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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이상없다

last modified: 2015-02-26 14:23:53 by Contributors

제 3 회 (1930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로드웨이 멜로디
제 2 회 (1929년) 수상작
서부전선 이상없다
마론
제 4 회 (1931년) 수상작



  • 독일어: Im Westen nichts Neues -서부(전선) 새 소식 없음
  • 영어: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서부전선은 모두 고요하다

This story is neither an accusation nor a confession, and least of all an adventure. for death is not an adventure to those who stand face to fate with it. It will try simply to tell of a generation of men who, even though the may have escaped its shells were destroyed by the war...

이 이야기는 고발이나 고백이 아니며, 모험은 더더욱 아니다. 죽음에 직면한 이들에게 죽음은 모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죽음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고 전쟁에 희생된 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1930년판 영화에서 나오는 문구.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우는 거죠?
조국(Fatherland)를 위해 싸우는 거지.
그럼 프랑스놈들은 누구를 위해 싸우는 거죠?
모국(Motherland)를 위해 싸우는 거지.
그럼 누가 옳은거죠?
그야 이긴 놈이 옳은거지.

1979년판 빌헬름 2세의 부대방문 후 병사들과 카친스키의 대화

Contents

1. 개요
2. 줄거리
3. 미디어 믹스

소식이 희소식일리가 없다

1. 개요

1929년 출간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1]의 반전 메시지를 담은 소설. 제1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했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반전소설로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2][3]

반전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독문학적으로도 특기할만한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쓰인 대화들은 그동안 독일 소설에 잘 나오지 않던 생생한 속어체 문장으로 표현되었다. 게다가 군대에서 쓰이는 전문용어나 은어가 자주 나와 리얼리티를 살리고 있다. 그래서 독일 원어민이 아니고서는 원어로 된 작품을 읽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어 번역판은 일본어판을 중역한 것으로 추정되는 개판, 여러 판이 있지만 번역체가 너무 심하다.[4]

2. 줄거리

제1차 세계대전[5] 독일군 캠프에서 배부르게 먹고 나자빠져 있는 주인공 '파울 보이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쟁이 일어나자 독일 전역에 전쟁의 광기가 몰아닥치고 담임 교사 칸토레크는 열변을 토하며 졸업반 학생들에게 모두 전선으로 나갈 것을 권유한다. 독려 돋네 그래서 같은 반 친구들 20명이 단체로 빠짐없이 원입대한다.[6]

병훈련소에 단체로 온 학생들은 교관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어쩔때는 가혹행위에 가까운 훈련이었고, 사소한 일로 얼차려를 시켜서 학생들은 모두 이 교관에게 복수한다고 이를 간다.[7]

신병훈련을 마치고 도착한 본 전선은 그야말로 현실은 시궁창이었고 전쟁터에 나가길 꺼리던 친구가 첫번째로 사망한다. 그 후에 다리를 다쳐 가 된 그 친구(케머리히)에게(죽기 직전) "너 발병신이니까 신발 필요 없지? 나 줘라"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전쟁이 얼마나 인간성을 해치는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8][9] 그 다음 그 군화가 이리저리 소유자를 옮겨다니며 군화를 클로즈업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장면이 압권.

자기가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전쟁에 나가라고 강요하던 담임도 나중에는 예비역으로 소집되어 후방에서 훈련을 받는데 휴가로 집에 간 주인공은 낡은 군복을 입고 온갖 추태를 부리는 옛 담임을 실컷 비웃는다. 그 담임을 갈구면서 훈련시키는 장교 지망생이 급우여서 선생을 실컷 엿먹이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판에서는 이 장면이 다른 장면으로 교체되었다. 30년판 영화에서는 전과 똑같이 어린 학생들을 선동하는 교실에 들어와 파울이 분노를 터뜨리는 대목인데 이 장면이 가히 명장면. 원작은 단지 담임 교사 칸토레크를 굴리며 비웃는 것 정도로 끝나나 영화판에서 파울이 칸토레크에게 분노를 토해내며 하는 말이 전쟁의 본질을 그대로 꿰뚫는다.

