 오탈자를 다듬는 모양. 네이버 사기 완역본[10]

이외에 2005년 교수신문에서 고전 번역본들 추천하는 시리즈에서 서울대 이성규 동양사학과 명예교수(당시 동양사학과 교수)가 편역한 ≪사기 : 고대 중국사회의 형성≫이 완역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번역본으로 추천 받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사기는 군주에 대한 기록을 다룬 본기(本紀)보다 당대의 인물들에 대해 다룬 열전(列傳)이 좀 더 재미있고 읽기 쉽다는 평을 받는다. 본기는 천자의 일생과 업적을 다루고 있어서 연표에 따라 조금 딱딱하게 구성되어 있는 반면에[11], 열전은 다양한 인물군상을 다루고 있고, 연도에 그리 얽매이는 편도 아니라 본기에 비해 덜 지루하며 보다 생동감이 넘친다. 현장답사 위주로 쓰여진 열전들은 문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흥미로운 일화나 사마천의 생각, 인물평 또한 열전에 가장 잘 드러나 있어 가르침 역시 열전에서 제일 많이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국내에 사기와 관련된 책을 보면 열전에서 추려낸 책들이 대부분이다.

4. 사기의 구성

흩어진 천하의 옛 이야기들을 망라하되, 왕들이 일어난 그 시말을 탐구하고 그 흥망성쇠를 관찰해 사실 진행에 근거해 고증해 간략히 삼대의 사실을 추구하고 진한의 사실을 기록했는바, 위로는 헌원으로부터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12본기로 기록하되 모두 조목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사적에는 시대가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어 연대의 차이가 분명하지 않으므로 10표를 만들었다.
예악의 증감, 달력의 개역, 병권, 산천, 귀신, 하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폐단을 들고 변화에 통하는 내용으로 8서를 지었다.
열여덟 별자리 18수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고, 30개의 바퀴살이이 모두 하나의 속 바퀴에 집중되어 있어 끝없이 돌고 도는 것처럼, 천자를 보필하는 신하들을 이에 비유해 그들이 충신의 도리로써 천자를 받드는 모습을 내용으로 30세가를 지었다.
정의롭게 행동하고 기개가 있어 남에게 억눌리지 않으며 세상에 처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명을 천하에 세운 사람들의 일들을 내용으로 70열전을 지었다.
합해 130편, 52만 6,500자이고, 이를 『태사공서』라고 부른다. - <사기> 태사공자서

  • 본기(本紀): 천자에 대한 기록인데도 항우와 여태후가 본기에 들어 있는 것이 특이점. 이들이 들어간 의미는 위에서 언급된 대로. 명분과 신분보다 그 인물이 끼친 영향력과 업적을 중시한 사마천이기에 위의 두 인물이 편입될 수 있었다.
    • 삼황본기(三皇本紀): 삼황오제 중 삼황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삼황의 존재를 허구로 단정했기 때문에 삼황본기는 사마천이 지은 것이 아니며 당나라 때 사마정이 추가, 보충한 것이다. 천황, 지황, 태황(인황), 그 외에 복희, 여와, 신농, 축융, 황제 등이 삼황으로 꼽힌다.
    • 오제본기(五帝本紀): '오제'가 누구인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이 본기에서의 오제는 황제(黃帝), 전욱, 제곡, , 이다. 다만 현재의 오제본기는 사마천 당대의 것이 아니라 당나라 때 그 이전에 소실되어 버린 해당 부분을 재판한 것이다.
    • 본기(夏本紀)
    • 본기(殷本紀)
    • 본기(周本紀)
    • 본기(秦本紀)
    •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 항우본기(項羽本紀)
    • 고조본기(高祖本紀)
    • 여태후본기(呂太后本紀)
    • 효문본기(孝文本紀)
    • 효경본기(孝景本紀)
    • 효무본기(孝武本紀): 사기 태사공자서의 해제에는 '금상본기(今上本紀)'라고 되어 있다. '효무'는 무제가 죽은 뒤에 붙여진 칭호이고 사마천이 한무제 시절 사람이기에 금상본기라고 칭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인데, 이렇게 된 것에는 여러 설이 있다. 사마천이 직접 만든 금상본기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가필한 것이라는 설도 있고, 일부러 이렇게 제작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현존하는 사기의 효무본기는 서의 '봉선서' 일부에서 내용을 보충한 것. 효무본기의 내용을 봉선서의 일부 내용을 보충땜빵한 인물이 후대의 학자 저소손이라는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 표(表): 도표 형식으로 사건을 기록한 것. 즉 연표다.
    • 삼대세표(三代世表): 하, 은, 서주 시대의 연표.
    • 십이제후연표(十二諸侯年表): 춘추 시대 주요 열두 제후의 연표.
    • 육국연표(六國年表): 전국 시대 주나라와 전국칠웅의 연표.
    • 진초지제월표(秦楚之際月表): 진 이세황제 이후와 초한쟁패기의 연표.
    • 한흥이래제후연표(漢興以來諸侯年表): 고조 원년 이후 한나라 왕국들의 연표.
    •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
    • 혜경간후자연표(恵景間侯者年表)
    • 건원이래후자연표(建元以來侯者年表)
    • 건원이래왕자연표(建元已來王子年表)
    •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

