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서산시

last modified: 2015-04-15 12:03:48 by Contributors


瑞山市 / Seosan City
西山市 Western Mountain City
seosancity.JPG
[JPG image (638.73 KB)]

서산시청. 주소는 충청남도 서산시 아문길 1(舊 읍내동 492번지). 공식 홈페이지.

seosan1.gif
[GIF image (2.93 KB)]

▲ 서산시 로고

seosan2.gif
[GIF image (15.68 KB)]

▲ 서산시 슬로건

seosan3.gif
[GIF image (15.23 KB)]

▲ 서산시 마스코트

서산시
瑞山市 / Seosan City
국가 대한민국
면적 740.48㎢
광역시도 충청남도
하위 행정구역 1 9 5
시간대 UTC+9
인구 167,707명
(2015년 2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225.23명/㎢
시장 이완섭
재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Contents

1. 개관
2. 역사
3. 도시구조 및 지리
3.1. 지리
3.1.1. 지형
3.1.2. 기후
3.2. 도시구조
3.2.1. 1980년대까지
3.2.2. 1990년대
3.2.3. 2000년대
3.2.4. 2010년대
3.2.5. 종합
3.2.6. 트리비아: 범죄율
4. 교통
5. 스포츠
6. 특산물
7. 산업
8. 군사
9. 사건사고
10. 하위 행정구역
11. 관련항목
12. 출신 인물


대부분의 부모님이 땅을 가졌다는 그곳
서산 일굴귀와는 상관 없다.

1. 개관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 인구는 약 16만명으로 면적은 739.15㎢이다. 이전부터 외부와 격리되어 있었기에 조선시대부터 한 고집 한다는 사람들(...)의 유배지로 이름높았고, 사실 누구나 아는 이름대로 서쪽에 있는 산이 아니라 상서로울 瑞 자에 뫼 山이다.

서산만의 독특한 사투리로는 '시절' 이 있다. 의미는 대략 '바보, 한심한 놈'. 용법은 다음과 같다. "으유 이 시즐아, 이런것도 못하냐."[1][2]

서산테크노벨리와 여러 산업단지가 들어옴으로 인해 당진과 더불어 계속해서 인구가 느는 추세에 있다. 그에 따라 요즘들어 아파트를 정말 많이 짓고있다. 최근들어 포스코나 SK에너지 같은 대기업이 계속해서 입지하고 있다. 향후 몇년 내에 인구가 크게 증가할 도시중 하나.


2. 역사

서산 지역은 한강 유역보다도 오히려 중국에 가깝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요충지 중 하나였다. 사 시대 유물들도 발굴됨은 물론이고, 마한이나 백제 시절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 중 하나이다. 대표적으로 서산마애삼존불상과 보원사지 등이 있다. 하지만 백제 부흥 운동 당시 주축이었단 이유로 신라에 의해 초토화되었다.[3]

서산의 기원은 삼한 시대 마한의 54개국 중의 하나로 태안에서 이동 형성된 신소도국(臣蘇塗國)과 대산에서 형성된 치리국국(致利鞠國)의 2개 부족국가를 시조로 본다. 이후 백제 시대에 들어와서 지곡면에 위치했던 치리국국이 지육현(知六縣)이 되고, 해미면 지역에 여촌현(餘村縣)이 생겼으며, 비로소 부춘산 기슭에 오늘날 서산시의 모체인 기군(基郡)이 만들어졌다.

서산 지역[4]의 경우 통일신라 때(755) 부성군(富城郡)이라고 불렸으며, 고려 때(1284) 서산군이라는 이름을 처음 얻게 되었다. 그 후 1308년 서주목(瑞州牧)으로, 다시 2년 뒤에는 서령부(瑞寧府)로 바뀌었다가 조선 태종 때(1413) 다시 서산군으로 되었다.

해미의 경우 태종 때(1407) 정해현과 여미현을 통합해 해미현이라고 칭하게 되었으며, 1418년 병영(兵營)이 덕산(현 예산군 덕산면)에서 이전했다. 성종 때(1491) 해미읍성이 축성되었고, 효종 때(1621) 호서좌영(湖西左營)이 설치되었다.

