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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섬 해전

last modified: 2015-03-27 16:01:29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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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바텀 사운드(Iron Bottom Sound)라 불리는 사보 섬 인근 해역. 지금도 근처를 지나가는 배들의 나침반을 정신줄 놓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배들이 가라앉았다. 구축함에서 순양함, 전함, 항공모함까지 원해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가라앉을 수 있는 모든 군함들은 여기에 다 가라앉았다.

Contents

1. 사보섬 해전
1.1. 개요
1.2. 양측의 규모
1.3. 경과
1.3.1. 일본 함대의 진격
1.3.2. 연합군 함대의 분산
1.3.3. 남부함대 떡실신
1.3.4. 바보다! 우리 배에 바보가 타고 있다!
1.3.5. 일본 함대의 철수
1.3.6. 그러나 아오바
1.4. 전투 결과
1.5. 그 후
1.6. 대중문화에서의 사보섬 해전
2. 에스퍼란스 곶 해전
3. 타사파롱가 해전

1. 사보섬 해전

1.1. 개요

1942년 8월 7일~8월 10일까지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선에서 벌어진 미국과 호주의 연합군와 일본 해군의 해전. 양 측 수상함대가 항공모함 없이 정면으로 부딪친 전투지만, 미 해군은 스스로가 역사상 최악의 해전이라고 부를 정도로 철저하게 개발살났다. 일본에서는 '제1차 솔로몬 해전'이라고 불린다.

1.2. 양측의 규모

일본 해군 연합함대 제8순양함대 연합군 제62기동부대

중순양함 초카이
중순양함 아오바
중순양함 카코
중순양함 키누가사
중순양함 후루타카
경순양함 텐류
경순양함 유바리
구축함 유나기

  • 남부 함대
    호주 해군 중순양함 오스트레일리아
    호주 해군 중순양함 캔버라
    미국 해군 중순양함 USS 시카고
    미국 해군 구축함 USS 패터슨
    미국 해군 구축함 USS 버글리
  • 북부 함대
    미국 해군 중순양함 USS 빈센스
    미국 해군 중순양함 USS 아스토리아[1]
    미국 해군 중순양함 USS 퀸시
    미국 해군 구축함 USS 헬름
    미국 해군 구축함 USS 윌슨
  • 동부 함대
    호주 해군 경순양함 호바트
    미국 해군 대공 경순양함 USS 산 후안
    미국 해군 구축함 USS 몬센
    미국 해군 구축함 USS 뷰캐넌
  • 경계 함대
    미국 해군 구축함 USS 블루
    미국 해군 구축함 USS 랄프 탤벗

1.3. 경과

1.3.1. 일본 함대의 진격

과달카날 섬이 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지자 라바울에 있던 미카와 중장은 제8순양함대를 이끌고 미 해군 함대를 야간에 급습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1942년 8월 7일, 16:00에 제8함대를 이끌고 라바울을 출항한 8함대는 미군 잠수함과 정찰기에 발각되었지만, 경미한 피해를 입은 채 과달카날로 순조롭게 항진했다.[2]

이즈음 8함대를 발견한 허드슨 정찰기는 맥아더 휘하의 호주군 소속이었는데, 이들은 아군 함대로 바로 보고를 보내지 않고, 정찰 구역을 열심히 돈 다음에 맥아더 장군한테 보고를 올렸다. 맥아더 장군은 진주만에 전했지만 터너 제독이 이 정보를 받았을 때는 이미 한참 늦어서 이 되었기에 정찰기를 띄울 수 없었다. 게다가 함종도 잘못 기재되었기에 터너 제독은 적의 규모를 오판해버렸고, 이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당시 과달카날의 함대를 지휘하던 터너 제독은 "해병대가 상륙을 끝내려면 사흘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그 동안 엄호 좀 해줘."라고 요청했지만, 플래처 제독은 "어이쿠 그러고는 싶은데 우리 항공모함이 배고프다고 해서 곤란한데요?"라면서 곰리 제독한테 함대를 빼겠다고 요청하고 8월 8일자로 과달카날 근해를 벗어났다.

나중에 전투 보고서에도 연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매우 강조했지만, 이는 플래처 제독의 핑계였고 실제 이유는 라바울에 짱박힌 일본놈들 비행기가 예까지 날아오는데 항모를 박아둘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미 해군 태평양 함대는 산호해 해전에서 USS 렉싱턴과 미드웨이 해전에서 USS 요크타운을 상실했기에, 하나 밖에 안 남은 항모인 엔터프라이즈까지 잃을까 우려하던 점도 여기에 한몫했다. 이에 터너 제독은 "주력함대가 비열한 핑계를 치면서 도망쳤다!"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이미 떠난 함대가 돌아올리 있나. 결국 터너 제독이 정보를 받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있었다.

