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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논란

last modified: 2015-11-20 12:56:51 by Contributors

성경에 대한 논란에 대해 서술하는 페이지.

Contents

1. 성경에 대한 논란의 원인
2. 주된 논란 목록
2.1. 성경 표절 논란
2.2. 성경 내부의 불일치
2.3. 역사 기록과의 모순
2.4. 과학과의 모순
2.5. 보편적 윤리에 반하는 내용들
3. 성경내 몇몇 오류의 원인
4. 기타 논란
4.1. 일부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4중적 해석법
4.2. 전지전능한 신의 뜻이라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
4.3. 십자가 대속에 대한 의문
5. 학술적 탐구
5.1. 구약 성경에 대한 이해
5.2. 신약 성경에 대한 학문적 연구
6. 현대 사회에서는 지킬 수 없는 부분
7. 기타


"또 있어요.그들은 하느님[1]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 사랑, 정의, 온유라고 하고 하느님 전능한 사랑의 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 말을 거역하자 하느님은 인간을 낙원에서 추방하고 죽게 만들었어요. 그러고는 무수한 사람이 죽고 난 뒤에 인간을 구원한답시고 자기 아들을 보냈죠. 하지만 아들은 끔찍히 죽음을 당했어요. 죽기 전에는 자기를 왜 버렸느냐고 아버지에게 부르짖었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자기 피로 첫 인간의 죄를 씻어주고 인간을 낙원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다시 영생을 얻게 해 주려고 죽는다고 했어요. 도대체 왜 그렇게 번거로워요? 애초에 그렇게 엄벌에 처하지 않을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세월이 많이 지났으면 벌을 거둘 수도 있잖아요. 왜 사랑하는 아들을 희생시키고 버리기까지 했는지요? 사랑, 온유함, 전능은 어디 있는 거죠?"
"단순화한 말이긴 하지만 대체로 옳은 말이군."세르게이가 파이프를 돌려주면서 말했다.
예프게니가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인 뒤 더없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하느님의 두드러진 속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사랑, 정의, 온유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해.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한 이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아무래도 하느님은 독특한 애정관을 가지고 있어. 다시 말해서 관심 있는 것만 편애해. 하느님은 사람에게 무슨 일을 일으켜놓고 어떻게 되는지 구경해. 그래 놓고 너무 맛이 없으면 후춧가루를 넣어. 셰익스피어의 말이 맞아. 세상은 무대야. 다만 하느님이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무대야."
"오늘 아침에 한 이야기만으로도, 넌 지옥에 몇 백년 있어야 할 거야."
세르게이가 말했다.
러시아 소설 메트로 2033폴랸카 역에서 주인공 아르티옴과 예프게니, 세르게이의 대화 중에서.

선악과 먹은 조상때매 고통받는 전 인류.

1. 성경에 대한 논란의 원인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구약 성서에 나오는 사건들은 신화적 모티브를 여기저기서 따왔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창세기바빌론 신화의 성경, 에누마엘리쉬에서 따왔다는 논문이 있다.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는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우트나피쉬팀의 대홍수 이야기와 거의 똑같다.

번역 논란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특히 중세 라틴어 성경이 된 불가타 판 성경과 그에 바탕을 둔 킹 제임스 성경(소위 흠정역 성경) 등에 대한 논란이 많은 편이다. 르네상스금속활자 탄생 이전의 필사본 시대에는 사소한 자구 차이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에 들어가면 사실 끝이 없다.

필사본 시대에 생긴 자잘한 사본들 간의 차이를 전문용어로 '이문'이라고 한다. 성서학계에서 나온 이 이문에 대한 유명한 말이 바로 성경 전체에 있는 단어의 수보다 이문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것. 자세한 내용은 성서무오설 참조.

아예 독하게 들어가서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언급되었던 '니케아 공의회'까지 가면 사실 답이 없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경 목록을 정했다는 말도 있는데, 그런 적 없다.[2] 니케아 공의회는 과연 예수가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 건지, 아니면 하느님이자 인간인지를 결정한 공의회이므로 그리스도교 사상에는 매우 중요한 공의회이긴 했지만, 성경 목록을 정한 적은 전혀 없다. 다빈치 코드는 어디까지나 소설이지 역사적인 사실과 무관하다.

또한 그 시대 이후에 쓰여졌다는 주장도 있다.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오늘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다', '오늘까지도 여전히 그렇다' 등의 구절이 많이 나타나는 <사무엘기>, <여호수아기>, <창세기>, <롯기>, <판관기>, <열왕기> 등이 그 시대에서 몇십 년 후에 쓰여졌다고 저술하였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성경이란 하느님이 불러준 대로 기록한 경전인가, 아니면 인간의 문학적 창작물인가로 귀결된다. 이는 결국 르네상스계몽주의 이후로 고대 문헌에 대한 해석학의 발전, 중근동에 대한 고고학, 종교학, 역사학적인 연구성과가 쌓이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과격한 기독교 내 진보주의자들은 성경하느님에 대한 영감에서 발생한 문학적 창작물로 보며 구원에 필요한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를 모두 포함한 경전으로 규정하면서 경전을 모두 하느님의 말씀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성경에 대한 분석과 연구 자체가 신앙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밑의 주된 논란들에 대해서도 보수주의자들은 나름대로의 반박 주장을 펴고 있긴 하다. 가장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성서무오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중 하나인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서도 이런 과격한 진보적 주장이 나온다. 결국 신비적, 고대적 요소로 가득한 경전을 신이 불러준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종교들이 현대사회의 과학적, 합리주의적 사고와 충돌하고 논란에 휘말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비근한 예로 미국근본주의 기독교를 보면 알 수 있다.

애당초 미국근본주의 기독교진화론과 더불어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비평적 해석학)이 사탄이라고 규정했다. 대다수의 현대 기독교에서는 성경에 대한 논란과 비평적 해석은 대학 문턱을 넘지 못하며, 사제들은 성경에 대한 비평적 해석과 논란점을 대학에서 배우긴 하지만 이를 설교하거나 교인들에게 이야기하는 성직자는 거의 없다. 당연히 이런 문제를 알게되면 신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답을 해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적인 기독교 학자들은 차라리 모든 걸 솔직하게 인정하는 편이 미래를 위해 나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사실 요즘엔 보수적인 신학교들도 성서비평학을 가르치는 추세라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그래봐야 그런 비평학적인 관점들은 대학 문턱을 넘지 못한다. 대한민국의 그 어떤 주류 교단의 목사라도 설교 시간에 성서비평학적으로 교인들에게 설교하는 사람은 없다.

2. 주된 논란 목록

성경에는 내부의 내용 불일치나 모순 및 보편적 윤리에 어긋나거나, 실제 역사 기록 및 과학적 지식과 상충 되는 등의 내용들이 많이 발견되는데, 그것들을 아래에 소개한다.

