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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호네츠

last modified: 2015-04-14 22:29:07 by Contributors

NBA 동부 컨퍼런스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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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호크스
(Atlanta Haw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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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호네츠
(Charlotte Horn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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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히트
(Miami H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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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매직
(Orlando Ma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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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위저즈
(Washington Wiz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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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호네츠
Charlotte Hornets
창단년도1988년 / 2004년
연고지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컨퍼런스동부 컨퍼런스
디비전사우스이스트
구단명 변천사샬럿 호네츠 (1988년~2002년)
샬럿 밥캣츠 (2004년~2014년)
샬럿 호네츠 (2014년~)
구단주마이클 조던
단장리치 조
감독스티브 클리포드
통합 우승
(0회)
-
컨퍼런스 우승
(0회)
-
디비전 우승
(0회)
-
홈구장타임 워너 케이블 아레나(2005년 건립)
홈페이지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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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얼터네이트

Contents

1. 소개
2. 역사
2.1. 원조 호네츠
2.2. 밥캣츠 시절
2.3. 2013-14 시즌
2.4. 호네츠의 귀환
3. 2014-15 시즌 선수단
4. 영구결번


1. 소개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소속. 호네츠라는 명칭을 가진 구단은 1988년에 창단되었으나 뉴올리언스로 연고지를 옮긴 다음 2013-2014 시즌부터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변경되었다. 샬럿에는 2004년에 밥캣츠라는 구단이 새로 창설되어 10년을 보내다 뉴올리언스에 간 호네츠가 펠리컨스로 바뀌자 밥캣츠가 호네츠로 팀명을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

사실 원래 이 동네에 있던 호네츠 구단은 인기가 제법 많은 팀이었다. 그런데 고비에서 결국 우승 도전에 실패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구단주인 조지 쉰의 성추문으로 지역에서 평판이 떨어진 것이 컸다. 이 때문에 새 구장 건립에 실패하자, 빡쳐서 그냥 뉴올리언스로 날라 버렸다. 졸지에 NBA 팀을 잃어버린 샬럿 주민들은 "우리의 NBA 팀을 돌려줘" 라고 징징댔고, 결국 NBA 사무국이 30번째 팀을 만들면서 그 연고지를 샬럿으로 못박으면서 팀이 생기게 되었다.

팀의 특징은 초대 구단주가 사상 최초의 흑인 구단주였다는 점. 그리고 지금 그 분께서도 흑인이시니, 이 전통은 이어져 오는 셈이다. 샬럿 주민들도 새 팀을 맞으면서 과거 호네츠가 떠나는 한 원인이었던 새 구장에 대한 건립 약속을 지켜서 2005년 새 구장을 지어줬다.

2. 역사

2.1. 원조 호네츠

샬럿 호네츠
Charlotte Hornets
1988/89 ~ 2001/02
노스 캐롤라이나 지역은 전통의 농구 라이벌 UNC,듀크를 비롯해 명문 대학 농구팀들이 밀집한 농구 열기가 좋은 곳[1]인데 정작 NBA 팀은 없었다. 이 지역 출신의 사업가인 조지 쉰은 이에 착안해서 NBA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1988년에 팀이 창단되었다.

창단 초기에는 이 동네에 처음 들어선 NBA팀이라는 점 때문에 제법 인기를 모았다. 팀도 상당히 괜찮은 전력을 만들었다. 초창기에는 쇼타임 레이커스의 스타였던 커트 램비스를 중심으로 팀을 편성하면서 그동안 하위권을 전전해 오다가 1992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인 루이지애나 주립대의 센터 샤킬 오닐과 강력한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던 농구명문 조지타운 출신 1992년 드래프트 전체 2순위 센터 론조 모닝과 파워포워드이자 1991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 LJ 리 존슨[2] 160cm의 키로 NBA 무대를 누빈 시 보그스[3], 3점 슛터인 델 커리[4]등을 앞세워 팀 최초로 5할 승률을 넘김과 함께 플레이오프 진출도 성공했다.