칸토레크 : 농장에서, 학교에서, 공장에서, 용감하고 숭고하게 전쟁터를 향해 떠났지. 조국을 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거야. 아 파울, 잘 지냈니?
파울 : 선생님도 잘 지내셨나요?
칸토레크 : 딱 맞춰 와주었네 보이머, 딱 맞게 왔어. 내 말을 증명하듯 지원 학생이 왔다. 바로 요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이지. 전쟁터에서 1년을 보낸 학생이다. 독일을 강대국으로 만든 젊은 피 중 하나지. 이 청년을 보라, 강건한 구릿빛 피부, 여러분 모두가 부러워하는 병사다! 학생들에게 얘기 좀 해주게. 조국을 지키는게 어떤 의미였는지.
파울 :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예요.
칸토레크 : 좀 해주게, 한 마디면 충분해. 조국이 얼마나 이들을 필요로 하는지, 자네가 왜 갔는지, 자네에겐 어떤 의미인지.
파울 : 못합니다.
칸토레크 : 영웅주의와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지 않나? 얘기해주게.
파울 :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모르는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우린 참호에서 살면서 처절하게 싸웁니다. 살아남으려 애쓰지만 죽는 사람이 많아요. 그게 전부입니다.
칸토레크 : 아니야, 파울.
파울 : 전쟁터에 있었어요. 제가 잘 알아요!
칸토레크 : 그런 말을 하라는 게 아니야, 파울.
파울 : 똑같은 말을 또 되풀이하고 계시는군요. 젊은 철인을, 젊은 영웅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내려구요. 조국을 위해 죽는게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하세요? 선생님은 다 아시는 줄 알았죠. 하지만 포화를 처음 봤을 때[10] 더 많은 걸 배웠어요. 조국을 위한 죽음은 추하고 고통스럽다구요! 그딴 걸 위해 죽느니 사는게 훨씬 나아요! 조국을 위해 죽는 수백만 젊은이들이 다 무슨 소용이죠?
칸토레크 : 파울!
파울 : 지원병이 얼마나 필요한지 말하라고 하셨죠? 다 죽으란 거야, 그냥 나가 죽으라고 알기 쉽게 말하세요.
학생 : 겁쟁이!
파울 : 말은 쉽지! 너희는 모르니까 그래.
칸토레크 : 그만들 해라! 미안하지만.
파울 : 그만하세요. 무슨 말인지 모르실걸요. 이 학급에서 자원하고 꽤 시간이 흘렀죠. 지금쯤이면 세상이 다 알 줄 알았어요. 저런 애들을 내보내면 일주일도 못 견뎌요. 오지 말걸 그랬어요. 전선에선 사느냐 죽느냐 그것만 문제예요. 학생들을 영원히 속이진 못할 거예요. 거기선 사느냐 죽느냐, 그것만 중요해요. 3년을 있었어요. 4년을요! 하루하루가 백년 같아요. 우리 몸은 땅이요, 생각은 흙이고, 우리는 거기서 죽음이랑 함께 뒹굴고 먹고 잡니다. 그러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79년작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부상을 입고 군 병원에서 회복한 직후 요양 겸 고향으로 휴가를 갔을때, 참혹한 전장은 모른채 평온한 후방에서 학생들에게 자신들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로 낭만적인 애국심을 부추키는 교사에게 죽거나 신체 결손으로 장애인이 된 급우들을 언급하며 냉소적으로 보는 것 정도로 묘사된다.

