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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


갓을 벗고 상투를 보인 사진

영어로 Topknot hairstyle로 번역하며, 한국의 상투는 한국 표현인 Sangtu 를 그대로 가져다 표기하기도 한다. 다만 해외에서는 흔히 Topknot이라고 하면 아시아의 헤어스타일로 생각하며 주로 촌마게를 먼저 떠올리며 조선의 Sangtu도 촌마게와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머리를 민 것과 안 민것이랑 왜 구분 못하니

동아시아의 전통적 헤어스타일의 하나. 보통 성인 남자가 결혼을 하거나 관례를 치른 뒤 꾸민다.[1] 조선의 상투와 비슷하게 묶는 것 자체는 한반도에 꽤 이전부터 있었지만, 조선시대의 상투가 가지는 의미는 신체발부수지부모의 유교적 예절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묶는 방식과 남는 머리 처리 등에 있어 중국 한족의 전통 머리와 꽤나 차이가 있었다.

조선에서는 일반적으로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정수리에서 감아 올린 뒤 등으로 고정시키고 망건을 써 완성시켰다. 중국의 경우 정확한 상투묶는 법은 문화대혁명 등을 거치며 소실되었다고 한다(...). 결국 음양두만 남았다. 다만 삼국지나 여러 시대극에서 나오다시피 중국풍은 조선과 비교하면 만두처럼 크고 둥글게 만들어 천으로 감싸는 형태였다. 의관을 중요시하는 양반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투를 보이지 않기 위해 평상시에 상투를 가리는 용도의 투관을 쓰고 다니기도 했는데 상투관이 절을 할 때 흘러내리지 않게끔 고정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었다. 중국의 상투는 크고 물렁해서(...) 관을 비녀로 가로지르게끔 흠을 내고 상투를 꿰어 고정했으나 조선의 상투는 위의 사진과 같이 비녀로 뚫을 수 없는 단단한(...)매듭이었기 때문에 끈으로 관을 죄고 처럼 남는 것을 턱 아래로 묶어서 고정했다.

추가하자면 상투에서 망건은 이마 가리개가 아니라 머리를 쓸어올려 묶어진 머리를 고정하는 일종의 헤어밴드 용도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극에서 망건 앞싸게 부분(통풍구)에 살갖(이마)이 보이는 모습은 잘못된 착용의 예 이다. 구한말에도 눈썹바로위에 망건을 쓴 사진이 있지만 이건 머리숱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망건이 많이 내려온 것이므로 오해하지말자.
사극과실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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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어려도 결혼을 하여 상투를 틀면 어른 대접을 해주었으며[2] 미혼인데도 어른 대접을 받기 위해 상투를 틀기도 했다고. 이런 상투를 외자상투라 부른다. 뭐 그냥 한동네 살면서 다 이런 사정 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안 통했으며, 보부상등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경우 얕보이지 않기 위해 했다고 한다.

머리가 꽤 많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대머리도 상투를 틀 수 있는가?란 문제로 현대인 사이에서 왈가왈부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도 사람 살던 시대이니만큼 조선시대에도 대머리가 당연히 있었기 때문. 일단 대머리 인남캐라도 대부분은 속알머리가 없고 주변머리는 있는 형태로 탈모가 진행되는 편이기 때문에 주변머리를 머리 중앙으로 모아올려 상투를 틀었다는 것이 중론. 실제로 상투를 틀 때는 ‘백호(혹은 '배코')친다’고 하여 정수리부분의 머리를 깎아내서 속알머리를 자르고서 했다. 사실 일생동안 기른 머리카락(어릴때부터 관례를 치룰때까지는 남자일지라도 머리를 꼬고 댕기를 드리는 것이다.)의 양은 엄청나서 제대로 모양이선 상투를 틀 수가 없다. 그래서 정수리부근의 가운뎃 부분 머리카락을 잘라 통풍이 되도록 하고 남은 머리를 올려서 상투를 트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머리 수준으로 민건 아니고 동전크기 정도만 조금 밀어 겉에서 민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남자가 관례를 치룰때 이 배코친 머리카락은 소지에 접어서 조상의 신위 앞에 바치곤 했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이마 위의 머리카락를 밀고, 남은 머리카락을 두부에서 틀어올리는 "촌마게(丁髷, Chonmage)"가 유행했으며, 사무라이들이 많이 하였다. 사실 촌마게는 상투의 일종이면서도 변발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강제로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는 법을 공표해 성년 남자 모두 상투를 자르게 되었다. 허나 상기했듯 상투는 변발류와는 달리 분장시 머리를 밀 필요가 전혀 없는지라, 겉에서 보기에 머리 민부분이 없어 상투 가발과 망건으로 충분한 데 비해 청나라 사극[3]을 찍는 중국 배우나 일본 시대극 배우들은 '변발'이나 '촌마게'를 위해 대머리 가발을 쓰거나 경우에 따라 정말 앞머리를 밀어야 했다. 현대 후손들이나 유럽, 북미인들이 보기에도 '변발'이나 '촌마게' 보다는 상대적으로 이질감과 거부감이 좀 덜 한듯하다..오오 조상님 오오[4] 뭐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상투도 머리를 아주 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민 부분이 대놓고 보이는 변발이나 촌마게보단 낫다(...)

또한 구한말의 선비들은 '일본은 서양을 따라해 단발이고 중원도 변발이라 호풍이니 선왕의 유풍(儒風)을 간직한 것은 이제 온 세계에서 조선뿐.' 이라며 소중히 여기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주식 관련 용어로도 사용되는데, 최고로 오른 주식 시세가 상투의 끝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졌다.

상기하였듯 일제시절 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강하게 상투를 고집하였으나, 한반도에 대한민국북한이 설립된 이래로 급속한 외부 문물의 유입과 더불어 6.25 전쟁 같은 거대한 사회구조 변화를 거치면서 전통 보존 의식이 많이 희박해진데다가, 점차 모든것을 경제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는 풍토가 늘면서 관리가 힘든 상투는 '비경제적'이라는 이유로 점차 대중들 사이에서 밀려나 21세기 한반도에서 상투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아주 드물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학동을 비롯한 지역 거주자 및 방송에서도 나온 어느 남성은 지금도 상투를 하여 지방에서 거주 중인데 상투를 지키고자 모자나 모터바이크 헬멧까지도 상투가 나올 구멍을 하고 다닌다고 나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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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결혼하지 않아도 상투를 트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걸 외자상투라고 부른다.
  • [2] 반대로 나이먹고도 결혼을 못해 상투가 없으면 어른 대접을 못받았다.
  • [3] 중국인들도 보는 눈과 흑역사 취급이란게 있기에 옛날 정무문과 같은 시대극은 그냥 변발을 없던 셈 치고 단발로 촬영했으며 80년대 무렵엔 존재는 승인하고 그냥 땋은 머리 가발로 촬영했으나 왠지 이제는 변발을 재현하고 있다. 지금은 음양두 정두로 진화했으니 더 나중에는 금전서미가 될 것이다.
  • [4] 다만 촌마게는 경우에 따라 상투처럼 머리를 올려서 이마만 드러내는 정도도 있었는데, 주로 가난한 부시들이 이렇게 했다.
  • [5] 사실 에도 막부 시절에 여자들도 상투를 틀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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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1 13: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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