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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킬 오닐

last modified: 2015-02-25 11:44:06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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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Superman 에이 거짓말


165cm의 얼 보이킨스와 함께

이름 샤킬 러숀 오닐
Ed. D. Shaquille Rashaun O'Neal
생년월일 1972년 3월 6일
216cm (7 ft 1 in)
체중 147kg (325 lb)
출신학교 루이지애나 주립 대학교, 배리 대학교
포지션 센터
드래프트 1992년 1라운드 1순위
올랜도 매직에 지명
역대 소속팀 올랜도 매직 (1992~1996)
LA 레이커스 (1996~2004)
마이애미 히트 (2004~2008)
피닉스 선즈 (2008~2009)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09~2010)
보스턴 셀틱스 (2010~2011)
등번호 32번(올랜도 매직, 마이애미 히트, 피닉스 선즈)
33번(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34번(LA 레이커스)
36번(보스턴 셀틱스)
수상내역 NBA Rookie of the Year (1993)
2000년 정규시즌 MVP
파이널 MVP 3회 (2000-2002)
NBA All-Star 15회 (1993-1998,2000-2007,2009)
All-NBA First Team 8회 (1998,2000-2006)
All-NBA Second Team 2회 (1995,1999)
All-NBA Third Team 4회 (1994,1996,1997,2009)
All-Defensive Second 3회 (2000,2001,2003)
NBA All-Rookie First Team (1993)
1994 FIBA World Championship MVP
NBA All-Star Game MVP 3회 (2000,2004,2009)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영구결번
No.34

1993년 NBA 올해의 신인상
래리 존슨 샤킬 오닐 크리스 웨버

2000년 NBA 정규시즌 MVP
칼 말론 샤킬 오닐 앨런 아이버슨

2000년 ~ 2002년 NBA 파이널 MVP
팀 던컨 샤킬 오닐 팀 던컨

1995년 NBA 올해의 득점왕
데이비드 로빈슨 샤킬 오닐 마이클 조던
2000년 NBA 올해의 득점왕
앨런 아이버슨 샤킬 오닐 앨런 아이버슨

2000년 NBA 올스타 MVP
마이클 조던[1] 샤킬 오닐 & 팀 던컨 앨런 아이버슨
2004년 NBA 올스타 MVP
케빈 가넷 샤킬 오닐 앨런 아이버슨
2009년 NBA 올스타 MVP
르브론 제임스 샤킬 오닐 & 코비 브라이언트 드웨인 웨이드

Contents

1. 소개
2. 선수생활
3. 플레이스타일
4. 예능감
5. 미디어믹스?
6. 그외

1. 소개

NBA 사상 최강의 센터 중 하나로 꼽히는 남자. 흔히 1990년대 NBA 4대 센터라 불리는 4인방 중 1명.[2]

별명이자 애칭샤크(Shaq)로 불리며, 본인 스스로 MDE(Most Dominant Ever)라 칭한다. 또 다른 별명으로 빅 아리스토텔레스도 있고, 자칭 타칭 원조 슈퍼맨(위 포스터를 보면 알듯이), 레이커스의 전설적인 캐스터 칙 헌은 오닐을 빅펠라(Big Fella)라는 별명으로도 불렀다.

1972년생으로 조셉 토니와 어머니 루실 오닐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셉 토니는 서튼 홀 대학에서 농구 장학금 제안을 받았을 정도로 농구에는 재능이 있는 인간이었지만, 다른 게 막장이었다. 약물 복용에 전과까지 있었고, 오닐이 신생아였던 1973년에 마약 소지죄로 감옥에 갔다. 그 사이 어머니인 루실 오닐은 군인인 필립 해리슨과 재혼했고, 조셉 토니는 출소 후 샤킬에 대한 친권을 포기한다. 이후 샤킬 오닐은 조셉 토니와의 어떠한 만남과 대화도 거부하며, 흥미조차 가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오닐의 농구재능 하나만큼은 한때 대학으로부터 농구 장학금 제안을 받을 정도로 탁월한 선수였던 토니에게 받았다고 할수 있다.

어쨌든 해리슨은 오닐의 양부가 되었고 성심성의껏 오닐을 아들로써 양육한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각보다 마초 문화가 강하고, 거기에 해리슨은 미국에서도 마초적인 문화가 가장 강한 집단인 군인이었기에 그의 양육은 가끔 아동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엄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애정이 없는 학대에 불과했다면 오닐이 나중에 해리슨을 "내 아버지인 위대한 (great) 필 해리스"라고 부르며 존경심을 표하거나 자신의 랩 노래에서 '내 아버지는 필이야' 라고 강조할 리가 없다.

