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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last modified: 2015-10-03 22:16:24 by Contributors

Contents

1. 제5공화국 출범 직전 만들어진 초법적 교정 기관
1.1. 삼청교육대에 징집된 대상
1.2.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1.3. 삼청교육대가 등장하는 창작물
1.4. 삼청교육대를 이용한 농담
2. 한국 하드코어 밴드

1. 제5공화국 출범 직전 만들어진 초법적 교정 기관

Samcheong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울교대
'들어오면 절대 나올수 없는 대학교'로 비꼬는 의미에서 '삼청교육대학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방학 때 노가다판에 간 한 교대생의 경우 교대생이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어떤아저씨가 자기도 교대나왔다며 '삼청교육대'출신이라는 되도않은 드립을 쳤다 카더라...


제4공화국 말기인 1980년 8월부터 1981년 1월까지 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약칭 국보위) 위원장이었던 전두환이 만든 대표적인 인권유린 막장행각이자 남한판 정치범수용소,굴라그,라오가이. 제6공화국 정부에서도 강제수용소라고 정식 인정하였다. 다만 아예 맘먹고 수용자를 모두 죽이는 살인공장이었던 아우슈비츠와는 성질이 약간 다른 것으로 나치의 아우슈비츠 같은 곳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었으니 삼청교육대는 굴라그나 북쪽수용소,중국의 라오가이의 반열에 들어간다.

5공화국 시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시기는 아직 전두환이 국보위 위원장으로서 제5공화국이 출범하기 전이었으므로(제5공화국은 1981년 3월 출범했다.) 엄밀히는 제4공화국 시기 사건이 맞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의 인식이 '박정희=제4공화국, 전두환=제5공화국'이기 때문에 편의상 그냥 제5공화국 시기로 취급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전두환 정권은 '사회 여기저기에 있는 범죄자 및 간쓰레기들을 죄다 모아놓고 군대식으로 훈련을 시켜서 사람 만들어 놓는 훈련소'라는 명목으로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잡아들여 '교육대'에 내몰았다. 삼청교육대의 위치는 각 군부대 별 내부의 훈련소였으며, 지금도 군부대 장소로 쓰고 있어 보안 때문에 쉽게 알 수 없다.

원래 박정희 정권 초반에 비슷한 목적과 방법으로 조직하여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던 '국토건설단' 계획의 짝퉁이었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 정도의 효과도 못 내고, 악용한 사례들만 훨씬 늘렸다. 삼청교육대는 조직 자체가 애초에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마구잡이로 끌려갔다고 어디다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문명국이기를 포기하고 국민에게 깡패짓을 한 흑역사.

전체 피검자의 1/3 이상이 무고한 일반인이었다. 그리고 학생과 여성도 포함되었다. 그나마 조폭만 잡아갔으면 또 모르겠는데 범죄자 이외에도 그저 전과자, 무직자, 부랑자라는 이유로 끌려간 자들도 있고, 제대로 직장과 집이 있던 가장이 단지 술 좀 먹고 취해서 누워 있거나(실제로 노숙자도 상당히 끌려갔다) 귀가하던 길에 끌려가기도 했다. 당시 통금시간이 있었는데 술취해서 통금시간 어겼다가 끌려기도했고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끌려갔으며 대낮에 길가다가 걸린 불심검문에서 신분증을 집에 놔두고 나왔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경찰의 사적인 감정 때문에 끌려간 경우도 있고. 그저 전두환 패거리들 눈에 밉보여 묻어간 사람들도 많았다. 또한 전두환에 대해서 대머리새X, 문어대가리, 살인자놈(5.18 관련)이라고 욕설이나 비방만 해도 바로 잡혀가게 되었으며 반정부 주동자나 시위주동자 등도 바로 삼청교육대로 체포되어 징집되었다. 심지어 그저 아는 사람들끼리 사적으로 관계가 틀어졌는데 한쪽이 상대를 허위로 '불효자'나 '대통령을 욕했다'라고 고발해서 잡혀가는 일도 결코 드물지 않았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강창성 전 육군보안사령관. 강창성씨는 1973년에 하나회의 후원자였던 윤필용 장군의 쿠데타 혐의를 조사하면서, 당시 비밀결사였던 하나회를 감지, 이를 뿌리뽑으려다가 하나회 회장인 전두환을 총애하던 박정희의 눈밖에 나서 해임되었다. 다만 이때 권익현 등의 하나회 회원 일부는 예편당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으로 지리산에서 탱크 병단을 이끌었던 황학소의 경우 백선엽과의 인터뷰에서 전향 빨치산이라는 이유로 노구에 삼청교육대에서 견딜 수 없이 고생했다고 토로했다.


