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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크루즈 해전

last modified: 2015-04-05 17:54:18 by Contributors

산타크루즈 해전
날짜
1942년 10월 25일 ~ 1942년 10월 27일
장소
과달카날 제도
  교전국1 교전국2
교전국 미국 일본
지휘관 토마스 C. 킨케이드 나구모 주이치
병력 정규항공모함 2척
전함 1척
순양함 6척
구축함 14척
항공기 136기
정규항공모함 2척
개조항공모함 2척
전함 4척
순양함 10척
구축함 22척
항공기 199기
피해 규모 항공모함 1척 침몰
구축함 1척 침몰
항공기 81기 손실
266명 전사
항공기 92기 손실
400~500명 전사
결과
일본의 전술적 승리, 미국의 전략적 승리
기타
일본이 쥐어짜낸 마지막 정예병력들이 여기서 손실.

상위항목 : 태평양 전쟁, 과달카날 전투

Contents

1. 개요
2. 배경
3. 경과
4. 전투
4.1. 즈이호 영전대 반전 사건
4.2. 위기의 엔터프라이즈
4.3. 호넷의 운명
5. 전투 결과
6. 기타

  • 자료는 일본측과 미군측이 주장하는 자료가 서로 다르다. 그러나 두 자료의 차이는 크지 않으므로 각각 피해나 함대 규모는 각 국가의 자료를 참고로 적혀져 있다.

1. 개요

1942년 10월 26일 제2차 세계대전, 그중에서도 과달카날 전투에서 있었던 미국 해군과 일본 해군의 해전. 일본의 수상함대가 치뤘던 전투 중엔 마지막으로 베테랑 파일럿들과 아직 미군에게 밀리지 않는 성능의 함재기들로 미국의 함대원형진VT신관에게 맞서 싸웠던 전투다.

한줄로 요악하자면, 일본군 해군과 미 해군이 각자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창과 최강의 방패로 맞붙은 전투.

2. 배경

일본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저번엔 실패했지만 이번에야말로 미 항모부대를 박살낸다!!"라는 생각으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손실된 1 항공전대의 파일럿들을 채워넣은 항공모함 쇼카쿠, 즈이카쿠, 준요, 즈이호 네 척과 전함 두 척을 투입해 미 항모부대와의 전투를 준비한다. 윌리엄 홀시 제독도 이를 알고 엔터프라이즈가 소속된 16 기동부대와 호넷이 소속된 17 기동부대를 내보내 이들에게 맞설 준비를 한다.

25일 저녁까지 미군은 캑터스 비행대 등 여러 비행장에서 정찰기를 투입해 일본 항모부대를 찾는 데 신경을 기울였고 이때 일해군 함대를 발견했다는 아군의 무전을 받은 미해군 함대는 엔터프라이즈에서 정찰대와 공격대를 보냈으나 허탕을 치고 귀환한 함재기들은 야간 착함 상황에 처하게 되어 7대의 함재기를 손실하게 되었다. 일본은 반대로 이들을 피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육군의 패색이 짙어지자 야마모토는 과달카날 지원부대까지 투입해 미 항모부대를 공격할 준비를 한다.

3. 경과

새벽에 미군 소속의 PBY 카탈리나 수상기가 일본 함대를 두 번이나 발견하나 통신 불량으로 두 시간 뒤에나 소식이 전달된다. 그리고 5시 경, 홀시 제독은 토머스 킨케이드 제독에게 공격명령을 전했다.

"Attack-Repeat-Attack!"
"공격하라, 반복한다. 공격하라!"
-윌리엄 홀시.

홀시답다

그런데 그 두시간 사이에 이미 정찰을 떠나있던 SBD 돈틀리스 중 두 기가 7시 40분 즈음 일본 항모부대를 발견했는데, 마침 항모부대의 상공에는 호위하는 제로센이 없었고 그 돈틀리스 두 기가 투하한 500 파운드 폭탄에 의해 즈이호는 전투에 참가하기도 전에 중파되어 퇴각하게 된다.[1]

하지만 즈이호가 비어있던 이유, 그리고 호위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일본 항모부대가 함재기들을 출발시켰기 때문이었다.

