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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last modified: 2015-02-01 12:25:29 by Contributors

Contents

1. 三韓
1.1. 세 개의 '삼한'
1.1.1. 원삼국시대 한강 이남에 있었던 세 개의 나라 또는 소국 연맹체.
1.1.2. '삼국시대의 세 나라'로 의미확장
1.1.3. '우리 민족, 국가, 문화권'의 통칭으로
1.2. 중국, 일본의 삼한 기록
2. 三寒

1. 三韓

1.1. 세 개의 '삼한'

1.1.1. 원삼국시대 한강 이남에 있었던 세 개의 나라 또는 소국 연맹체.

고대 한반도 중남부 일대에서 형성된 소국들의 연맹체인 마한, 진한, 변한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제대로 된 국가라기보다는 성읍국가나 지역들의 연맹체에 가까운 형태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은 수수께끼의 나라들.


하지만 한사군 중 대방군과 낙랑군이 마한을 이루는 일개 소국 중 하나인 신분고국에 쳐들어갔다가 대방태수가 전사했다는 기록도 있는 걸 보면 부여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실제로 백제신라의 건국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동안 그 세력이 남아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백제와 가까이 있었던 마한으로,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서는 백제가 건국된 이후 곧 마한을 복속시켰다고 나오나, 고고학 연구 상으로는 그 이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독자적인 세력을 이룬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차 마지막 개정 국사 교과서에서는 이 추정이 공식적으로 삽입되었다. 교과서는 마한이 천안, 익산, 나주 등을 중심지로 삼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실제로는 성장하는 백제에 밀리면서 천안->익산->나주 지방으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삼한은 각각 백제, 신라, 가야로 정리되어 북쪽의 고구려와 함께 삼국시대를 만들게 된다.

삼한의 한(韓)은 당시 삼한 지역 혹은 그 지역에 사는 종족들을 일컬어 부르는 명칭의 음차이다. 음차된 명칭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신라, 고구려, 백제와 달리 삼한은 선택할 수 있을 만큼 한자 문화가 발달하기 전에 소멸되었기 때문에 한의 원래 발음 및 의미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환빠들은 삼한의 한이 고조선 또는 고조선 이전의 강력한 고대 국가의 명칭이라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런거 없다

고려의 대금사대정책 이후 문벌 귀족, 그 중에서도 김부식으로 대표되는 유학자들은 기존의 고구려 계승의식이 전제하는 북진정책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면서도 어떻게든 포기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거기에 고려 내부에 있던 고구려 계승주의자들과 신라 지역에 근거를 둔 호족들간의 정쟁에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더하여 경주 김씨 유학자 김부식은 고구려 계승의식을 부정하고 "삼한정통론"을 주장했고, 그리하여 고조선과 부여계가가 아닌 통일신라가 지배했던 영역에 민족의 정통이 있다고 강조하여 삼국사기를 작성하였다. 김부식이 비난받는 진정한 이유라면 이것 때문이다. 유학자가 썼으며 "-사기"가 붙는 역사서는 일체 이 삼한정통론을 똑같이 취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며, 삼한정통론을 취하지 않더라도 단군조선이 아닌 기자조선에 민족의 뿌리를 설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1] 이같은 이유로 중원에 대한 명백한 사대와 유교가 국가의 주도이념이었던 조선에서도 삼한정통론은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허나 이러한 삼한정통론의 실체를 유학자일지언정 지식인들은 모를 바가 아니었기에, 민족 자주성을 강조한 단군조선과 고구려, 부여계 계승의식을 나타낸 역사서는 조선에서도 꾸준히 저술되었다.

1.1.2. '삼국시대의 세 나라'로 의미확장

다만 삼한을 마한, 진한, 변한으로 칭하는 것을 어디까지나 근대시기 이후에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역사에서 삼한이란 것은 언제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말하는 용어였지 최초 의미인 마한, 진한, 변한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한, 진한, 변한도 의미상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고증해내기 전까지 저 마한, 진한, 변한의 세 나라가 고구려, 신라, 백제로 발전 및 대체되었다는 것이 전근대 역사학자들의 상식이었다. 단지 마한과 변한 중 어느 쪽이 고구려이고 어느 쪽이 백제인지를 놓고 논쟁이 있었을 뿐.

마한, 진한, 변한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중국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는 이를 韓전이라고 쓰고 있지 삼한이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다. 삼국을 삼한으로 칭하는 것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수나라, 당나라의 역사기록에도 삼국을 삼한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고구려 왕족 출신인 고현의 묘지명에서도 스스로를 요동 삼한인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아 고구려에서도 삼한을 고구려,백제,신라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에서 삼한공신을 책봉하거나 후일 조선이 대한제국을 자칭하면서 생각했던 한도 마한, 진한, 변한이 아니라 삼국의 삼한이다.