이렇게 미군이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카와 중장의 제8순양함대는 허점을 보이는 연합군을 향해서 순조롭게 진격하고 있었다.

1.3.2. 연합군 함대의 분산

8월 8일, 플래처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과달카날을 벗어난 후 연합군 함대는 분산되어 각기 다른 방향을 경계 중이었다. 터너 제독은 자신의 기함인 맥카울리에서 해병대의 밴더크리프트 소장, 영국 해군의 V.A.C. 크러칠리 소장과 함께 작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 무렵 미 해군 근처에 접근한 미카와 제독은 조심스럽게 정찰기를 날렸다. 주변을 열심히 살펴본 정찰기는 미 해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고 일단 근처에 미 항모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미카와 제독은 조심스럽게, 야음을 틈타서 연합군 함대의 뒤통수를 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윽고 아오바에서 띄운 정찰기가 연합군 함대에게 접근했는데, 이 정찰기는 모든 등화를 켜고 주변을 살펴보는 간덩이 부은 짓을 했다. 대놓고 나 여기 있다고 밝힌 셈인데, 이 정찰기를 본 미군은 적이라면 상식적으로 등화를 켜고 비행하지 않을테니 저건 아군 비행기라고 판단하여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상군은 항공모함의 철수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아군 항공모함에서 날린 정찰기라 판단했다. 얼씨구? 아오바의 전과를 보면 아군기 맞다

어쨌든 아오바의 정찰기는 연합군 함대의 위치를 미카와 중장에게 보고했고, 초카이의 야간 견시도 미군 구축함 랄프 탈벗과 블루를 발견한다. 미카와 중장의 함대는 랄프 탈벗에 모든 포를 겨누었지만, 랄프 탈벗은 그냥 북쪽으로 가버렸고 일본 함대는 순조롭게 두 구축함 사이로 빠져나갔다.

9일 새벽 1시에 아오바가 다시 정찰기를 발진시켜 연합군 남부함대의 위치를 확인했다. 곧이어 일본 함대는 연합군 남부함대를 향해 산소어뢰를 겨냥한다.

1.3.3. 남부함대 떡실신

아오바의 정찰기가 조명탄으로 연합군 함대의 위치를 밝혀주는 가운데 일본 함대는 어뢰공격을 개시했다. 이제서야 적 함대를 발견한 USS 패터슨이 경보를 울렸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고 결국 남부함대는 아래와 같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 8월 9일 1시 34분 구축함 자비스 발견
  • 8월 9일 1시 36분 구축함 패터슨, 버글리 발견 및 중순양함 캔버라, 시카고 발견
  • 8월 9일 1시 38분 일본 함대가 일제히 어뢰 발사
  • 캔버라 피탄 및 전투능력 상실
  • 시카고 피탄
  • 패터슨 피탄

기습을 받은 캔버라는 뒤늦게 반격을 시작했지만 이미 선수를 친 일본 함대한테는 그냥 먹잇감일 뿐이었다. 결국 캔버라는 5분만에 만신창이가 된 채로 전투능력을 상실했다.

시카고는 어뢰 한발을 맞았으나 피해를 억제하고 반격했다. 그러나 발사한 조명탄이 불발이어서 제대로 조준하지 못한 채로 사격했기 때문에 한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일본함대가 북부함대 공격을 위해 방향을 돌린 덕분에 추가적인 피해는 없었으나 일본함대 후방경계임무중이던 구축함 유나기를 발견하고 공격하는데 정신이 팔려 북부함대에 대한 경고도, 일본함대에 대한 추격도 하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고 유나기에 대한 사격에서도 한발의 명중탄도 내지 못했다.

구축함 패더슨은 일본함대 발견하고 경보를 울리면서 선회하여 일본함대에 함포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포격전 중 4번 포탑에 피탄당해 8명의 전사자를 내고 전장을 이탈했다. 디행히 일본함대가 북부함대 공격을 위해 그대로 북상한 덕분에 더 이상의 피해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구축함 버클리는 패더슨이 일본함대를 발견하고 불과 몇초 후에 일본함대를 발견하고 좌회전하면서 우현어뢰 발사를 시도했으나 어뢰요원들이 발사제원 입력에 실패해 발사하지 못했다. 버클리는 함이 완전히 선회한 후 좌현어뢰 8발을 발사했으나 그때는 이미 일본함대가 북상중이어서 속도가 느린 미국어뢰로는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남부함대는 캔버라가 기습당한 1시 43분부터 패더슨이 패퇴한 1시 49분까지, 즉 고작 6분만에 한발의 명중탄도 내지 못한채 일방적으로 제압당했다. 게다가 패터슨의 경보는 북부함대에게 전달되지도 않았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일본 함대는 이제 북부함대를 향해 전진했다.

1.3.4. 바보다! 우리 배에 바보가 타고 있다!