거기다가 훈련소에서 가혹행위 수준의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키던 교관은 정작 자기가 실제로 전장에 오니 남들은 다 포화 속으로 뛰어나가는데 포탄구멍속에 짱박혀 울면서 벌벌 떠는 등 군국주의에서 말하는 영웅이라는 것이 다 부질 없다는 걸 보여준다.[11]

이 훈련소 교관이 소설에서는 '편배달부였다더라' 정도로 묘사되는게 30년 제작 영화판에서는 교관이 살던 동네가 주인공과 같은 지역이었다는 설정을 추가했다. 덕분에 훈련소에 갓 입소해서 낯설어하던 주인공을 비롯한 소년병들은 낯익은 동네 아저씨를 발견하고 떼지어 몰려가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지만, 학생들이 알고 있던 "그 마음씨 좋은 우편배달부 아저씨"는 어느새 군복을 갈아입고 독일 하사관이자 훈련 교관으로 변신해 있었다. 덕분에 학생들은 그 순간부터 말 그대로 충공깽을 선사받는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워낙 개고생을 한 덕분에 전선에 나가 비교적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나중에 주인공 일행이 그 점을 고마워하는 묘사도 나온다. 그런데 79년제작된 영화판에서는 같은 동네 우편배달부였다는 설정까진 같은데 이것 때문에 서로 원수지간이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입대 전 주인공 및 급우들이 모자를 벗기고 놀리던 찌질한 집배원 아저씨를 훈련소 교관으로 만나게 된 것. 때문에 교관은 '악의를 갖고' 일부러 힘든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장교 때문에 주인공을 징계할 수 없게되자 밤에 깨워 속옷에 맨발 차림으로 막사 계단을 뛰어 오르게하며, 한층을 오를 때마다 군홧발로 주인공의 발을 짓밟는다. 원작이나 30년대 판에 비해 상당한 천하의 개쌍놈으로 나오는 셈. 결국 주인공 무리가 훈련소 퇴소 전날 밤에 술 마시고 교관에게 모포를 씌워 앞을 못보게 한 뒤 바지를 벗기고 엉덩이를 회초리로 때린 뒤 도망간다. 이런 관계 때문인지 79년판 영화에선 주인공 무리들이 전선에 배치되자 곧 고참병으로부터 '훈련소에서 배운건 잊어라'라며 교관의 교육이 쓸모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소설 및 79년판 영화에선 첫 장면, 30년대판 영화에선 중반부에서 전투가 끝나고 취사병이 애써 중대분의 음식을 만들어 왔는데, 여기서 또 웃긴게 160명이었는데 교체하기 전날 영국군이 포격해서 70명만 빼고 나머지는 죽거나 병원에 후송된 덕분에 나머지는 두사람분을 먹게 된다. 물론 취사병은 인원이 부족하다며 안 주려고 했지만 주인공 일행은 '니가 재정 담당관이냐?'라고 비꼬고 "안 내놓으면 너라도 구워먹을 테다!"라고 위협하는 데다 병사 출신이라 주인공 일행의 마음을 잘아는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남은 병사들에게 두배로 주고 시럽까지 잔뜩 먹는다. 한 사람 당 두명분을 먹어서 다들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당장 어젯밤까지 한솥밥 먹고 있던 친구들이 희생당한 대가이므로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그 다음 실컷 먹고 뻗은 친구들이 '근데 우리 왜 싸우는 거지?'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는데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 영화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장면이다. 그리고 전에 다친 프란츠 케머리히가 있는 병원으로 가자 발병신된 케머리히가 죽는 장면. 그리고 사람이 죽었는데도 "아 또 죽었구만." 정도로 반응하는 의사들의 모습은 현시창 자체다. 심지어 79년도 영화판에서는 전투 후 독일황제가 직접 하차하여 포상을 하고, 하필이면 그 훈련소 교관이 훈장을 받아서 빡친 김에 부대원들끼리 하는 얘기에서 전쟁을 왜 하는지에 대해 또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살아남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하다가 결국 거의 다 죽고 끝나는 본격 "전쟁은 싫어요" 소설. 전쟁이 후반으로 가면서 이리저리 흩어져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친구들이 꽤 있어서 주인공이 최후의 1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12] 다만 이건 부대에서 만난 고참들의 경우고[13], 같이 지원한 학교 친구들은 거의 다 죽었다. 그나마 다른 부대로 간 친구들의 운명은 거의 언급이 되지 않는다.[14] 예외적으로 79년판 영화에서는 영화 맨 마지막 장면에서 급우들의 행방이 정확하게 언급된다. 파울이 알베르트에게 편지를 쓰며 독백으로 묘사되는데 20명의 친구들이 입대해서 13명이 사망 4명 실종[15] 1명은 정신병원으로 실려가 살아남은 건 파울과 알베르트뿐이라고 한다. 안습.

