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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last modified: 2015-03-31 18:40:37 by Contributors

Contents

1. 寫眞
1.1. 사진의 역사
1.2. 사진 예술에 대한 인식
1.3. 사진의 예술적인 특징
1.4. 초기 사진에 대한 인식
1.5. 그 밖에
1.6. 사진 촬영이 금지된 장소
1.7. 대중매체에서의 사진
1.8. 사진 관련 항목
2. 인명

1. 寫眞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진.[1]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고 싶은 인간의 욕망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남는 건 사진뿐이다. - 관광객 -

Photography[2]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 물체로부터 오는 광선사진기 렌즈로 모아 필름, 건판 따위에 결상(結像)을 시킨 뒤에, 이것을 현상액으로 처리하여 음화(陰畫)를 만들고 다시 인화지로 양화(陽畫)를 만든다.

물리학적으로 사진의 정의를 설명하면 '물체에서 반사된 빛과 같은 전자기적 발광을 감광성 기록재료 위에 기록하여 얻은 빛 그림'을 말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일반적으로 사진은 사진기로 만드는 경우가 많고 사진기는 빛을 모아 필름이나 CCD[3] 또는 CMOS[4] 같은 이미지 센서에 초점을 맞추어 상을 맺히게 한다.

사진을 찍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사진사, 예술 활동으로서 사진을 찍는 사람을 사진 작가, 사진에 대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춘 사람을 사진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1.1. 사진의 역사

초기 사진기의 프로토타입카메라 옵스큐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존부터 상을 그대로 재현해내어 회화 발전에 큰 영향을 준 물건이긴 하지만 그냥 회화의 스케치를 제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 전체를 그대로 옮겨서 재현하려는 구상은 있어왔고 19세기 들어 광학기술과 화학의 발달로 이를 실제로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이후 프랑스의 발명가 조제프 니에프스(Joseph Nicephore Niepce)가 10년간의 연구를 통해 드디어 1826년 세계 최초로 사진을 촬영하는데 성공한다.[5] 이 때 그의 사진현상법을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라고 했다. 문제는 한 장을 찍는데에 무려 6~8시간이 걸렸다는 것.(...)[6] 그래서 이 방법으로는 인물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풍경사진만 찍었다.

그 후 니에프스와 함께 연구를 한 화가 루이자크망데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가 기술을 개량해 1837년 좀 더 발전적인 사진현상법인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을 개발해냈다. 이는 은판사진법이라고 불리는 물건으로 아직 사진의 특성인 복제와 인화의 개념이 도입되지 않은 물건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 항목에 있는 그가 죽기 직전인 1849년 남긴 유일한 사진도 바로 이 다게레오타입으로 찍힌 사진이다.

같은 시기(1835년) 영국의 윌리엄 헨리 폭스 톨벗은 칼로타입(Calotype)을 발명했는데, 이는 종이인화법(talbotype)이라고 해서 현대 사진과 유사하게 감광처리된 종이를 이용한 인화의 개념을 등장시켰고 본격적인 복제 가능한 사진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현대 사진의 시초라고 할만하다. 초기에 엄청 비싸고 시간도 오래걸렸지만 여러 연구와 노력으로 1840년대에는 1장 찍는 시간을 20분 정도로 크게 줄였다. 그래서 1849년 죽기전에 생전 처음으로 사진을 딱 1장 찍어본 쇼팽은 운좋게 사진을 찍은 경우이다.

1851년 영국의 아처에 의해 개발된 습판사진술(collodion process)은 사진의 확기적인 개량을 가져왔다. 이것은 다게르가 발명한 사진술이나 톨벗의 종이인화법보다 노출시간을 줄이는데 기여하였고, 또한 음화(陰畵)에서 양화(陽畵)로 인화하는 과정도 간략화시켜 사진표현 상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발명이었다. 이미 은판사진이나 종이인화법에 의한 초상사진의 수요가 증가하였으나, 습판사진술의 출현으로 한층 더 유행을 자극하여 1850년대에는 그 정점에 이르렀다.