1895년 4월 7일[5] : 23부제 실시에 따라 홍주부 산하 서산군, 태안군, 해미군으로 편제
1914년 3월 16일 : 마산면과 화변면을 부석면으로 통합
1914년 4월 1일 :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태안군과 해미군을 서산군에 병합
1917년 10월 1일 : 서령면을 서산면으로, 지성면을 해미면으로 개칭
1942년 10월 1일 : 서산면을 서산읍으로 승격
1957년 11월 6일 : 대호지면, 정미면을 당진군에 편입[6]
1973년 7월 1일 : 태안면을 태안읍으로 승격
1979년 : A-B 지구 간척사업 시작
1980년 12월 1일 : 안면면을 안면읍으로 승격
1983년 2월 15일 : 고북면 대사리를 홍성군 갈산면에 편입
1989년 1월 1일 : 서산읍이 서산시로 승격, 동시에 태안군이 다시 분군
1991년 12월 1일 : 대산면을 대산읍으로 승격
1995년 1월 1일 : 도농복합시 시행으로 인하여 서산시와 서산군이 서산시로 통합
2011년 7월 4일 : 대산읍 독곳리를 독리로 개칭함

3. 도시구조 및 지리

3.1. 지리

지리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한 글은 해동지도[7]의 서산군에 대한 해제이다.
산세가 읍치를 둘러싸고, 바다가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고 볼 수 있다. [8]
충남 서해안권중 서북부 해안권의 지역중심도시이며, 북동으로는 당진시, 동측으로는 예산군, 서측으로는 태안군, 남측으로는 홍성군에 접하고 있으며 해수면상으로는 북서으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경기도 안산시와 접해있다. 운산, 해미, 고북을 지나는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며, 국도 29호선(보성-대산) 및 32호선(만리포-대전)이 대상지를 각각 남북과 동서로 관통한다.

3.1.1. 지형

산은 동에 가야산, 서에 팔봉산, 남에 도비산, 북에 부춘산(옥녀봉)이 있으며, 바다는 북으로는 가로림만, 대호포, 남으로는 적돌강(積乭江), 사장포(沙長浦),천수만이 있다. [9][10]
대부분의 높은 지형은 동쪽에 있으며, 북쪽으로 해서 구릉지를 타고 산맥이 서쪽으로 간다. 따라서 지형은 기복이 심한 편이지만 표고 100m이하인 부분이 전체면적의 약 86.5%를 차지하고 있고, 산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사도가 10% 미만인 저산구릉지대이다. 산세가 비틀거림에 비해 비교적 평야가 많이 형성되어 있고 동고서저, 북고남저형을 띄는 지형을 갖고 있다.

서산읍 지역에는 서산면 지역의 명지천[11][12], 인지면 지역의 둔당천, 음암면 지역의 청지천이 흐르며, 이 모든 개천은 자기 자신만의 저수지를 갖고 있었다. 명지천은 중앙저수지[13], 둔당천은 풍전저수지, 청지천은 잠흥저수지를 갖고 있다.

해미읍 지역에 흐르는 대부분의 하천은 도당천을 중심으로 한 지류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큰 지류는 도당천 지류와 해미천, 신장천이다. 도당천 지류는 다시 동암천, 반양천, 홍천천과 삼송천, 대교천과 태봉천, 가좌천, 중곡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미천은 산수천과 황락천을 지류로 갖고 있으며, 신장천은 단일지류이다. 도당천과 해미천은 각각 저수지를 갖고 있다. 이외의 하천은 신상천, 도간천, 기포천, 소정천이 있는데, 이 중 유일하게 소정천에만 저수지가 있다.