마한, 진한, 변한을 삼한이라 칭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근대시기 역사학이 정립되면서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일 뿐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는 잘못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1.1.3. '우리 민족, 국가, 문화권'의 통칭으로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한민족의 거주지역을 뜻하는 관용적인 말로 쓰이거나, 가야, 백제, 신라 등이 있었던 한반도 남부 지역을 뜻하는 별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삼한일통. 김부식이 신라의 삼국통일 때 썼던 말로 이후에도 삼한으로 칭할 때가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다수 확인할 수 있고 대한제국의 어원이자 현 대한민국의 어원이다. 정확히 말하면 국가주의에 입각한 정통 계승론을 밀던 시기에 그 정통성을 단군 -> 기자 -> 마한(삼한) -> 무통(삼국) -> 신라 -> 고려 -> 조선으로 파악한 때문이다[2]. 즉 삼한이 조선사의 정통이라는 것. 기자를 강조하던 유교사관에 입각한 삼한정통론은 이후 부여를 밀던 신채호에게 까이고 한사군을 밀던 식민사관에게 까이면서 버로우를 타게 되지만, 1900년대 신채호에 의해 민족사관이 정립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사학계의 대세였다.

하지만, 당시의 시점으로 국호를 '고작 한반도 남부에 움츠리고 있던' 삼한에서 따오는 게 하등 이상할 게 없어서 그냥 따온 게 아니라, 애초에 신라가 삼한일통할 때 외쳤던 그 삼한은 고구려, 백제, 신라였지 진한, 마한, 변한이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해봐야 한다. 고구려는 마한, 백제는 변한, 신라는 진한으로 놓고 생각했던 것인데, 물론 이건 틀린 생각이지만 신라나 고려가 외쳤던 삼한일통이 한반도 남부를 통합한 의미로 그냥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주 큰 오산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한국의 고대사에서는 고조선이나 고구려 등 요동 국가들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그렇다고 흡사 중국의 영토 사관 비슷한 생각마냥 한반도 남부에 근거한 정치 조직들만이 현대 한국인의 혈통적, 언어적, 문화적 근원에 있다는 건 아주 무리한 주장이다. 애초에 진한을 구성했던 구성원들에 고조선이 아주 많은 기여를 했는데? 삼한이 한국사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점도 있으며 예맥과 대비되는 종족 명칭으로 통칭되는 것도 아니다.

1.2. 중국, 일본의 삼한 기록

중국정사조선전에는 고대의 삼한을 가리켜

"그 나라 안에 무슨 일이 있거나 官家에서 城郭을 쌓게 되면, 용감하고 건장한 젊은이는 모두 등의 가죽을 뚫고, 큰 밧줄로 그곳에 한 발쯤 되는 나무막대를 매달고 온 종일 소리를 지르며 일을 하는데, 이를 아프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작업하기를 권하며, 또 이를 강건한 것으로 여긴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흠좀무스럽다... 다만 학계에서는 이를 지게로 해석한다.



"또 州胡(註026)가 馬韓의 서쪽 바다 가운데의 큰 섬에 있다. 그 사람들은 대체로 키가 작고 말도 韓族과 같지 않다. 그들은 모두 鮮卑族처럼 머리를 삭발하였으며, 옷은 오직 가죽으로 해 입고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옷은 上衣만 입고 下衣는 없기 때문에 거의 나체와 같다. 배를 타고 왕래하며 韓나라에서 물건을 사고판다."

라는 사료도 등장하는데 여기서 州胡는 제주도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을 일컫는 말로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의 근거로 쓰인다. 나중에 한반도를 자기들 영토라는 역사왜곡을 일삼아 정한론을 걸쳐서 한반도 병합에 이른다. 또한 조선시대까지도 삼한의 한(韓)은 고려(高麗)와 함께 우리민족국가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2. 三寒

3번의 추위.

한국의 겨울철 기온을 나타내는 한사온에서의 삼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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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심지어는 북진정책을 강하게 주장하고 중원의 정통인 한족의 명나라와 마찰도 불사했던 정도전마저도 기자조선설을 신봉했다.
  • [2] 삼국시대를 무통으로 설정한 것 등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것은 성호 이익에서 시작해서 정복사강목에서 완성된 성리학적 정통론 관념이다. 성호 이익이 삼국시대를 무통으로 설정하기 전에는 마한의 정통성이 어디로 이어졌느냐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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