호네츠로서는 매 시즌 20-10을 해주는 엘리트 센터 알론조 모닝을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우려 했고, 홈구장앞에 무려 동상까지 세워주면서 그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95-96시즌을 앞두고 벌였던 모닝과의 연장 계약 협상이 끝내 결렬되면서 결국 시즌 개막을 단 하루(!) 앞두고 알론조 모닝을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마이애미 히트로 처분하면서 리빌딩에 들어갔다. 대신 비교적 전력을 공백을 빠르게 메운 편이었는데, 모닝을 주고 받아온 당시 히트의 1옵션이자 3점슛 달인인 렌 라이스를 축으로 한 끈적한 농구로 변신했고, 여기에 소니 메이슨같은 다재다능한 포워드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번의 트레이드를 통해 다시 런 데이비스말 매쉬번을 축으로 한 끈적한 농구를 보여주며, 스타는 없어도 조직력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팀이었다.[5]

하지만 호네츠의 문제는 팀 전력에 있지 않았다. 꾸준히 팀을 갈아 엎으면서도 매번 일정 이상 전력은 만들어 냈지만, 정작 그들의 적은 외부에 있었다. 구단주인 조지 쉰의 성추문이 터지면서 지역 사회에서 조지 쉰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졌고, 새로운 구장 건설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졌다. 처음부터 UNC,듀크같은 강력한 경쟁자에 밀렸던 호네츠는 결국 이러한 갈등 속에서 새 구장 건설도 어려워지고, 자신들에 대한 분위기가 썩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식한 호네츠는 연고지를 옮겨 버렸다. 그러나 농구 열기 자체가 죽은건 아니어서, 결국 10년이 지나기 전 샬럿 밥캣츠가 창단되었다.

2.2. 밥캣츠 시절

© from
샬럿 밥캣츠
Charlotte Bobcats

성적은 전형적인 신생팀의 한계를 못 벗어난 약체였다. 나이가 40대인 구단주가 현역 선수들을 이기는 동영상도 나돌정도니...

안습한 나날을 보내다 명장 래리 브라운과 올스타 포워드인 'G-포스' 제랄드 월러스를 앞세워 2009-10 시즌에 팀 역사상 첫 위닝 시즌(44승 38패)과 PO 진출을 이룩했다. 그러나 PO에서는 드와이트 하워드가 이끄는 올랜도 매직에게 0:4 떡실신. 그리고 브라운 감독이 떠나고, 월러스도 리빌딩을 이유로 트레이드시키면서 다시 긴 리빌딩에 들어갔다.

오히려 앞에서도 언급한 그 분이 구단주라는 점이 더 큰 화제거리고, 샬럿 밥캐츠를 아는 사람들은 이 팀에 선수가 누가 있는지는 잘 몰라도, 조던이 구단주라는 사실은 안다. 2005년부터 지분에 투자하기 시작한 조던은 2010년 최종적으로 구단의 전체 지분을 매입하며 단독 구단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조던은 팀을 구하지 못했다. 마사장의 대표적인 흑역사중 하나인 콰미 브라운으로 대표되는 드래프트 삽질이 밥캐츠에서도 재현되었고, 신인들이나 중견급 선수나 하나같이 헤맸다.차라리 내가 뛸까

2011-12 시즌은 한 마디로 역대 사상 최악의 팀이 되었다. 단축 시즌이라 66경기로 치뤄진 2011-12 시즌에서 7승 59패라는 희대의 성적을 기록했다. 역대 최저승 기록 경신[6]과 승률 0.106으로 NBA 역사상 최저 승률 기록 경신[7]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것. 이미 언론에서는 2012년 NCAA 토너먼트 우승팀 켄터키 대학과 붙을 경우, 샬럿이 진다는데 한 표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조던도 열이 잔뜩 받았는지 이대로면 팀 팔거라고 징징을 시전중이다(...). 심지어 경기 수가 단축되지 않았다면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32연패를 깰 수 있을 뻔했다는 소문도 퍼졌었다고

이 팀이 재건에 성공하려면 방법은 단 하나, 드래프트 1순위를 뽑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그 드래프트에서도 가장 높은 확률은 가지고도 2순위가 되었다. 2012년 드래프트가 인재가 많다고 해도 1위 유망주인 앤서니 데이비스와 2위 그룹간의 격차가 매우 컸기 때문에 사실상 리빌딩 시간은 최소 반년 이상 길어졌다고 봐야한다.