성경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미 밝혀진지 오래인 논란들의 경우엔 반박이나 해명이 나와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 반박이나 해명들이 확실한 근거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말이 되게 해석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런저런 설정을 덧붙이거나 가정해서 해명하는 식이라 그다지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이 아니라는게 문제다. 쉽게 말해 설정놀음.[3]

창조설 항목에도 서술된 이야기지만, 그 외에 어떻게든 해명을 하려고 하는 기독교인들의 다양한 시도도 함께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란들에 대해 신화학과 종교학에 대한 무지가 상당수 드러난다는 기독교인들과 일부 신학자의 주장이 있긴 하다. 종교학자들을 넣지 않은 이유는 종교학자들은 성경이 그들 나름대로의 신적 체험이 담겨 있으나 시대적 한계가 상호 모순이 많기 때문에 성경을 절대적 진리라 보지 않으며, 다른 종교의 경전이나 신화와 똑같이 취급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은 고대인의 사고방식이 현대인과 다르다는 것은 상식이며 그것이 고대인의 지능이나 이해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라는 것인데, 이들은 고대인의 뮈토스적 세계관으로 체험한 하느님이 현대인의 이해와 다른 것은 당연한 노릇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성서는 애초에 단일 저자가 쓴 책이 아니라 다양한 개인의 그 자신의 하느님 체험을 기록한 책이라고 하며 그 개별 저자들 역시 여러 다양한 시대적 배경의 산물이므로 모순된 시각이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성서에 대해 열린 시각으로 그 가치와 한계를 모두 인정하는 신학은 당연히 다른 고대 신화도 인간의 신적 체험을 담고 있다고 인정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흔히 성경의 특정 기록이 행해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식의 해명도 있지만,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게 되면 성경 자체의 신성성(神聖性)에 의문이 생기게 된다.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저작은 시공을 초월하여 항상 유효해야 하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은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이 현대인과 다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다름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한계에 불과하다. 성경에 기록된 비과학적/비합리적 내용들은 고대인과 현대인의 시각 차이 때문이 아니라, 고대인들의 한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렇듯 하느님의 지시를 받은 인간들이 썼다고 해도 문제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당시의 인간들이 후대에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들을 모른다고 해서 전지전능한 신이 그 수준에 맞춰서 책을 쓰도록 한다는 것은 넌센스일 것이다. 귀차니즘 게다가 사실 이런 해명은 고대인들을 얕보는 처사다. 고대인들이 현대인보다 지식이나 사고의 폭은 뒤떨어질지 몰라도 결코 지능이 모자라거나 이해력이 떨어지는게 아니다. 다시 말해 올바른 지식들을 전해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하물며 그걸 알려주는 존재가 전능한 신일텐데, 그야말로 손쉽게 착오를 바로잡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성경의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게 되면 성경이 그리스 로마 신화나 단군 신화, 북유럽 신화와 다를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데꿀멍을 시전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성서에 대해 열린 시각으로 그 가치와 한계를 모두 인정하는 신학은 당연히 다른 고대 신화도 인간의 신적 체험을 담고 있다고 인정한다고 하는데,한국 내 교회 어디에서 그렇게 가르치던가요이 또한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주장이다.

일단 한국 내의 어떤 신학 대학도 이렇게까지 가르치지는 않는다. 보수적인 교단 계열의 신학대는 물론이거니와, 한국 내에서는 가장 진보적이라는 기장 계열 한신대 신학과에서조차 다른 종교 및 신화의 모든 형이상학적 존재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저 주장은 결국 성경이 다른 종교의 신화 및 경전과 동급이며, 성경의 신 야훼의 실존 가능성은 다른 신화의 신인 오딘, 토르, 제우스나 아폴론, 비슈누나 시바와 동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밖에 안 된다.

또한 적지 않은 수의 모순이나 내용 불일치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필사자의 실수, 즉 오기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주장, 즉 전지전능한 야훼가 성경 필사에 관여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필사에 관여했는데 오기가 생긴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기가 생긴 이유에 대한 설명은 다음 4가지로 정리가 가능하다.

1. 신[4]은 전지전능하며 성경 필사에 관여했다. 그런데 오기가 나왔다. 고로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2. 신은 존재하나 성경 필사에 관여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신이 관여하지 않은 기록물인 성경이 신에 대해 제대로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게다가 사후에 오류를 고쳐줄 생각도 없는 듯 하니, 신은 애시당초 성경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3. 신은 실존하지 않으며, 성경에 오류와 오기가 많은 것은 그 시대 저자들이 그 시대 수준이었기 때문일 뿐이다.
4. 신은 존재하며 성경 저자에게 감동을 주어서 성경을 쓰게 했지만 기계적으로 감동을 준 것이 아니라 성경 저자에게 맥락이나 메세지, 환상 등만 던져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쓰게 했기 때문에 당시 시대적 배경이나 잘못 알고 있던 부분들이 그냥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후대의 필사에서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5] 그래서 이렇게 많는 논란과 불신자들이 양산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손 놓고 있었다는 소리다.(…)

사실 이게 문제가 되는건 성서비평을 수용하지 않고 기계적 성서무오설[6]을 신봉하는 근본주의 기독교 신자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일부 이단 드립에 가깝다. 한국 그 어떤 주류 기독교 교단이라도 교회 내에서 교인들에게 성서 비평을 통해 성경을 가르치는 목회자는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기독교 종파 중 가장 개혁적이라는 한국기독교장로회조차도 목사가 교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 교회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7]

그것이 알고 싶다 447회[8] 방영분을 참조할 것. 한신대 신학과[9] 교수이자, 한신대 총장을 역임한 채수일 교수는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나눈 인터뷰에서, 한신대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기장 계열 목사들조차 설교 시간에 한신대에서 배운 대로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다며 현실을 성토했다.

2.1. 성경 표절 논란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영상
표절주장에 대한 반박 영상

성경이 과거의 신화들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있다.

다음은 대표적으로 예수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고 주장되는 신화의 특징들이다.

예수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고 주장되는 신화의 특징
종교 기독교 이집트 신화 그리스 신화 힌두교(브라만교) 불교 미트라교[10]
시기 AD 1년 BC 7세기경(약 2,600년전) BC 7세기경(약 2,600년전; 기원전 624년~544년) BC 3세기경
주인공 예수 오시리스 디오니소스 크리슈나(Krishna) 석가모니 미트라
비교1 인류의 구원자이며 인간이 된 신이고, 신의 아들이며 아버지와 동격. 죽은 후 부활하였음. 인간의 왕이 된 신이며, 죽은 후 부활하였음. 최고신의 아들이며, 말기의 로마 신화에 따라서는 최고신의 자리를 물려받음 가장 높은신인 비슈누의 화신
비교2 인간 처녀가 성령으로 인하여 임신후 처녀상태로 출산. 그의 어머니는 사후에 하늘로 올라가 가장 높은 성인으로 공경 인간 여성이 최고신과 관계하여 태어나고, 그의 어머니는 사후에 하늘로 올라가 신적 존재로 추앙
비교3 알려져있지는 않으나,[11] 12월 25일에 지내던 태양신 솔 인벡투스의 생일잔치 대신에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 것이 성탄절의 기원. 미트라와 각종 태양신을 짬뽕시킨 신인 '솔 인벡투스'의 생일이 12월 25일
비교4 12제자가 있었음. 올림푸스의 12신 중 하나 12개의 별자리와 같이 묘사되는 경우가 있음
비교5 마기의 방문을 받음. 마기는 조로아스터교의 사제 계급이며, 미트라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종교
비교6 아기를 죽일 것을 명령한 폭군에 의해 박해를 받음. 아기를 죽일 것을 명령한 폭군에 의해 박해를 받음.