1980년의 한국은 1950~60년대와 달리 사회 및 경제가 단순무식한 통치방식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스케일이 커질 대로 커져서 삼청교육대는 경제적 효과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신군부가 누명을 씌워서라도 잡아들여 시각상으론 엄청난 숫자를 잡아들인 실적을 올린 것마냥 상부에 보여주기식 집행을 했는데 하찮은 이유로 잡혀온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실제로, 지역별로 할당량을 채우라는 교지도 내려왔던 걸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북쪽정치범 수용소 짝퉁이 되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학교별로 문제아들을 몇 명 집어서 1차 순화교육식으로 간 경우도 있었다. 뮤지컬 배우 경주가 이런 케이스로 다녀왔다. 삼청교육대 교육 대상자 숫자를 채우기 위해 삼청교육대 조교들이 교육대상자 머릿수 채우러 직접 각 도시에 파견을 나가서 잡아오기까지했다. 신혼여행을 막 끝내고 집에 가기 위해 동인천역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새신랑을 '손에 문신이 있다.'는 이유로 새신부 눈앞에서 연행했다가 인정 많은 조교 한 명이 다른 조교들 몰래 풀어줘서 간신히 끌려가는 걸 면한 사례도 있다고.

삼청교육대가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예로서 전두환 정권에 밉보여서 7개월간 교육을 받은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의 증언과, 어떤 아줌마가 곗돈 문제로 15일간 교육을 받고 난 뒤 또 가는 것이 두려워 채무인들의 빚을 탕감해 준 사례(판례 91다23660)를 들 수 있다. 이렇듯 대상엔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

삼청교육대로 끌려가서 사망한 사람들은 1988년 국방부의 공식집계에 따르면 54명이다. 현장에서 사고 등으로 사망한 사람만 54명,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 397명, 정신장애 등 상해자 2678명이라고 발표. 이 숫자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시각이 대부분. 어느 교관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의 부대에서만 3명이 자살을 하였고 또 다른 교관은 자신이 속한 연대에서만 11명이 사망했단다. 따라서 실제 사망자 수는 현장 사망자만 수백명. 실질적으로는 1천 명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4만여 명에 달하는 삼청교육대 이수자들의 명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즉, 몇 명이 들어갔다는 기록은 있는데 몇 명이 나왔다는 기록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교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망자들의 대부분은 무연고자거나 부랑아같은 죽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삼청교육대 문제에서 이런 케이스는 적어도 주민등록증으로 대조 가능한 경우이다. 그러나 주민등록증 자체가 없거나 개념이 없는 노숙자등의 경우는 파악이 불분명하다. 혹자는 이런 경우 사망자에서 제외되었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심지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서 북파공작원 교육이 실시됐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시체를 인근강에 유기하다가 주민들의 항의가 들어오자 소각장을 세워서 시체를 화장했다는 증언도 있다.

1980년대에 그려진 교육용 만화 중에는 도박과 술에 쩔어 살던 남자가 순화교육 받고 새사람되어 새마을역군이 되는 얘기도 있었다. 더욱이 국군홍보 프로그램인 배달의 기수에서는 건달출신 수용자가 새사람이 되어 나왔다며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준것에 대해 29만원의 일해 거사님께 너무나 감사한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삼청교육대가 어떤 조직이었는지를 입증해 줬다. 인터뷰 내용은 조작할 수 있어도 사람의 본성에 따라 떨리는 표정 같은 건 절대로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프로파간다에 영향받은 탓인지, 전사모에선 한국에 이바지했다고 헛소리로 미화한다. 현실은 진정한 의미로 새사람이 되었다기보단 그저 삼청교육대에 대한 극도의 공포만 맛보고 오거나 심한 경우 아예 멀쩡하던 사람이 정신질환을 얻어 오는 경우가 대다수. 특히 강력범죄나 조직범죄가 아닌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일(노상방뇨, 노숙 등)로, 혹은 아무 죄도 없이 끌려갔던 사람들은 열에 아홉 이상이 심각한 트라우마나 정신질환을 얻었다.