4. 전투

6시 30분경 미 항모부대의 위치를 파악한 일본군은 그곳으로 함재기들을 발진시켰다. 이들은 미군의 레이더에 포착되었으나 미군은 이들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할 수 없었고 적군인 것을 알았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이때 엔터프라이즈는 방공전투의 이점을 얻기 위해 때마침 발생한 스콜 아래로 진입해서 일본의 타겟이 되는 일을 피했고 대신 호넷이 일본군에게 집중공격 당하게 된다. 한편 호넷의 함재기 부대는 갑판이 박살난 즈이호를 무시하고 쇼카쿠를 타겟으로 정해 폭탄을 명중시켜 쇼카쿠를 전투불능 상태로 몰아 붙였다. 이 쇼카쿠를 미끼로 쓸 것인가 퇴각시킬 것인가에 대해 논의가 오갔지만 결국 나구모 제독은 쇼카쿠의 퇴각을 결정한다.

4.1. 즈이호 영전대 반전 사건

그런데 엔터프라이즈의 2차 공격대는 즈이호에서 이륙한 제로센 편대와 마주치게 된다. 엔터프라이즈의 공격대는 제로센 편대를 무시했는데, 제로센 편대가 방향을 돌려 본래 임무인 뇌격기 호위를 포기하고 엔터프라이즈의 공격대에게 공격을 했다.

엔터프라이즈의 편대는 총 19기 중 와일드캣 3기 격추, 1기 손상, 뇌격기 2기 격추, 1기 불시착, 1기 손상의 피해를 입었고 즈이호의 편대는 총 12기 중 제로센 2기가 격추되었고, 변경된 작전으로 모함의 방향을 상실한 제로센 7기가 행방불명 되었다.

즈이호의 제로센 편대는 엔터프라이즈가 쇼카쿠와 즈이호를 포기하고 전진함대를 공격하게 함으로써 나름의 목적을 달성하였지만[2], 결과적으로는 쇼카쿠의 공격기 편대가 전투기의 호위 없이 미 항공전대에 돌입하게 방치하여 큰 피해를 가져오게 했으며, 호넷의 격침이라는 목표 달성은 결국 실패했다. 게다가 모함의 방향을 상실한 제로센 편대가 귀환하지 못하여 쇼카쿠에 복귀한 제로센은 꼴랑 3기. 즈이호가 전투 초기 기습 폭격으로 항공갑판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더 이상의 편대가 출격하지 못하였음을 감안한다면 일본군으로서는 매우 큰 피해였다.

이 점에 대해서 당시 편대장 히다카 모리야스(당시 대위)는 "당시 적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반전을 감행했다."고 죽기 전에 회고하였다. 실제로 엔터프라이즈 정찰 폭격기의 공격과 호넷의 1차 공격대로 인해 이미 쇼카쿠는 대파, 즈이호는 중파된 상태였고, 만약 엔터프라이즈의 2차 공격대까지 합류했다면 침몰까지 갈 수도 있던 상황이기는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전술적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피해를 최소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 이러한 점에서 이 사건은 현 일본 항공자위대 간부교육 교재에 "현장에서의 판단이 결과적으로 사령부의 의도와 일치하는가, 혹은 일치하지 않는가?"의 사례로 교육되고 있다.

이렇게 엔터프라이즈의 2차 공격대는 중간에 적 전투기 요격에 피해를 입고 호위도 없는 상태에서 헤매던 공격대는 곤도 제독의 전진부대에 달려들었고 이것은 나구모 주이치 제독과 야마모토가 뜻하던 바였다. 게다가 그마저도 전부 빗나간다. 호넷의 3차 공격대에 이르러서는 원래 목표를 잊어버리고 전진부대에 달려들었고 중순양함 치쿠마가 대파되나 결국 쇼카쿠는 추가 타격을 입지 않고 목숨을 건진다.

한편 호넷은 일본군 전투기들에게 폭탄 다섯 발과 어뢰 두 발, 전투기 두 대를 얻어맞고 결국 대파되었다.[3] 미군은 호넷에 필사적으로 진화작업에 들어갔고 중순양함 노샘프턴이 간신히 숨은 붙어있는 호넷을 예인하기 시작한다.