어차피 신화란게 다 거기서 거기 인지도의 문제지 무신론자의 관점에선 그리스신화나 성경이나 둘다 똑같다

2.2. 성경 내부의 불일치

성경/논란/모순 항목 참고.

2.3. 역사 기록과의 모순

2.4. 과학과의 모순

2.5. 보편적 윤리에 반하는 내용들

성경은 신약과 구약을 막론하고 인간의 보편적 윤리에 반하는 내용들이 즐비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21세기인 현대와 성경이 쓰여질 당시의 청동기~ 전근대 사이의 괴리로 해석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성경의 신성성이나 절대성이 사라지게 된다.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는 보수적 기독교인 뿐 아니라, 성경을 무오하다고 주장하지 않더라도, 야훼가 실존한다고 믿는 대다수의 기독교인[12]이라면 누구나 성경에서 시대 초월적인 가치를 찾기 때문이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주장대로 영원하고 전지전능한 야훼가 개입해서 성경 집필에 관여했다면 당연히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여 항상 진리로 받아들여져야 할 성경의 내용이 21세기 현대의 보편적 윤리에 반하며 각종 모순이 가득한 것을 설명할 길이 없어지고, 성서가 인간의 언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야훼가 실존하므로 성경에서 시대초월적인 가치를 찾는다는 기독교인들의 주장도 궁색하기 이를데 없어진다.

자세한 것은 성경/논란/윤리적 문제 항목을 참고할 것.

3. 성경내 몇몇 오류의 원인

  • 대부분의 숫자 문제
사울 이외에도 나이나 집권 햇수, 대수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는 호적역법과 같은 기록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은 사회에서는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이런 제도가 없으면 지방 풍습에 따라서 해(年)를 세는 관습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고, 출생일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다보니 자기 나이가 확실하지 않은 사람도 매우 많아진다. 성경 기록을 내부적으로 참조하자면, 이스라엘 왕국은 다윗 이전 까지는 아예 호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이러한 사례를 가공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어느 마을에 자기 나이가 100살이라고 주장하는 할머니가 있다고 해보자. 이 할머니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이미 그녀가 언제 태어났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그녀의 아들이나 손자, 그외 아래 세대의 사람들은 그녀가 100살을 살았다고 믿어줄 수 밖에 없다. 실제로는 할머니가 70살 정도 밖에 안 되며 할머니가 다소 오락가락해서 자신의 나이를 '대충 100살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어차피 할머니의 나이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그 아들은 자신의 나이와 어머니의 나이를 셈하다가 실수를 하여 40 정도를 잘못 더해 버렸고, 자신의 어머니가 '140살에 돌아가셨다'고 여기게 되었다. 할머니의 나이는 이 시점에서 이미 현실의 2배로 연장되었다. 게다가 이 마을은 오래되고 오류가 많은 역법으로 해를 세고 있었기 때문에, 1년의 길이가 다른 지방보다 짧았다. 나중에 기록가들은 구전 기록을 바탕으로 역법 보정을 한 결과, '210년을 살다가 죽은 할머니의 전설'이 버젓하게 기록되어 이 할머니는 자신이 실제 살아온 연령의 3배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비의도적인 '실수'만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조상을 미화, 윤색하려고 과장되거나 왜곡된 증언을 할 수도 있다. 또 다시 가공의 예를 들자면, 할머니의 증손자가 장사를 잘 지어서 큰 부자가 되었는데 집안에 딱히 자랑거리가 없었고, 아버지에게 들은 "우리 할머니가 300살을 살았다더라." 정도만 기억해서 약간은 폼 나는 술자리 조상 자랑 거리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사실 신의 축복을 받아서~"라고 붙이면 좀 더 그럴듯해진다. 이런 의도적, 비의도적 과정을 거치면 평범하게 70평생 살다가 죽은 시골 할머니가 "300살을 살았던 신성한 할머니"로 은근슬쩍 승격될 수 있다.

이렇게 전승 기록들은 후대에 문자 문화가 도입된 다음 증언을 채록하면서 과장과 왜곡을 거치면서 수년에서 수십년, 수백년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 문자 기록이 있는 사회라도 기억의 오차 등의 이유로 인해 출생 기록이나 집권 시기가 문헌에 따라서 몇년씩 차이 나는 경우는 흔히 비교적 있으며, 이런 사회에서도 하층민들은 아예 구체적인 출생 시기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경우도 매우 많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도 고작 몇십년 전만 해도 본인이 말하는 나이, 주변인이 증언하는 나이, 족보호적 등에 기록된 나이가 1~2년에서 많게는 수년 정도 차이나는 일은 흔히 있었다. 행정 기록의 도움없이 민간에서 기억하는 연대기적 기술은 이처럼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 대부분의 산수 문제
이 문제도 간단한데, 고대인들에게는 수학(이라기보다는 )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 의무교육이 활발한 우리나라 사람에게 사칙연산을 셈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지식이며 심지어 초등학생마저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 유대교 하레디 집단의 사례를 보면, 더하기와 빼기는 둘째쳐도 18살에 곱하기와 나누기를 베우는 사례도 존재한다. 그러니까 기초적인 사칙연산마저도 '성경에 포함된 지식'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우리가 현재 쓰는 라비아 숫자사칙연산은 간단하게 되어 있어서 몇만자리 셈도 간단하게 할 수 있지만 0과 자릿수의 개념이 없는 그 이전의 숫자들은 간단한 사칙연산도 상당히 어렵다. 히브리어 문자를 그대로 숫자로 활용하는 히브리 숫자 역시 마찬가지로, 이 문자를 사용한 계산이 그리 쉽지는 않다.

  • 생물학 문제
근대 박물학이 발달하기 전 까지, 지식인이라 해도 생물에 대한 이해는 변변치 못한 수준이었다. 지식인들은 동물이나 곤충, 식물을 그리 자세하게 관찰하지 않았고, 이런 현실에 존재하는 생물을 관찰하는데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지식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이런 분야에 몰두할 경제적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 때문에 생물에 대한 지식은 경험적이고 피상적인 것으로 현실과 동떨어졌거나 왜곡된 것이 의외로 많이 있었다. 이러한 왜곡된 선입견들은 근현대까지만 해도 꽤 많이 남아 있었으며, 실증적인 연구에 따라서 하나씩 제거되고 없어지게 된다. 파브르곤충기 같은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생물 기록이 나타나게 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일반인들도 동식물, 곤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데, 유대교에서는 특히나 '더러움'을 경계하여 유대교의 신학자, 사제 등은 동물을 더욱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에게 곤충의 다리는 몇개인가?같은 질문은 전혀 중요한 지식이 아니었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즉, 진지하게 생물을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물에 대한 지식이 엉망이 되었던 것이다.