그 후 부상병의 요양 겸 휴가를 받아 잠시 고향에 돌아간 파울은[16] 어머니를 만났는데 어머니는 "독가슨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많이 죽는다던데……."라고 하자 겉으로는 전세도 유리하고, 사기도 드높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것봐라. '독가슨가 뭔가'라지 않나! 어머니는 우리가 무슨 꼴을 당하는지 상상도 못하신다."라고 독백한다. 다만 이 장면은 영화의 장면이고, 소설판에서는 같은 말을 부상 전 휴가를 갔을 때 한다. 부상 후의 요양휴가에서는 투병 중이었던 어머니가 많이 쇠약해지셨고 다시 전장에 내보내기 싫어하셨다는 내용 한줄이 전부이다. 그리고 실제로 당시의 부모들은 아들이 전선에서 무슨 꼴을 당하며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어갔는지 정보통제로 감쪽같이 속아 정말로 몰랐다. 심지어 79년작 영화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가 '난 군복무 하는 아들을 자랑하고 싶은데 왜 옷을 갈아입었니'라거나 아버지와 동네 아저씨들이 술집에서 맥주잔으로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군사전략을 침튀기며 열정적으로 논한다. 79년작 영화에선 아버지는 전쟁 전부터 '난 (참전할 수 있는) 네가 부럽다'라고 말하는 등 뭣도 모르면서 전쟁에 열광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은 계속되는 전쟁과 친구들의 죽음으로 결국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극한으로 몰린다. 의지하던 카진스키마저 죽어버리고 완전히 넋이 나가서 한 묘사가 처절하기까지 하다.[17] 그야말로 1918년의 독일군은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인간으로서의 의지를 잃어버리곤 "전쟁으로 파멸된 우리 세대를 우리보다 어리고 활기가 넘치는 세대가 금방 밀어내 버릴 것이다."라고 자조하며 이상의 삶을 완전히 포기해버리고 참호 밖으로 나온다. 저격수에게 한방에 당해 고통을 느낄 새도 없고, 차라리 행복해 보일 만큼 편안한 표정을 짓고 죽어 있었다. 다만 주인공이 죽는 마지막 장면은 책과 영화마다 묘사가 다른데, 30년대 영화판에서는 나비를 보고 잡으려다가 저격수에게 죽는다. 79년판에서는 스케치 하다가 고개를 너무 많이 들어서 참호 밖으로 뒷통수가 노출되어 총에 맞아 사망하는 것으로 나온다. 소설에선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갑자기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전환되며 "여기까지 써 내려간 그도 10월의 어느 날 전사했다."라는 내용으로 어떻게 죽었는지 사인도 묘사되지 않는다.

어쨌든 주인공이 전사한 바로 그날 독일군 사령부에서는 서부전선에 새 소식 없음라는 기록을 남긴다. 왜? 전선 자체는 교착상태이므로 후방에 앉아계신 높으신 나리들에게는 (지도만 보면) 이상없는 것처럼 보였거든. 그러니까 한달만에 안으로 망할지 생각도 못했겠지

그리고 주인공 파울 보이머가 전사한 그 날은 1918년 10월 어느 날. 바로 1차 대전이 끝나기 겨우 한 달 전이었다.