어쨌든 아버지인 필립 해리스가 독일에서 근무한 덕에 유년시절을 독일에서 보낸 적이 있다. 일화로 군인들과 같이 농구를 하는데 당시 이미 2m에 가까운 신장을 가졌던 오닐이 너무 잘하자 한 군인이 "너 계급이 뭐냐?" 물었더니 "중학생이에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2. 선수생활

커리어 대부분을 한 팀에서 보낸 올라주원, 유잉, 로빈슨하고는 달리 팀을 여러번 옮기며 다사다난한 선수생활을 보냈다. 이러한 모습은 80년대를 주름잡았던 모세스 말론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고등학생때 이미 괴물 센터로 활약해 소속팀을 2년동안 68승 1패의 먼치킨 팀으로 만들고 주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으며 루이지애나 주립대에 진학하고 나서는 1991년과 92년에 사우스이스턴 컨퍼런스 올해의 선수에 뽑히고 올 아메리칸 중 한명으로 지명되는 등 최고의 기대주로 손꼽혔다. 오닐이 1992년 NBA 드래프트에서 1픽을 가지고 있던 올랜도 매직에 지명되면서 전설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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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시즌 올랜도 매직의 성적을 전년의 21승에서 41승으로 끌어올렸으며 23.4득점 13.9 리바운드 3.5 블록을 기록해 데뷔시즌에 올스타전 주전으로 선발되는 위엄을 과시했고 그해 신인상을 차지한다. 이듬해 마이클 조던이 야구하러 떠난 사이 오닐은 득점왕 경쟁에 뛰어들며 2년만에 리그 최고의 센터 중 하나로 떠오르는 경악스러운 포스를 자랑했다. 경쟁상대였던 데이비드 로빈슨이 마지막 경기에서 공을 몰아받으며 71득점을 기록해 득점왕은 로빈슨에게 양보해야 했지만 아무튼 1993년 드래프트 직후 크리스 웨버와 트레이드된 다음 올랜도에서 데뷔한 앤퍼니 하더웨이와 함께 신생팀이던 올랜도를 신흥 강자로 만들었다. 첫 플레이오프에서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만나 시리즈 스코어 0-3으로 탈락했다.

오닐의 상승세는 3년차에도 거침없었다. 지난 시즌에 실패했던 득점왕 타이틀 획득에 성공하고 올랜도를 57승 25패로 동부 1위 자리에 올려놓았다. 플레이오프에서는 1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를 3-1로 격파, 세미파이널에서 조던이 갓 복귀한 시카고 불스를 4-2로 꺾고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인디애나에게 4-3으로 승리하면서 설욕까지 완료한다. 파이널 상대는 하킴 올라주원과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이끌던 전년도 챔피언 휴스턴 로키츠였는데, 오닐은 시리즈 평균 28.0득점 12.5리바운드로 최선을 다했으나 올라주원의 관록 앞에 0-4로 스윕당하고 말았다.

이듬해에는 손가락 부상을 당해 시즌 초반에 결장을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60승 22패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상대는 72승의 시카고 불스.(…) 시카고에게 0-4로 탈탈 털리고 만다. 이후 페니 하더웨이에게 더 호의적인 구단과의 불화와 악담을 계속하던 지역 언론 때문에 올랜도를 버리고 7년 $121M 계약을 맺으며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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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커스 시절 초기에는 유타 재즈칼 말론&존 스탁턴 듀오나 팀 던컨을 얻은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밀렸으나 명장 필 잭슨의 지도 및 코비 브라이언트가 정상급 슈팅가드로 성장하며 오닐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올라주원 등이 내리막길을 걷는 반면 경험이 쌓이고 몸을 불린 오닐이 리그의 지배자가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9-2000 시즌은 오닐의 선수생활 중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올스타전 MVP와 정규시즌 MVP, 득점왕을 싹쓸이하고 67승 15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뒤 플레이오프에서는 새크라멘토 킹스, 피닉스 선즈,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차례로 꺾은 뒤 노장 레지 밀러의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파이널에서 평균 38.0득점 16.7리바운드 필드골 성공률 61%라는 말도 안되는 모습을 보이며 시리즈 스코어 4-2를 만들며 첫번째 우승반지를 손에 넣는다.