  • 결론
이러한 원인들은 결국 성경이 집필되던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데 이것은 야훼의 실존 가능성이 다른 시대적 한계를 보여주는 신화와 경전의 온갖 형이상학적 존재들과 같은 수준라는 것을 시사한다. 고대인이 자기들 수준에서 버거운 계산을 틀려먹어서 성경에 틀린 기록을 하거나, 숫자를 왜곡하거나, 생물학적 지식이 불완전하여 잘못된 것을 기록할 동안, 성경을 쓰게끔 했다는 야훼는 그냥 손 놓고 보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전지전능하며 성경을 쓰게끔 했다는 존재가 실존했다면, 고대인들이 계산을 틀리게 하여 기록하거나, 잘못된 생물학적 지식을 기록을 할 때 그걸 고쳐 주었어야 정상이 아닐까?

그러니까 다른 종교와 경전, 그리고 다른 신화에서도 발견되는 이러한 한계를 성경이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야훼가 실존할 확률이 제우스시바, 비슈누, 오딘이나 토르, 사우론, 간달프, 호빗,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과 같은 온갖 다른 형이상학적 존재들과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13]

이걸 반박하고 싶으면 목성의 궤도를 돌고 있는 찻주전자의 존재가 반증 불가능하니 존재하는 것이라는 명제나, 토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없으니 토르는 실존한다는 명제를 부정해보면 된다. 둘 다 반증 불가능한 것만이 유일한 존재의 근거가 되므로, 야훼의 실존 여부에 대한 명제와 전혀 다르지 않다.[14][15]


4. 기타 논란

4.1. 일부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4중적 해석법


이러한 오류들에 대한 일부 기독교인들의 해명 중 하나는 성경을 4중적 해석법으로 해석하라는 것이다.

4중적 의미의 해석은 중세까지 유행하던 해석방법으로 성경해석을 4가지 의미에서 관찰하는 것이다. 필로의 영향을 받은 오리겐에 의해 3중적 의미의 해석이 시도되었는데 후에 4중적 의미의 해석으로 되었다.1.역사적 의미 혹은 문자적 의미 (sensus historicus or literalis)란 단어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 2.교훈적인 의미(senus tropologicus)란 교훈과 도덕적 시정(the correction of morals)을 찾는 것 3.풍유적인 의미(sensus allegoricus)란 문자적 의미 이상의 다른 의미를 설명하는 것 4.영적 의미(sesus anagoricus)란 신비적으로 혹은 공적으로(mystically or openly) 사용되는데, 듣는 자의 마음이 하늘의 것들(heavenly things)을 묵상함으로써 감동받고 훈계를 받는 것.4중적 의미의 방법으로 예루살렘을 해석해 본다면 문자적(literal)으로는 팔레스타인의 문자적 도시이며, 풍유적(allegorical) 의미로는 교회를 의미하며, 도덕적(tropological) 의미로는 인간의 영혼을 언급하며, 영적(anagogical)인 의미로는 하늘의 도성을 말한다.

문제는 이러한 사중적 해석법의 기준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체 성경의 어느 부분까지를 역사적으로 보며, 어느 부분까지를 교훈적 의미로, 또 어느 부분까지를 풍유적 의미 및 영적 의미로 보아야 하는가? 그 기준은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보편 교회는 거룩한 공교회(sancta ecclesia catholica)의 해석이 그 기준이라 하지만, 이 또한 제대로 된 기준이라고 볼 수가 없다. 현재 지구상의 개신교 종파의 수는 대략 무려 25000여개에 달한다(...). 또한 각 종파마다 저마다 옳다고 내세우는 성경 해석법은 당연하게도 한 둘이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거룩한 공교회'의 해석은 대체 이 25000여개의 종파의 교회 중 어느 공교회의 해석을 말하는 것인가?

기독교인들은 이에 대해, 그리스도교의 50%에 해당하는 로마 가톨릭은 하나의 교도권 아래 뭉쳐 있으며 나머지 기독교인들도 연합기구를 구성하고 있다[16]다고 주장한다. 또 제7차 에큐메니컬 공의회 까지의 해석이 정통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으로, 기독교 연합체인 WCC나 WEA에서는 각 기독교 종파를 아우르는 성경의 4중적 해석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국내 외 어떤 기독교 연합체나 어떤 공의회라도 각 종파를 막론하고 적용할 수 있는 성경 해석의 4중적 해석법의 기준을 제시한 적은 전혀 없다.

가까운 예로, 국내 기독교 메이저 교단 중 가장 보수적인 교단인 예수교 장로회와 가장 개혁적이라는 기독교 장로회 사이에는 성경 해석에 있어 차이가 많은 편인데, 특히 예수교 장로회 쪽에서는 위에서 언급된 문자적 해석을 주로 하며 성경무오설을 주장하는 반면, 기독교 장로회 쪽에서는 성서 비평을 통한 해석을 위주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은 지양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장의 경우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교훈 상당수를 개인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 하는 반면, 기장의 경우에는 사회 구원과 연결 지어 해석하며 여러 사회 운동과 접목시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보수 쪽인 예장 쪽에서는 기장의 이러한 성경 해석에 대해 좌파적이라는 평가를 하며, 심하면 이단이라는 언급도 심심찮게 하며 대단히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니, 이러한 기독교 교파 간의 차이를 기독교 연합체에서 통합하여 공통된 성경 해석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주장부터가 희극적인 주장에 가깝다.(...)

개신교 내 종파들 간의 문제 뿐만 아니다.로마 가톨릭과 개신교계의 성경에 대한 해석도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구약 인물들의 영이 지하로 내려 갔다는 구절에 대하여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를 연옥 교리에 대한 근거로 해석하지만, 개신교 계에서는 이런 해석들을 전면 부정하며 연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또한 복음서의 내용 중에 예수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는 구절에서도 로마 가톨릭 측에서는 이 구절을 베드로에 대한 교황권의 부여로 해석하지만 이 해석 역시 개신교 계에서는 전면 부정하고 있다. 이렇게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계의 성경 해석에서 상충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 어느 쪽의 해석을 정통으로 보아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일부 기독교인들은 로마 가톨릭과 1999년에 교황청-루터교 간에 의화 교리에 관한 일치 선언이 이뤄졌다 것, 2006년에는 교황청-감리교 간에 의화 교리[17]에 관한 합동 선언이 발표 됐다는 사실, 그리고 2011년엔 교황청-WCC-WEA 간에 전도와 선교에 관한 공동 선언도 발표 되었다는 사실들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보면 알겠지만, 저 선언들에는 '초교파적인 4중적 해석법에 대한 기준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토시 하나 없다. 위의 의화 교리 일치 선언, 전도와 선교에 관한 몇몇 지엽적인 공동 선언 몇 가지는 '성경의 초교파적인 4중적 해석법'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들]이며, 당연하지만 저런 상관도 없는 선언 몇 가지를 근거로 개신교계와 로마 가톨릭의 성경 해석이 일치하며 가톨릭과 개신교계를 아우르는 초교파적인 성경 해석법의 기준안이 존재한다는 주장의 타당성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18] 게다가, 기독교의 종파가 가톨릭과 개신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논란에 성공회, 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의 분파 등의 종파까지 넣어서 계산한다면,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전부를 아우르는 초교파적인 해석안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포기하면 편해

