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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 쿠팩스

last modified: 2015-02-09 07:56:08 by Contributors



류현진을 지도하고 있는 샌디 쿠팩스.

이름 Sanford "Sandy" Koufax[1]
샌포드 "샌디" 쿠팩스
생년월일 1935년 12월 30일
국적 미국
출신지 뉴욕주 브루클린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우타
프로입단 1955년 브루클린 다저스 자유계약
소속팀 브루클린 다저스 (1955 ~ 1966)[2]

1963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리 윌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샌디 쿠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보이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63년 메이저리그 사이 영 상
돈 드라이스데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샌디 쿠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챈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1965년, 1966년 메이저리그 사이 영 상
챈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샌디 쿠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아메리칸리그
론보그
(보스턴 레드삭스)
내셔널리그
이크 매코믹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63년 월드 시리즈 MVP
프 테리
(뉴욕 양키스)
샌디 쿠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65년 월드 시리즈 MVP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샌디 쿠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프랭크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1965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벤츄리 샌디 쿠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영구결번
No.32

Contents

1. 소개
2. 플레이 스타일
3. 이모저모

1. 소개

신의 왼팔(The Left Arm of God)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왼손투수. 메이저리그 최고 왼손투수 논쟁 떡밥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뉴욕 브루클린 출생으로 1955년 당시 연고팀이던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에 입단하였다. 참고로 이 사람의 입단으로 로스터에서 밀려난 인물이 LA 다저스의 장수감독으로 명성을 날렸던 토미 라소다 되시겠다. 하지만 쿠팩스는 초창기에는 별볼일 없는 왼손투수 가운데 하나였고 그 때문에 다저스에서는 트레이드를 시도하기도 하는 통에, 1960년에는 야구를 그만두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의 잠재력을 본 인물이 바로 재키 로빈슨. 덕분에 로빈슨은 이 때 감독과 자주 갈등을 빚었다.

그런데 1961년 사람이 달라져서 돌아왔다.


평소보다 강도높은 훈련을 한 결과 3점대 후반, 4점대에서 놀던 평균자책점이 3점대 중반까지 떨어졌으며, 255이닝에 탈삼진 269개를 잡아내는 괴력을 선보였다. 이후 다저스의 에이스 돈 드라이스데일과 악명높은 원투펀치로 활약을 하면서 1966년까지 리그를 지배했다.

자, 이쯤에서 그에게 황금의 5년이라 불린 1962년부터 66년까지의 5년간 성적을 짚어보자.[3]

1. 181경기 111승 34패.승률 7할6푼6리.

2. 이중 176경기 선발출격, 100경기 완투. 그리고 그중 33경기는 완봉승. 연평균 20 완투승, 반올림하면 7완봉승. 덤으로 5년간 시즌당 평균이닝소화는 275이닝. ㄷㄷㄷㄷ[4]

3. 5년 내내 리그 평균자책점 1위. 이 5년간의 연평균 평균자책점은 1.986.[5] ㄷㄷㄷㄷ 아쉽게도(응?) 다승과 탈삼진은 3차례 1위. 그런데 이걸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시즌당 22.2승, 288.8 탈삼진이다. 9이닝으로 환산하면 한 경기당 9.48개 탈삼진. 매 이닝 최소 한 타자 이상 삼진을 잡는다는 계산. 그리고 시즌 평균 9이닝당 사사구는 2.12개, 9이닝당 피홈런은 0.56개, 9이닝당 피안타는 6.28개. 타자 입장에선 치기도 힘들고 그냥 걸어나가긴 더 힘들고...

4. 라이브볼 시대 이후 단일시즌 탈삼진 2위 - 382개, 1965년 [6]

5. 트리플 크라운 3회. 이 기록은 MLB 역사상 세명 뿐이다.[7]

6. 1963년 노히트 노런, 트리플 크라운 달성, 사이 영 상, NL MVP, WS MVP 수상.

