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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유키

last modified: 2014-11-08 00:06:22 by Contributors

목차

1. 일본의 가수, 배우
1.1. 디스코그래피
1.1.1. 싱글
1.1.2. 앨범
2. 일본의 야구선수 (히로시마 도요 카프 소속)
3. 일본의 야구선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소속)

1. 일본의 가수,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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斉藤由貴
현재 小井由貴(いさらいゆき). 1966년 9월 10일생.

80년대 일본에서 유명했던 아이돌. 스케반 데카[1] 1대를 연기하였다. 한국에선 메종일각 오프닝곡 슬픔이여 안녕이 유명하다. 노래도 당시 여가수들과 다소 차별되는 가창력을 내세운 슬로우템포의 조용한 곡들을 많이 불렀다.[2]

일본에서도 흔치 않은 모르몬교 신자. 예전에는 청순하고 맑은 이미지로 유명했으며 지금은 원숙미가 돋보이는 여성 연기자로서 여전히 인기가 높다. 결혼한 후에 거의 비중있는 배역을 잘 맡지 않다가 몇년 전부터 유명 각본가인 쿠도 칸쿠로가 각본을 맡은 드라마 는 주부로소이다 등에 주연으로 나왔으며 요즈음에도 가끔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 연기를 매우 잘하고 코믹부터 호러까지 폭넓은 배역을 모두 커버한다. 작사가로의 재능도 있어 사카이 노리코다 미나코등 동시대 활동했던 여가수들의 곡을 작사해 준 적이 있다.

초기 데뷔당시부터 가수와 연기자 모두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다른 아이돌과 차별과는 가창력과 폭넓은 연기가 가능한 연기력으로 평단으로부터의 평도 좋았다. 가수로서 홍백가합전에 출연했었고, 연기자로서도 일본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상당히 독실한 모르몬교의 신자로, 교리 때문에 담배피우는 연기시에 천식치료용 가짜 담배를 사용한다던지 하는 일도 몇 번 있었고, 누드나 베드신은 물론 키스신까지 거부했었기에 몇몇 연기시에는 대역을 사용하거나 직접적인 장면노출을 피했었다.

한참 활동할 시절에 탤런트 가와사키 마요나 일본의 전설적인 아티스트 오자키 유타카와의 불륜으로도 유명했었다. 당시엔 오자키 유타카가 유부남. 특히 오자키 유타카의 유작앨범에는 유키와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가사가 많이 들어있고, 일부앨범의 표지사진의 모델이 유키라는 설이 있다. 이러한 일들때문에 당시 잡지나 와이드쇼에서 여러번 등장하면서 마성의 여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었다.

이외 카도카와서점의 사장 카도카와가 마약문제로 구속되었을때 마약사용혐의를 받았으나 무혐의판정을 받았다.

이러한 사건들때문에 당시 유키의 인기나 평이 많이 나빠졌고, 특히 모르몬교 교단에서 파문을 당하고 곧 헤어누드 사진집을 낼것이라는 잡지기사까지 나왔었으나 실제 벗지는 않았다.

실제로 모르몬교 교단에서 그녀를 모델로 한 포교비디오를 만들었다가 폐기하는 등 상황이 안좋았던 것은 사실이고, 오자키 유타카가 죽은 직후 미국에 살던 같은 모르몬교 신자의 현재의 남편과 결혼했는데, 이 결혼이 더이상의 스캔들을 막으려는 교단의 압력에 의한 결혼이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현재의 남편본인은 유키의 스캔들에 대한 내용을 결혼때까지 전혀 몰랐었다고 한다.

1.1. 디스코그래피

1.1.1. 싱글

음반명 발매일 오리콘 최고순위 비고
卒業 1985년 2월 21일 6위
白い炎 1985년 5월 21일 5위 스케반 데카 1기 주제가
初戀 1985년 8월 21일 4위
情熱 1985년 11월 15일 3위 영화 '雪の断章' 주제가
悲しみよこんにちは 1986년 3월 21일 3위 메존일각 오프닝
土曜日のタマネギ 1986년 5월 21일 6위
青空のかけら 1986년 8월 21일 1위
MAY 1986년 11월 19일 2위 영화 '恋する女たち' 주제가
砂の城 1987년 4월 10일 2위
「さよなら」 1987년 11월 18일 4위 영화 '「さよなら」の女たち' 주제가
ORACION -祈り- 1988년 6월 21일 4위 스기 타카오와 듀엣
Christmas Night 1988년 11월 21일 49위
夢の中へ 1989년 4월 21일 2위

이노우에 요스이의 夢の中へ(1973) 리메이크
드라마 '湘南物語 マイウェイマイラブ' 주제가

Ave Maria〜Who 1989년 11월 21일 62위
いつか 1992년 1월 15일 50위
なぜ 1994년 11월 18일 98위
こむぎいろの天使 1999년 4월 21일
家庭内デート 2006년 6월 7일 30위
風の向こう 2007년 1월 24일 195위

悲しみよこんにちは
(21st century ver.)