또한 일부 기독교인들은 대다수의 교단들이 성경 해석시 지엽적인 부분에 집착하지 말고, 성경의 집필 의도와 중요 주제(그리스도나 의화나 선교와 같은)에 초점을 맞추자고 한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주장은 '초교파적인 4중적 해석법의 기준안'이 존재한다는 주장과 어떤 상관 관계도 없다.[19]

또 초교파적인 4중적 해석법의 기준안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를 축자 영감설과 대비해서, 목적론적 영감설을 언급하며, 이는 진보신학의 중심인 장공 김재준 선생의 신학이기도 했고 개신대학교대학원 김구원 교수도 이 설을 지지한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교단과 교단 사이에 큰 궤를 같이 하는 부분에서 일치하는 지엽적인 부분들, 즉 각 교단의 교리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치하는 부분에 대한 부분적 동의의 예를 가지고 초교파적인 성경 해석의 기준안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며, 당연하게도 저 경우에도 초교파적인 성경의 4중적 해석법의 기준안'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전혀 없다.(...)

최소한 개신교와 가톨릭까지 아우르는 '초교파적인 4중 해석법의 기준안'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려면, 근거도 될 수 없는 선교/전도 및, 예수에 의한 구원 등등의 거시적인 부분의 가톨릭-개신교 공동 선언이나, 개신교계 교파 간의 몇몇 지엽적인 예를 가져올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장이나 예장, 감리교, 침례교 및 성결교 등등의 개신교계 메이저 교단과 로마 가톨릭이 연합하여 '4중적 해석법의 기준안'을 제정하고 사용할 것을 공동 결의 한 내용이나, 개신교 주요 교단 계열 신학대의 신학 교수들'과 바티칸의 서품을 받은 사제들이 '성경의 초교파적인 4중적 해석법의 기준안'에 대해 공동 저술한 직접적 신학 논문레퍼런스를 찾아서 근거로 가져오면 될 일이다. 예수 재림할 때까지 찾아도 없을거다

현실이 이 모양이니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4중적 해석법 드립은 이러한 성경의 논란과 오류에 대한 설명으로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소위 말하는 문자적 해석이 불리할 때, 이를테면 현재의 보편적 윤리와 어긋나는 구절이나, 곤충의 다리를 4개라고 하거나, 곤충이 4개의 다리로 기어 다닌다고 하는 어이없는 구절들에 대해서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 풍유적/영적 의미 운운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올 지경이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소위 '문자적 해석'이 곤란한 구절들이 모두 '영적 해석'이나, '비유적 해석'으로 합리화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게 문제다. 곤충이 4개의 다리를 가졌다 내지는 4개의 다리로 기어 다닌다는 부분은 대체 어떤 영적/비유적 해석으로 보아야 하는가?(...)

결정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지만, 설사 가톨릭과 개신교, 개신교계의 모든 종파들을 아우르는 초교파적인 성경의 4중적 해석법에 대한 기준안'(...)이 있다고 가정을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그 기준이 옳다는 것은 무엇으로 보장하는가? 당장 성경 안에서조차 윤리적/전근대적인 부분들을 제외하더라도, 역법/숫자 상의 상충 및 상호 모순, 이문 현상이 일어나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애당초 야훼의 뜻과 개입으로 쓰여졌다는 성경이 집필되고 필사되던 시점에서조차 그러한 오류들이 산재했던 것이 현실인데, 몇 천 년이 지난 오늘날의 시점에서야, 기준을 세운다고 세워서 해석해 봐야 해석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지 않을래야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신약 성경에 산재하는 모순과 사본들 사이의 이문들의 문제는 비유적/풍유적 해석 운운하는 불가능|4중적 해석법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서만 해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리스도교인들이 내용을 서너 번, 혹은 그 이상 원래의 내용을 바꾸었기 때문이며, 이외에도 교파 간의 갈등이나, 개인의 신학적 고찰 등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내용에 변경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필경사의 부주의[20]나, 오/탈자 등의 문제로 인해 생기는 오류와 모순들과 이문들[21]문제를 영적(...)이고 풍유적으로 해석을 시도한다고 해결이 되겠는가?(...)

즉, 이러한 성경의 4중적 해석법은, 교회 내부에서 이미 믿음을 가진 신도가 성경을 이해하는 것을 돕는데나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다. 4중적 해석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성경 내부의 상충되는 모순과 비합리적인 내용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4중적 해석법으로 성경의 모순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일부 기독교인들도 곤충의 다리가 4개[22]라는 구절은 어떠한 영적/풍유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느냐'''(...)는 등의 난감한 질문을 받으면 '성경의 4중적 해석법'은 어디다 두었는지 뜬금없이 '성경의 그런 지엽적인 부분을 보지 말고, 큰 부분을 보자'는 주장을 한다.(...) 결국 4중적 해석법은 교회 내수용

그러나 이러한 '성경의 그런 지엽적인 부분을 보지 말고, 큰 부분을 보자'는 주장은, 성경의 수많은 오류와 모순들에 대한 설명을 거부하고 야훼가 인류를 창조했으며 인류는 예수를 통해 구원 받는다는 자신들의 기본적 교리를 덮어놓고 존중하거나 믿으라는 주장에 가깝다. 이러한 주장은 기독교회 내에서 기독교인들에게나 할 수 있는 주장이다.

4.2. 전지전능한 신의 뜻이라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

성경 내부의 모순이나 비윤리적인 부분들 가지고 기독교인들과 논쟁을 하다 보면 거의 항상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전지전능한 야훼님의 뜻을 한낱 미물인 우리 인간은 알 수가 없다. 라는 이야기다. 얼핏 들으면 매우 그럴듯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일단 위의 4중적 해석법 단락을 보면 알겠지만 기독교인들을 보면 성경 구절을 해석할 때 해당 구절에 반영된 야훼의 뜻이 이러니 저러니 많은 말들을 하는데, 종파에 따라 성경에 대한 해석이나, 야훼의 뜻을 이야기하는데 차이가 있다. 즉, 기독교도들끼리도 말이 통일되지 않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 해석의 근거를 물어보면 대부분 성령의 힘이라느니, 영적 눈으로 봐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하며, 성령이 영적 눈을 틔워주어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성령이 감화 감동을 일으켜 영적 눈으로 풀이를 하는데, 왜 교파마다 해석이 다른 부분이 존재하는가? 성령도 교파 별로 여러 종류가 있는가? 또 성경을 해석하고 영적 눈을 틔워주는 전지전능한 성령이 있는데, 왜 인간이 알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가? 성령이 인간이 알 수 없는 부분과 알 수 있는 부분을 골라서 해석을 해주는가?