토마스 서튼이 찍은 세계 최초의 컬러사진. 1861년.

이후 1888년 코닥 사의 조지 이스트먼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사진의 개념인 롤 필름을 발명해냈다. 당시 25달러짜리 코닥 필름이 들어있는 코닥 1호 사진기에는 100장의 필름이 들어있었는데, 100장을 다 찍고 10달러와 함께 코닥 사에 우편을 보내면 사진을 다 인화해주고 새 필름을 넣어주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시스템이었다. 이로서 현대적인 사진이 완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으며 코닥사의 필름을 미에르 형제에디슨 같은 초기 영화 제작자들이 사용함으로서 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후 한 세기 가까이 사진의 기본틀은 유지되어 왔으나, 21세기에 들어선 직후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도래함으로서 사진은 기존의 필름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으로 분화되게 된다.

디지털 사진이 화소성능 향상과 더불어 아날로그 사진보다 선명하고 깨끗한 상을 얻을수 있고 아날로그 사진보다도 복제와 재생산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어 현재로서는 예전의 필름 사진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나, 아날로그 사진에서만 얻을수 있는 색채나 질감을 중시하는 매니아 층의 수요가 있어 그 존재 가치가 완전히 퇴색되지는 않을듯 하다.

일단 기술적인 측면에서 사진의 발전사는 대충 이러하나, 예술적인 측면이나 기법적인 측면에서 사진의 발전상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전개되어 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술하고 싶으신 분들은 향후 이 항목에 추가바람.

1.2. 사진 예술에 대한 인식

사진의 등장은 미술계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사실성을 중시하던 미술계가, 어떻게 해도 사실성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와 맞부딪치게 된 것. 이로 인해 미술계 전반의 방향은 급선회하게 된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인상파, 추상파나 야수파, 초현실주의같이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다기보다 작가의 독특한 예술관을 부각시키는 작품들과 미술사조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진의 극사실성에 도전하는 극사실주의 화풍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본디 사진은 회화의 복제수단 정도로 여겨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이후 19세기까지 사진기의 원형인 카메라 옵스큐라는 그림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한 스케치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 그런데 사진기의 등장으로 인해 상을 옮기는 과정에 있어서 더 이상 인간의 손을 빌리지 않게 된 것이다.

사진은 또한 판화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 회화의 복제기술로서 판화는 18세기에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시민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생겨난 부르주아, 중산층이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회화를 소유하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정밀하기로는 회화를 능가하고 복제하기 편하기론 판화를 능가하는 물건인 사진이 등장했으니 어땠겠는가? 값이 저렴한 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유산계급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기존에 회화를 다루던 예술가들은 사진의 극사실주의적 재현에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예술이라기보단 단순히 현실을 재현한 기술의 산물이라고 여기고 반발했던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이런 사진술의 발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의 개념, 원형의 벽을 허물게 된다. 발터 베냐민이 말한 대로 문명의 발달로 새롭게 등장한 복제기술은 '지금', '여기' 밖에 없는 일품 일회성의 오리지널에 대한 신화를 깨트리고 근대사회의 시민들이 눈뜬 평등의식과 직결되었다.

이런 경향은 현대에 있어서 복제품의 범람으로 오리지널에 대한 관심이 무디어지는 세태를 낳았으며, 현대 팝아트의 성립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일례로 사진의 등장 이후 사진으로부터 성립되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 영화같은 영상물. 레코드, 텔레비전 등 새로운 시대의 대중예술은 처음에는 예술의 복제수단으로 여겨졌으나 현대에는 각각 예술의 장르로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이러한 복제예술이라는 장르를 형성하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할만하다.

1.3. 사진의 예술적인 특징

사진은 태생부터가 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이런 특성은 기존 회화가 가지지 못 했던 표현과 리얼리티를 내세우는데 적합하였다. 이러한 사진의 특징은 예술적인 것과 결부되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낳는다.