고려 초기부터 조세운반선이 태안군 서쪽을 가로질러 오다가 풍랑에 가라앉는 일이 많아[14]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려 인종때 굴포운하라고 하여 가로림만과 굴포를 잇는 운하를 뚫으려고 했으나, 화강암 암반을 지녀 무려 500년간 갖은 작업을 통해 7km 중 4km만 뚫고 무산되었다. 대신 조선 인조때 물살이 조금이라도 덜 거세게 안면곶을 안면도로 만드는 판목운하를 뚫었다고 한다. 이곳도 희대의 난공사라 (애초에 바로 옆이라 암반은 같다! 다만 길이가 짧을뿐)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거센 물살을 줄이는데 나름 도움을 줬다고 한다. 문제는 태안 서쪽을 그대로 거쳐가야 한다는게 문제지..

3.1.2. 기후

아시아계절풍지역, 대륙의 동안에서 부는 계절풍의 영향권에 속하는 곳이다. 겨울철에는 북서풍이, 여름철에는 남풍이 분다. 바다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해안지방에 난지성 식물인 동백이나 사철나무가 자란다. 따라서 이전에는 대나무의 북방 한계선 자락이었으며, 실제로 죽림같은 지명이 많다. 상대습도가 높지만 일조지수와 증발량이 많은 편이며, 연교차가 크게 나타나고 바다쪽이 내륙보다 기온이 높다. 바다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북서풍이 불기 직전인 10월이 11월보다 더 건조하며, 이로 인해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다설지는 아님). [15]


3.2. 도시구조

도시구조는 도로가 방사형으로 뻗은 전형적이고 전통적으로 시내 한가운데부터 발전된 도시의 구조를 갖고 있다. 즉, 백제시대 이후의 국가들의 수도로부터 멀어 버려졌고, 애초에 백제 이후 신라에 의해 모든 인프라가 파괴되어 그 이후엔 오직 자생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사실은 조선 시대 왕자의 난으로 인해 이방간은 현재의 서산시 지역으로 유배를 왔으며[16], 조선시대 다른 유배자들도 이곳에 꽤 많이 왔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유배를 어디로 보내는지만 생각해도 감이 온다. 더군다나, 실제로 박정희가 시찰을 오기 전 까지 서산에서 서울을 편도로 가는 데에 5시간에서 7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사실 이전에 적혀있던 "충청도에 있던 듣보잡 시"라는 표현이 제일 잘 어울릴 거다. 애초에 기차도 안들어오고 유의미한 도로도 안들어오는 도시였는데 어떻게 듣보잡이 아닐까? 괜히 멘트가 살기 좋은 서산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단절되어 사람이 순하고 정신이 맑고 착하다.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속해있는 행정구역 중 이전엔 서산읍(현 서산 시내)보다 해미면이 오히려 컸었기 때문에, 오히려 해미 중심이 아니라 서산 중심으로 발달한 것이 이상하다. 하지만 해미는 조선시대 이후 퇴적으로 인해 점차 해양에서 멀어져 해양도시로서의 역할을 잃어 점점 역량이 서산으로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A-B 지구 방조제 건설 이후 해미는 오직 공군 군사거점지 역할 정도를 제외하면 이름과 달리 바다와 연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락했다. 6.25 전쟁 당시 해미읍성에 있던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서 그렇다는 지역 주민의 말도 있다.[17] 다만 가까운 곳에 내포신도시가 개발되고 난 다음에 어찌 될지는 미지수. 애초에 서해안고속도로에 접근성이 굉장히 좋고[18] 다만 홍성과는 달리 산으로 막혀 있어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태안 같은 경우에는 좀 특이한게, 분명 다른 지역임에도 서산 주민들이나 태안 주민들이나 모두 다 서산 산다고 한다. 분리가 막상 되었으나 모든 인프라가 서산 중심으로 깔린지 오래라 굳이 분리할 필요성을 못느낀다고 보는게 맞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3.2.1. 1980년대까지

한국전쟁 직전의 지도한국전쟁 이후의 지도[19]를 참조하면, 시내 및 주변지역은 무려 한국전쟁때, 혹은 그 이전과 다를게 없음을 알 수 있다! 물론 2010년대에 들어 시내의 사이즈는1979년의 4배가 넘게 커졌지만, 애초에 기초적인 시설은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다는 점은 과거와 그리 다를게 없는 현실을 알려준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수도권의 유행이 3년이 지나야 서산에 온다.는 말도 있었는데, 실제로 이러한 발전없는 실상 때문에 이는 당연한 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때 대통령이 서산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서울에서 서산에 오는 길은 오지게 빡센 길(..)이었고[20] 따라서 육군 공병대가 현재 서산터미널 앞을 지나가는 안견로와 서산의료원 앞을 지나가는 서해로의 일부를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 가장 큰 길이었던 649번 지방도(서령로)[21]를 제치고 시에서 가장 넓은 도로이자, 각각 국도 29번과 32번의 연장이 되었다.