4.2. 위기의 엔터프라이즈

그때 스콜이 걷히고, 일본의 함재기중 한 기가 그제야 엔터프라이즈를 발견한다. 이 소식을 들은 나구모는 급하게 엔터프라이즈로 목표를 옮기고 재공격을 준비했고,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방공망과 함재기들의 전투가 시작된다. 이때 엔터프라이즈의 대공관제에 문제가 생겨 대신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네임쉽 사우스다코타가 대공사격을 관제했었다.

일본군의 2차 공격대는 엔터프라이즈로 목표를 옮겨 급강하 폭격을 시도했고,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들과 사우스다코타, 그 외 호위함들이 목숨을 걸고 맞섰지만 이때까진 아직 정예 파일럿들이 타고있던 일본 함폭들은 끝끝내 방공망을 뚫고 들어왔고 엔터프라이즈에게 폭탄 두 발이 명중, 지근탄 한 발이 있었다. 그리고 직후 3차 공격대가 다가와 뇌격을 시도했고, 엔터프라이즈는 거칠게 키를 꺾고 아군 배랑 충돌할 뻔 하는 등 그 생지옥에서도 어뢰 9발을 피하고, 모함을 지키기위해 방공망 안으로 목숨을 걸고 들어온 함재기들 덕분에 결국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여담으로 원래 나구모의 의도는 엔터프라이즈 역시 좌우에서 폭격기와 뇌격기의 협공으로 엔터프라이즈를 꼼짝 못하게 할 생각이었으나 저 스콜 탓에 공격 시간도 어긋나고 여러가지가 겹쳐 폭격기와 뇌격기가 따로따로 공격하게 된 것이었다. 이후 공습을 한 번 더 받았으나, 지근탄 1발만 맞았다. 다만 너무 가까이에서 폭탄이 터졌기에 또 피해를 입었지만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넷 대파로 인해 대서양에서 활동 중인 레인저, 후방에서 수리 중인 새러토가 뺀 태평양 미해군 함대의 유일한 정규항모가 되어 버린 엔터프라이즈이었고 적의 공격 종료 후 자신과 잔존 호넷 항공대를 이착함이 불가능 할 정도로 비행갑판 및 격납고에 적재하여 전투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토마스 C. 킨케이드 제독은 후퇴를 명령했고 엔터프라이즈는 대파 된 호넷을 남겨두고 전선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이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는 전사 44명, 부상 7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앞전에 있었던 동부 솔로몬 해전의 전사 74명, 부상 95명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였다.

4.3. 호넷의 운명

즈이호와 기함인 쇼카쿠가 전투 불능이 되어 퇴각하면서 지휘권은 준요의 '가쿠다 가쿠지' 제독에게 넘어갔는데, 가쿠다 제독은 미드웨이에서 요크타운이 몇번이고 일본 해군에게 공격을 받고도 무슨 일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4] 호넷의 숨통을 확실히 끊기로 결정하고 4차. 5차, 6차 공격대를 보내 호넷을 공격했다. 동력 일부가 복구되어 적의 공격이 없었다면 이탈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던 호넷이었지만 추가 공격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고 결국 홀시 제독은 호넷을 포기한다.

호넷의 항공대는 호넷이 대파 된 후 적의 공격을 버티어낸 엔터프라이즈가 수용하여 전선에서 이미 이탈한 상황이었고 미군은 호넷을 자침시키기 위해 포탄과 어뢰를 호넷에게 잔뜩 쐈지만 호넷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안 가라앉았고, 일본 함대가 다가오자 결국 미군은 호넷을 버려두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미 함대가 버리고 간 호넷을 발견한 제국 해군은 구축함 아키구모와 마키구모 두 척을 별도로 편성하여 이들로 하여금 함대로부터 떨어져 호넷을 인양하기를 명령한다. 호넷의 자침에 실패한 미합중국 해군은 승조원들을 모두 대피시켰음에도 급히 도망치느라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였고, 인양 케이블도 그대로 남겨둔 채 도주한 상황이었다. 이후 버려진 호넷을 뒤따라온 일본해군 제3함대가 포착한다. 당시 일본군의 사령부는 호넷을 노획하길 원했지만, 현장의 일본군 지휘관들은 이미 신나게 불타오르고있는 데다가 수시로 배의 이곳저곳이 폭발하는 호넷을 노획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아키구모의 함장 소마 쇼헤이 중좌는 이러한 호넷의 상황을 보고서는 미국도 인양을 포기하였다고 판단, 이를 인양치 않고 격침시키기로 한다.