작중에선 제1차 세계대전의 과학의 신비 기관총, 독가스의 사용과 참호전의 생생한 묘사를 접할 수 있다.

이 작품, 그리고 같은 해 나온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로 인해 2차대전 이후 나온 전쟁소설은 그 밥에 그 나물이 되고 말았다.

3. 미디어 믹스

출간되자마자 1930년에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에 의해 미국에서 영화(흑백)로도 제작되었는데,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원작을 읽어본 사람은 경탄할 정도로 원작의 주요 내용을 나름 세심히 옮겼다. 나중 영화판에서 빠진 병원에서 생긴 일도 재현 할 정도였다. 사실 이 영화 제작때만 해도 1차 대전 참전용사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대단히 세밀한 고증을 자랑하기도 한다.[18] 주인공이 죽고 크레딧이 흐르면서 등장 인물들이 행군하면서 하나 둘씩 뒤를 보는 장면은 이 후 여러 영화들에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영화의 반전 메시지가 심히 마음에 안 들었던 히틀러나치당원들은 영화관에 를 풀어버리거나 혹은 스크린에 물감풍선을 집어던져 영화상영을 방해하곤 했다. 그 후 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후로는 시까지 상영금지 크리. 미국에서도 고립주의자들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전쟁 개입을 반대하기 위해서 내세운 영화가 이 영화와 <위대한 독재자>였다(...). 정작 이 두 영화가 강력하게 전쟁과 군국주의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는 영화였음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

주연인 아이레스는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아서 양심적 병역거부나 반전 관련 활동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감독인 이스 마일스톤은 2차 대전 당시에는 일본 비난 선전물등의 국책영화를 꽤 만들었다.(...) 그래도 전쟁 후 서부전선 이상 없다류의 허무한 전쟁을 고발한 한국전쟁영화 찹힐을 만들어서 명성을 얻었다.

느글느글한 부사관 카친스키(카트)를 연기한 이스 불 하임은 후일 프론트 페이지라는 영화에 출연할 뻔 했는데 촬영 일주일전에 뇌출혈로 사망한다.(...)

1979년 한번 더 영화(컬러)로 만들어졌다. TV영화인데도 이 작품 또한 명작으로 불린다. 웬만한 극장영화보다 낫고 한국에서는 주로 이 작품이 KBS를 통해서 소개되었다. 독일에는 이미 도시가 모두 현대화되어 있어 촬영할 만한 곳이 없어서, 공산국가였던 체코(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찍었다. 여기서 카친스키 역은 에어울프의 부조종사역을 맡았던 원로 배우 어네스트 보그나인이었는데, 원작의 친구 개념보다는 주인공이 아버지처럼 따르는 일병으로 나왔다.[19] 원작과는 미묘하게 다르면서도 30년 작품처럼 원작의 일부내용을 잘 살렸다. 특히 거위 사냥 부분. 30년 작과 원작을 뛰어넘은 장면은 카친스키의 사망 장면. 일부는 30년대 작품보다 79년도작을 더 명작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배우들의 연기와 여러 특수효과들도 30년대 작보다 휠씬 좋다.[20]

1982년에는 엘튼 존이 원작을 모티브해서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를 작곡했었다. Jump Up!에 수록된 곡.

2011년에는 대니얼 래드클리프를 주연으로 한 두번째 리메이크판이 2012년 개봉을 목표로 기획되었으나 엎어졌다.