7. 사이영상 3회수상. 그것도 모두 만장일치. 심지어 1966년 까지 사이 영 상내셔널리그, 아메리칸리그 통틀어 한명만 수여하던 시기였다.

8. 4년 연속 노히터 달성(1962-1965). 그리고 이중 한번은 퍼펙트 게임.[8]

9. 월드시리즈 통산기록은 8경기 7선발 4승 3패 평균자책점 0.95, 57이닝 61삼진. 그리고 4승 모두 완투승, 이중 2경기는 완봉승.

10. 이중의 백미는 1963년 월드시리즈 1차전. 당시 상대는 요기 베라미키 맨틀, 로저 매리스가 버틴 뉴욕 양키스.[9] 당시 주요기록은 첫 다섯 타자 모두 삼진. 그리고 15탈삼진.(월드시리즈 신기록). 2실점 완투승.
이걸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4차전에서도 등판하여 1실점 완투승. 이때 양키스는 4연패 스윕으로 박살나 버렸다.

11. 덤으로, 이 시기에 웬만한 메이저리그 투수는 평생 한번도 할까 말까한 한 이닝 공 9개 3타자 연속 삼구삼진을 두번이나 기록.[10]


이 기록을 요즘 시대의 투수로 비유하자면, 99,00년의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2000년대의 로이 할러데이 같이 이닝을 먹어가면서 던져댔다고 상상하면 될 듯. 아무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물론 당시의 메이저리그가 소위 투수들의 황금시대란 이름을 얻을 정도로 지독한 투수친화적 리그화된 데다 당시 다저스의 홈구장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투수친화적 구장이었음을 감안해야 하나, 그의 폭발적인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역사에 남을 수준임에 분명했다. 투수친화적 환경에서 뛰었긴 했지만, 사실상 직구와 커브 두 구질로 리그를 정복했는데 두 구질간의 투구폼이 차이가 상당히 컸는데도 타자들은 쿠팩스를 공략하지 못했다.[11]

그러나 그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는데 지독한 팔꿈치 부상이 원인이었다. 팔꿈치 인대의 손상으로 알려졌는데, 이로 인해 1965년에서 1966년까지는 부어오르는 팔에 진통제를 맞아가면서 투구를 계속하였다. 그럼에도 이 기간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리그의 학살자로 이름 날리고 사이 영 상까지 탔다는 점에서 이미 굇수. 결국 1966년 시즌을 마치고 더이상 투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쿠팩스는 은퇴를 선언하였다.


12시즌을 뛰는동안 200승도 달성하지 못했으나, 1962시즌부터 보여준 활약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기에, 이후 명예의 전당 가입 요건을 충족시키자마자 명예의 전당에 가입되었다.[12] 그야말로 짧고 굵게 야구를 했던 선수.

2. 플레이 스타일

리그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직구와 황금커브의 조합이었다. 게다가 쿠팩스는 몇 이닝을 투구하더라도 언제나 일정한 자세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이게 어느정도였냐면 투수 마운드에서 오른쪽 발을 뻗은 자국이 하나만 있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 하지만 그놈의 커브가 팔꿈치를 앗아가기 시작했고'[13], 팔꿈치에 안좋기로 유명한 포크볼도 간간히 던졌다는 기록도 있다. 게다가 당시에는 토미존 서저리와 같은 팔꿈치 인대 재건술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은퇴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토미 존 서저리가 일찍 개발되었으면,(쿠팩스가 은퇴한지 10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 개발되었다) 쿠팩스는 훨씬 오랫동안 리그의 지배자로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

3. 이모저모


  • 1963년 25승 5패 방어율 1.88의 성적을 올린 쿠팩스의 활약에 힘입어 LA 다저스는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만났는데, 당시 양키스의 명포수이자 명언제조기 요기 베라 가라사대

    저런 애송이한테 25승이나 내주다니 내셔널리그 타자들은 전부 바보인가?