  • 첫째 : 렌즈는 인간의 시야한계나 인식을 넘어서 현실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반영한다. 카메라는 사람의 눈이 못하는것을 할수있다.[7] 또한 이는 인간의 시야를 확장시키는데 기여한다. 망원경과도 같은 원리로 일반적으로는 보기 힘든 지역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며, 인간의 시야를 자유자재로 확장시키고, 그것을 실제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 둘째 : 사진은 모두가 과거에 일어난 사실들의 재현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시간을 현재 시점에서 재생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다시 말하면 리얼리티를 가진 기록 매체로서의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을 듯. 이는 사물의 순수한 객관화와 아직 체체화되지 않은 미분화된 현실대상이 표현세계에 나타나게 만들며, 그 자체가 현재성을 상징하므로 보는 사람에 있어 감정이입을 용이케하며 현실에 대한 일종의 대리체험이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 셋째 : 사진은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대상의 모습이 무한히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변화에 따라 대상이 갖는 의미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진에 의한 기록적인 재현의 영상은 실제 사물을 인간이 재현하는데 있어 기억의 애매함이나 모호함을 개선하고, 그로 인해 생긴 실제와 다른 개념의 재정립을 가능케 한다. 사물에 대한 기호적 의미부여가 실제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보았을 때 사진이 극단적인 사실주의로서 현실을 재현하게 되면 이런 개념을 설명하기에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진은 그 스스로가 개념이나 기호로서 작용한다기 보단 개념기호를 새롭게 갱신시키는 새로운 기호로서의 본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4. 초기 사진에 대한 인식

흔히 한국에서 최초로 사진을 찍은 사람이 고종이라느니 누구냐느니 말이 많지만, 실제로 한국 최초의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19세기 중반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러시아 공사관 등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었다. 당시 사신으로 다녀온 사람들의 기록이나 최초의 사신단 단체사진(...) 같은 것이 기록에도 남아 있다. 그리고 조선 내에서 처음 찍힌 조선인의 사진은 바로 신미양요 시절 미군이 찍은 조선군 포로 사진이라고.

참고로 고종은 1884년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이 훗날 천문학자가 되는 미국의 퍼시벌 로웰이었다.

사진기가 조선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사진찍는걸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이유는 '자기와 똑같은 모습이 종이에 찍혀 나온다'는 것에서 기원하는데 이 때문에 사진기가 영혼을 뺏어간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 밑에도 나오지만 이는 전세계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구한말 조선에 사진기가 처음 들어왔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기다 아이를 잡아서 그걸로 현상액을 만든다는 괴담까지 나돌다가 단발령이 내려지자 머리 안 잘린 모습을 보존할 수 있다는 이유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영혼을 빼앗긴다는 이유로 구한말의 사진을 보면 사진속 사람들의 눈빛이 매우 강렬하단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영혼이 눈을 통해 왕래했다는 믿음 때문에 눈을 일부러 강하게 뜨고 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전 세계 어디서나, 심지어 유럽권 일부, 시골에서도 나타나던 일이다. 19세기 오스만 제국 술탄에게 프랑스 사진사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술탄이 "내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진을 찍은 자의 목을 원한다."고 하여 사진사를 데꿀멍시키고 사진을 끝내 안 찍은 일화도 있다. 19세기 아프리카나 중남미,아시아 각지에서도 무턱대고 사진을 찍으려던 백인들이 죽거나 구타당하고 사진기가 박살나는 일은 많이 벌어졌다.