남부함대를 격파하고 5분 후, 일본 함대는 초카이가 탐조등을 비추는 가운데 포문을 열었다. 제일 먼저 공격을 당한 미군 중순양함 아스토리아는 포술장의 지휘 하에 반격에 나섰지만, 잠에서 깬 함장이 포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포술장은 지금 적이 공격하고 있다며 무시하고 포격을 계속했지만, 함장은 더 큰 목소리로 포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너 일본인이냐? 아군을 포격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함장의 어거지에 아스토리아는 포격을 중지했고, 당연히 개발살났다. 바보다! 우리 배의 함장은 바보다!

그리고 북부함대도 역시나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 8월 9일 1시 46분 빈센스 포착
  • 8월 9일 1시 48분 어뢰 발사 및 1시 50분 일본 함대의 함포 사격 개시
  • 아스토리아 피탄 및 무력화
  • 퀸시 피탄으로 2시 35분 침몰
  • 빈센스 피탄으로 2시 50분 침몰
  • 랄프 탤벗 피탄
  • 8월 9일 오전 8시 캔버라 자침
  • 8월 9일 오전 12시 15분 아스토리아 침몰
  • 8월 9일 낮 1시 자비스 뇌격으로 침몰

아스토리아가 개발살난 후, 중순양함 퀸시는 사력을 다해 항전했지만 이미 기습당한 데다 수적 열세에 몰린 상태였으므로 답이 없었다. 불바다가 된 퀸시는 최후의 수단으로 초카이를 향해서 충각 돌격까지 감행했지만 충돌도 못 해보고 결국 격침당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포격으로 초카이의 1번 포탑과 작전실을 파괴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일본 8함대가 연합군 함대를 탈탈 털어버리는데 걸린 시간은 채 30분도 되지 않았다.

1.3.5. 일본 함대의 철수

그러나 미카와 제독은 현장에 항공모함이 없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철수했다는 사실까진 알지 못했다. 그 결과 항모 함재기의 역습을 우려하여 더 이상 공격은 하지 않고 날이 밝기 전에 빨리 전장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그 덕분에 상륙한 해병대와 아직 미처 양륙하지 못한 물자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일본군 전체의 고질병, 즉 전투 병력이 아닌 병력은 아웃 오브 안중이라는 사고방식이 개입됐다는 견해도 있다.

한편 사보섬에서의 패전을 들은 플래처 제독은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곰리 제독에게 함대를 뺀다고 이야기했지만 막상 이에 대한 허락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패전의 원인을 제공한 입장이 될 수 있었기에 전전긍긍하고 있었으나 다행히 곰리 제독의 철수허락 메시지가 늦게나마 전달됐고 그 허가를 내린 시간이 함대를 빼기 직전임이 명백하자 안심했다. 이 때 근처에 있던 USS 와스프의 F.P. 셔먼 함장은 함재기를 발진시켜서 미카와 함대에 대한 야간 역습을 기도했지만, 전단 사령관 노이에스 소장이 이를 막았다.

어쨌든 미군의 공습은 실패했고, 일본 함대는 유유히 라바울로 돌아갔다.

1.3.6. 그러나 아오바

그런데 8월 10일 오전 9시 8분, 귀환하던 일본 함대는 후루타카급 중순양함 카코를 잃었다. 6전대 기함 아오바가 이제 잠수함 회피 운동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근처에 숨어있던 미군 잠수함 S-44가 이걸 보고 카코에 어뢰를 날린 것. 해전에서는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기함의 실수로 중순양함 한 척을 날려먹은 것이다.

1.4. 전투 결과

연합군 측 피해 일본군 측 피해
  • 중순양함 캔버라, 아스토리아, 퀸시, 빈센스 침몰.
  • 중순양함 시카코 중파.
  • 구축함 랄프 탤벗, 패터슨 대파.
  • 전사자 1,023명, 부상 709명
  • 중순양함 카코 침몰
  • 중순양함 초카이, 아오바 소파.
  • 전사 58명, 부상 53명

위에서 보듯 연합군의 피해는 일본군에 비해 그야말로 막심한 수준이었다.

중순양함 카코의 침몰은 해전 중이 아니라 귀항하던 도중에 아오바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초카이와 아오바의 피해는 경미했다. 특히 아오바는 어뢰발사관을 피탄당했음에도 승무원들의 재빠른 대처 덕분에 금방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

만약 미카와 중장이 그냥 미군 수송선단까지 개발살냈으면 과달카날 전투는 미군의 패배로 끝났을 테지만, 공습을 우려한 미카와 중장은 그냥 돌아갔고 일본군 수뇌부는 완전한 승리의 기회를 날려버린 멍청이라는 이유로 미카와 중장을 저평가하게 되었고, 과달카날 전투가 일본의 패배로 끝난 후 1943년 4월 1일에 그를 제8함대 사령관직에서 해임하고 한직으로 쫓아냈다.