2001년 플레이오프에서는 포틀랜드, 새크라멘토, 샌안토니오를 모조리 스윕해버리는 위엄을 과시했으며,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앨런 아이버슨이 투혼을 불태우며 첫 경기에서 패배를 안겨줬지만 샤크와 코비는 이후 무자비하게 4연승을 거두며 두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이듬해에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던 새크라멘토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끝에 다시 파이널에 진출한다.[3] 제이슨 키드가 이끌던 뉴저지 네츠의 양민 골밑부대는 오닐 앞에서 맥없이 허물어지며 3연패에 성공, 2000년대 초 오닐은 말그대로 대마왕이었다.

레이커스와 오닐의 장기집권은 영원할 줄 알았지만 오닐은 발가락 부상 때문에 수술을 받고 기량이 하락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코비는 2인자 자리에서 만족할 인간이 아니였기 때문에 오닐과 코비 사이의 권력다툼은 심해져갔고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는 데이비드 로빈슨의 마지막 시즌을 맞이한 샌안토니오에게 꺾인다. 오프시즌에 오닐은 우승을 위한 염가계약을 맺으라고 칼 말론과 게리 페이튼을 꼬드겨 그 유명한 전당포 라인업을 만들지만 레이커스와의 재계약 협상에서 잡음이 일고, 코비는 덴버에서 성추문에 휘말리며 팀 분위기는 개판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멤피스, 샌안토니오, 미네소타를 격파하며 어찌어찌 파이널에는 진출했지만 래리 브라운 감독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1-4로 무기력하게 패배하고 만다. 당연히 여론은 최악이 되었으며 코비와의 파워게임 [4]에서 패배한 오닐은 캐런 버틀러, 라마 오덤, 브라이언 그랜트와 트레이드되어 마이애미 히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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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에 온 샤크는 우승을 안겨주겠다고 장담한다. 부상을 당하며 전성기가 끝나 능력치가 한풀 꺾이긴 했으나 마이애미에서의 첫 시즌 평균 22.9득점 10.4 리바운드를 달성하며 건재함을 과시했고, 2005년 MVP 투표에서 스티브 내쉬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5]
5년 $100M로 재계약을 한 다음에 오른쪽 발목부상으로 18경기를 결장하고, 감독이 팻 라일리로 바뀐 후 출장시간을 제한받으며 기록은 많이 낮아졌어도 개의치 않아했다. 2006년 플레이오프에서는 마이애미의 떠오르던 샛별 드웨인 웨이드를 보좌해 조역으로서 네번째 우승반지를 획득하는데 성공. 그러나 이듬해부터는 계속 부상을 입으며 하락세를 겪다가 2008년 2월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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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는 처음으로 올스타전 출장도 못해보고 플레이오프에서도 1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를 만나 탈락하면서 이제는 퇴물이라는 소리도 들었으나 오닐은 뛰어난 피닉스 의료진의 힘을 받고 내쉬의 지원에 힘입어 08-09 시즌에 폼을 약간 회복, 2009년 올스타전에서 악연이 많았던 코비와 오랜만에 같은 팀에서 뛰었고, 공동 MVP를 수상하면서 올 NBA 팀에도 들었다. 하지만 팀은 아쉽게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 피닉스는 연봉 문제 때문에 오닐을 트레이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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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닐의 다음 행선지는 청년가장 르브론 제임스가 혼자 애쓰고 있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클리블랜드는 2009년 동부 파이널에서 올랜도의 드와이트 하워드에게 인사이드를 털렸던 경험이 있었고 이번에는 이를 막기 위해 오닐을 영입했다. 오닐은 클리블랜드에 오면서 '킹(르브론의 별명)에게 반지를' 이라 선언했으나 어느덧 리그 최고령이 된 그에게 큰 힘은 없었고,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보스턴 셀틱스에게 2-4로 걸려 탈락한다. 르브론은 이후 디시전 쇼를 벌인 다음 마이애미로 떠나고 오닐은 자유 계약 신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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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가 2010년에 5번째 반지를 얻은 데 자극받았던건지 샤크는 베터랑 미니멈 계약으로 보스턴 셀틱스와 2년 계약을 맺고 마지막으로 우승에 도전했다. 그러나 여러 부상때문에 37경기만 출장했고 커리어 로우를 기록, 플레이오프에서는 두경기밖에 나오지 못했다. 결국 2011년 6월, 은퇴선언을 하면서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통산기록은 28596득점 13099리바운드(평균 23.7득점 10.9리바운드).