1980년대 말 시내에 흐르던 하천인 청지천(석림천)이 복개되고 양유정은 일개 공원이 되었다. 안습.

당시에는 남쪽에 가려면 현재의 모아슈퍼 앞 삼거리를 지나서 가야 했고, 서울에 가려면 현재의 서령고등학교 앞을 지나쳐 가야 했다. 현재도 두곳 모두다 2차선인 채로 남아있으니 지역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주민이라면 가서 구경해보자. 특히 모아슈퍼 앞 삼거리는 30년 전과 바뀐게 간판밖에 없으며, 서령고등학교의 정면만은 개교 당시와 똑같다. 2010년대 지어진 아파트가 보이지만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지울 수 있다.

참고로 서산초등학교 근처의 경우 증언에 따르면 1930년대와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건물 높이도 똑같다고. 실제로 바로 앞에 시장 가는 길을 보면 낙후되어있음이 온눈에 보인다. 서령고등학교 가는 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난개발이 많이 이루어져 지도에서 보기보다 상당히 낙후되어 보인다. 실제로도 서령고등학교 근처를 제외하면 버려진 시가지급...으로 사정이 좋지 않다.

3.2.2. 1990년대

시청에 있는아파트 현황을 연도별로 정리해서 보면 실제로 단지형 아파트들이 대부분 1990년대초부터 생기기 시작했으며, 이는 대산 석유화학단지가 운영을 시작한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당시에 대산은 방금 생긴 단지이기 때문에 편의시설 등이 부족하여 근로자들은 가까운 도시인 서산에서 집을 구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 시점부터 서서히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에는 교통상황이 매우 안좋았기 때문에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때문에 이때부터 의료원사거리 앞부터 정체가 시작되었다. 1992년부터 본래 대산과 이어진 도로[22]가 아니라 새로운 도로[23]를 착공해서 1995년5월에 완공되었다. 이로 인해 거미줄 모양의 도로를 갖게 되었다. 90년대 초 현재의 터미널을 시내버스터미널로 삼고, 현 서부상가 지역에 시외버스터미널을 세우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시장 상인들 및 지주의 농간으로 인해 서부상가 지역의 개발을 포기하고 그 당시 도로를 만들면서 충의로와 안견로 사이의 공간을 제외하고 충의로 남쪽부터 개발을 강행했다. 이 당시 버려진 부지는 2000년대 초 주상복합으로 개조되어 만들어지려다 현재까지도 무한성 상태로 흉물스럽게 버려져 있다.

