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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중국의 역사
오대십국시대//서하
11 ~ 13세기
  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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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부분이 서하. 참고로 분홍색은 송나라(북송)의 강역이고, 녹색은 요나라(거란)의 강역이다.)
西夏 (Western Xia)

Contents

1. 개요
2. 역대 황제
3. 관련 항목

1. 개요

송조 시대, 송나라 서북쪽에 있었던 티베트 계열의 탕구트족이 세운 왕조. 탕구트인은 한마디로 말해서 삼국지에 자주 나오는 강족(羌族)과 동일 종족, 혹은 같은 계통이다. 5호16국때 한번 중원에 들어와 분탕을 친 이후, 수당조에는 숨죽여지내다가 송나라때 다시 힘을 길러서 나라를 세운다.

본래 탕쿠트 족은 자신의 나라를 "크고 높은 나라(풘빈러타, phôn¹ mbın² lhi̯ə tha², 大白高國-대백고국 or 대하大夏)"라고 불렀다. 은 탕구트족을 평하부(平夏部), 남산부, 동산부로 나누어 지배하였다. 9세기 후반 소의 난 당시 평하부의 탁발사공(拓跋思恭)이 장안의 수복에 결정적 기여를 하여 당나라로부터 황실의 성(姓)인 이(李)씨를 하사받고, 하국공(夏國公)으로 봉해진것이 하의 시초다. 1005년 나라의 공격을 막아낸 덕명(德明)은 송나라와 화의하고, 송 황실로부터 (趙)씨 성을 하사받고 은주, 유주 절도사의 직책을 받는다.

건국은 1032년으로, 이때 조원호(이원호)의 나이는 스물 아홉이었다. 수도는 영하(寧夏) 흥경부.(인촨) 1038년에는 조씨 성을 버리고 이씨로 회복하며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1041년 동등한 관계에 반발한 송에 의해 호수천 전투가 벌어졌는데, 송이 1만 3천명의 사상자를 내며 크게 패했다. 이후 3년간의 전쟁 끝에 화의가 맺어졌다.

쇼킹한 건 송은 와도 전쟁 중이어서 양면으로 적과 싸워야 했다. 송과 서하가 화의에 나선 것은 전쟁을 마친 요가 상대편에 달라 붙을 걸 우려한 양국 모두였다. 결국 서하가 제안하고 송이 동의하여 1044년 송이 서하에게 매년 공물을 보내는 대신 서하는 송의 신하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서하의 황제는 하국왕(夏國王)에 봉해졌고, 송은 매년 비단 13만 필, 5만 냥, 2만근을 보냈다. 또한 토번을 크게 물리쳤다.

본래 국명은 대하(大夏)이며, 서하는 나라 쪽에서 부르던 이름이다. 하나라의 계승을 자처했던 것. 자신들의 언어인 티베트 계열의 탕구트어로는 미냑(Minyak)이라고 불렀다. 요, 과 마찬가지로 남쪽의 송나라를 압박하여 삥뜯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1194년 환종때는 금나라에 의해서 하국왕(夏國王)에 책봉되었다.

불교를 국교로 하고, 서하 문자 등 독자적인 문화를 갖춘 문명국이었다. 그런데…몽골칭기즈 칸과 대결하여 대패를 당한 다음 복속되었으나, 칭기즈 칸이 정복 사업을 벌일 때 지원군이나 물자를 내놓지 않고 버티기 놀이를 해서 칭기즈 칸의 화를 돋우었다. 결국 2차로 서하를 침공하던 중에 칭기즈 칸이 에서 떨어져 진중에서 병으로 죽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 인간이 서하인을 한 명도 남기지 말라유언을 남기고 죽어버렸다.(…)

그리고 몽골군에게 완전히 짓밟혀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물론 아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건 아니다. 물론 서하인이 많이 학살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지 않은 서하인이 몽골에 흡수되었으며 실제로 서하 출신 장수 Cha'an은 몽골군을 이끌고 남송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서하인의 후손 중 일부는 안후이 성 근처에서 살다가 원이 망한 뒤에 한족에 흡수되어 소멸하였다.(명나라 말기까지는 서하 문자를 오랫동안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참고로 몽골 정복 후 살아남은 서하인의 후예로는 중국 쓰촨 성, 간쑤 성, 칭하이 성 등지에 사는 창족(羌族)이 있다. 다만 서하의 DNA적 특성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CCTV 보도.