2007년 11월 28일 121위
KIZUNA 2011년 효우게모노 엔딩

1.1.2. 앨범

음반명 발매일 비고
AXIA 1985년 6월 21일
ガラスの鼓動 1986년 3월 21일
チャイム 1986년 10월 21일
風夢 1987년 4월 21일
ripple 1987년 9월 21일
PANT 1988년 3월 21일
TO YOU 1988년 12월 7일
âge 1989년 4월 21일
MOON 1990년 7월 11일
LOVE 1991년 12월 4일
Moi 1994년 12월 7일
何もかも変わるとしても 2011년 2월 14일

2. 일본의 야구선수 (히로시마 도요 카프 소속)

히로시마 도요 카프 No.21
사이토 유키(齊藤悠葵)
생년월일 1987년 6월 20일
국적 일본
출신지 후쿠이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5년 드래프트 3위
소속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06~ )

3. 일본의 야구선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소속)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No.18
사이토 유키(斎藤佑樹)
생년월일 1988년 6월 6일
국적 일본
출신지 군마현 오타 시[3]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10년 드래프트 1위
소속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11~ )

와세다 실업고 시절니혼햄 파이터스 시절

2006년 와세다 실업고등학교 3학년 때 코시엔에서 7경기 68이닝동안 948개의 공을 던지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유명해진 투수. 이때 맞붙은 상대팀의 선발투수가 바로 다나카 마사히로이다. 경기 도중 마운드에서 손수건으로 얼굴에 땀을 닦는 행동 때문에 '''‘손수건 왕자(ハンカチ王子)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나카와 함께 코시엔이 낳은 현시점에서 마지막 슈퍼스타로 평가받을 정도로 당시 인기(특히 여성팬들)가 대단했다.

와세다 실업고등학교와 와세다 대학을 거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했다.

프로 입단 이후엔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뛰어든 라이벌 다나카와 자주 비교되지만, 냉정한 스카우터들의 눈에는 프로에서 뛰기엔 구위가 떨어진다라는 평가를 받았고, 평가 그대로 성적은 인상적이지 않다. 부상 등으로 인해 재활과 2군에서의 조정을 거치면서 부진하다보니 1군에는 거의 올라오지 못할 정도. 하지만 코시엔 아이돌이라 여전히 상당한 관심이 집중되기도 한다. 특히 아줌마들에게 인기는 여전하다.

다만, 그렇다고 일본 언론들이 그냥 무작정 띄워주기만은 아니었는데, 고시엔 통상성적 12게임 출장 8승 1패 방어율 1.87(완투 10회)로 흠좀무한 성적을 올린 것은 사실이다. 참고로 다나카의 경우는 12게임 출장 8승 0패 방어율 2.07(완투 3회, 이닝수 자체는 비슷하다.)로 사이토 유키와 거의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고시엔의 성적과는 별개로 구위 자체가 다나카처럼 위력적이지 않아서 프로구단 스카우터들의 평가는 박했고, 결국 그 평가가 들어맞았다. 한마디로 낮은 수준의 상대에겐 무쌍이 가능한 구위였지만 프로선수 상대로는 통용되기 힘들다고 본 것. 이래서 스카우터들이 고시엔 성적을 잘 안 믿는거긴 하지만.

또한 사이토가 현재 부진한 이유는 일본 아마야구계의 고질적 문제인 혹사와도 연관이 있는데,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입단해 체계적인 관리를 받으며 실력을 갈고닦은 다나카에 비해 고교시절 저 거의 1000개에 육박하는 연투에 이어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와세다대학의 에이스로서 미친듯이 굴려졌고, 국가대표까지 뛰면서 살인적인 혹사를 당했다. 본인도 고교시절 혹사로 몸이 정상이 아님을 느끼고 대학리그에서 경기감각을 유지하며 몸을 추스리고 요양을 할 생각이었던 듯 하지만 역효과.

결국 현재는 완전히 어깨가 맛이 가버린 상태. 분명 구위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드래프트에서 3개 구단이 경합할 정도로 성장 포텐셜이 있는 유망주였음에도 고교에 이은 대학 시절의 혹사로 2군을 오락가락하는 수준의 선수로 전락한 상태다. 프로데뷔 후 고교시절 라이벌이던 다나카와도 몇 번의 맞대결을 가졌으나 그 때마다 완패를 기록했고 결국 다나카는 NPB 역사에 남을 성적을 기록하고 메이져리그로 진출해 더이상 라이벌이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다르빗슈 유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고교, 대학야구계의 혹사를 비판하는 측에서 자주 꺼내는 사례가 바로 사이토의 사례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것은 본인이 과거의 영광에 취해있지 않고 현재 자신이 예전같은 정통파 파이어볼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변화구를 익히는 등 절차부심하는 중이라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인 상태이다.

2014년 7월 3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원정경기에서 6이닝 6피안타 7탈삼진 1실점으로 758일만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사이토는 "이제 제2의 야구인생이 시작되었다."라고 다짐했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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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 초대 아사미야 사키를 연기하고 주제가를 불러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다만 사키의 상징이랄수 있는 요요를 잘 사용하지 못해서 여러번 NG를 내며 고생했는데...2대 사키를 맡은 미나미노 요코는 능숙하게 요요를 사용하여 대조가 되었다. 2006년에 나온 4대 스케반데카 극장판에서 사키의 어머니역으로 우정출연을 했는데, 요요사용장면은 간단하게 CG로 처리하는 것을 보며 조금 억울해했다고...
  • [2] 라이브를 보면 고음을 매끈하고 부드럽게 소화하는 반면에 저음에서 삑사리가 나는 경우가 좀 있다.
  • [3] 닛타 군 닛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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