이 당시의 시내 모습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남아있는 곳이라면 그때나 지금이나 모습이 똑같은 현재의 부춘초등학교 지역, 부춘중학교 지역, 80년대 말에 매립되어 개발된 양유정 지역(다만 여기는 1800년대 모습도 남아있는 곳이라..), 명지천 유역 후반부(현 옛날치킨 및 GS25, 로마관광나이트가 있는 곳.) 안견로 따라 가면 있는 대신증권빌딩 근처 건물들이 주로 90년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3.2.3. 2000년대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의 완전개통으로 인해 서울 가는데 4시간이 걸리던 거리가 1시간대로 좁혀졌으며, 때맞춰 열린 2002 안면도 국제 꽃 박람회로 인해 태안이 관광지로서 각광받게 되었다. 당시 교통량이 너무 늘어나 2차선이었던 태안-서산간 도로를 4차선으로 늘리는 공사를 진행했다. 이에 당시 나름 면 읍내급의 상가를 갖고 있던 공림삼거리는 서산시내에 기능이 흡수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제 주말마다 도로가 헬게이트가 되었다. 당시 낙후되어있던 시내외의 컨텐츠들을 늘리는 방향으로 발전이 진행되었으며, 시 외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안견로와 충의로 사이의 빈 지역을 주로 개발하는 방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를 보조하기 위해 한 시내버스 노선은 마트 앞[24]과 한 아파트 단지[25]를 직결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때 시내에 그린필백화점이 생기면서, 제20전투비행단으로 인한 고도제한 때문에 높은 건물을 못짓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시장상인들의 농간이었음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 이후 시내에 고층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26]
2000년대 전반과 후반을 비교할때, 후반에 전반을 비교하면 거의 네배 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사실 시가지의 사이즈가 갑자기 커진 것도 이 시기[27]이다. 이때에 들어서야 일부 부춘중학교 인근과 시내 인근을 제외하면 거의 버려진 안견로 주변 땅이 개발되기 시작한것[28]도 주요한 이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호수공원 개발사업이다. 1990년대 시도했던 서부상가 개발 사업에서 똥방죽중앙지 개발 사업을 따로 따서 호수공원으로 만들고 그 주변을 개발하기로 시도한것이 결국 2005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2008년 완공되었다. 상가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며 아직 전체 개발이 안되었음에도 기존의 중심지 기능을 하던 먹자골과 터미널을 한산하게 만들 정도로 붐비기 시작했다. 다만 계획과 살짝 틀어진 탓에 호수공원 준공 이전에 예천주공 1-2단지가 준공되었다. 때문에, 도심 한가운데가 뻥 뚫린것 처럼 농지로 가득한 상황이 잠깐동안 있었다. 물론 동문동 일대는 아직도 그렇지만.

3.2.4. 2010년대

호수공원은 이제 새로운 중심지로서 기능하기 시작했고, 기존에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진 학교들은 이제 지근거리에 아파트 같은 대규모 주거지를 맞대게 되었다. 따라서 기존과 교육시스템 자체의 적용이 달라지고 있다. 서산여중-서산여고 아래의 양열로는 00년대부터 이미 태안으로 인해 시의 주 도로인 충의로가 정체가 되자 그 정체를 막기 위해 세운 도로인데, 이게 다시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시내 도로는 00년대 이전 수준으로 교통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서산시 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기존의 안견로-충의로-양열로 순으로 이어지는 큰 도로들처럼 거미줄로 만들어지는 도로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존 도로명을 고려한다면 이 도로들의 이름은 각각 둔당로와 남부순환로가 될 예정이다.

2000년대까지 서산시내에 편의점은 단 몇군데밖에 없었지만 2010년대 들어오면서 상당히 많은 곳에 편의점이 생겼다는 것만 생각해 봐도, 2000년대와 2010년만 비교해 보더라도 생각외로 시내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급변하는 곳은 2000년대 후반에 이어 계속 예천동 쪽이다. 계속 아파트가 들어섰고, 들어서고 있고, 더 들어설 것이 분명한 곳 중 하나이기 때문. 당분간은 충의로와 양열로-서해로 사이를 메꾸는 데에 주로 개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입지적으로 봐도 상당히 좋은 곳이기도 하고. 아직 개발 안된 새로운 중심지 근처의 땅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중에는 다른 도시들처럼 이곳을 신도심으로, 현 터미널 근처를 구도심으로 부르지 않을까 하는 말들도 있다.

오히려 내포신도시보다는 서산시가 더 발전할 거라는 의견들도 있다. 1 2[29]

3.2.5. 종합

sosan.gif
[GIF image (1.88 MB)]

왜 지도랑 위성사진이랑 섞여있나요[이유]
다이나믹한 성장을 거치고 있는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대한민국끝난 뒤에 뒤늦게 성장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사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것이 나온 것이 2000년대 후반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백제 시대 이후 이렇게 발전한게 드물다고 할 수 있을 정도. 현재 발전하는 지방 소도시들 중에선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편이다. 혹자는 천안이나 수원의 20여년 전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했고, 제 2의 울산 소리가 2000년대 초반에 나오기도 했다. 지금은 자뻑인걸 아는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오히려 더 가까워지고 있다.