    4-0 다저스 완승으로 시리즈가 끝나고 또다시 요기 베라 가라사대

    어떻게 25승을 올렸는지 아주 잘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5패를 한거냐?[14]

  • 1965년 월드시리즈 1차전 선발로 내정되어 있었는데, 유대인 출신이었던 쿠팩스는 그날이 욤 키푸르(속죄의 날)라는 이유로 출전을 거부하였다. 그 때문에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몇몇 팬들에게 안좋은 소리를 듣기도 하였고, 2차전 선발경기도 말아먹는 등 큰 위기에 빠졌는데 5차전, 7차전을 완봉으로 장식해버리면서 다저스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선물하였다. 여담으로 이와 관련해서 심슨에도 몇차례 출연했는데, 광대 크러스티는 이때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다저스 승리에 돈을 걸었다가 쿠팩스가 출전 거부하는 바람에 똥망했다고 유대인 명예의 거리에 있는 쿠팩스의 동판을 마구 짓밟았다(...)
    65년 월드시리즈 7차전 완봉 영상
  • 코팩스의 커브를 치는것은 포크로 커피를 떠먹는것과 같다 - 윌리 스타젤

  • 나중에 골프를 배울 때 인스트럭터가 "왼손이 너무 위에 있네요. 조금 더 뻗으세요"라고 조언하자, "이 사람아 그게 됐으면 내가 야구를 계속했지"라고 받아쳤다.

  • 다저스에서 데뷔한 박찬호 선수와도 인연이 깊다. 가끔씩 만나면 긴 대화도 나누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하는 관계이며, 언론에도 몇 번 언급된 적이 있다. 특히 2000년에 박찬호는 유니폼 소매에 다는 구단기념 패치(구단 레전드 기념)에 샌디 쿠팩스를 골랐다고 한다.

  • 시드니 셀던의 소설 <내일이 오면> 중, 주인공 제프 스티븐스가 숙부의 오락장에서 사기 치는 법을 배우던 시절에 대한 서술에서, "헝겊 공을 던져 고양이 인형을 넘어뜨리는 놀이"의 사기법(고양이 인형에 걸쇠를 걸어 넘어가지 않게 한다)에 대해 "샌디 쿠팩스라도 그 고양이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 유태계 혈통인지라 2007년에 문을 연 이스라엘 프로야구리그로 가서 헐값만 받으며 코치직이라든지 현역활동에서부터 야구 홍보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야구가 좀처럼 인기없는 이스라엘에선 '누구쇼?' 소리나 들었단다. 결국 리그가 1년 만에 참혹하게 (관중 수가 평균 260명 수준이었으니...) 문닫으면서 미국으로 되돌아왔다...

  • ESPN의 칼럼니스트 제이슨 스타크는 역대 가장 과대평가된 좌완에 샌디 쿠팩스, 과소평가된 좌완에 베이브 루스를 꼽았다.[15][16]