기독교인들의 말을 자세히 관찰하면, '야훼가 인간을 창조했다', '야훼가 인간을 사랑한다', '예수가 인간이 되어 세상에 내려왔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예수가 인류를 대신해서 죽었다' 등등, 주로 야훼와 기독교에 유리하고 긍정적으로 내비칠 수 있는 교리는 거침없이 분명한 야훼의 뜻이라면서 이야기 하며 이런 종류의 말을 할 땐 인간이 야훼의 뜻을 알 수가 없다느니 하는 말은 전혀 없다.

그러나 하필 성경 내에서 발견되는 여러 상호 모순이나, 타민족 학살, 여성 차별, 동성애 증오, 유아 살해 및 대량 학살 등의 전근대적/비윤리적 부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할 때만, 즉, 야훼와 기독교에 불리한 부분을 질문하게 되면 바로 위와 같은,'전지전능한 야훼의 뜻이라 미천한 인간을 알 수가 없다'는 논리를 펼친다.

사실 다 똑같은 야훼의 뜻인데, '야훼가 인간을 사랑한다'와 같이 듣기에 좋고 긍정적으로 내비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모르는 것 없이 술술 이야기 하다가, 왜 유독 '야훼가 아말렉의 젖먹이 아기들을 죽였다'같은, 비윤리적이고 전근대적인 구절에만 이르면 '인간은 알 수 없다'고 나오는 것인가?

'전지전능한 신의 뜻이라 인간은 모른다'라는 기독교인들의 말이 사실일 경우, 야훼는 자신에게 유리하고 듣기에 좋은 부분은 인간이 잘 알 수 있도록 해놓았으면서, 유독 자신의 비윤리적이고 잔악하고 야만적인 부분만 인간이 알 수 없도록 해놓았다는 말이 된다.야훼 아자토스설

4.3. 십자가 대속에 대한 의문

기본적으로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신서와 묵시록을 포함한 신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심되는 내용이 바로, 예수의 십자가 구원에 대한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구원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죄를 대신 갚아준다는 속량물 혹은 대속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속량물이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문화로, 자신들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죽어 줄 동물을 야훼의 장막으로 사 가지고 가서, 거기서 동물에게 자신의 죄를 뒤집어 씌우고 칼로 멱을 따서 피를 야훼의 제단에 뿌리고, 고기는 불에 태워 번제로 바치는 것을 말한다. 천지 만물을 다 창조했다는 야훼가 왜 짐승들을 창조해놓고 인간의 대속물로 억울하게 죄를 덮어쓰고 죽게 했을지도 의문이다.

예수의 십자가 보속이라고 하는 개념도 이와 같은데, 정리하자면 이렇다.

1. 인류는 아담의 원죄와 자신들이 지은 죄로 야훼와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2. 야훼의 위격 중 하나인 성자 예수가 육신을 입고 내려와 인간이 되어 세상에 내려왔다.

3. 예수의 제자인 유다가 배반을 하고, 유대인 제사장들 및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죄없이 죽였다.

4. 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예수가 온 인류의 죄를 사하게 되었다.

5. 따라서 이 예수를 믿으면 원죄가 사해진다.

우리는 여기서 4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는 속량물로서 온 것이다. 예수를 표현하는 말 중에 어린 양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이 어린 양(lamb)이라는 말 자체가, 대속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예수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온 목적은 죄 없이 죽여져서 그 죽음으로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한 것이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더 짧게 표현하자면, 예수가 지상에 온 이유 자체가 죄 없이 죽기 위해 온 것이라는 소리다. 그러자면 3번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수는 반드시 죄가 없이 죽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반드시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음의 의문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예수를 죽인 유대인 제사장들과 예수를 배반한 유다는 왜 비난을 받는가?

앞서도 말했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예수의 죄 없는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그랬다면 예수의 십자가 구원도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들을 욕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묘사나 기독교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잡아죽인 대가로 나라를 잃고 뿔뿔히 흩어졌다는 둥, 말이 많다.

성경을 보면 마귀가 유다가 배반하게끔 했다고 하는데 이건 무엇인가?

구약 성서 욥기를 보면 알겠지만, 기독교 교리에서는 심지어 사탄 마귀조차도 활동을 할 때는 야훼의 허락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다. 하기사, 전지전능하며 세상 만물을 주관한다는 자가 야훼인데, 그 야훼의 통제 밖에서 사탄이 제멋대로 활동할 수는 당연히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 배신할 마음을 넣었다는 마귀조차도 야훼의 명령으로 그렇게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이건 유다의 잘못도 아니다. 진정한 흑막은 야훼라는 소리다.

유대인 제사장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고 모셨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복음서에 의하면 당시 로마는 예수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었다. 폰티우스 필라투스 조차 예수를 그저 미친 놈으로 보았고, 유대인 장로들이 사형 언도를 내려달라 하자 여러 차례 거부한 바 있다. 예수는 사상가였고 그저 혁신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이지, 열심당원도 아니었고 무력으로 봉기한 집권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과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서기관과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고 아무도 예수를 죽이지 않으려 했다면, 대체 예수의 십자가 대속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앞서도 말했지만 예수가 죽어야만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아무도 '죄 없는' 예수를 죽이지 않으려 했다면, 예수는 인류의 대속을 위해 목을 매달고 자살이라도 했어야 할 판이다.

5. 학술적 탐구

5.1. 구약 성경에 대한 이해

구약을 이루는 24(가톨릭 46, 개신교 39)권의 책은, 유대인이 '토라'라고 부르는 모세오경을 제외하고는 통일된 체계도 없이 각각 읽혀져 왔다. 사실 Bible을 '성경'이라고 표현하는 발상이 '사서오경'에서 나온 것인데, 유교의 수많은 경전들과 마찬가지로 구약의 많은 책들이 기원전 1400년부터 400년 사이에 각각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른 목적으로 쓰여진 것들이다.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시기의 토라를 살펴보자. 유대인은 처음부터 하나의 집단으로서 존재해오지 않았다. 탈출기에 묘사된 출에굽사건을 계기로 하여, 기존에는 별개의 집단이었던 것이 하나로 규합된 것이다. 아무리 오래 보아도 이 때를 기점으로하여, 역사적으로는 고대 이스라엘 국가 성립 이후에야 민족의식(Nationalism)이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전설상의 시조인 아브라함, 민족의 시조 모세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 토라인 것이다. 창세기는 토라의 가장 앞장을 장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기원전 440년경 취합된 것으로 인정된다.

기독교인 중에서 기존의 성서무오설과, 성경은 비과학적이라는 양쪽 논리를 모두 비판하는 시각에서는 창세기는 세상이 창조된 과정이나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세상은 하느님이 만드셨다"라는 지식을 전달하고, 당대에 널리 퍼져 있던 범신론, 다신론과 그들의 신앙을 구별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며, 기원전 1400년경의 사람들을 위해 당대에 불필요한 이야기는 최대한 빼 버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그 나머지도 상기한 것처럼 모순과 논란이 넘쳐나는게 문제이다.