2013년 4월 2일 영구결번에 짜기로 유명한 레이커스가 결국 스테이플스센터에 오닐의 유니폼을 걸어주기로 했다!! 참조

3. 플레이스타일

오닐의 골밑 장악력이나 존재감은 매우 높으며, 인사이드의 오닐에게 볼이 투입될 경우 기본적으로 2,3명의 수비수가 견제를 한다. 루키 시절 올랜도 매직에 있을 때 시합 중 골대를 부숴먹은 사건은 유명하다. 그것도 두 번이나...[6] 과거 오닐의 스폰서였던 리복에서 이걸 가지고 오닐의 시그니처인 샤크 어택때 많이 써먹었다.


이중 1,2,4위가 오닐의 소행이다. 3위는 프로 경력 초창기의 친선시합에서 그 분이고 5위는 드와이트 하워드. 오닐이 저지른 저 두건의 사건때문에 NBA에서는 모든 구장에 예비 골대를 상비할 것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신설했으며, 골대 자체도 절대 안 망가지게 하중 규격을 상향했다. 그래서 이때 이후로는 백보드 부서지는 것 외에는 골대 자체가 주저 앉는 정도는 잘 안나오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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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충공깽이었는지, 오죽하면 중계방송중에 나오는 선수 스텟에 저 기록이 자랑스럽게 올라와 있었다.

LA 레이커스로 이적한 뒤에는 올랜도 시절보다도 몸을 키워 파워를 증량하고 원래 가지고 있던 스피드와[7] 유연함에 여러 기술들까지 탑재해, 원숙해진 개인공격력은 물론이고 골밑에서 3점 라인까지 커버하는 시야와 패스능력으로 리그의 지배자가 된다. 올스타전을 앞두고 가진 연습에서 마이클 조던과 1:1로 농구 하는 장면에서는 가드같은 스피드로 드리블을 하고 가볍게 스핀무브를 해서 조던을 농락하기도 했다. (물론 진지하게 상대한게 아니겠지만..) 수비는... 키가 216에 체중은 140kg을 상회[8]하는 파워로 상대 빅맨이 인사이드로 파고드는 것은 불가능한 수준에다, 점프력은 버티컬 70에 손은 솥뚜껑만한 소도둑이 그 축복받은 신체를 완벽하게 컨트롤한다. 다만 레이커스 이적후 불린 몸에 의해 무릎과 발가락(..)이 성하지 못했는데, 이는 레이커스 전성기 이후 샤킬 오닐의 커리어를 계속 괴롭혔다. (엄지 발가락의 경우 어마어마한 스피드의 퍼스트 스텝 -> 스핀무브 등으로 이어지는 피벗 플레이에 의해 망가졌다는 설이..)

다만, 그런 축복받은 체격을 앞세운 맨투맨 수비에는 능했지만 가드와 콤비를 이루는 픽앤롤 등의 다양한 2대2 전술을 쓰는 팀 상대로는 느린 발과 설렁설렁한 리커버리때문에 약점을 보였고, 레이커스 이적후 97,98년 2년 연속으로 픽앤롤 달인들인 존 스탁턴, 칼 말론의 유타 재즈에게 탈탈 털렸다. 필 잭슨이 들어온 이후에 팀 수비 전술을 다시 만들고 나서야 우승을 거둘 정도.

나이가 들면서는 체력적인 문제로 출장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전성기 때는 체력 또한 괴물급으로 경기당 출장시간이 35~40분이었다. 그렇다고 머리가 나쁘냐? 오닐은 NBA 역사에 손꼽힐만큼 BQ가[9] 높은 빅맨이다.

공격에서 유일한 단점은 자유투. 통산 자유투 성공률이 52.5%로,[10] 빅맨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좋은 편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 약점을 고치기 위해서 자유투 연습을 엄청나게 시켰는데도 끝내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 샤킬 오닐은 손이 매우 큰 편 (농구공에 나뉘어진 칸을 기준으로 3칸을 잡을 수준)인데 큰 손이 자유투에 불리하다고, 쉽게 말해 자연스럽게 스냅을 줄 수가 없어서 공을 손가락 위에 얹어서(...) 밀어 던지는 수준이었는데, 당연히 슛 메커니즘 상 매우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 손목을 다쳐 스냅이 자연스럽지 못한 점도 한 몫했다.