결국, 2012 드래프트에서 2픽으로 켄터키 대학 출신의 스몰포워드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를 골랐다. 단장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리빌딩 당시 프런트 출신이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전 단장이었던 리치 초(rich cho)를 선임하여, 조던이 원하는 리빌딩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듯 하다.

2012-13 시즌의 최종 성적은 21승 61패. 시즌 내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올랜도 매직과 함께 동부 컨퍼런스 탈꼴찌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2012년 11월 27일에 있었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에서는 50점차까지 벌어지며 떡실신당했고 18연패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2012-13 시즌도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나마 후반에 조금씩 승을 챙겼고 같은 최하위 팀인 올랜도가 연패를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꼴찌를 면했다.

2.3. 2013-14 시즌

2014 드래프트 대어들을 위해 로스터를 약화시키면서 탱킹을 노리는 구단들이 많아졌으나 구단주님은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반대 노선을 걷는다고 선언, 유타에서 공격력이 좋은 센터 알 제퍼슨을 영입하는 등 전력을 보강했다. 작년 전체 2픽이었던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와 올해 4픽이었던 코디 젤러는 아직은 갈 길이 멀었음을 보여주었지만 알젭은 동부 컨퍼런스 유일의 20득점-10리바운드 빅맨으로 활약하고 2011년 드래프티인 켐바 워커가 잘 성장해줌과 동시에 수비에 총력을 기울여 승점자판기 신세에서 탈출, 43승 39패로 다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는데 성공했다. 마사장님 보고 계십니까

그러나 상대는 시즌 전적 0승 4패에 사우스비치에 머물고 있는 큰 재능에게 61점을 허용했던 마이애미 히트. 마이애미가 빅 3를 결성한 이후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한 완벽한 천적이었다. 1차전에서 부상을 당해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팀의 핵심인 알 제퍼슨의 공백을 메우는데 실패했고, 플옵 진출 팀들중 유일하게 깔끔하게 스윕당하며 시즌을 마쳤다. 꾸역꾸역 플옵 올라갔더니 상대가...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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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오프 탈락 후 밥캣츠 홈페이지 대문. 10년의 안습한 역사가 끝났다.

2.4. 호네츠의 귀환

2013 시즌 이후부터 원조였던 뉴올리언스 호네츠가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라는 이름으로 바꾸자, 이 팀이 과거의 호네츠 이름을 다시 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샬럿 호네츠가 훨씬 인지도가 높은게 원인. 구단주 마이클 조던도 호네츠 이름을 다시 쓰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결국 NBA 구단주 전체 회의에서 호네츠 이름 사용이 허가되어, 2014-15 시즌부터 샬럿 호네츠라는 이름으로 시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래 호네츠의 프랜차이즈였던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와의 협의를 통해 현 호네츠는 샬럿 시절의 호네츠 역사를 가져가고, 원래 호네츠 프랜차이즈였던 펠리컨스는 뉴올리언스로 연고지 이전을 한 후의 역사만을 가져가기로 합의함으로써 자칫 잘못하면 개족보가 될 뻔한 관계를 어느 정도 교통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식을 알리는 샬럿 호네츠 트위터

2014년 드래프트 순위 추첨식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1픽을 차지하면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9픽으로 밀려났는데, 이 픽은 2012년 벤 고든과 코리 메거티 트레이드 당시 8픽까지라면 디트로이트가 그대로 쓰지만 9픽 이하부터는 샬럿이 행사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샬럿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도 2014년 드래프트에서 9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거저 얻은 9번픽으로 최소 8픽 안, 매체에 따라서는 5픽 안쪽으로도 예상했던 인사이더 노아 본레를 뽑으면서 2014 드래프트 최고의 승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디트로이트 감사합니다. 새크라멘토 감사합니다.