일부 노인들은 버르장머리없는 젊은이들을 가리켜서 "이런 놈들은 삼청대에 가서 고생해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야지"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 영화 아저씨에서 오명규가 한 대사인 "삼청교육대 다시 세아가(세워서) 싹 다 잡아 처넣어야 나라가 산다"는 이 점을 반영한 것.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27사단에서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던 시민들이 PX에서 술을 가져와 마시고 취한상태에서 행정보급관과 시비가 붙어 시민들이 단체 무장하면서 27사단 77연대 병사와 전투가 벌어젔고, 그로 인하여 감호생 3명과 하사관 1명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었다. 이로인해 당시 대대장은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불명예 전역하게 되는 등 당해 지역의 엄청난 사건이었다.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수료증까지 줬는데, 사회에서 삼청교육 수료를 마친 이들에게 '삼청교육 이수자'라는 낙인이 늘 따라다녔다고 한다.

1.1. 삼청교육대에 징집된 대상

명목상 대상일 뿐 실제로는 이와 관련 없는 이들도 많았으며 심지어 나이 어린 중학생(14세!)도 있었다.

  • 거지 또는 부랑자
  • 깡패조폭두목 및 집단 전체
  • 노숙자 또는 무직자
  • 도둑 및 강도
  • 반(反)정부 및 무정부주의자 또는 불온선동자
  • 사회 범죄자
  • 전두환 비방자 또는 허위사실 유포자는 개뿔 틀린 말도 별로 없는데- 전두환 개새X, 문어대가리, 대머리놈 또는 대머리새X, 학살자 또는 살인자, 5.18 관련 유포자 등.

참고로 징집대상의 실상에서 가장 압권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잡혀간 사람들이다.

1.2.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과연 이러한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짜 그들이 말하는 "인간"이 되어 왔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거 없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깊은 마음의 상처만이 남았을 뿐. 피해자 중에 한 명은 아직도 누군가가 큰 소리를 내면 "잘못했습니다! 때리지 마세요!"라며 울고불고한다고 하고 제5공화국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술취한 상태로 누군가 싸웠는데 삼청교육대로 갈까봐 자살한 사례도 있다. 결국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한 모순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부에서는 당시에 길거리 깡패같은 불한당이나 강력범죄들이 많이 사라졌었다며 오히려 그 때를 추억하며 미화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실제로 시대적으로 군사정권 하에서 양성적인 조폭, 특히 1공화국 시절부터 존재했던 정치깡패가 줄어든것은 사실이다. 다만 삼청교육대는 반년도 채 되지 않는 극히 짧은 시간동안 시행되었고, 조폭이 삼청교육대 때문에 사라졌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일반적인 강력범죄는 그 기간동안 줄어들었다고 볼수있는 명확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이런 드러난 조직폭력배 조직들과는 다르게. 경찰과 친한 범죄자들이나 폭력 조직원들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숨어서 음성적인 조직을 구성하고 사회가 분위기가 좀 느슨해지자 다시 기어나왔다. 실제로 전두환 재임기간동안 강력 범죄율은 앞뒤 정권들과 비교해서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범죄가 급감했다고 느껴진 건 사회 자체가 살벌해져서 전 국민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세대 호남 조폭들이 삼청교육대로 인해 쇠락한 틈을 타서 강남 유흥가를 무대로 신진세력을 만든것이 그 반증이다. 범죄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범죄가 안 생길 환경을 만들어야지 마구 잡아넣으면 그 빈자리를 다른 놈들이 나타나서 메꾼다는 좋은 예를 보여준다.

1.3. 삼청교육대가 등장하는 창작물

1.4. 삼청교육대를 이용한 농담

삼청교육라는 이름을 듣고 삼청교육대학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를 이용해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들은 '삼청교육대학교에 가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보통 정시 D군에 속해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꽤나 유명한 드립이었는지 90년대 유머집에도 자주 등장한다. 한국영화 만남의 광장에서는 임창정이 교육대학인줄 알고 삼청교육대에 자진입소한다(...). 자매품으로는 군 등이 있다.

2. 한국 하드코어 밴드

삼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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