실제로 압도적인 스탯과 성적뿐만 아니라 3번의 파이널 MVP는 오닐이 리그를 지배해 왔음을 알 수 있다.[11] 막아도 막아도 대책이 안서는 오닐을 위해 핵 어 샤크(Hack-a-Shaq)라는 전술이 등장했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공잡으면 무조건 파울해라로 요약할 수 있다. 어차피 못막는거 오닐의 유일한 약점이자 심각한 약점인 자유투를 물고 늘어지자는 작전... 이로 인해 통산 자유투 시도 개수가 11252개로 통산 NBA 4위를 기록하고 있다,[12] 자유투를 뺀다면 빅맨으로서는 그야말로 완전체라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조던의 은퇴이후부터 2000년 중후반까지 팀 덩컨과 더불어 리그를 지배한 2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결국 농구는 빅맨 놀음... 실제로 오닐 본인도 이렇게 생각한다. 오닐이 가장 최근 주목하는 스타로 블레이크 그리핀을 꼽자마자 또 빅맨 타령이라고 찰스 바클리가 깔 정도다. "자네는 경기 중계해도 똑같은 얘기밖에 안 하잖아? 빅맨에게 패스해! 빅맨에게 볼을 줘!"

4. 예능감

외모와는 달리 유머러스하고 기행을 즐긴다. 르브론 제임스, 드와이트 하워드에게 댄스 비법을 전수해 주는 영상이 있다. <무서운 영화> 시리즈에도 카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으며, 음반을 내기도 하는 등 유쾌하다. 본인은 스스로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거인 아리스토텔레스(The Big Aristotle)"라고 불러달라고 한 적이 있다. NBA에서 가장 엔터테이너적 마인드와 상품성이 풍부한 스타.

올스타전 같은 축제에도 가장 필요한 스타라고 평가받는다. 2008년 올스타 전에서는 그것을 온몸으로 보여줬는데, 한 번 포인트가드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오닐을 마크하는 선수는 드와이트 하워드! 그만큼 관중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또한 동료를 잘 챙기는 선배이며, 한편으로는 불우한 소녀의 장례식비를 전액 부담하는 등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후배들 별명도 잘 지어준다. 대표적으로 마이애미 시절 팀 동료였던 드웨인 웨이드의 별명 'Flash'. 폴 피어스의 별명인 'The Truth'라는 별명도 오닐이 지어 주었다. 코비에게도 별명을 지어주었는데, 'Showboat'라는 것이지만 잘 쓰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플로리다 주에서는 명예경찰이다. 실제로 용의자를 쫓아가서 잡아본 적도 있다고 하니 흠좀무. 또 훈훈한 미담도 몇개 있는데 레이커스의 전설 조지 마이칸의 장례식 비용을 자신이 다 부담했고, 친어머니에 의해 5살이라는 나이에 인신매매단에게 팔리고 성매매를 하게 된 샤니아라는 소녀의 장례식 비용도 다 부담해줬다. 오오 대인배.

요새는 트위터에 빠져있는 것 같다. 글이 자주 올라온다.

2010년 12월 보스턴으로 이적 후 보스턴 오케스트라에서 명예 지휘자로 활약했다. 역대 지휘자중 최장신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엔터테이너 기질 때문에 그의 커리어가 더 위대해지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스포츠 블로그이자 팟캐스트인 그랜트랜드를 공동진행하는 잘렌 로즈의 경우 "만약 샤킬 오닐이 코비와 같은 멘탈을 가지고 있었다면 리그는 멸망했을 것이다"라고 평하기도. 실제로 두 선수가 레이커스에서 틀어지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농구라는 게임을 대하는 시각의 차이가 작용했는데, 코비는 오닐의 '외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고.

5. 미디어믹스?

데뷔 초기의 인터뷰에서,"나의 꿈은 NBA챔피언,아카데미상,에미상"이라고 할 정도로,농구 뿐 아니라 영화,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실제로 그의 레이커스 이적에 대해,헐리우드가 있는 LA로 이적하여 연예활동을 좀 더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었다.

랩 음반을 내기도 하였는데, NBA에 데뷔하기도 전인 1993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Shaq Diesel'은 두 곡을 빌보드 싱글차트 50위에 안에 올렸고,한때 빌보드 앨범판매 순위 25위까지 오르며 100만장을 넘게 팔만큼 성공했다.이후 우탱 클랜의 멤버들과 교류가 두드러지는 2집 'Shaq Fu-Da Return'(1994),'You can`t STOP the REIGN'(1996)등을 발표하지만,데뷔 앨범만큼의 성공은 없었고,2000년대 초반 이후엔 두드러지는 음악활동은 없다.1994년 발표된 명프로듀서 퀸시 존스의 앨범 'Jook Joint'의 수록곡 'Stomp'에서도 구수한 랩을 들려준다.