가드 포지션의 보강이 필요했기에 유타 재즈의 제한적 FA 든 헤이워드에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과감한 맥시멈을[8] 질러서 욕을 먹었는데 헤이워드를 놓치기 싫었던 유타가 울며 겨자먹기로 샬럿의 제안에 매치하면서[9]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써니, 크리스 보쉬 등 대형 FA들에게 가려 관심밖이었던 준척급 FA들이 너도나도 맥시멈을 부르면서 에어컨 리그를 혼돈의 카오스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3년 $27.5M 이라는 싼 가격으로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젊은 슈팅가드 랜스 스티븐슨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팬덤에선 남의 팀은 혼란으로 몰아넣고 자신들은 알짜영입을 한 마갈량을 찬양하는 분위기(...) 사실 단장인 Rich Cho의 능력이다.

야심차게 시작한 2014-15 시즌이었지만 첫 20경기 성적은 5승 15패로 상당히 실망스럽다. 켐바 워커와 랜스 스티븐슨이 둘 다 볼을 가지고 플레이해야 하는 선수라 모아놓고 보니 그다지 좋지 않은 조합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외곽슈팅과 볼배급능력이 좋았던 조쉬 맥로버츠의 이탈 때문에 알젭의 위력이 감소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3. 2014-15 시즌 선수단

2014-15 시즌 샬럿 호네츠 선수단
감독 스티브 클리포드
코치 패트릭 유잉, 스티븐 사일러스, 밥 웨이스, 마크 프라이스, 팻 딜레이니
가드 1.랜스 스티븐슨 7.모 윌리엄스 15.켐바 워커 22.브라이언 로버츠 30.트로이 다니엘스
포워드 2.마빈 윌리엄스 11.노아 본레 14.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 44.제프 테일러 54.제이슨 맥시엘
센터 25.알 제퍼슨
가드-포워드 9.제랄드 헨더슨 19.P.J.헤어스톤
센터-포워드 8.비스마크 비욤보
포워드-센터 40.코디 젤러

4. 영구결번

13.바비 필스 : 샬럿 호네츠의 캡틴이었으나 교통사고로 사망. 불과 3년밖에 뛰지 않았음에도 불구, 뛰어난 리더쉽과 활발한 지역사회 봉사 활동으로 모두의 귀감을 받는 그야말로 진정한 캡틴이었다. 사후 영구결번. "Michael, WHO?"라는 도발로도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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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단, 이들 대학은 주의 동쪽 끝에 위치한 주도 랄리(Raleigh)와 채플힐,더럼,윈스턴-살렘 등에 위치해있다. 샬럿은 정반대인 주의 서쪽 끝에 위치.
  • [2] UNLV 출신에 생긴 것도 조폭스타일의 터프가이 파워포워드였다. 득점을 성공시킨 뒤 L자 모양의 사인을 하기 때문에 Big L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 [3] 역대 최단신 선수다. NBA 초창기에도 180대가 작은 키였단 걸 생각하면 (포인트가드로 슈퍼스타가 된 최초의 인물이며 5,60년대를 주름잡은 밥 쿠지가 185) 평균신장이 2미터 정도였던 90년대에 이 키로 주전으로 뛴것 자체가 엄청난 것. 170이하인 선수는 그 외 스퍼드 웹, 얼 보이킨스도 있지만 보그스처럼 플옵권 팀에서 주축선수로 뛴 선수는 없었다. 175이하로 범위를 넓이면 휴스턴 로케츠의 레전드 캘빈 머피가 있는데(175) 이분은 심지어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 [4]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가드 스테판 커리의 아버지이다.
  • [5] 안타까운 것은, 이때 호네츠의 주전 슈팅가드이고 팀의 리더로써 활약했던 바비 필스가 시즌도중인 2000년 1월 30일 눈길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
  • [6] 종전 기록은 1998-99 시즌 밴쿠버 그리즐리스의 8승 42패. 보면 알겠지만, 이 때도 단축시즌이었다. 하지만 50경기로 치뤄진 시즌이라 승률은 0.160 이었다.
  • [7] 종전 기록은 1972-73 시즌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9승 73패 승률 0.110
  • [8] NBA는 연차별로 연봉 한도가 정해져 있는데 각 연차별 최고로 받을 수 있는 연봉액을 맥시멈이라 칭한다.
  • [9] 제한적 FA는 타 구단이 제시한 조건과 동일한 조건으로 현 소속 구단에서 매치하면 현 소속팀에 남는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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