5.2. 신약 성경에 대한 학문적 연구

우선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에 대한 학문적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복음서들은 원래 그런 이름으로 불린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특정한 저자가 없었던 것이다. 각 복음서는 각 그리스도교 분파의 '가르침'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다 후대에 가상의 저자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복음서들은 사실상 익명의 작품들이다. 복음서 안의 모든 내용은 중세기 대부분의 문서와 마찬가지로, 예외없이 대문자로 씌어져 있고, 제목이 없으며, 장이나 절의 구분도 없고, 실제로 낱말들 사이에 구두점이 없다. 이 복음서들은 유대인의 아람어로 쓰여지지 않았고 오직 그리스어로만 쓰여졌다.

사실 복음서 간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문제이다. 복음서는 예수를 일일히 쫓아다니면서 작성한 게 아니다. 사도행전 8장 25절, 사도행전 8장 4절 등에 나오는 듯이 처음 예수의 행적과 말씀은 성문화되어 전해진 게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내려왔다.

이런 구전복음(Oral Gospel)이 처음으로 문서화된 것이 대체로 기원후 50년정도라고 보고, 이런 원시적인 문서자료들과 구전자료, 그리고 복음사가가 자신의 기억들을 취합하여 작성한 복음서로서, 4복음서 중 가장 이른 마르코 복음서이 작성된 것이 기원후 70년경이라고 할 수 있다. 루카 복음서, 사도행전의 시작, 끝부분을 기반으로 좀 더 이른 시대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봐야 기원후 60년쯤.

이렇기 때문에 복음사가들이 각자 사용한 자료, 그리고 그 자료들을 어떤 의미에서 배열했는가에 따라 복음서들의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예수의 생애를 역사적으로 복원하려는 무수한 시도가 있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예수전'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작금의 복음서들은 종교적 경전으로서는 몰라도, 역사적 고증 가치가 있는 문헌으로서는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23]

또한 복음사가들은 복음서를 쓸 때 제각각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마태오 복음서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을 위한 것이고, 마르코 복음서로마 이방인, 루카 복음서그리스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복음사가들이 자신이 수집한 기록들을 나열하고 정리할 때 그들의 의도가 개입되었다.[24] 복음서 간의 차이가 나오는 것은 이것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주된 논란 목록'의 복음서 간의 차이에 관한 내용들도 상당 부분 이에 관련된다. 또한 이것은 엄밀한 의미의 일관된 '예수전'을 만드는 것이 위험한 일인 이유이기도 하다. 각 복음사가들이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배치해 놓은 사건들을 뒤섞어 버려서 그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또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내용이 바뀌고 덧붙여졌다. 이교도 비평가 켈수스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내용을 비판하는 주장을 무마할 목적으로 서너 번, 혹은 그 이상 원래의 내용을 바꾸었다'고 지적한다. 이외에도 교파간의 갈등이나, 개인의 신학적 고찰 등 여러가지 이유에 의해 내용에 변경이 이루어졌다. 그리스도교 철학자 오리게네스는 3세기의 저술에서, 변해 가는 신학적 풍토의 요구에 발 맞추기 위해 원고가 계속 편집되고 개편되었다는 사실을 시인한다.

오늘날 수 많은 판본의 원고가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것은 필경사의 부주의나. 일부 사람들이 주제넘게 원문을 고쳤기 때문이거나, 더러 교정자로 자처하여 제멋대로 첨가하거나 삭제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입증하기 위해, 바트 어만은 완전히 무작위로 복음서 일부를 선택했다. 이 때 선택된 것은 마르코 복음서 10장과 11장이었다. 그는 여러 초기 원고들 간에 다른 점이 얼마나 많은지 점검했다. 결과, '전체 내용으로 볼 때 48곳 이상이 달랐다. 상호 비교하면 2곳만 다른 것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 3곳 이상이 달랐고 어느 경우는 6곳 이상이 달랐다.

학자들은 복음서 내용 가운데 후대에 추가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냈다. 예컨대 원래 마르코 복음서는 16장 8절에서 끝난다.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고 여자들이 무서워하는 장면에서 끝난 것이다. 소위 긴 결말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초기원고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지만, 오늘 날엔 거의 모든 신약에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마르코 복음서 참고.

참고자료 : 《성경 왜곡의 역사》(바트 어만[25] 저, 민경식 역, 청림출판)

6. 현대 사회에서는 지킬 수 없는 부분

현대 윤리에 비추어 보아도 문제가 되지 않아도, 현대 사회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당연히 존재한다.

  • 피를 먹지 말라고 하는 부분여호와의 증인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이걸 지키려면 고기에서 피를 100%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당장 모든 고기를 못 먹게 된다.(...) 정 지키고 싶다면 채식주의자가 되면 된다. 또한 피를 먹지 말라는 부분을 확대해석해서 수혈을 받지 않고 있지만, 그럼 사고로 수혈이 꼭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얘네
  • 지상 생물 중에서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만 먹을 수 있다고 되어 있으며 이외의 동물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고 그 주검을 만지지도 말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돼지는 새김질하는 동물이 아니므로 (성경을 따른다면) 먹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
  • 생선 중에서는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만 먹을 수 있다. 즉 두족류를 먹을 수 없다.
  •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을 수 없다. 즉 마블링을 먹어선 안된다.
  • 아이를 낳으면 일 년 된 어린 양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데 국내법에서는 정해진 도축장 이외의 장소에서 허가 없이 동물을 도축해서는 안 된다. 그 외에도 많은 곳에서 제사 규정이 드러나 있다. 근데 애초에 성전이 없어 제물을 바칠 수도 없다(…).
  • 두 종류 이상의 재료로 된 옷을 입어선 안된다고 한다. 따라서 고분자 물질[26]로 구성된 합성섬유로 된 옷을 입을 수 없다.
  • 여자는 남자 옷을 입을수 없고. 남자는 여자 옷을 입을수 없다. (신명기22:5) 남장여자 여장 남자들 지못미. 유니섹스는 어떨까
  • 군 진영 안에서는 화장실을 설치할 수 없다. (신명기23:12)
  • 난간이 없는 지붕을 만들수가 없다. (신명기22:8)
  • 아내는 격투중인 남편을 구하기 위하여 상대방의 음낭을 잡을 수 없다. (잡으면 손목을 잘라야 한다.) (신명기25:11~12)이건 인도주의적이잖아, 의사양반!
  • 돌로 쳐죽여야 한다는 법 대부분. 안식일에 일을 했다던가.(민수기15:32~36) 시온산에 들어간 동물이라던가. (히브리서12:20) 무당이라든가.(출애굽기22:18) 혼전순결을 잃은 여자라든가.(신명기22:20~21) 부모님 말씀을 거역했다던가. (신명기21:20~21)

다만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것은 전부 다 유대인에게 주어진 율법이며 신약시대에 와서 폐지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제사에 관한 내용은 예수의 속죄로 더 이상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같이 폐지되었을 법한 조항인 십일조동성애금지는 오히려 더 강조하고 있는 실태이다.(...)