3.2.6. 트리비아: 범죄율

도시가 커져서 즐길거리가 늘어난다는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게 현실인게, 시내가 크게 확장된 다음부터 치안이 안좋아졌다는 소리가 떠돌고 있다. 살기 좋은 서산 시내 확장 전에 오히려 인구가 몰리고 그랬어야 정상일 듯 싶으나, 실상 늘어난 것은 1만명인데 강력범죄(특히 언론에 뜰만한 사건)은 자주 벌어진다는 것이다. 아마도 소규모 공동체에서 자정이 일어나다가 외부 유입으로 자정이 불가능한 인원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아니면, 오히려 작은 사회였기에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고 덮인 걸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전보다는 훨씬 큰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원주민들이 느끼기엔 확실히 이전엔 말로만 해도 되던 일들을 처리하기 힘들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서산시 대부분의 공무원(소방,경찰.시청 등) 대부분 서산출신으로 일반 민간인과 선후배 하는 사이로 대부분 사건을 좋은 방향으로 가길 원하는 측면도 있었음. 하지만 외지인이 현지인과 싸우거나 하면 편을 들수는 없다보니까 사건이 예전에 비해서 커지는거....

4. 교통

우선, 보통 시 급의 지자체에 놓여지는 철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본디 일제강점기[31] 철로부설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취소되고[32], 그 뒤로는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업 자체가 거론되지 않는다. 지역민들의 열망 중 하나. 서해선 마저도 서산을 빗겨간다. 해산업선이 승객수송용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29번 국도, 서해로, 38번 국도, 45번 국도가 있다. 최근 당진영덕고속도로의 대산 연장이 추진되고 있었지만 현재는 무산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하는 형태이다.

도로는 그냥 헬게이트이다. 시내버스 터미널 근처는 지방 소도시 주제에 소위 강남대로급 정체를 볼 수 있으며, 출퇴근 시간이 되면 시내의 모든 도로의 통행량이 수용량에 근접하는 기염을 토한다. 휴가철에는 이게 더 심해지는데,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태안이 관광지로서 힘을 얻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특히 안면도 꽃 축제 등)으로 인해 주말만 되면 그 빨라진 접근성(1970년대 5시간 20분 항목을 다시 보고 지금 인터넷 지도에서 시간을 찍어보자. 몇시간 차이가 나나?)으로 인해 도로가 막히며, 심하면 그냥 주차장이 되어버린다. 롯데마그넷 서산점(현 롯데마트)가 2002년 3월 21일에 오픈한 이래 그곳으로 쇼핑을 가는 시민들과 겹쳐서 더 난장판이 되었다. 신작로조차도 지방 소도시라 6차선이 아니라 4차선으로 지었기에 더 미스. 게다가, 본디 외곽도로가 1970년대 박정희가 시찰 온다고 허겁지겁 넓힌게 4차선이라 더더욱 미스.
이 문제는 태안을 가려면 반드시 서산을 지나야만 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여름철이 되면 서산시의 외곽도로는 헬게이트오픈. 따라서 시에서 1990년대 말부터 짓기 시작한 새로운 외곽도로를 통해 통행량을 줄이려고 했지만, 공사가 진전되지 않다가 비로소 2014년 말에 서해로 지선 - 양열로란 이름으로 개통. [33] 그러니까 대천역처럼 여름 한때만 따져도 좋으니까 기차좀 제발
다만, 이 도로 개통이 실제로 효력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본디 서해로와 충의로를 확장+신작했을 때에도 기존 시내 지역을 비껴서 건설했지만, 단 몇년만에 초토화가 되어버려서...

2010년 3분기 드디어 버스 노선번호가 생기고, 12월 1일 무료환승제가 도입되었다. 시 치고는 꽤 늦은 편이다.