  • 2000년 후반에 같은 유태인이며 금융전문가인척 하던 사기꾼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속아 대부분 재산을 날려먹었다.알고보니 케빈 베이컨같은 유명 배우 및 작가, 정치인.금융인,대학,심지어 메이도프 식솔까지 이 작자에게 속아서 엄청난 피해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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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쿠팩스로 표기하는데 실제 발음은 /ˈkoʊfæks/로 '코우팩스'에 가깝다. Goat에서 oa와 같은 발음이다.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상으로는 '코팩스'
  • [2] 1958년에 로스앤젤레스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 [3] 다만 조정자책점을 살펴보면 그렇게 뛰어난 성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정자책점이 6년 평균 156에 불과하고,제일 높았던 66년도에도 190이다.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라지만 당장 그렉 매덕스가 92년~98년까지 세운 기록이 7년 평균 190, 94년도에는 271이라는 엽기적인 수치다.페드로 마르티네즈 역시 7년간 레드삭스에서 평균 190을 찍었고 2000년도에 291을 찍었다.
  • [4] 현역 메이저리그 최강의 이닝이터로 인정받는 로이 할러데이의 역대 단일시즌 최고기록은 2003년 266이닝이다.
  • [5] 다만 이걸 조정방어율로 놓으면 연평균이 167.8이다. 그만큼 당시의 메이저리그가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을 보내고 있었던 걸 유추해 볼 수 있다. 데드볼 시대 이후 가장 타고투저가 극심했던 '약물의 시대'의 중심에서 외계인의 비상을 알렸던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1999-2003 5년간 평균 조정방어율이 227.4였던 걸 생각해보면 꽤나 차이가 있긴 하며, 페드로vs쿠팩스 논쟁에서 페드로에게 무게추가 쏠리는 주 원인이 되고 있다. 다만, 페드로의 같은 기간 연평균 이닝소화는 5인 로테이션 시대였던 만큼 186.3이닝으로 쿠팩스의 소화 이닝은 페드로의 약 150%정도 된다는 점에서 쿠팩스 역시 앞서는 점이 있다.
  • [6] 1위는 383개의 놀란 라이언-1973년, 3위는 372개의 랜디 존슨-2001년이다.
  • [7] 나머지 두명은 월터 존슨피트 알렉산더. 그리고 이 세명중 좌완은 샌디 쿠팩스 한명 뿐이다.
  • [8] 퍼펙트 게임의 상대팀 투수는 볼넷 1개와 2루타 1개로 1점 내주고 완투패.
  • [9]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선수들이다. 요기 베라는 월드시리즈 챔피언반지 10개를 가진 주인공, 그리고 미키 맨틀은 역사상 최강의 스위치히터. 마지막으로 로저 매리스는 베이브 루스의 단일시즌 홈런기록이었던 60홈런을 처음 깨버린 선수.
  • [10] 이걸 두번 한 선수로는 레프티 그로브(이분은 그걸 한 시즌에 두번 하셨다!), 놀란 라이언이 있다. 한번이라도 한 선수 중에는 랜디 존슨도 있으며, 놀랍게도 디백스 시절의 김병현도 있다!
  • [11] 사실 투구폼이 달랐던 것은 쿠팩스가 더 이상 팔꿈치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투구수가 늘어나는 삼진을 잡는 대신 맞춰잡기로 투구수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구질간 투구폼이 달랐는데도 쿠팩스는 삼진을 폭발적으로 쌓았다. (...)
  • [12] 메이저 리그의 명예의 전당은 은퇴 직후의 열기가 충분히 식은 뒤 투표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은퇴후 5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가입 자격을 주도록 규정되어있다. 즉, 은퇴 6년 뒤부터 후보로 올라갈 수가 있다.
  • [13]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선수생활 후반기에 커브 투구각을 더 낮춘 사이드암 커브를 구사하기 시작한 때 부터였다. 그 덕에 얻게 된 관절염은 그의 조기은퇴가 된 가장 큰 원인.
  • [14] 이 말을 들은 당시 다저스 팀 동료였던 모리 윌슨 曰 그가 못한게 아니라 우리(타자들)가 게임을 망쳤다..
  • [15] 가장 과대평가된 우완은 놀란 라이언, 가장 과소평가된 우완으로는 밥 펠러 선정.
  • [16] 쿠팩스의 전성기 시절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손 꼽히는 투고 시대로 조정스탯을 봐도 알수 있듯 쿠팩스의 눈에 보이는 성적에 비해서는 그렇게 돌출된 성적을 찍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 투고시대라서 손해를 봤다기엔 비슷한 시기 68년의 밥 깁슨처럼 엄청난 조정스탯을 찍는 선수도 존재했기에 먹히지 않는 논리이기도 하고.. 다만 이후 명예의전당 입성에서도 볼수 있듯, 아무리 투고시대라고 하더라도 쿠팩스만큼 5년여를 꾸준하게 리그를 지배하며 월드시리즈에서도 임팩트있게 투구한 투수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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