이 해전의 결과로 미군이 제해권을 상실하자 과달카날에 상륙한 해병대는 한 동안 보급이 끊어진 상태로 일본군이 남기고 간 식량과 시설, 장비, 자재까지 써가면서 생존해야 했으며, 덤으로 도조 타임으로 명명된 일본 함대의 정기적인 함포사격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연합군은 항공모함 함대를 급히 과달카날로 불러들였지만, 여기에서 항모 두 척(USS 호넷과 USS 와스프)을 상실하고 한 척(USS 엔터프라이즈)이 응급실 신세를 지는 등 큰 피해를 입어야 했다. 이어진 해전에서도 쓴맛을 본 미 해군은 최신예 전함인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과 대충 몸조리를 끝낸 엔터프라이즈를 또 투입하는 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일본 육군의 병크 대행진 덕분에 전체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는 점이 포인트.

1.5. 그 후

하지만 이 참담한 결과보다 체스터 니미츠 제독을 더 노하게 만든 것은 그 과정, 즉 레이더까지 있었는데도 -설령 레이더에 기계적 결함이 있었다고 쳐도- 견시병들이나 수병들이 아군 함정 사이로 코 앞에서 유유히 지나가는 적함을 못 알아봤다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니미츠 제독은 예하 지휘관들을 몽땅 모아놓고 엄중하게 추궁했는데, 그 결과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당시 해상 부대는 상륙전이 시작된 이래로 공습을 경험한 뒤에 쓸데없이 신경이 예민해진 지휘관의 지시로 일본군의 후속 공격을 대비하느라 근 이틀동안 전원비상태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이틀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면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와 피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은 뻔한 일.

이러다보니 말단 수병에서 함장까지, 모든 승무원들이 뻗어버려서 대부분이 간이침대나 의자같은 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싸우기에는 심신이 모두 피폐해졌던 판에 일본군 함대가 야밤에 몰래 숨어들어온 것이니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지. 결국 지휘관들은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비상태세를 걸지 않고 승무원들한테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했다.

또한 미드웨이 해전의 역전승을 일궈냈던 플래처 제독은 연료 부족을 핑계로 함대를 뺐지만 나중에 실제 플래처 제독이 작성한 전투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남은 연료량을 보니 굳이 재급유를 안 받아도 되는 수준이었다. 고로 책임회피성이 짙은 핑계를 댔다 하여 전후 역사가들한테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그래도 플래처 제독에게 실드 쳐 줄 거리가 없지는 않은데, 이미 미군 함대 전반이 개판 오분전인 상황에서[3] 결국 태평양 전쟁 끝까지 맹활약하고 호넷과 요크타운이 굉침당한 결과 1942년 태평양에 존재한 단 한척의 미군소속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를 살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군 함대가 소멸되는 것조차 모르는 지경으로 전황이 돌아간 꼴을 보면 엔터프라이즈가 남아 원호를 해 줬다고 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지 의심되는 상황이다. 실제 엔터프라이즈는 비록 플레처 제독이 빠지라고 명령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군함대를 냅두고 도망가 버린 상황이 된 수치스러울 수 있는 이번 사건을 두 달 후 벌어진 과달카날 전투에서 '죽여도 죽지 않는' 불굴의 생명력을 보여주며 일본 해군의 수송선단을 박살내는 것으로 완벽하게 만회한다.

1.6. 대중문화에서의 사보섬 해전

드라마 더 퍼시픽 1화에서 레키 일행이 밤에 잠시 목격한 해전이 바로 이 사보섬 해전이다. 전투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 레키 일행은 "우리 해군이 일본놈들 작살내겠지?"라며 기대했지만, 그 결과는...

2. 에스퍼란스 곶 해전

일본에서 에스퍼란스 곶 해전을 부르는 명칭이 바로 사보섬 해전이다. 이 해전에 대해서는 아오바 항목 참조.

3. 타사파롱가 해전

타사파롱가 해전은 미국측 기록이고 일본측에서는 룽가곶 야전(ルンガ沖夜戰)이라 칭하며, 그 외에 제4차 사보섬 전투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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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미드웨이 해전에도 참가했던 그 배로, 플래처 제독이 요크타운에서 옮겨 탔었다.
  • [2] 8월 7일 오전에, 제8함대의 출항 이전에 미군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위해 라바울에서 일본군의 1식 육공 27기, 99식 함폭 9기, 제로센 17기가 출격했지만 이들은 미군 항모를 발견하지 못했고, 근처의 연합군 함선을 대신 공격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미군 전투기의 반격을 받아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고, 사카이 사부로도 큰 부상을 당한 후 겨우 라바울로 귀환하게 된다.
  • [3] 니미츠 제독이 분노한 이유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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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27 1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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