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사이고 다카모리

last modified: 2015-02-04 01:54:53 by Contributors

Contents

1. 생애
2. 이야깃거리
2.1. 관련 항목



분세이 10년 12월 7일(1828년 1월 23일) - 메이지 10년(1877년) 9월 24일

(ɔ) Edoardo Chiossone (1833 - 1898) from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생인 사이고 츠구미치를 보고 그린 초상화. 현재 그의 사진은 남아 있지 않다.

(ɔ) Fg2 from


우에노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

西郷隆盛 1828.01.23~1877.09.24 '사이고동(西郷どん)'이라는 애칭으로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 군인이자 정치가.

1. 생애


가고시마 출신으로 사쓰마번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번주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주군 나리아키라가 에도 막부 14대 쇼군 후계자 다툼에서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지지했다가 최종적으로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모치에게 미움을 사 유배형에 처해지는 바람에 같이 유배되었는데 여기서 고생을 많이 했는지 같은 사쓰마 출신인 오쿠보 도시미치와 함께 도막(막부 타도) 운동을 벌이게 된다. 이후 사카모토 료마의 중재에 응하여 조슈번과 삿쵸동맹을 맺고 에도 막부를 멸망 시킨 후 메이지 유신을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1]와 함께 유신삼걸로 알려져 있다. 200년 넘게 유지되던 도쿠가와 막부를 끝내고 메이지 시대를 여는데 큰 공로를 세워 신정부의 요직에 있었으나, 정한론의 문제로 인해 이 당시 같은 뜻을 내세우던 이들과 함께 중앙정부와 대립, 결국 귀향하였다. 이후 서남전쟁(세이난)도중 자결하였다. 부검 결과 질환으로 인해 고환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자세한 내용은 서남전쟁 항목 참조.

괴이쩍게도 한국에는 정한론자의 대표주자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메이지 정부 내에서 대조선 정책에 있어 거의 유일한, 그리고 매우 온건한 외교주의자 였다. 오히려 '우리가 외무성 하급 관리를 보내는 등 대조선 외교를 성의없이 처리했는데 저쪽이 하급 지방관으로 대응하고 우리의 요구를 수용 안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조선의 요구대로 외교관에게 전통 복장을 입히고 조선에 공손히 응대하여 그들의 진중한 반응을 끌어내자. 내가 사절로 가서 조선에서 죽임을 당하면 쳐들어가도 늦지않다.'라고 발언했고 그나마 마지막 문장은 공식발언도 아닌 편지에서 외교론을 거부하는 정한론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 이후 이와쿠라 사절단의 귀국으로 자신의 의견이 묵살당해서 쓸쓸히 귀환한다. 관련 글.

2. 이야깃거리


워낙 인기가 많아서 실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생존설이 러일전쟁 때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그중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 훗날 니콜라이 2세가 되는 니콜라이 황태자가 일본에 방문할 때 전국적으로 퍼진 <사이고 생환설>이었는데, 쿠로다 키요타카가 유럽 각지를 순방할 때 블라디보스톡에서 사이고 다카모리와 키리노 토시아키를 만나 훗날 일본을 위해 함께 일할 것을 결의했고, 실제로는 사이고와 키리노, 무라타 벳푸 같은 서남전쟁의 수뇌가 시로야마산에서 탈출해 러시아 군함을 타고 도주해서 살아있었으며 니콜라이 황태자와 함께 일본으로 귀환하여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일본 전역에서는 난리가 났고 환호와 의심이 뒤범벅이 된 가운데 신문사들은 검증도 안된 소문을 사실인 양 마구 남발하여 혼란을 가중시켰다. 사이고의 출신지인 가고시마와 큐슈에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환영무드가 조성될 정도. 여기에 메이지 덴노가 시중에게 "만일 사이고가 돌아온다면 메이지 10년의 전투(서남전쟁)에서 공을 세운 자들의 훈장을 박탈하고 맞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미확인 소문도 있어 경관인 츠다 산조가 이를 두려워하여[2] 니콜라이 황태자를 칼로 베는 황태자암살미수사건이 벌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메이지 6년의 정변에서 유우부단한 태도를 보이다 사이고에게 호통을 들어먹은 오쿠마 시게노부는 죽을 때까지 사이고 디스에 평생을 바치게 된다. 생각이 짧다, 뚱뚱하다, 눈물이 많다, 애 같다 등등.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하지만 사이고 다카모리 본인도 뚱뚱해서 죄송합니다~는 개그를 날린 적이 있다.

은혼의 등장인물 사이고 토쿠모리의 모델이다.

왠지는 모르지만 일본에서 김옥균과 많이 비교당한다.

지금까지도 가고시마현과 그 일대에서는 영웅으로 존경[3]받으며, 서남전쟁에 대한 옹호 여론도 강한 편이다. 실질적으로 가고시마의 상징. 대부분의 이벤트 (2011년에 있었던 규슈 신칸센 전면 개통이라든가...)에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것도 등장.

2.1. 관련 항목

----
  • [1] 이 사람이 누군지 와닿지 않는다면, 바람의 검심카츠라 코고로가 바로 이 사람이다. 실제 카츠라 코고로는 기도 다카요시의 옛날 이름.
  • [2] 츠다는 서남전쟁에 종군하여 맹활약하여 훈7등을 수여받았으며 이것을 평생의 자랑으로 삼았는데, 훈장을 박탈당한다는 소문을 굳게 믿고 이에 대한 불안과 절망을 주변인들에게 한탄했다고 한다.
  • [3] 예산과 관리 문제로 슬쩍 생가의 다다미를 플라스틱 다다미로 교체했다가 지역 언론에서 성토 당하고 다시 전통 다다미로 바꾸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서 위인의 생가에 까는 다다미를 뭘 쓰든 관심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가고시마에서 사이고의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2-04 01:54:53
Processing time 0.1296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