서하인들 본인이 남긴 서하의 역사서는 현존하지 않는다. 전하는 게 전혀 없어서 '아예 처음부터 기록 같은 걸 안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는 않다. 중원의 하찮은 나라도 역사를 남기는데 중원의 왕조를 모방해서 황제국의 제도를 갖춘 나라가 역사를 기록하지 않을 리는 없다. 일찍이 하 인종 시기에 한림원을 설치하고 실록을 편찬하게 하였으며 1225년에는 나세창이라는 신하가 관직을 그만둔 후 하국세차란 역사서를 지은 바 있다.

다만 현재에는 모두 남아 있지 않은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칭기즈 칸의 유언에 의해 실행된 서하인 학살과 현재 옛 서하의 강역 내에 남아 있는 황폐화된 유적들을 종합할 때, 방화 등으로 인해 사서들이 불탔을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서하의 역사에 대해서 서하인들이 남긴 서하문자로 기록된 편지, 비문, 문집 등이 남아 있는 것을 활용하거나 송나라에서 남긴 기록3이나 몽골인들이 남긴 기록 등을 참고하여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서하의 역사나 문화를 연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중국사에서 드물게 여군(女軍)이 존재했던 왕조였다. 이들 여군을 마괴(麻魁)라고 불렀으며 이들은 송나라와의 전쟁에서도 활약했다.

2. 역대 황제

서하의 역대 황제. 추존 황제는 제외.

대수 묘호 시호 휘(탕구트식/중국식) 연호 재위기간
초대 경종
(景宗)
무열황제
(武烈皇帝)
외리(嵬理)
혹은 낭소(曩霄)/
이원호(李元昊)
현도(顯道), 개운(開運), 광운(廣運),
대경(大慶), 천수례법연조
(天授禮法延祚)
1038~1048
2대
(毅宗)
소영황제
(昭英皇帝)
영령량조(寧令諒祚)/
이양조(李諒祚)
연사령국(延嗣寧國),
천우수성(天祐垂聖),
복성승도(福聖承道), 다도(奲都),
공화(拱化)
1048~1067
3대
(惠宗)
강정황제
(康靖皇帝)
-/이병상(李秉常) 건도(乾道), 천사례성국경
(天賜禮盛國慶),
대안(大安), 천안례정(天安禮定)
1067~1086
4대
(崇宗)
성문황제
(聖文皇帝)
-/이건순(李乾順) 천의치평(天儀治平),
천우민안(天祐民安),
영안(永安), 정관(貞觀), 옹녕(雍寧),
원덕(元德), 정덕(正德), 대덕(大德)
1086~1139
5대 인종
(仁宗)
성정황제
(聖禎皇帝)
-/이인효(李仁孝) 대경(大慶), 인경(人慶),
천성(天盛), 건우(乾祐)
1139~1193
6대 환종
(桓宗)
소간황제
(昭簡皇帝)
-/이순우(李純佑) 대경(大慶) 1193~1206
7대 양종
(襄宗)
경목황제
(敬穆皇帝)
-/이안전(李安全) 응천(應天), 황건(皇建) 1206~1211
8대
(神宗)
영문황제
(英文皇帝)
-/이준욱(李遵頊) 광정(光定) 1211~1223
9대
(獻宗)
흥덕황제
(興德皇帝)
-/이덕왕(李德旺) 건정(乾定) 1223-1226
10대 - 주남평왕
(末主南平王)
-/이현(李晛) 보의(寶義) 1226-1227

  • 7대 양종 : 1202년부터 몽골의 침략이 여섯번이나 일어났고, 이 혼란(1205)을 틈타 환종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랐다(1206). 결국 어떻게 마무리해서 복속을 약속하고 칭기즈 칸과의 혼인 동맹으로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자기도 이준욱(신종)에게 쫓겨났다. 이후 1226년 칭기즈 칸의 서정에 참여하는데 반대하고 기습적으로 군대를 일으켰지만…망했어요.(칭기즈 칸은 1227년 죽었는데 그해 서하가 멸망했다)

  • 10대 주남평왕 : 마지막 황제이기 때문에 추숭된 묘호와 시호가 없다. 다만 황자 시절에 얻은 남평왕 작위가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말주(末主)라고 불린다. 말주는 마지막 황제라는 뜻을 가진 말제(末帝), 말왕(末王)과 비슷한 뜻의 단어이다.

3.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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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2-28 09: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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