2014년에 두번째 리메이크 소식이 떴다! 감독은 로저 도널드슨이고 2015년 3월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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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898-1970) 독일태생의 소설가. 1차대전에 참전했으며, 후에 나치가 집권하자 먼저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2차대전이 터지자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지냈고, 후에 나치가 몰락하자 스위스에서 지냈다. 특이할 점은 찰리 채플린의 두번째 처인 여배우 폴릿 고다르와 재혼했다는 점. 두명 모두 세번째 결혼이었고 이후 죽을때까지 부부로 있었다. 이밖에도, 2차대전 직전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인 소설 "개선문"이 있으며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리스본의 밤', 2차대전 후반의 동부전선 병사들을 다루는 '사랑할 때와 죽을 때'도 명저로 꼽히며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그 외에는 1처대전 종전 후 돌아가는 병사들을 다룬 다룬 '세 전우들', 귀향한 병사들의 방황을 그린 '귀로' 등이 있다.
  • [2] 여담으로 독일에서는 전쟁의 참상과 영웅적 리얼리즘을 결부시켜 전쟁찬미를 서술한 른스트 윙거의 최초작품인 <강철의 폭풍속에서>가 나온 시기는 1920년이다. 윙거는 푸르 르 메리트 무공훈장의 최연소-최후 서훈자로서 줄곧 서부전선의 최일선에서 분투한 전쟁영웅이다. 전장체험이 모두 반전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사례이자, 보수적인 사회에서 반전문학이 나오는데 (여러 이유로) 시간이 꽤 걸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3] 른스트 윙거의 에세이가 영웅주의적인 사관에서 서술되었다는건 편견이다.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전쟁이라는 현실이 인간을 어떻게 파탄내는지를 묘사한다면, 윙거는 그러한 삭막한 파국을 일말의 동정심도 없게 묘사하면서, 그 속에서도 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운명을 극복하는 인간을 긍정한다. 이렇게 참전 용사인 두 작가의 시각이 엇갈리게 된 원인은 1차 세계 대전을 개인 속에서 어떻게 마무리 지었는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레마르크는 전선에 배치되자 마자 파편을 맞아 입원한뒤 그대로 종전을 맞이하며 반전 소설가가 되었고, 윙거는 개전부터 종전까지 서부전선에서 살아남아 훈장을 받았다.) 덧붙이자면, 두 작가 모두 나치즘과 대립하게 되었는데, 레마르크는 스위스로 망명해야 했고, 윙거는 나치즘에 크게 비판적이지 않은것도 있고(기본적으로는 파시스트였고 내셔널 볼셰비즘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전쟁에서의 명성도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윙거는 2차대전 발발 후 대위로 소집되어 파리에서 독일군으로 복무했다.
  • [4] 제목 자체부터 일본어 제목인 "西部戦線異常なし"를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봐도 알 수 있다.
  • [5] 1930년판 영화에서 전쟁터에서 3년을 지냈다는 파울의 언급을 볼 때 1916년으로 추정된다. 원작자가 서부전선에 배치된 때도 1916년.
  • [6] 원작에서는 과거 회상으로 잠깐 언급되는 수준이지만 30년 영화판에서는 세심하게 묘사했다. 학생들의 표정이 진짜 압권인데 당시 독일에 불어닥친 전쟁의 광기가 어느 수준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반면에 1979년판에서는 원작과 비슷한 수준으로 묘사되며, 그렇게까지 부각되지 않는다.