  • 서(書): 당시의 생활상이나 제도, 풍속 등을 기록한 사회사 기록.
    • 예서(禮書): 예의범절이나 이와 관련한 풍속 기록.
    • 악서(樂書): 음악.
    • 율서(律書): 병법이나 군사에 대한 기록.
    • 역서(暦書): 역법.
    • 천관서(天官書): 천문.
    • 봉선서(封禪書): 종묘나 제사 관련.
    • 하거서(河渠書): 치수(治水)사업 관련.
    • 평준서(平準書): 재정, 경제 관련.

  • 세가(世家): 춘추전국시대의 유명 제후들과 한나라의 황족 제후들과 고관들의 기록. 여기에 공자와 진승이 포함된 것이 특이점이다. 오, 초, 월의 경우는 이리저래 윤색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민족 국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기를 본따 만든 삼국사기에는 이 세가가 없다.
    • 태백세가(吳太伯世家): 주문왕의 아버지이자 자신들의 아우 계력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스스로 머리를 깎고 문신을 새겨 남방 오랑캐 땅으로 들어간 태백, 중옹 형제가 세운 오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자손이 없던 태백의 뒤를 이은 중옹부터 부차까지의 오나라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태공세가(齊太公世家): 강태공이 분봉받은 제나라(일명 강제)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태공 때부터 강공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주공세가(魯周公世家): 주문왕의 아들 주공단이 분봉받은 노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주공부터 경공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소공세가(燕召公世家): 주문왕의 아들 소공석이 분봉받은 연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소공석부터 연왕 희, 태자 단 부자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세가(管蔡世家): 주문왕의 아들 관숙선과 채숙도가 분봉받은 관나라, 채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관숙선과 채숙도는 주문왕의 아들이자 나라에 분봉받은 곽숙처, 은나라 주왕의 아들 무경과 삼감의 난을 일으켰다. 주모자 관숙선과 무경은 처형당하고 참여는 했지만 애매한 포지션이던 채숙도는 유배, 말 그대로 참여하고 행동은 안 한 곽숙처는 면직되었다. 관숙선은 자손이 없어서 관나라는 폐지되었고 채나라는 채숙도가 유배지에서 사망한 후 아들 채중호가 다시 분봉받아 이어나갔다.[12] 관나라의 역사 기록은 분봉 후 삼감의 난을 일으켰다가 관숙선이 피살되고 자손이 없어서 나라가 폐지된 기록뿐이지만 채나라의 기록은 채숙도부터 채후 제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부록으로 (曺)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조(曺)세가는 따로 없고 관채세가 끄트러미에 있다. 주문왕의 아들 숙진탁이 분봉받은 나라로 조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숙진탁부터 백 양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세가(陳杞世家)기: 순 임금의 후손 호공이 분봉받은 진나라와 우 임금의 후손 동루공이 분봉받은 기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진나라의 경우는 호공 때부터 민공, 기나라의 경우는 동루공부터 간공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강숙세가(衛康叔世家): 주문왕의 아들 위강숙이 분봉받은 위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위강숙 때부터 군 각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미자세가(宋微子世家): 은나라 주왕의 형 미자계가 분봉받은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미자계가 자손이 없어 그의 아우 미중연 때부터 강왕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세가(晋世家): 주무왕의 아들 당숙우가 분봉받은 진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당숙우 때부터 정공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세가(楚世家): 축융의 자손이라는 웅역이 분봉받은 초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웅역 때부터 부추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하나라 소강의 서자 무여가 분봉받은 월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무여 때부터 무강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세가(鄭世家): 주선왕의 이복동생 정환공이 분봉받은 정나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환공 때부터 강공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세가(趙世家): 비염의 장남의 후예였던 숙대의 후예 열후가 분봉받은 나라로 숙대 때부터 왕 천, 대왕 가 형제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조, 위, 한나라는 유력한 세 가문이 진(晉)나라를 삼등분하면서 탄생한 나라다.
    • 세가(魏世家): 나라의 후예였던 필만의 후예 문후가 분봉받은 나라로 필만 때부터 왕 가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세가(韓世家): 진(晉)나라의 방계 후손 경후가 분봉받은 나라로 경후 때부터 왕 안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강태공이 분봉받은 제나라의 마지막 군주 강공을 폐위한 태공[13]이 분봉받은 제나라(일명 전제)의 기록으로 진경중완 때부터 왕 건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죽서기년과 달리 누락된 군주가 중간에 하나 있다.[14]
    • 공자세가(孔子世家)
    • 진섭세가(陳渉世家)
    • 외척세가(外戚世家): 여기의 '외척'은 한나라의 외척들을 의미한다.
    • 초원왕세가(楚元王世家): 한 고조 유방의 아우인 유교와 그 후손의 전기. 유교는 사기에 '고조와 어머니가 같은 동생'이라고 적혀 있으나 한서에는 유방의 이복동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 형연세가(荊燕世家): 형왕 유가와 연왕 유택, 그리고 그 후손의 전기. 모두 유방의 친척이다. 유가는 유방의 사촌형이지만 사기에는 어느 유파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적혀 있다.
    • 제도혜왕세가(齊悼恵王世家): 유방의 서장자인 유비(劉肥)와 그 후손들의 전기.
    •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
    • 유후세가(留侯世家)
    •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한나라의 개국공신 주발이 주인공이지만 아들 주아부의 행적도 이 세가에 함께 기록되어 있다.
    • 양효왕세가(梁孝王世家): 효문제 유항의 아들인 양효왕 유무와 그 형제들과 후손의 전기.
    • 오종세가(五宗世家): 효경제 유계의 아들들로 제후국 왕에 봉해진 이들의 전기. 제목이 오종(五宗)인 것은 이 세가에 등장하는 경제의 아들들이 각각 다섯 어머니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경제의 다섯 부인은 율희, 정희, 가부인, 당희, 왕부인 아후.
    • 삼왕세가(三王世家): 한무제의 아들 제후왕들에 대한 전기이긴 한데 사실 이 세가는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의 것으로 황제의 교지, 공문이나 상소, 책봉문 등을 그대로 옮겨 붙여 놓았다.