영화에 여럿 나왔지만 그다지 평가는 좋지않다[13]

1993년 국내에 비디오로 발매될 때에는 킬 오닐의 NBA챔프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루칩스에 출연하였다.대학농구 리쿠르트(신입생 발탁)의 추악한 이면을 들춘 영화에서 그는 유망주 농구 선수로 등장한다.이 영화에는 이후 올란도 시절 동료가 되는 앤퍼니 하더웨이가 출연하기도 하며,실제로 이 영화 촬영 과정에서 두 사람은 많이 가까워져,이후 1993년 드래프트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닉 놀테의 연기도 좋다.

1997년 DC 코믹스의 영웅 캐릭터인 스틸의 실사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적이 있다.[14]


1996년에 주연으로 나온 카잠은 자타공인 최악영화로 악명을 떨쳤던 바 있다. 평단의 평은 '자기 자유투 실력만큼이나 형편없는 연기력을 보여줬다'라고 했다. 그래서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에서 만든 '최악의 조합'으로 '샤크의 부업'을 꼽기도 했다. 이 영화의 개봉 무렵 올랜도에서 LA 레이커스로 이적했는데, 친정팀인 올랜도 원정경기 도중 올랜도의 팬 두 사람이 '올랜도에서 네 녀석 영화를 본건 우리 둘 뿐이다ㅋㅋㅋ'라는 피켓을 들고 골려먹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Nostalgia Critic이 다룬 적도 있다.

그나마 무서운 영화 4에서 카메오로 나온다든지[15] [16] 조역으로 종종 나오고 있다. 최신작은 애덤 샌들러의 2013년작으로 7월 12일 개봉한 Grown Ups 2에서 조연으로 나온다. 또한 2014년 개봉한 레고무비에 피규어 및 목소리로 출연하였다.

격투기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2009년 WWE RAW 관람 중 쇼 후반부에 빅 쇼와 대립하는 장면을 만들기도 했고 선수 말년에 종종 최홍만에게 도발을 한다든지[17] UFC에서 브록 레스너와 붙고 싶다든지 하는 얘기를 해왔다. 그리고 WWE는 은퇴 후 자유의 몸이 된 오닐을 놓치지 않고 빅 쇼의 경기를 추진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샤킬 오닐의 인기가 전성기에 달했을때 오닐의 인기에 편승한 게임도 나왔는데, '샥 푸'라는 게임 이다. 16비트 게임기로 나온 대전액션게임이지만, 세계 역사상 최악의 대전액션게임이라는 평가도 종종 받는 희대의 쓰레기 게임. 그로서는 흑역사겠지 AVGN도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리뷰한 바가 있다.

6. 그외

은퇴 후에는 SHAQ 샤킬 오닐 최고의 대결 - 스타들에게 도전장을 던지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ex. 알버트 푸홀스)과 대결을 펼치고 있다.[18]

NBA Open Court라는 시즌제 예능 겸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개그담당패널로 출연중이다. 그런데 썩 좋은 패널은 아닌 것이 자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조건 끼어든다.(...)[19] [20] 그래도 찰스 바클리와 주제에 대한 의견충돌로 아옹다옹하면서 개그로 방송분량을 확보중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해서 코비 브라이언트의 발언으로 드림팀에 대한 떡밥이 나왔을 때 드림팀1의 레전드 데이비드 로빈슨, 패트릭 유잉 정도는 바비큐 치킨이나 머스터드 소스 바른 킨너겟(...)으로 만들어 얼마든지 해치워버릴 수 있다고 한다.[21] [22] 그리고 척은 비웃었다. 단 하킴 올라주원만은 올랜도 시절 파이널에서 4:0으로 털린 경험이 있어서 까지 못한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오닐이지만 그도 인정하는 2명이 하킴과 마이클 조던.

현재는 NBA 주관 방송사 TNT의 포스트게임쇼인 Inside the NBA에 패널로 고정출연하며 어이없거나 웃긴 플레이를 한 선수들을 보여주는 Shaqtin' A Fool 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고정멤버 저베일 맥기

레이커스 시절 앙숙이었던 새크라멘토 킹스의 소액 주주가 되며 경영진에 합류했다.[23]