  • [7] 그러나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구타는 전혀 묘사되지 않고, 가혹행위라고 해봤자 진흙탕을 구르게 시키거나 혹은 잠을 못자게 하는 정도다. 구타 비슷하게라도 나오는 장면은 총검술 훈련때 훈련병들은 실총을, 교관은 목총을 들어 목총으로 몇대 맞았다는 정도. 그나마도 나중에는 파울이 빡쳐서 실총으로 눈 딱 감고 교관에게 한방 먹였다고 나온다. 적어도 이때도 독일군은 구타와 같은 악습은 없었음을 알 수 있다.즉, 현대한국군은 1차대전기 독일군만도 못한 인권의식을 가지고있단 말이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79년판 영화에서는 구타만 없을 뿐 그에 거의 상응하는 가혹행위를 시전하는 교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8] 군화를 달라는 친구가 사이코패스인 게 절대 아니다. 케머리히에게 군화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자기가 맨발로 철조망 위를 하루 종일 걸었으면 걸었지 군화를 탐낼 친구는 아니라고 주인공이 독백하지만, 너무도 가혹한 전장의 현실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버리는 것.
  • [9] 79년 영화판에서는 군화를 요구하는 친구가 '나도 걔가 군화가 필요하다면 요구하지 않았겠지만, 어차피 곧 죽을거 애먼놈이 가져가는 것보다 내가 쓰는게 낫지 않냐"고 말한다. 옆에서 다른 친구가 맞는 말이라며 역성을 들어주고, 주인공 역시 괴롭긴 하지만 틀린말이 아니라 아무 반론을 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 [10] 이 때 자원하는 걸 망설였던 벰이라는 친구가 급우들 중 1번으로 끔살당했다.
  • [11] 심지어 79년작 영화에선 이런 추태를 보이던 교관이 독일 황제에게 훈장을 수여받는다
  • [12] 주인공이 함께 온 동료들 중에 꽤 오래 살아남은 케이스인 것은 확실하다. 10월 중순에 사망했다고 했으니 종전 직전이었다.
  • [13] 대부분이 죽으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가장 의지하던 폴란드 출신의 슈타니슬라우스 카진스키가 최종장 바로 앞의 에피소드에서 사망하는데 "국경수비병 슈타니슬라우스 카진스키가 죽었다. 그 이상은 모른다."라는 대목은 전쟁에서 병사 개개인의 생명이 얼마나 가치없는지 깨우쳐주는 장면이다
  • [14] 같은 부대로 온 급우 중 확실한 생존자는 알베르트 크로프 한명인데 그나마도 다리를 잃었다. 아예 소설판에서는 다치기 전엔 복선이 깔리면서 "발병신 되는 일이 있으면 그냥 죽어버릴 거야."라는 대사까지 있는데 다만 나중에 주인공 파울이 퇴원할 때쯤 되자 크로프의 마음도 많이 가라앉아 남들이 카드놀이하는데도 끼어서 구경하고 같은 방 환자의 아이를 받아안아 얼러주는 등 다리 절단의 충격에서 꽤 회복된 모습을 보인다. 79년판 영화에서는 한술 더 떠 완전히 멘붕해선 "뭐라도 갖다 줄까?" 하는 파울의 질문에 "총"이라고 대답한다. 자살했을 확률도 농후하다.
  • [15] 탈영했다가 잡혀간 친구 하나. "소식은 못 들었지만 붙잡힌 탈영병이 어찌 될 지 너도 알지?"라고 자조한다.
  • [16] 앞서 언급한 담임교사를 만나 냉소/싸우는 장면이 나오는 그 시점
  • [17] 79년작 영화에선 교관이 천하의 개쌍놈으로 묘사되고 카진스키가 고참이자 사실상의 (생존)교관으로 나오기 때문에 주인공 일행이 정신적으로 더 많이 의존했다.
  • [18] 영화를 잘 보면 초반부터 후반까지 독일군의 철모가 점차로 바뀐다는 것을 알려준다.
  • [19] 정확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워낙 나이가 있는 캐릭터라 좀 묘한데, 번역이 비교적 상당히 정확한편인 EBS에서 방영했을 때 일병으로 번역했다. 다만 상당한 재량권이 있는 고참병으로 묘사된다. 후임병 교육까지 도맡을 정도. 애초에 하사관(현 부사관) 계급이 결국 병사 계급의 연장선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한 해당 시점이 1차대전 즈음인 것을 감안하면 계급의 분화가 애매한 것에서 비롯된 현상일 수 있다
  • [20] 원작은 부상당한 카친스키를 주인공이 후송하다가 그냥 날아가던 파편에 맞아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인데, 30년대판에서는 룰루랄라 가다가 비행기 폭격에 사망한다. 원작처럼 비장한 부분은 79년판에서 재현된다. 그런데 자네들 친척 아닌가?라는 대사는 30년판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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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2-26 14: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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