  • 열전(列傳): 천하에 공명을 떨친 인물들에 대한 기록. 광범위하게 한족이 아닌 타민족의 역사도 다루고 있으며,다양한 직업을 가진 수많은 인물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 백이열전(伯夷列傳)
    • 열전(管晏列傳)
    •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 사마양저열전(司馬穰저列傳)
    •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 중니제자열전(中尼弟子列傳): 공자 제자들의 열전. 안회, 자로, 자공 등등에 대한 기록이다.
    • 상군열전(商君列傳)
    • 소진열전(蘇秦列傳)
    • 장의열전(張儀列傳)
    •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傳)
    • 양후열전(穰侯列傳)
    • 백기왕전열전(白起王煎列傳)
    •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
    •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 춘신군열전(春申君列傳)
    • 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 기록에 따라 '범저(范雎)'라고도 하고 '범수(范睢)'라고도 한다. '저'와 '수'가 너무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중국의 기록에도 다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사기에는 '범수'라고 적혀 있다.
    • 악의열전(樂毅列傳)
    •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전단열전(田單列傳)
    •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 자객열전(刺客列傳): 여기 등장하는 자객은 모두 다섯 명으로 조말, 전저, 예양, 섭정, 형가.
    • 이사열전(李斯列傳)
    • 몽염열전(蒙恬列傳)
    •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
    • 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
    • 경포열전(鯨布列傳)
    •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 한신노관열전(韓信盧綰列傳): 이 열전의 한신은 '한왕 신'. 초한지의 주역인 한신의 행적을 알고 싶으면 '회음후열전'을 읽어야 한다.
    • 전담열전(田儋列傳): 초한쟁패기 제나라에서 일어난 전씨 일족 관련 기록.
    • 열전(樊酈滕灌列傳)
    • 장승상열전(張丞相列傳): 한나라 초기의 재상 장창(張蒼)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여러 한나라 재상들에 대한 합전이다. 주창, 신도가, 임오, 차천추 등등.
    •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
    • 부근괴성열전(傅靳蒯成列傳): 유방의 장수인 부관, 근흡, 괴성주설의 전기.
    • 유경숙손통열전(劉敬叔孫通列傳)
    • 계포난포열전(季布欒布列傳)
    • 원앙조조열전(袁盎晁錯列傳)
    • 장석지풍당열전(張釋之馮唐列傳)
    • 만석장숙열전(萬石張叔列傳)
    • 전숙열전(田叔列傳)
    •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유명한 의사 편작, 창공의 전기.
    • 오왕비열전(吳王濞列傳): 오왕 유비는 유방의 형인 유중의 아들이다. 오초칠국의 난의 주동자이다.
    •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 한문제의 황후인 두황후의 사촌 위기후 두영과 효경제 황후의 친동생인 무안후 전분의 전기.
    •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 한무제 때의 관료인 한안국의 전기. 한안국의 자가 '장유'다.
    •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 흉노열전(匈奴列傳): 흉노족이 주역이긴 하지만 중항열의 행적도 여기에 전한다. 몇몇 내용에 사마천이 직접 썼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사기의 마지막 사건인 흉노의 연연산 전투가 수록되어 있다.
