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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문서

last modified: 2015-04-04 11:35:12 by Contributors

Contents

1. 현실의 사해문서
2.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사해문서

1. 현실의 사해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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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71.53 KB)]


한자: 死海文書
영어: Dead Sea Scrolls

개신교에게 까이던 <제2경전>들의 히브리어 판본을 제시함으로써 가톨릭구원자가 된 문서
집회서(시라서), 토빗기 등의 히브리어 사본이 별견되었다. 애초에 개신교에서 제2경전을 까는 가장 큰 근거 중 하나가 '히브리어 사본의 부재'였다(...)

고고학상의 큰 발견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 사해문서를 복구하기 위해 독일을 중심으로 한 화석 복원 등의 기술이 서적 등 문서 복구에 응용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많은 문서들과 고고학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벽화 등이 복원되고 있다. 여러가지로 역사적, 학술적 의미가 많은 인류의 재산이라 할 수 있다.

1947년 2월 ,이스라엘의 유명한 소금호수 사해 주변에서 발견된 히브리어 성경이다. 아마도 에세네 일파의 수도승이 당시 판을 쳤다고 생각되는 도적떼의 손에서 문서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맞춰진 가죽이나 도기로 된 통에 자신들의 기록과 문서를 사해주변 사암 동굴에 숨겼던 것을, 베두인족 목동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다가 발견하게 된다. 목동은 두루마리 중 3개를 한 골동품상에게 헐값에 넘겼다. 이들 두루마리 중 5개를 예루살렘의 시리아 정교회 대주교 마르 아타나시우스 사무엘이 샀으며, 나머지 3개는 그 해 11월24일 유명한 성서학자인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 고고학과장 E.수케닉 교수가 매수하였다. 당시 예루살렘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아랍인 구역인 구 예루살렘과 유태인 구역인 신 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었고, 수케닉 교수는 철조망 너머로 아랍인 골동상인이 보여주는 두루마리를 보고 눈이 번쩍 뜨여서 목숨을 걸고 철조망을 넘어가서 그 두루마리들을 샀다. 1954년 수케닉의 아들 Y.야딘이 25만 달러를 지불하고 사무엘 대주교로부터 5개의 두루마리도 사들여 현재는 이들 두루마리 전부가 이스라엘 국가의 소유로 되어 있다.

그 뒤로 계속 발굴과 탐사, 연구가 진행되어 총 11개 동굴에서 100여 개 이상의 문서나 문서 파편, 단편 등이 발견되었다. 다만 이 문서들은 해외 반출의 문제나 돈을 노린 고문서 사냥꾼들의 무분별한 매각 행위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이것들을 다시 사들이거나 찾아내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사해문서는 작성당시의 시대상과 유대인들의 가치관, 신앙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이 담겨있으며 구약과는 표기법이 다른(Yahweh가 아닌 Elohim으로 적혀 있음)형태로 작성되어있다.

사해문서의 작성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발견 당시에는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가 작성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다수였다. 허나 시간이 지나며 다양한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 많은 반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에세나파 외에 제록스 파가 작성했다는 설, 유대교의 한 종파가 아닌 여러 학파가 제작했다는 설 반론들이 있다. 사해문서를 동굴에 보관한 이유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 사해문서의 작성시기는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세기 경으로 보고 있는데 당시에 큰 사건들이 많았다. 유대교의 여러 종파들간의 다툼으로 불화가 심했고 이로 인해 갈라져 나온 분파들이 자신들의 구원을 바라며 동굴에 사해문서를 보관했다는 설이 있다.
  • 120년간 로마의 통치를 받던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로마군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무력진압한 사건 당시 일부의 유대교인들이 예루살렘 밑의 수로를 통해서 외부로 빠져나왔는데 그들이 사해문서를 임시로 동굴에 보관했다는 설이 있다. 참고로 이 당시 최후의 격전지였던 마사다에서도 사해문서와 같은 종류의 문서들이 발견되어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서들의 보관 상태가 전반적으로 그리 좋지 못하고, 몇몇 문서들은 단지 몇 글자 혹은 몇 문장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훼손되거나 파편화된 채로 남아 있다. 영문 위키의 문서 총목록들을 봐도 '미확인(unidentified)' 이나 '미분류(unclassified)' 로 분류된 문서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해석이나 보족의 옳고 그름 여부를 따지는 신학자들이나 고고학자, 언어학자 등의 키배가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가톨릭이나 개신교, 혹은 유대교 쪽에서 문서의 상당수를 왜곡해 해석하거나 몰래 파기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마이클 베이전트와 리처드 레이가 공저한 '사해사본의 진실' 이라는 책에서 이 음모론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어판도 간행되어 있다. 음모론 까지는 아니더라도, 성경 관련 논쟁에서 흔히 던져지는 외경이나 위경의 분류 문제, 영지주의의 현대적 수용 같은 어획량 만땅 떡밥들과도 관련이 있어서 앞으로의 연구나 논쟁 방향도 주목된다.

2003년 가을즈음 한국내에는 총 3권으로 구성된 번역서가 정발 되었다.

2011년에 이스라엘 국립박물관에서 홈페이지에 원본 이미지와 해설 등을 공개하였다.

대항해시대 3에서는 사해사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성분묘 교회 발견시에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전투시에 낙뢰를 쓰는 '심판'이라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으며, 게임 내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전투인 북경 공략 등에 필수적인 아이템이기 때문에 반드시 얻어야 하는 아이템 중 하나. 또한 발견 이후 사해사본을 해독하면 바벨탑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2.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사해문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예언서 비슷한 것.

제레가 실행하는 시나리오의 기반이며 이카리 겐도후유츠키 코조는 이 문서에 사도의 출현과 서드 임팩트에 대한 예언이 적혀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사해문서에 언급되지 않은 일도 간혹 벌어진다고 한다. 게임 신세기 에반게리온 2에서는 제1시조 민족이 작성한 생명의 씨앗과 롱기누스의 창의 사용법에 대해 적혀있다고 언급된다.

작중에 언급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제레가 보유한 사해문서는 제1시조민족이 남긴 것을 종교집단이 자신들의 교리에 맞춰 옮겨적은 것이며, 이면의 사해문서라 불린다. 현실의 사해문서는 이 원본 사해문서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만 골라 공개한 것이라고 한다.

신극장판에서도 제레의 중요 시나리오로 부각되는데, 여기서 에반게리온 6호기를 두고 사해문서의 알려지지 않은 외전이 언급된다. 이전 TV판의 설정을 적용해서 보면 아마 이면의 사해문서 중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부분인 듯. 그리고 나기사 카오루는 이 사해문서를 가리켜 태고적부터 전해져온 절멸 프로그램이라고 표현한다.

여담이지만, 2007년 12월~2008년 6월에 걸쳐 항목 1의 사해문서가 전쟁기념관에서 전시회를 가진 적이 있다. 이 때 몇몇 에바 덕후들이 설레면서 달려가 15,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갔다가 낚였다는 후문이 있다 카더라. 당연하지만 항목 1에서 종말론적 이미지만 떠 왔을 뿐, 실제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에반게리온 내부의 설정을 적용해서 본다고 해봤자 이건 이면의 사해문서도 아니니 그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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