지금도 파푸아뉴기니, 바누아투 같은 터부가 강한 문명권에 사는 주민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뺏긴다고 여겨 사진을 찍히지 않으려고 한다. 사진기가 널리 쓰이는 터부가 강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저런 미신을 믿지는 않아도 왠지 찜찜해 사진찍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이 무턱대고 찍다가 현지인들과 갈등을 빚고 경찰까지 나타나 필름을 압수당하거나 유치장 신세로 상당한 벌금을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해외 여행을 많이 다녀온 이들은 반드시 현지인 허락을 맡고 사진을 찍으라고 거듭 강조한다. 하긴 국내에서도 지역이나 시골에 가서 현지인을 일하는 것이나 여러가지를 허락도 없이 사람에 따라 사진찍다고 욕먹는 경우도 꽤 있으니 주의할 것.

1.5. 그 밖에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때면 사진 찍으면 추억으로 남는다며 추억을 이용해 꼬시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는 사진을 찍는 사람 뒤나 근처에서 기괴한 표정과 자세를 연출해 사진을 망치는(...) 장난이 잦은 편으로, 이를 photobombing 이라고 한다. 참조

세계 어디든 찍으면 모델비를 내라고 몰려오는 사람도 많다. 이건 사진찍은 관광객이 싫어한다 내던 안 내던 알아서 조심해야 하지만 아주 제대로 걸리면 미리 대기한 동료들이 몰려와 위협을 가하며 돈을 강요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현지인 사진모델 상업성(?)은 선진국에서도 꽤 있으니 특이한 옷차림이나 분장으로 있는 사람을 무턱대고 찍으면 돈을 준비하는 게 낫다. 한 축구팬은 스페인에 가서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보러갔다가 경기장 근처에서 귀여운 털복숭이 인형옷을 입고 마드리드 깃발을 들고 다니는 사람과 같이 사진을 찍고 5유로[8]나 되는 돈을 억지로 내던 경우도 있다...

쿠바같은 경우는 특이하게 또는 멋지게 입고 다니는 현지인을 찍으면 그야말로 귀신같이 숨어서 살피던 현지인이 튀어나와서 모델비내라고 강요하는 실제 사례들이 꽤 있다. 돈만 밝힌다고 할 수도 있지만 현지인들에게 그게 벌어먹을 직업이라고 항변하는 경우도 있기에 무턱대고 욕할 일만도 아닌 듯.

자연물 사진의 경우 일부 사진작가들의 자연 훼손 행각이 꾸준히 문제시되고 있다. 보기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새끼 새들을 둥지에서 억지로 꺼내 나뭇가지에 앉히거나 심지어 본드로 새의 발을 나뭇가지에 고정시키는가 하면, 희귀 야생화나 식물 사진을 찍겠다고 주변의 다른 식물들을 훼손하거나 아예 피사체 주변을 갈아엎는 등의 사례가 있다. 심지어 2014년 7월에는 유명 사진작가가 사진 구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울진금강송 군락지에서 금강송을 무단 벌목한 일이 알려져 큰 논란이 되었다.#[9] 아이러니한 것은 문제의 사진작가는 평소 금강송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찍어왔다고 밝혀왔다는 점.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일들이 이미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무용담처럼 전해지고 있으며 심지어 '관행'으로 생각하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롯데월드 등 놀이공원에서는 놀이기구 위에서 사진을 찍어 주는 속칭 온라이드 포토존이 존재한다.

과거 나라사랑 카드에는 사진이 들어갔었다고 한다(...) 물론 현재 나라사랑 카드에는 사진이 없다.

사진이 들어가는 카드도 있다. 서울랜드, 에버랜드, 롯데월드의 연간회원권에는 사진이 반드시 들어간다.

