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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last modified: 2015-04-08 11:36:48 by Contributors


(ɔ) Romain Behar from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이런저런 쓰임새
4. 설탕과 충치
5. 관련항목

1. 개요

(ɔ) NEUROtiker from


설탕은 중독성이 있다고 학계에서 연구 중이며, 복용시 사람의 기분을 고양시키며, 과다 복용시 부작용이 올 수 있는 식품이다.

분자식은 C12H22O11. 포도당+과당당류다. 사탕수수나, 사탕무, 사탕단풍, 사탕옥수수 등의 즙이나 진액을 정제하면 나오는 가루 형태의 감미료. 사전상의 의미와는 다르지만, 사실은 이쪽이 일반적인 의미다.

순수한 설탕은 자당(蔗糖; sucrose)이라고 한다. 자당의 비율이 높을수록 흰색을 띠며, 백설탕은 자당 그 자체. 당연히 자당의 비율이 높을수록 칼로리도 높다.

한자 문화권에선 주로 '사탕(砂糖)'으로 표기하지만, 한반도의 경우 조선왕조실록에 설탕이라는 표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설탕과 사탕을 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현재의 하얀 가루설탕은 19세기 후반에나 등장했으므로 어떤 의미로 설탕으로 표기했는지는 의문이지만, 고려시대에서도 설탕에 대한 기록으로 보아 최소한 권문귀족시기 이전에 전래된 것이 아닐까 추측할 따름.[1] 그 당시에는 워낙에 귀한 물건이라 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일종의 하사품이기도 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비 소헌왕후가 병이 나 설탕을 먹고 싶어했는데, 후에 문종이 설탕을 얻게 되자 눈물을 흘리며 영전에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왕후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사치품이었던 셈.

많이 먹으면 비만이 된다는 치명적인 면이 있기에 다른 대체품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다이어트 콜라 등에 사용되는 아스파탐. 당알코올도 이런 용도로 많이 쓰인다.

2. 역사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나 사탕무가 재배된 것은 기원전부터이나 결정화하는 기술은 4세기 경 인도 굽타 왕조 때에 확립되었으며, 이후 인도와 아라비아 상인들의 중요한 상품의 하나가 되었다. 물론 지금의 가루 형태가 아니라 엿가락처럼 단단하게 굳힌 덩어리였으며 필요에 따라 잘라 썼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주로 수액, 즉 시럽 형태로 이용되었다. 물론 가공에는 시간과 돈이 들었고 재료도 전량 수입[2]이라 귀중품 취급을 받았다. 당연히 이걸 마구 요리에다 뿌려댈 수 없던 관계로, 감미료의 기능보다는 음식을 보존하거나 약에 넣거나 하는 용도로 사용한 듯하다. 당태종 시절의 중국은 설탕 정제기술을 얻기 위해 인도에 두 차례 사절단을 보내기도 했다.

유럽에는 십자군 원정을 통해 11세기 경 전파되었다고 한다. 사탕수수의 북방 재배한계선은 유럽의 경우 지중해 일부에서만 재배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낮은 편이고, 그 경작에 많은 물과 대거의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비싼 작물이었다. 그래도 대항해시대의 주요 교역품으로서 항해기술의 발전과 늘어난 식민지를 통한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점차 왕족과 귀족을 중심으로 소비량이 꾸준히 늘어났으며, 나중에는 설탕만을 이용해 설탕 공예처럼 꾸민 음식(!!!)으로 부와 권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이 덕에 설탕 공예는 발전했지만, 엘리자베스 1세 같은 경우는 이빨이 죄다 시커멓게 썩었다고 한다(…). 그래도 수요에 비해 늘 공급이 달렸고 대체물이라 할 수 있는 사탕무로부터 당액 추출이 성공한 것은 18세기 중반의 일이기에 오랜 기간 동안 귀중품이었다.