게다가 예수는 율법을 폐하러 온게 아니라 완전하게 만들고 세상 무너져도 율법이 없어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마태 5:17~18)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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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구약 내에서의 상호모순을 나타낸 시각화 자료이다. 큰 이미지로 보기. BibViz Project 홈페이지에서 모든 성경의 모순을 검색하고 찾아볼 수 있다. [27] 막대기 하나하나가 장(chapter)를 의미하며, 하얀 건 신약, 회색은 구약을 나타낸다. 막대기의 길이는 각각의 장들의 절(verse) 분량을 의미하고, 빨간 원은 모순되는 부분을 연결해놓은 것이다. 이 시각화 자료는 소설로 치자면 '세계관 내에서의 모순' 즉 서술상의 오류와 모순들을 표현하고 있다. 성경에서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부분이나 학술적, 역사적인 모순까지 따져보면 이런 모순의 수는 훨씬 늘어난다. 이 웹사이트에 성경 충돌부분을 클릭하여, 댓글 부분을 보면, 충동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조금 있기는 하다.

이러한 자료들이 있기에, 성서무오설은 대개 개드립 취급 받는다. 그러니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 꺼냈다가 괜히 같은 기독교 신자들까지 욕먹는 일이 없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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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개신교인들은 "'오직 하나이신 분'이라서 '하나님'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어 문법에 따르면 틀린 말이다. 수사(數詞) 뒤에는 존칭접미사 '님'이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개신교에서 '하나님'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도 '오직 하나이신 분이라서'가 아니라, 구한말부터 개신교가 융성하였던 평안도 지역의 사투리('하늘'을 '하날'이라 불렀다고 한다.) 및 당시 국어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이미 1977년 가톨릭개신교가 함께 번역한 공동 번역 성서에서도 '하느님'이라고 표기하였다. 명사(名詞)인 '하늘' 뒤에는 존칭접미사 '님'이 올 수 있고, 여기서 ㄹ이 탈락하여 '하느님'이 된다.
  • [2] 천주교, 정교회, 개신교에서 모두 인정하는 보편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경 정경 목록을 결정했다면, 아무리 마르틴 루터라고 해도 구약의 얌니아 목록을 받아들이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나? 교회사에 대한 오류 중 반기독교로 인해 은근히 널리 퍼진 소문이다. 특히 천주교를 기준으로 할 때,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까지 성경 정경 목록은 성문법적으로 정한 게 아닌, 관습법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 [3] 한국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는 상당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본 항목의 상당 수도 외국인인 바트 어만의 저서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 [4] 통상 유대교-기독교의 신인 야훼를 의미한다.
  • [5] 성서비평학을 수용하면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신앙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경우이다.
  • [6] 성서무오설이라고 성서비평의 수용 여부에 따라서 논리적 오류를 인정할 수는 있다. 신앙적인 부분과 비평적인 부분을 분리하여 바라보는 경우이다. 물론 근본주의자 입장에서는 이단, 또는 사탄 마귀와 같은 족속들이 된다.
  • [7]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한 S목사가 담임 목사로 있는 Y교회를 20년 이상 다닌 사람도, "주일 대 예배 때 목사가 성서 비평적으로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 [8] 2007. 10. 13
  • [9] 대한민국에서 가장 개혁적인 기독교 장로회 계열 신학대이다.
  • [10]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생긴 종교
  • [11] 성탄절은 예수의 생일이 아니라,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물론 신자들은 편의상(혹은 몰라서) 그날이 생일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 [12] 사실 야훼-예수의 실존을 믿지 않는다면 종교적 의미의 기독교인이 아니다.
  • [13] 물론 이것은 야훼가 존재할 확률이 0%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야훼가 존재할 확률이라는게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존재할 확률과 동일하다는게 문제일 뿐(...)
  • [14] 즉, 찻주전자와 토르의 실존 여부를 부정한다면, 같은 성질의 명제인 야훼의 실존 여부도 부정되어야 한다.
  • [15] 물론 어떤 대상의 실존 여부에 대한 반증 불가능성은 그 대상의 실존 여부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특정 대상의 실존 여부가 반증 불가능하니 해당 대상은 존재한다는 주장 자체는 오류에 불과하다.
  • [16] WCC, WEA
  • [17] 야훼에 의해 죄인이 의로워질 수 있다는 교리를 말한다. 당연하지만 '초교파적인 성경의 4중적 해석법의 기준안'과는 전혀 관련 없다(...).
  • [18] 결정적으로 개신교계 내의 보수적 메이저 교단인 예수교 장로회 측에서는 로마 가톨릭을 공식적으로 이단이라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 [19] 게다가 후술하겠지만, 지엽적인 부분을 보지 말자는 이러한 주장 자체가 4중적 해석법이 성경의 비합리적이고 모순되는 부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 [20] 당시 신약 성경은 띄어쓰기가 없이 필사되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오류가 상당했다.
  • [21] 신약 성경의 이러한 이문 문제는 매우 심각해서, 바트 어만은 신약 성경의 전체 단어 숫자보다 이문의 수가 더 많다고 이야기 한다(...)
  • [22] 내지는 곤충이 4개의 다리로 기어다닌다
  • [23] 가장 처음 마르코 복음서이 작성되었고, 마태오와 루카는 마르코 복음서을 참고하는 한편 마르코 복음서 이외 예수의 언행을 기록해놓은 일종의 어록집을 공통으로 사용하였다. 이를 'Q자료'라고 한다. 이 Q자료 외에 마태오와 루카가 독자적으로 사용한 자료들은 마태오 특수자료(M), 루카의 특수자료(L)이라고 한다. 요한 복음서는 4복음서 중 가장 마지막으로 집필된 것으로 기원후 100년경에 작성되었는데, Q자료는 물론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상당히 많은 다른 기록들이 존재한다.
  • [24] 좀 값이 나가는 성경에는 각 복음서가 시작하기 전에 "저작 목적" 및 "저작 배경" 등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런 부분들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 [25] 이 양반은 미국 기독교내에서 대표적인 보수적 신약학자의 수제자였지만, 연구가 깊어짐에 따라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성서연구에 따른 회의 때문에 불가지론자가 되었다고 잘못 알려졌지만 바트 어만의 또다른 저서 "예수 왜곡의 역사" 후기를 보면 연구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온갖 부조리한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신은 절대선이라는 것이 맞는 것인가라는 신앙적인 회의감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 [26] 2종류 이상의 화학물질로 구성
  • [27] 이 웹사이트에서는 구절을 한쌍식 연결한것이 아니고, 한 토픽에 대해 같은 답과 다른 답들을 연결한것이다. 예를 들어, 지옥이 있다라는 토픽에서는 있다라고 하는 구절들과, 없다고 하는 구절들을 한번에 연결한 것이다. 이해가 안가면, 연결된 선 중 하나를 클릭해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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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11-20 12: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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