1.6. 사진 촬영이 금지된 장소

  • 일부 박물관: 박물관에서는 전시물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단 사진 촬영을 허용하는 박물관도 많이 있으며, 러시아 등 몇몇 나라에서는 입장료 외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권리'를 따로 돈을 받고 팔기도 하는데, 이를 사지 않고 사진을 찍다간 곳곳에 배치된 감시원의 제지를 받는다.[10]
  • 놀이기구 위: 놀이기구를 타면서 사진을 찍다가 사진기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정 사진을 찍고 싶다면 놀이기구를 다 타고 나서 찍자. 때문에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면 직원이 운행 중 사진, 동영상 촬영을 제한한다는 멘트를 남긴다.
  • 부대: 군부대는 보안을 중시하는 곳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지도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위성사진에서 군부대가 있는 자리는 이나 같은 자연물 이미지로 대체된다. 때문에 전역한 사람이 사진 잘못 찍었다가 영창에 갈 뻔했던 사건도 있다.(...)
  • 교도소: 교도소는 보안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다.
  • 도라산역: 사진 촬영이 제한되며 북쪽을 배경으로 한 사진은 찍을 수 없다!
  • 종교적 성지: 특히 힌두교의 성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런데 힌두교라도 지역별로 달라서 찍어도 무방한 곳도 많다.
  • 대한민국차량사업소 : 대한민국 철도법상 차량사업소는 남북분단의 특수성상 군부대와 비슷한 수준의 보안을 해야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 철도교량, : 몇몇 나라에서는 국가보안을 이유로 군부대에 준하는 보안규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는 카메라를 꺼내기만 해도 군인이나 경찰이 다가와서 호루라기를 불거나 카메라를 압수하기도 하니 주의하자.
  • 수도권전철 4호선 중앙역 : 이곳은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013년 11월 18일에 수도권전철 4호선 중앙역 밖을 지나던 행인이 역 담벼락을 촬영하자 중앙역의 역무원이 강제로 역무실로 연행해 가서 폭언을 일삼고 벽 사진을 삭제하도록 한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에 대해서 역장의 미온적인 사과가 있었고, 불법 연행을 한 역무원은 철도청에서 교육 처분을 받았으나,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수도권전철 4호선 중앙역 근처에서 사진을 찍으면 역무원에게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

1.7. 대중매체에서의 사진

사진을 찍는 것을 게임으로 구현한 게임들로는 격사보이동방프로젝트 시리즈의 동방문화첩, 더블 스포일러 ~ 동방문화첩, 닌텐도 64용으로 나왔던 포켓몬스터 관련 게임인 포켓몬 스냅[11], 그리고 호러 게임영 제로,GTA 시리즈가 있다.

1.8. 사진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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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윈도우 xp에 있는 초기 바탕화면 이다.
  • [2] 그리스어의 'phos'(. 소유격은 photos)와 'graphein'(쓰다, 새기다)에서 유래한 말로, 1839년 존 허셜 경이 처음 사용하였다.
  • [3] 빛을 전하로 변환시켜 화상을 얻어내는 센서이다. 전하결합소자라고도 불리며 디지털 카메라에서 많이 사용된다.
  • [4] 마이크로프로세서나 SRAM 등의 디지털 회로를 구성하는 데에 이용되는 소체. 상보성 금속 산화막 반도체라고도 불리며 이를 이용한 고체 촬상 소자등에 사용된다. 역시 디지털 카메라 등에서 많이 사용된다.
  • [5] 해당 사진을 보려면 여기를 참조. 21세기 이후로도 이 장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
  • [6] 사진을 찍는데 필요한 아스팔트가 마르는 데에 그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 [7] 카메라로는 사진의 효과를 넣을수도 있고 원시,근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 [8] 약 7천원.
  • [9] 벌목 자체는 2014년 5월에 이루어졌으나 본격적으로 기사화되기 시작한 것은 7월이다.
  • [10] 사실 사진 자체가 전시물에 주는 영향은 없다.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플래시를 발광하는데, 그 빛이 회화나 종이 유물들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진을 금지하는 것일 뿐.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과 재산권 보호를 위해서 막는 것이다. 박물관들과 미술관들은 전시물 사진을 판매하는 것으로 수익을 거두는 곳이 많기 때문에 그렇다.
  • [11] 이 게임의 주인공인 찰칵이(토오루)는 애니메이션에도 등장했었다.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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