아무튼, 유럽에서는 사탕무 가공으로 본격적으로 설탕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위에도 언급되었듯 설탕은 산업혁명기까지 고가의 기호품에 해당했다. 산업혁명 초창기에는 인구의 증가에 비해 설탕의 생산량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설탕은 귀족들이 우월감을 즐기기 위해서나 먹는 음식이었고 서민들은 그나마 설탕보다는 싼 을 먹었다고 한다. 산업혁명이 가속화되고 식민지가 늘어나면서, 아예 카리브해 근방의 작은 섬들을 플렌테이션 농장으로 만들면서[3] 그나마 가격이 안정화된다. 이후 산업시대 하층민들도 설탕을 즐겨 먹게 되었다나.

사실 서민들이 즐겨 먹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서민들이 원하는 양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둘째로 돈이 없어서 고기나 야채 등을 다양하게 사 먹지 못하는 가정에서 그나마 '단맛+칼로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이 설탕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재미있게도, 홍차 역시도 원래는 영국 귀족들이나 먹는 고급 취미였다가 서민들도 먹게 되었는데 그 이유 또한 위와 마찬가지로 고기를 먹을 여유는 없으니 맹물이라도 맛있게 먹으려는 서민들의 욕구(…)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다. 홍차+설탕을 현대의 박카스나 레드불마냥 먹이고 공장을 돌렸다는 해석도 있다.

산업 혁명 이후에는 점차 서민들의 생활수준이 나아지고 지중해 원산인 사탕무의 발견에 의해 쉽게 입수가 가능해져서, 영국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 국민들이 고기와 야채 등을 주식으로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설탕은 음식을 더 맛있게 해주는 감미료로서 필수요소(…)가 되어 더욱더 많은 곳에 사용되었다. 음료수 등에도 들어가고, 종종 예상치 못한 담배같은 곳에도 들어간다. 설탕이 열에 녹으면서 나는 캐러멜향이 좋기 때문이라고.

'설탕과 권력'이라는 책에서 설탕에 대해 굉장히 잘 설명하고 있으며, 알려지지 않은 관련 사실을 다루고 있는 꽤나 볼만한 책이다.

현재도 사탕수수 재배 및 그 열악한 저임금과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을 두고 말이 많다. 이 또한 공정무역 대상이기도 하다.

참고로 설탕이 대중화된 계기인 플랜테이션은 서인도제도의 노예노동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때문에 노예노동의 비인간성이 유럽에 알려지면서 설탕불매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노예제의 참상과 함께 꿀을 재배하는 유럽의 소농들을 대주지들로부터 보호하자는 것. 소비자운동, 공정무역 운동의 선배격.

3. 이런저런 쓰임새

디저트, 특히 양과자류쪽에는 빛과 소금급의 첨가물이지만 설탕의 쓰임새는 많고 많아서 사람들이 단것을 하도 좋아해서 과자케이크 같은 단 것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더 폭넓게 쓰이는 조미료이다.[4] 신김치를 볶을 때 설탕을 넣어 볶으면 신맛이 감소되는 효과도 있다.

에 엄청 잘 녹기 때문에 각종 제과나 아이스크림 같은 식품에 상상 이상의 설탕이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는 차가운 상황에서는 맛을 느끼는 '미세포'가 마비되어 단 맛을 비롯해 어느 맛이든 잘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운 아이스크림에서 그토록 단 맛이 나는 것은 엄청난 양의 설탕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못 믿겠으면 아이스크림이 상온에서 녹은 국물을 마셔보면 안다. 당장 설레임을 녹여서 실험해 보자. 굉장하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들은 주사를 맞고도 아이스크림콜라는 금기시한다. 주사가 한끼 식사의 혈당량을 모두 책임지고도 고혈당까지 가는 사태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단지 알 수 있다.[5]