2012년 배리 대학교에서 교육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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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99년 MVP가 아니고 98년의 MVP다. 99년은 파업으로 올스타전이 치뤄지지 않았다.
  • [2] 원래는 84년 전체 1번 하킴 올라주원, 85년 전체 1번 패트릭 유잉, 87년 전체 1번 데이비드 로빈슨과 더불어 86년 전체 1번 지명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즈래드 도허티가 4대 센터였다. 그러나 브래드 도허티가 부상으로 8시즌만에 은퇴를 하고, 92년 전체 1번 오닐이 리그에 충격과 공포를 몰고 등장하면서 새로운 4대 센터가 된 케이스. 하킴, 유잉과는 10년이나 나이 차이가 난다. 그만큼 오닐의 데뷔가 엄청났다는 뜻이다. 다만 4대 센터란 용어는 국내에서만 쓰는 용어이다. (당연하지만 2000년대를 주릅잡은 슈팅가드들을 일컫는 "6성슈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mvp를 수상하거나 수상에 근접해본적이 있는 오닐,올라주원,로빈슨,유잉과는 달리 도허티는 훌륭한 선수긴 했지만 써드팀에 딱 한번(쉽게 말하면 해당시즌의 센터들중 세번째로 좋은 활약을 했다는 뜻이다) 오른게 다여서 다른 선수들과는 수준차이가 제법있다.
  • [3] 나중에 승부조작 스캔들로 구속된 팀 도너히 심판은 이 시리즈에서 조작이 있었다는 발언을 하는데, 실제로 석연찮은 판정들 때문에 말이 많았다.
  • [4] 정확히 말하면 코비와 샤크 둘 다 2인자가 되기는 거부했고, 두 선수 모두에게 맥시멈 계약을 주기는 힘들었던 (오닐의 경우 맥시멈을 줄경우 연평균 3천만불에 가까웠고, 이때 그는 삭감을 거부했다. 근데 정작 마이애미 가니까 약간 삭감된 금액에 계약했다.누굴 약올리나) 레이커스가 더 젊은 코비를 택한 것이다. 특히 이떄 레이커스 프런트는 필 잭슨 감독과의 갈등도 있었는데, 오닐은 "날 잡으려면 무조건 잭슨 잡아라"라고 공언한 판이라, 잭슨까지 동시에 잡아야될 상황. 결국 잭슨과 오닐을 포기하고 코비 위주로 팀을 재건하려고 한 것이다. 근데 어이없게 둘을 보내고 맞이한 04-05시즌이 폭망하자, 필 잭슨 감독을 연평균 천만불이 넘는 초거대계약 을 안겨주면서 다시 모셔온다.
  • [5] 전직 농구선수들이 모여 노가리를 까는 Open Court란 프로에서 최근에 당시 내쉬가 "진짜 MVP가 아니라 동점심으로 탄 MVP(sympathy vote)라고 한 적이 있다. 자기가 너무 크고 강해서 매년 탈수 없으니 준거라고. 원래 오닐이 떠벌이 이미지가 있지만 이 멘트에 대해서는 미국이건 한국이건 팬들 반응이 매우 안 좋다. 사실 당시 내쉬는 플옵도 못 오르던 팀을 전체1위로 이끈 대활약을 펼쳤는데 그걸 "동정심"으로 폄훼하니...게다가 매년 탈수 없느니 뭐니 할수도 없는게 그는 평생 한번 MVP수상했다(...)
  • [6] 더 충격적인 건 저 두 사건은 각각 1993년 2월 7일, 4월 13일에 일어났는데, 불과 두 달만에 두 개의 골대를 박살냈다!
  • [7] 큰 체구에도 불구하고 운동능력이 NBA 평균수치는 가볍게 상회한다고 한다.
  • [8] 그럼에도 체지방률은 10%를 밑돈다. 그야말로 근육덩어리.
  • [9] Basketball Quotient. 농구의 전술을 이해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농구 지수를 의미한다.
  • [10] 가장 자유투 성공률이 높았던 시즌은 02-03 시즌의 62.2%.
  • [11] 단, 그 몸을 유지하느라 정규시즌에는 결장이 잦아서, 정규시즌 MVP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1번밖에 없다. 그럼에도 단기전에서 3번의 파이널 MVP라는 것은 오닐이 우승팀의 진짜 에이스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 [12] 성공 개수는 5935개로 통산 22위. 13818개를 시도한 칼 말론이 통산 1위(말론은 또한 성공 개수도 9787개로 통산 1위이다).
  • [13] 사실 영화에 나온 농구선수들 중에서 평이 좋은 경우는 정말 드물다. 농구를 다룬 영화를 제외하고, 배역을 꽤 충실히 수행했다는 평을 받은 것은 레이 알렌, 사망유희카림 압둘 자바나쁜 녀석들의 존 샐리 정도이고, 장 클로드 반담과 함께 '더블팀'의 주연을 맡은 데니스 로드먼이나 스페이스 잼마이클 조던 그리고 본문의 샤킬 오닐 등은 재앙이 따로 없었다.
  • [14] 여기서 자유투가 몇 번 나오는데 대부분 실패, 마지막에 수류탄을 자유투로 성공시킨다…
  • [15] 포스터에도 나오지만, 초반에 잠깐 나오는 역할이다. 돌로 자유투를 던지는데, 상당히 낮은 성공률을 보여준다.