    • 위장군표기열전(衛將軍驃騎列傳): 한무제 때의 명장인 위청과 곽거병이 주인공. 그리고 그들 휘하에서 활약한 장수들의 약전도 실려 있다.
    • 평진후주보열전(平津侯主父列傳): 한무제 때의 재상인 공손홍과 유학자인 주보언의 전기.
    • 남월열전(南越列傳): 이 열전의 찬론은 사마천이 아니라 후세가 위작하였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 동월열전(東越列傳)
    • 조선열전(朝鮮列傳):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고조선'이긴 하지만 특히 '위만조선'을 지칭한다.
    •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
    •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 회남여왕 유장, 회남자의 편자로 유명한 회남왕 유안과 그 동생 형산왕의 전기다.
    • 순리열전(循吏列傳)
    • 급정열전(汲鄭列傳): 무제 때의 현명한 신하들인 급암, 정당시의 열전.
    • 유림열전(儒林列傳)
    • 혹리열전(酷吏列傳): 가혹한 관리들의 열전.
    • 대완열전(大苑列傳): 유실되었다가 한서 편찬 직전에 누군가가 사기의 다른 내용을 짜깁기해서 복구했다는 의혹이 있다.
    • 유협열전(遊俠列傳)
    • 영행열전(佞幸列傳): 황제에게 아부하여 총애를 누린 사람들의 열전.
    • 골계열전(滑稽列傳)
    • 일자열전(日者列傳)
    • 귀책열전(龜策列傳)
    • 화식열전(貨殖列傳): 돈을 벌어 크게 성공한 이들의 성공 스토리. 또한 중국 각지의 경제나 특산물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사마천 집안의 내력과 사마천 자신의 자전. 그리고 사기 전체의 해제를 하고 있다. 사기열전 맨 마지막 편이지만 사실은 사기 전체의 머리말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사기의 끝이자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편. 참고로 항목 맨 위에 있는 사마천의 말은 바로 태사공자서 맨 마지막에 있는 말로, 사기 전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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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무제의 연호. 기원전 104년~기원전 101년에 사용되었다.
  • [2] 삼국지연의에서는 왕윤이 이를 근거로 채옹을 살려주지 않고 죽이게 된다.
  • [3] 참고로 후한대에 나온 한서는 명분을 보다 중요시하여 항우는 열전에 넣고 혜제대는 혜제본기가 따로 있다. 단, 혜제의 뒤를 이은 두 소제#s-1.1소 시기는 한서에서도 고후기(高后紀)에 넣어 결국 한서에서도 여후는 본기에 들어있다.
  • [4] 실제로 한무제의 통치형태를 은근히 비판하는 내용이 종종 나온다.
  • [5] 수도로 당시 장안을 말한다.
  • [6] 또는 외손자 양운(楊惲)에게 맡겼다고도 한다.
  • [7] 예를 들어 저소손은 귀책열전을 시중에서 구하려고 했으나, 구하지 못해 다른 책들을 참조하여 보충했다고 한다.
  • [8] 대표 번역자는 성균관대 총장을 지낸 바도 있는 정범진 성균관대 중문학과 명예교수.
  • [9] 한국사마천학회의 발기인이기도 하다.
  • [10] 제공자인 김영수 씨가 새로 완역본을 내고 있는 이유도 있을 듯.
  • [11] 줄창 역사만 늘어놓는다.
  • [12] 사기에는 언급이 없지만 곽숙처는 3년 후 복위했다.
  • [13] 진(陳)나라의 망명 공자 진경중완의 후손이다.
  • [14] 태공과 환공 사이에 후 섬이라는 군주가 하나 누락되어 있다. 그래서 사기에서는 후 섬의 재위기간이 환공의 재위기간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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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1 00: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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