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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6세

last modified: 2014-07-14 01:22:32 by Contributors

프랑스의 역대 국왕
샤를 5세 샤를 6세 샤를 7세

이름 친애왕(le Bienaimé), 광인왕(le Fol)
생몰년도 1368년 12월 3일 ~ 1422년 10월 21일 (53세)
재위기간 1380년 9월 16일 ~ 1422년 10월 21일
출생지 프랑스 파리
사망지 프랑스 파리

프랑스 발루아 왕조의 4대 왕이며, 샤를 5세의 아들이다.
1380년 12세의 나이로 왕이 되었기 때문에 세 숙부와 외삼촌 등 총 4명이 왕의 권한을 나눠가지게 되었다.
1388년 샤를 6세는 친정에 나서게 되었으나, 1392년 정신병이 발병되었다. 그로 인해 왕의 권한은 다시 약화되게 되었고, 왕의 숙부인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와 오를레앙 공작 루이간의 권력다툼이 가시화되었다.
샤를 6세의 병세가 심화되던 1404년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가 병으로 죽자, 그의 아들이 장과 오를레앙 공작 루이와의 권력다툼은 더 심화하였고 그 가운데 오를레앙 공작 루이가 1407년 살해당했다. 그리고 새로이 오를레앙 공작에 오른 샤를은 여러 제후세력과 힘을 합쳐 아르마냐크 파를 구성하였고, 이에 대항하여 부르고뉴 공작은 잉글랜드 국왕 헨리 4세와 동맹을 맺었고, 아르마냐크 파 역시 아키텐을 넘기는 조건으로 잉글랜드의 지원을 받고자 하였다.
1414년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가 본격적으로 부르고뉴파의 손을 들어주며 프랑스의 왕위를 요구하며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 백년전쟁이 다시 재개되었으며, 1415년 아쟁쿠르전투에서 잉글랜드 군이 대승을 거두고, 1418년 부르고뉴파에 의해 파리가 함락되었다.
전쟁이 사실상 거의 잉글랜드쪽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1420년 샤를 6세는 헨리 5세가 자신의 뒤를 이어 프랑스 국왕이 된다는 트루아조약에 서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헨리 5세는 샤를 6세보다 먼저 1422년 8월에 죽었으며, 이후 왕위계승에 대해 확실하게 정해놓지 않은 상황에서 샤를 6세 역시 그 해 10월에 죽었다.
트루아 조약을 위해 헨리 5세와 결혼한 그의 딸 캐서린은 헨리 6세를 낳았고 오웬 튜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로는 에드워드 튜더가 있었다. 에드워드 튜더는 헨리 6세의 이부형제로 적출로 인정받았고 랭카스터 가문의 방계였던 마거릿 보퍼트와 결혼하여 헨리 7세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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