  • [16] 쏘우 1을 패러디하여 본인과 의사라는 사람이 둘이 함께 납치당해서 깨어나서는 발이 쇠사슬로 묶인걸 보고 상당히 당황하다가 살인마의 목소리를 듣고는 (자신과 레이커스에서 우승은 일구어 내었지만 사적으로는 사이가 틀어져서 안 좋던 전 팀 동료인) " 코비?(나를 납치한게 너냐?)" 라고 대뜸 물어보는 게 둘 사이를 아는 사람이 보면 상당히 웃긴 장면.
  • [17] 최홍만은 자신에게 영상편지로 도발한 오닐에게 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역시 영상편지로 답장을 하였다. 컴온이라고.농구만 했던 놈, 단숨에 때려눕혀 버린다는데..이 소식을 보고 누리꾼의 반응은 농구만 했던 놈이 겁없게시리..최홍만, 박살내 버려라!라는 반응과 농구 팬들의 "샼 같은 전설적인 선수가 최홍만을 알아주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 같은데?"라는 반응으로 갈리는 듯 하다.잠깐,이 상황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시비 건 쪽, 받은 쪽 국적과 누리꾼 반응까지 다 똑같네?
  • [18] 일부 에피소드는 "샤킬 오닐의 무한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엠스플에서도 방송했었다.
  • [19] 실제로 그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단 오닐은 애널리스트로는 좋은 목소리가 아니다. 과거 패널에 있었던 크리스 웨버나 같이 진행하는 케니 스미스와 달리 상당한 중저음이기 때문에 비판론자들은 "곰이 웅얼거리는 것 같다"(...)고 까기도 한다. 또 상당히 논리적으로 얘기하는 둘과 달리 아직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내공이 부족하고 진지하지 못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물론 이러한 점은 차차 개선되는 중.
  • [20] 더 심각한 문제는 현대 농구에 대한 공부가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지속적으로 까는 팀들이 있는데 사실 그 팀의 경기를 거의 안 보거나, 맨날 똑같은 뜬 구름 잡는 얘기(포스트업 빅맨 칭송, 요새 농구는 픽앤롤 농구야, 드와잇 하워드는 나처럼 28-15을 해야 돼 등)만 반복한다던지. 위에 언급된 Shaqtin' a fool의 한 에피소드에서 그가 농구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드러났는데, 원래 이 프로는 작가들이 영상과 대사는 전부 준비하고 오닐은 이 대본을 맛깔스럽게 읽기만 하는 구조이다. 그런데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작가진이 엉뚱한 대본을 전달하는 바람에 오닐이 즉석에서 멘트를 준비해야 했는데, 해당 영상에 나오는 선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보면서 "아 저 선수가 이런 바보짓하고 있네요"라고 해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개그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웃으며 넘어갔지만 현역 해설가이자 분석가가 스타급 선수들을 제외한 선수들의 이름을 전혀 모른다는 건 은근히 심각한 문제다.
  • [21] 이 날의 주제는 원조 드림팀과 2012년 드림팀 중 어디가 더 강한지였는데, 샼은 뜬금없이 자신이 소속됐던 94년 드림팀이 제일 강하다고 억지를 부렸다..어허..이 양반이 후환이 두렵지 않은건지..
  • [22] 이 문장만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오닐은 은퇴후 종종 유잉에 대해 "my idol"라고 지칭하며 존경심을 표했다. 대학시절까지 33번를 택한 이유도 그것 때문. 다만 매직 입단시 이걸 포기한 이유가 당시 33번을 달고 있건 선수가 돈을 (...) 요구해서라고 한다. 오닐은 젊은 시절 유잉에게 끊임없이 도발한 것에 대해 "그가 최고라는 걸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밝힌바 있다.본인의 자아성장을 위해 남의 자아를 씹다. 오오 유잉 대인배
  • [23] 레이커스 시절 샤크는 새크라멘토 킹스를 새크라멘토 퀸즈라며 대차게 디스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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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2-25 11: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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