이에 삼식 연장포 스물네 발을 사격하나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하였고, 이번에는 접근하여 폭뢰를 투사하여 격침시키려 하였으나 "역시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은가?" 라는 의견에 중단하고 어뢰를 사용하여 뇌격처분을 하기로 한다. 이에 아키구모와 마키구모가 각각 두 발씩의 어뢰를 발사하여 세 발을 명중시키고 호넷은 서서히 우현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대본영에 제출할 사진을 촬영하여야 하는데 이미 해가 저물어 어두워져 사진촬영은 단념하고만다. 이에 이들은 한 가지 의견을 내는데, 호넷을 그림으로 그려서 제출하자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림은 함 내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나카지마 이츠키' 신호원이 맡아 호넷을 그리는 중 제대로 보이지 않자 탐조등을 조사, 이에 마키구모로부터 "무슨 짓인가?" 라는 항의를 듣고 중단한다. 미해군에게 단번에 위치를 노출시킬 수 있는 이러한 위험한 행위를 수 차례 반복, 결국 호넷의 스케치는 무사히 완성된다.

5. 전투 결과

이 전투 결과 미군은 항공모함 한 척을 잃었고 한 척은 중파당했다. 이로서 미군이 개전 당시 가지고 있던 7척의 항공모함 중 새러토가와 엔터프라이즈는 전투로 부상당해 후방으로 빠져야했고, 나머지 네 척은 전부 태평양 깊고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한 척인 레인저는 지구 반대편 대서양에서 나홀로 임무 수행중이었다.


미국이 입은 피해상황만 놓고본다면 일본의 대승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본 역시 피해가 작지 않았는데, 쇼카쿠와 즈이호는 전투에 투입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며 즈이카쿠준요는 비행대를 다수 잃었고 히요는 기관부 문제로 전투에 나갈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전투로 일본은 베테랑 파일럿들을 거의 다 손실하게 되어 이후로 이런 식의 잘 짜인 작전을 실행할 수 없게 된다.[5]
미드웨이 해전에서 핵심 장비인 항공모함 다수를 잃어버리면서 금이 가버린 일본해군 항모기동부대라는 조직이 역시나 핵심 인원인 조종사/항공승무원을 대거 잃어버리면서 확실하게 와해된 것이다.

결국 일본은 준요를 제외한 전 항공모함을 일본본토로 후퇴시키고, 1944년 필리핀 해 해전 때까지 미국과의 함대항공전을 피하게된다.


결국 당장 투입 가능한 항공모함은 준요 한 척뿐이었는데 어리석은 일본군은 준요의 함재기를 보충해주지 않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즈이카쿠와 함께 엔터프라이즈를 중파시키고 호넷을 격침시키는 등 대활약을 했지만, 그 대가로 많은 함재기를 잃었기에 보충이 필요했는데 그러지 않은 거다. 다른 데서 비행기를 긁어모아서라도 보충해준다는 수도 있었지만 예전에 그랬듯 일본군은 이 선택지를 무시했다. 이길 생각이 없구나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해도 당장 미국에게 남은 항공모함은 한 척도 없었고, 항공모함을 제외한 수상함 세력은 일본이 우위에 있었다. 이에 일본은 구축함을 동원한 동경특급 대신 대규모 수송선단을 파견해 과달카날에 증원군을 보낸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완전히 과달카날을 휘어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And then there was one patched-up carrier." - Rear Admiral Thomas C. Kinkaid
"...그렇지만 응급수리된 한 척의 항공모함이 남아있었다." - 해군소장 토마스 C. 킨케이드



6. 기타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일본은 세련된 전술을 성공시킬 전력이 남지 않게 된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미드웨이 해전보다 이쪽이 분수령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드웨이 해전 같은 경우 항공모함이 네 척이나 말아먹혔지만 조종사들은 대부분 구조된 반면 이쪽은 항공모함 단 한 척도 격침되지 않았으나 조종사들을 대부분 잃었기 때문이다.