육류 가공품에 쓰면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에 의해 고기가 촉촉해지고 잡맛을 줄여준다. 허영만의 식객을 보면 부대찌개 편에서 숨어 있는 설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햄과 소시지 제조 과정에 많이 들어간다. 바베큐를 위한 양념에도 소금과 거의 1:1 비율로 설탕을 넣는데, 겉에 바른 설탕이 굽는 도중 캐러멜 층을 형성하고 스며든 설탕은 수분과 결합해 고기의 건조를 막고 풍미를 돕기 때문이다. 소금의 짠 맛과 식초의 단 맛, 매운 맛도 덜하게 만들어 주므로 조리에 많이 쓴다. 그래서 토마토 케첩에는 설탕이 생각보다 아주 많이 들어간다.

중세 유럽에서는 마치 한약의 감초처럼 약품의 맛을 좋게 하는데 쓰이기도 했다. 이때문에 아예 향신료의 일종으로 취급하기도 했고 사치품이었던데다가 맛까지 좋았기 때문에 약품을 연구하는 연금술사들이 설탕을 가지고 온갖 마개조를 시도했다고 한다. 아래에서 나오는 슈가글래스도 그러한 노력의 산물.

식용 이외로 쓰이는 설탕의 용도 중 잘 알려진 것이 바로 유리 대용품. 슈가글래스라고 하는데 정제기술을 통해 처럼 투명하게 만든 것으로 처음에는 일종의 진귀한 사치품 개념이었으나 이후 유리 대용품으로 가끔 쓰인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유리창 깨기 촬영용 소품. 실제 유리는 절대 불가능하고, 가능하더라도 영화에 묘사되는 식으로 유리를 깼다가는 요단강 익스프레스를 탄다. 또한 술병으로도 사용된다.대부분 용도는 헤드샷. 근래에는 기술 발전으로 슈가글래스 대신 다른 유리 대용품이 나왔다고 한다. 영국의 다이애나 비는 찰스 왕자와 007 촬영현장을 가서 이 슈가 글래스로 만들어진 병을 깨서 한조각 먹었다.

의외로 건축용으로도 사용된다. 콘크리트의 경화지연제 및 수화열 감소, 균열방지를 위해 사용한다.

전쟁 같은 국가 비상사태 때는 대단히 중요한 전략물자로 취급된다. 우선 고열량을 낼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고 단 맛을 내는 감미료이기 때문에 극한 상황에서 전투원들의 식사 대용및 사기 증진에 중요하여 중요 보급물자 대상이 된다. 또한 발효하면 알코올을 만들어 연료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유통이 통제되는 물자 1순위. 영국2차대전 당시 대서양 전투홍차와 설탕의 재고가 바닥나 전전긍긍했고[6], 독일도 1, 2차대전 모두 감자에서 추출한 당을 정제해 설탕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궁핍함에 시달렸다. 게다가 실전 무기로도 쓰일 수 있는데, 2차대전 때는 레지스탕스빨치산 등 비정규 무장 단체 뿐 아니라 특수부대도 적군의 군용 자동차오토바이, 전차의 연료 탱크에 설탕을 부어넣어 엔진을 개발살내는 전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설탕이 타면 탄소가 남는다. 즉 엔진이 숯가루로 꽉 차게 되는 것. 가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의 차량에 이 방법으로 테러를 저지르는 경우가 뉴스에 나온다. 따라하지 말자.