유사이래 해미공항이 생긴 직후부터 해미에 있는 서산비행장을 민간 국제공항으로 사용하려는 구상이 있다. 충청권 공항이라고 있는 청주공항은 서해안권에서 너무 먼 상황에서, 서산과 당진, 내포신도시의 기업수요와 태안·보령의 관광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직은 사업성이 낮다는 점이 걸림돌이지만, 일단 충남도청에서도 2016년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서[34] 몇 년 내로 서산공항에서 국제선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운용되고 있는 현재 군용 공항중 가장 큰 공항이기 때문에 (한때는 아시아 최대의 군기지 소리도 나왔었다!) 어쩌면 대형 항공기도 이착륙이 가능할지도 모른다.[35] 그렇지만 운용되고 있는 주체가....

5. 스포츠

서산테크노벨리 내에 한화 이글스 2군 구장이 지어져서 서산 시민들도 프로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대전에서 서산까지 거리가 1시간 30분이라 좀 그렇지만 그래도 2군구장 없이 훈련하던 2군선수들에겐 환영할만할 일이다.

6. 특산물

주 특산물은 육쪽마늘, 논마늘, 밤마늘과 생강, 어리굴젓 등이 있다.

7. 산업

대산쪽은 석유화학산업, 지곡,성연은 자동차 관련 산업들이 입지해있다. 석유화학,자동차 등등 굵직한 업체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36]

기아자동차모닝이 잘나가면 서산도 잘나간다는듯 하다. 이유는 OEM 업체인 동희오토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기업이 주민들한테도 인식이 안좋다는거... 이유는 항목참조.

농업에서 주요 하천에서 먼 관계로 자주 가뭄 피해를 겪고 있으며 4대강에서 멀기 때문에 모 대통령의 말에 따라 22조를 들여 전국을 뜯어고친 이후인 2012년에도 피해가 났다. 그러나 간척을 통해 확보한 담수호의 물의 활용을 넓히는 방안을 고안#하면서 앞으로는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2013년은 피해가 없을 것이다.

8. 군사

제20전투비행단이 위치한터라 해미면의 공군력이 한국 공군력의 30%를 차지한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지만, 전쟁나면 서울특별시창원시급으로 가장 먼저 공격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공군기지에서 매일 나서는 탐색 및 국가위기상황시의 출동시는 상당히 시끄럽다. 공부가 안된다.야! 신난다! 정작 주민들은 아무렇지도 않아한다선생님들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 계속 하신다. 밀덕들에게는 좋은 곳인데, 따로 에어쇼 등을 가지 않아도 전투기가 편대 비행을 하면서 날아가는게 심심치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냥 수업시간에 창밖을 보면 비행기 서너대씩 날아다닌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7]
[38]
20전비 별도로 공군 레이더 기지와 32사단 예하 대대도 존재한다. 이것들은 서산시내 산이나 외곽 섬들에 있다. 특히 산 위에 통신용 안테나가 있으면 약 2~30%확률로 민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0. 하위 행정구역