전투에 참여한 함정중 사우스다코타의 첫 함장이던 토머스 대령은 함 승무원들의 상태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는데, 옷도 거의 씻지 않았고 배의 청결상태도 개판이었다. 그러나 토머스 대령이 단순히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딴 거보다 우린 실전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그런 것이었고, 그의 생각은 옳았음이 아주 잘 드러났다. 사우스다코타는 이날 하룻동안만 적기 26기를 격추했다.[6]

제2차 세계대전 도시전설급 황당실화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이때 구축함 '스미스'는 적기의 자폭특공[7]에 맞고 불이 붙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스미스는 위기였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화재의 여파로 그 적기가 싣고 있던 어뢰가 유폭해서 지옥도가 펼쳐졌다. 그때 스미스의 함장은 재치를 발휘해 사우스다코타의 뒤로 지나갔는데, 거대한 전함이 지나가며 일어난 물보라에 이 화재는 빠르게 진압되었다. 그 이후 스미스는 아직 성한 장비들을 활용해 전투를 지속했다.

또한 이 전투에서 엔터프라이즈의 파일럿 스탠리 '스위드' 베타자는[8] 호넷을 공격하고 귀환하던 적기를 2기 격추하고 엔터프라이즈를 방어하며 5기를 격추해 이날 하룻동안만 7기를 격추해 총 12기의 스코어를 기록하며 더블 에이스를 달성한다. 그 외에도 같은 항공대 소속이던 로널드 '플래쉬' 고든은 치킨 게임으로 적기를 격추하는 데도 성공한다. 여러모로 이야깃거리들은 미드웨이 해전 못지 않게 많았던 해전.

엔터프라이즈 중심으로 산타크루즈 해전을 묘사한 다큐멘터리. 위에서 언급된 두 명의 파일럿도 이 다큐멘터리에서 본인들이 직접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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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만일 조금 더 무거운 폭탄이 실려있었거나 유폭할 함재기라도 있었다면 저승으로 떠났을 거라는 것이 중론. 이래서 행운함인가?
  • [2] 미군 편대로서는 운이 없게도, 격추된 5기 중 2기가 지휘관급 함재기였다.
  • [3] 호넷과 호위함들에게 공격받아 비행불능이 된 파일럿들이 각각 함교와 선체에 자의로 자폭돌격을 감행했다. 카미카제따위와는 격이 다르다!
  • [4] 일본군은 산호해 해전에서 요크타운이 죽었다고 확신했지만 전방에서 응급수리 후 진주만으로 돌아가 3일 동안 긴급수리를 받고 다시 작전에 참가한 요크타운은 이어진 미드웨이 해전에서 몇번이고 저승 문턱에서 꿋꿋하게 살아 돌아와 성치않은 몸으로도 일본 해군을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그 결과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항모 숫자를 잘못 판단한 일본군은 항모세력을 상큼하게 말아먹게 된다.
  • [5] 일본측 함재기는 92대, 미국측 함재기는 74, 무엇보다도 일본측 조종사는 148명, 미국측 조종사는 39명으로 차이난다. 일본측의 비행기는 212대, 미국측의 비행기는 171대로 압도적인 전력차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 [6] 같은 VT 신관을 사용하던 엔터프라이즈의 대공포 사수들은 6기밖에 격추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사우스다코타의 기록에 대해서 워싱턴의 선원들은 26기는 부풀려졌고 14기 즈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7] 군부가 정신줄을 놓고 이걸 정식 전략으로 채택하기 전에도 파일럿들이 자발적으로 '어차피 죽을 거 하나라도 더 같이 죽자!'하면서 적에게 들이받는 일은 자주 있었다.
  • [8] SBD 돈틀리스 항목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산호해 해전에서 SBD 돈틀리스의 날개로 제로센의 날개를 말 그대로 썰어(....) 격추시킨 기록이 있는 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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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5 17: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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