4. 설탕과 충치

'옛날 사람들은 충치에 어떻게 대처했나요'라는 질문이 있으면 충치는 문화병이라 설탕이 수입돼서 먹을 때부터 생겼습니다[7] 정도로 답하기도 한다. 이게 사실이라 가정하면, 물엿이나 은 충치를 유발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8]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건 다들 알리라 믿고 여기까지만. 감미료가 꿀이나 과일정도 밖에 없었던 이집트 시대에도 충치로 인한 치통 처방법이 있었으니 그딴 개드립에는 속아 넘어가지 말자.
조선 성종은 하도 충치에 시달리다 신분고하,성별 다 안따질테니 제발 충치 치료할 수 있는 사람 좀 데려오라고 하소연하였다.앓던이가 빠진 기분이라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곡물 등의 녹말은 침 속의 아밀라아제에 의해 엿당으로 분해된다. 충치가 없었던 시대는 농업혁명이 있기 전인 구석기 시대의, 과일류가 드믈어 고기를 주식으로 먹던 고위도 지방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9] 예전에도 충치는 있었고 견디다가 못 참으면 뽑았다. 서양에 비해서 충치에 대한 사건사고가 적은 편이긴 했는데[10], 양치질이라는 개념이 부족했던 서양에 비해서[11] 동양은 일찍부터 소금과 모래로 양치질을 시도해서 좀 더 낫지 않았나 싶다.[12]

식량이 부족했던 이스터 섬의 사람들은 사탕수수 즙을 많이 마시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는데, 덕분에 20세가 되니 이가 안 썩은 사람이 없었다고(…). 이빨에 안뭍히고 빨대로 마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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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고려 명종 때 지어진 '파한집'에 그 기록이 있다.
  • [2] 상인들은 대개 당액 형태로 거래했으며 이 시럽의 안정화를 위해 다른 식물의 수액을 섞기도 했는데 그게 바로 아라비아검(gum arabic)이다.
  • [3] 그 중에는 섬의 90%가 사탕수수 농장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사실상 선착장과 거주지를 제외하곤 모두 사탕수수만 기른 것.
  • [4] 심지어 광주나 전라남도에서는 콩국수에 넣어먹거나 아예 설탕물을 만들어 소면만 말아 먹기도 한다!
  • [5] 과일 같은 경우는 차가운 것이 더 달다. 과일의 단 맛의 주 성분은 과당인데, 과당은 온도에 따라 알파형과 베타형의 비율이 달라진다(알파형과 베타형의 합은 일정하다). 온도가 낮을수록 베타형의 비율이 커지는데, 베타형이 알파형에 비해 3배 정도 더 달기에 과일은 차가울수록 더욱 달게 느껴진다. 하지만 너무 낮으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역시나 미세포가 맛을 못 느낀다.
  • [6] 미군이 본격적으로 영국에 배치되면서 미국 군인들을 통해서 설탕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대량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당시 영국에서는 숙녀들이 각설탕에 몸을 판다고 한탄하기까지 했었다고...
  • [7] 1990년대 중반에 한국의 모 건강식품회사에서 퍼뜨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개소리인건 맞지만 1990년대 와서야 퍼졌다는건 사실이 아니다. 이 과학기사의 댓글을 봐도 알겠지만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도시전설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 [8] 자일리톨이나 사카린같은 인공감미료 종류를 제외하면 충치를 안일으키는 감미료는 없다.
  • [9] 그 고위도 지역도 이나 을 먹게 된 이후부터는 충치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나온게 자일리톨
  • [10] 루이 14세는 충치가 심해서 이를 뽑다가 입천장이 튿어져서 평생 감염에 시달렸다. 이러한 일화가 서양에 무수히 많은데 한국만 봐도 상당히 적다.
  • [11] 이탈리아는 예외.
  • [12] 버드나무 가지로 양치질을 했다는 말도 있다. 애초에 '양치질'이란 말 자체가 버드나무를 일컫는 '양지'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으니. 이 양치질에 대해서는 조선 말기 조선에 방문한 선교사들의 기록에는 조선인들이 치아가 희고, 소금으로 양치질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반대의 기록도 있는데 조선 시대 여러 임금들이 치통에 시달렸고 치통을 치료한 노비를 면천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시도때도 없이 간식을 먹어대는 높으신 분들은 밥먹고 양치를 해봤자 별 효과가 없었던 거겠지 또한 동의보감에도 치통 치료법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충치는 어쨌거나 상당한 골칫거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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