12. 출신 인물

----
  • [1] 서산 발음 그대로 표기하였다. 표기대로라면 "어유 이 시절아, 이런것도 못하냐."
  • [2] 정확히 하면 내포 사투리라고 해도 되겠지만, 대부분이 서산과 관계가 있던 지역 사람들만 쓰기에 서산 사투리로 기재한다.
  • [3] 여기까지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가 많다. 즉, 발굴에 의한 추측, 후대(신라~고려 시대) 기록, 혹은 구전에 의한 것이므로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 [4] 현재 서산 시내를 포함한 서북부 지역 및 태안군 지역
  • [5] 양력은 1895년 말부터 썼으나 굳이 양력으로 표기함
  • [6] 그런데 이는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게리맨더링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대호지면과 정미면은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서산 시내(구 서산읍)보다는 당진 시내(구 당진읍)와 훨씬 더 가깝기 때문에, 당진군으로 넘어가는 게 낫다고 볼 수도 있다.
  • [7] 보물 1591호
  • [8] 이곳에서 그 해제를 볼 수 있다.
  • [9] 지워진 곳은 현재 간척으로 인해 없어졌다.
  • [10] 왜 이면이냐면 한쪽 면은 현재 태안군이 갖고 있다. 현재로서는 태안군이 3면이 바다인 셈.
  • [11] 현 석림천. 1980년대 후반 복개되어 현재 양유정1로, 읍내3로 밑을 따라 흐르고 있다. 실제로 호수공원 개발 전까지는 중앙저수지로 직결해 들어갔다.
  • [12] 그렇다. 양유정은 陽柳亭으로서, 이 개울가에 있던 정자이다. 1927년 당시 명림표향, 양유소연이라는 서산8경의 주요 요소 중 하나였다.
  • [13] 현 호수공원
  • [14] 태안군 항목에도 있지만 이 때문에 태안군 앞바다에서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 [15] 39페이지 참조
  • [16] 그 후손들이 아직도 거주하고 있다
  • [17] 실제 서산시청의 경우 기존 관아가 있던 곳에 그대로 지었고, 舊 서산성내(현재 읍내동, 부춘동 지역)의 경우 무려 고목들이 남아있을 정도로 해미보다는 온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미읍성의 경우 아예 정전 이후 재축성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정도. 하지만 그럼 왜 서산읍성은 안남고 해미읍성은 남았냐고 따질 수 있는 겨를이 남아 있다.
  • [18] 직선거리상 가장 가까운 인터체인지이다. 두번째는 홍성IC.
  • [19] 79년도로 추정된다
  • [20] 조선시대 이곳은 괜히 유배지가 아니었다. 1970년대 기준 서울행 버스가 5시간 반정도 걸렸다고.
  • [21] 서령고등학교 앞을 지나 부석으로 가는 도로
  • [22] 현 부춘중학교 뒤로 난 대산방향 길, 안견로
  • [23] 현 예천현대방향 대산방향 길, 충의로
  • [24] 구 마그넷, 현 롯데마트. 구 8, 10번 노선
  • [25] 읍내현대아파트. 구 9번 노선
  • [26] 그 예 중 하나가 이 건물인데, 문제는 아직도 무한성 상태다. 이것이 개장 못하는 이유도 시장 상인들의 농간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 [27] 정확히 하면 읍내동 현대아파트의 건설(2001)부터
  • [28] 사실 아직도 서령고등학교 일대는 개발이 지체되어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 [29] 물론 성장의 척도가 집값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
  • [이유] 한국의 항공사진 특성상 이렇게 구매를 해 사용해야 한다. 구매해 추가할 능력자가 추가바람
  • [31]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1945년 가을에 착공 예정이었다고 한다.
  • [32] 이 때문에 일본이 핵맞고 지들 말하듯이 옥쇄해서 버텼어야 한다고 하는 어르신들도 계신다. 그럼 뭐해 몰락 작전
  • [33] 홍성에서 A.B지구 방조제를 통하여 가는 방법도 있지만, 거기도 원래 서산A.B지구 방조제.. 더군다가 안면도와 보령 대천을 잇는 연륙교가 완공된다면 더 이상 서산을 거쳐서 태안을 갈 필요가 없다.
  • [34] 충남도청에서 서산비행장까지는 길이 안 좋은 지금도 자가용으로 40분 정도면 가능하다. 청주공항까지는 무려 2시간. 인천공항 가는 고속버스가 뜰 정도니 말 다했다.
  • [35] 애매하게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군 기밀사항이기 때문이다. 비교하고 싶다면 공항 크기가 공개되어 있을 도구를 이용해 비교해볼 수는 있을 것이지만... 알려서는 안될 것이다.
  • [36] 왠만한 대기업 계열사들은 다 있다.
  • [37] 더 이상 언급할 경우 코렁탕을 먹을 수도 있다.
  • [38] 실제로 서산사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자주 시끄러운 편이 아니지만,전투기나 수송기등이 자주 지나다녀서 시끄러운것은 사실이다. 이곳에 사는 학생들이라면 해미 공군 스페이스 챌린지 인원수의 약 40%(.....)을 차지하며 나갈수 있기에 거의 입상권이라고 봐도 무방. 뭐 실제로 인원수도 거의 없다.
  • [39] 정식 명칭은 Seosan Airbase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5 12:03:48
Processing time 0.2547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